Posted by 박우진 프리앰프의 역할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관점이 다를 수 있다. CD 플레이어 같은 디지털 소스 기기의 입장에서는 프리앰프가 신호 경로에 덧붙여진 불필요한 존재로 보일지 모르지만, 하이엔드 사용자들은 누구나 프리앰프의 존재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고급 프리앰프와 음량 조절이 가능한 DAC나 CD 플레이어를 파워앰프에 직접 연결한 것과 비교하면 다음과 같은 차이가 나타난다. 평탄하고 자연스러운 밸런스, 보다 넓고 깊은 사운드스테이지를 제공해주며 살아 숨쉬는 것 같은 공간감, 그리고 매끄럽고 섬세한 음색을 들려준다. 실제 프리앰프는 파워앰프에 비해 작은 신호를 다루는 만큼 더 세심하게 설계되고 제작된다. 프리앰프가 더해짐으로써 신호 경로를 더 복잡해지겠지만, 신호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게 하려면 상당한 노하우가 필요하다. 때문에 애호가들에게 인정받는 프리앰프를 제작하는 업체는 손에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진공관 방식의 프리앰프로 좁혀보면, Audio Research, VTL, 그리고 BAT 세 회사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BAT의 프리앰프로는 30번대와 50번대의 제품들이 있는데, 레퍼런스 모델이던 VK-51se(이후에 VK-52se로 발전되었다)의 전원부를 분리하여 최상급 제품으로 제작한 것이 바로 Rex이다. 사실 VK-51se만 하더라도 프리앰프로서는 물량 투입이 엄청나게 된 제품이지만 빅터 코멘코 입장에서는 그에 안주할 수 없었던 것 같다. Rex는 단순히 전원부를 외부로 분리한 그런 제품은 아니다.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제작자의 목표는 홈페이지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it redefines the critical importance of a preamplifier to achieving great sound” 이로써 Rex는 BAT의 새로운 스탠다드 제품이 되었다. 이전에는 없었던 프리앰프를 만들어보겠다고 했으면 결과물 역시 그러해야 한다. 실제 제품의 구성은 Rex라는 이름이 주는 권위에 걸맞게 입이 벌어질 만하다. 컨트롤 부와 전원 부의 모든 부분이 듀얼 모노 구성으로 이루어졌다. BAT가 자랑하는 6H30 슈퍼 튜브를 컨트롤 부에만 무려 8개를 투입하고 전원부에도 2개를 사용했다. 무게는 각기 20kg과 18kg에 달한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파워앰프급의 프리앰프라 하겠다. 내부 구성을 보면 제작자로서 경제성을 도외시한 광적인 집착을 보는 것 같다. 다만 겉으로만 봤을 때에는 티 나지 않게 균형감각을 잃지 않은 디자인에서 오히려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Rex 앰프에서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커런트 소스 부분의 보드를 교체하여 진공관을 교체할 수 있다는 점이다. 표준으로는 6C19 튜브(6C33 튜브의 미니어처 버전이라고 한다)가 장착되어 있으나, X-PAK 액세서리를 구입하면 6H30 슈퍼 튜브를 사용할 수 있고, 5881 튜브의 경우는 보드 교체 없이 바로 바꿔서 사용할 수 있다.
내부 구성은 홈페이지(balenced.com)에 소개된 자료를 참조해서 보시면 더욱 좋을 것 같다. BAT는 프리앰프나 파워앰프의 조금씩 개량하면서 신제품을 내놓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Rex 역시 기본적으로는VK-51se에서 발전된 것으로, 버퍼나 팔로워 없이 싱글 게인 회로이며, 글로벌 네거티브 피드백을 사용하지 않는다. 입력단은 역시 모두 XLR로 구성되었으며, 5개의 입력과 2개의 메인 출력을 갖고 있다. 볼륨 컨트롤은 비셰이의 벌크 메탈 레지스터를 사용하며, 0.5dB에서 140단계로 조절한다. 볼륨의 해상도는 140스텝이며, 푸른색의 LED 디스플레이는 0.5dB 단위로 표시해준다. 진공관 프리앰프는 음색과 사운드스테이지의 이점 때문에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하이엔드 애호가들은 대형 스피커를 구동하기 위한 솔리드스테이트 방식의 파워앰프와 조합해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문제는 진공관 프리앰프가 출력 임피던스가 높기 때문에 저역 주파수의 응답에서 롤 오프가 발생할 수 있는 점인데, 특히 BAT 프리앰프에 적용된 오일 커패시터는 그 큰 크기에도 불구하고 커패시턴스 용량이 낮기 때문에 출력 임피던스가 200옴을 넘어선다고 한다. 따라서 입력 임피던스가 최소한 50k옴 이상인 앰프와 매칭하도록 권장된다.
시청 시청은 수입원인 케이원 AV에서 이루어졌으며, 코드의 레드 레퍼런스를 소스 기기로 하여 최신 제품인 윌슨오디오의 소피아3를 VK-150SE, 볼더2010 파워앰프, 코드의 14000 파워앰프를 감상했다. 연결된 케이블은 모두 킴버의 셀렉트 라인업이었다. 참고하기 위해서 매그넘 다이너랩의 MD-309 인티앰프도 연결했다. (소피아3 스피커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른 기사로 다룰 예정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VK-51SE 프리앰프를 오래 사용해봤지만, Rex는 또 다른 차원의 소리를 들려주는 제품이라고 생각한다. 밸런스나 음색 같은 기본적인 성향은 비슷하다고 하겠지만, 훨씬 세련되고 투명하며, 깨끗하게 들린다. 다만, Rex를 다른 프리앰프와 비교해서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Rex 앰프의 실력을 간접적으로 전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제 짝이라고 할 수 있는 VK-150SE와의 연결에선 아주 싱싱하며 우아한 음색이 매력적이다. 특히 클래식 음악의 현의 음색이 매끄럽고 깨끗하면서도 곱게 표현되는 것이 인상적이다. 예전에 Thiel CS2.4 스피커에 VK-51se프리앰프에 VK-75se파워앰프를 사용했었는데 그 때의 소리도 대단히 만족스러웠지만, 이번에 들은 소리는 또 완전히 다른 차원에 있었다. 조춘원, 문한주님과 함께 시청했는데, 내내 만족스러워하고 감탄하면서 계속 음악에 빠져들었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를 지경이 되었다. 진공관 앰프에서는 험이나 노이즈 때문에 고생하는 경우가 있는데, Rex 프리앰프에서는 그런 일이 없을 것 같다. 소리의 배경에 먼지처럼 달라붙은 것이 없고 현악기의 배음 역시 깨끗해서 거친 부분이 없다. 워밍업이 진행될 수록 소리가 유연해지면서 칠흑 같은 암흑에 생생한 소리 이미지가 가볍게 떠오르는 점은VK-51SE에서의 느낌과 비슷하다. 그러나 Rex 쪽이 더 안정감이 있고 더 풍부한 인상이 들었다. 예전에도 케이원AV의 시청실에 몇 차례 방문했고 더 비싼 시스템으로도 감상을 해봤지만, 지금 듣는 소리만큼 밸런스가 잘 잡히고 자연스러운 음색을 들어본 기억이 없었다. 윌슨오디오의 티타늄 트위터는 밝은 경향이지만, BAT 앰프와의 매칭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밝거나 화사한 소리를 내지 않는다. 대신에 BAT 특유의 매끄러움과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바꿔서 표현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관현악곡을 감상하면 넉넉한 사운드스테이지 속에 악기들의 이미징이 정확하게 포커싱 된다. 전체적인 음악이 음악답게 들리지만, 소리? 듣기 위해 어떤 악기나 부분에 집중하더라도 원하는 정보를 깨끗하게 전달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이미지 사이의 공간감과 잔향이 잘 표현된다. 역시 진공관 앰프 특유의 중역대의 부드러움은 말 뿐인 아니라 실제로 체험된다. 보컬 음악을 감상했을 때 노래 사이의 정적에서조차 미세한 디테일이 표현되는 느낌은 일품이었다. 음악적이고 내추럴한 소리가 대단히 만족스러웠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넓은 공간을 활용해서 좀 더 과격한 임팩트와 다이내믹스를 구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는 점이다. 물론 박스에서 꺼낸지 얼마 안되는 소피아3의 싱글 우퍼로는 상급기인 사샤의 더블 우퍼처럼 파워풀한 음향 출력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뭔가 숨겨진 내용이 있을 것 같았다. 프리앰프의 볼륨을 올렸을 때 소리가 확 뛰쳐나오는 파워를 기대한다면, Rex에 솔리드스테이트 방식의 앰프를 연결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BAT 파워앰프 옆에 준비되어 있던 코드의 플래그십 제품인 14000 모노블럭을 연결해 봤다. 보기만 해도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제품답게 또 다른 결과를 얻었다. 예전에 몇 번의 시청에서 코드 일렉트로닉스의 앰프는 윌슨 오디오의 스피커와는 음색이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이번의 시청 결과는 전혀 달라서 놀랐다. 밸런스나 음색에서는 Rex가 전체적인 지배력을 잃지 않았다. 코드 앰프보다는 BAT의 느낌을 보다 강화한 인상이라고 할까. 스피커에서 나오는 저음이 더 바닥을 강하게 압박하면서 전체적인 소리가 넓은 공간을 가득 채웠고, 음장의 크기가 전후 좌우로 보다 확대되었다. 스피커를 보다 강력하게 통제하고 더 강하게 드라이브하는 느낌이 만족스러웠다. 상대적으로 진공관 앰프의 순수하고 맑은 느낌은 약간 줄어든다.
길지 않은 시청이었지만 BAT가 이야기한 "Critical importance of preamp"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초고가의 하이엔드 제품들이라고 해서 모아 놓는다고 무조건 좋은 소리를 내주는 것은 아니다.
BAT REX 진공관 프리앰프
풀 밸런스 구성으로 밸런스 입출력만을 지원하는 것은 그들의 전통. 이 기기에서도 여전하다. 다섯 개의 밸런스 입력과 두 개의 밸런스 출력. 좋다. 그런데 테이프 출력도 역시 밸런스. 이것은 좀 아쉽다. 필자가 과문해서인지 밸런스 입출력을 쓰는 데크는 별로 보지 못했다. BAT가 풀 밸런스 증폭과 밸런스 전송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은 늘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이제는 지독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애호가 입장에서 보면 렉스는 진공관 프리앰프이므로 다른 회사의 진공관 파워 앰프와 매칭해보고 싶은 분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타 메이커의 진공관 앰프들은 밸런스 입출력을 갖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싱글 앰프라던가 전통적인 콘셉트의 제품이라면 거의 모두 언밸런스 입출력만을 갖는다고 보아도 좋다. 렉스와 같은 최신 프리앰프를 고풍스런 빈티지 진공관 앰프나 크론질라나 자디스의 상급기와 같은 매머드급 파워 앰프에 연결하면 어떤 세계가 열릴지 필자도 무척 궁금한데, 이런 맥락에서 BAT가 그들의 우수한 기술로 언밸런스 입력을 밸런스로 바꾸어주거나, 밸런스 출력을 언밸런스로 바꾸어주는 회로 정도를 탑재해 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젠더를 쓰면 된다고? 하이엔드 애호가에게 그런 말은 하지 말자. BAT에게는 어차피 소귀에 경 읽기. 쓸테면 쓰고 말테면 말라는 강한 자신감의 표현이겠으나 아무튼 고집하나는 알아줄만하다.
증폭부는 채널당 6H30 네 개씩을 차동 앰프로 사용하는 비교적 심플한 구성. 글로벌 네거티브 피드백은 걸지 않았다. 프리앰프의 핵심 부품이라고 할 수 있는 볼륨은 비샤이사의 고급 저항들을 사용하여 0.5dB간격으로 140스텝의 정교한 조정이 가능하다. 리모컨을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고 각각의 입력을 커스토마이징할 수 있어서 최대 볼륨을 설정시키거나 입력 게인을 설정하는 등 유저 인터페이스도 편리해졌다. 스펙을 보니 최대 출력 전압은 50V! 대부분 프리앰프의 최대 출력 전압이 10V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정말 엄청난 값이다. 출력 임피던스도 200옴으로 하이엔드 프리앰프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낮은 편. 주파수 특성은 2Hz로부터 200kHz까지 뻗는 광대역. 왜율도 2V 출력시 0.005% 수준으로 진공관 앰프보다는 하이엔드 반도체 앰프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렉스의 특징 중 가장 큰 것은 BAT의 프리앰프로는 첫 번째로 전원부와 컨트롤부를 분리시킨 두 몸체 구성이라는 점. 물론 전원부가 분리된 프리앰프는 하이엔드 제품 중에는 거의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무척 많고, 따라서 BAT로서는 때늦은 감도 있다. 애호가들 중에 전원부를 증폭 회로와 멀리 격리시킴으로써 험과 같은 고질적인 노이즈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엄격하게 따지고 들면 전원부를 분리시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전원부를 분리시키면 당연히 케이블로 연결해야 하는데, 케이블의 길이가 길어지거나 접점이 많아지게 되면 반드시 전원부의 임피던스가 높아지게 마련이다.
전원부의 임피던스가 높아진다는 것은 부하의 변동에 대해 순간적인 전류 공급 능력이 떨어진다는 의미. 따라서 메이커들은 전원의 임피던스를 낮추기 위해 트랜스만을 외부에 두고 정류회로와 평활회로를 증폭부에 두거나, 평활회로의 커패시터를 증폭부에도 나누어 장착하거나, 케이블의 탈착이 불가능하게 하여 접점을 없애거나 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쓴다(특히 이 문제는 파워 앰프에서는 음질 전반을 좌우할 정도로 무척 심각하고, 전력 소모가 적은 프리앰프에서는 상대적으로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이엔드’ 프리앰프라면 이렇게 아주 작은 부분까지 엄밀하게 추구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BAT는 이 점에 주목했고, 렉스에서는 컨트롤부와 전원부 두 몸체 모두에 전원장치를 내장하는 독특한 방식을 채택했다. 따라서 두 몸체 모두 별도의 전원선이 연결된다. 컨트롤부에 포함된 전원부는 그것만으로도 프리앰프를 구동하는데 충분한 수준. 사실 REX의 컨트롤부는 예전 BAT의 레퍼런스 모델 VK-51SE를 계승한 전원부 일체형 VK-52SE 프리앰프와 구성면에서 매우 유사하다(따라서 VK-52SE 사용자는 내부를 조금 변경하고 전원 모듈을 추가함으로써 렉스로 바로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다). 컨트롤부 내에 위치한 전원부는 주 게인 블록의 바로 옆에 위치하여 주 게인 블록에 확실하게 저임피던스 전원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별도의 전원부는 두 개의 5AR4, 네 개의 6C19, 두 개의 6H30 그리고 두 개의 6C45 등 무려 열 개의 진공관으로 이루어져 있는 구성된 초호화판.
재미있는 것은 전원부 내에는 컨트롤부의 6H30에 연결된 전류 소스 모듈이 있는데, 이를 사용자의 취향대로 교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전류 소스 모듈은 증폭부와 직결되어 있는 부분으로 음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를 교체함으로써 음색이 달라지며 음악적 뉘앙스가 변화하므로 사용 기기나 개인의 취향에 부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장 출하시에는 기본적으로 6C19 모듈이 장착되어 있으며 사용자의 주문에 따라 5881이나 6H30으로 바꿀 수가 있다. 전원부의 호화스러움은 이것 뿐은 아니다. 다른 메이커의 고급 프리앰프에서 커플링 커패시터에나 조금 사용될만한 최고급 오일 커패시터가 끝단에 다량으로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증폭부는 말할 것도 없고 전원부조차 좌우 듀얼 모노 방식이며 + -가 분리되어 있다. 실로 강력하며 정밀한 전원부. 프리앰프로서는 도저히 전례를 찾기 힘들다. 이런 식의 두 몸체 구성은 네임의 하이 캡이나 사이러스의 PSX와 같은 전원 보강 옵션 모듈을 연상하게 하는데, 하이 캡이나 PSX는 파워 앰프에서 커패시터의 용량을 증가시키거나 인티 앰프에서 파워 앰프부의 전원을 별도로 독립시키는 용도로 사용되며, 따라서 전류를 많이 소모하는 파워 앰프 쪽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므로 렉스와는 개념이 다르다.
과연 프리앰프로서 이 정도의 전원부가 필요할까? 그 대답은 개개인의 가치관에 맡기자.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전원 케이블 하나만 바뀌어도 소리가 확확 바뀌는 것이 바로 오디오의 세계라는 것. 필자는 인터 케이블이나 스피커 케이블보다 오히려(별 상관없을 것 같은) 전원 케이블에 기기의 소리가 크게 영향 받는 것을 수없이 경험하면서 당혹해하던 시절이 있었다. 전원 케이블에 의한 소리의 변화는 이론적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끔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븐 호킹과 같은 뛰어난 사람들이 우리 애호가들의 궁금증을 풀어 놓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공상을 하지만, 그들이 양자 역학이나 우주의 역사와 같이 인류 차원에서 더 중요한 문제를 두고 한가하게 오디오와 음질에 관한 연구를 하는 것은 썩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들이 극렬 오디오 애호가가 아니라면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니, 결국 필자는 현상 자체를 받아들이고 즐기는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가까운 장래에 오디오 애호가 중에서 몹시 뛰어난 물리학자가 나타나서 이런 문제를 해결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늘 갖고 있다. 하이파이클럽 시청실. 메리디언 808을 소스로 하고 파워 앰프로는 BAT의 VK-150SE를 연결한 순정 조합. 스피커는 필자에게도 익숙한 틸 CS6. 처음 올린 음반은 칙 코리아의 <크리스털 사일런스>. 일반 CD임에도 초고역의 울림이 무척 섬세하며 정보량이 풍부하다. 스피커가 사라지고 그 주위에 가녀린 빛들이 반짝반짝 비추는 착각을 일으킬 지경. 틸의 스피커는 고역이 화사하기로 유명하지만 이토록 영롱하며 가볍게 부유하는 음을 들어본 기억은 없다. 하필이면 이 음반을 첫 번째로 울렸을까? 결정적으로 기기의 인상이 각인된 상태에서 연이어 들은 것은 에그베르투 지스몬티의 <솔로>. 피아노와 어쿠스틱 기타의 매력, 특히 고역의 출중함은 역시 대단했다.
시청 스피커가 다이아몬드 트위터를 장착한 고가의 스피커였다면 이 각별한 고역의 매력은 아마도 당연하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듣는 것은 분명히 알루미늄 진동판을 가진 틸의 CS6. 이 정도로 풍부한 정보력, 섬세함과 넓은 대역을 가진 프리앰프라면 매칭에 따라 훌륭한 소리를 내어 줄 것은 자명하다. 게리 카의 <콜 니드라이>와 귄터 반트의 <브람스 교향곡 1번>에서도 광대역, 고역의 매력은 뛰어나며 다만 저역에 있어서 스피드는 출중하지만 약간 야윈 듯한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이것은 매칭 기기, 특히 VK-150SE와의 조합에 기인한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다시 한 번 렉스에 언밸런스 출력이 장비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여러 음반을 들은 뒤에 잠깐 VK-51SE와 비교 시청을 하게 되었는데, 실로 큰 차이를 보였다. 렉스 쪽이 베일이 여러 겹 벗겨져서 고역이 투명하고 스케일도 커졌으며 음악이 당당하게 들렸다. 다시 한 번 자문해 본다. 라인 프리앰프에서 이 정도로 화려한 전원부가 과연 필요할까? 이제 필자는 긍정적인 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그 호사스런 전원부가 렉스처럼 소리에 훌륭하게 기여한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소리가 더 좋아질 여지가 있다면 아무리 과한 물량투입이라고 해도 반드시 시행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하이엔드 오디오의 세계이고, 렉스는(아무리 양보해도) 최소한 전원부에 있어서는 그 정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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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욱정 감사 축복 은혜 영광 원문보기 글쓴이: 이욱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