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선(達磨禪)과 육조선(六祖禪)
달마 이전의 선수행자들은 사념처 위빠사나를 업감연기가 아닌
대승관법(진여연기 등)에 의거하여 수행했는 데 반해
달마 이후로는 《능가경》을 소의경전으로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능가종이라는 말까지 붙게 되었다.
달마는 이입사행론(二入四行論)을 실천했다.
실천 수행법은 《달마혈맥론》 등을 보면
현상적인 마음 이전의 불성 자리를 바로 관해
들어가는 수행이라 할 수 있다.
혜가(慧可)가 찾아 왔을 때도 ‘불편한 마음을 바로 보라.’고 했다.
일어나고 있는 마음을 관(觀)하면 관의 특성상 현상
이전의 마음 자리로 바로 계합해 들어간다.
승찬(僧璨)의 《신심명》에서도 “근본으로 돌아가면 뜻을 얻고
비추임을 따르면 종취를 잃나니(歸根得旨 隨照失宗),
잠깐 사이에 돌이켜보면 앞의 공함보다 뛰어나다
(須臾返照 勝脚前空).”고 했다.
이 역시 현상적인 마음 이전을 꿰뚫어보는
사념처 가운데 심관(心觀)에 해당한다.
《능가사자기》에 보면 도신(道信)은 의식의 흐름을 끝까지 관찰한다.
도신은 염불도 수행하고 호흡관찰도 수행하면서
500여 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있었다.
한 가지의 수행법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가지 방편법과 마음을 항상 관하는 수일불이(守一不移)의
심관을 같이 수행한 것 같다.
홍인(弘忍)의 선수행은 《수심요론》에서 불성(佛性)을 확인하고
잘 지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도신의 ‘수일불이’의 행법을 더욱 진전시킨 것이다.
도신은 마음을 집중하여 한 물건을 간(看)하게 하고 있지만
홍인은 한 물건에 집중하는 바로 그 마음을 내부의
자심(自心)으로 되돌려 본래의 진심(眞心)을 지킬 것을 주장하고 있다.
도신과 홍인 모두 《유교경(遺敎經)》에 근거하고 있다.
수행이 깊어지면 저절로 자심을 지키면서 현상의 마음도
동시에 관(觀)하게 된다.
홍인의 제자 육조 혜능(慧能)으로 넘어오면
《금강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면서 자성(自性)을 관하는
돈오적인 수행으로 체계가 잡혀간다.
《육조단경》 〈좌선품〉에서도 “생각생각 중에
청정한 자성을 보라(念念中 自見淸淨心).”고 하여
의식의 흐름을 관하는 도신의 수행을 계승하는 한편
“반야로 마음을 관조하면 찰나간에 내외명철(內外明徹)한다.”는
돈오적인 수행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달마 이후 육조까지
중국의 독특한 심관(心觀) 위주의 선종가풍이다.
초기에는 《안반수의경》이나 사념처 위빠사나 위주였다가
달마에서 육조까지 오면서 대승경전인
《열반경》 《화엄경》 《능엄경》 《기신론》 등에 의거하여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하는
중국선의 가풍을 이루는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