뺨 다섯
일요일이니 늦잠을 잘 생각이었는데,
언제나처럼 네시가 채 안되어 그녀는
눈을 떴다.
어둠속에 잠시 앉아 있다가 부엌에
나갔다. 찬물을 한모금 마시고,
다시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빨래를
시작했다. 밝은 양말과 수건, 흰
셔츠를 소용량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짙은 회색 스웨터와 속옷은
손빨래해서 소쿠리에 펼쳐 널었다.
청바지는 색깔 빨래가 더 모일 때
까지 세탁 바구니에 두기로 했다.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세탁기 소리를
들으며 부엌 바닥에 쪼그려앉아
있자니 '까무룩' 다시 졸음이 왔다.
그래, 자자.
방에 들어가 눈을 붙이자 딱딱한 요,
딱딱한 장판 바닥과 함께 그녀의
상반신이 딱딱하게 굳으며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뒤척일 수도,
신음을 낼 수도 없었다. 서서히
하강이 멈추자 이번엔 공간이 좁아
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시멘트 벽
같은 것이 그녀의 가슴과 이마를,
등과 뒤통수를 동시에 눌러 압착
시겼다.
숨을 몰아쉬며 그녀는 눈을 떴다.
마지막 탈수 코스를 돌아가는
세탁기 소리가 들렸다. 어둠속에서
좀더 기다리자, 숨이 멎듯 세탁기가
멈추며 높은 신호음이 들렸다.
몸을 일으키지 않은 채 그녀는
어둠을 향해 눈을 뜨고 있었다.
아직 넉대의 뺨도 잊지 못했는데,
오늘 다섯번째 뺨을 잊어야 한다.
더이상 세지 말자, 라고 생각했던
다섯번째 뺨. 살갗이 따갑게
벗겨지는 것 같다고 느꼈던,
광대뼈 언저리에서 피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을 다섯번째 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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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무룩 : 정신이 갑자기 흐려지는 모양
첫댓글 자신이 직접 겪어보지
못한 고통이나 아픔을
이렇게 생생하게 묘사하고
표현하는 게 쉽지 않는데...
한강 작가도 대학 졸업하고
출판사직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녀도
여기에 나오는 출판사 직원,
김은숙 씨와 같은 폭력을
겪을 수도 있다는 괜한
의심이 든다.
전두환 일당이 저질렀던
'5. 18'이 어찌 그때 그곳
에서 일어난 일로만 국한
시킬 수 있단 말인가.
또 다른 전두환인 그자가
국민들, 시민들에게 뺨
때리는 것과 다름없는
이번 사태를 우리는
더이상 외면하지도
용서하지도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