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진 년(甲辰年) 원단 (元旦)에 생각한다.
새해 아침이 밝았다고 모두 들 들뜬 분위기에 취하여 덕담을 나누느라 분주하게 새해 인사를 주고 받던 일도 겨우 보름이 지났는데 벌써 아득한 옛날 이야기가 되어 버린듯하다.
젊은 시절에는 누구나 연말 연시가 되면 친지들에게 보낼 예쁜 연하장이나 카드를 그리기도 하고, 가게나 서점마다 찾아 다니면서, 아름다운 그림을 곁들인 카드를 사 와서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 곱고 귀한 사연을 적어 성탄과 새해 축하 인사를 주고 받기도 했는데, 이제는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아득한 옛날 일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전화를 주고 받는 일도 번거롭게 생각하며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 인들에게는. 스마트 폰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너, 나 구분 없이 요즘에는 카톡으로 신년 인사를 주고 받느라 분주하고, 어쩌면 당연시 되기도 하는 세상이다.
연말 연시에 문자가 오고 가느라고“ 때똑, 때똑”거리는 소리가 하도 요란하여 휴대폰의 소리를 묵음으로 해 두기라도. 했다가는 전화를 씹는다(잘 받지 않는다.)고 원망을 듣는 일이 빈번하다.
이렇게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 적응하려면 정말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한다.
스스로 어리 어뎁터(early adapter)로 자처하면서 살아 온 나도 이제는 정말로 어뎁티드가 되어 가는듯하여 씁쓸하다.
어쩌다 보니 어언 희수(喜壽)의 나이가 되었다.
정말로 분주하게 살아 온 지난 세월을 회고하면서 지었던
<지일 유감(至日有感)>이란 졸 시 한 수를 옮겨본다.
奔走 天下 使困身 (분주 천하 사곤신)
富貴 功名 皆風塵 (부귀 공명 개풍진)
雄志 未完 已暮日 (웅지 미완 이모일)
姑保 夢中 凡愚人 (고보 몽중 범우인)
온 세상 분주하게 떠돌아 다니면서
이력서 한 줄 추가 하려고
내 한 몸 피곤하게 젊은 시절을 다 보냈구나.
이제 와서 생각하니
뜬 세상 부귀 공명이 모두 다 풍진이로다.
대장부 품은 뜻은
아직도 미완성인데
유수 같은 세월 흘러
어느덧 황혼이네.>
*至日; 동짓날. 위의 글에서는 노년의 하루를 뜻함.
4월 총선이 다가오는가...
선거 철마다 찾아오는 철새처럼 신문 지상을 장식하는 여야 정치인들의 악다구니를 보고 있노라면 옛 사람의 詩가 하나 떠 오른다.
相見時難 別亦難(상견시난 별역난)
東風無力 百花殘(동풍무력 백화잔)
春蠶到死 絲方盡(춘잠도사 사방진)
蠟炬成灰 淚始乾(납거성회 루시건)
曉鏡但愁 雲鬢改(효경단수 운빈개)
夜吟應覺 月光寒(야음응각 월광한)
蓬萊此去 無多路(봉래차거 무다로)
靑鳥殷勤 爲深看(청조은근 위탐간)
만나기도 어렵더니 이별 또한 어려워라
봄 바람은 무기력하여 온갖 꽃이 다 시든다.
봄 누에는 죽어서야 실을 토하길 다하고
촛불은 다 타서 재가 되어야 촛농이 마른다네
새벽녘 거울 보며 머리카락 변했음에 한숨 쉬고
밤에 시를 읊조리며 달빛이 차가움을 깨닫는다
봉래산이 이곳에서 멀지 않으니
파랑새야! 살며시 찾아가 소식 전해 주려무나.
이 詩에서 내가 소개하고자 하는 부분은 아래의 두 줄이다.
<春蠶到死 絲方盡(춘잠도사 사방진)
蠟炬成灰 淚始乾(납거성회 루시건)
봄누에는 죽어서야 실을 토하길 다하고
촛불은 다 타서 재가 되어야 촛농이 다 마른다네>
봄 누애가 죽을 때까지 실을 뱉어내고
촛불도 다 타서 재가 될 때까지 불을 밝히다가 꺼진다는
구절이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살이를 이렇게 멋지게 비유하였는지 지은이에게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우리는 해마다 새 해가 오면 작심 삼일로 그칠 지언정 일년동안의 계획을 세우고 있다.
또한 우리의 젊은 자녀들도 자유롭고 즐겁게 뛰어 놀며 건강하게 자라나야 할 귀한 세월, 초, 중, 고교 12년 동안을 주변을 돌아 볼 시간적 여유가 없이 학원에서 학원을 오고가면서 성장기를 다 보내고 있다.
단 한번의 시험으로 인생 전체를 좌우하는 그 수능시험을 준비하느라고 부모들이나 학생 본인들도 노심초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마치 봄 누애의 삶이나, 촛불의 행태와 다를 바가 없는데 모든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반성도 없이 반복되고 있다.
그런 과정을 다 거치고 세상을 살 만큼 살아 온 기성 정치인들도 선거 철마다 반복하는 행태가 어리석은 누애의 행태나 다를 바가 없고,
두뇌 조차도 없는 꺼져가는 촛불의 형상과 다를 바가 없어 슬프다. 어리석은 곰이 그네를 태우다가 새끼를 죽인다는 이솝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다.
노마지지(老馬之智)란 말이 있다. 춘추전국 시대의 제나라의 관중이 전쟁에 나갔다가 길을 잃었을 때 늙은 말을 앞세워 행군을 하면서 바른 길을 찾아 갔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젊은 패기도 좋지만 경험이 많은 사람의 생각도 활용 되는 균형잡힌 사회적 의사 결정이 아쉬운 시대이다.
갑진년 새해 청룡의 해에는 이 글을 읽는 현명한 독자 제현들께서는 끊임없이 반복 재생되는 어리석음을 계속할 것인지, 노마지지(老馬之智)란 말의 교훈을 다시 한번 성찰하고 반성하는 그런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