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요정 변신 절대 ‘춤의 길’ 걸으며 금자탑
소통·즐거움 주는 ‘명품공간’ 정동극장 만들어
680여회 국내·외공연 가진 경이로운 공연 기록
독무 바탕 흥·신명 부르고 민족 번영·희망 갈구하는 군무 이끌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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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오제 풍경(2012년) | [그린경제=장석용 문화비평가] 최정임(崔丁壬·Choi Jung Im)은 1955년 7월 20일 경북 경주에서 출생했다. 늘 푸른 소나무와 숲, 도도하게 흐르는 형산강의 물 기운을 타고 그녀의 무정(舞丁) 블루스는 시작된다. 그녀는 신들의 땅, 선비의 고장 경주의 천북 초등학교, 명문 경주 여중고를 거쳐 서라벌예대 무용과, 한성대 무용과, 중앙대학교 대학원, 시립무용단, 국립무용단 수석무용수의 수련과정을 거쳐 이제, 정동극장의 성주(城主)로서 자신의 임무를 완벽하게 소화해내고 있다.
여고시절, 그녀에게 불어온 바람, 종소리, 광채는 그녀를 숲의 요정으로 만들어 버렸다. 꽃 내음이 머물다 휩쓸고 간 꽃 뫼, 붉은 소나무 위에 쓰여진 그녀의 화산고(花山考)는 절대 ‘춤의 길’이었다. 최정임은 은은 달콤한 미향을 내품는 국립무용단 무용수로서 청춘을 춤에 봉헌했다. 국립무용단 시절, 대나무 숲 아래 마을을 일구며, 칡넝쿨이 우거진 산간의 땅을 개간하고도 싶었다. 예인(藝人)에게는 꿈일 수밖에 없는 효도도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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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덕여왕의 등장 | 그녀는 자신의 독창적 안무작을 내세우지 않고 군무 속에 자존하며, 내공을 쌓고 있었다. 2010년 3월 정동극장장으로 부임하고 부터 그녀의 미소는 세계의 미소가 되어 정동극장을 소통과 즐거움을 주는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페리도트의 변신, 그녀는 놀라운 창의력으로 영지를 개척한다. 정동극장에 나부끼는 최정임의 깃발은 명품을 직조하는 문화 창의 공간으로 기능한다. 정동극장은 외신기자 클럽이 인정하는 명품 문화 공간이 되어있다.
고수들의 이면, 국립극장의 수석무용수로서 그녀는 주변을 보듬는 역할을 하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을 연구하기에도 바쁘다는 이유로 안무가 등재를 의도적으로 사양해왔다. 그녀는 맏언니로서 세계 80여 개국 해외공연의 안무 및 출연을 경험했다. 그녀는 정부행사, 지방순회공연 등 총 600여회에 걸쳐 공연에 참가하는 등 경이로운 무용공연 기록을 소지하고 있으며, 안무가가 되기보다는 무용수로서 기억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흔들릴 때마다 더욱 강해지는 그녀는 무형문화제 제92호 태평무 이수자로서 송범, 강선영, 김백봉, 김진걸, 최현, 조흥동, 국수호의 춤 스타일과 사상을 연구했다. 도제 수업의 걸출한 산물인 그녀의 주요출연작 “그 하늘 그 북소리”, “오셀로”, “황혼의 노래”, “석학”, “하얀초상”, “대지의 춤”, “허상의 춤”, “도미부인”, “은하수”, “노리개”, “서라벌 밝은 달에”, “땅울음” 등의 출연작을 통하여 두드러진 자신의 개성을 발광(發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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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춤 | 그녀의 안무 작품은 독무의 세기를 바탕으로, 흥과 신명을 불러일으키고, 민족혼 고취와 민족의 번영과 희망을 갈구, 기원하는 군무를 이끌어내는 담대한 창의력이 돋보인다. 그녀의 주요안무작 퍼레이드는 98 경주세계 문화엑스포 전야제 총괄 안무로부터 시작된다. 40대 후반의 힘과 넘치는 끼로 역동적 최상위 문화를 서라벌에 전파하였다. 그 기억의 여운은 정동극장의 경주 공연으로 이어지는 성과를 낳게 만들었다.
최정임은 1974년 서라벌 예대 무용과를 졸업하자마자 서울시립무용단에 입단하여 다음 해 말까지 꼬박 무용수로 활동했다. 그녀의 공식 해외 공연기록은 일본학습원대학 초청 도일공연(1974년 12월)이었다. 이후 1977년부터 국립무용단 단원으로서 입단, 수석무용수로서 마무리(1996년 6월)할 때 까지 그녀는 일체의 개인적 즐거움을 차압당하며, 자신의 운명의 길인 춤에 매진하게 된다. 춤 안 에서 즐거움을 찾기로 한 그녀는 국립무용단 무용극 “춘향전” 공연(77)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공연 연보를 쓰게 된다.
1970년대 그녀는 “마음속에 이는 바람”(78), “꿈, 꿈, 꿈 ”(79), “시집가는 날” (79)에 출연하였고, 유럽 12개국 순회공연(77), 중남미 10개국 순회공연(78), 하와이(78), 중동․ 아프리카 순회공연(78)으로 각고의 노력을 보상받았다. 이른 시절에 찾아온 행복이 평생의 짐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녀는 늘 은근한 미소로 슬픔과 고뇌를 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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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야(2012년) | 1980년대 최정임은 “푸른 천지”(80), “별의전설”(80), “심청”(80), “시집가는 날”(80), “황진이”(81), “마의태자”(81), “썰물”(82), 한국무용제전 참가(83,85), “맥”(83), “뜬구름”(83), “도미부인”(84,85,86,88,89), 국수호 창작춤 “허상의 춤”(84)과 “학의 발자국 소리”(84) 출연, “북의 대합주”(85), “은하수”(86,87), “대지의 춤”(87), “북소리와 춤의 대교향”(88), “하얀초상”(88), “혼동”(88), “신”(89)으로 자신의 장기와 춤 언어 쌓기에 주력했다.
최정임은 국립무용단 중견단원 발표회 “노리개”(87)와 “땅 울음”(89)의 안무 및 출연으로 안무 방법과 구성 감각을 익혔다. “도미부인”의 왕비 역, “은하수”의 무당 역, “대지의 춤”의 탄생의 여인 역, “북소리와 춤의 대교향”의 천녀 역, “하얀초상”의 평강공주 역, “신”의 윤심덕 역 등 주어진 다양한 역을 자신 만의 독창성 있는 연기로 연기해내었다.
80년대에도 그녀는 동남아시아 10개국 순회공연(80), 일본국립극장 초청 도일공연(81), 중남미·북미 9개국 순회공연(82), 서남아시아․대양주 5개국 순회공연(83), 아프리카 5개국 순회공연(84), LA문화올림픽 참가(84), 캐나다·콜롬비아 공연(84), 미국 6개 도시 순회공연(85), 유럽5개국 순회공연(86), 중남미 8개국 순회공연(87), 동남아시아 8개국 순회공연(89)으로 분주하게 춤밭을 일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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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오제 놀이풍경(2012년) | 1990년대 최정임은 “흙의 울음”(90), “그 하늘 그 북소리”(90,91, 낙랑공주 역), “강강술래”(92), “천년의 소리”(92, 바르셀로나 문화올림픽), “우리 춤, 우리 맥” 中(93, 군자무 매화 역), “환”(93,94, 가무보살 역), “무천의 아침”(94, 달신 역), “황혼의 노래”(95, 옥이 역), “석학” (96, 하늘네 역)을 마지막으로 정들었던 국립무용단을 퇴단하게 된다.
해외 공연도 영국, 불란서, 모로코, 포르투갈 순회공연(90), 유럽6개국 순회공연(92), 한·중 수교1주년 기념 초청공연(93), 한국대양주 한국문화행사 참가공연(93, 호주, 뉴질랜드), “2002년 월드컵유치 사절단” 중남미 순회공연(95)을 끝으로 공식 마무리된다. 이후 그녀는 프리랜서로서 국립무용단 무용극 “오셀로”(97)에 데스데모나역으로 객원 출연한 이후, 98경주세계문화엑스포 전야제 총괄안무 및 출연(98)하는 등 새로운 춤 인생으로 거듭난다.
KBS 열린음악회, 한국무용 안무 및 출연(98), 은해사 개산제 1189주년 기념공연(98), 포항시 초청 동국국악예술단 공연(98), 전통주와 떡 문화축제 개막식 공연 및 상설공연(99), 동아마라톤 오프닝 공연(99), 평화통일위원회 주최 문화교류공연(99), 통도사 성보박물관 개관공연(99), 서울 조계사 석가탄신일 기념공연(99), 영․호남 문화교류 공연(99), 일본 나라 시 테니스협회 임원단 환영공연(99), 2000년 밀레니엄 해맞이 호미곶 지정 기념 공연(99), 포항 호미곶 해맞이 축제 전야제 공연(99) 등으로 그녀는 야전 행사 공연의 야전 사령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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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향과 몽룡의 이별 | 새 밀레니엄에 최정임은 전국을 무대로 새천년 “한민족 해맞이 축전” 개막제(00), 호주군 한국 6·25참전 기념공연 및 용사 기념비 제막식(00), 호주 조선왕조명품전 퀸즐랜드 전시 개막 축하행사(00), 부처님오신날 기념 공연(00),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개막식(00), 2000, 2001 현충일 기념 추모식, 북경, 하계 유니버시아드 폐막식 “한국예술단공연”(01), 경주 신라문화제 개막(02), 경북 농업 엑스포(02), 코리아 세계 여자 태권도 대회 개막(02), 제42회 경상북도 도민체육대회(04), 제25회 금산 인삼축제(05), 제57회 충청남도 도민체전 개막공연 총괄 안무(05), 한·미 정상회담 축하공연 안무(07, 부시 대통령 방한 시), 2007경주 세계문화 엑스포 “신라의 축제”(07), 제46회 충북도민 체육대회 개막공연(07) 등의 안무를 맡으면서 야전 경험과 명성을 함께 쌓아 나아갔다.
2000년대의 숨 가쁜 행사 속에서도 그녀는 개인공연 “노리개”, 최정임의 춤 “여름밤의 풍경”(03), “최정임의 춤”(04), “춤, 춤, 춤”(04), “해설이 있는 최정임의 춤판”(05), “해설이 있는 최정임의 춤판Ⅱ”(08), 최정임의 “우리춤 한마당”(08)을 안무하면서 자신의 출발점을 잊지 않았다. 또한 “춤. 소리사랑”(01), “송범” 춤 60년 회고전(02), “현대춤 4인전” 공연-중앙대 아트센터(03), 전북도민체전 개막공연 “선화공주”(03), 국수호 디딤무용단 춤극 “고구려”(06), “달의 사람들”(08) 등에 출연 춤에 대한 우정과 신의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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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월서정(2012년) | 경주의 음악, “신 신라향가”(02,03), “작은 사랑의 춤”(02), “춘설타고 피어난 봄춤”(03), “자비의미소”(03), “천마의 꿈(03), “기다림을 춤추는 가을”(03), “빛의 탄생”(04), “전통과 현대의 만남”(05), “구운몽”(05), “금산혼”(05), “처용”(05), “천년의 사랑”(06), “천년의 기다림”(06), “원효의 무애무”(06,08), “수로부인, 처용”(06), “연화의 미소”(07), “원융·회통”(07), “신라의 축제”(07), “2008 무안의 여명”(07), “우담화의 현신”(08) 등 행사작품들을 안무하면서 춤의 거시적 담론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최정임, 그녀는 춤, 국악, 풍물로 구성한 전통 뮤지컬 “미소-춘향연가”란 작품의 총예술감독으로 매달 1만 여명의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명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문화경영자가 되어 있다. 국립무용단과 현장에서에서 터득한 관객들의 심리를 파악, 인생의 마지막 투혼을 발휘하고 있다. 정동극장의 노하우는 경주로 이어져 “신국의 땅, 신라‘로 확장성을 과시하고 있다. 그녀의 노력이 식지 않는 한, 그녀의 불멸의 신화는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덕수궁 돌담길을 차올라 한걸음으로 정동극장에 가고 싶다.
/장석용 문화비평가(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