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가 최승희는 “조선의 리듬, 더 크게 말하면 동양의 리듬을 갖고 괴나리 봇짐 짊어지고 지구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걸어 보련다”며 1930년대 후반 각국에서 150여 차례 공연했다. 34년 일본 청년회관에서 첫 무용발표회를 했고 37년 미국,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순회공연을 벌였다. 42년에는 16일 동안 24회에 걸쳐 연속 독무공연을 하기도 했다.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난 그녀는 26년 도일, 현대무용가 이시이 바쿠의 제자가 됐다. 국내에서는 승무의 대가 한성준에게 전통무용을 배웠다. 29년 서울 적선동에 최승희무용연구소를 개설했고, 이듬해 경성공회당에서 제1회 신작 발표회를 열었다. 31년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가 안막(안필승)과 결혼했다. (안막은 58년 북측에 의해 제거됐다)
47년 4월 월북한 최승희는 50년 소련 순회공연을 했다. 51년 중국 공연예술대 무용과 교수, 52년 공훈배우, 55년 인민배우, 57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승승장구했다. 64년 ‘조선 아동무용 기본’을 냈고 66년에는 문학신문에 ‘조선무용 동작과 기법의 우수성 및 민족적 특성’을 발표했다. 69년 8월8일 그러나 북은 최승희를 숙청했다. (2003년 사후 복권돼 애국열사릉으로 이장됐다)
최승희는 헤밍웨이, 피카소, 찰리 채플린, 장 콕토 등 세계인을 사로잡은 불세출의 무용가다. 노래도 잘했다. 영화 ‘반도의 무희’의 주제가인 자작곡 ‘향수의 무희’를 비롯, 삽입곡 ‘축제의 밤’, 우리말로 불러 녹음한 유일한 곡인 ‘이태리의 정원’ 등이 전해진다. 가무 한류의 원형인 셈이다. 하지만 일제 말기 조선총독부의 요구로 만주, 남경 등지로 일본군 위문공연을 다닌 탓에 훗날 한국의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고 말았다. 남과 북, 어디에서도 편히 잠들 수 없는 고혼의 이력이다.
- 【서울=뉴시스】최승희가 살던 곳. 서울 종로구 북촌로 2015-11-25
이러한 최승희, 정확히는 최승희의 영가가 영능력자로 알려진 차길진 후암미래연구소 회장을 최근 찾아왔다. 거지 할머니 꼴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차 회장에게 구명시식, 즉 천도의식을 청했다. 이후 차 회장에게 는 불가사의의 나날이 이어졌다. 저녁약속 장소인 음식점 ‘한뫼촌’이 알고보니 최승희의 서울 재동 집이더라는 식이다.
최승희를 소재로 한 연극, 오페라, 뮤지컬이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뿐만 아니다. 최승희와 인연을 맺은 예술인도 탁월한 실력과 무관하게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최승희의 제자인 전황 전 국립창극단장, 제자인 데다가 동서지간인 김백봉 등 보기는 여럿이다.
최승희의 한 때문이라고 차 회장은 봤다. 서둘러 해원에 나선 이유다. 최승희가 공연 때마다 마지막 노래로 선곡한 아리랑을 중심에 둔 ‘구명환생’ 의례를 준비했다. 박경랑·박은하(춤), 김태한·노수환·이성준·홍상준(사물놀이)으로 팀도 짰다.
그리고 한뫼촌으로 문화계 인사들을 초대했다. 소설가 서영은, 아리랑학자 김연갑, 배우 윤석화씨 등이 홀린 듯 달려왔다. 최승희 만을 위해 만든 촛불을 켰고, 최승희 영혼의 부탁으로 한복디자이너 김인자씨가 지은 최승희 만의 스카프가 영단에 놓여졌다. 살풀이춤, 유심초의 ‘사랑이여’에 맞춘 진혼무가 펼쳐졌다. 윤석화씨는 ‘주 은혜 놀라워’(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독창했다. 신앙의 경계가 무의미해진 현장이다.
- 【서울=뉴시스】차길진 후암미래연구소 대표 2015-11-25
‘경계’는 최승희를 설명하는 단어일 수 있다. 차 회장은 “예술가 최승희에게 무슨 남과 북이 있었고, 무용가 최승희에게 무슨 정치색이 있었고, 사람 최승희에게 무슨 네 편 내 편이 있었겠는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간 죄를 누가 캐묻겠는가. 이제는 없어져야 할 분단의 선일 뿐이다. 그토록 사무쳐 춤추면서 민족의 노래 아리랑으로 세계를 움직인 위대한 예술정신으로 그녀는 이 슬픈 조국 분단의 아픔을 달랠 것이다. 최승희의 아리랑으로 남과 북이 하나가 되고 분단된 나라도 머지않아 하나가 될 것이다. 남북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통일 학(鶴), 온 세상을 자유롭게 춤추는 예술 학이 될 것”이라고 심고(心告)했다.
최승희는 ‘나는 1911년 11월24일생이다. 생일에 꼭 구명시식을 올려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차길진 회장은 엊그제 24일 밤 구명환생 의식을 집전했다. “2015년 11월24일은 최승희의 영혼이 다시 태어난 날이다.”
문화부국장 reap@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