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펀치볼 라이딩(후기) [1박2일]
원통 → 해안면 → 돌산령옛길 → 펀치볼지구전투전적비(1박) → 양구 →(버스이동)→ 북산 → 추곡터널통과 →간척사거리→ 배치고개 → 청평사선착장 → (유람선) → 소양호선착장 → 춘천역.
꼬불꼬불 언덕을 오르는 자전거는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중심을 잃고 심하게 비틀거렸다. 기어는 이제 제 몸을 다 내어주었고, 내 몸도 잘게 조각을 내고 그 하나하나를 불태우며 페달을 돌린다. 이럴 땐 아무 생각도 없다. 바닥만 보며 그저 페달을 돌리는 발동작을 하나하나 셀뿐이다. 그러다가 그 숫자가 오백 번이 채워지면 고개를 든다. 그때 미끄러지듯 얄밉게 숨어버린 길을 보면 두 가지 생각이 든다. 또다시 오르막? 아니면 정상? 열 번 스무 번 실망만 안겨주던 인색한 꼬부랑길은 결국 한 번의 행운으로 보답한다. 그 순간 모든 것을 잊고 기쁨의 탄성이 터져 나온다. 언덕은 그 맛에 오른다. 정상에 서면 어느 쪽을 보아도 내리막길이다. 그래서 천하를 다 얻은 듯 마음이 여유롭다. 내리막길에서는 지갑을 열고 돈을 다써버리는 것처럼 호기豪氣 스럽다.
■ 출발
'가을비는 늙은이 수염 밑에서도 피한다.'
분당의 야탑 터미널에서 아침 7시 20분 버스는 남양주를 지나면서 자동차 행렬로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낯부터 전국적으로 비 소식 일기예보가 있지만 '가을비는 늙은이 수염 밑에서도 피한다.'고 했던가, 오래전부터 계획된 일이라 강행하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머릿속에는 을지 전망대를 자전거로 오를 수 있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스케쥴이 어떻게 진행될지, 이런저런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이번 코스는 원통(EL250m)에서 두 번에 걸쳐 1000m이상을 오르는 을지 전망대 와 돌산령 옛길이 있어서 특히 신경이 쓰였다. 버스는 원통에 예정 시간보다 약 30분 늦은 아홉시 20분쯤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고 열시쯤 해안면 을지 전망대를 향해 출발했다. [출발!!!] [긴장감이 도는 전방도로] ■ 해안면
군부대는 산위에 있는데요..... [양구 전쟁 기념관] 제4땅굴, 을지 전망대는 자전거를 타고 소풍 간 방문객에게는 허락하지 않았다. 오후 1시 10분, 통일관 접수대에는 방문 신청서를 작성하는 수많은 사람으로 붐비고 있었다. 엉거주춤 다가가자 여직원이 먼저 우리를 알아보고 묻기도 전에 “자전거는 못가요”라는 말로 다짐을 해버렸다. 순간 “틀렸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그렇지 않아도 출발 전에 확인 차 이곳 통일관에 여러 번 통화를 시도했었는데……. 라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여직원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다. “아저씨 군부대에서 자전거는 올려보내지 말래요” “군부대가 어디인데요?” 우리가 되묻자 여직원은 “여기서 4km 올라가고요. 7km 가야 해요, 그렇게 하실래요?” 그렇지 않아도 원통에서 인북천을 따라 올라오는 동안 숨을 헐떡이던 차에 이게 무슨 소린가! 라이딩 하는 사람에게 힘들게 올라온 언덕을 다시 내려갔다가 오라는 소리만큼 겁주는 말이 없는데 여직원은 우리의 약점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앵무새처럼 묻고 또 답변 끝에 결국, 자전거로 을지 전망대를 오르려면 먼저 산 위에 있는 군부대에서 허가증을 받아와야 하는데 그 높은 데까지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서 허가증을 받아오겠느냐는 말이었다. 설령 그렇게 한다고 해도 그곳 군부대에서 허락해줄 리도 없고, 통일관에서도 아예 접수를 해주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통일관 홈페이지에는 <자전거는 원칙적으로 허락지 않으나 군부대의 허가를 받으면 된다.>고 한 말에 혹시나 기대했었는데 결국 원칙만 통했다. 동행한 K형께서 월남 참전 용사, 국가유공자임을 내세워도 접수처의 여직원은 콧방귀만 뀌었다. 그러면 차량운행은 어떻게 되나요? 라고 물으니 그것도 사전에 예약해야 하고 이곳에서 출발하는 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양구 통일관] ■ 펀치볼 지구
펀치볼은 하늘에서만 본다. 펀치볼 속에 들어와 있으면 그곳이 펀치볼인지 모른다. 펀치볼은 여의도 면적의 여섯 배가 넘는 해안면 일대의 분지를 지칭하는 말이다. 주변이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지만 6·25동란 시 미군의 집중포화 때문에 움푹 패 버렸다는 것에서 미군 종군기자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해발고도 500m 정도로 원통의 고도 250m에 비하면 우리는 두 시간 반 동안에 약 30km 거리를 250m 오른 셈이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실감이 난다는데 아래에서는 그저 넓은 평야 정도로만 느껴진다. 을지 전망대를 올라가면 펀치볼이 잘 보인다고 했는데……. ■ 해안면 출발 양구
정나미가 떨어진 해안면 을지 전망대와 제4땅굴 라이딩을 포기하고 나니 갑자기 허기가 동했다. 시간을 보니 오후 1시 30분이다. 유명하다는 해안면 무청 시래기 밥을 먹으려고 이곳저곳 돌아다녔으나 식재료가 떨어졌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고 간이 식당에 들어가서 매운 짬뽕 국물로 허기를 달랬다. 애초 계획으로는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움직일 계획이었으나 그럴 마음이 싹 가셔버리고 빨리 떠나고 싶었다.
■ 돌산령 옛길
돌산령 정상에 비구름이 가득.
시간을 보니 오후 2시 20분쯤 되었고, 산골 날씨는 우중충한 하늘 아래에서 벌써 저녁 기운이 감돌았다. 우리가 넘어갈 도솔산(1,148m) 정상에는 집은 안개가 덮여 있었다. 약간 주저하며 k형에게 의향을 물으니 흔쾌히 “OK”로 화답했다. 십년 가까이 함께 라이딩을 하면서 이제는 눈짓 하나로 모든것이 통한다. 출발하면서 말을 그렇게 했다. 가다 힘들면 다시 내려오자고……. 아니나 다를까! 출발 삽 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사방이 안개로 자욱하고 올라갈수록 빗방울이 굵어졌다. 돌산 터널 입구에 도착했을 때 옷은 이미 땀과 비로 흠뻑 젖어버렸다. 그곳에서 식재료에 텐트까지 싣고 오르는 또 다른 일행을 만났다. 그 무게가 20kg은 넘어 보였다. 그들을 보니 우리는 새처럼 가볍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산령 터널 입구] 시간을 보니 오후 3시가 조금 지나고 있었다. 잠깐, 터널로 통과하고 싶은 유혹이 있었지만, 누구도 말은 하지 않았다. 오른쪽 옛길로 들어서자 경사가 약간 급해지고, 물이 줄줄 흐르는 길 위로 낙엽들이 힘없이 떠내려가고 있었다. 늦더라도 절대로 오버페이스는 금물. 그러다가 허벅지나 옆구리에 통증이 오기 시작하면 그때는 정말 끝장이다. 기어는 이제 제 몸을 다 내어주었고, 내 몸도 기어만큼이나 잘게 조각을 내고 그 하나하나를 불태우며 페달을 돌린다. [돌산령 터널 입구 옛길 시작] ■ 1050m 돌산령 정상에는
안개만 자욱.....
얼마나 올랐을까? 앞서간 일행들의 환호 소리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1050m 정상도착이다. 안개만 자욱하고 해안리 펀치볼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곳에 버스 정류소가 있고, 잠시 비를 피하며 쉬는 동안 온몸에 한기가 엄습했다. 옆에 있는 군부대에서 씩씩한 군가 취주악吹奏樂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마도 행사 준비를 위해 연습 중인 것 같았다. 음악 소리보다도 저곳은 따듯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앞섰다. [돌산령정상 버스 정류소] [1050m 돌산령 정상] ■ 돌산령 하산
길은 미끄럽고 브레이크를 잡은 손이 부들부들 [하산 길에 본 펀치볼 격전비가 있는 동면 풍경.] 시간을 보니 오후 4시 40분이다. 빗물이 흐르는 급경사 길에 조심조심 내리닫는 자전거는 브레이크를 잡은 손에 힘이 가해지고 손목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래도 내리막길은 신나는 길이다. 양구까지 갈 필요 없이 처음 만나는 동네에서 일박하기로 했다. 마침 펀치볼 지구 전적비 못 미쳐 여관이 하나 있기에 무조건 들어갔다. 조금은 허름해 보였으나 손님이 없었던 탓에 주인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이한다. 자전거는 손님이 없는 빈방에 보관하도록 해주고 보일러를 열어 방을 덥히고 따스한 물도 보내주었다. 밤새도록 절절 끓는 방에서 피로를 싹 풀었다. [펀치볼 격전비가 있는 곳 조금 전에 위치한 숙소] ■ 2일째
피의 능선 도솔산엔 새벽안개가 피어오르고…….
날씨는 약간 우중충하나 기분은 상쾌했다. 비와 땀으로 범벅이 되어 흠 뻑 젖었던 옷도 뽀송해졌고 몸도 가뿐하다. 어제 우리가 넘어온 ‘피의 능선’ 도솔산엔 새벽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제의 끔찍했던 일들은 이제 한 폭의 그림이 되어 눈앞에 보이고 추억으로 남았다. 아침 7시 50분 가벼운 마음으로 패달을 돌리며 출발. 약 17km를 달려 8시 40분 양구에 도착했다. ■ 양구
또 한 번의 착오
애초 계획은 양구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소양댐 선착장으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착오가 생겼다. 일단 아침밥부터 해결하려고 들어간 식당에서 물어보니 양구 선착장은 폐쇄되었고 운항을 안 한다는 것이었다. 군청 당직실에까지 전화를 걸고 야단법석을 떨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제 어떻게 하나? 의견을 모아서 결국 청평사 선착장으로 가서 배를 타기로 하고 먼저 간척 사거리까지 가기로했다. 그러나 그곳까지 이동이 문제였다. 양구에서 간척 사거리까지는 45번 국도를 이용할 수 있으나 터널이 많고(6개), 공식적으로 자전거 통행이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이번 계획에도 터널은 통과하지 말기로 했었다. 할 수 없이 터미널에 가서 버스 편을 알아보고 안 되면 화물차라도 이용해 볼 생각이었다.
뜻밖에 좋은 소식
매표소 여직원에게 공손히 물었다. “청평사 선착장을 가려고 하는데 그곳으로 가는 버스 편이 있나요?” 뜻밖에도 대답은 간단했다. “예 있어요, 동서울행 버스를 타고 북산까지 가셔서 그곳에서 내려 달라고 하세요. 요금은 1900원이에요”이런 감사!
또 한 번의 난감
준비하지 않은 라이딩은 캄캄한 밤길을 걷는 것처럼 혼란스럽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북산까지 고맙게 잘 오기는 했는데, 주변에는 아무 인가도 없고 지나는 사람도 없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핸드폰 검색을 해서 가까스레 방향은 잡고보니 추곡터널(4km)을 통과해야만 했다. 45번 국도, 차들이 줄을 이어 쏜살같이 내달리는 언덕 갓길 2km를 고도 100m 이상 오른 후에 끔찍한 터널 앞에 도착했다. [추곡터널 앞에서의 긴장감] 터널 앞에서 비장한 각오로 차량이 뜸하기를 기다렸다가 쏜살같이 집입 했다. 터널 안은 갓길이 없었지만, 다행히 약간 내리막길이었고. 앞만 보고 내달린 후 잽싸게 터널을 빠져나왔다. 야호!!! 출구로부터 간척 사거리에까지 내리막길이고 열한시 사십 분 간척 사거리에 도착했다.
■ 청평사 선착장 가는 길
굴욕의 배치고개 [굴욕의 배치고개] 간척 사거리에서 우리는 모든 힘든 일정을 마쳤다는 생각에 약간 들뜬 기분이었다. 사거리 슈퍼에서 쉬면서 유람선을 타고 춘천으로 이동 그리고 또 팔당 까지도 갈 수 있지 않겠나 꿈도 꾸었다. 그런데 그 꿈은 얼마 되지 않아 걱정으로 변했다. 그곳에 있는 낰시점 주인 말로는 그 길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배치고개는 오봉산(778m)과 부용산(880.6m) 사이를 지나는 고개로 정상의 표고는 552m이지만 해발고도 200m인 간척 사거리에서 정상까지 3.8km 짧은 거리를 오르는 평균 구배 10% 정도이고, 마지막 1km 구간은 16% 이상 급경사이다. 그곳에서 할 수 없이 굴욕의 끌 바를 했다. 13시 20분 정상도착, 언덕은 아무리 힘들어도 끝이 있다. [552m 배치고개 정상] ■ 청평사 선착장
내리막길에 자동차 브레이크 타는 냄새가 진동
언덕 아래에 는 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브레이크 타는 냄새가 났다. 자전거도 마찬가지였다. 힘을 주고 내달리는 자전거 브레이크에 불이 날 것만 같았다. 아래에 내려와 보니 손을 근처에 가져갈 수 없을 정도였다. 잘못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좁은 길에 끝없이 이어지던 자동차 행렬에 대한 의구심은 청평사에 도착하고 나서 풀렸다. 수많은 인파가 몰려있는 청평사 경내주차장에는 차들이 빼곡했다. 춘천에서 유람선이 15분 간격으로 계속 들어오고 나간다. [청평사 유원지] [청평사 선착장] [유람선] [찰칵!!!] 오후 2시 20분 소양호 선착장에 도착. 유람선은 약 15분 정도 소요. 요금은 3000원이며 자전거 2000원이다. 춘천역까지는 강변 자전거 길을 이용하였고 약 한 시간 정도 소요된다. ■거리 및 시간 배정
• 분당 (07:20) →(버스) → 원통 (09:15) • 라이딩 출발 (10:00) → 해안면 통일관 도착 (13:10) ∥ 30km /3시간 10분 • 해안면 출발 (14:20) → 돌산령 터널 입구(15:00) ∥ 6km /40분 • 돌산령 옛길 (15:10) → 옛길 정상 (16:25) ∥ 5km /1시간 15분 • 돌산령 정상 (16:40) → 펀치볼 격전비(17:20) ∥ 9.3km /40분 ⋆ 숙박 • 숙소출발(07:50) → 양구(08:40) ∥ 17km / 50분 • 양구 터미널 (10:10) → (버스) → 북산(10:25) • 북산 (10:40) → 간척사거리(11:40) ∥ 7km /1시간 • 간척사거리(11:50) → 배치령 정상(13:20) ∥3.8km /1시간 30분 • 배치령 정상(13:20) → 선착장(13:45) ∥4km /25분 • 소양호 선착장 → 춘천역 ∥ 15km /1시간
※ 총 라이딩 ∥ 97.1 km / 10시간 30분 |
|
첫댓글 이번 라이딩에 함께 동행해주신 옥용림 라이더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사진도 찍어 주시고, 앞에서 끌어주는 힘 덕분에 무사히 즐겁게 일정을 마치게 되었네요. 건강하세요. K형께서는 미국 잘 다녀오시고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 보네세요. 감흥이 사라지기전에 후기 올렸습니다. 블로그에도 사진 더 올려주시고 이곳으로 링크해주세요. 파이팅!
떠나기 전엔 과연 무탈하게 라이딩을 성공적으로 끝 마칠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읍니다.
그러나 막상 라이딩이 시작되니 두려움은 간데 없고 투지가 불탔읍니다.가을비 속을 뚫고 돌산령을 오르고 죽음의 배치고개를 올랐읍니다.7학년 들의 끈기와 투지는 계속될 것입니다.^^
감동의 기행문입니다.
ㅎㅎ 혼자서는 이룰수 없는 쾌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