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합창
최 화 웅
해마다 이맘때 들녘에서는 화려한 합창제의 막이 오른다.
물이 있는 곳이면 발길 닿는 곳마다 사랑의 노래가 이어진다. 세레나데의 명가수 개구리는 짝을 찾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언제 어디서라도 소리를 냅다 질러댄다. 사내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것이다. 산 그림자 내려앉은 무논에 눈부신 신록의 풍광이 넘실대고, 초승달과 별빛의 프로포즈를 받은 개울이나 물구덩이에서는 물 흐르는 소리 생생하다. 저녁 햇살 아래 그물처럼 널린 사랑의 감정이 일렁이는 들녘 여기저기에서는 일찌감치 발성연습이 시작된다. 저녁 무렵 사위어가는 하늘을 배경으로 회색도시가 색깔을 입기 시작하면 “가갸거겨 고교구규 그기”하고 묵직한 저음이 여기저기서 첫 음을 잡는다. 드라마틱한 테너가 기다렸다는 듯이 “라랴러려 로료루류 르리”로 응수하듯 주고받으며 피아니시모에서 포르테로 발전하여 크레센도로 점점 강한 음을 낸다. 남성 이중창으로 시작한 무대가 흥을 돋우며 밤이 깊어 가면 “가갸라랴 거겨러려 고교로료 구규루류 그기르리”를 자연스럽게 반복하는 합창제의 멋진 하모니가 감미로운 앙상불을 이룬다. 나는 개구리의 합창을 들을 때마다 그들의 세계로 빠져들어 이내 잠이 들만큼 마음이 편안해진다.
개구리의 합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사랑 또한 무르익는다.
여름의 길목, 입하(立夏)가 하늘 향해 수직으로 선 연두빛 신록이 캔버스에 짙은 초록빛을 덧칠하는 동안 절기는 마침내 소만(小滿)과 망종(芒種)을 거쳐 여름의 문턱, 하지(夏至)로 줄달음친다.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성장하여 자연이 가득 찬다는 소만이 되면 농촌에서는 보리 베고 흥겨운 타작 시작하랴, 씨 뿌리고 모내기 준비로 바빠지는 농번기의 중심에 선다. 도리깨 소리에 무덤의 송장도 일어나 일손을 돕고 발등에 오줌 쌀만큼 눈 코 뜰 새 없다고 흥감을 부릴만한 그런 시기다. 한마디로 그 만큼 농사일에 정신이 없는 때다. 이 무렵 억지로라도 여유를 가지는 객기를 한번 부려보자. 아직은 아침저녁 불어오는 바람이 찬 기운을 머금어 상쾌하고 녹음 짙어가는 산자락에서 밤이면 소쩍새가 목청을 돋우어 잠든 우리의 그리움을 흔들어 깨운다. 야행성으로 밤에만 울고 활동하는 소쩍새는 올빼미과에 속하는 새로 “소쩍 소쩍”하고 구슬피 울면 다음해에 흉년이 들고 “소쩍다 소쩍다‘하고 울면 다음해에는 솟이 적을 만큼 밥을 지을 쌀이 넘쳐나는 풍년이 든다는 말이 전해진다. 흔히 시가(詩歌)에 등장하는 접동새, 두견이, 귀촉도, 망혼제, 불여귀, 자규라고 일컫는 새는 버꾸기과로 주행성인 소쩍새와는 울음의 음색과 발성법이 딴판이다. 밤에 듣는 들녘의 소쩍새울음은 덤이다.
개구리의 짝짓기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다.
수컷은 울음주머니로 암컷을 유혹하고 암컷은 수정을 위한 짝으로 수컷을 고른다. 분만의 순간이 다가온 암컷은 만삭의 몸으로 물가에서 수컷들의 세레나데를 조용히 경청한 끝에 가장 멋지고 아름답게 울어대는 수컷에게 안긴다. 그리고는 암컷이 알을 낳을 때까지 사랑의 듀엣을 부르다가 알이 나오면 그 위에 정액을 뿌려 수정을 마친다. 개구리의 짝짓기는 이렇게 치러진다. 개구리는 암컷의 체격이 크고 우람한데 비해 수컷은 잘 발달한 울음주머니을 가진 성악가로 날렵한 몸매를 가졌다. 수정된 알은 치열한 세포분열을 거쳐 일주일 뒤 올챙이로 모습을 드러낸다. 초등학생 때 올챙이의 뒷다리가 나오고 앞다리에 이어서 꼬리가 없어져 개구리가 되는 과정을 살핀 관찰일기를 썼던 추억이 아련하기만 하다.
나는 어린 날부터 개구리와 인연이 많았다.
60여 년 전 서울에서 자라던 어릴 때의 일이다. 녹음이 짙어가는 오뉴월 일요일이면 해부용 개구리를 잡으러 가는 큰형을 따라 만원을 이룬 전차를 타고 충무로에서 신촌으로 향했다. 알을 밴 암컷은 잡지 말라는 통에 수컷 몇 마리를 잡아 유리병에 넣고 마치 상전 모시듯 했던 일이며 해부대 위에서 팔 다리에 핀을 꽂고 메스로 예행연습을 하던 형의 곁에서 가슴 조리며 지켜보던 어린 날의 기억들이 마치 활동사진처럼 돌아간다. 그 뒤 피난으로 명지로 내려온 한참 뒤 사춘기에는 밤이면 어둠을 삼킬 듯 줄기차게 울어대는 개구리울음에 빠져 사색의 여름밤을 보내곤 했었다. 정적과 침묵이 깊게 깔린 밤, 나 홀로 개구리울음을 들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라도 찾아 나섰다. 방송기자로 일하던 젊은 날 근교로 취재를 나갔을 때 개구리울음이 자지러지는 곳이면 어디든 주저앉아 실컷 들었고 녹음을 해온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대학에 강의를 나갈 때는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나는 날 학생들을 데리고 기장 죽성리에서 개구리울음을 들으며 야외수업을 하곤 했었다. 그날은 돌아오는 길에 대패삼겹살집에 들러 소주잔을 돌려가며 인생을 이야기하느라고 열을 올렸다. 요즘도 개구리울음이 그리울 때면 양산천변과 김해 근교, 내 고향 명지와 강서 일대, 철마와 울주 등지로 신들린 사람처럼 차를 몬다.
그뿐인가!
개구리울음 가득한 곳에 서면 문둥병을 앓았던 한하운이 시 ‘개구리’로 자연에 화답했던 순수한 감성을 더듬는다. 한하운의 자서전적 회고록 ‘나의 슬픈 반생기’ 중 ‘영어(囹圄)에서 울부짖는 문둥이!’편에서 유치장에 갇힌 그는 “나와 같이 잠이 없는 개구리만 밤새도록 울고 있는 것이 귓가에 요란하다.”고 썼다. 개구리가 개골개골 울어대면 현실로부터 철저히 격리되고 소외되었던 그의 참담한 현실이 불현듯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내가 살아온 길을 뒤돌아보게 한다. 가도 가도 더위에 지친 붉은 황톳길, 소록도로 이어지는 천릿길, 그 남도길에서 손가락과 발가락이 차례로 하나씩 떨어져나가는 고통 속에서도 보리피리 꺾어 불며 끝내 희망을 놓지 않았던 시인 한하운의 해맑은 넋과 기도가 오월의 합창이 되어 이 무잡한 계절을 성찰케 한다.
개구리
한 하 운
가갸거겨
고교구규
그기가.
라랴러려
로료 루류
르리라.
첫댓글 제가 좋아하는 동물중에 하나가 개구리입니다 저에게는 얼마나 귀여운데요.
두꺼비는 독만 없다면 무조건 품에 안아 보고 싶읍니다.
올리신 글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산 그림자 내려앉은 무논에 눈부신 신록의 풍광이 넘실대고, 서산에 걸린 초승달과 별빛의 프로포즈를 받은 개울이나 물구덩이에서는 물 흐르는 소리가 사랑의 속삭임을 품는다.- 이대목에서는 저도 그 개구리들의 감미롭고 신비하고 환희에 찬 노천 야시 음악회장에 가 있는듯한 가슴벅차고 즐거운 느낌이었읍니다.
사실 개구리 소리가 저에게는 요란하여서인지 깊게 생각은 못했었으나
우리에게 삶의 활력소를 주는 얼마나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은 자연의 존재들인지
조금이라도 알것 같읍니다.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개구리의 그 치열한 사랑노래를 듣고싶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집 바로 옆이 논이라서 정겨운 개구리 소리를 밤마다 들어 행복한 요즈음인데, 개구리에 관한 글을 보아 더욱 행복합니다.
참나리님! 행복하시겠어요.
저는 올여름 개구리가 우렁차게 우는 곳에서 하루를 묵으려고 합니다.
개구리와 대화를나눠보세요. 더욱 행복하실꺼에요.
어릴때 올빼미 새끼를 키우면서 개구리 잡으러 다니던 생각이 납니다. 가끔 죽성리 근처를 지나가면 그리운 개구리 소리를 들을수 있지요. 옛 추억의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명금당님! 그 맑고 고운 마음으로 자연의 소리에 귀기울여 보세요.
생명의 귀함이 가득합니다. 잘 지내십시오.
국장님, 언젠가 강화 피정의집 황토방 주위에서 우는 개구리 울음을 들으시고 나누어 주셨던
'개구리 울음 예찬'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떤 남자 분이 이곳에 피정하러 왔다가 개구리 울음소리에 잠을 잘수가 없다며 자기가 기거하고 있던
일산집으로 새벽에 가서 자고 다시 아침일찍 피정의집으로 돌아 온 일이 있었지요.
그때에 국장님의 '개구리 울음 예찬'이야기를 그분에게 들려준적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도 모내기를 얼마전에 했으니 머지않아 개구리 울음소리가 밤마다 4중창으로 울려 퍼지겠지요.
그때마다 국장님을 그리워^^*하겠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신부님! 묵주기도를 바치며 강성보를 오가며 듣던 강화의 그 개구리울음이 그립습니다.
이 무잡한 세상에 개구리의 화음이 아쉽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옛 추억이 떠오르는 이야기입니다... 그 옛날을 그리워하며... 고맙습니다.
글을 올릴 때마다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또 뵙겠습니다.
저는 개구리하니까...중학교때 생물시간에 해부한다고 개구리 잡으러 가던 생각이 맨 먼저 생각이 납니다. 요사이도 생물 시간에 해부를 하는지 모르겠네요...^^*
맘의 고향이 그리워지네요. 어릴때 올챙이도 키웠네요. 개구리노래소리 맞춰 같이 노래 하고픕니다.
Me too!
엊그제 선생님의 송정 카페에 가서 친구랑 맛있는 차를 마시고 왔습니다. 아담한 정원이 정겹더군요.
잘 하셨네요. 저는 요즘 틈이 없어 자주 가질 못합니다. 맘이 편하시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