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교 입학 면접 때 ‘왜 사제가 되려고 합니까?’ 라는 질문에 나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를 투신하고 싶어서’ 라고 대답했습니다. 참 용감했다는 생각이 들고,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입학과 동시에 철학을 배우면서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라는 질문과 함께 ‘나 아닌 남을 위해 나를 내던지겠다’는 나 자신의 결심의 근거를 찾느라 한동안 혼란을 경험했고, 성소의 위기를 경험했습니다. 이 때 나를 붙들어 주고 성소를 지탱해 준 말씀이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 20) 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스스로 그리고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모자이크라는 것을,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로 모자이크된 존재임을 깨달았고, 믿게 되었고 그리고 지금 느끼고 있습니다.
이 깨달음과 믿음으로 사제생활을 하고 있지만 살아 온 시간을 뒤돌아보면 아쉬움도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일 속에 파묻혀 효율만을 고집하고, 이웃에게 보내는 눈길과 관심을 한 눈파는 것으로 치부하며 살아온 시간들이 안타깝습니다.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2009년, 사제생활 20년을 마감하고서야 비로소 착한 목자는 양들을 하나하나 부르는 목자이고, 양 한 마리 한 마리와 관계맺고, 사랑하는 목자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20년이라는 긴 시간을 속절없이 살아 온 것은 그동안의 나의 직무 탓도 있다고 자위하면서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도전과 시작이 필요한 시기임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나름대로 바동거려 맡게 된 일이 복지관입니다.
이 곳 복지관에서 양들을 하나하나 부르는 착한 목자를 흉내내며 새롭게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순간 새 희망이 샘솟습니다. 주님의 일을 하고, 주님의 방식으로 살아갈 때만 비로소 내 삶에 의미가 있고, 그것 만이 기쁨이고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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