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돼지 할아버지네의 달콤한 여행
우리 가족은 5월 가정의 달에 특별한 여행을 떠났다. 가정의 달 중에서도 15일 가정의 날은 나의 생일과 겹치는 날이기도 하다. 특히 올해는 아내의 칠순이 되는 해다. 나의 생일과 칠순을 기념하기 위해 2박 3일간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나에게는 아들만 두 명인데 각자 거주하는 지역이 다르다. 경기도 동탄에 사는 큰아들은 청주공항, 인천에 사는 작은아들은 김포공항에서 출발하고, 대구에 있는 우리는 대구공황을 이용하여 제주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다. 한화리조트를 예약해 놓고 렌터카를 빌려 여행하기로 했다
출발 시각에 맞추어 대구 공황에 도착하니 공황 대기실은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아마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 많은가 보다.
11시쯤 제주공항에 도착하니 작은아들이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후 큰아들도 도착했다. 큰아들 내외와 어린 손자, 작은아들 내외의 손녀와 손자에다 우리 부부 이렇게 아홉 명의 가족이 다 모였다. 이산가족이 만나듯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대기하고 있는 랜드카를 타고 제주도 은갈치 식당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제주도에는 은갈치와 흑돼지고기는 빼놓을 수 없는 대표 먹거리다. 역시 산지에서 먹는 싱싱한 은갈치 맛은 일품이다. 은갈치 찌개의 국물 맛은 달콤하기까지 하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먹으니 더욱 맛있다.
숙소에 여장을 내려놓고 서귀포시 성산읍에 있는 한화 아쿠아플라넷으로 갔다. 아쿠아플라넷의 오션 아레나는 대형 풀을 갖춘 공연장이다. 공연은 1일 4회 50분간씩 1.2부로 나누어 진행했다. 1부는 국내 최초 수중 뮤지컬 ‘세나를 찾아서’로 해적에게 납치된 세나를 구출하는 과정을 그렸다. 2부는 바다사자와 돌고래 생태 설명회로 이루어져 각종 묘기를 볼 수 있었다. 손자 손녀들은 돌고래의 묘기에 놀란 토끼 눈으로 바라보았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 다양한 해양생물을 볼 수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아쿠아리움(수족관)을 구경했다. 입구(2층)부터 출구(지하 1층)까지 연결되어 있다. 입구의 1번 ‘문섬’에서부터 출구의 21번 ‘해파리’까지 주제별로 꾸며져 있다. 처음 보는 다양한 해양생물에 어런·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감탄사를 연발했다. 초중학교 학생들의 현장학습장으로 활용했으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또 다른 제주도의 별미인 흑돼지고기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흑돼지고기는 명승 그대로 정말 구수하고 맛있었다. 어린 손녀·손자들도 맛있게 먹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큰 손자가 느닷없이 ‘할아버지 똥돼지! 할아버지는 똥돼지!’ 하고 깔깔대며 노래를 한다. 나는 ‘현우 금 돼지! 현우는 금 돼지!’ 하고 답가를 했다. 차 안에는 아홉 송이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손자가 흑돼지고기가 맛있다고 하기에 제주도 똥돼지 고기라서 맛있다고 했던 것이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를 똥돼지라고 놀리는 것이다.
이렇게 나를 놀리던 손자는 숙소에 도착하기도 전에 꿈나라를 여행하고 있다. 손녀는 아홉 살이고 큰 손자는 다섯 살, 작은 손자는 세 살로 아직 어리다. 이른 아침부터 비행기에 시달리고, 장시간 수중 공연과 신기한 해양생물들을 보느라 피곤했던 모양이다. 손자 손녀의 뒤를 따라다닌 나도 피곤하기는 마찬가지다.
숙소에 도착하니 시계는 10시를 지나 11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며느리들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곤히 잠든 어린 손자·손녀를 깨웠다. 그 이유는 나의 생일과 아내의 칠순 기념 파티가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생일 케이크에 큰 초 6개, 작은 초 9개의 촛불을 켜고, 둘러앉아 손녀와 손자가 입을 맞추어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할아버지 생일 축하합니다.”하고 합창했다. 작은 손자도 고사리손으로 손뼉 치며 함께 했다.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나서 촛불을 끄고나니 큰 손자가 다시 하잔다. 이번에는 큰 초 7개에 불을 붙이고, 손녀의 선창으로 “칠순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할머니 칠순을 축하합니다.”하고 힘차게 합창했다. 아마 미리 연습해 왔던가 보다.
내가 또다시 하자고 했다. 큰 초 3개만 꽂았다. 손녀, 큰 손자, 작은 손자의 어린이날을 축하하기 위해서다.
“사랑하는 하윤이 공주, 사랑하는 현우 왕자, 사랑하는 현준이 왕자 어린이날을 축하합니다.”라고 어린이날을 축하해 주었다. 케이크 하나로 이렇게 다양한 축하를 한 것은 아마 우리 가족뿐이지 싶다. 이어서 특별 이밴드가 있었다. 아들들, 며느리들, 손자들의 이름으로 아내의 칠순 기념 감사패를 만들어 왔다. 한복 입은 아내의 예쁜 사진과 함께 ‘어머니 이제 꽃길만 걸으세요.’란 제목으로 감사의 글을 새겼다. 손녀가 전해주니 아내의 눈에는 이슬이 촉촉이 맺혔다. 그 어떤 보석 장신구보다 더 값진 선물이 아니겠는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정말 감사하다. 맥주와 음료수로 축배를 하고 나누어 먹는 케이크는 여느 때 보다 더 달콤하고 맛있었다. 온 가족의 사랑이 모이고 모여서 주고받은 축하 케이크이니 더 맛있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나. 이렇게 행복한 하루를 마감하고 늦은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몸은 피곤한데도 잠은 오지 않는다. 무엇 때문일까?
어젯밤 늦게 잠자리에 들었는데도 왠지 모르게 아침 일찍 일어났다. 아들들과 손자 손녀는 아직도 꿈나라를 여행하고 있다. 바람이 창문을 흔들며 나를 부른다. 베란다로 나와 리조트 정원을 내려다보니 줄지어 선 키다리 야자수의 허리가 휘청거리고 있다. 누가 삼다도(돌, 바람, 여자)가 아니랄까 봐 바람이 거세다. 내다보이는 해변의 출렁이는 파도가 바위에 부딪쳐 하얗게 부서지는 물거품은 장관이다. 그러나 오늘은 바람도 파도도 반갑지만은 않다. 오전에는 우리나라 최남단 마라도 여행이 계획되어 있는데, 이렇게 세찬 바람이 불면 일정에 차질이 생길 것 같아서다. 마라도 가는 유람선 사무실에 전화를 해보았다. 오전 중에는 출항할 수 없는데 오후에는 어떻게 될지 두고 봐야 한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일정을 변경해야 했다.
오후에 계획되어 있던 곶자왈 에코랜드 기차여행을 먼저 하기로 했다. 곶자왈이란 제주도 방언의 곶(숲)과 자왈(암석과 덤불이 뒤엉킨 모습)의 합성어다. 화산이 분출할 때 점성이 높은 용암이 크고 작은 바위 덩어리로 쪼개져 요철 지형이 만들어지면서 형성된 독특한 숲이라고 한다. 이런 숲 사이로 철길을 만들고 출발역에서 네 개의 테마역을 거처 다시 출발역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했다. 역마다 특색 있는 볼거리와 체험장이 조성되어 있었다. 역마다 내려 구경하다 언제든지 다음에 오는 기차를 타고 이동할 수 있도록 일정한 간격(8∼12분)으로 8대의 특색 있는 기차가 운행되었다. 가족끼리 오붓한 여행을 하기에는 좋은 곳일 것 같다.
에코랜드 구경 후 유람선 선착장이 있는 곳으로 이동해서 점심을 먹었다. 오후가 되어도 바람의 기세는 꺾이지 않고 바다는 꿈틀거린다. 몇 번 왔었지만, 마라도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해 이번에는 꼭 가보고 싶었다. 그런데 나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파도가 뱃길을 가로막았다. 어쩔 수 없이 다음을 기약하며 발길을 돌려야 했다.
저녁 식사 후로 계획되어 있던 산방산 탄산온천을 하기로 했다. 따뜻한 온천수에 몸을 담그니 그동안 쌓였던 피로가 말끔히 가시는듯했다. 온천욕 후 바닷가 언덕 위의 그림 같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수평선에 잠기는 태양을 바라보며 마시는 찻잔에서 젊은 날의 추억이 파도처럼 출렁인다. 손자들은 카페 잔디정원에서 뒹굴며 뛰논다. 고향 뒷동산에서 소먹이며 뛰놀던 친구들이 생각난다. 그 친구들도 주름진 얼굴에 환한 미소를 머금고 손자들의 재룡에 취해있겠지. 이렇게 2일 차 여행을 마무리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은 여행을 마무리하는 날이다. 오후에는 공황으로 가야 하니 가까운 절물 자연휴양림으로 일정을 잡았다. 절물 자연휴양림은 총 300ha의 면적에 40~45년생 삼나무가 수림의 90% 이상을 차지하여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삼나무는 속성수로서 바람이 많은 제주에서 감귤나무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풍림을 목적으로 심었다. 이곳은 자연 휴양림으로 개발되면서 안락한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다양한 식물을 관찰할 수도 있었다. 큰 손자는 자기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는 동생을 따라쟁이라고 했다. 자기도 몇 년 전에는 누나의 따라쟁이였으면서.
점심을 먹고 공황으로 가기 전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제주시 재래시장을 구경했다. 제주도의 특산품인 감귤과 오메기떡을 구매하여 공황으로 향했다.
이제 아쉬운 작별의 시간이다. 각자 다른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니 여기서 헤어져야 한다.
아들들에게 공직의 박봉이라 남들처럼 뒷바라지도 잘해주지 못했다. 그런데도 반듯하게 자라 이와 같은 가족여행을 주선해준 아들들이 더없이 고맙다.
며느리들도 감사하다. 여행 내내 청량제 같은 웃음을 선사해준 손녀·손자들도 고맙다.
꿈같이 달콤한 가족여행이었다. 똥돼지 할아버지는 또 다시 가족여행을 기약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