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우리말 셈씨 이야기
얼마 전 대방동의 어느 뷔페에 마련한, 하나뿐인 조카의 돌 잔치에 참석한 일이 있습니다. 좀 늦게 간 탓인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제수는 조카를 안고 손님을 맞이하느라 매우 바쁜 것 같았습니다. 아우의 회사 동료들이 온 모양이었는데, 문득 귀에 거슬리는 말 한 마디가 들렸습니다.
"세 돈짜립니다. 아무래도 너무 작지요?"
돌아보니, 제수가 금으로 만든 아기용 팔찌를 받아들고 있었습니다. 그 앞에서 멋적어하고 있는 청년―아우의 회사 동료인 듯한―이 '세 돈짜리' 반지를 선물한 모양이었습니다. 그냥 지나쳐도 되련만, 글쓴이는 습관처럼 관여하였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이 애 큰아버지 됩니다."
"아, 녜. 처음 뵙겠습니다."
"뭘 그리 비싼 걸 선물하십니까? 그런데… 세 돈이라고 하면 잘못된 말입니다."
청년은 아, 하더니 금방 틀렸다는 걸 깨달은 듯 정정하였다.
"그렇습니다. 세 돈이 아니라 석 돈이지요."
금팔찌는 세 돈짜리가 되었다가, 다시 석 돈짜리가 된 셈입니다. 그러나, 실은 세 돈도 석 돈도 아닌, '서 돈'이 맞는 말입니다. 글쓴이의 이 같은 설명에 청년은 '서 돈은 옛날 말인 줄 알았는데…' 하며 머리를 긁적였습니다.
우리말에서 단위를 나타내는 일부 의존 명사, 곧 '돈', '말', '발', '푼' 등의 앞에서 수를 나타내는 말이 쓰일 때 여러 형태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위의 실례도 그러한 보기의 하나입니다. 실제로 우리의 언어 현실에서는 '서 돈'과 함께 '세 돈, 석 돈' 들이 혼용되어 쓰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너 돈' 대신 '네 돈, 넉 돈'과 같이 말하는 사람들―특히 젊은 계층에서―이 많이 있습니다. 또한, 그들 가운데에는 '서 돈', '너 돈'과 같은 말법이 옛날에나 쓰이던 말일 뿐, 요즘에는 사라진 말인 줄로 알고 있는 이들이 간혹 있습니다. '서/너'는 예부터 전통적으로 써 오던 셈씨인 것은 분명하지만, 현재에도 엄연하게 (특정 수량 단위 앞에서) 표준어로 규정되어 있는 것들입니다.
이 '세/네, 서/너, 석/넉' 계열의 어휘는 주로 전통적인 수량 단위(돈, 말, 발, 푼, 냥, 되, 섬, 자 따위)와 결합할 때는 배타성을 띄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타성이 현대로 오면서 조금씩 무너져 혼동되어 쓰인 까닭에 위와 같은 잘못이 빚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혼동을 막기 위해〈표준어 규정〉제17항에서 아래와 같이 규정하였습니다.
제17항 비슷한 발음의 몇 형태가 쓰일 경우, 그 의미에 아무런 차이가 없고, 그 중 하나가 더 널리 쓰이면, 그 한 형태만을 표준어로 삼는다. (ᄀ을 표준어로 삼고, ᄂ을 버림.)
ᄀ ᄂ
서〔三〕 | 세/석 | ~돈, ~말, ~발, ~푼
석〔三〕 | 세 | ~냥, ~되, ~섬, ~자
너〔四〕 | 네 | ~돈, ~말, ~발, ~푼
넉〔四〕 | 너/네 | ~냥, ~되, ~섬, ~자
그러므로 위 규정에 따르면, '세 돈, 석 돈, 세 말, 세 발, 세 푼'이라든지 '세 냥, 세 되, 세 섬, 세 자' 들은 모두 잘못된 표현이 됩니다. 또한, '네 돈, 네 말, 네 발, 네 푼, 너 냥, 네 냥, 너 되, 네 되, 네 섬, 네 자' 들도 써서는 안됩니다. 특히, 이 가운데 '세 자'와 '네 자'는 치수를 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못 말하는 경우입니다. 이는 모두 '석 자, 넉 자'가 바른 말임을 잘 기억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위와 같은 특정 수량 단위를 제외하면 '서/너, 석/넉'은 거의 쓰이지 않고 주로 '세'가 많이 쓰입니다. 따라서 현대로 오면서 많이 쓰이게 된 수량 단위는 주로 '세/네'와 결합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래 보기와 같이 문제가 되는 것이 있습니다.
⑴ 서 겹(?) 석 겹(?) 세 겹 삼 겹(?)
⑵ 서 달(?) 석 달 세 달 삼 달(×)
⑶ 서 대 석 대 세 대 삼 대(×)
⑴의 경우는 '세 겹'이 옳습니다. 전통적인 여러 문헌에서 그 용례가 발견될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가장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삼 겹'은 '삼겹살'과 같은 특정한 복합어에서 쓰이고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어색하기 짝이 없는 표현입니다. '삼겹살'은 맞는 표현이지만 그 외의 '삼 겹'은 잘못된 말입니다.
⑵의 경우는 '석 달'과 '세 달'이 함께 쓰이고 있으나, 전통적으로는 '석 달'로 쓰였음을 참고로 알아두어야 하겠습니다. 물론 현대에 와서는 '석 달'과 '세 달'이 모두 맞습니다. 이런 경우는 어문 정책 당국에서 복수 표준어로 명시하거나 표준어 사정으로 어느 하나를 선택하여야 할 것입니다.
⑶의 경우는 이보다 더욱 복잡한 예입니다. 현실적으로 '서 대, 석 대, 세 대'가 모두 쓰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가 현대에 와서 자동차나 비행기 등에 많이 쓰이는 것이고, '되, 돈' 따위의 전통적인 특정 수량 단위가 아니므로 '세'로 세는 것이 합리적이라 생각됩니다.
17: 수와 길이에 관한 이야기
쉬운 듯하면서도 실제 당하면 매우 헷갈리는 것이 바로 수를 세는 말과 길이를 재는 말입니다. 수와 길이를 나타내는 단위 이름씨는 우리말에 풍부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쓰임새가 나날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수를 세는 단위는 몇몇 낱말로 한정․통합되어 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길이를 재는 단위는 이미 서양에서 들어온 낱말로 대체되고 있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우리 한아비(선조)의 지혜가 깃들어 있는 우리말 단위 이름씨들을 그리 손쉽게 포기해 버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 자리에서는 수와 길이를 나타내는 우리말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수를 나타내는 말
△ 낱
낱개의 사물을 하나씩 셀 경우에 쓰는 말입니다. '그릇 세 낱', '빗자루 두 낱' 따위로 써 왔는데, 요즈음은 이 말 대신에 한자말 '개'(個)를 많이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노인들은 이 '낱'이란 말을 흔히 쓰고 있으므로 얼마든지 되살려 낼 수 있는 순우리말 단위 이름씨입니다.
△ 대, 자루
길고 곧은 물건을 셀 때에 쓰는 단위 이름씨입니다. 길고 곧은 물건 가운데서도 사람이 쥐거나 잡을 수 있는 손잡이로 된 것일 때에는 '자루'를 더 많이 씁니다. 가령, 기둥이나 전봇대를 세는 단위는 '대'이지만, 연필, 붓, 지팡이 들은 '한 자루, 두 자루, …'와 같이 셉니다.
△ 사리
국수나 새끼처럼 가늘고 긴 물건을 둥글게 사리어(헝클어지지 않게 빙빙 둘러 감아) 놓은 것일 때는 '사리'라는 말로 셉니다. 칼국수집에서 국수를 추가로 시킬 때에 흔히 "여기 사리 주세요."하는데, 이는 "국수 한 사리 주세요." 또는 "국수 두 사리 주세요."로 써야 합니다. '사리'는 위의 '자루'와 같은 단위 이름씨입니다. 연필만 파는 가게에 갔다고 해서 그냥 "자루 주세요." 하지는 않을 터이니까요.
△ 타래
실 따위를 사려서 틀어놓은 묶음의 경우에는 '타래'라는 단위로 셉니다. 예: 뜨개실 두 타래, 철사 세 타래.
△ 알, 톨
작고 둥글둥글하게 생긴 것을 셀 경우에는 '알'을 씁니다. 특히, 밤이나 도토리 따위를 셀 때에는 '알'이라고도 하지만 '톨'이라는 단위 이름씨를 더 많이 씁니다. 예: 사과 한 알, 달걀 두 알, 밤 세 톨, 도토리 네 톨.
△ 모
두부나 묵 따위와 같이 모난 물건일 때에는 '모'라는 단위 이름씨를 씁니다. 예: 두부 한 모, 묵 세 모.
△ 켤레, 매, 벌
서로 짝을 이루는 대상이나 짝이 갖추어진 물건일 경우에는 '켤레, 매, 벌' 들을 씁니다. 그 각각의 쓰임새는 '구두 두 켤레, 수저 한 매(숟가락과 젓가락), 치마저고리 한 벌' 따위입니다.
△ 손, 뭇, 두름, 코, 쾌
'손', '뭇', '두름', '코', '쾌' 들은 모두 여러 개를 한 단위로 삼는 것일 때에 쓰는 명수사입니다. 주로 수산물을 세는 단위로 널리 쓰이는데 각각의 쓰임새와 단위별로 묶이는 개수는 아래와 같습니다.
손: 고등어 한 손→ 두 마리
뭇: 조기 한 뭇→ 열 마리
두름: 청어 한 두름→ 열 마리씩 두 줄로 묶은 스무 마리
코: 낙지 한 코→ 스무 마리
쾌: 북어 한 쾌→ 스무 마리
△ 동
굵게 묶어서 한 덩이를 만든 묶음을 셀 때에 쓰는 낱말입니다. 묶은 데 따라 볏짚은 100단, 먹은 10장, 붓은 10자루, 베나 무명은 50필, 곶감은 100접, 한지는 10권(2,000장), 청어는 2,000마리 들이 한 동을 이룹니다.
(2) 길이를 나타내는 말
〈개략적인 길이를 나타내는 말〉
△ 뼘
엄지손가락과 다른 손가락과의 사이를 한껏 벌린 거리를 나타내는 단위 이름씨입니다. (=손뼘) 예: 한 뼘 길이.
△ 가웃
말, 되, 자, 뼘 등으로 수량이나 길이를 헤아릴 때 그 단위의 약 절반의 양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한 자 가웃'이라 하면 약 반 자의 길이를 말합니다.
△ 발
두 팔을 펴서 벌린 길이를 말하며, 새끼나 옷감을 재는 단위로 예부터 많이 쓰였습니다.
△ 바람
실이나 새끼, 철사 같은 것의 한 발쯤 되는 길이를 말합니다. 철사 세 바람은 세 발 정도의 길이입니다.
△ 길, 걸음
'길'은 사람의 키의 한 길이를 말하며, '걸음'은 다리를 한 번 들어 옮겨 놓을 때의 거리를 재는 단위입니다. 이 가운데 '길'은 수직상의 거리 곧 높이나 깊이를 재는 단위 이름씨입니다.
〈정확한 길이를 나타내는 말〉
△ 자
열 치를 나타내는데 서양식 척도로 0.303미터입니다. 보통 한 자는 1미터의 3.3분의 1에 해당합니다.
△ 치
한 자의 10분의 1을 한 치라 합니다. 한자말 단위 이름씨 '촌'(寸)과 같은 길이입니다.
△ 푼
한 치의 10분의 1을 한 푼이라 합니다. '푼'은 무게 단위로서는 한 돈의 10분의 1, 비율의 단위로서는 1할의 10분의 1을 말하기도 합니다.
△ 리, 마장
'리'는 약 393미터쯤 되는 거리를 나타냅니다. '마장' 역시 이와 같은 길이(393미터)인데, 10리나 5리가 되지 못하는 거리를 잴 때에 '리' 대신에 쓰이던 단위 이름씨입니다.
18: 말버릇 이야기
우리 나라의 미래를 떠맡을 한글 세대는 여러 가지 면에서 기성 세대보다 창의적이고 발전적입니다. 그들은 합리적인 사고로 우리 사회의 많은 분야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럼에도 한글 세대에 대한 기성 세대의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는데, 이는 그들의 '합리적'인 생활 양식이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오던 유교적 전통 윤리와 상당 부분 배치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도발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언어 습관은 자주 거론되는 문제입니다.
이 자리에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그 가운데에서도 일상 생활에서 흔히 상용되는 바르지 못한 말버릇 몇 가지입니다. 이는 한글 세대뿐만 아니라 일부 기성 세대의 말투를 포함하며, 청소년의 언어 생활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방송 언어에서 자주 발견되는 것들입니다.
1. "~겠습니다"와 "되겠습니다"
"-겠-"은 "10월 말쯤에 첫눈이 내리겠습니다."에서처럼 확실하지 않은 일에 대한 '추정'을 나타내는 중간씨끝입니다. 때에 따라서는 말할이의 '의지'를 나타내기도 하는데, 그럴 경우에는 다가올 시간(확실하지 않은 일)과 연관이 있어야 합니다(보기: 첫눈이 오면 그대에게 가겠습니다.). 그런데, 요즘 많은 이들이 이 "-겠-"을 잘못 쓰거나 남발하고 있습니다.
(1) *앞으로 나와 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앞으로 나와 주시기를 바랍니다.
(1)은 공개 방송 현장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 방송 진행자가 잘못 쓰고 있는 말버릇인데, 밑줄 친 부분은 그 아래에 제시한 바와 같이 고쳐 말해야 합니다.
이 "-겠-"과 관련된 문제로서 "되겠습니다"가 있습니다.
(2) *화장실은 이 쪽이 되겠습니다.
→화장실은 이 쪽입니다.
(3) *이 분이 저희 부장님이 되시겠습니다.
→이 분이 저희 부장님이십니다.
(2)는 기내의 스튜어디스에게서 가끔 듣는 말버릇이고, (3)은 사무실에서 잘못 쓰고 있는 말입니다. 이 둘의 경우는 "-겠-"을 잘못 쓴 것뿐만 아니라 "되다"라는 말을 잘못 쓴 것까지 겹친 사례입니다. 각각 그 아래에 보인 것이 올바른 표현입니다.
2. "~고 있습니다"
"~고 있습니다"라는 표현 자체가 잘못 되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이렇게 말하지 않아도 될 자리인데도 꼭 이렇게만 말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4) *그 지역에 전기가 공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지역에 전기가 공급되지 않습니다.
(5) *저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압니다.
(4), (5)는 각각 밑줄 친 부분을 그 아래와 같이 표현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텔레비전 방송의 일기 예보 프로그램에서 "현재 기온은 18도를 보이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 또한 "현재 기온은 18도입니다."로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굳이 "보이고 있습니다"를 살리려면 "현재 온도계는 18도를 보이고 있습니다."와 같이 표현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온도계"와 "보이고"가 함께 쓰인 점이 썩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3. 조사 "-가"와 "-를"의 남발
격조사 "-가/이"와 "-를/을"을 마구 써서 말을 길게 늘어뜨리는 경향이 심합니다. 이는 우리말을 쓸데없이 난잡하게 하는 원인이 되는데, 주로 용언의 어근과 접미사('-되다, -하다' 따위)와의 사이에 이들 조사를 끼워넣어 두 언어 형식을 분리하는 현상이 지적됩니다.
(6) *곧 고갈될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곧 고갈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7) *무효화가 될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무효화될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8) *온갖 거짓말로 변명을 했다.
→온갖 거짓말로 변명했다.
(6), (7)의 밑줄 친 부분에서 "-이/가"는 아무 필요없는 것입니다. 우리말에는 "물이 얼음이 되다.", "그가 군인이 되다."와 같이 "ᄀ이 ᄂ이 되다."라는 말의 틀이 있기는 하지만, (6), (7)과 같이 ᄂ(예상, 무효화)이 움직씨스러운 말일 때에는 그 앞에 "-이/가"를 끼워넣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8)은 "하다" 앞에 긴요하지 않은 조사 "-을"을 넣어 좋은 말을 망가뜨린 사례입니다.
4. "같습니다"
"같다"라는 말의 쓰임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ᄀ이 ᄂ과 같다."라는 짜임에서의 그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마 ~것 같다."라고 할 때의 그것입니다. 이 가운데 문제가 되는 것은 뒤의 경우입니다. 뒤의 "같다"는 '추정'이나 '예상'을 나타내므로 반드시 '확실하지 않은'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특히, 청소년들이 '분명한' 사건이나 느낌이나 생각을 말하면서 "같다"를 쓰는 것이 문제입니다.
(9) A: 상 받으신 소감은?
B: *기분이 참 좋은 것 같아요.
(10) A: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B: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9)는 A가 상 받은 당사자인 B에게 소감을 묻고 B가 자기의 느낌을 말한 사례입니다. 자기의 느낌을 말하면서 남의 일처럼 '추정'의 표현을 쓴 것은 올바른 일이 아닙니다. 마땅히 "좋습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10)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자기가 겪은 어려움에 대하여 말하면서 마치 남의 경험처럼 말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며, 마땅히 "없었습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19: 표준 발음 이야기
올바로 쓰는 문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제대로 읽는 문제입니다. 올해부터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가 "말하기․듣기", "읽기", "쓰기" 3종에서 "말하기․듣기․쓰기", "읽기" 2종으로 개편된 것도 이와 같은 사실을 잘 뒷받침합니다. 곧 '쓰기'는 '말하기․듣기'에 통합하면서도 '읽기'만은 따로 둔 것입니다. 비록 모국어라고는 하나 올바른 발음을 익히는 것은 생각만큼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며칠 전 어느 스포츠 신문에 난 기사 한 토막은 우리를 매우 슬프게 했스니다. 그 내용인즉, 요즘 젊은이들은 짝찾기 만남(미팅)을 가질 때 가장 먼저 상대방의 영어 발음 실력을 시험한다고 합니다. 그 영어 발음도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것과는 거리가 있는, 영어권 나라의 실제 발음을 더욱 중시한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컴퓨터' 하면 딱지를 맞고 '컴퓨러' 하면 인정 받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정도는 되어야 외국 유학물을 좀 먹었거나 최소한 배낭 여행이라도 다녀온 티가 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 기사에서는 '한글 맞춤법은 잘 몰라도…'라는 단서까지 달고 있습니다. 우리말 우리글은 좀 잘못되고 틀리더라도 영어 발음만은 정확해야 '제 짝을 찾는' 안타까운 세태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화를 위해서는 우리것을 먼저 잘 익힌 다음에 선진 문물을 가려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 말글을 제대로 익히지 않고 영어에만 매달린다면 결국 국적없는 떠돌이, 국제 미아를 양산시킬 뿐입니다.
이 곳에서는 일상 생활에서 흔히 쓰고 있는 말들 가운데서 발음이 자주 틀리거나 발음의 구별이 다소 모호하다고 생각되는 낱말을 몇 개 뽑아 보았습니다.
1. 두음법칙에서 벗어나는 말들
날씨가 무더워지면서 안방 극장에는 예외없이 갖가지 '납량 특집'들이 방영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납량'이라는 말이 때마다 문제가 됩니다. 많은 이들이 이를 '납양'으로 알고〔나?〕으로 발음하고 있는 것입니다. '納凉'의 '凉'은 '량'이지 '양'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 말은〔남냥〕으로 읽어야 옳습니다. 국어에서의 두음법칙은 어두에서만 적용되고 제2음절 이하에 올 때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두음법칙에서 벗어나는 말들이 가끔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렬(列)'과 '률(率)'입니다. 이들 한자말이 어두에 쓰일 때는 물론 두음법칙에 적용 받지만, 제2음절 이하에 쓰일 때에도 '렬, 률'의 'ᄅ'이 줄어지는('ᄋ'으로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두음법칙에서 벗어나는 경우라서〈한글 맞춤법〉제11항 '붙임 1'에 따로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곧 '모음이나 ᄂ 받침 다음에 오는 렬, 률은 열, 율로 적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1) ᄀ. 행렬(行列), 결렬(決裂), 맹렬(猛烈), 졸렬(拙劣)
ᄂ. 치열(齒列), 분열(分裂), 우열(優劣), 진열(陳列)
(2) ᄀ. 법률(法律), 능률(能率), 출석률(出席率)
ᄂ. 운율(韻律), 비율(比率), 전율(戰慄)
곧 (1), (2)의 ᄀ은 '렬'이나 '률'로, ᄂ은 '열'이나 '율'로 적습니다. 이는 모음이나 ᄂ 받침 다음의 '렬, 률'이 '열, 율'로 각기 발음되는 현실을 표준 발음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그것을 표기법에도 반영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운율', '전율'의 발음은 각각〔운뉼〕,〔전뉼〕이 아니라〔우뉼〕,〔저뉼〕이 맞습니다. 이 말들은 요즘 가장 자주 틀리는 것들이니 유의해야 합니다.
2. 자음동화 규칙에서 벗어나는 말들
자음동화 규칙에 의하면, 'ᄂ'은 'ᄅ'의 앞이나 뒤에서 'ᄅ'로 소리난다고 되어 있습니다. 곧 '신라'는〔신나〕가 아니라〔실라〕로, '칼날'은〔칼랄〕로 소리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일상 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말들 가운데는 이러한 자음동화 규칙에서 벗어나는 말들이 꽤 있습니다. 가령, '등산로'는〔등산노〕이지〔등살로〕가 아닙니다. '선릉'도〔선능〕이 맞으며, 한글 회관이 세워져 있는 '신문로'도〔신문노〕입니다.
실제 요즘 발음을 보면 개인차가 있기는 하나, 젊은 세대에서는 특히 어휘에서 'ᄂ+ᄅ'의 연결을〔ᄂᄂ〕으로 발음하는 경향이 강한 듯합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형태 보존의 실리에서 찾을 수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곧, '등산로'의 경우, 선행 형태소 '등산'이 자립 형태소로 그 뜻이 분명한데, 형태를 바꿔 '등살'로 하면 '등산'이란 의미와 거리감을 느끼기 때문에 형태를 바꾸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표준 발음법〉에서는 자음동화 규칙에서 벗어나는 말들을 묶어 그 예외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위에 든 낱말 외에도 다음과 같은 것들이 그 용례입니다.
의견란 → 〔의:견난〕 상견례 → 〔상견녜〕
임진란 → 〔임:진난〕 결단력 → 〔결딴녁〕
동원령 → 〔동:원녕〕 이원론 → 〔이:원논〕
3. 겹받침의 발음 문제
한글 학회 연구부에 걸려 오는 문의 전화 가운데 1할 가량은 겹받침의 발음 문제입니다. 특히, '맑다'와 '넓다' 등의 발음을 가장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습니다. '맑다'가〔말따〕인지〔막따〕인지, '넓다'가〔널따〕인지〔넙다〕인지 자신이 안 선다는 것입니다.
〈표준 발음법〉제10항에서, 겹받침 ', , '은 어말 또는 자음 앞에서 각각〔ᄀ, ᄆ, ᄇ〕으로 발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닭'은〔닥〕으로, '젊다'는〔점:따〕로, '읊다'는〔읍따〕로 발음해야 하므로, '맑다'도〔막따〕로 발음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다만, 용언의 어간 말음 ''은 활용할 때 'ᄀ' 앞에서〔ᄅ〕로 발음해야 합니다. 곧 '맑게'는〔말께〕로, '묽고'는〔물꼬〕로, '얽거나'는〔얼꺼나〕로 발음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리고 겹받침 ' , , , , , ᄡ'은 어말 또는 자음 앞에서 각각〔ᄀ, ᄂ, ᄅ, ᄇ〕으로 발음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넓다'도〔넙다〕가 아니라〔널따〕로 발음해야 합니다. 이러한 예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넋 → 〔넉〕 외곬 → 〔외골〕
앉다 → 〔안따〕 핥다 → 〔할따〕
여덟 → 〔여덜〕 값 → 〔갑〕
다만, '넓죽하다'와 '넓둥글다'는〔넙쭈카다〕와〔넙뚱글다〕로 발음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니 유의해야 합니다.
4. '의'의 발음에 대하여
'의'는 이중모음으로서 발음 역시 이중모음〔ㅢ〕로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런데〈표준 발음법〉제5항에서는 단어의 첫음절 이외의 '의'는〔이〕로, 토씨(조사) '의'는〔에〕로 발음함도 허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주의(注意)'는〔주의〕로 발음함이 원칙이지만〔주이〕로 발음하는 것도 허용하며, '우리의'는〔우리의〕가 원칙이나〔우리에〕도 허용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서울의 명소'나 '민주주의의 의의'는 각각 표기대로 발음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서울에 명소〕,〔민주주이에 의이〕로 발음해도 좋다는 것이 현행 표준 발음 규정입니다.
20: 일터의 말씨
일터(직장)는 가정과 더불어 현대인의 나날살이(일상생활)를 꾸려 나가는 가장 중요한 마당입니다. 일터의 질은 그 사람의 삶의 질을 대변할 수도 있는 만큼, 즐거운 일터를 가꾸어 나가는 개인의 노력은 바로 자신의 삶을 즐겁게 하는 동시에 회사의 생산성도 높이는 결과를 낳게 마련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일터에서의 언어 예절을 바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으며, 이로써 서로간의 불필요한 오해와 비생산적인 갈등을 해소하여 즐거운 일터를 꾸려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 곡에서는 바로 이 같은 문제들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⑴ 윗사람을 그보다 더 윗사람에게 말할 때
평사원이 과장을 부장에게 말하는 경우처럼, 말하는 사람보다 직위가 높은 사람(상사)을 그보다도 윗사람(상사의 상사)에게 가리켜야 할 때에 종종 올바른 존칭법을 몰라 난처할 때가 있습니다. 흔히 일반 회사에서는 신입 사원을 교육할 때에, 부장 앞에서 과장에게 '님'을 붙이지 않고 존칭 선어말 어미 '-시-'도 쓰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 '님'을 붙이지 않는 지칭은 일본어의 어법으로서,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일제의 잔재에서 비롯된 것일 뿐입니다.
우리의 전통적인 언어 예절로는 일터에서 윗사람을 그보다 윗사람에게 지칭하는 경우에, '님'과 '-시-'를 모두 넣어 "부장님, 총무과장님은 잠깐 외출하셨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옳습니다. 다만, 이 경우 '-께서'라는 존칭 조사는 불필요한 것으로서 생략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⑵ 상사의 직함 뒤에 '님'을 붙여야 하는가?
이 같은 문제 제기는 추측하건대 직함 자체를 존칭으로 여겨서 그 뒤에 '님'을 붙이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느낀 데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직함은 그 사람의 회사 내에서의 신분을 나타낼 뿐 그 자체가 존칭은 아닙니다. 직함이 있는 상사를 부를 때에는 반드시 직함에 '님'을 붙여 '과장님', '부장님'처럼 부르는 것이 우리의 정서에 맞는 올바른 부름말(호칭)입니다. 그리고 부장이나 과장이 한 자리에 여럿 있어서 구분하여 말해야 할 때에는 '총무부장님', 또는 '홍길동 부장님'처럼 소속이나 이름에 직함을 붙여 부릅니다.
⑶ 일터에서 '김 형', '박 형'이라는 부름말은 바람직한가?
가족 구성원끼리의 부름말에서 '형'은 윗사람을 부르는 말이지만, 사회에서의 '형'은 주로 동년배이거나 아랫사람에게 쓰는 말입니다. 일터에서도 '김 형', '박 형' 하고 성과 '형'을 합쳐 쓸 수 있는 부름말은 남자 직원이 동료 남자 직원을 부를 때입니다. 그러나 그냥 '형' 하거나 이름과 '형'을 합친 'OOO 형'은 지나치게 사적인 인상을 주므로 쓰지 않아야 합니다. 여직원이 남자 직원을 'O 형' 하고 부르는 것도 잘못된 부름말입니다.
⑷ '말씀'이라는 말에 대한 예절
'말씀'은 "부장님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처럼 상사를 높이어 그의 말을 이르는 말입니다. 동시에 "부장님께 말씀 드리겠습니다."처럼 상대방을 높이어, 자기가 하는 말을 낮추어 이르는 말이기도 합니다. 흔히 이 같은 경우에 자기가 하는 말을 '말씀'이라고 표현하면 예의에 어긋나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윗사람에게 말할 때에는 반드시 자기가 하는 말에 '말씀'을 쓰는 것이 바른 예절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⑸ '~ 말씀이 계시다'의 오류
"다음은, 사장님 말씀이 계시겠습니다."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관공서에서 행사할 때, 예식장에서 주례할 때, 학교에서 졸업て입학식을 할 때 등과 같이 곳곳에서 쓰이고 있는 말입니다. 이 같은 현상은 아마도 말을 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있다'를 '계시다'로 바꾸는 것이 언제나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바꿀 수 있는 경우는, 존칭 이름씨가 주어이고 '있다'가 존재를 의미할 때("사장님께서는 지금 안에 계십니다.")와 도움풀이씨로 사용되어 존칭 이름씨의 동작이 진행됨을 나타날 때("부장님께서는 전화를 받고 계십니다.")입니다. '말씀'은 높은 사람과 관련하여 존칭화된 말이지만, 그것 자체는 존대의 대상이 되는 존칭 이름씨는 아니고 '존재할' 수 있는 유정 이름씨도 아닙니다. 따라서 '말씀'은 '하시는' 것이지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 말씀이 계시다'는 존경의 어휘를 쓰지 않아야 할 자리에 존경의 어휘를 쓴 오류입니다. 이 경우는 '~ 말씀을 하시겠습니다' 또는 '말씀하시겠습니다'가 옳습니다.
⑹ 일터에서 평사원을 부르는 알맞은 부름말
일터에서의 부름말, 가리킴말 등 언어 예절은 하루의 기분을 좌우할 만큼 중요합니다. 특히, 동료끼리의 부름말이나 상사가 부하 직원을 부를 때의 부름말은 자칫 가볍게 지나칠 수 있는 문제이지만 그 중요성은 어느 경우에 못지 않습니다.
오늘날 널리 쓰이고 있는 '미스 O', '미스터 O'의 '미스', '미스터'는 외국말이므로 어느 경우에도 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또 친한 사이인 경우 'OO야'처럼 이름만으로 호칭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사석이면 몰라도 공적인 일터에서는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직함이 없는 동료를 부를 때에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홍길동 씨'처럼 성과 이름에 '씨'를 붙이거나, 상황에 따라 '길동 씨'처럼 이름에 '씨'를 붙여 부릅니다. 그러나 직함이 없는 입사 선배나 나이가 많은 동료 직원을 'OOO 씨'로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이 경우는 꼭 '님'을 붙여 '선배님', '선생님' 또는 성이나 이름을 붙여 'O 선배님(선생님)', 'OOO 선배님(선생님)'처럼 부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과장이 과장을, 또는 부장이 부장을 부르는 경우처럼 직함이 있는 동료 사이에는 직함으로 'O 과장', 'O 부장'처럼 부르거나, 직함이 없는 동료들끼리 부르는 것처럼 'OOO 씨'로 부릅니다. 그러나 같은 직급이라도 나이가 많을 경우에는 '님'을 붙여 'O 과장님', 'O 부장님'처럼 부릅니다.
한편, 상사가 부하 직원을 부를 때에도 일정한 언어 예절이 필요합니다. 특히, 부하 직원이 직함이 없는 평사원일 때에, 함부로 'OO야'라고 이름을 부르거나, '미스 O', '미스터 O' 등 외국말로 부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성과 이름 뒤에 '씨'를 붙여 'OOO 씨'로 부르거나, 상황에 따라 이름 뒤에 '씨'를 붙여 'OO 씨'로 부르는 것이 가장 무난합니다.
21: 부름말 이야기
우리 겨레는 전통적으로 예의 바르고 겸손한 민족입니다. 자연히 우리는 예부터 서로간의 호칭 하나에도 많은 주의를 기울여 왔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 호칭 문제는 오늘날 우리 나라 사람들의 말글살이에서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것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는 친척 계보에서는 물론 각종 조직 사회에서도 공통적으로 부딪히고 있는 문제입니다. 여기에서는 특히, 친척간의 호칭 문제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구체적인 경우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호칭'이란 말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흔히 '호칭'이라고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호칭어〔부름말〕'와 '지칭어〔가리킴말〕'로 구분해야 합니다. 이 가운데 지칭어 곧 가리킴말은 다시 직접 가리킴말과 간접 가리킴말로 나누어집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논의되는 호칭은 부름말, 직접 가리킴말, 간접 가리킴말을 통틀어 일컫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알기 쉽게 "남편"을 보기로 들어 보겠습니다.
⑴ ᄀ. 얘, 우리 남편이 얼마나 구두쇤지 아니?
ᄂ. 당신은 자신이 얼마나 구두쇤지 깨달으셔야 해요.
ᄃ. 여보! 이제부터는 구두쇠 노릇 안 하실거죠?
⑴ᄀ에서의 "남편"은 간접 가리킴말이며, ᄂ의 "당신"은 직접 가리킴말, ᄃ의 "여보"는 부름말입니다. 남에게 제 남편을 "여보"라고 가리킬 수 없듯이, 제 남편을 대놓고 "남편!"이나 "당신!"이라고 불러서는 안 됩니다. 서양 사람들은 친척끼리도 서로 이름을 부르지만 우리는 엄연히 부름말이 있으며, 이것이 우리의 고유한 문화입니다.
1. 시댁 식구들을 어떻게 부를까?
⑵ ᄀ. 제 시아주버니/시숙께서는 문화관광부에 다니십니다. (간접 가리킴))
ᄂ. 아주버님께서 절 놀리시는군요. (직접 가리킴)
ᄃ. 아주버님, 정말 고마워요. (부름)
⑶ ᄀ. 명일동 아주버니도 내일 오십니까? (간접 가리킴)
ᄂ. 큰아주버님,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부름)
⑷ ᄀ. 저희 시동생은 문화관광부에 다닙니다. (간접 가리킴)
ᄂ. 서방님/명일동 서방님이셔요? (직접 가리킴)
ᄃ. 도련님/서방님, 많이 잡수세요. (부름)
⑸ ᄀ. 제 시누이는 옛날 소꿉친구이기도 해요. (간접 가리킴)
ᄂ. 형님은 제가 싫으세요? (직접 가리킴)
ᄃ. 아가씨, 우리 잘 지내기로 해요. (부름)
⑹ ᄀ. 형님이 먼저 자리에 드세요./ 형님, 그만 누우세요. (직접 가리킴/부름)
ᄂ. 동서가 잘못했어./ 동서, 이번 추석에는 꼭 와야 해? (직접 가리킴/부름)
⑺ ᄀ. 우리 시누이남편은 문화관광부에 다니신다. (간접 가리킴)
ᄂ. 서방님, 일부러 와 주셔서 고마워요. (부름)
남편의 형을 간접적으로 가리킬 때에는, 한자말로는 "시숙"이라 하고 순 우리말로는 "시아주버니"라고 합니다(2ᄀ). 직접 가리키기나 부를 때에는 "아주버님"이라고 합니다(2ᄂ,ᄃ). 남편의 형이 여럿일 때에는, 필요에 따라 맏이를 "큰(시)아주버니"라고 하며, 그 다음부터는 차례대로 "둘째(시)아주버니", "셋째(시)아주버니", …라고 하여 구별합니다. 집안 식구끼리는 사는 동네 이름을 앞에 붙여서 구분할 수도 있습니다(3).
남편의 남동생을 간접적으로 가리킬 때에는 "시동생"이라 합니다(4ᄀ). 직접 가리키거나 부를 때에는, 장가가지 않았을 경우에는 "도련님"이라 하고, 혼인을 하고 나면 '남편의 형'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아주버님"이라 하기도 하고 "서방님"이라 하기도 합니다(4ᄂ,ᄃ). 요즈음 "시동생"이라고 해야 할 자리에서 "삼촌"이라고 하는 것을 흔히 보는데, 이것은 커다란 잘못입니다.
남편의 여형제는 "시누이"입니다. 손위와 손아래를 가리지 않고 다 같이 이렇게 일컫습니다. 간접 가리킴말은 이 말을 그대로 쓰면 됩니다(5ᄀ). 직접 가리킴말과 부름말은, 손위 시누이인 경우에는 "형님"이라 하고(5ᄂ), 손아래 시누이는 "아가씨"라고 합니다(5ᄃ). 시누이에게는 나이가 어리더라도 존대말을 써야 합니다. 요즈음 시누이를 "고모"라고 하는 경향이 많은데, 이 또한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며느리들끼리 서로를 가리킬 때에는 "동서"라고 합니다. 동서끼리 상대편을 직접 가리키거나 부를 때에는, 손아래 동서는 손위 동서를 "형님"이라 하고(6ᄀ), 손위 동서는 손아래 동서를 "동서"라고 합니다(6ᄂ). 이 때 며느리들의 손위․손아래는 남편에 따라 결정됩니다. 다시 말하면, 며느리들의 나이는 손위․손아래를 결정하는 데에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손아래 동서의 나이가 더 많을 때에는 부름말은 "동서"라고 하되, 함부로 '해라-체'를 쓰지 않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시누이의 남편을 "고모부"라고 부르는 것 역시 잘못된 것입니다. 간접 가리킴말은 "시누이남편"입니다(7ᄀ). 다만, 이 경우는 예부터 내외하던 사이라서 직접 가리킴말과 부름말은 발달하지 않았는데, 오늘날의 상황에 알맞은 부름말을 찾는다면 "서방님"이 가장 적절합니다(7ᄂ).
2. 처갓댁 식구들을 어떻게 부를까?
⑻ ᄀ. 저의 장인어른/빙장어른이 다녀가셨습니다. (간접 가리킴)
ᄂ. 저의 장모님/빙모님은 아직 환갑 전이십니다. (간접 가리킴)
ᄃ. 빙장어른/빙모님께서는 사업체를 정리하셨습니다. (직접 가리킴)
ᄅ. 장인어른/장모님, 이제부터 제가 모시겠습니다. (부름)
⑼ ᄀ. 제 큰처남이 그 회사에 다닙니다. (간접 가리킴)
ᄂ. 처남, 요즘 사업이 어떠십니까? (부름)
ᄃ. 처남은 무슨 운동을 좋아하나? (직접 가리킴)
⑽ ᄀ. 내 친구의 처형이 그 방면의 전문가입니다. (간접 가리킴)
ᄂ. 처형께서는 어찌 화 한 번 안 내십니까? (직접 가리킴)
ᄃ. 처제, 시집가도 언니를 닮지 마세요. (부름)
⑾ ᄀ. 제 동서가 그 일을 알고 있습니다. (간접 가리킴)
ᄂ. 형님이 말씀하신 대로 조치하겠습니다. (직접 가리킴)
ᄃ. 동서가 도와 준 덕택입니다. (직접 가리킴)
ᄅ. 동서, 빨리 와 주게./ 박서방, 언제 한번 올라오지 그래. (부름)
⑿ ᄀ. 이번에 제 처남(의)댁이 미용실을 개업했습니다. (간접 가리킴)
ᄂ. 작은처남댁은 어디 가셨습니까? (간접 가리킴)
ᄃ. 아주머니, 지난번 처갓댁에서는 정말 고마웠습니다. (부름)
아내의 부모를 가장 일반적으로 가리키는 말은 "장인․장모"입니다. 좀 높여서 말할 때에는 "빙장․빙모"라고 합니다. "장인, 빙장" 뒤에는 "어른"을 붙여 쓰기도 하고(8ᄀ), "장모, 빙모" 뒤에는 "-님"을 붙여 쓰기도 합니다(8ᄂ). 직접 가리킴말과 부름말에 있어서도 전통적으로는(요즈음은 "아버님․어머님"이라 부르는 것도 하나의 추세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장인은 "장인어른" 또는 "빙장어른"이라 하고(9), 장모는 "장모님" 또는 "빙모님"이라 하였습니다(8ᄃ,ᄅ).
아내의 남자형제는 "처남"입니다. 아내의 오라버니도 처남이고, 아내의 남동생도 처남입니다. 처남이 여럿일 때에는, "큰처남, 작은처남" 또는 "둘째처남, 셋째처남, …, 막내처남" 등으로 구분합니다(9ᄀ). 다만, 직접 가리키거나 부를 때에 요즈음 흔히들 아내의 오라버니를 "형님"이라고 부르는데, 전통적으로는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자기보다 나이가 적은 처남을 "형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어색한 경우가 생길 것입니다. 아내의 오라버니든 동생이든 간에 모두 "처남"이라고 부르는 것이 전통적인 우리의 말법이었습니다(9ᄂ,ᄃ).
아내의 여형제 가운데 손위(아내의 언니)는 "처형"이고, 손아래(아내의 동생)는 "처제"입니다. 가리킬 때에든 부를 때에든 이 말을 그대로 씁니다(10). 한 가지, 처제를 보고 함부로 이름을 부르거나 나이가 찬 처제에게 마구 '해라-체'를 쓰는 것은 올바르지 못한 말법입니다. 자기와 아무리 나이 차이가 나더라도 시집을 가고 나면 반드시 존대해야 합니다.
아내의 여형제 남편을 (간접적으로) 가리킬 때에는 손위․손아래를 가리지 않고 "동서"라고 합니다(11ᄀ). 직접 가리키거나 부를 때에도 전통적으로는 두 경우 모두 "동서"라고 해 왔으나, 오늘날에는 아내 언니(처형)의 남편인 경우, 자기보다 나이가 많을 때에는 "형님"이라 부르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졌습니다(11ᄂ). 다만, 처형의 남편이 자기보다 연하일 때에는 그대로 "동서"라고 부르며 존대말을 해야 합니다(11ᄃ). 처제의 남편을 직접 가리키거나 부를 때에는 "동서"라고 하는 외에도 "~서방"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11ᄅ). 이 때에도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손아래 동서이면 역시 "동서"라고 부르되 존대말을 써야 합니다.
처남의 아내는 "처남댁"(또는 "처남의댁")이라고 한다(12ᄀ,ᄂ). 이 경우는 직접 가리킴말이나 부름말이 문제인데, "처남(의)댁"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이 '댁'이라는 말이 걸리기 때문인지 오늘날 "처남댁"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처수"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 아직은 국어 사전에 올리지 않은 말입니다. 글쓴이는 처남(의)댁을 직접 가리키거나 부르는 말로 "아주머니"를 쓰기를 권하고 싶습니다(12ᄃ). 이 말은 실제로 중부 지역을 중심으로 널리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중이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