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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구병 사유의 평면들: “밑지층”(substrates)과 "웃지층(métastrates)"
기쁨의 철학(철학자 윤구병의 존재론을 쉽게 풀어 쓴), 한재경 해설과 엮음의 책을 받아보고서, 철학 분야에도 우리 입말을 문자화하고, 나아가 토론과 입씨름할 수 있는 장과 기회가 열렸다고 생각한다. 그는 근 10여 년을 윤구병(형님)과 더불어 또 함께 새로운 길을 모색하며, 달리 문자화하여 남긴 것에 대해 응원과 찬사를 보낸다. 얼핏 보아도, 이 한재경과 더불어 또 함께 했던 이들은 형님과 만남에서, 세 권의 책 있음과 없음, 꿈꾸는 형이상학, 우주의 역사을 통하여 형님의 사유를 따라갔을 것이기도 하지만, 만남 과정에서 형님의 입말(구강성, 먹거리 포함)과 몸짓과 입성에서 우러나오는 느낌에서 더 많은 것을 느꼈을 것이리라. 왜냐하면 이 세 권의 책은 형님의 일관성을 가지고 고집스럽게(?) 밀고 나간 형이상학에 대한 해석일 것인데, 그의 삶에서 표면에 등장하는 여러 상황들이 더 많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은 형님과 더불어 만나서 이야기 중에, 글 속에서도 이야기하듯이 삶의 향기를 느꼈을 것이고, 이와 더불어 당연히 다른 작품들과 연관 이야기도 서로 했을 것이다.
간단히, 형님의 관심은 있음과 없음(2003)에 이어 철학을 다시 쓴다: 있음과 없음에서 함과 됨까지(2013)로 이어진다. 그리고 형님의 불교 관심은 소년 시절에도 또 가정을 가지고서도 출가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거의 모든 글에서 불쑥불쑥 나오는데, 꿈꾸는 형이상학(2020)에 앞서서 윤구병과 도법 스님의 대화인 스님과 철학자(2016)가 있는 데, 우주의 제법으로부터 구도자의 노력을 통한 부처에 이르는 길을 밝히기 위해 의상 대사의 법성게(法性偈)를 가지고 일 년간, 여러 분야 전공자들과 함께 다루었다고 한다. 이 시기에 3년에 걸쳐서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글을 모아 펴낸 특별기고: 우리는 하나다(2017)도 있다. 혁명은 언제나 심장 뛰게 한다. 이 글이 나오던 시절에 몇몇 옛 후배들은 이런 말(글)을 공공연하게 해도 안 끌려가나 라고 걱정하기도 했는데, 이 글은 사유의 한계를 벗어나, 분단의 현실에서 “함과 됨”을 실재적이고 효과적으로 내보인 것이라 여겼다. 읽고 있으면 통일이 바로 옆에 와 있는 것으로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2019년에 한철연에서 동서양을 아울러 철학사에서 드러난 ‘같잖은 생각(nothos logos)들’을 1년간 6회에 걸쳐 강연이라기보다 좌담회를 했을 때, 뒷풀이에서 한철연 동지들은 한편에서는 선생님(형님)이 철학 전반에 걸친 작품을 낼 구상을 하고 있다고 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동서양을 아우르면서 ‘같지 않은 이야기들’로 체계를 만들어 설명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달기도 했었다. 형님이 6회 강좌 중에 들고 오는 두꺼운 노트가 있었는데, 내가 훌낏 그 노트를 보았는데, 페이지마다 꽉 채운 것이 아니라 어느 쪽에는 길게 어느 쪽에는 몇 줄 안 되게 써 있었다. 그래도 그 두꺼운 노트를 연결하면 큰 작업일 것이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우주의 역사(2024)가 한 해가 지나서 우편으로 왔다. 내가 기대했던 동서양을 아우르는 흐름을 잡아주는 책이 아니라, 어쩌면 형님이 있음과 없음의 사유로 되돌아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형님의 사유가 가장 활발한 시기, 1993년에 <시대와 철학>에 연재하기 시작하여 1997년에 중단한 ‘존재론 강의’의 시기를 과학적으로 확장한 것이지만, 내가 기대했던 생명, 유전, 시간, 기억보다 우주의 수학적이고 물리학적 확장에 더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이 책 말미에 오일러 공식으로 제시하였고, 아인슈타인의 공식도 아름답다고 하였다. 우리 형님이 언어의 논리를 전개하다가, 수학의 단위로 넘어가서, 물리적 세계로 확장하는 사유를 한 것 같다고 보았다. 플라톤의 방식을 닮았다(?) 그런데 나로서 이런 논리, 수학, 우주로 관심의 방향이 앵글로색슨의 우주론이라 여긴다. 이에 비해 우주생성론은 달리 생각하기라고 여긴다. 앵글로색슨 사고에서 보면 오일러와 아인슈타인은 신의 설계를 믿는 쪽이다. 동시대인들로서, 신을 믿는 오일러(1707-1783)가 무신론자이며 유물론자인 디드로(1713-1784)에 이와 비슷한 공식을 들이대며 비꼬았던 일화가 있었고, 그리고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면서 아인슈타인(1879-1955)이 통일과 완전성을 이루는 신을 계속 들먹이자, 보어(1885-1962)는 당신은 ‘신을 그만 괴롭혀라’고 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럼에도 형님의 삶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는 노력들이 또는 다른 작업들이, 문자화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형님과 더불어 또 함께 죽 만날 수 있었던 한재경과 그 동지들이 부럽다. 나로서는 일 년에 거의 한번 정도 볼 수 있었는데 말이다. 마치 여시아문(如是我聞)과 같이, 이야기의 한 줄거리를 한 판본을 만들었다는 것에 찬사를 보낸다. 아마도 그들은 이 세 권의 책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다른 글들을 듣고 보았을 것인데, 다음과 같은 말을 책의 마지막에 달았다.
“검증으로 옥죄는 슬픔의 형이상학이 아니라, 함께 꿈꾸는 기쁨의 형이상학, 이 해설이 기쁨으로 가는 길에 작은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165)” 아멘(ἀμήν, “certainly, verily(참으로)”)이 아니라, 나도 “여시아문”이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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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서는 철학이란 학문을 시작한 지 쉰네 해, 루소와 더불어 제3신분의 등장으로부터 프랑스 혁명에 관심을 가진지 마흔여섯 해를 지나면서, 돌이켜 보건데, 선생님(박홍규)의 선승 같은 말씀에는 종잡을 수 없었고 그래도 평천하와 진퇴지절을 이야기하며 되물어가면서 만난 벗(권용원)이 있었고, 배우고 익히면서 또 다시 문헌을 뒤지면서 다음 질문을 할 수 있는 이로써 형님(윤구병)과 형(이규성)이 있었다. 벗과 나는 같은 길을 추구한다고 생각했지만, 벗과 만나서 조율하는 과정에서, 그는 나에게 항상 둘 정도 모자란다고 하면서, 서울에서 공부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잘 정리할 수 없겠느냐고 말하곤 했다. 이런 노력의 부분들로 한철연이 있고, 고대철학과 불교를 잇는다고 여겼던 형님이 있고, 동양철학과 우리 철학을 아울러 정립하려 했던 형이 있어서 고맙고, 공자의 「학이편(學而編)」의 말씀대로 열락(悅樂)의 시기를 보냈다.
나름으로 벩송을 여러 차례 읽으면서, 벗과 이야기하면서도 벩송의 작품에서 중요단어로 “우여곡절(la sinuosité)”을 염두에 두었고, 우리 통일운동의 흐름도 이런 과정을 겪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일을 예측할 수도 예언할 수도 없다는 벨송의 어느 대담의 이야기에 비추어서, 벗과 이야기하면서 “다음에 있어야 할 것보다 다음에 있을 수 있는 것(당위가 아니라 미래로서)”을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형과 형님의 이야기를 앞에다 또는 옆에 두고서 둘의 사유를 거쳐서 다음을 생각하는 방식, 즉 벩송의 용어로서 “다음측정(recoupement)”을 염두에 두었다. 선생님의 말씀을 화두로 삼아서, 형님과 형, 그 다음으로 벗과 나의 방향을 조율하면서 설정하려 노력했었다. 선현들이 자신의 작업이 모자라거나 부족하면 아둔하고 게으르다고 변명하듯이, 공부가 덜되어서인지 아직도 정리된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다. 어쩌면 다른 외국어들을 버리고 프랑스어로서만 새로운 사유, 새로운 작동을 찾아 익히려했지만, 그것으로는 우리 삶의 현실과 방향을 제대로 보기가 쉽지 않았다. 선생님도 형도 벗도 우리 곁을 떠났다. 형님은 멀리 있어 거의 2년간 볼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기쁨의 철학의 출간 덕분에 고민하는 문제거리를 제기할 기회가 왔다. 그런데 뭘 물어야 하지? ‘이뭣꼬’에서 ‘뭣’으로 시작해야 하는가? 단위, 형이상학, 대상, 용어, 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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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별강연에서 선생님은 서양철학에서 시간과 공간을 동시에 다룬 철학자로서 플라톤, 그리고 공간을 다루는 사유를 한 아리스토텔레스, 시간을 통해서 다루는 벩송, 이 세 가지 철학 이외 다른 철학이 없다고 말씀하였다. 이런 사유 방식이 플라톤의 원전을 평생 독해하시면서 어떻게 나올 수 있었는가에 대해 죽 궁금하였다.
서양 철학사들을 읽어보면 신화에서 벗어나는 시기가 철학사의 시초라고 하며, 이오니아지방의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이에 더하여 헤라클레이토스로부터 출발한다고 한다. 그런데 아테네에 오면, 지중해 세계의 중심 또는 전쟁으로 제국의 맹주가 되면서 각 도시국가들의 지식인들이 모여들었다. 이런 과정에서 진솔한 물음 제기로서 “이뭣꼬”를 제기한 소크라테스가 있었고, 그의 제자 플라톤은 전승 방식대로 대화편들을 쓰면서 인식론에서든 발생론에서든 이중적 사유를 했다고 전해진다. 많은 철학사가들이 이오니아의 자연 탐구와 엘레아의 존재 사유 방식이 아테네에 들어와서, 두 학문 사이의 차이와 통합의 방식을 찾으려 하며, 인간 중심 또는 인간의 사유 중심으로 옮겨왔다고 했다.
그 인간이 삶의 터전 속에서 자연과, 폴리스라는 도시국가 속에서 제도, 이 둘 사이에 생각하는 기술(테크네)의 차이를 만들었다고들 했다. 하나는 자연의 생성론이고 다른 하나는 사유의 존재론이라 하며, 이를 체계화하는 방식에서 나중에 우주발생론과 우주형상론으로 구별하기도 했다. 플라톤은 아테네의 이 뭣꼬의 문제거리를 인간에게서 영혼 또는 지적 능력을 문제 삼아서, 인간 인격의 훌륭함의 크기(질적 크기)와 물체들의 크기(양적 크기)의 비교에서 크기를 정의(한정)하는 방식의 차이를 보았다고 하기도 한다. 그 인간의 훌륭함 또는 지식의 정의를 폴리스라는 제도 안에서 구해내려고 하였다가, 인간이 자연 또는 세계(코스모스) 안에서 지위 또는 역량으로부터 구해내야 한다고 보았다고도 한다. 또한 제도 안에서 위계와 지식이라는 측면으로부터, 자연 안에서 층위와 이법의 국면들 사이에서 차이를 보았다고들 한다. 이런 이법과 지식의 차이를 아낙사고라스와 파르메니데스 사이에서 소크라테스가 구별하고자 한 것이라 하고, 근대 이후에는 영혼에 비추어서 사유 대상의 자료(le donné)와 사유 작동의 자료(la donnée) 사이의 차이로 구분하기도 한다.
파르메니데스편에서 이데아와 이데아에 닮은 것 사이의 구별을 기준을 찾기 때문에 제3인간의 논변이 있다고 하지만, 선생님의 강의에서는 한편 이데아가 코라 위에 모습을 그리는 방식이 있고, 다른 한편 플라노메네 아이티아가 아이티아인 한에서 모습을 만들 수 있는 원인이라는 점에서 신아이스테시스에서 생성하는 모습도 있다는 방식으로 설명한 것 같다. 그런데 들뢰즈 식으로는 이데아를 본 뜬 시뮬라크르와 아페이론의 자기 생성과정의 형성물로서 시뮬라크르 사이에 차이는 달리 생각하는 차히일 것이다. 페라스와 아페이론 사이에 형성물인 시뮬라크르의 두 국면을 브룅슈비끄의 수학사에서는 달리 설명하고 있었다. 한편 이데아의 선전제를 제외하고, 삶의 과정에서 필요와 편리를 위해 인간이 유추와 추리를 동원해서 만든 단위로서 수와 원자가 있다고 한다. 다른 한편 인간의 삶을 투영하여 하늘의 뚜껑과 지상 사이의 동심원들에 의해 정해진 원주들 상에서 점(날짜, 책력, 정의된 점이 아니란 것)과 음악에서 현의 길이들 사이에서 정해지지 않는 길이들 각각에서 소리 나는 점(음, 음정)의 단위도 있다고 한다. 이 두 종류들의 단위를 추리해 보건데, 논리적으로 언어 항목에 의한 추론이 형성되기 이전에 이미, 두 갈래에서 각각은 두 갈래로 나누어지는 단위들이 있었다고 추정해왔다고 한다. 추정이란 체계적인 문헌이 없다는 것이지, 그 단편적인 자료들에 대한 논의는 기원전 1540년의 린트 파피루스에서도 제시되었다고 한다. 그리스 아테네 수론보다 천년을 앞선다.
이런 수학사 관점에서 보면, 선생님은 어떤 독해의 관점에서 이런 갈래 비슷한 이중적 관점으로 시간과 공간의 관점을 같이 놓고 플라톤이 다루었다고 했는지 아직도 매우 궁금하다. 브룅슈비끄는 단위로서 점의 다의성을 제기하면서, 플라톤의 점은 선분의 끝(양끝이 아니라)이라고 보았다는데, 파르메니데스편에서 그 한 점은 그 뒤에 보이지 않게 나열된 점들의 연속으로 이어져 있는 선분과 같이 보이는 한 전이라고 보았다고 한다. 점으로부터 도형을 나누기(분할, 분수가 아니다)를 한다는 것은, 이미 점 뒤에 있는 선과 더불어 물체를 나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더하여 1900년에 파리에서 철학자대회와 수학자대회를 동시에 개최했는데, 이 시기를 전후해서 점 또는 단위의 성립이 논리가 아니라, 오랜 경험에 의해 축적된 직관이라고 제시하였고, 제도의 체계 이전에 공동체에서, 협약 또는 규약의 단위들이 오랜 경험에 근거한 단위들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 단위가 공동체의 구성원들의 공유 또는 공감하는 직관에 근거한다고 하였다. 수학의 단위, 물체의 단위. 사회의 단위, 생물의 단위에도 이런 협약과 같은 직관(공감)을 통한 단위 설정이 먼저라고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 수학에서 논리주의와 형식주의가 득실거리던 시절에 벩송의 견해를 닮은 직관주의가 표면으로 올라온다고 한다.
이런 단위 설정의 논의를 벩송에 옮겨보면, 시론(DI, 1889)2장에서 “모든 수는 하나다”라는 하나는 단위도 아니고, 일자도 아니고, 다자를 생성할 기준인 이데아도 아닌 것 같았다. 그런 단위(l‘unité)가 추상화된 논리의 단위가 아닐까? 그런데 코로나 기간 중에 읽은 벩송 강의록(2017년 출판)을 읽으면서, 벩송은 이 문구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4권에서 가져온 것이라 했다. 지면이란 공간 위의 단위, 이 단위가 공간화된 단위라는 것이다. 이 단위가 하나라는 것, 일자과 다자의 일과도, 아마도 플라톤의 점과 같은 단위(원뿔의 꼭지일 경우 다곱성을 포함하는)와도 다를 것이다. 그런데 이런 단위를 통일성(l‘unité)과 같이 쓰이게 되면서, 나로서는 혼란에 빠져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었다. 그러면 단위(l‘unité)로서 하나(un), 또는 수에서 일(1), 또는 일자(l‘un), 또는 다곱성(1n) 또는 하나님(l‘Un) 등이 다르다는 것은 글자도 다르고 문장상에서도 문맥상으로도 다르지만, 언어에서 “하나”로 쓰인다니 난감했다. 학자들은 자신의 관점에 따라 용어의 선택이 있을 것이다. 점 뒤에 똑바로 줄 서있는 점들을 포함한다는 점이든, 위치와 크기가 없다는 점이든, 선분의 양 끝에 있는 점이든, 점은 수의 최초단위와 같다고 하든, 함수의 기호 체계의 하나라고 하든, 쓰는 이에 따라 문장과 문단속에서 파악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말씀하신 플라톤의 이중적 사유에서 구분되는 이상으로, 근대의 수학자들과 물리학자들이 수와 점을 천문(책력)과 현악기(음)의 점과 구분이라 보이지만, 선생님은 굳이 이 두 종류의 점들을 플라톤이 왜 구별하여 사유했다고 설명하려 했느냐는 것이 의문이다. 나로서, 플라톤은 사물과 운동을 정의하면서, 신체의 크기(두 전자)와 훌륭함의 크기(두 후자)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을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게다가 사회라는 공동체는 후자의 크기에서 조화(화음, 공감)가 더 중요한 데 비해, 전자에서는 제도 속에서 계층 사이의 비례와 조합에 의한 크기(재산, 조작능력)를 중요하게 다루는 것 같았다. 그래서 황제제나 교황제에서도 제도 사이에 차이들의 구별이 조화나 공감보다 더 드러나게 되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런 차이가 현대에서도 이어진다고 본다.
그런데 형님이 보기에 선생님이 말씀하신 두 가지 철학 하는 길이 플라톤에게서 같이 다루어진 것입니까? 또는 선생님이 두 길을 강조하다가 추론 상 두 길을 찾으신 것 같습니까? 내가 보기에 형님은 두 길 중에서 세계의 통일성으로 간 것 같은 데, 제가 맞게 읽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의 강의록에서나 형님의 저술에서는 위계와 단위(크기)의 설정이 논리적 귀결로서 ‘전체는 부분보다 크다’는 점을 전제로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아마도 형이 나에게 말하듯이 제가 공부를 덜해서 그렇다고 나무랄 것 같습니다. 형도 형님도 공부 더하라고 말씀하신다면, 단위 설정은 무엇으로부터 다시 다루어야 하겠습니까? 물리학 또는 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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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형이상학에 관해서도 달리 생각하게 된 것은 벩송의 어느 강의록에서 형이상학의 용어를 먼저 쓴 철학자는 편집자 안드로니코스(전60년경)가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 제자이자 생물학의 시조로 불리는 테오프라스토스(전371-287)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저술 제목은 남아있고 짜투리는 있는 모양인데 작품은 남아있지 않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는 천문의 수든 지상의 수든, 이것들이 논리적으로 다루는 것인데 비해, 경험적이고 실재적으로 다루어야 할 대상은 생물학으로 보았을 것 같습니다. 벩송의 저술들을 읽으면, 형이상학이란 용어의 이중성이 보이는데, 한편으로 이오니아식이 있고 다른 하나는 엘레아식이 있다는 같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자연의 배후에 신들(이야기)이 있다고 여기고 신들을 것을 배격하여 철학이 생겼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신들 이야기’ 속에서 벗어났다가 중세 1500년 동안에 자연의 배후의 조종자인 ‘신의 지배’로 인간이 세계에 포로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근대 철학에서 신이 세계(자연)를 창조했다고 하는 신학(유일자)에서 벗어나 인간이 생각하는 방식(l’art de penser)을 찾아 나섰다고들 합니다. 이를 추동한 이들은 브루노(우주의 무한 infini), 갈릴레이(물체 속에 충력, impeto = élan), 데카르트의 사유하는 정신(지성의 무한정성, indéfini)으로부터라고들 합디다. 그런데 선생님은 이를 뒷받침하는 꽁트에 이르러서 그것들을 벗어나는 시대가 왔다고 하셨는데, 꽁트의 조직화가 사회의 조직화인지 생명체의 유기체화인지를 구별하는 것도 그것들을 설명하는 이들의 문장 속에서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자연의 배후”를 형이상학이라 하면서, 신을 개입시키거나 근대에 와서 사유방식을 전개하든지, 자연의 자치성과 자율성을 부인하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프랑스혁명의 전조로서 “빛들 세기”에서는. 세계를 빛으로부터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보면서, 빛은 신의 것이 아니라 자연의 것이라고 여기고, 자연의 보여주는(드러내는) 방식에서 세계와 의식 활동을 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관점에서는 백과전서파와 루소가, 그리고 생물학에서도 뷔퐁이 사유의 길을 열어갔다고 하는데, 신의 빛(말씀, 논리, 생명)으로 여긴 사람들은 여전했으며, 백과전서파의 디드로와 신의 역량을 깨달은 오일러 사이의 농담같은 일화도 남아있듯이, 여전히 우주의 통일에서 완전성 또는 신의 의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로서는 한철연회원이란 이유로 후배들이 유물론과 관념론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구별하라고 하는 데 대해, 자연이 신 또는 지성의 설계에 속한다고 여기는 이들을 관념론(우파), 자연의 자기 생성과 발생이 있다고 여기는 쪽을 유물론(좌파)이라고 대답하곤 합니다. 자연은 우주든 지구상이든 자기 생성을 하며, 그 생성의 기원은 지구의 자전과 공전에 있다고 여깁니다. 플라톤이 자전과 공전을 잘 이해했는지는 모르지만, 삶을 하늘의 운동(영원)에 투사하였다가 그 투사의 대립으로써 지상에 다시 투사되어, 하늘 운행이 지상의 이동(시간)으로 마치 해시계처럼 보았을 것 같습니다. 영원(운동)에서 하늘의 점을, 시간(정지)에서 땅의 점을 구별하려 했다고 여기는데, 이는 플라톤의 사유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 사이를 대비하여 설명하는 수학사를 번역하면서 느낀 것입니다.
형이상학이란 이름이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여기는 것은 벩송이 자주 말하듯이 네오콜라주의적 해석이라고 하면서, 운동(하늘)에서 정지(땅)로 연대(連帶)하여 파악하는 것을 정지(수, 원자; 톧)에서 운동(파동, 음; 결)을 추론하였던 것이 철학사 2500년을 전도된 사고라고 하고, 착각이라 하였습니다. 들뢰즈는 플라톤의 사유를 플라톤주의 뒤바꾸어 놓았기에 전복의 사유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소크라테스 제자들의 한 부류인 퀴니코스-스토아 사유를 설명하면서 플라톤주의 전복을 말합니다. 이런 전복의 사유는, 신학의 신부를 대신하여 정신분석가로서 인민에게 고행성사를 듣는 방식은 의식을 구순단계로부터 다루는 것에 반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들뢰즈와 과타리는 이런 의식에 앞서 숨쉬기, 소리내기, 먹거리 등등과 삶을 함께하는 구강성이 구성(구축)의 의식에 앞선다고 합니다. 프로이트-라깡의 사고(존재론)를 전복하며, 과타리/들뢰즈는 정지론의 형식을 의식의 생성(발생론)으로 바꾸어 설명하려 하였던 같습니다. 그의 초기 작품이 의미의 논리(1969)인데, 이 속에서 ‘이뭣꼬’를 다루는 세 가지 방식, ‘이다-아니다’, ‘있다-하고 싶다’, 그리고 나로서는 해명이 잘 안되는 기호화 작업으로 무한에서 또는 미래에서도 ‘일 것이다, 곧 있어야 한다, 있을 것이다, 그럴 것이다’를 다룹니다. 이 마지막 ‘그럴 것이다’라는 가상세계가, 또는 허위일지 모르면서도 또는 가상(허상) 이미지이면서도 현대 사회에서 대단한 힘을 발휘하는 것에 대해 저로서는 난감해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들에서 세상은 “주사위 놀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미 니체와 말라르메에게도 이런 이야기가 있었지만, 고대에 헤라클레이토스의 “아이온은 놀고 있는 아이이다, 말놀이를 하면서. 왕권은 아이의 것이다(αἰὼν παῖς ἐστι παίζων, πεσσεύων· παιδὸς ἡ βασιληίη.)”에서처럼, 아이들이 노는 것과 같은 놀이장(놀이터)이 세계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그래도 신들도 또는 신학도 없는 자연의 탐구가 먼저일 것 같은 데, 머리와 머리 속을 추리하는 지성(이성)의 신뢰가 믿을 만한지 의문입니다. 즉 형이상학의 진리를 갖는 자들과 ‘자연배후학’의 탐구하는 자들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전자에게 지적 보편 추구가 탐만치로 보이는데 비해, 후자에서 아직 인간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겸손한 탐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인간이 노력하여 조금씩 진보해 나가면서 세상을 밝혀줄 것인지, 또는 있어야 할 것이 있는 또는 있을 사회를 향해 가는지, 이를 위해 당파성을 갖추면서 공공의 또는 공통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즐거울지에 대해, 현 세태로보아, 의문이 듭니다. 게다가 사람들이 하도 많이 말하는 챗GPT에서 AI로 화제를 바꾼지 삼년 정도 지났는데, 벌써 AGI로 관심이 이동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식주의(食住衣)의 먹거리와 잠자리 걱정을 해야 하는 세상에서, ‘인간은 무엇인지’라는 질문에서 ‘인간은 자연 또는 세계 주체인가’라는 질문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여깁니다. 여기서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묻고 싶습니다.
아직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많습니다. 다시 정리하면서 다음에 가다듬어 내놓아야겠습니다. 즉 단위와 형이상학 이외에도, 동일성(동일성과 정체성)과 동등성, 이다(c’set)와 있다(il y a)와 중요하다(il s’agit de. 작동하다), 무한(infini)과 무한정(indefini)과 무한계(illimite)와 무규정성(indetermination), 선문답과 파라독사, 소통성(공감)과 통일성(단일성), 발산/수렴과 변증법, 화두(공)와 자연(색) 등으로 계속 물어 들어갈 것들이 있습니다.
(5:41, 59TMJ) (6:22, 59TMJJ) (6:37, 59UK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