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호산
해는 짧아지고 기온은 낮아지는 요즈음엔 장시간의 라이딩은 부담스럽다.
이번 자전거 여행지는 가까운 곳으로 익산과 완주의 경계에 있는 천호산(天壺山)이다.
익산은 들판이 많아 산이 별로 없다. 그래서 이름난 계곡이 없다. 자주 가는 산이라야 미륵산, 배산, 용화산, 함라산 등이다. 천호산(501.3m)은 미륵산(429.4m)보다 몇십미터 더 높다.
천호산은 하늘 천(天), 병호(壺)를 써서 ‘속이 텅 빈 산’이라는 뜻이다. 완주군 비봉면 사람들은 예로부터 이 산을 ‘성주산’이라고 불렀으며, 맞은편의 익산시 여산면 사람들은 산꼭대기에 축성 연대 미상인 옛 성터가 남아 있어 ‘성태봉’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산에 이름을 붙여주고, 불러주고 기억하는 것은 사람의 일이기에 하나의 산에 여러 개의 이름이 공존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라이딩 경로 : 외사마을 경로당 – 천호주유소-학동저수지-문드러미재-천호성지-741국도-놋짐재-천호산 정상-태성리 태백이산-여산휴게소-외사마을
외사마을 경로당을 출발하여 문드러미재를 넘어가고 있다.
가람 이병기 선생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출발한지 1시간여 만에 천호성지에 도착했다.
천주교 박해
천주교 탄압의 시작은 신해박해(1791) 때부터이다. 전북 진산(현 충남 금산면)에 살던 윤지충과 권상연이 제사 금지라는 종교적 가르침을 따르고자 집 안에 있던 신주를 불살랐다. 윤지충은 모친상을 치를 때에 전통적인 유교식 장례를 치르지 않고 조문도 받지 않고 로마 가톨릭 예식으로 상을 치르면서 국가적 문제가 됐다. 윤지충과 권상연은 체포됐고 전주 남문 밖(현 전동성당 자리)에서 참수됐다. 박해의 시작이었다. 윤지충은 정약용과 외사촌간이며, 윤지충과 권상연은 고종사촌간이다.
천호성지(天呼聖址)
조선후기 천주교 신자들은 참혹한 박해를 피해 깊은 산 속으로 숨어들었다. 잡히면 신앙을 포기하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사람이 살지 않는 산속으로 들어가 신자들이 형성한 마을을 교우촌이라 하고 그들이 만든 사제(신부)가 없는 성당을 공소라고 한다.
기해박해(1839)를 전후하여 주로 충청도 일대의 신자들이 천호산 일대로 모여들어 교우촌을 형성한 것이 천호공소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에서도 이곳을 산세가 험해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라고 기록되어있다. 호미로 한 번만 긁기만 해도 돌무더기일 정도로 척박한 땅이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날로 심화하는 박해의 칼끝을 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수많은 신자가 가까운 여산 관아로 끌려가 갖은 고통을 받으며 처형당하게 된다. 원래 천호성지 주변의 산은 고흥 유씨 문중의 사유지로서 조선조때에 하사 받은 사패지지였다. 그러던 중 이 땅의 일부를 사들여 생활 터전을 마련하게 되었고 순교자들의 묘소들을 보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천호성지는 병인박해(1866) 때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한 여섯 성인 중 4명과 같은 해 여산에서 순교한 열 명의 무명 순교자들이 묻혀 있다.
위아래로 넓게 형성된 성지에는 실로암 연못, 사제관, 피정의 집, 봉안경당, 순례자의 길, 성인묘역 등이 들어서 있다.
천호성지는 나바위성당까지 이어지는 아름다운 순례길 3코스(24.1㎞)의 출발지이기도 하다.
성지순례객이어도 좋고 아니더라도 좋다. 어느 계절이든 이곳에 와서 걸으며 사색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다. 결국 여행이란 건 생각과 편견을 깨는 과정이니까.
그때 사람들은 왜 그렇게 험악한 시절을 살았을까?
임도 삼거리의 단풍 잎이 아직도 유지하고 있네요.
놋짐재
공소를 사목하는 사제를 따라 동행하던 복사들이 미사짐을 인계인수 하던 곳을 놋짐재라 한다. 이곳은 산수골 복사와 다리실 공소 복사가 인계인수 하던 곳. 놋이라는 의미를 잘 모르겠다.
가상칠언은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채 죽기 전에 남긴 일곱 가지의 말씀이다.
제1언: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루가23,34)
제2언 :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루카23,43)
제3언 :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이시다.(요한19,26-27)
제4언 :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태27,46)
제5언 : 목 마르다! (요한 19,28)
제6언 : 이제 다 이루었다 (요한19,30)
제7언 :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루카23,46)
정상으로
놋짐재에서 휴식을 취한 후 천호산 정상으로 길을 재촉한다.
이정표에는 정상까지 350m이고 예상 소요 시간 30분 정도라고 표기되어 있다.
조금만 힘을 내면 정상에 오른다는 생각에 순진하게도 철석같이 믿고 말았다.
초입부엔 뚜렷이 구분되는 등산로를 따라 별반 곤란 없이 오를 수 있었다.
천호산은 호리병 같은 산이다.
정상부로 다가갈수록 몹시 가파른 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수북이 쌓인 낙엽에 발은 미끄러졌고 급기야 등산로를 삼켜버렸다. 진퇴양난의 상황에 길을 찾느라 한동안 알바를 해야 했다.
급경사도 한풀 꺾인 완만한 내리막 자락 끝에 정상을 목전에 두고 안부에 쉼터가 있었다.
힘들게 올라오느라 흘린 땀도 식힐 겸 잠시 쉬어갑니다.
정상은 평평한 공간에 헬기가 이착륙할 수 있도록 조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잡목과 잡초가 무성하여 정상 주변을 관망하는 데 방해가 되었다.
만두라면
특별 요리인 만두라면을 먹기 전에 식욕을 돋우기 위해 대봉시 곶감을 안주로 칡 주 한 잔을 마셨다. 이런 걸 고상하게 애피타이저라고 하나요. 곧이어 맛있게 끓여진 만두라면과 김장김치의 조합은 뜨거우면서 시원한 사각거림의 식감은 올라오느라 힘들었던 고행을 한 방에 날려버렸다. 역시 추위엔 뜨거운 국물만 한 게 없죠.
라이딩 막바지에 만난 비
내리막길에서 한두 방울 떨어지는 빗방울은 점점 빗줄기가 되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 빗속을 그냥 갈까요? 아니다 싶었다.
마침 문이 없는 농가 창고에서 비를 피할 수 있었다.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낙엽이 덮힌 등로가 불분명하고, 분명한 등로는 알바로 가는 지름길이라서 ㅠ.ㅠ
급경사인데 낙옆까지 수북하니 오르기힘든 길을 ㅋㅋ
잠깐이지만 겨울비까지 맞았으니 여러가지를 경험하는 라이딩입니다.
나무끝에 매달린 맛있어 보이는 홍시를 먹지 못한 아쉬움은 다음 기회에 해소해야 겠습니다 ~
수고들 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경치좋은곳에서 커피와 다과도 즐기고
정상에서 맛보는 만두라면 너무 맛있었습니다.
부스럭거리는 낙엽을 밟고 다운힐 또한 일품 이었네요. 모두다 감사드립니다 ^^
수고하셨습니다 ~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