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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양성교론 제13권
현양성교론_2. 섭정의품_9. 해석을 알아야 할 종류(2)
9.11. 들음
들음이란, 설법하는 법사가 바른 법요(法要)를 연설할 적에 듣는 이를 편안하게 있도록 하며, 공경하면서 뒤바뀜없이 그 법을 듣도록 함을 말한다.
【문】 무슨 까닭으로 편안하게 있도록 하는가?
【답】 혹 한 가지 원인으로부터 열 가지에 이르는 원인으로 말미 암아서이다.
한 가지 원인이란, 이른바 공경히 바른 법을 들음이니, 이익과 안락을 현재에 얻기 때문이다.
그 중에 혹 이익만 있고 안락이 없으며,
혹 안락만 있고 이익이 없는 따위의 네 구절이 있기도 하나니,
보살지(菩薩地)의 법수(法受) 중에서 말한 것과 같다.
두 가지 원인이란,
온갖 법을 잘 건립하기 때문에 과실을 떠났기 때문이며,
대의(大義)를 갖추었기 때문이며,
또 연설하는 이와 듣는 이가 속히 사문과(沙門果) 얻기를 위한 때문이다.
만일 그렇지 않는다면, 설법하는 이들은 한갖 자기가 할 일을 못하고 헛되이 말과 이론만을 전개할 뿐이 되며,
법을 듣는 이들로 부질없이 스스로 피로할 뿐 증득하는 소득이 없게 될 것이다.
세 가지 원인이란,
바른 법이야말로 능히 나쁜 갈래를 버리도록 하기 때문이며,
좋은 갈래를 얻도록 하기 때문이며,
속히 열반의 원인을 능히 이끌어 포섭하기 때문이니
그와 같은 세 가지 사실로서 공경히 들으면 비로소 증득하게 된다.
네 가지 원인이란,
첫째는 공경히 들을 때에 능히 경(經) 따위의 법을 잘 요달함이요,
둘째는 그와 같은 바른 법은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온갖 불선(不善)을 버리고 온갖 선(善)을 받아 들이게 하나니,
만일 잘 듣는 이는 곧 능히 부지런하게―악을―버리기도 하고―선을―받아 들이기도 함이요,
셋째는 버리고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악의 원인으로 얻어질 다음의 괴로움을 버리게 됨이요,
넷째는 그 선을 받아 들이고 악을 버리는 원인으로 말미암아 속히 적멸(寂滅)을 증득함이다.
다섯 가지 원인은 바가범께서 바른 법은 차서가 있고 해탈함이 있고 의지해 나아감이 있고 용맹함이 있고 신변(神變)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와 같은 다섯 가지를 만일 널리 분별하자면 섭이문분(攝異門分)에서와 같다.
또 다섯 가지 원인이 있어 바른 법을 듣다니, 말하자면,
「나는 당연히 듣지 못한 것을 들어야 겠다. 나는 당연히 듣고서 연구해야겠다. 나는 당연히 모든 소견을 조복해야겠다. 나는 당연히 깊은 뜻과 구절에 대하여 지혜로써 통달해야겠다」고 함이다.
부처님ㆍ바가범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다섯 가지 원인은 들음ㆍ생각함ㆍ닦음인 세 가지 미묘한 지혜의 마지막 방편(方便)을 밝힘이니,
처음 두 가지 원인은 들음의 지혜를 밝힌 것이요,
중간의 두 가지 원인은 생각함의 지혜를 밝힌 것이요,
맨 뒤의 한 가지 원인은 닦음의 지혜를 밝힌 것이라」고 하셨다.
여섯 가지 원인이란,
첫째는 큰 스승의 은혜와 덕을 공경히 갚고자 함이니, 말하자면,
「부처님ㆍ세존께서 우리들을 위하시어 한량 없는 행하기 어려운 행과 괴로운 행을 행하시면서 이 법을 구해 얻으셨는데 어찌 지금에 그 법을 듣지 않겠느냐」라고 함이다.
둘째는 제 옳은 이익을 관찰함이니, 말하자면 부처님의 바른 법은 현재의 옳은 이익이 있음이다.
셋째는 필경에 온갖 번뇌를 멀리 떠남이다.
넷째는 바른 진리에 잘 순응함이다.
다섯째는 알아보기가 쉬운 것이며,
여섯째는 총명하고 슬기로운 이들이 안으로 증득한 것으로 알 바이다.
일곱 가지 원인이란,
일곱 가지 바른 법을 말함인데 경에서,
「나는 마땅히 일곱 가지 바른 법을 닦고 익힐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음이니,
말하자면 법을 알며, 의(義)를 알며, 내지 보특가라(補特伽羅)의 높고 낮음을 아는 것이 그것이다.
여덟 가지 원인이란,
첫째는 부처님 법은 얻기가 쉽나니, 내지 전타라(旃茶羅)들까지를 위하여 열어 보여 주기 때문이요,
둘째는 닦아 배우기가 쉽나니, 다니거나 서거나 앉거나 누울 적에도 모두 익힐 수 있기 때문이요,
셋째는 옳은 이익을 이끌어 냄이니, 세간(世間)의 결과와 출세간(出世間)의 결과를 능히 이끌어 내기 때문이요,
넷째는 처음도 좋음이요,
다섯째는 중간도 좋음이요,
여섯째는 끝도 좋음이요,
일곱째는 현재의 즐거운 과보를 얻음이요,
여덟째는 후세의 즐거운 과보를 이끌어 냄이다.
아홉 가지 원인이란,
아홉 가지 핍박에 대한 일을 능히 벗어나기 때문이니
첫째는 나고 죽음의 큰 감옥을 능히 벗어나기 때문이요,
둘째는 탐냄 따위의 견고한 속박을 영원히 끊기 때문이요,
셋째는 일곱 가지 큰 가난의 근본을 쳐 부수고 일곱 가지 큰 재부(財富)를 건립하기 때문이요,
넷째는 착한 행(行)을 닦고 바른 법을 듣고서 모든 기근(飢饉)을 벗어나고 모든 저 풍족한 것을 건립하기 때문이요,
다섯째는 무명(無明)의 어둠을 없애고 지혜 밝음을 일으키기 때문이요,
여섯째는 4폭류(暴流)를 건너서 열반의 언덕에 오르기 때문이요,
일곱째는 번뇌의 온갖 속병을 다스리기 때문이요,
여덟째는 온갖 탐애(貪愛)의 그물을 해탈하기 때문이요,
아홉째는 끝없이 넓은 벌판과 밀림을 헤매는 잡염(雜染)의 행(行)을 능히 벗어나기 때문이니 온갖 감옥 중에는 나고 죽음의 감옥이 가장 제일이니 그러므로 맨 처음에 말한 것이다.
열 가지 원인이란,
첫째는 여래의 법을 공경히 듣고서 생각하고 간택하는 힘을 얻음이니,
그 법과 의(義)의 이익을 잘 받아 들음으로 말미암아 법답게 재물을 구하고,
옳지 않은 법으로 구하지 아니하며,
비록 재물을 수용하더라도 그 허물을 깊이 관찰하며,
둘째는 벗어날 줄을 잘 알음이니
이를테면 재보(財寶)를 잃게 되더라도 근심함이 없고 슬퍼함이 없고,
또한 한탄하거나 원망함이 없으며,
내지 널리 말하자면 권속이 떠나거나 죽더라도 몹시 비탄하지 아니하며,
만일 중병을 얻더라도 또한 근심 하거나 괴로워하지 않는다.
셋째는 모든 애욕에는 허물이 많은 것을 깊이 관찰하며,
벗어남에는 가장 수승한 공덕이 있음을 관찰하고,
집을 떠나서 도에 들어가 침구 따위의 모든 탐착(貪着)을 떠나며,
나아가서는 온갖 미묘한 선정을 얻으며,
넷째는 공경하며 뒤바뀜 없이 바른 법을 듣고서, 광대하고 매우 깊은 서로 비슷함과 매우 깊은 온갖 연기법(緣起法)에 능히 순응하여 증득하고 이해하며,
또 광대한 선근(善根)과 해탈 환희를 능히 이끌어 내나니,
바가범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거룩한 제자들은 전일한 마음으로 귀를 기우려 바른 법을 듣고서 능히 5법(法)을 끊고 능히 7법(法)을 닦아 속히 원만하게 된다」고 함과 같다.
다섯째는 모든 거룩한 제자가 공경히 법을 듣고 온갖 집기(集起)하는 마음을 모두 전환하여 없애게 됨이요,
여섯째는 바른 법을 이해하고서 티끌과 때[垢]를 멀리 떠나 모든 법에 바른 법눈이 생김이요,
일곱째는 능히 예류과(預流果)를 증득하여 가장 수승한 자량(資粮)을 잘 이끌어 포섭하며, 나아가서는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하여 아라한과의 가장 수승한 자량을 능히 이끌어 포섭함이요,
여덟째는 능히 독각(獨覺)의 자량을 잘 이끌어 포섭함하며,
아홉째는 능히 위없는 정등보리(正等菩提)의 자량을 잘 이끌어 포섭함이요,
열째는 온갖 세간(世間)ㆍ출세간(出世間)의 정려(靜慮)ㆍ등지(等持)ㆍ등지(等地)ㆍ등정(等定)을 이끌어 냄이다.
9.12. 찬불의 약광
찬불(讚佛)의 약광(略廣)이란, 법을 연설하는 이들이 바른 법을 연설할 적에 응당 먼저 부처님을 찬양해야 한다.
찬양함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약(略=간략함)과 광(廣=광범함)을 말한다.
약(略)이란,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미묘한 빛깔이요,
둘째는 고용함이요,
셋째는 수승한 지혜요,
넷째는 바른 행[正行]이요,
다섯째는 위덕(威德)이다.
미묘한 빛깔이란, 설흔 두 가지 대장부 형상과 80종류인 몸에 딸린 좋은 것[隨形好]들이다.
고요함이란, 모든 감관 따위를 잘 수호하며, 능히 번뇌의 습기(習氣)를 영원히 제거함을 말한다.
수승한 지혜란,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세상 법과 세상 법 아닌 것에 걸림이 없는 것을 말한다.
바른 행[正行]이란, 자기와 남들을 이롭게 하며 즐겁게 하는 바른 행이 원만함을 말한다.
위덕(威德)이란,
이른바 여래께서 신통(神通)에 유희(遊戱)하심을 의미한다.
여기에 여래를 간략하게 찬양하는 여섯 가지가 있으니,
덕이 원만하시기 때문이며,
때와 더러움을 떠났기 때문이며,
혼탁함과 더러움이 없기 때문이며,
그와 견줄 이가 없기 때문이며,
오직 중생을 이롭게 함으로 업을 삼기 때문이며,
이 업용(業用)에 자재로움을 얻으셨기 때문이니,
이를 널리 분별하면 섭결택분(攝決擇分)에서와 같다.
광(廣)이란,
여래의 그지 없는 공덕을 널리 찬양함을 말함이니,
「이 바가범(婆伽梵)의 그지 없는 명칭은 덕이 한량없기 때문이며,
능히 광명을 베풀어 지혜의 밝음을 발하기 때문이며,
능히 암흑을 제거하여 온갖 무지(無智)의 어둠을 영원히 없애기 때문이며,
밝은 눈을 성취하여 세 눈[三眼]을 갖추었기 때문이며,
승의체(勝義諦)를 보아서 비할 데 없는 거룩한 온갖 진리를 통달하였기 때문이며,
금계(禁戒)를 성취하여 청정한 시라(尸羅)를 구족하고 증상(增上)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과 같다.
또 말하기를,
「바가범은 사람 중에서도 제일 높은 이이며,
조어(調御) 중에서도 가장 수승하며,
사문중(沙門衆)에서도 가장 수승하고,
아름다움이어서 온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보배라」고 한다.
또 말하기를,
「이 바가범은 모든 이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이이며,
중생들을 슬피 여기시는 이이며,
옳은 일하기를 좋아하시는 이이며,
모든 이들을 이롭게 하기를 원하시는 이이며,
현재를 슬퍼하시는 이라」고 함이다.
또 말하기를,
「이 바가범은 온갖 증득하지 못했던 이치를 능히 증득하셨나니,
거룩한 8정도(正道)를 먼저 증득하셨기 때문이며,
자연의 도리를 증득하셨기 때문이며,
일찍이 성립하지 못했던 거룩한 범행(梵行)을 성립하셨기 때문이라」고 함이다.
또 말하기를,
「이 바가범은 거룩한 도를 아시는 이이며,
거룩한 도를 나타내시는 이이며,
거룩한 도를 연설하는 이이며,
거룩한 도로 지도하시는 이라」고 함이다.
또 말하기를,
「이 바가범은 사람 중의 사자(師子)이시니 두려움을 떠나셨기 때문이며,
사람 중의 우왕(牛王)이시니 대중을 어거하시기 때문이며,
사람 중의 용왕이시니 잘못과 실수가 없기 때문이며,
사람 중의 어진 말[馬]이시니 마음이 조복되어 순하시기 때문이며,
사람 중에 가장 수승하시나니 집안이나 성바지나 얼굴 따위가 모든 사람을 뛰어났기 때문이며,
사람 중에 최상이시니 계행과 지혜가 가장 수승하시며 위덕이 여러 사람 보다 뛰어나셨기 때문이며,
사람 중에 연꽃이시니 세상의 8법(法)에 물들지 않으시기 때문이며,
비할 데 없음이시니 그와 더불어 비할 수가 없기 때문이며,
견줄 데 없는 견줌이시니 과거ㆍ미래ㆍ현재를 견주어 보아도 선서(善逝)와 견줄만한 이가 없기 때문이며,
제일이시니 온갖 중생에서 최상이시기 때문이며,
큰 신선이시니 최상의 시라(尸羅)이시기 때문이며,
온갖 범행을 오랫동안 쌓아 모으셨기 때문이며,
옛 적의 큰 신선이 증득한 바 법을 증득하셨기 때문이며,
가장 훌륭하신 어른이시니 온갖 천마(天魔)와 외도와 번뇌 따위를 조복하셨기 때문이며,
모니(牟尼)이시니 온갖 들뜸과 거만 따위가 없기 때문이며,
세 가지 고요함[三寂靜]과 함께 갖춰 서로 응하기 때문이며,
빼앗을 수 없음이니 온갖 중생과 온갖 외도의 이론으로 능히 빼앗을 수 없기 때문이며,
목욕하심이니 온갖 악을 떠났기 때문이며,
저 언덕[彼岸]에 도달하심이니 온갖 살가야(薩伽耶=身見)를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함이다.
또 「여래ㆍ응공(應供)ㆍ정등각(正等覺)ㆍ명행원만(明行圓滿)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장부(無上丈夫)ㆍ선조어사(善調御士)ㆍ천인사(天人師)ㆍ부처님ㆍ바가범이라」고 말한다.
또는 「백법(白法)이 원만하신 이 일체지자(一切智者)ㆍ바른 법의 주인ㆍ법을 잊어버림이 없는 이ㆍ중생 중에 견고하고 수승한 이 ㆍ온갖 괴로움과 즐거움이 그 마음을 속박하거나 동요하지 못하는 이라」고 말한다.
또 말하기를,
「잘 조복하는 이라」할 것이니, 감관을 잘 보호하여 선(善)이 만족하기 때문이요,
고요한 이라고 할 것이니, 시라(尸羅) 받은 것을 청정하게 하여 선이 만족하기 때문이요,
편안한 이라고 할 것이니, 이미 결정된 경지에 드셨기 때문이요,
열반하신 이라고 할 것이니, 보리(菩提)를 이미 증득하셨기 때문이요,
독 화살을 뺀 이라고 할 것이니, 온갖 유애(有愛)의 화살을 영원히 뽑아버렸기 때문이다.
또 「온갖 조복되지 않은 자를 조복하신 이이며, 온갖 고요하지 않음을 고요하게 하신이라」고 말할 것이니, 앞에서 이미 말한 것과 같다.
온갖 편안하지 못한 이를 편안하게 하시는 이라고 할 것이니, 모든 범부들을 능히 서도록 하여 예류(預流)와 일래과(一來果)를 잘 증득하게 하시기 때문이다.
또는 「항쇄ㆍ
족쇄가 없는 이ㆍ
불구덩이를 벗어난 이ㆍ
깊은 호를 벗어난 이ㆍ
욕망의 충족을 억제한 이ㆍ
움직이거나 요동하지 않는 이ㆍ
거만의 당기를 꺾어 버린 이ㆍ
크게 항상 머무시는 이라」고 말한다.
또는 「큰 아라한(阿羅漢)으로서 온갖 번뇌가 영원히 없어진 이라」고 말할 것이니,
앞에서 널리 말한 것과 같으며, 나아가서는 온갖 결박을 다 없앰이 그것이다.
또는 「5분(分)을 영원히 끊고 6분(分)을 성취한 이라」고 말하며,
그와 같이 광범하게 말하자면,
「순수한 선(善)만을 쌓아 모은 위없는 장부(丈夫)라」고 한다.
또는 「법을 잘 아는 이, 나아가서는 보특가라의 높고 낮음을 잘 아시는 이라」고 말한다.
또는 「위대한 사문(沙門)ㆍ
위대한 바라문ㆍ
때[垢]를 떠난 이ㆍ
때가 없는 이ㆍ
어진 의원ㆍ
장사하는 이의 우두머리ㆍ
훌륭하게 관찰하는 이ㆍ
세상의 의지가 되는 이ㆍ
중생의 어른이라」고 말한 것이니,
그 중에 때를 떠난 이라 함은 번뇌장(煩惱障)이 끊어졌기 때문이요,
때가 없는 이라 함은 소지장(所知障)이 끊어졌기 때문이며,
또 습기(習氣)를 영원히 뽑아버렸기 때문에, 때가 없는 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밤낮으로 여섯 차례나 세상을 관찰하기 때문에, 훌륭하게 관찰하는 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또는 「온갖 여러 가지 선(善)이 청정한 이ㆍ
대장부다운 형상과 수형호(隨形好)로 몸을 장엄한 이ㆍ
10력(力)을 갖추어서 위대한 힘이 되신 이ㆍ
4무외(四無畏)를 갖추어 두려움이 없는 이ㆍ
대비(大悲)를 성취하여 3념주(念住)에 편히 머무르는 이ㆍ
세 가지 불호(不護)와 잊어버림이 없는 법을 성취하여 온갖 번뇌의 습기를 영원히 없애고 온갖 미묘한 지혜를 구족한 이라」고 말한다.
그 중에 대비(大悲)라 함은, 오랫동안 쌓아 모은 것이니, 3대겁(大劫)ㆍ아승지야(阿僧祗耶)를 경과해야 비로소 증득하게 됨을 말한다.
이는 또 모든 중생을 상대로 함에 의하기 때문이며,
온갖 괴로움을 상대로 하는 것으로 대상을 삼기 때문이며,
온갖 중생의 모든 손해와 괴롭힘과 변하여 달라지는 일 따위가 능히 변동시키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며,
온갖 중생들에게 평등한 행(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9.13. 학승리
학승리(學勝利)란, 법을 연설하는 법사(法師)가 응당 이와 같이 경을 해석하는 법상(法相)을 세움에 의해야 함을 말함이니,
먼저는 응당 글과 뜻을 찾아 구해야 하며,
다음에는 응당 앞에서 말한바 다섯 가지로 알아야 남들을 위하여 바른 법을 말할 때에 도리를 해석해야 하며,
다음에는 응당 그와 같이 먼저 말했던 바 설법하는 모양에 자기를 정착시켜야 할 것이니, 법과 의(義)에 능함 따위인 열 가지 원만을 의미함이다.
그와 같이 정착시키고서 앞에서 말했던 차별 도리에 의하여 응당 말을 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다섯 대중[五衆]에 처해 있어서 전에 말했던,
「기쁘고 즐길만한 말 따위의 여덟 가지 말로써 대중을 위하여 설법하며,
또 남들을 편히 있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공경하고 뒤바뀜이 없이 듣도록 하며,
또 응당 위대하신 스승의 공덕을 먼저 칭찬해야 한다.
만일에 그와 같은 5분(分)을 갖추고서 바른 법을 연설하는 이는,
마치 5분(分)의 음악(音樂)과 같아서 능히 나와 남으로 하여금 큰 기쁨이 솟아나게 할 것이며,
또 능히 자타(自他)의 이익을 이끌어 낼 것이라고 알아야 한다.
또, 만일 능히 그와 같이 잘 닦고 배우는 이는 다섯 가지 수승한 이익을 갖추게 된다고 알아야 하나니,
첫째는 부처님의 말씀과 뜻을 이해하여 아는 것이 어렵지 않음이요,
둘째는 능히 원만하게 모든 법상(法相)을 잘 연설할 것이요,
셋째는 능히 자타가 계속해서 크게 기뻐함을 일으켜 낼 것이요,
넷째는 잘 해탈되어 천상과 인간에서 광대한 명망이 있게 될 것이요,
다섯째는 한량 없고 가장 수승한 공덕을 내게 될 것이다.
또 다음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주학승리경(住學勝利經)과 같나니, 그 경의 체성은 글과 뜻을 말한다.
글이란, 그 경에서 말씀하시기를,
「그대 비구들은 응당 편히 머물러서 수승한 이익을 닦고 배우라 [汝?必芻應當安住修學勝利]」고 한 그 중에,
열 두 글자와 네가지 명사와 하나의 구절이 있는 셈이다.
그와 같다 보니 공 명신(名身)ㆍ구신(句身)ㆍ자신(字身)을 포함하였다.
그 중의 말은, 바로 학처(學處)의 모양이므로 곧 모양[相]을 포섭함이요,
여래의 말씀은 본래 비구가 찬하여 묻는 것을 위하심이니, 곧 근기의 청함[機請]을 포섭함이요,
여래께서 말쓰하신 바 말소리는 곧 말을 포섭한 것이니, 그러므로 이 경의 한 구절에 여섯 글을 갖추어 포함하였다.
그리고 「그와 같은 지혜가 우두머리가 된다」는 따위의 모든 구절은 모양을 따름[隨相]이라고 알아야 한다.
또 다음으로 뜻이란, 지(地)의 뜻 중에 다만 성문지의(聲聞地義)를, 말함이며, 혹은 5지(地)를 갖추었다.
경에서 「학승리(學勝利)」라고 말한 것은 바로 자량지(資糧地)이요,
「지혜가 우두머리가 된다」는 것은 바로 방편지(方便地)이요,
「해탈의 견고한 생각이 증상(增上)한다」함은 바로 견지(見地)ㆍ수지(修地) 따위이니,
그를 지(地)의 뜻이라고 이름한다.
모양의 뜻[相義] 중에 「학승리(學勝利)」라 함은 바로 계(戒) 스스로의 모양이다.
「지혜가 우두머리가 된다는 것」에는 두 가지 모양을 갖추었으니,
지혜가 의지한 바 돕는 벗 따위에는 지혜의 자체만이 바로 자상[自相]이요,
지혜의 권속(眷屬)과 소연(所緣) 따위는 공통된 모양[共相]이라고 이름함이요,
「해탈의 견고함」이라 함은 온갖 번뇌의 거치르고 무거운 것을 영원히 떠나는 것이 바로 해탈의 자상(自相)이요,
「생각이 증상한다」함은 바로 생각의 자상(自相)이니,
그와 같은 따위를 바로 「모양의 뜻이라」고 이름한다.
작의(作意)의 뜻 중에서, 「학승리」라 함은 작의(作意)의 자체가 아니요, 작의가 처소(處所)를 건립함을 나타냄이다.
「지혜가 우두 머리가 된다」함은 요상(了相)ㆍ승해(勝解)의 두 가지 작의를 밝혀 보임이라고 알아야 한다.
「해탈의 견고한이라」함은, 섭락(攝樂)을 멀리 떠남과 방편(方便)과 구경방편(究竟方便)과 구경과(究竟果)의 네 가지 작의를 밝혀 보임이라고 알아야 한다.
「생각이 증상한다」함은, 그 관찰(觀察) 작의를 밝힘이라고 알아야 한다.
그와 같은 따위가 바로 작의의 뜻이니, 그 도리로 말미암아 지혜 따위 중에서 또한 모양 따름[隨相]의 분별이다.
처소의 뜻 중에서, 열반에 의하여 학처(學處)를 받아들이며 청정한 행에 의하여 그 해당하는대로 「가르쳐 지도함」따위를 일으키나니,
이른바 「가르쳐 지도함」과 내지 「기쁘게 위안함」아 그것이다.
알아야 할 것 중에, 또한 선(善) 따위의 행(行)이 있음에 통하나 그 가장 수승함에 따라 청정한 행만을 마한 것이며, 오직 집을 떠난 보특가라(補特伽羅)에만 의한 것이다.
또 하열한 근기 따위의 온갖 중생을 대하여 응당 기쁘게 위안하는 따위의 일들을 발기할 것이다.
말하자면, 과거ㆍ현재의 때에 의하여 기쁘게 위안함을 일으킴이니, 이미 증득하였기 때문이며 바로 증득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때에 의하여 나퉈 보임을 일으키고 미래의 때에 의하여 가르쳐 지도함과 칭찬하고 책려함을 일으키나니, 그를 처소의 뜻이라고 이름한다.
과환(過患)의 뜻 중에 대저 집을 떠난 이는 응당 딴 짓을 하지 아니할 것이며, 딴 재물을 응당 저축하지 아니해야 한다.
승리(勝利) 중에는 말하자면, 3학(學)을 닦아 만족함을 이루면 그를 칭찬할 만함이 된다.
다스릴 바 뜻[所治義] 중에서 다스릴 바 뜻이란,
시라(尸羅)에 범함과 지혜 없음과 번뇌와 기억을 상실함을 말함이요,
시라를 두호하는 따위는 곧 능히 다스리는 뜻[能治義]이 된다.
또 온갖 잡염(雜染)의 행은 모두 다스릴 바 뜻이 되고,
3학(學)의 행 따위는 바로 능히 다스리는 뜻이 된다.
간략한 뜻[略義] 중에, 「학승리(學勝利)에 머무름」과 내지 「생각이 증상(增上)함이 된다」는 것은, 곧 간략히 종(宗)을 서술함이니 간략한 뜻이 된다고 이름하며,
광범한 뜻[廣義] 중에, 「그를 광범하게 분별함이라」고 말한 것은, 응당 광범한 뜻이라 이름한 것으로서 그 이상 더 지나갈 것이 없음이라고 알아야 한다.
또 다음으로 해석 중의 법(法)이란, 12분교(分敎) 중의 계경(契經)과 기별(記別)에 해당하는 요의(了義)인 말을 의미한다.
등기(等起)란, 변행(遍行)으로 행하는 지혜와 힘의 자체를 열어 보이기 때문에 그 경을 발기한 것임을 말한다.
또는 부지런히 청정한 행을 닦아 익히는 이에게 법을 분명히 보여 주며,
세상의 재리를 애중히 여기는 이에게 보여 주어서 그를 믿고 이해하게 하여,
교화할 중생들로 하여금 학승리(學勝利) 따위에 의지하여 부지런히 닦고 익히어서 3학(學)의 수승한 이익을 속히 원만하게 얻도록 하기 때문이며,
또 네 가지 비구의 체성을 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경에서, 「학승리(學勝利)」라고 말씀하신 것은,
종성(種性)과 형상에 대한 비구의 체성을 멀리 떠나도록 함이며,
궤칙(軌則)과 위의(威儀)를 잘 두호한다고 거짓 나타내는 짓을 멀리 떠나도록 하기 때문이다.
또 「지혜가 우두머리가 된다」고 말한 것은, 허망한 명칭에 집착하는 비구의 체성을 멀리 떠나도록 함이다.
「해탈의 견고한 생각이 증상(增上)한다」함은, 그에게 진실한 행을 닦아 익히는 비구의 체성을 권함이다.
왜냐하면, 만일 명칭 따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만 명칭 따위 만을 위하여 자신을 가다듬을 뿐이므로 바른 법을 받아 듣더라도 지혜가 자라나지 않는다.
만일 앞에서 말한 허물을 멀리 떠나면 바로 진실한 행이라고 이름할 것이요, 바른 해탈을 좋아하고 증득함에 해당될 것이다.
또, 하열한 법에 만족을 취하는 이에게는 증가하는 법을 닦아 배우도록 권하며,
세상을 따르는 문장과 주술(呪術)을 구하는 것을 좋아하고 계율에 대하여 소홀히 여기는 이에게는 학승리(學勝利)를 말하며,
시라(尸羅)만을 지키고 학문을 버리는 이에게는 지혜가 우두머리가 된다고 말하며,
들음과 생각함만을 만족하게 여기는 이에게는 해탈의 견고함을 말하며,
계율, 지혜의 해탈에 대해서 뛰어난 체하는 생각을 두는 이에게는 생각함이 증상(增上)이라고 말하나니,
그와 같은 따위를 등기(等起)라고 이름한다.
의미[義]란, 전체적인 의미[總義] 중에서 알아야 할 것이니, 경에서는 바른 행[正行]과 바른 행의 결과[正行果]를 연설하셨다.
그와 같은 계(戒) 따위의 3학(學)을 학(學)의 분량이라고 이름한다.
경에서, 「그와 같이 머무른다」고 말씀하신 것은, 바른 방편의 행[正方便行]에 해당하는 네 가지 유가(瑜伽)를 나타낸 것이다.
또, 「그와 같이 3학(學)에 머무른다」고 말한 것은, 바른 행의 결과[正行果]를 나타낸 것이다. 그 중에 믿음과 의욕이 첫째가 되므로, 시라(尸羅)를 포섭하여 들이며 법을 들어 받을 때에 정근(正勤)의 힘으로 말미암아 지혜 따위를 닦아 익히되, 반드시 방편을 필요로 한다.
차별적인 의미[別義] 중에서 이른바 학(學)이란, 그 정진(精進)을 교법과 같이 행하여 익히거나 닦으므로 차별이라고 이름하나니, 몸과 말과 목숨이 청정하게 현행(現行)함이 바로 학(學)의 제 모양인데 계율ㆍ인욕(忍辱) 따위로 말미암아 바른 행을 현발(顯發)하기 때문에 학(學)이라고 이름한다.
또는, 고요하고 청량(淸凉)한 결과를 구하여 나아가 익히고 번뇌를 없애기 때문에 학(學)이라고 이름한다.
그와 같은 따위로 명칭과 말을 훈석(訓釋)함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나니, 모양이기 때문이며, 자체이기 때문이며, 업(業)이기 때문이며, 법이기 때문이며, 인과(因果)이기 때문이다.
의문(義門)의 차별(差別) 중에 먼저 자체차별(自體差別)인 학(學)을 분별함에 일곱 가지 종류의 시라(尸羅)를 밝혀 보였는데 혹 1백 50학처(學處)를 초과하기도 한다.
계(界) 차별이란, 욕심의 속박 중에는 별해탈율의(別解脫律儀)와 정려율의(靜慮律儀)만 있으며, 형상[色]의 속박에서와 무형(無色)의 속박에 있어서는 무루율의(無漏律儀)뿐이니, 그것은 바로 계박이 아니다.
시(時)차별이란, 과거 세상에서 이미 배웠으며, 미래 세상에 장차 배울 것이며, 현재 세상인 지금에 배우고 있음을 말한다.
위(位) 차별이란, 바른 법에 이미 들어간 보특가라(補特伽羅)을 말함이니,
학(學)을 성취하지 못한 이는 바로 하위(下位)요,
학(學)을 지금 성취하는 이는 바로 중위(中位)요,
학(學)을 이미 성취한 이는 바로 상위(上位)이다.
그리고 마음에 온갖 범행(梵行)을 힘써 닦는 것을 좋아 하지 아니하는 이는 바로 고위(苦位)이요,
마음에 온갖 범행을 힘써 닦는 것을 좋아하는 이는 바로 낙위(樂位)요,
온갖 범행을 마음대로 닦는 이는 바로 불고불락위(不苦不樂位)이니,
그는 착한 선위(善位)이요, 불선위(不善位)가 아니다.
만일 듣고 받아 들이는 이는 바로 문위(聞位)이요,
자세히 살피는 이는 바로 사위(思位)이요,
선정을 얻어 닦는 이는 바로 수위(修位)이다.
만일 증상심학(增上心學)과 증상혜학(增上慧學)을 증득하지 못한 이는 바로 증상계위(增上戒位)이,
만일 이미 증득한 이는 증상심혜위(增上心慧位)라고 이름하나니,
그와 같은 따위가 바로 위(位)의 차별이다.
보특가라(補特伽羅) 차별이란, 그 중에 집을 떠난 보특가라만을 의미함이니,
혹 둔한 근기이기도 하고,
혹 예리한 근기이기도 하며,
혹 탐등행(貪等行)이기도 하고,
혹 등분행(等分行)이기도 하고,
혹 박진행(薄塵行)이기도 하나,
그것은 오직 성문(聲聞)만을 의미하고 독각이나 보살을 의미한 것이 아니니,
저 독각은 각각 특별하게 깨닫기 때문이며,
보살들은 해탈이 견고하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여래께서 그들에게 「함께 머물러서 닦고 배우는 것」[空住修學]을 말씀하시지 아니하셨다.
또 다시 그 중에서 오직 반열반(盤涅槃)만을 연설하신 것은,
법을 위하는 이이며,
이미 바른 법에 들어간이이며,
장애가 없는 이이며,
속박을 갖춘 이이며,
소박을 갖추지 않은 이이며,
소박 없는 것 아닌 이인데,
그는 인간에 국한하고 천상에 한한 것이 아니니, 그를 보특가라 차별이라고 이름한다.
학(學)과 같아서 그와 같이 분별한다고 알아야 할 것이니, 승리(勝利)의 성질과 지혜가 우두머리인 성질과, 해탈의 견고한 성질과, 생각함이 증상하는 성질에서 그 해당하는 대로 다섯 가지 차별을 응당 널리 분별해야 한다.
그 중에 승리(勝利)란, 바로 공덕이 증가되고 원만해짐이니 ,그것을 차별이라고 이름한다.
경에서 말씀하신, 「10승리(勝利)를 관찰한다」고 함은 바로 그의 체성이요, 명칭이요, 「명칭을 해석함이라」함은, 그 법에 이익과 응당 칭찬할만한 것을 따라 포섭함이니 그러므로 승리라고 이름한다.
또, 그와 같은 법이 중생의 따라감을 따라 내기 때문에 승리라고 이름한 것이다.
또, 그와 칭찬을 따르기 때문에 승리라고 이름한 것이다.
의문(義門) 차별이란, 차별이 열 가지라고 알아야 하나니, 능히 승가(僧伽)를 포섭하여 승가로 하여금 정성을 갖게 한다고 내지 널리 말씀하였다.
경에서 말씀하시기를,
「비구란 바로 사문(沙門)으로서 집을 버린 것이요, 집에 있는 따위가 아니라」고 하셨으니, 그를 차별이라고 이름한다.
별해탈율의(別解脫律儀)를 구족한 중동분(衆同分)은 바로 비구의 체성이요,
「명칭을 해석함」이라 함은 빛깔과 형체 따위에 대하여 나쁜 갈래 따위에 가까움을 부지런히 수호함이다. 또는 무너지지 않는 공덕을 능히 포섭하여 이끌기 때문에 비구라고 이름한다.
의문(義門) 차별이란, 찰제리[刹帝利] 따위의 차별과 상등 종족과 하등(下等) 종족의 차별과 젊음ㆍ중년ㆍ늙음 따위의 차별이라고 알아야 한다.
경에서 말씀한, 「머무름」이란, 바로 때[時]에 맞추어 부지런히 닦고 익힘이니, 그를 차별이라 이름한다. 그 머무름 자체는 말한 바 학(學)을 떠나서는 별달리 법이 있지 않다.
명칭을 해석함이라 함은, 가지 가지 위의(威儀)로 말미암아 시간을 포섭하여 들임이니, 그러므로 머무름이라고 이름한다.
의문(義門) 차별이란, 위의(威儀)의 차별과 아침ㆍ한낮ㆍ석양의 차별과 밤ㆍ낮의 차별이라고 알아야 한다.
경에서 말씀하신, 「지혜」란, 바로 지(智)로 봄이니 분명한 현관(現觀)의 차별이라고 이름하며, 법상(法相)의 심소유법(心所有法)을 간택함이 체(體)가 된다.
명칭을 해석함이란, 간택함으로 체(體)라 하고 지(智)로 다스림이 아니기 때문에 지혜[慧]가 된다고 이름한다.
또, 각각 차별로 능히 그를 알기 때문에 지혜가 된다고 이름하며, 또 인식[識]으로 요별(了別)함을 능히 분명하게 알기 때문에 지혜라고 이름한 것이다.
의문(義門) 차별이란, 그 적응하는 대로 앞에서와 같이 분별한다.
경에서 말씀하신 「해탈」이란, 바로 영원히 끊음과, 이계(離繫)와, 청정과, 다 없앰과, 애욕을 떠남인, 그와 같은 따위를 차별이라고 이름하며, 거치르고 무거운 것들이 영영 제거되고 번뇌가 끊어짐이 체(體)가 된다.
명칭을 해석함이란, 자기 가지 탐냄 따위의 계박을 능히 벗어 버리기 때문에 해탈이라고 이름한다.
또, 다시 세존께서 가지 가지 모니(牟尼)를 위하여 연설하시니, 그것이 모니의 체성이 되기 때문에 해탈이라고 이름 것이다.
의문(義門) 차별이란,
시기를 기다리는 해탈[待時解脫]과 움직이지 않는 해탈[不動解脫]과,
견도(見道)에서 끊을 번뇌를 해탈함[見所斷煩惰解脫]과,
수도에서 끊을 번뇌를 해탈함[修所斷煩惱解脫]과,
욕심의 속박을 해탈함[欲?解脫]과,
형상의 속박을 해탈함[色?解脫]과,
무형의 속박을 해탈함[무색?解脫]을 말함이니,
그와 같은 따위를 앞의 차별과 같다고 알아야 한다.
경에서 「기억함」이란, 바로 잊어 버리지 않음이니 마음에 분명하게 기억하는 따위를 차별이 이름하며 심소유법(心所有法)이 체성이 된다.
명칭을 해석함이란, 온갖 법을 따라 기억하기 때문에 기억함이라고 이름한다.
또는, 경험한 일과 같이 생각하는 대로 마음에 분명하게 기억하기 때문에 기억함이라고 이름한다.
의문(義門) 차별이란, 부처님을 생각하며 법을 생각하는 등, 내지 널리 6념(念)을 말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또 념주(念住) 차별 따위를 그 적응하는 대로 응당 널리 말해야 한다.
또 마음의 힐난을 풀이함에 대해서 말하겠다.
【문】 학승리(學勝利)라는 뜻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답】 그 말은 증상계학(增上戒學)에서 수승한 공덕을 보고서 부지런히 닦고 익히는 머무름을 나타내고자 함이다.
【문】 지혜가 우두머리가 된다는 뜻은 무엇을 말한 것인가?
【답】 그 말은 모든 근(根) 중에서 혜근(慧根)이 제일임을 밝힘이다.
【문】 해탈이 견고하다는 뜻은 무엇을 말함인가?
【답】 그 말은 견도(見道)와 수도(修道)에서 끊을 번뇌가 영원히 끊어짐을 밝힘이다.
【문】 생각함이 증상(增上)이 된다는 뜻은 무엇을 말함인가?
【답】 그 말은 작고 하열하게 얻은 공덕에 대하여 만족함을 알지 않음을 나타내어 보임이다.
【문】 딴 경에서는 3학(學)의 순서를 세존께서 달리 말씀하셨거늘, 무슨 까닭으로 여기서는 증상계(增上戒)뒤에 곧 증상혜(增上慧)를 말했는가?
그리고 또, 증상심학(增上心學)의 수승한 이익[勝利]을 말하지 아니했는가?
【답】 여기에서는 들음ㆍ생각함ㆍ닦음 따위로 이루는 모든 지혜를 모두 포섭함을 말함이니, 후회함이 없는[無悔]따위로 말미암아 차례로 삼마지(三摩地)가 나오게 됨을 밝히고자 한 것이므로 그가 곧 증상심학(增上心學)을 밝혀 보인 것이다.
바가범께서 말씀하신,
「이 5근(根)에서 섭수(攝受)할 바를 가장 잘 섭수함이란, 이른바 혜근(慧根)이니, 모든 비구들이 그와 같이 수승한 혜근을 성취하기 때문에, 내지 능히 삼마지근(三摩地根)을 닦는다. 그러므로 혜근의 힘으로 말미암아, 내지 삼마지근을 모두 성취하게 된다」고 하셨고,
지금 이 경에서는 바가범께서,
「지혜가 바로 삼마지를 이끄는 원인이며, 또 능히 번뇌를 이끌어 끊음이라」고 밝혀 보이시니 증상혜학을 말씀하셨기 때문에 지혜와 함께 하는 증상심학(增上心學)까지 겸하여 말씀하신 것이라고 알아야 한다.
【문】 만약 그렇다면, 딴 경에서 「3학(學)을 닦고 익히여 원만한 데에 나아간다」고 말씀하시고, 무슨 까닭으로 「증상심학(增上心學)을 닦고 익히어 원만하게 된다」고는 말씀하지 아니했는가?
【답】 앞에서 말한 도리와 같다고 여기에서도 그렇게 알아야 한다.
【문】 무슨 까닭으로 여기서는 다만 학승리주(學勝利住)만 말씀하고 혜승리주(慧勝利住)와 해탈승리주(解脫勝利住)는 말씀하시지 아니했는가?
【답】 다만 하열한 승리(勝利)의 섭수함을 권한 것이나, 또한 교화할 중생으로 하여금 온갖 증상승리(增上勝利)를 섭수함이라고 알아야 한다.
또 중[僧] 따위의 열 가지 승리(勝利)를 포섭함은 분명하고 현저하여 들어가기가 쉽나니, 그러므로 다만 학승리주만을 말씀하신 것이다.
【문】 대저 해탈은 모든 법 중에서 가장 우두머리가 되거늘 어찌하여 혜상수주(慧上首住)만을 말씀하고 해탈상수주(解脫上首住)는 말씀하지 아니했는가?
【답】 하열한 중에서 오히려 교화할 중생으로 하여금 증상성(增上性)을 취하도록 함이나, 또한 교화할 바로 하여금 증상 법에서 증상을 취하여 삼도록 함이라고 알아야 한다.
또, 해탈에 대해서 차별을 밝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차별인가?
무상상수(無常上首)인 혜해탈(慧解脫)을 바라보매 가장 뛰어나게 항상 머무르고 견고한 진실함이 된 것을 말함이다.
【문】 어떠한 것을 학승리주(學勝利住)라고 이름하는가?
【답】 건립한 많은 학처(學處)에 따라서 십승리[十勝利]를 관찰하기 때문에 항상 시라(尸羅)를 지키고 굳게 시라를 지키어 항상 짓고 항상 일으킴이니, 그와 같은 것을 학승리에 머무름이라고 이름한다.
【문】 중[僧]을 섭수한다는 따위의 모든 구절은 무슨 뜻인가?
【답】 승가(僧伽)를 섭수한다는 것이 바로 총구(總句)가되고 그 밖은 곧 별구(別句)가 된다.
중으로 하여금 정성을 갖도록 한다는 것은 욕락을 누리는 것을 떠나도록 함이요, 중으로 하여금 안락하도록 한다는 것은 자신이 고행하는 것을 떠나도록 함이요,
믿지 않는 이로 하여금 믿도록 한다는 것은 바른 법에 들지 못한 이로 하여금 들어오도록 함이요,
이미 믿은 이를 증가하도록 한다 함은, 이미 바른 법에 들어온 이를 성숙되게 함이요,
조복 하기 어려운 이를 조복하도록 한다는 것은, 시라에 범한 자를 잘 몰아냄이요,
부끄러워하는 이로 하여금 편안히 머무르게 한다 함은, 계를 청정하게 지니는 이로 하여금 뉘우침과 괴로움이 없도록 하기 때문이다.
현법루(現法漏)를 막아 두호한다 함은, 번뇌의 속박을 잘 조복 하기 까닭이요,
후법루(後法漏)를 손해한다 함은, 삿된 소원으로 범행에 머무는 것을 그치기 때문이며,
의혹의 수면(隨眠)을 영원히 끊음에 순응하기 까닭이요,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범행에 오래 머무르고 더욱 더 증가되도록 함이요,
나아가서는 모든 천인(天人)을 위하여 바르고 착하게 보여 준다함은, 성교(聖敎)로 하여금 계속하고 끊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때문이다.
그와 같은 열 가지 승리(勝利)를 간추려 말하면, 세 가지 승리가 되고 세 가지 승리를 광범하게 열어 놓으면 열 가지가 된다.
세 가지란,
첫째는 중[僧]으로 하여금 염오(染汚)에 머무르지 않도록 함이요,
둘째는 중으로 하여금 안락함에 머무르도록 함이요,
셋째는 성교(聖敎)로 하여금 오랫 동안 따라 구르도록 함이다.
그 중에 일곱 가지 따라 보호[隨護]함으로 말미암아 염오에 머무르지 않음과 안락함에 머무름을 나타낸다.
일곱 가지에 따라 보호함이란,
첫째는 공경과 공양을 따라 보호함이요,
둘째는 스스로 고행함을 따라 보호함이요,
셋째는 온갖 거리[衆具]가 모자라고 작은 것을 따라 보호함이요,
넷째는 전전(展轉)하는 무리를 따라 보호함이요,
다섯째는 마음이 따라 변함을 따라 보호함이요,
여섯째는 번뇌의 속박을 따라 보호함이요,
일곱째는 삿된 원(願)을 따라 보호함이니 최후의 한 구절은 성교(聖敎)가 오랫동안 따라 구르는 것을 밝힘이다.
어떤 것을 항상 시라(尸羅)를 지킴이라고 이름하는가?
학처(學處)를 놓아버리지 않음을 말함이다.
어떤 것을 시라를 굳게 지킴이라고 이름하는가?
학처를 범하지 않음을 말함이다.
어떤 것을 항상 지음이라고 하는가?
학처를 구멍 내지 않음을 말함이다.
어떤 것을 항상 구르는 것이라 하는가?
시라에 구멍을 내며, 다시 도로 전환함을 말함이다.
어떤 것을 학처를 받아 배움이라고 하는가?
모든 학처를 갖추고 따라 배움을 말함이니, 그와 같은 수행자는 시라를 항상 지키고, 시라를 굳게 지키고, 바른 법을 듣고서는 혼자 고요한 곳에서 생각을 모아 생각하고 주량(籌量) 하고 관찰하나니, 증상심혜(增上心慧)를 발기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또, 그런 수행자는 들음ㆍ생각함ㆍ닦음에서 생긴 지혜에 의하여 능히 해탈을 증득하나니, 그 해탈성(解脫性)은 물러남이 아닌 법이기 때문에 견고함이라고 말하며, 출세지(出世智)의 결과이기 때문에 물러날 수가 없는 것이다.
또, 그런 수행자는 생각하는 힘으로 말미암아 자세히 스스로 관찰하되,
「나의 시라의 쌓임[蘊]이 원만함이 되는가? 나는 모든 법에 통달했는가? 나는 해탈을 잘 증득했는가」라고 하여,
그와 같이 기억하는 힘에 의지하기 때문에 학승리[學勝利]를 갖추고 으뜸의 지혜[上首慧]를 내고 견고한 해탈을 증득한다.
또 다시 그런 생각에 대략 세 가지가 있으니, 혹 설법함으로 인하며, 혹 교수함에 인하며, 혹 다시 지음과 짓지 않음을 관찰한다.
【문】 바가범께서 말씀하신 시라에서 많은 종류가 있나니, 오파색가(郵波索迦) 시라와, 비구 시라와, 오파바사(郵波婆娑) 시라와, 정려(靜慮) 시라와, 삼마발저(三摩鉢底) 시라와, 성애(聖愛) 시라인 그와 같은 따위인데, 지금 그 중에서 어떤 시라에 의하여 주학승리(住學勝利)를 말했는가?
【답】 비구 시라가 가장 수승하기 때문이다.
【문】 바가범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아서는 지혜에도 또한 많은 종류가 있나니,
이른바 들음에서 생긴 지혜ㆍ
닦음에서 생긴 지혜인데,
지금 그 중에서 어떤 지혜에 의하여 주혜상수(住慧上首)라고 말했는가?
【답】 3혜(慧)를 갖추 말했다.
【문】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해탈에도 많은 종류가 있나니,
이른바 세간(世間) 해탈ㆍ출세간(出世間) 해탈ㆍ유학(有學) 해탈ㆍ무학(無學) 해탈ㆍ가동(可動) 해탈ㆍ부동(不動) 해탈 등, 그와 같은 따위인데,
지금 그 중에서 어느 해탈에 의하여 해탈견주(解脫堅住)라고 말씀하셨는가?
【답】 저 출세 해탈과 부동해탈에 의한 것이다.
【문】 여래께서 말씀하신 생각[念]에도 역시 많은 종류가 있나니,
이른바 몸 따위 경계에 머무는 생각ㆍ
오래 동작 하고 오래 연설하는 따위에 딸린 생각ㆍ
독송(讀誦)하는 따위에 딸린 생각ㆍ
교수하는 따위에 딸린 생각ㆍ
해야 하고 하지 않아야 함에 딸린 생각,
염불(念佛) 따위에 따린 생각인데,
지금 그 중에서 어떤 생각에 의하여 념증상(念增上)이라고 말했는가?
【답】 수승한 것에 다라 논할 것이니 해야 하고 하지 않아야 함을 관찰함에 딸린 생각이라고 말해야 한다.
다시 다음 차제(次第) 중에서 말하자면,
먼저 비구시라주(比丘尸羅住)에 의지하고 다음에 바른 법을 받아들고 다음에 응당 진리와 같이 작의(作意)해야 하나니,
그와 같은 수행자는 청정하게 계율을 지님으로 말미암아 근심과 후회 따위가 없으므로 말미암아 차례로 바른 삼마지를 능히 내나니,
말하자면 방편에 해당되는 지혜를 이치대로 생각함으로 말미암아 증상심학(增上心學)을 성취하나니, 그를 원만(圓滿)함인 차제라고 이름하는데,
앞과 앞이 원인이 되어 뒤와 뒤가 원만해짐을 얻기 때문이다.
또, 주학승리(住學勝利)가 혜상수(慧上首)를 얻음이 되기 때문이며,
주혜상수(住慧上首)가 해탈견고(解脫堅固)를 증득함이 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주학리와 내지 해탈견고를 능히 얻게 되는가?
생각이 증상하는[念增上] 힘 때문이니, 그를 능히 이루는 차제[能成次第]라고 이름한다.
또 경에서, 「만일 그와 같이 3학(學)을 닦고 익힘에 머무른다면 속히 원만해짐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셨으니,
그를 또한 「능히 이루는 차제라고」이름한다.
해석의 차제[解釋次第]란, 경에서 말씀한 것과 같나니,
큰 스승이라 함은, 능히 성문(聲聞) 제자들에게 응당 해야 할 것과 응당 해서는 않될 일들을 잘 가르침을 말함이니, 그를 큰 스승이라고 이름한다.
또, 한량없는 중생을 능히 교화하여 괴로움의 적멸(寂滅)을 증득하게 하기 때문에 큰 스승이라고 이름한다.
또 사뙤고 더러운 외도(外道)를 꺾고 없애기 위하여 세상에 출현하였기 때문에 큰 스승이라고 이름한다.
성문(聲聞)이라 함은, 다른 이에게서 바른 법의 음성을 듣기 때문에 성문이라고 이름한다.
또, 다른 이들로 하여금 바른 법의 소리를 듣도록 하기 때문에 성문이라 이름한다.
【문】 다시 어떤 인연으로 성문만을 위하여 주학승리(住學勝利) 따위를 말씀하였는가?
【답】 성문 대중은 바로 바가범에게 따라 닦고 배우는 진실한 제자이기 때문이다.
법이라 함은, 이른바 연설하신 명신(名身)ㆍ구신(句身)ㆍ문신(文身)이 그것이다.
학처(學處)라 함은, 이른바 5법취사(法聚事)를 연설함이 그것이다.
불쌍히 여김을 성취함이라 함은, 기나긴 밤에 있는 중생들에게 대하여 항상 자(慈) 따위의 네 가지 무량[四無量]에 머무름이다.
슬퍼함[悲]을 성취함이라 함은 능히 중생의 많은 괴로움의 법을 뽑아 버리기 때문이다.
즐거움의 좋은 이익이라 함은, 능히 중생에게 한량 없는 낙법(樂法)을 주기 때문이다.
이익을 구한다 함은 중생으로 하여금 가지 가지 미묘한 선법(善法)을 섭수(攝受)하기 때문이다.
항상 슬퍼하고 불쌍히 여김이라 함은 능히 중생들의 가지 가지 모든 악의 법을 뽑아 버리기 때문이다.
또,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범행(梵行)에 오래 머무르도록 한다」 말함은, 찰제리[刹帝利] 따위의 큰 성바지에 의하여 말함이다.
더욱 증가한다 함은, 그러한 여러 중생 무리들이 다음 다음의 뭇 모임에 차츰 더 많아짐을 말함이다.
내지 온갖 하늘 사람과 인간 사람을 위한다 함은, 곧 그와 같이 더 불어나는 종류들 중에 세력이 있는 것을 말함이니, 이는 세존(世尊)의 위대한 자비로 널리 감싸주는 것이 1부분에만 한정된 것이 아님을 밝힘이다.
바르게 잘 열어 보여 준다 함은, 온갖 있는 그대로, 또는 온갖 있는 바 모든 법대로 모두 보여줌을 말한다.
바른 법을 연설한다 함은, 12분교(分敎)를 듣고 받아 들이며 연구하고 찾아 보며, 머무르고 읽고 외우며, 고요한 곳에서 생각함을 의미함이니, 그와 같은 경계를 바로 법이라고 이름한다.
이익이 된다 함은, 증상계(增上戒)에 의하여 말함이다.
안락이 된다 함은, 고난과 자재롭지 않은 행(行)에 의지하지 않음을 말한다.
이익과 안락이 된다 함은, 애욕을 떠난 이들의 증상심(增上心)과 증상혜(增上慧)의 행(行)을 말함이니,
이 선(善)을 행하기 때문에 이익이라 이름하고, 순조롭게 포섭하기 때문에 안락이라고 이름한다.
또는, 어떤 곳에서 세존이 두타[杜多] 공덕을 찬양하여 말씀하신 것이며 그를 이익이라 이름하며,
어떤 곳에서 세존이 온갖 맛 있는 음식과 온갖 의복 받은 것을 허락하신 것이면 그를 안락이라고 이름하며,
어떤 곳에서 세존이 3학(學)을 건립하신 것이면 그를 이익이며 안락이라고 이름한다.
「여래께서 모든 법에 대하여 가지 가지 지혜로써 잘 관찰한다」함은, 이익이 되기도 하고 안락이 되기도 하고 이익과 안락이 되기도 하는데 증상계학(增上戒學)ㆍ증상심학(增上心學)ㆍ증상혜학(增上慧學)에 의하여 연설한 것이다.
그 중에 두 가지 인연이 있어서 잘 관찰한다고 이름하나니, 기나긴 밤에 두루 깨달아 알기 때문이며, 뒤바뀌게 개달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 해탈들을 잘 증득함이라 함은, 증상심과 증상혜에 의하여 말함이다.
그 중에 두 가지인연이 있어서 잘 증득함이라 이름하나니, 구경행(究?行)이기 때문이며, 물러나지 않는 법이기 때문이다.
나의 시라(尸羅)의 쌓임[蘊]이 원만하지 않다 함은, 혹 시라에 대하여 1부분만 닦고 익히며, 혹 그와 같은 시라에 의지하여 모든 등지계(等持戒)를 원만하게 닦거나 익히지 않음을 말한다.
나는 모든 법에 대해서 잘 관찰하지 아니한다 함은, 두 가지 관찰로 말미암아서이니,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나는 해탈에 대해서 잘 증득하지 못했다 함은, 두 가지 증득으로 말미암아서이니,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내가 응당 말해야 할 것을 그와 같이 이미 말했다 함은, 앞의 간략히 말함[略說]과, 광범하게 분별[廣分別]함과, 그것을 총결(總結)함을 말한 것이라고 알아야 한다.
또 다음은 여섯 가지 모양[六種相]으로 말미암아 응당 모든 불경(佛經)을 해석한 것이다.
첫째는 모든 법을 두루 알므로 말미암아서요,
둘째는 나쁜 행[惡行]과 크고 작은 의혹(惑)들을 버림으로 말미암서요,
셋째는 착한 행을 받아 들임으로 말미암아서요,
넷째는 지혜로 병(病) 따위의 행(行)을 두루 알고 통다함으로 말미암아서요,
다섯째는 저 결과로 말미암아서요,
여섯째는 자타(自他)가 받은 저 결과로 말미암아서이니,
그와 같은 여섯 가지 모양과 앞에서 건립한 모든 모양으로 말미암아 응당 모든 불경을 잘 해석할 것이다.
그 중에서 법이라 함은, 쌓임[蘊]ㆍ계(界)ㆍ처(處)와 연기(緣起)와 념주(念住)ㆍ정단(正斷) 따위를 말하며,
저 결과라 함은, 애욕을 싫어하고 떠나는 해탈과 열반을 말하며,
자타가 받은 저 결과라 함은, ‘나’와 태어남이 이미 다했다는 따위를 말하나니 ,그
와 같은 것을 통틀어 섭석분(攝釋分)이라고 이름한다.
지금 이 품(品) 중에서는 이 논(論)에 네 가지 모양이 있다고 밝혀 보이나니,
첫째는 가장 수승한 모양이요,
둘째는 자체 모양이요,
셋째는 청정한 모양이요,
넷째는 교리를 분변하는 모양이다.
그 중에 가장 수승한 모양은 두 게송으로 말미암서요,
자체 모양은 다섯 게송으로 말미암아서요,
청정한 모양은 두 게송으로 말미암아서요,
교리를 분변하는 모양은 한 게송으로 말미암아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