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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불사 세 성인을 영원히 사모하며 (내불삼성영사집 來佛三聖永思集) 36
제28장. 수미산 제일봉을 발로 밟아 무너뜨리네 (踏倒須彌第一峰)
정가려丁嘉麗
“인광대사십념법”(印光大師十念法)을 공부하는 저희 열 몇 사람의 동수同修들은 최근에 계속해서 성실하게 염불하고 있으며, 해현노화상의 동영상을 학습하며, 정오에 식사를 할 때에는 《래불삼성영사집》의 유성서有聲書(소리파일)를 틀어놓습니다. 우리 모두의 느낌은 한 번 한 번 보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한 번 한 번 듣는 것으로는 부족하며, 한 번 한 번 보면 볼수록 더욱 재미가 있으며, 한 번 한 번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더 느껴지는 것이 있습니다.
저희들의 가장 큰 체회는 해현노화상께서는 《무량수경》의 하나하나를 전부 다 실천하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인광대사의 가르침을 전부 온전히 다 실천하신 점입니다.
인광대사께서 가르치시길, “집에 있거나 암자에 있거나를 막론하고, 반드시 윗사람에게는 공경하고 아랫사람에게는 온화해야 합니다. 남들이 참을 수 없는 것을 참고, 남들이 행할 수 없는 것을 행하며, 남의 힘든 일을 대신해주고, 남의 아름답고 훌륭한 일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조용히 앉아서 항상 자신의 허물을 생각하고, 한담할 때에 남의 그릇된 점을 말하지 않습니다. 걸어 다닐 때나 멈추어 서 있을 때나 앉아 있을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옷을 입을 때나 밥을 먹을 때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아침까지, 한 마디 부처님 명호를 끊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어느 때에는 작은 소리로 부르고, 어느 때에는 마음속으로 부르며, 염불 이외에 다른 생각을 일으키지 않아야 합니다. 만약 혹 망념이 한 번 일어나면, 그 즉시 바로 그 망념을 없애야 합니다. 항상 부끄러운 마음을 내고, 참회하는 마음을 내야 합니다. 설사 수지修持가 있을지라도, 늘 내 공부가 그다지 깊지 않다고 생각해야 하며, 자신을 자랑하거나 과장하지 않아야 합니다.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단속할 뿐, 다른 사람은 간섭하지 않아야 합니다. 오로지 남의 좋은 모습만을 볼 뿐, 나쁜 모습은 보지 않아야 합니다. 일체 사람은 모두가 보살이고, 오로지 나 한 사람만이 진실로 범부라고 보아야 합니다. 만약 제가 말하는 것을 따라 행할 수 있으면, 틀림없이 서방 극락세계에 태어날 수 있습니다.”(無論在家在庵, 必須敬上和下. 忍人所不能忍, 行人所不能行. 代人之勞, 成人之美. 靜坐常思己過, 閑談不論人非. 行住坐臥, 穿衣喫飯, 從朝至暮, 從暮至朝, 一句佛號, 不令間斷. 或小聲念, 或默念, 除念佛外, 不起別念. 若或妄念一起, 當下就要教他消滅. 常生慚愧心, 及生懺悔心. 縱有修持, 總覺我功夫很淺, 不自矜誇. 衹管自家, 不管人家. 衹看好樣子, 不看壞樣子. 看一切人皆是菩薩, 唯我一人實是凡夫. 汝果能依我所說而行, 決定可生西方極樂世界.)
인광대사의 가르침을 가지고 대조해보면, 존경하는 해현노화상께서는 “공경(敬)”, “온화(和)”, “인내(忍)”, “염불이 끊어지지 않고(念佛不斷)”, “자신을 자랑하거나 과장하지 않고(不自矜誇)”, “일체 사람을 모두 다 보살로 보시고(看一切人都是菩薩)”, “극락왕생(往生極樂)”을 모두 실천하였습니다.
첫 번째, “공경(敬)”
현공노화상은 자신의 노모가 어려서부터 “사람됨이 온화하고 선량하고 너그럽고 인정이 많아야 하며, 절대로 못된 짓을 해서도 안 되고 죄를 지어서도 안 된다!”(爲人要和善寬厚, 可別作惡造罪啦!)라고 당부하신 말씀을 언제나 늘 마음속에 단단히 새기셨습니다.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따랐을 뿐만 아니라, 아울러 마음에 새기어 언제나 늘 자신의 언행과 거동을 관조하였습니다. 이는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나 나를 낳아주신 그 부모님께 대한 위없는 공경입니다.
노화상의 이러한 공경의 마음과 비교하면, 우리들 각자는 부끄러워 그야말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입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어른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손해 보는 것이 눈앞에 있다.”(不聽老人言, 吃虧在眼前)고 하였습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진정으로 공경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성인이 된 후에 당연히 스승과 지도자와 선배들에 대해 진정으로 공경하는 일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불법을 배운 후에도 역시 진심으로 정공사부상인을 공경해 본 적이 없으며, 진정으로 본사 석가모니불과 서방의 자비하신 아미타불을 공경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어려서부터 “공경”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데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공경을 알지 못하면 겁 없이 함부로 행동하고, 스스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일을 돌이켜 생각하면,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부모님과 스승님과 어른과 중생을 공경할 줄 모르는 행동의 구체적인 표현은 항상 자신의 견해를 고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님이나 타인의 견해가 나의 견해가 같지 않으면 결코 따를 수 없습니다.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자면, 항상 자신의 주장이 옳으며, 혹은 더욱 좋고, 더욱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바로 이러하기 때문에,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하나의 작은 일과 큰 일에서 모두 부모님의 뜻을 거역합니다. 예를 들면, 작게는 어떤 옷을 입거나 어떤 음식을 먹는 것까지, 크게는 대학시험을 보고, 친구를 사귀고, 결혼하고, 집을 사는 등등에 이르기까지, 부모님의 의견이 우리 자신과 서로 어긋날 때에는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쉽게 자신의 견해를 선택하며, 부모님의 말씀은 하늘 끝 저 멀리에 던져버립니다. 그러나 해현노화상은 우리들과는 정반대로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였으며, 진정으로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였습니다.
그 어르신은 일찍이 직접 자신이 심은 큰 동과冬瓜를 사촌동생이 땄을 때, 숙모가 그를 찾은 후로는 그는 숙모의 말씀을 듣고서 다시는 사촌동생이 아프게 되라는 주문의 말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사촌동생으로 하여금 빨리 병이 나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여러 번 반복해서 중얼거렸습니다.
노모가 85세 되던 그 해에 사원에서 오랫동안 살고 계시다가 고향 집으로 돌아가시겠다는 생각을 굳히셨을 때, 해현노화상은 한참을 가시지 말라고 권하였어도 아무런 효과가 없자, 그 후로는 더 이상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지 않고서 노모를 모시고 고향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노모를) 공경하는 중에 (노모의 뜻을) 따르는 것이 있는 것(敬中有順)이며, 어머니의 마음을 거역하지 않으셨습니다. 동시에 노화상은 성현과 불보살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듣고 그대로 행하셨으며, 계율의 말을 따라 그대로 행하셨습니다. 그 어르신은 게다가 솥 하나를 들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러한 거동은 노모께서 어려서부터 소식素食을 하신 이 습관에 대한 공경이며, 또한 자신이 출가하여 계율을 지키는 수행에 대한 공경이십니다.
이외에도 노화상은 부처님께 절할 때 끝까지 방석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불보살님에 대한 지극한 정성의 공경이며, 또한 자신의 법신혜명에 대한 공경이십니다. 그래서 그 어르신은 “부처님께 절하는 마음은 정성스러워야 하며, 부처님께 절할 때에는 자성이 나오도록 절해야 하며, 청정한 마음이 나오도록 절해야 한다.”(拜佛心要誠, 拜佛要拜出自性、拜出清淨心啊.)고 말씀하셨습니다.
노화상은 부모님과 은사님에 대해 그 분들이 살아 계실 때 공경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들이 세상을 떠나신 후에도 여전히 처음처럼 공경하셨습니다. 그 어르신은 어머니의 한없는 깊은 은혜에 늘 미안하다고 생각하고 계셨으므로, 노모가 세상을 떠난 지 8년 후, 어머님의 묘를 옮기기로 발심하셨습니다. 또한 문화대혁명 기간에는 목숨을 걸고 스승의 골회를 보존하였으며, 아울러 다시 탑을 세워 봉안하셨습니다. 매년 청명이나 음력 10월 1일에는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가 성묘하고 조상님들께 제사를 지냈으며, 동백산 사원에 가서 스승을 위해 제사지냈습니다.
그야말로 이러한 공경하는 마음이 옥수수를 훔쳐간 마을 사람에 대해서조차도 화를 내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사원의 안과 밖에 사는 고양이나 개에 대해서도 평등하게 대하고 똑같이 인애仁愛를 베푸셨습니다. 이러한 작은 동물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제자들에게 그 동물들을 때리지 말고, 또 그것들을 다치게 하거나 해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어르신께서 말씀하시길, “이들은 모두가 중생이다. 우리와 똑같으며, 모두가 영성을 가지고 있다!”(這都是眾生, 跟咱們人一個樣子, 都有靈性啊!)고 하셨습니다.
노화상의 이러한 마음은 평등한 공경이며, 차별 없는 공경이며, 이는 자성의 공경입니다. 노화상께서는 원만한 “공경(敬)”을 실천하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인광대사의 가르침 중에 항상 말씀하신 것인 “일분의 정성과 공경은 일분의 이익을 얻으며, 십분의 정성과 공경은 십분의 이익을 얻는다.”(一分誠敬得一分利益,十分誠敬得十分利益)입니다. 해현노화상은 만분萬分의 공경이며, 위없는 공경입니다. 정공사부상인께서는 항상 경전을 강설하시는 중에 말씀하시길, “정성과 공경은 자성과 통하기”(誠敬通自性) 때문에, 그 어르신은 부처가 되셨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은 해현노화상의 행지行持를 공부해야 비로소 정공사부상인께서 이 말씀을 하신 함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만분 부끄럽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출발점에서 부모에 대해 일찍이 공경한 적이 없으며, 스승과 어른에 대해 일찍이 공경한 적이 없으며, 중생과 만물에 대해 일찍이 공경한 적이 없었으니, 이러한 충격을 어떻게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과거는 이미 갔으니 추궁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바로 지금 이 순간을 곽 붙들고서 우리들이 진심으로 체회한 것은 지금 진정으로 정공사부상인의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하며, 진정으로 해현노화상의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하며, 진정으로 유소운스승과 호소림스승 등 많은 대덕인자께서 일깨워주시는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정공사부상인은 여러 번 반복해서 우리들을 각성시키길, “거짓인 것을 내려놓고, 집착과 분별을 내려놓고서 일심으로 염불하여 한 마디 진성眞誠한 부처님 명호 속에 위없는 공덕을 원만하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해현노화상께서는 우리들을 각성시키길, “땔나무를 옮기고 물을 긷는 것이 도가 아닌 것이 없으며, 거친 찻잎과 변변치 못한 밥이 모두가 수행이다. 열심히 염불하여 부처가 되는 것이 대사이며, 다른 것은 어느 것도 거짓인 것이다!”(搬柴運水, 無非是道; 粗茶淡飯, 皆是修行. 好好念佛, 成佛是大事, 其他啥都是假的!)고 하셨습니다. 유소운스승은 여러 번 우리들에게 훈계하시길, “비상시기에 비상한 방법으로 매 초 매 초마다 염불해야 합니다!”(非常時期, 非常方法, 要秒秒秒秒地念佛!)고 하셨습니다. 호소림스승은 일찍이 법문하시길, “날씨가 추워지면 우리는 겨울옷을 껴입고, 땔감을 마련해 겨울을 지낼 준비는 할 줄 알면서도 생사대사는 오히려 요량하여 준비할 줄을 모릅니다. 여러분들이 이것저것을 믿는 것은 바로 ‘아미타불’을 믿지 않는 것이며, 바로 인광대사께서 말씀하신 귀를 거두어 들여 자세히 듣고, 성실하게 염불하라는 가르침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만분 부끄럽습니다! 우리는 생사를 마치고자 수행하는 길 위에서 이러한 좋은 선근과 복덕과 인연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며, 우리는 성실하게 염불하지도 않고, 성실하게 잘못을 고치지도 않으며, 은혜에 감사하지도 않으며, 낯선 것을 익숙하게 하려고 하지도 않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려고 하지도 않으며, 마음을 바꾸지 않으며, 여전히 육도윤회의 마음으로 윤회의 일을 행하고 있으며, 게다가 성불하는 이 대사를 진실한 것이라 여기지도 않습니다. 통곡하며 눈물을 흘리고, 가슴을 치고 발을 동동 구르며, 우리의 무지몽매한 어리석음이 극점에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많은 불보살님께서 표법表法을 시현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안계眼界를 열어 각성하여 깨닫도록 해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동학들이 해현노화상의 동영상을 끊임없이 계속해서 본다면, 그 장점은 바로 마치 봄바람에 몸을 씻은 것과 같고, 마치 법우法雨에 윤택해진 것과 같아서, 은혜에 감사하고, 잘못을 고친 마음과 염불하는 신심을 점점 일어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노화상의 “온화(和)”
노화상의 인품은 진실하고 순후하며 선량하시며, 사람을 대하실 때 더없이 온화하시어 사람들이 모두 어르신 곁에 가까이 가기를 원하며, 모두들 친근감 있게 노화상을 “문재공文齋公”이라 불렀습니다. 그 어르신은 항상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길, “내 눈에는 일체가 다 좋으며, 좋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무엇을 보아도 모두 좋다고 말하고, 무엇을 보아도 모두 즐거워야 마음속이 항상 법희로 충만하며, 마음이 청정할 수 있고, 번뇌가 없고, 사람들에게 화를 내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다고 하는 구분이 없고, 또 이것은 맛이 있고 저것은 맛이 없는 것이 없으며, 일체가 모두 인연을 따르면, 마음이 곧 편안하고 고요하다!”(在我眼裏, 一切都好, 沒有啥不好的. 見啥都說好, 見啥都高興, 心裏才能經常充滿法喜, 心裏才能清淨, 才無煩惱, 才不生氣恨人. 沒有這好那壞之分, 也沒有這好吃、那不好吃的啦, 一切都隨緣, 心裏就安心踏實啦!)
확실히 이 “온화(和)”는 귀한 것입니다! 노화상은 사람을 대하거나 일을 처리하거나 만물을 접하실 때, 언제나 늘 자비하신 마음으로 너그럽게 받아들이셨으므로, 재가자거나 출가자거나 모두가 내왕하기를 원하였습니다. 늑대조차도 그 어르신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부드럽고 온화하신 기운과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을 알고서 어미늑대가 난산의 위기에 처했을 때, 노화상을 가로막으면서 자신의 가족의 생명을 구해줄 것을 청하였습니다. 이 “온화(和)”로 천지가 편안하며, “온화(和)” 이 글자는 법계에 통합니다.
우리는 만분 부끄럽습니다! 노화상과 대조해보면, 우리는 부부와 아이와 가족에게 “온화하지” 못하며, 동료와 친구에게 “온화하지” 못하며, 더구나 천지만물과 허공법계에게 “온화하지” 못한 것은 말할 것조차 없습니다. 우리는 늘 일체 사람, 일, 만물과 대립하고 충돌합니다. 이는 정공사부상인께서 경전을 강설하시는 중에 “자신조차도 자기 자신과 화목하게 지내지 못하고, 산처럼 쌓여 있는 잘못된 버릇의 허물을 오히려 기꺼이 고치려 하지 않고, 내려놓지 않으려고 한다.”고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이러한 충격을 마음으로 어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세 번째, 학습을 통해 우리는 노화상의 “공경(敬)” , “온화(和)” 속에는 실제로 “인내(忍)”, “스스로 자랑하거나 과장하지 않고(不自矜誇)”, “일체 사람을 모두 보살로 보시는(看一切人都是菩薩)” 마음이 들어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형이나 사제가 어르신에게 결백하지 않다고 지적했을 때, 어르신은 진정으로 원망하지 않으셨고, 조급해하지 않으셨고, 화를 내지 않으셨고, 대립하지 않으셨고, 논쟁하지 않으셨고, 입을 열어 말씀하지 않으셨으며, 마음이 평온하고 태도가 온화하셨습니다. 일이 해결된 후에 어르신께 거짓말을 한 사람에 대해서도 일언반구 원망하는 마음을 품거나 나무라는 일조차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전기요금 수급원이 무턱대고 어르신의 따귀를 때렸을 때, 어르신께서 말씀하시길, “좀 참으면 그만이다. 참을 수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 그가 때리면 나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것이라 생각하고, 내 얼굴에 침을 뱉으면 내 얼굴을 씻어주는 것이라 생각하면 그만이다. 남과 우열을 따지려고 하지 않으면 번뇌가 없으며, 참으면 스스로 편안하다!”(忍忍算了, 能忍就心裏安生, 他打了算是給我抓癢哩, 唾沫吐到臉上當是洗臉啦, 跟人不要爭高論低, 就沒煩惱, 忍者自安啊!)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어르신이 건물을 짓는 것을 짓지 못하도록 저지한 그 간부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어르신의 얼굴을 손으로 툭툭 치면서 모욕을 주었을 때, 어르신은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으며, 또한 화를 내지도 않으셨고, 또한 논쟁하지도 않으시고서 그저 묵묵하게 건물을 지으셨습니다.
우리는 노화상의 이 “공경(敬)”과 “온화(和)”의 마음은 진정으로 겸허로써 자신을 수양하고, 자신의 재능을 숨기고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신 것이며, 또한 “염불을 끊이지 않게” 하셨다는 것을 진정으로 느껴 알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 어르신은 “일체 사람을 모두 보살로 보시는”(看一切人都是菩薩) 경지를 진정으로 실천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르신의 따귀를 때린 전기요금 수급원, 어르신에게 모욕을 준 간부, 어르신이 결백하지 않다고 질책한 동수同修 등에 대해 어르신께서는 그들을 진실로 불보살처럼 여겨 “공경”과 “온화”로써 대하셨기 때문에, 어르신의 스승이신 전계법사가 일찍이 어르신에 대해 “실제생활 속에서 불법을 수행하는데, 이는 가장 얻기 어려운 것이지!”라고 칭찬하신 적이 있습니다.
노화상은 항상 자신과 초막집을 짓고서 함께 수행하셨던 해묵법사, 해원법사, 체광법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언제나 자신을 낮추고 그들 법사들을 높여 존중하셨으며, 세 분 법사의 수지修持공부를 극찬하지 않으신 적이 없으십니다. 노화상의 이러한 점은 진정으로 “스스로를 자랑하고 과장하지 않는(不自矜誇)” 법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 어르신은 자신의 사제인 해경법사가 수항壽缸에 앉아 있은 지 6년이 지난 후, 해경법사를 위해 다비하여 탑에 봉안할 것을 발심하셨으며, 또 105세의 고령에 멀리 광주까지 가서 해경법사의 몸을 금신金身으로 장엄하는 일을 처리하셨습니다.
그야말로 그 어르신은 생활 수행 속에서 앞에서 서술한 이러한 것들을 진정으로 실천하셨기 때문에, 그래서 어르신이 서방 극락세계에 가신 지 100일째 되는 날에 거행한 백일법회에서 하남불교협회의 대표는 어르신을 찬탄하길, “불문의 승보이시며, 인간세상의 기적이시다!”(佛門僧寶, 人間奇跡)라고 찬탄하였습니다. 이 찬사는 확실히 진실하며 헛되지 않습니다.
해현노화상의 사적을 학습하면 할수록, 불보살님의 자비, 기연機緣의 좋음, 본보기의 역량을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고 눈을 뜨면 볼 수 있다는 것을 진실로 느낍니다. 동수同修들은 염불하여 왕생을 구하고자 하는 신심과 결심을 일으키고, 수지修持하고 있는 인광대사의 십념법十念法에 대한 신심이 더욱 증장되어 에너지가 충만해있습니다. 해현노화상의 일생은 바로 인광대사의 설법에서 말씀하신 “인륜을 화목하게 하고, 자신이 맡은 바 본분을 다하고, 삿된 마음을 막고 참된 마음을 지니며, 성실하게 염불하여 정토에 태어나길 구하라”(敦倫盡分, 閑邪存誠, 老實念佛, 求生淨土)고 하신 그 가르침을 그대로 행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한편으로는 매우 부끄럽지만, 그러나 또한 경축할 만한 기쁜 일이라 깊이 느낍니다. 왜냐하면 이는 진실로 우리들이 “의거하여 따를 수 있는 근거가 있으며, 본받아 배울 수 있는 분이 있으며, 쓸 수 있는 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바로 이러한 때에 유소운스승의 언니(유소청보살) 남편인 곽영발郭永發노보살이 극락왕생하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으며, “중생은 모두가 부처가 될 수 있으며, 내려놓기만 하면 됩니다.”(眾生皆可成佛, 放下便是) 이번 소식은 우리들의 신심을 더욱 공고하도록 해주고 확고하도록 해줍니다.
이에 대해, 동수들의 보편적인 느낌은 유소운스승의 언니 남편이신 곽영발노보살은 바로 하나의 거울이며, 거울에 반사된 모습은 바로 우리 동수들 자신의 모습입니다. 그의 몸에는 오점이 있고, 우리 또한 지난날의 못된 행적으로 얼룩덜룩합니다. 그는 가족과 뜻이 서로 맞지 않는 것이 있었으며, 우리들 또한 가족과 화목하게 잘 지내는 일을 하지 못하며, 원망怨․증오恨․괴로움惱․분노怒․번뇌煩 등 다섯 가지 독을 다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를 전부 다 남김없이 내려놓았으며, 염불하여 극락에 왕생하셨습니다. 이렇게 신선하고 진실한 실제적인 사례가 우리들 앞에 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불보살님은 바로 우리들 앞, 우리들 몸에 함께 계신다는 것을 불현듯 발견하게 해주며, 우리에게 더 이상 불법은 높아 예측할 수 없는 것이라 여기지 않게 해주며, 불보살은 높아서 붙잡을 수 없는 것이 아니며, 극락세계는 멀리 10만 8천 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며, 수행하여 단지 내려놓기만 하면, 그리고 단지 진실로 믿고(眞信), 간절하게 원하고(切願), 성실하고(老實), 말을 듣고 그대로 따르고(聽話), 진정으로 행하기(眞幹)만 하면, 이 “아미타불” 부처님 명호의 공덕과 자장과 에너지는 참으로 불가사의합니다! 우리들은 아미타불의 고향인 극락세계의 청정과 장엄을 느끼고 만지게 되며, 우리들은 내심으로부터 자신이 부처가 될 몫이 있음을 느끼며, 성불은 더 이상 다른 사람의 황당하고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아니며, 그것은 실제로 우리의 진실한 목표가 되었습니다.
진실한 마음을 다해 정공사부상인께서 경전강설 중에서 말씀해주신 극락왕생한 13살 소녀를 비롯하여 해현노화상님, 해경법사님, 곽영발노보살님이 시현해주신 여러 가지 자비하신 표법表法에 감사드립니다. 해현노화상, 해경법사, 유소운스승의 언니(유소청보살님), 언니 남편의 극락왕생 등 이처럼 계속 이어진 일련의 진실한 표법表法 속에서 우리들이 만약 깨닫지 못하고서 다시 계속해서 육도를 윤회한다면, 이는 정말로 억울하게 사람이 되는 것이고, 억울하게 정토법문을 들은 것이라는 것을 전부 알게 되었습니다. 상등上等 중의 상등上等이고, 최상의 방편 중의 방편법문이 이미 우리들 곁에 보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잘못 행동하였고, 잘못 마음을 바꾸었고, 잘못 내려놓았습니다.
해현노화상님은 날마다, 달마다, 해마다, “아미타불” 부처님 명호가 입에서 떠나지 않으셨으며, 방향을 바꾸지 않으셨으며, 92년 동안 염불하시여 성불하러 가셨습니다. 정공사부상인은 “그 어르신은 이 번 생 동안 적어도 아미타불을 10번 이상 친견한 적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동수들은 동의하지만, 그러나 여러 면에서 해현노화상님과 비교하면 열등감과 좌절하는 마음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노화상님의 표법表法이 더없이 훌륭하심은 인정하지만, 그러나 그 어르신께서는 너무나 완미完美하고, 기준이 너무 높아서, 우리는 그 어르신께서 행하신 것을 그대로 쫒아 본받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감당할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이것은 우리들 자신이 마음속으로 여전히 우리 자신에게 핑계를 찾아주는 것이며, 또한 시작이 없는 겁 동안 쌓아온 무명無明과 게으름 등의 습기가 방해하고 있는 것이며, 또한 우리들 자신의 우치愚癡의 반영임을 잘 압니다.
바로 이처럼 결정적인 중요한 시기에 유소운스승의 형부이신 곽영발노보살께서 극락왕생하셨습니다. 그는 5년 동안 “아미타불” 부처님 명호를 불렀으며, 임종할 때 원한을 내려놓고서 서방 극락세계에 부처가 되기 위해 갔습니다. 우리는 큰 자극을 받았고, 너무나 감동하였습니다. 우리가 진실로 공감하는 것이 있는데, 그는 바로 우리이며, 우리가 바로 그이며, 지극히 평범하여 서로 비슷한 점들이 너무 많습니다. 광명은 두루 비춥니다. 이러한 인연 때문에, 동수들은 부처가 되는 대사大事를 감당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인광대사의 십념법十念法을 확고부동하게 수지修持하여 생각 생각이 “아미타불” 부처님 명호이고, 어디에서나 “아미타불” 부처님 명호이며, 의심하지 않고, 중간에 끊어지지 않고, 다른 것이 끼어들거나 섞이지 않도록 힘써 노력하며, “아미타불” 부처님 명호를 분명하게 부르고, “아미타불” 부처님 명호를 분명하게 듣고, “아미타불” 부처님 명호를 분명하게 기억하여 귀를 거두어들이고 마음을 기울여 자세히 듣고, 인연을 따라 염불할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해현노화상님께서 강설하신 “도를 배우려면 응당 마음이 부처인줄을 알아야 하며, 수행하려면 응당 계율로서 스승을 삼아야 한다.”(學道當知心是佛, 修行應以戒爲師)고 하신 가르침을 분명하게 알았습니다. 마음을 바꾸어 불보살님의 마음으로 범부의 마음과 육도윤회의 마음을 바꾸어 놓는 것을 배우고, 이기적인 마음을 내려놓는 것을 배우고, 명문名聞과 이양利養을 내려놓는 것을 배우고, 원한怨․증오恨․괴로움惱․분노怒․번뇌煩 등 다섯 가지 독을 내려놓는 것을 배워, 마음속에는 오로지 “아미타불”만을 담고, 일념一念으로 온갖 산란한 망념妄念을 대신하고, 확고하고 진실하게 서방 극락세계에 태어나길 구하면, 물러나지 않고 부처가 되어 중생을 제도할 수 있습니다.
동수들의 네 번째 체회는 “만약 불법을 흥성하게 하려면, 오직 승가가 승가를 찬탄하는 것일 뿐이다.”(若要佛法興, 唯有僧讚僧.)는 가르침을 일상의 일, 생활, 학습, 수행 중에서 진정으로 운용하려고 시작한 것입니다.
해현노화상께서 마지막 나타내신 법은 바로 “만약 불법을 흥성하게 하려면, 오직 승가가 승가를 찬탄하는 것일 뿐이다.”(若要佛法興, 唯有僧讚僧.)를 시현하신 것입니다. 정공사부상인 역시 언제나 이 법을 나타내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동수들은 학습한 후에 일상생활 속에서 또한 “승가가 승가를 찬탄하는”(僧讚僧) 것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느꼈습니다. 불문佛門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칭찬할 뿐만 아니라, 가정생활, 일, 학습, 수행 중에서도 마찬가지로 “승가가 승가를 찬탄하는”(僧讚僧) 것을 운용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큰 의미에서의 “승가가 승가를 찬탄하는”(僧讚僧) 것입니다. 이를 운용하여 부부 사이, 부모와 자녀 사이, 윗사람과 아랫사람 사이, 동료와 친구 사이, 동수 사이 등이 서로가 서로를 칭찬하며, 언제 어느 때나 상대방의 장점과 좋은 점을 이야기할 수 있고 남의 허물을 보지 않는다면, 이것은 바로 《제자규弟子規》에서 말하고 있는 “남의 선을 말하면 그것이 바로 선이고, 남의 악을 들추어내면 그것이 바로 악이다.”(道人善, 即是善; 揚人惡, 即是惡.)라고 한 것입니다. 악을 숨겨주고 선을 들어내는 것은 긍정의 에너지이고, 또한 염력念力의 비밀입니다. 우리들이 일상의 생활, 일, 학습 속에서 행위가 좋지 않고, 진실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칭찬하는 일을 실천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마음속에 상대방의 결점과 부족한 점을 담아두고 있는 쓰레기통이 될 것입니다. 지금 분명하게 알았으면, 반드시 힘써 바르게 고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해현노화상님의 동영상을 볼 때, 래불사의 문 입구에 차례로 붙여져 있는 이러한 아름다운 두 구절의 문구가 마음속에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모든 악을 짓지 않는 것을 계라 말하고, 온갖 선을 받들어 행하는 것을 지혜라 말한다. 마음은 자성의 계가 아닌 것이 없으며, 마음에는 부처의 자성 지혜가 있다.”(諸惡莫作名爲戒, 眾善奉行名爲慧; 心地無非自性戒, 心地有佛自性慧.) 이는 우리로 하여금 저절로 책상을 탁 치면서 훌륭하다는 탄성을 지르게 합니다! 이 문구는 “계”와 “지혜”가 내포하고 있는 중요한 뜻을 남김없이 전부 다 드러내어 표현하였습니다. 이 구절은 작은 일상생활과 행지 중에서 악을 끊고 선을 닦게 하는 동시에, 모든 불제자의 청정하고 물듦이 없으며, 평등하여 차별이 없는 심지心地에 관심을 갖게 하고, 자성불의 종성種性을 용기 있게 인정하도록 우리를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배회하며 머뭇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때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으며, 우리가 성불하는 것은 필연입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여전히 관망하고 뒷걸음치고 있으면, 우리가 이 일을 책임지고 맡아야 합니다! 우리의 방법은 바로 “잘못을 고치고(改過), 은혜에 감사하고(感恩), 마음을 바꾸고(換心), 아미타불의 48대원과 가피력을 받고, 자신이 성실하게 염불하고 진실로 믿고 간절하게 원하는 자력自力으로 서방에 태어나길 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러한 시절인연이 도래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 자신의 눈앞에 이미 와 있다는 것을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기억하기로, 호소림스승이 3년 전에 홍콩불타교육회에서 인광대사의 십념법十念法을 강설하실 때, “인광노화상께서는 정토법문을 닦는 이러한 사람들, 성실하게 염불하는 사람은 불보살님의 우리에 대한 관심과 보살핌이 깊어서 예측할 수 없으며, 근본적으로 우리들이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라고 하신 적이 있으십니다. 또 인광대사께서는 “‘나무아미타불’ 이 육자홍명은 우리의 본명원진이며, 본명원진은 지금의 현대 중국어로 말하면 바로 생명의 근원이다.”(南無阿彌陀佛這六字洪名是我們的本命元辰, 本命元辰說白話就是命根子.)고 말씀하셨습니다.
3년 전만 해도 이러한 가르침에 대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으며, 생명의 근원에 대해 전혀 아무런 느낌이 없었습니다. 3년이 지난 지금, 래불사의 세 분 성인에 대한 사적과 곽영발노보살이 극락왕생한 사적을 결합하고, 또 호소림스승이 강설한 십념법을 익히고, 또 인광대사의 가르침에 주의를 기울여 세심하게 들으니, 진실로 무한한 감격으로 눈물이 비처럼 마구 흘러내렸습니다.
《신편전본인광법사문초新編全本印光法師文鈔》제2권 319페이지에 주지무周智茂거사에게 회답하신 편지 중에서, 인광대사께서 말씀하시길, “그리고 항상 움직이고 있을 때나 조용하게 있을 때나 한 마디 ‘아미타불’ 명호를 생명의 본원으로 삼아 그것을 마음에 두고 일을 행하여, 반드시 모든 악을 짓지 말고, 온갖 선을 받들어 행해야 한다는 종지와 부합해야 한다.”(且常隨動隨靜, 將一句彌陀, 當做本命元辰, 其居心行事, 須要與諸惡莫作、眾善奉行之宗旨合.)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수행의 구체적인 운용방법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신 설법이십니다.
인광대사뿐만 아니라, 《래불삼성영사집》유성서有聲書 속에서 해현노화상 역시 이 점을 이야기하셨습니다. 말씀하시길, “나는 하루도 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으며, 한 글자도 알지 못한다. 산에 올라가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된 후, 스승님께서 나에게 오로지 ‘아미타불’만을 부르라고 하셨으며, 내가 분명하게 알게 되면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하셨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고, 손으로 가리키고 발로 그리지 말라고 하셨다. 나는 지금 백 살이 넘었으니, 서방 극락세계에 왕생하러 가려고 한다. 부처님(아미타불)은 나의 노화상의 뿌리이시다.”(我沒有上過一天學, 不認得一個字, 上山剃度後, 師父就叫俺光念阿彌陀佛, 叫俺明白了不要亂說, 不能說, 不要指手劃腳. 我現在一百多歲啦, 要往生到西方極樂世界去, 老佛爺(阿彌陀佛)是我老和尚的根)고 하셨습니다. 진실로 모든 부처님의 도는 같습니다!
비록 3년의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지만, 우리들은 까마득하고 둥둥 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들은 마침내 알게 되었으며, 지금 이 순간을 꽉 붙잡고서 단지 깨달기만 하면 모두 늦지 않습니다. 동수들은 생사윤회를 마치고자 하는 마음이 대단히 확고하며, 마음 또한 조급하여 무모하게 돌진하던 속에서 점점 차분하게 가라앉았으며, 모두들 지금 신심이 충만하다고 느끼며, “아미타불” 부처님 명호에 대한 공덕의 힘에 대해 더 이상 의심하지 않습니다. 성현들께서 보여주신 본보기가 앞에 있으니, 우리는 그분들의 뒤를 바짝 쫒아 스스로 자신의 뜻을 깨끗하게 하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스승을 존경하며, 진실한 마음과 공경으로 화목하게 지내고, 성실하게 염불하기를 원합니다.
존경하는 정공사부상인께서 자비하신 마음으로 교학해 주시는 은혜에 대한 감사를 우리는 말로서 전달할 방법이 없으며, 또한 제불보살께서 인간 세상에 모범을 보여주시고 법을 나타내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를 우리는 말로서 전달할 방법이 없습니다. 오로지 이번 생이 끝날 때까지 “아미타불” 부처님 명호만을 부르고, 오로지 인륜을 화목하게 하고 자신의 본분을 다하여, 삿된 마음을 막고 참된 마음을 지니는 일을 굳게 지키는 것만이 있을 뿐입니다. 오로지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성실하게 염불하여 정토에 태어나길 구하는 길만이 있을 뿐입니다. 나무아미타불!
(인연생거사)
나무아미타불! 말학은 정가려스승의 이 문장을 보고 한없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말학과 정가려 스승은 안면이 있는 사이가 전혀 아니며, 단지 정가려스승께서 강의한 동영상을 본 적이 있을 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마치 서로 알고 지낸 지가 이미 오래된 친구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원고 중의 몇 곳을 대담하게 수정하였으며, 저는 정스승께서 반드시 이 때문에 번뇌를 일으키지 않으실 것이라 굳게 믿습니다.
당나라 때 종문宗門의 고승이셨던 성공性空선사의 게송을 이곳에 수록하여 정스승를 비롯한 모든 대덕들과 함께 닦고 함께 노력하고자 합니다.
하루 종일 공부에 집착하지 않고, (二六時中不住工)
이리저리 궁구하여 궁구할 것이 없는 곳에 이르렀네. (窮來窮去到無窮)
반드시 궁구하여 궁구할 곳이 없는 곳에 이르러야, (直須窮到無窮底)
수미산 제일봉을 발로 밟아 넘어뜨릴 수 있으리. (踏倒須彌第一峰)
정공사부상인께서 정스승의 이 심득보고心得報告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셨습니다.
해현노화상의 성취는 “행行”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를 아시면 하나를 “행”하셨고, 두 가지를 아시면 두 가지를 “행”하셨으며, 날마다 체회한 것이 있으셨고, 날마다 향상함이 있으셨습니다. 이 일은 학교에서 공부를 배우고 공부를 배우지 못한 것과 관계가 없으며, 글자를 알고 글자를 알지 못하는 것과 상관이 없습니다. 그 어르신은 지혜가 있으셨으며, 어르신은 “무엇이든지 모두 다 아셨으며”(他什麼都知道), 바로 이 한 마디 말로써 표현할 수 있습니다. 대철대오大徹大悟하고 명심견성明心見性해야 진정으로 “무엇이든지 모두 다 알며”(什麼都知道), 철저하게 깨닫지 못하면 아는 것이 한계가 있으며, “무엇이든지 모두 다 안다.”(什麼都知道)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어르신이 아미타 부처님을 친견하신 적이 열 번 보다 적지 않을 것이라 믿으며, 그 어르신께서는 “리일심불란理一心不亂”의 경지를 증득하셨다고 확신합니다. 이 염불의 “리일심불란理一心不亂”의 경지는 바로 선종의 “대철대오大徹大悟”의 경지입니다. 그렇다면 응당 어느 때에 이 경지를 증득하신 것입니까? 제 견해로는 분명히 40세 전후해서 증득하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이 세간에 계셨던 것은 법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 어르신은 이러한 능력을 가지고 계셨으며, 지혜가 있고, 능력이 있으셨으며, 대단히 훌륭하게 실천하였으며, 명문名聞과 이양利養에 물들지 않으셨으며, 성실하게 실천하셨으며, 이 시절인연이 이르렀을 때 그 어르신은 이 세간에 오셔서 법을 나타내셨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의 사회 혼란과 지구의 갑작스런 지질 변화는 지구역사상 지금까지 있었던 적이 없는 것이며, 설사 있었다고 해도 오늘날의 이 사회와는 같지 않았습니다. 많은 학자, 전문가, 국가의 영수들은 어떻게 해야 이 사회를 안정되게 할 수 있고, 충돌을 화해하게 할 수 있고, 재난을 멈추게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고뇌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고뇌하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지만, 그러나 만약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면 결국 낙심하여 실망하게 될 것이니, 참으로 매우 두려운 일입니다. 노화상은 이 세간에 오셔서 이 법을 나타내셨습니다. 이를 구할 수 있게 되었으며, 사람들의 신심을 일어나게 할 수 있으니, 이 공덕은 대단히 큽니다! 이것은 실행하기 어려운 대단히 소중한 것입니다.
따라서 정가려동학의 이 심득보고가 대표하는 것은 다양한 역할을 연기하는 연예인입니다. 연예인의 습기는 매우 무거우며, 고개를 돌리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고개를 돌리기가 매우 어려운 사람이 고개를 돌렸습니다. 학자, 전문가, 각 계층의 지도자들에게 신심을 증장시켜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단히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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