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 대한민국 100년!(이사야 10:20-27)
첫째. 한일합병(韓日合倂) 조약이 무엇입니까?
지금부터 109년 전, 1910년 8월 29일, 일본의 제국주의가, 대한민국을 완전히 식민지(植民地)로 만들기 위해 강제로 체결한 조약입니다. 이때부터 대한민국은 군사, 경제, 정치적으로 국권(國權)을 상실했습니다. 그래서 이날을 경술국치일(庚戌國恥日), 국권피탈일 權被奪日) 이라고 합니다. 이 한일합병 조약은, 조선의 총리대신 이완용과 일본 데라우찌 총독 사이에 조인된 조약입니다.
1조.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부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 영구히 일본국 황제에게 양여(讓與)한다.
2조. 일본국 황제 폐하는, 1조에 기재한 양여를 수락하고, 완전히 한국을 일본 제국에 병합함을 승낙한다.
3조. 일본국 황제 폐하는, 한국 황제 폐하, 태황제 폐하, 황태자 전하와 그들의 황후, 황비 및 후손들로 하여금 각기 지위를 응하여 적당한 존칭, 위신과 명예를 누리게 하는 동시에, 이것을 유지하는데 충분한 세비를 공급함을 약속한다.
4조. 일본국 황제 폐하는, 앞 조항 이외에 한국 황족 및 후손에 대해 상당한 명예와 대우를 누리게 하고, 또 이를 유지하기에 필요한 자금을 공여함을 약속한다.
5조. 일본국 황제 폐하는, 공로가 있는 한국인으로서 특별히 표창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대하여, 영예 작위를 주는 동시에 은금(恩金)을 준다.
6조. 일본국 정부는, 앞에 기록된 병합의 결과로 완전히 한국의 시정을 위임하여, 해당 지역에 시행할 법규를 준수하는 한국인의 신체 및 재산에 대하여 전적인 보호를 제공하고, 또 그 복리의 증진을 도모한다.
7조. 일본국 정부는, 성의 충실히 새 제도를 존중하는 한국인으로 적당한 자금이 있는 자를, 사정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한국에 있는 제국 관리에 등용한다.
8조. 본 조약은, 한국 황제 폐하와 일본 황제 폐하의 재가를 받은 것이므로, 공포일로부터 이를 시행한다.
융희 4년 8월 22일. 내각총리 대신 이완용
메이지 43년 8월 22일. 통감 자작 데라우치 마사타케
가슴을 치고 통곡(痛哭)을 할 조약입니다. 이로써 조선 왕조는 27대 519년 만에 망했고,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시온에 거주하는 내 백성들아! 앗수르가 애굽이 한 것처럼 막대기로 너를 때리며, 몽둥이를 들어 너를 칠지라도, 그를 두려워하지 말라."(이사야 10:24)
둘째. 어떤 역사적인 상황에서 한일합병(韓日合倂)이 이루어 졌습니까?
1. 이조 500년 동안, 동인, 서인, 남인, 북인이, 사색(死色) 당파(黨派) 싸움만 계속 하다가 한일합병이 이루어졌습니다. 벼슬자리 더 차지하려고, 왕의 권한을 강화하고자, 정치적인 이상을 실현하겠다고, 한 나라의 지도자들이 당파를 만들고, 쌈박질만 하고 있는 나라에 무슨 좋은 일이 있겠습니까?
2. 쇄국정책(鎖國政策)을 쓰다가 한일합병이 이루어졌습니다. 고종이 열두 살 때 왕위에 오릅니다. 그러자 고종의 아버지 이하응이, 흥원 대원군으로 봉해지자, 최고 권력자가 되어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했습니다. 그런데 대원군은, 타국과 통상(通商)과 교역(交易)을 금지했습니다. 세계의 흐름을 읽고 개방했어야 하는데, 외국과의 교역은 시기상조라고, 외국과 담을 쌓았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나라, 스스로 왕따가 된 나라에 어떻게 좋은 일을 기대하겠습니까?
3. 친일파(親日派)들이 득세(得勢)하다가 한일합병이 이루어졌습니다. 힘 있는 일본이 침략해 오니까 이 일본을 등에 업고, 동족에게 위해(危害)를 가하거나, 독립운동을 방해(妨害)하며, 일본의 끈나풀 노릇하는 친일파들이 생겨났습니다. 독립운동을 의논하고 있는 자리에, 느닷없이 일본 순경이 나타났습니다. 친일파가 밀고(密告)한 것입니다. 이렇게 일본의 끈나풀 노릇하는 친일파들이 극성을 부리다가, 결국 한일합병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4. 하나님의 복음(福音)을 배척(排斥)하다가 한일합병이 이루어졌습니다. 1866년 대원군은, 금압령(禁壓令)을 발표했습니다. 금압령이란, 서양종교인 천주교와 기독교, 사교를 엄금, 근절하라는 명령입니다. 당시 12명의 프랑스 선교사 가운데 9명과, 천주교 신자 8천명을 처형(處刑)시켰습니다. 얼마나 잔인한 박해입니까?
1866년 9월 2일, 중국에서 선교하다가 풍토병(風土病)에 임신 중인 아내를 잃고, 당시 조선에 기독교인이 없다는 말을 듣고, 한글을 배운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대동 강변에 도착했습니다. 그때 홍수로 갑자기 물이 불어나자 셔먼호가 좌초(坐礁)당했습니다. 살아야 겠다고 헤엄쳐 대동강 강가로 나왔더니, 기다리고 있던 대원군이 보낸 군관(軍官)이, 한 사람씩 목을 쳐 죽였는데, 이 선교사도 목을 쳐 죽였습니다. 그때 이 젊은 선교사는, 죽기 직전에 성경책 3권을 건네주었습니다. 이 선교사가, 바로 영국 런던 선교회에서 파송한 만 26세, 토마스 선교사(Robert Jermain Thomas, 1840-1866) 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배척하고, 선교사, 교인들을 그토록 잔인하게 처형하다가, 얼마 후에 한일합병이 이루어졌습니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역사 아닙니까?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에스더 415-16)
셋째. 100년 전 3.1운동은 어떤 운동이었습니까?
일본 사람들한테 국권을 빼앗기고, 식민지 생활 하는 것이 너무 억울하니, 반드시 독립을 해야 한다고, 33명이 날인한 독립(獨立) 선언문(宣言文)을 발표하기로 했습니다. 원래는 3월 3일이었는데, 고종황제 장례일 이었기 때문이요, 이 정보가 누설된 것을 알고, 3월 1일로 앞당겼습니다. 그런데 33명이 다 모이지 못하고 29명이 모였습니다. 또 원래는 파고다 공원(公園)에서 읽으려고 했는데, 서울 종로구 관수동, 중국집 국일관에서 읽었습니다. 그러자 청년들이 "선생님들! 독립 선언문을 요릿집 방구석에서 읽어 되겠습니까? 우리에게 주십시오. 파고다 공원에 가서 읽겠습니다." 그래서 일부는 파고다 공원에서, 일부는 일본 경찰서를 찾아가, "우리는 이렇게 합니다." 하고 자진 신고했습니다. 그때 파고다 공원으로 열 명, 백 명, 천명의 군중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오직 대한민국의 독립 하나를 바라보며, 태극기 들고, 대한독립 만세를 목이 터지도록 외쳤습니다. 다급한 일본 순경들이, 칼로 찌르고 총을 쏘아댔습니다. 그래도 후퇴하지 않고, 쓰러지면 뒤에 사람이 나와서 또 나섰습니다. 벌써 100년 전 일입니다.
1. 100년 전 3.1운동은, 당시 1,600만 인구가, 대동단결(大同團結)한 역사적(歷史的)인 운동이었습니다. 통계 차이는 있으나, 전국에서 1,542회 독립운동이 일어났습니다. 3.1운동에 참여한 인원은 130만 명, 죽은 사람 7천명, 부상자 만 5천명, 투옥자 47만 명, 불탄 예배당이 47동이었습니다. 이렇게 대동단결한 역사적인 운동이 언제 있었습니까?
2. 100년 전 3.1운동은, 평화적으로 전개 된, 비폭력(非暴力), 무저항주의(無抵抗主義) 운동이었습니다. 손에 손에 태극기 들고 대한독립 만세를 목청껏 외친 것 뿐입니다. 그런데 일본 경찰은, 두들겨 패고, 고문(拷問)하고, 감옥(監獄)에 넣었습니다. 칼로 찔렀고, 무차별하게 총을 쏘았습니다. 인도 간디의 무저항주의, 미국 마르틴 루터 킹의 비폭력 운동도, 3.1운동 후에 일어난 운동입니다.
3. 100년 전 3.1운동은, 자발적으로 참여한 양심(良心)운동이요, 희생적(犧牲的)인 운동이었습니다. 이화학당에 다닐 때, 정동감리교회 손정도 목사님께 애국신앙에 영향을 받아 독립 운동에 참여했다가, 일본 헌병에 체포되어 수갑을 채우려고 할 때, 16세 된 유관순은 "내 손목에 수갑을 채우지 마세요. 나는 죄인이 아닙니다. 내 신앙 양심의 소리를 듣고, 3.1운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입니다." 러고 했습니다. 1920년 10월 12일, 일본경찰은 유관순 열사의 몸을 일곱 토막 내 죽였습니다.
4. 100년 전 3.1운동은, 자유, 독립, 나라를 찾기 위한 구국(九國)운동이요, 애국(愛國)운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3.1 운동은 결국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3.1운동이 뿌리가 되어.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 독립을 맞이했습니다. 잃어버린 대한민국을 되찾게 했습니다. 이것이 100년 전 3.1운동이었습니다.
"공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잠언 14:34)
넷째. 이제 대한민국 100년을 내다보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대한민국 5천 100만 국민은, 맡은 일, 맡은 자리를 지키고, 정직(正直)하게 일해야 합니다. 이것이 소리 없는 애국입니다. 이 나라가 이렇게 시끄러운 이유 중 하나는, 정직하게 일하지 못하기 때문 아닙니까?
2. 대통령과 정치 경제 지도자, 지방자치 단체장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국민을 두려워 할 줄 알고 의롭게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자리를 주셨기에 심판하실 줄 알고, 하나님을 의식하고 일해야 합니다.
3. 국론(國論)이 분열 될 언동(言動)을 멈추고 금해야 합니다. 노사(勞使) 갈등을 일으키는 언동, 지역 감정을 조장시키는 언동, 빈부 격차를 심화시키는 언동, 보수와 진보를 갈등시키는 언동을 멈춰야 하고 금해야 합니다.
4. 교회는 나라와 민족, 교회와 복음을 위한 인물(人物)을 길러내야 합니다. 지도자 한 사람의 영향이 얼마나 큽니까? 모세, 다니엘, 요셉 같은 인물, 에스더 같은 인물을 갈러내야 합니다.
5. 그리스도인은, 대한민국의 장래를 하나님께 맡기고, 느헤미야처럼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한 나라와 민족의 장래는 하나님 장중에 있습니다. 흥망성쇠(興亡盛衰) 전화위복(轉禍爲福)케 하는 은혜가 하나님 손안에 있습니다.
"...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느헤미야 1:3-4)
6. 그리스도인은, 대한민국의 장래를 위해 기도할 뿐만 아니라, 의로운 일에는 적극 참여해야 합니다. 설명해야 할 때, 의견을 개진해야 할 때, 서명을 해야 할 때, 직접 참여해야 할 때는, 적극 참여해야 합니다. 행동해야 합니다. 죄송하지만, 도둑을 보고도 짓지 못하는 개, 도둑을 보고도 도둑인 줄 알지 못하는 개! 뭘하겠습니까?
대한민국은, 우리 조상 대대로 살다가 우리에게 물려주신 나라입니다.
대한민국은, 우리가 태어나 살다가 우리가 죽으면 묻힐 나라입니다. 우리의 국적은 대한민국입니다.
대한민국은,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나라입니다.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이, 민족 복음화와 남북통일의 길로 나아가고, 하나님께서 복주시고 또 복 주시도록 하나님 잘 섬기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시편 22:28)
첫댓글 좋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한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