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사령관과 32년 만의 재회다. 필자가 동우대학 재직시절인 1989년 강현면 물치리 속초공항에서 총사령관을 배웅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당시 총사령관의 신분은 학교법인의 명예이사장이었다. 우리 지역과의 인연은 제9대, 제10대 속초·인제·고성·양양 지역구 국회의원을 지낸 분이다. 이분이 바로 6.25전쟁 당시 33세로 육해공군 제3군 총사령관을 지낸 청사 정일권 박사다. 그러다 6.25전쟁 71주년인 6월 29일에 경동대 글로벌캠퍼스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경동대 정문에서 가까운 우당도서관에 청사 정일권 박사 기념관이 있다. 여건상 일반에는 공개하지 않지만 대학 구성원은 필요시 절차를 따라 관람할 수 있다. 또한 대학본부 앞마당 정원에는 청사 동상도 세워져있다. 2021년도 강원도 평생교육진흥원의 공모사업에 필자가 신청한 ‘DMZ탐방 평화아카데미 시민역량 강화교육’이 선정되어 9월 개강을 앞두고 6.25관련 역사자료 수집 차원에서 청사 유품이 진열되어 있는 기념관을 동료교수들과 함께 살펴보았다.
청사 기념관에는 태극무공훈장, 을지무공훈장 등 훈포장과 주한미대사에서 국무총리 그리고 국회의장에 이르는 각종 기록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 가운데 인천상륙작전의 맥아더 원수와 함께 전선을 시찰하는 사진이 있다. 사진 설명에 “맥아더 원수는 6.25 동란이 발발하자 제일 먼저 이승만 대통령에게 정일권 장군을 육해공군 총사령관으로 추천하였다”라고 적혀있다.
정일권 장군은 6.25전쟁이 발발한 뒤 채병덕 총사령관이 전사하자, 1950년 7월 육군소장으로 육해공군총사령관에 임명되었다. 국방일보(2010.06.09.) [6·25결정적 전투들]‘③영천전투’편에 맥아더 원수의 인천상륙작전 직전인 낙동강방어선 영천전투의 긴박함을 보여준다. 미국 합동참모본부는 영천이 돌파되면 한국을 포기하고 대한민국정부와 군대 62만명을 남태평양의 미국령 서사모아의 한 섬에 재배치하는 ‘신한국 창설계획’(New Korea Plan)을 승인했다.
이 사실을 9월 7일 영천방어가 가망이 없자 미8군 워커사령관이 정일권 총사령관에게 알려주었던 것이다. 이때 정일권 총사령관은 영천을 탈환한다면 ‘신한국 창설계획’을 백지화할 수 있겠느냐 물었고, 워커 장군으로부터 “물론이다. 영천만 되찾는다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확답을 받았다. 영천전투는 전쟁초기 불리한 전세를 극적으로 역전시킨 구국의 일전이었다. 치열했던 영천전투에서 아군승리에 기여한 장군은 유재흥 국군2군단장이다.
필자는 지난해부터 6.25 전투전적비 탐방을 진행하고 있다. 6.25전쟁에 관한 많은 숨겨진 사실들을 필자 자신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역민들과 함께 펀치볼지구 전투전적비 4차, 오마치 현리전투 4차까지 다녀왔다. 올해는 파로호 탐방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주 7월 5일에 3차 탐방을 마쳤다. 파로호(破虜湖) 전적비는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 휘호 전적비다. 6.25전쟁 당시 중공군 2만5천여명을 궤멸시킨 ‘오랑캐(虜)를 깨부순(破) 호수’라는 뜻이다.
파로호 전투는 1951년 5월 26일부터 28일까지 국군과 미군 제9군단이 중공군 10군, 25군, 27군을 격파한 전투다. 국군 3군단은 ‘현리전투’ 이후 일주일만의 대승이다. 이때 화천댐 사수 특명을 수행한 5사단 36연대장이 포스코 창립자 박태준 중령이다. 그런데 중국은 북한의 남침에 의한 6.25를 ‘항미원조(抗美援朝)’, 미국에 대항해서 북한을 도운 전쟁이라 표현한다.
아직도 파로호 전투는 진행 중이다. 일부 시민단체가 중국과의 우호를 생각해서 ‘파로호’ 대신에 ‘대붕호(大鵬湖)로 개명하자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화천지역 사회단체들은 “역사적으로 대붕호는 10개월, 화천저수지는 6년, 파로호는 67년을 사용한 국민에게 친숙한 지명”이라는 반대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논란은 최문순 화천군수가 강원일보(2020.12.30.) [화천]“파로호(破虜湖) 명칭 변경 절대 없다”에서 “대붕호에 관한 역사적 근거 및 공식 문헌은 어디에도 없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마무리 되었다. 1944년에 일제가 화천댐을 준공하면서 세운 ‘대명제(大䳟堤)’ 준공비는 지금도 화천댐 안에 서있다. 민족의 비극적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한다. 후대들에게 역사의 진실을 전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최철재
경동대 평생교육대학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