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 내 가슴에 한 번은 만날 사람 -
바다를 안고 사는 사람들
조종명
바닷가에 가서
바다가 가까운 담벼락에 핀
고들빼기 한 포기를 보았다
남편은 파닥이는 바다를 건져오고
아내는 바다를 받아 판다
무더운 태양은 더욱 가까이 비치고
비린내 실은 바람은
마을에 상주하고
관광버스는 골목 가에 서서
속을 다 비워 비린내 빠진 고기와
쪄서 말린 멸치를 태워간다
바닷가 사람들은 고들빼기와 같이
한 생애를
비린내의 진한 영양을 마시며 산다
나는 잠시 보고 왔을 뿐이지만
바다를 품은 사람들이 바닷가에서
비린내를 마시며 살고 있대
,
* 조종명 : 1992년 농민문학 등단, 작품집으로 ‘남영의 후예로 살아가기’ 등 다수
제6회 현봉문학상 수상
이 절박한 순간, 어찌하여 이 시가 기억나는지 나도 모를 일이었다. 그녀는 엉거주춤, 아주 낯선 얼굴로 내 앞에 앉았다. 201호는 자신이 대단한 일을 한 마냥, 그녀 앞에서 온갖 허세와 추태를 보였다. 그녀는 내 얼굴을 정면으로 보지 않았다. 그건, 이제야 그녀도 내가 누군지 알고 있다는 증거였다.
“자, 자. 이것 드셔 보세요. 이게 제가 만든 특급 요리입니다. 피라미, 붕어, 버들치와 라면을 넣고 끓인 라면 매운탕입니다.”
그는 종이컵에 손수 라면과 매운탕을 담아 그녀에게 건넸다. 처음엔 쑥스러워하던 그녀도 마지못해 그의 종이컵을 받아 한입 먹더니, 이내 표정이 밝아졌다. 그는 대단히 만족하는 것 같았다.
“맛있죠? 엄청 맛이 있지요?”
그의 호들갑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표정은 예전, 그녀가 뾰로통해 있을 때내가 갖은 아양으로 그녀의 화를 풀어주면 마지못해 끄덕이던 그 모습이었다. 갑자기 나는 소주가 먹고 싶어졌다.
“참! 인사할게요. 저는 바로 옆방 201호에 묵는 남자이고, 이 친구는 어제 봤겠지만, 이 펜션의 주인이자 시인입니다. 물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돌팔이 시인이긴 하지만요. 그건 그렇고 어제 많이 힘드셨죠?”
그러자 그녀가 계면쩍은 웃음을 보이며 말을 꺼냈다.
“어젯밤 일이라면, 죄송했어요. 남편이 평소엔 그러지 않은 데 어젠 술이 많이 과했어요.”
그녀의 사과에 그는 화들짝 놀라는 척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닙니다. 괜찮아요. 이런 피서지에서 그런 일은 다반사지요. 그런데 남편이라 하셨나요? 아니, 결혼했단 말씀입니까? 제가 보기엔 아직 아가씨인 줄 알았는데.”
그녀의 말에 그녀는 웃었다. 아주 옛날 내가 우스운 이야기를 하면 그녀는 목젖이 보일 만큼 크게 웃었다. 오늘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그녀의 웃음은 예나 지금이나 아름다웠다.
“이봐! 자네도 한마디 해. 이런 미천한 자리에 빼어난 미인이 오셨는데 펜션 주인으로 축하의 시라도 한 소절 읊어야 하지 않겠어?”
나는 201호가 주제넘은 소리를 한다, 판단하여 그의 옆구리를 쳤다. 그런데 이런 나의 행동을 그녀는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소심한 친구! 그건 그렇고 어디서 오셨습니까? 말투로 봐서 저기 위쪽에서 온 것 같은데.”
“서울이에요.”
나는 순간, 그녀가 서울에서 왔다는 사실에 의아했다. 내가 알기론 그때 우리가 함께했던 공간, 무산 시에 있는 줄 알았는데 그새 무슨 일이 있나 싶었다.
“아! 그렇군요. 서울에서 여기를 어찌 알고 찾아왔습니까?”
그녀는 그의 말에 한동안 말을 하지 않다, 겨우 입을 열었다.
“남편이 젊었을 때, 지리산에 몇 번 왔다고 했어요. 결혼 전에 이 펜션에 한 번 왔다면서 휴가차 오게 된 건데, 오랜만에 오다 보니 길을 잃고 헤매다 어젯밤 늦게 겨우 찾아오게 되었어요.”
그녀가 또박또박 말대꾸를 해주자 그는 신이 났는지 이번에 그녀에게 종이컵에 술을 가득 따라 권했다. 그런 그를 보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쳤다. 이런 자리에 술을 권하는 것은 예의도 아닐뿐더러 내가 불편했다.
“안 돼! 술은 안 돼.”
하지만 나의 말에 분위기는 싸했다.
“뭐야? 왜 그래?”
그러자 그녀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는 날 이상한 눈으로 보더니 그녀에게 재차 권했다.
“매운탕은 소주와 함께 먹어야 제맛입니다. 아무리 팔팔 끓였다 해도 민물고기는 독이 남아 있습니다. 민물고기 독을 해독하는 게 소주잖아요.”
그녀는 내 예상과는 달리 그가 권하는 소주를 받고선 아무 말 없이 한 컵을 다 마셔버렸다. 이 광경에 그는 환호했고, 나는 가슴이 턱, 하고 막혔다.
“와우! 술 잘하시네요. 어떻게, 한 잔 더 드릴까요?”
그의 말에 그녀는 이상하게도 아무런 거부 없이 몇 잔을 연거푸 마셨다. 그녀 또한 이 상황이 아주 불편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전문 술꾼도 아닌 그녀가 밤도 아닌 아침나절에 소주를 먹었으니 아니나 다를까. 저 멀리 개울가로 가더니 먹은 음식을 게워내고 있었다. 나는 더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괜히 술을 먹였다고 자책하는 그를 뒤로하고 나는 그녀에게 달려가 등을 두드려주었다.
“술도 잘 못 하면서 왜 받아먹었어.”
그녀의 등을 두드리면서 나는 또 예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날도 그녀는 전혀 몸에 받지 않은 술을 마셔 이렇게 토를 해야만 했다. 토를 하고 나서 그녀는 울었다. 나는 지친 그녀의 몸을 뒤로 안아주었다.
“괜찮으니 자리로 돌아가세요. 부탁이에요.”
그녀의 차가운 말에 나는 별수 없이 201호가 있는 자리로 돌아왔다. 그녀는 한참 동안 그곳에 있다, 말도 없이 펜션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 자리에서 남은 소주를 병째로 마시고 말았다. 놀란 201호가 날 부축하여 펜션으로 돌아왔을 땐,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한참을 잔 것 같았는데 시계를 보니 오후 6시였다. 속이 쓰려 컵라면이나 끓여 먹으려고 커피 보트에 물을 붓고 있을 때 안내실 창문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똑똑’
나는 누군가 싶어 창문을 열었다. 그는 그녀의 남편이었다. 그는 까만 봉지를 하나 들고 서 있었다. 웬일인가 싶어 고개를 내밀자 그는 겸연쩍게 웃으며 내게 인사를 했다.
“미안해서요. 어제 제게 맥주를 그냥 줬잖아요. 그래서 아까 읍내에 나가서 소주랑 맥주 좀 사 왔습니다. 괜찮으시다면 같이 한잔할 수 있을까요?”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모면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솔직히 아직 술이 깨지 않던 차에 나 역시 컵라면과 해장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게…….”
“에이! 사장님. 한잔합시다. 제 아내는 술을 못 해요. 그래서 함께 마실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게 말을 하고서는 그는 무작정 안내실로 들어와 버렸다. 별수 없이 나는 커피 보트에 물을 더 부어 라면을 두 개 끓이기로 했다. 남자는 술을 잘 마셨다. 술이 들어가자 그는 장황하게 도시에서 그가 하는 일을 설명했다. 대충은 알고 있던 터라 크게 개의치 않았지만 나는 그와 그녀의 사이가 왜 틀어졌는지 그 이유는 알고 싶었다. 하지만 초면에 부부의 내면적인 생활을 묻는다는 게 쉽지 않아 이야기를 풀어가기 쉽게 아까 그녀가 했던 말이 생각나 물었다.
“예전, 젊었을 때 이곳에 왔다고 했죠? 그땐 주인이 제가 아니라, 저의 삼촌이셨는데 기억나십니까?”
그러자 그는 생뚱맞은 표정을 지었다.
“제가요? 아뇨. 이곳엔 처음인데요.”
“처음이라고요?”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나 싶었다.
“네. 저는 지금까지 지리산 근처에도 못 와봤습니다. 아내가 하도 이곳에 오자 하기에 억지로 온 것 뿐이에요. 그런데 막상 와보니 좋긴 좋네요. 저녁만 되어도 시원하고 앞에 개울도 있고요. 지금 서울엔, 미세먼지랑 폭염으로 정말 짜증 나게 덥거든요.”
나는 순간, 그녀가 왜 이런 거짓말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군요. 아내분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와이프요? 아까 아침결에 개울가에서 뭘 잘못 먹었는지 지금, 방에 누워있습니다. 아니, 자기가 놀러 오자 해놓고선 저리 아프다고 누워만 있네요. 제가 답답해 죽겠어요.”
그는 종이컵에 소주를 가득 부어 단숨에 마셨다. 그를 보니 젊은 날, 나의 술 마시는 모습이 떠올랐다.
“회계사 일은 잘되십니까?”
나는 뭐라도 질문해야 할 것 같아 아까 남자가 도시에서 성황리에 운영한다는 회계사 사무실을 입에 댔다.
“뭐, 그저 밥 먹고는 삽니다. 그런데, 사장님.”
그가 말을 하다말고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일순 나는 그가 어떤 당혹스러운 질문을 할까 봐 순간적으로 머리가 쭈뼛거렸다.
“우리 어디서 한번 만나지 않았습니까?”
머리 좋고 똑똑한 그였다. 나는 숨을 고르기 위해 내 잔에 있던 술을 남김없이 목 안으로 부었다. 그리고는 분명히,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요. 저는 초면입니다. 선생님을 본 적이 없어요.”
“그래요? 이상하다. 제 기억은 비교적 정확한 편인데. 뭐, 그래도 절 모르신다 하니 사장님 말씀이 맞겠지요. 자자, 한 잔 더 드십시오.”
아직 그는 술이 많이 취하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깊게 호흡하며 그가 건넨 술을 마시고는 내 잔을 그에게 권했다. 잔이 오가길 수십 번. 나도 그렇지만 그도 몹시 취하고 말았다. 술에 취한 그는 아까의 질문을 반복했다.
“사장님. 솔직히 말씀해보세요. 우리 어디선가 분명히 마주친 적이 있잖습니까. 내 머리는 비상하다구요. 이래 봐도 제가 S대 출신입니다.”
술에 취해 혀는 꼬였지만, 그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나는 그의 의도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이쯤에서 술자리를 마무리하기 위해 201호를 불렀다.
“뭐야? 나 빼고 둘이 이렇게나 많이 마신 거야?”
201호는 안내실로 들어서자마자 아주 당황한 표정이었다.
“누구셔?”
“아까 그 여자의 남편분이야. 좀 모셔가 줘. 많이 취했어.”
그러자 그녀의 남편은 다짜고짜 화를 냈다.
“무슨 소리? 내가 취했다고요? 아니, 이 정도 마시고 무슨 술에 취한단 말입니까? 그러지 마시고 새로운 분도 오셨으니 우리, 딱 한 잔만 더 합시다.”
그러기나 말기나 이제 더 마실 술도 없었다. 냉장고를 확인한 남자는 그제야 201호의 부축을 받고 안내실을 비틀거리며 나갔다.
“내 참! 손님에게 이런 일을 시켜도 되는 거야? 내일 한 잔 사!”
201호의 날카로운 외침에 나는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새벽녘이었다. 어제 낮에 두어 차례 마신 술 때문인지 벌써 몇 번이나 요의를 느껴 화장실에 들락거리다 보니 잠이 깨고 말았다. 담배를 한 대 피우려 밖에 나가보니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이럴 때 내일 아침에 비가 온다면 개울에 담가 놓은 김치 등 반찬 통이 불어나는 개울물로 위험해질 수 있어, 나는 안내실에 들어가 두꺼운 옷을 입고 개울가로 가기 위해 랜턴을 챙겼다.
그녀는 왜 어제 아침 그 자리에서 거짓말을 했을까. 개울가로 가는 내내 나는 그 생각에만 골똘했다. 개구리와 풀벌레 소리가 몹시 시끄러운 것으로 봐서 아침 녘에 비가 올 것은 확실했다. 반찬 통을 담건 개울가는 어제 그녀가 앉아있건 자리에서 멀지 않았다. 나는 끈으로 묶어뒀던 반찬 통을 꺼내 재차 큰 바위 사이에 두고 작은 돌을 넣어 아무리 개울물이 넘치더라도 움직일 수 없도록 단속했다. 작업을 마치고 일어설 때였다. 느낌에 내 뒤에 무엇인가 있는 것이 느껴져 뒤를 돌아보니 사람이 있었다.
역시, 그녀였다.
첫댓글 혹시 내가 알던 여자가 아님니까?
작정을 하고 나를 찾아왔으면 일이 어떻게 전개될런지?
ㅋㅋ. 선생님께서도 이리 수준 높은 농담을 하십니다. 여하간 저도 선생님을 비롯한 우리 회원님들의 시를 옮기면서 다시 한번 더, 시의 깊이와 연륜을
맛보고 느끼고 있습니다.
지역 문학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