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존재론과 인식론으로 크게 나뉘어져 있고 존재론은 관념론-유물론,일원론-다원론으로 대립되어져 있고, 인식론은 인식의 단초로 이성(합리론)이냐 감각경험(경험론)이냐,아니면 이 둘의 적절한 조합(칸트의 비판철학)이냐로 나뉘어 진다.
또한 인식론은 우리가 인식하는 한에서만 무엇인가를 말할 수 있다는 관념론 혹은 현상론이 있고 인식대상은 우리가 인식하는 것과는 독립해서 존재하는 실재라는 실재론이 있다고 한다.
어떻튼 의식에 반영되는 객관의 세계가 우리의 의식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있든 없든간에 우리가 인식하는 것이 참이냐 거짓이냐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진리에 대한 정의는 이렇다. '참된 인식이란 실재와 합치하는 인식이다.' 그렇다면 인식과 실재와의 합치여부를 어떻게 가려낼 것인가? 어젯밤 본 갈머리 숲과 낮에 본 갈머리 숲은 같은가? 내가 본 숲과 여러사람이 본 슾은 같은가? 상식적인 인식과 전문가의 인식은 같은가? 이러한 인식의 다양함속에서 우리는 참된 인식을 가려낼 수 있을까? 그래서 철학자들은 그 기준을 여러가지로 제시하게 되는데 정합설(무모순성,체계내 일관성),일치설(인식과 사실의 일치성),실용설(실생활에서의 유용성),합의설(인식하는 자들 사이의 합의)등이 있다. 어떻튼! 어떤 인식이 더 유용하고 더 설득력이 있는가를 기준으로 참된 진리라 정했을 때 이런 문제가 생긴다. 실재라고 하는 것이 인식하는 자와는 무관하게 그자체로 불변하여 존재하는 것이라 한다면 이러한 기준은 실재에 대한 개념자체를 부정하게 된다. 왜냐면 유용성과 합의라는 것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 때문에 우리가 인식하는 것에만 신경쓰자는 관념론이 등장하는 것이고 그래도 실재론을 사수해야 한다고 버티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한 도대체 인간은 객관적 실재(진리)에 도달할 수는 있는거냐고 묻기도 하는 것이다.
인간인식능력에 부정적인 사람들은 인간의 인식구조는 고정불변하고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 이상을 넘어서는 것에 대해서는 '의미있는'인식을 못한다고 주장했다. 칸트의 불가지론이 그러한 대표적 예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분명 현재의 인간이 인식하고 있는 것은 오류와 착각으로 점철돼 있지만 끊임없는 노력으로 절대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예가 헤겔의 변증법이다.
헤겔은 사유와 존재가 갖는 운동성은 긍정-부정-부정의 부정이라는 3단계 운동법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운동은 나선형의 발전을 이루며 절대정신에 다가간다고 주장했다. 변증법은 철학의 모든 체계에 적용된다. 존재의 입장에서는 존재론적 변증법,의식의 입장에서는 인식론적 변증법,운동과정으로서의 변증법적 발전이라는 말이 있다. 이원론보다는 일원론에 위치하고,형이상학적 세계관과 대립이 된다.물론 칸트의 불가지론과도 대립된다.논리학에서는 A는 A이다라고 주장하는 형식논리학과 대립한다. 변화라는 개념을 도입하면 A는 A이면서 A가 아니기 때문이다.
변증법이 자연과학에 도입이되면 유물변증법이 제대로 적용되지만 역사와 사회는 다양한 변주를 띄며 적용이 된다. 긍정에 의한 통일,부정에 의한 반란, 긍정과 부정의 단점만 통일이 되어 파국으로 가거나, 제대로 된 부정의 부정을 통해 한단계 발전하는 것으로 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의 의지와 실천의 작동이라는 변수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유년시절 우리는 부모와 선생님의 말슴을 무조건 수용하면서 살았다.(긍정).그러다 머리가 크면서 불만도 샇이고 불평도 하고 면종복배하기도 한다.(양적 증가) 그러다 어느 순간 공개적으로 항의를 한다.(질적 변화). 이제 이 둘은 머리를 맛대고 고민하기 시작한다.여기가 중요하다. 인간은 멋있게 합을 이루어내지 못한다. 부정을 완전 죽이는 방향으로 갈 수 있기도 하고, 양쪽의 단점만 꼽아서 더욱 나쁜 쪽으로 나아가 파국으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부정의 부정을 통해 선순환방향으로 이끌어 간다. 이때 상대방의 모순도 부정되지만 나의 모순도 부정된다는 것이다. 양자의 모순이 동시에 부정이 되어야 선순환방향으로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연평도 분쟁을 바라봐야 할 자세는 변증법적 태도라고 생각한다. 북한은 우리를 공격했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다. 비난받아 마땅하다. 우리는 당연히 응사했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전몰한 장병과 회생된 민간인에 대해 추모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자주포가 제대로 작동했는지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용감무퇴형 장군이 국방부장관이 되는 것도 맞다.우리의 대응은 그럴 수 있다. 그렇다면 북한은 그들도 내부 단속과 전열정비에 힘을 쏟겠지.그렇다면 그 다음에는 또 한판 붙어야 하나? 그리고 그 다음의 결과는...변증법이 합만 바라는 것은 아니니..둘 중 하나 죽을 때까지 한 판 붙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양 세력이 한 판 붙을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결국 자신들의 내부 체제단속에 이용할 것이 더 뻔한 내용이다.북한은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북한의 의도는 무엇일까? 단지 호국훈련때문에 포를 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을 우리가 파악하고 우리는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점검하고 대응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싶다. 내 생각에는 북한의 요구는 체제고립에서 벗어나고 체제의 안전보장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이고 미국과의 직접대화가 아닐까? 그걸 들어주고 세계체제로 편입되는 것이 우리에게 더 유리한 것은 아닌지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그렇게 하지 못할까? 고민하고 또 고민해 볼일이다.
책에 나온 말을 인용해 본다.
" 도토리가 부정되어야 참나무가 되고 참나무의 꽃이 부정되어야 도토리가 열린다.그렇다고 도토리의 본질이 부정이 되는 것은 아니다.그렇기 때문에 참나무에 도토리가 열리지 배나 감이 열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도토리가 반드시 참나무가 되어 새로운 도토리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아니다. 도토리는 묵이 될 수도 있고 썩어서 거름이 될 수도 있고,참나무는 땔감이 될 수도 있다."
남북은 동포요 한민족이다. 그 본성은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그 둘은 남의 나라의 묵이 될 수도 있고 땔감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이 변증법의 또 다른 변주다. 진정으로 선순환변증법으로 가기 위해 우리는 민족 주체성으로 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선은 정치지도자가 그 다음에는 시민들의 비판정신이, 마지막으로 국민들의 중용된 행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첫댓글 원원장님의 변증법적 사고에 많이 배웁니다. 우리들은 사실 앎(지식)과 실천(사고력)이 분리되어 있어, 어떤 현상에 대해서 판단할 때 분리된 행위를 합니다.
특히 철학적 사고와 행위에서는 더 그러합니다. 또한 미디어에 포위되어 있어 내 자신의 사고력이 방해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현상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사고 보다는 의도되는 흐름에 이끌립니다. 특히 남북한의 문제에서는 철저하게 '교육되어진 사람들'입니다. 내 안과 우리 안에는 '자신도 모르게 적개심'이 엄청 쌓여있습니다.
늘 전쟁입니다. 이 이상한 전쟁의 상태를 나와 우리와 대한민국과 북한은 평화롭게 해결해야 합니다. 이것만이 '정상'으로 가는 길입니다.
늘 전쟁을 하는 내 마음이 평화로워야 앞으로의 미래를 계획하고 힘차게 전진할 수 있습니다. 남북의 미래도 이와 같습니다.
전쟁의 상태(정전협정 상태)를 평화의 상태(평화협정)로 나아가야 우리와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보장될 기틀이 마련될 것입니다.
후배들이 연평도에서 전사한것에 대하여 매우 가슴아프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현실속에서 참담할 뿐입니다. 정전협정이 든 평화협정이든 통일정부가 들어서기전까지는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문구란 기득권의 말장난에 불과하기 때문에요. 이스라엘과 대만이 부럽습니다... 이유는 나중에 술한잔 할 기회가 된다면 하지요...
변증법 참 오랫만에 들어봅니다.
부정의 부정의 법칙,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의 법칙, 양질전환의 법칙...
새것과 낡은 것이 투쟁을 하면 비록 낡은 것이 기승을 부릴지라도 새것이 이기게 됩니다.
또한 사물현상의 변화발전에서 내적 요인은 규정적이고 주체적 요인은 결정적입니다.
그리고 양적으로 축적이 되면 한계점을 넘어 질적으로 변환을 이루게 되지요.
남북관계만을 짧게 얘기하면
남과 북은 corea로 통일되었다가 korea로 갈렸으며 다시 그리고 더욱 진보적인 corea로 통일 될 것입니다.
문제는 주체입니다.통일이냐 반통일이냐의 생각과 실천이지요.
노무현정권시 체결된 '10.4 선언'이 이행되었다면 서해는 남북공동어로수역이되어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명박정부의 '비핵개방 3000'으로 반통일 정책이 되어 쌀을 보내지 못해 쌀값은 하락했고,
금강산 관광재개가 어려워져 금강산에 투자한 경제인들과 강원도 고성지역 경제가 위기에 봉착했으며
천안함으로 작전권 이양이 2015년으로 미뤄졌고, 연평도로 불안해지고 있는 정세이지요
하지만 끊임없는 통일의 열기와 투쟁으로 반드시 통일이 이뤄질 것이고
'7.4남북공동성명', '6.15공동선언', '10.4선언'의 통일원칙과 이정표, 방안을 가진다면
남과 북은 통일로 한 걸음 다가 설 것입니다.
조미평화조약체결, 6자 혹은 4자간의 합의, 남북당국간의 통일 실천이 통일된 조국을 만들 것이며
이를 위해 온 국민이 일어서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변증법적 사고이며 철학은 앎이 아니라 실천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통일된 조국을 바라는 경구의 짧은 단상이었습니다.^^
유물론과 변증법에 관련된 자료가 있습니다. 저도 가끔보면서 공부하기도 하지요.
필요하면 드리겠습니다. 단지 운동권용이라 부담이 있으실 수는 있겠네요.^^
헤겔의 변증법을 연평도와 이어 설명해 주시니 이해하기 쉽습니다.게속 읽어보니 철학도 조금 재미가 있어지려고 합니다.
평화비용: 통일 이전 한반도 평화 유지와 정착을 위해 지불하거나 지불해야 할 비용을 모두 합친 것(평화비용의 의미와 실익,통일연구원,2005년10월).즉,평화를 지키고 평화를 만들어 가는 모든 비용을 의미한다. 전쟁억지및 안보불안해소를 위해 드는 비용으로 남북경협 및 대북지원에 드는 비용도 포함된다.
서독의 평화비용: 서독의 대동독지원은 연평균 1인당 50달러.통일직전인 1989년은 서독GDP의 2.9%.2007년 집행된 남북협력기금은 7150억원,국민1인당 1만5천원.2005년 통일연구원연구에 의하면 서독의 동독지원규모와 같으려면 2000년 대비 1인당 지원규모는 20배정도,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70배로 늘려야 했다.
2011년 국방비 예산 32조 127억원.김대중.노무현정부시절 10년간 북한에 4조원 지원.G20 1박2일의 행사의 경제적 효과가 21조-31조원에 이름.그렇다면 북한 4조원의 지원이 갖는 경제적 효과는? 남북협력기금 조성액 2006년에 1조 6266억원(정부 출연금 5152억원),09년 조성액 1554억원(정부출연금 0원)
사람은 인식 과 실천이 분리될때 누가 막는다해도 장기적으로 보면 완전성을 유지하려 통합하려 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