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프리카(Out of Africa)'-감독:시드니 폴락 주연:로버트레드포드, 메릴 스트립시드니 폴락이 감독하고
메릴 스트립과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한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현대 영화의 흐름에서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웅장한 감정의 깊이를 지닌 작품이다.
아프리카의 풍광이 직접 옆에서 지켜보는 것처럼 숨막힐 듯 아름다우며,
등장인물들의 열정과 모험은 문학적 깊이를 지닌 대사와 더불어
지난 시대의 삶의 너비와 깊이를 체험하게 하는 공감을 준다.
풍경과 인간을 함께 담아놓은 스크린-
그 압도적인 크기의 매력에 반할 만한 영화인 것이다.
또한 웅장한 스펙터클의 정점에는 광활한
아프리카의 창공을 가르는 장쾌한 ‘비행’이 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덴마크 백작부인 카렌(메릴 스트립)이
아프리카 케냐에서 커피 농장을 꾸리는 이야기다.
카렌은 아프리카에서의 삶을 사랑했으나
농장이 불타고 꿈이 사라지면서 덴마크로 돌아갔으며
다시는 아프리카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곳에는 사라진 농장에의 꿈뿐만 아니라
평생 다시 경험하지 못할 만큼 사랑했던 남자를
저 세상으로 보낸 추억도 묻어두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카렌이 이삭 디네슨이란 이름으로 출간했던 회고록을
각색해 만들어졌는데 많은 감독들이 이 이야기에 탐을 냈으나
워낙 문학적 격조가 높아 영화로 만들기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작품이기도 하다.
정복과 소유의 서구 문명 거부한 두 주인공때는
제국주의가 기세를 올리던 20세기 초.
카렌은 브로어 남작과 일종의 계약결혼을 맺기로 한 후
목장을 경영할 계획으로 아프리카에 온다.
카렌은 브로어가 자기 재산을 늘려 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브로어는 그저 사냥에만 관심이 있다.
카렌이 부딪치는 것은 브로어의 무관심뿐만이 아니다.
이곳 아프리카에서 유럽인들, 특히 백인남성들은
자기네만의 왕국을 꾸리고 있었다.
백인 남성 다음엔 백인 여성이 있고 그 다음엔 흑인들이 있으며,
서구 문명사회의 흐름과는 동떨어진
이 왕국에서 백인들은 엄격하게 위계화한 사회 질서를 즐기고 있었다.
분방하고 관대한 기질의 카렌은 그런 사회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흑인들의 삶을 이해하진 못하지만
그네들 앞에 군림하려고 들진 않았다.
한 흑인 소년이 상처를 방치해 다리가 썩어 가는 것을 본
카렌은 눈살을 찌푸리는 대신
그 소년에게 병원에 가면 어떤 이득이 있는지,
무엇이 남자다운 용기인지를 차분하게 설득한다.
훗날 그 소년이 자기 요리사로 들어와
유럽식 대신 아프리카식 요리를 고집할 때도
카렌은 명령하고 타박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근본적으로 다른 문화, 정신을 흡수할 만한
용기와 관용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카렌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백인의 문화, 발달한 서구 문명의 혜택을 받은 귀족부인의 교양이다.
카렌이 사랑에 빠지는 데니스는 다르다.
그는 카렌만큼 굉장한 문학 애호가이자 교양인이지만
서구 문명인의 우월감이 없다.
아프리카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냥을 해서 먹고 사는
타고난 자유주의자이자 모험가인
데니스는 흑인들에게 백인의 글을 가르치려 하는
카렌에게 점잖게 충고한다.
“흑인들에게 글이 없는 게 아니오.
그들에게도 글이 있어요.
다만 쓰지 않을 뿐이지.
그들에게 표현할 언어가 없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데니스는 심정적으로 흑인들에게 더 가까이 닿아 있다.
백인들이 정복하고 소유하는 문명이라면
흑인들의 문명은 그런 소유가 끼어 들어갈 자리가 없는 그런 문명이다.
영화의 한 대목에서 데니스는 말한다.
“우리가 모두 뭔가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니지요. 단지 스쳐지나갈 뿐인 거야
비행기에 실은 자유·영원의 사랑그
렇기 때문에 데니스는 카렌을 사랑하지만
결혼이라는 제도에 묶이길 거부한다.
카렌은 커피 농장을 꾸려 흑인들과 함께 하는 삶을 꿈꾸고
데니스는 이곳 저곳으로 사냥을 다니다가 스쳐지나가듯 카렌의 집에 들른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근본적으로 비슷한 영혼을 지녔다.
카렌과 데니스는 아프리카에 지배자로 온
다른 백인들의 자리와는 전혀 동떨어진 곳에 있다.
영화 초반, 두 사람이 처음 입맞춤을 나눴던
신년 전야의 파티에서 그런 두 사람의 기질과
딱딱한 외부 사회의 분위기는 잘 대비된다.
두 사람이 막 입맞춤을 나누고 감정을 교환하려는 찰나에
누군가의 선창으로 영국 국가가 합창으로 불러지고 자리는 숙연해진다.
그곳은 감정의 자유로운 교환과 타인에 대한 배려보다는
격식을 강조하고 이윤 추구에의 욕심을
세련된 문명의 예절과 맹목적인 애국심으로
감추고 있는 정글이었던 것이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연기하는 데니스는,
레드포드 특유의 나르시시즘이 풍기는 분위기가 사라진 아주 담백한 인간상이다.
그는 천의무봉의 유랑자 기질을 지닌 남자이며 어느 것도 소유하려 들지 않는다.
스스로 자유롭고 싶어하며 다른 사람에게도 구속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런 데니스의 기질을 반영하는 것이 바로 비행기.
데니스는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볼 때마다 황홀경에 빠지고
결국 스스로 경비행기를 구입해 카렌을 태운다.
“언제 조종을 배웠죠?”라고 카렌이 묻자 데니스는 말한다.
“얼마 전에.” 두 사람이 함께 탄 비행기가 아프리카의 하늘을 날 때,
카메라가 비상하는 두 사람의 눈 높이에서 따라가며
하늘의 풍광과 저 밑의 아프리카 대지를 비추는 장면은 장관이다.
그리고 감동의 절정에서 하늘로 손을 들어 마주잡는
두 주인공의 손짓은, 태고부터 그랬고,
앞으로도 영원할 듯한 아프리카의 자연과 하늘과 함께
영원으로 이어질 사랑을 느끼게 한다.
대지 안에 자기의 안식처를
정하지 않았거나 정하지 못한 두 자유인의
영혼의 심상을 비추는 근사한 이미지이다.
카렌과 데니스 두 사람은 결국 맺어지지 못하지만,
끝내 남아 있는 느낌은 한때나마
두 사람이 함께 비행기를 타고 영원히 비상할 듯이 보였던
그 비행의 순간이다.
그것은 대지에 발을 붙이기를 거부하고 자유인으로 살고 싶어했던
두 인간의 무구하지만 덧없는 희망의 아주 아름답고 시적인 표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