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MD사역자” (고후 5:18)
할렐루야! 사랑하는 MD사역자 여러분, 옆에 계신 분들과 믿음으로 인사하시겠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예비하시는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급속하게 변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곧 AI가 사람의 질문에 대답하고, 길을 안내하며,
때로는 사람의 마음까지 위로하겠다고 말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MD사역자 여러분,
아무리 과학과 기술이 발전해도 인간의 영혼 깊은 곳에 있는 죄의 문제와 죽음의 두려움,
고독과 절망의 문제까지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영혼을 살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능력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에 있습니다.
세상이 더욱 편리해질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더 외로워지고 있습니다.
정보는 많아졌지만 마음을 나눌 사람은 줄어들고, 연결은 많아졌지만 진정한 관계는 약해지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시대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과 성령의 감동, 즉각적인 순종으로
세상의 상처받은 영혼을 품는 MD사역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맡기신 MD의 사명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화목의 중재자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8절은 말씀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을 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중재자, 곧 MD의 사명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중재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없었고,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철저한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사셨습니다.
죄인을 용서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며, 소외된 자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몸을 내어 주심으로
죄로 막혀 있던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목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과 우리를 이어 주는 구원의 다리입니다.
그 주님께서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단지 교회에 출석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나 자신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희생하며,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는 화목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세상의 패배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가정과 일터와 교회와 세상 속에서 상처받은 사람과 하나님의 사랑을 연결하는 화목의 중재자입니다.
이 거룩한 사명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담대히 일어서시기를 바랍니다.
2. 자아를 내려놓고 직접 찾아가는 ‘가만이’가 되어야 합니다
화목의 중재자라는 사명을 감당하려면 먼저 우리의 자아가 십자가 앞에서 깨어져야 합니다.
내 생각, 내 고집, 내 자존심만을 붙들고 살아가면 다른 사람을 품을 수 없습니다.
날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성령의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감동에 즉각 순종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십자가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MD사역의 첫 번째 실천은 ‘가만이’입니다.
“가서, 만나서, 이야기하자!”
상처받은 사람에게 먼저 가야 합니다.
낙심한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주어야 합니다.
AI가 많은 정보를 제공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외로운 사람의 집을 직접 찾아가 손을 잡아 줄 수는 없습니다.
병상에 누워 있는 사람 곁에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해 줄 수도 없습니다.
실패한 사람을 안아 주며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는 일도 기계가 대신할 수 없습니다.
이 일은 성령의 사랑을 받은 우리가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들을 기다리기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병든 자와 소외된 자를 직접 찾아가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셨고, 세리의 집에 들어가셨으며,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셨습니다.
우리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이웃의 삶의 자리로 들어가야 합니다.
낙심한 사람에게 다가가 사랑의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고 말해 주어야 합니다.
병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고, 외로운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주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실제적인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다툼이 화목으로 바뀌고, 절망이 소망으로 바뀌며, 눈물이 기쁨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어둠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3.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오는 ‘오만이’의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품고 먼저 찾아가는 ‘가만이’의 삶을 살면,
그다음에는 ‘오만이’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오만이’는 “오라, 만나서 이야기하자”라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이 우리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스스로 찾아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로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삶에서 사랑하고, 용서하고,
섬기며, 화목하게 하는 모습을 보여 줄 때 사람들은 궁금해합니다.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용서할 수 있을까?”
“저 사람에게는 왜 저런 평안이 있을까?”
“저 공동체에는 왜 저렇게 따뜻한 사랑이 있을까?”
그러면서 사람들은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을 보기 시작합니다.
교회 부흥은 사람을 억지로 끌어오는 데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정과 일터와 이웃 속에서 예수님의 향기를 나타낼 때 시작됩니다.
우리가 먼저 다가가 진실하게 섬기면, 상처받은 사람들이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들이 “나도 그 하나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나도 그 사랑의 공동체에 가고 싶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스스로 찾아오게 됩니다.
강단에서 십자가 사랑의 복음이 선포되고,
성도들이 서로를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며, 소그룹마다 사랑과 돌봄이 살아 있다면
낙심한 영혼들이 다시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교회는 상처받은 사람들이 정죄받는 곳이 아니라 치료받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외로운 사람들이 가족을 만나는 곳이 되어야 하며, 절망한 사람들이 다시 소망을 얻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MD사역자들이 먼저 이러한 교회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MD사역자 여러분!
AI 시대가 되었다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사랑과 희생, 용서와 섬김, 눈물의 기도와 성령의 역사는 기계가 대신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약하지만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 강하십니다.
날마다 기도로 영적으로 깨어나십시오.
가정과 일터에서 화목의 중재자로 일어서십시오.
다투는 사람들 사이에 평화를 이루고, 낙심한 사람에게 소망을 전하며, 외로운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십시오.
우리 모두 ‘가만이’가 됩시다.
“가서, 만나서, 이야기합시다!”
그리고 우리의 사랑과 섬김을 통하여 사람들이 스스로 예수님께 나아오는 ‘오만이’의 축복을 누립시다.
“오라, 만나서 이야기하자!”
할 수 있습니다.
하면 됩니다.
해봅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품고 이 차갑고 메마른 세상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갑시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과 세상을 연결하는 화목의 중재자가 되고,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며,
수많은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는 복된 MD사역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성령님께서 지금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아멘!
첫댓글 성령하나님 인도하시고 역사하여주옵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