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의 첫 번째 덕목은 하심이며 겸손이다.
공부를 많이 했다는 말은 공부와 멀어졌다는 말이다. 해도 한 바가 없이 할 수 있어야 한다.
수행을 많이 했다고 말하는 순간 그 사람의 수행은 깨달음과는 정 반대로 치닫고 있다.
포교를 했고, 법보시를 했고, 열심히 기도를 했으며, 온갖 불사를 했고, 정토를 일구는 일에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공덕은 사라진다.
그래서 달마는 전국에 온갖 불사를 이루어 놓은 양무제에게 아무런 공덕이 없다고 했다.
공덕은 없다. 인간과 천상의 작은 과보를 받을 뿐.
아무리 복을 짓더라도 그것은 천상에 태어나거나,
조건 좋은 인간으로 태어나거나 하는 그런 작은 과보만을 받을 뿐이다.
물론 사람들에게는 그런 과보처럼 크고 좋게 보이는 것이 없을 테니 큰 공덕이라고 좋아하겠지만
그것은 유루(有漏)의 공덕일 뿐, 무루(無漏)의 공덕에 미칠 수 없다.
아무리 천상에 산들, 아무리 조건 좋은 인간으로 태어난들, 설사 잘 생기고,
돈 많고, 집 좋고, 가문 좋은 곳에 태어난다고 한들 그것이 그대로 ‘행복한 삶’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 조건 속에서 괴로움에 허덕이는 이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조건을 뛰어넘어 어떠한 조건이나 상황 속에서도 의연하고, 초연하며, 여여하고,
평화로운 깨어있는 정신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 그러한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아무리 좋은 조건도 실체 없는 그림자요 헛된 환영일 뿐이다.
돈, 명예, 권력, 지위, 계급, 이 모든 것이 다 환영일 뿐이지 않은가.
그러면 참되고 진실한 공덕은 무엇인가.
청정한 지혜 공덕은 원만하며 고요하고 텅 비어 있다.
비어 있기에 세상의 법으로는 구할 수 없다.
돈이 아무리 많더라도, 지위나 계급이 아무리 높더라도,
청정한 지혜 공덕을 살 수도 얻을 수도 없다.
얻으려는 노력이나 애씀을 통해서도 얻을 수 없다.
세상의 그 어떤 법으로도 구할 수 없다.
모든 것이 텅 비어 있다.
빈 것은 따로 얻을 것이 없다. 이미 빈 그대로 충만하다.
빈 것을 또 다시 애써 비울 필요는 없잖은가.
성스러운 진리라는 것도 그와 같다.
성스러운 진리는 맑게 비어 있다고 할 수도, 그렇다고 없다고 할 수도 없다.
성스러운 진리는 성스러운 진리가 아니라 다만 이름이 성스러운 진리인 것이다.
(금강경과 마음공부 p.195-197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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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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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