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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海神廟碑(남해신묘비>는 광주(廣州)의 남해신묘(南海神廟)를 수축(修築)한 일을 기록한 비문이며, 이 비문(碑文)은 원화(元和) 15년(820년)에 한유가 지은 비문이다.
남해신은 중국의 신화 상의 축융(祝融)으로 축융을 숭배하기 위해 지은 사당이 남해신묘이다. 원화 12년(817년) 공규(孔戣)는 광주자사로 부임하여 남해신의 제사를 정성을 다해 모셨으며, 올바른 정치를 하여 광주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었다. 공규가 광주자사로 부임한 이후 3년에 걸쳐 남해신에게 제사를 드리고 남해묘를 보수한 후 원화 15년(820년) 당시 원주자사(袁州刺史)로 있던 한유에게 남해신묘를 수축한 일을 찬하여 줄 것을 청하여 한유가 그의 공을 기록한 것이다.
<고문진보후집> 31.南海神廟碑(남해신묘비) - 한유(韓愈)
海於天地間為物最巨(해어천지간위물최거)。 自三代聖王(자삼대성왕),莫不祀事(막불사사),考於傳記(고어전기), 而南海神次最貴(이남해신차최귀),在北東西三神(재북동서삼신)、河伯之上(하백지상),號為「祝融」(호위<축융>)。 天寶中(천보중),天子以為古爵莫貴於公侯(천자이위고작막귀어공후), 故海嶽之祝(고해악지축),犧幣之數(희폐지수),放而依之(방이의지), 所以致崇極於大神(소이치숭극어대신)。 今王亦爵也(금왕역작야),而禮海嶽(이례해악),尚循公侯之事(상순공후지사), 虛王儀而不用(허왕의이불용),非致崇極之意也(비치숭극지의야)。 |
바다는 천지 사이에서 가장 거대한 물체이다.
삼대(三代)의 성왕(聖王)으로부터 제사를 지내지 않은 적이 없었으며, 전해지는 기록을 살펴보건대, 남해신(南海神)의 지위가 가장 존귀하여, 북해‧동해‧서해 세 신(神) 및 하백(河伯)의 위에 있어 <축융(祝融)>이라 호칭하였다 한다.
천보(天寶) 연간에 천자께서 “옛날의 작위에는 공(公)‧후(侯)보다 존귀한 것이 없었으므로
사해(四海)와 오악(五嶽)의 축문(祝文)과 희생(犧牲)과 폐백의 수를 공(公)‧후(侯)의 예를 모방해 따랐으니, 이는 대신(大神)에게 지극한 존경을 바치기 위함이었다.
지금의 왕도 작위(爵位)인데, 사해(四海)와 오악(五嶽)을 예우함에 있어 오히려 공후(公侯)의 격식을 따르면서 왕에 대한 의례는 비워두고 쓰지 않으니, 지극한 존경을 바치는 뜻이 아니다.”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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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三代聖王(삼대성왕) : 夏(하), 殷(은), 周(주) 삼대의 성왕.
○ 祀事(사사) : 제사를 지내다.
○ 考於傳記(고어전기) : 전해지는 기록을 살펴보다. <태평어람太平御覽)> <귀신부(鬼神部)>
○ 次(차) : 지위. 석차.
○ 河伯(하백) : 황하의 신. 물의 신.고대 신화전설상의 물의 신으로 본명은 풍이(馮夷)이다. 황하를 건너다 홍수로 빠져 죽은 뒤 천제(天帝)에 의해 하신(河神)에 봉해졌다.
○ 祝融(축융) : 적제(赤帝). 중국 신화의 불의 신이자 남쪽의 신이다.
○ 天寶(천보) : 당 현종(唐 玄宗)의 연호.
○ 海嶽(해악) : 사해(四海)와 오악(五嶽)
○ 祝(축) : 제사 때의 축문(祝文).
○ 犧幣(희폐) : 희생(犧牲)과 견직물. 희생(犧牲)은 고대에 제사용 가축(소, 양등).
○ 放而依之(방이의지) : 모방해 따르다. 放은 모방하다.
○ 致崇極(치승극) : 지극한 존경을 바치다. 致(치)는 신에게 바치다.
由是冊尊南海神為「廣利王」(유시책존남해신위<광리왕>),祝號祭式(축호제식),與次俱升(여차구승)。 因其故廟(인기고묘),易而新之(역이신지),在今廣州治之東南(재금광주치지동남), 海道八十里(해도팔십리),扶胥之口(부서지구),黃木之灣(황목지만)。 常以立夏氣(상이립하기),命廣州刺史行事祠下(명광주자사행사사하),事訖驛聞(사흘역문)。 |
이로 인해 남해신을 책봉해 높여 <광리왕(廣利王)>으로 삼고, 축호(祝號)와 제사의 의식을 신(神)의 지위와 함께 올렸다.
남해신의 구묘(舊廟)가 오래 되었다 하여 바꾸어 새롭게 지었는데, 지금의 광주(廣州) 치소(治所)에서 동남쪽 뱃길로 80리 되는 곳인 부서구(扶胥口)와 황목만(黃木灣)에 있다.
항상 입하 절기가 오면 광주자사(廣州刺史)에게 명하여 직접 가서 사당 아래에서 제사를 지내고 제사를 마치면 역마를 달려 조정에 보고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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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冊(책) : 책봉하다.
○ 廣利王(광리왕) : 남해(南海) 해신(海神)의 봉호(封號). 당(唐) 현종(玄宗)은 천보(天寶) 10년(751년)]에 해신을 왕에 봉했는데, 동해신은 광덕왕(廣德王), 남해신은 광리왕(廣利王), 서해신은 광윤왕(廣潤王), 북해신은 광택왕(廣澤王)에 봉했다.
○ 祝號(축호) : 祝(축)은 육축(六祝)이다. 곧 제사 지낼 때에 신에게 올리는 여섯 종류의 기도문이고, 號(호)는 육호(六號)이니 곧 세 종류의 신과 세 종류의 제품(祭品)을 합쳐서 일컫는 말이다.
○ 扶胥之口(부서지구) : 광동성(廣東省) 향남현(香南縣) 남쪽 지명. 口는 항(港).
○ 黄木之湾(황목지만) : 부서(扶胥) 땅의 만(湾) 이름.
○ 訖(흘) : 마치다.
而刺史常節度五嶺諸軍(이자사상절도오령제군),仍觀察其郡邑(잉관찰기군읍), 於南方事無所不統(어남방사무소불통),地大以遠(지대이원),故常選用重人(고상선용중인)。 既貴而富(기귀이부),且不習海事(차불습해사), 又當祀時海常多大風(우당사시해상다대풍),將往皆憂戚(장왕개우척)。 既進(기진),觀顧怖悸(관고포계),故常以疾為解(고상이질위해),而委事於其副(이위사어기부),其來已久(기래이구)。 故明宮齋廬(고명궁재려),上雨旁風(상우방풍),無所蓋障(무소개장); 牲酒瘠酸(생주척산),取具臨時(취구림시); 水陸之品(수륙지품),狼籍籩豆(낭자변두); 薦裸興俯(천라흥부),不中儀式(부중의식); 吏滋不供(이자불공),神不顧享(신불고향); 盲風怪雨(맹풍괴우),發作無節(발작무절),人蒙其害(인몽기해)。 |
이에 자사(刺史)는 항상 오령(五嶺)의 여러 군사를 통솔하고, 그리하여 각 군읍의 관리들을 관찰하니 남방의 일에 다스리지 않는 것이 없었으며, 남방은 땅이 광대하고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항상 중신(重臣) 중에서 선발했다.
그래서 이미 신분이 고귀하고 부유하여 바다에 관한 일은 익숙하지 못했다.
또 제사를 지낼 때가 되면 항상 바다에 큰 바람이 많기 때문에 제사 지내러 가려 할 때에는 모두 근심하고 괴로워하였다.
배가 출발한 뒤에는 앞뒤를 돌아보며 두려워하며 떨었기 때문에 자사들은 항상 병을 핑계로 제사 지내는 일을 사양하고 부관에게 맡겼으며, 이렇게 해온 지가 이미 오래되었다.
그래서 명궁(明宮)과 재실(齋室)의 위에서는 비가 새고 옆으로는 바람이 들어오는데도 지붕을 덮지도 벽을 가리지도 않았으며,
희생은 비쩍 마르고 술은 시어 터졌는데, 그마저도 제사 때가 되어서야 마련하며,
수산품과 토산품이 담긴 제기(祭器)가 어지러이 놓여 있으며,
술을 올리고 몸을 일으키고 엎드리는 것이 의식(儀式)에 맞지 않았으며,
관리가 갈수록 더욱 제사를 올리지 않으니, 신(神)이 제사를 흠향하지 못하여,
세찬 바람과 사나운 비가 무시로 발작하여 백성들이 그 해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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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五嶺(오령) : 호남(湖南)·강서(江西) 남부와 광서(廣西)·광동(廣東) 북부 경계에 있는 다섯 령.
○ 仍(잉) : 인하다. 여전히
○ 憂戚(우척) : 근심하고 괴로워하다.
○ 觀顧(관고) : 둘러보다.
○ 怖悸(포계) : 두려워서 마음이 울렁거리다.
○ 為解(위해) : 변명하다.
○ 明宮齋廬(명궁재려) : 명궁(明宮)은 사당(신전)을 말하고, 재려(齋廬)는 재계하는 오두막집.
○ 牲酒瘠酸(생주척산) : 희생(犠牲)은 여위고 술은 오래되어 시다.
○ 籩豆(변두) : 대나무와 나무로 만든 제기(祭器).
○ 薦裸(천라) : 신에게 술을 올리다. 薦(천)은 올리다. 裸(나)는 울창주. 제사용으로 쓰인 술.
○ 興俯(흥부) : 몸을 일으키고 몸을 엎드리는 예식의 동작.
○ 顧享(고향) : 향유하다. 신이 제사 드리는 사람을 돌아보고 제사 올린 음식을 음향하다.
○ 盲風(맹풍) : 질풍. 가을에 부는 폭풍.
○ 怪雨(괴우) : 괴상한 비.
元和十二年(원화십이년),始詔用前尚書右丞國子祭酒魯國孔公為廣州刺史兼御史大夫(시조용전상서우승국자좨주로국공위광주자사겸어사대부),以殿南服(이전남복)。 公正直方嚴(공정직방엄),中心樂易(중심락이),祗慎所職(지신소직); 治人以明(치인이명),事神以誠(사신이성); 內外單盡(내외단진),不為表爆(불위표폭)。 至州之明年(지주지명년),將夏(장하),祝冊自京師至(축책자경사지), 吏以時告(이이시고),公乃齋祓視冊(공내재불시책),誓群有司曰(서군유사왈): 「冊有皇帝名(책유황제명),乃上所自署(내상소위서),其文曰(기문왈): ‘嗣天子某(사천자모),謹遣官某敬祭(근견관모경제)。’ 其恭且嚴如是(기공차엄여시),敢有不承(감유불승)! 明日(명일),吾將宿廟下(오장숙묘하),以供晨事(이공신사)。」 |
원화(元和) 12년(817년)에 비로소 조서를 내려 전 상서우승(尙書右丞) 국자좨주(國子祭酒) 노나라 공규(孔戣)를 광주자사겸어사대부(廣州刺史兼御史大夫)에 임명하여, 남쪽 지방을 평정하여 다스리게 하였다.
공공(孔公)은 사람됨이 정직하고 엄격하며 마음속은 즐겁고 평이(平易)하여 오직 맡은 바의 직무에만 공경스럽고 신중하게 수행하여, 백성을 다스림에 분명하였고 신을 정성으로 섬기면서 안팎으로 오직 최선을 다하면서도 자신의 장점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광주(廣州)에 부임한 이듬해 여름 무렵에 장안으로부터 축책(祝冊)이 내려오니
관리가 제사 때가 되었다고 아뢰자. 공공(孔公)은 곧 목욕재계하고 축책(祝冊)을 살피고서, 모든 관리들에게 맹세하기를
“축책에 황제의 성함이 있으니, 이는 바로 황제께서 직접 쓰신 것으로 그 축문에 이르기를,
‘선황의 뒤를 이은 천자 아무개는 삼가 모관(某官) 모(某)를 보내어 공경히 제사를 올린다.’라고 하셨다.
황제께서 공경하고 엄숙하심이 이와 같으니 감히 명을 받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일 나는 신묘(神廟) 아래에서 유숙하고서 새벽에 제사를 올리겠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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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祭酒(좨주) : 중국 고대의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술을 올리는 일을 담담한 연장자. 좨주로 읽는다.
○ 孔公(공공) : 공규(孔戣). 이름은 戣(규)이고 자(字)가 군엄(君嚴)으로 공소보(孔巢父)의 조카다. 덕종(德宗) 건중(建中) 원년(780) 진사(進士)가 되어 간의대부(諫議大夫)에 발탁되었다. 원화 12년(817년)에 영남절도사(嶺南節度使)에 임명되었다.
○ 以殿南服(이전남복) : 남쪽 지방을 평정하여 다스리게 하다. 殿(전)은 평정하다. 진무하다.
○ 祗慎(지신) : 공경하고 삼가다.
○ 單(단) : 오직.
○ 表爆(표폭) : 겉으로 드러내다. 자기의 장점을 드러냄을 말한다.
○ 祝冊(축책) : 축판(祝板). 천자가 서명한 축문(祝文).
○ 齋祓(재불) : 목욕재계하여 몸을 깨끗이 하다.
明日(명일),吏以風雨白(이이풍우백),不聽(불청)。 於是州府文武吏士(어시주부문무리사),凡百數(범백수),交謁更諫(교알갱간),皆揖而退(개읍이퇴)。 公遂升舟(공수승주),風雨少弛(풍우소이),棹夫奏功(도부주공), 雲陰解駁(운음해박),日光穿漏(일광천루),波伏不興(파복불흥)。 省牲之夕(성생지석),載暘載陰(재양재음);將事之夜(장사지야),天地開除(천지개제),月星明穊(월성명기)。 五鼓既作(오고기작),牽牛正中(견우정중),公乃盛服執笏(공내성복집홀), 以入即事(이입즉사)。 文武賓屬(문무빈속),俯首聽位(부수청위),各執其職(각집기직)。 牲肥酒香(생비주향),樽爵淨潔(준작정결),降登有數(강등유수), 神具醉飽(신구취포)。 海之百靈秘怪(해지백령비괴),慌惚畢出(황홀필출),蜿蜿蛇蛇(완완이이), 來享飲食(내향음식)。 |
이튿날 관리가 바람이 불고 비가 온다고 아뢰었으나, 공공(孔公)은 듣지 않았다.
이에 광주부(廣州府)의 문무(文武) 관원들 백여 명이 번갈아 알현하고 다시 간청하였으나,
모두 간단한 인사만 하고 물리쳤다.
공공이 마침내 배에 오르니 비바람이 조금 누그러져 사공들이 공덕을 아뢰니
검은 구름이 흩어져 그 사이로 햇빛이 새어나왔으며, 파도도 일지 않고 잠잠하였다.
제물로 바치는 희생(犧牲)을 살피던 저녁에는 개었다 흐렸다 하더니 제삿날 밤에는 천지가 활짝 개어 달과 별이 밝고 촘촘하였다.
5경(更)을 알리는 북이 울리고 견우성(牽牛星)이 하늘 한가운데에 뜨자, 이에 공공이 예복을 갖추어 입고 홀(笏)을 들고 제사를 지내러 묘(廟) 안으로 들어갔다.
문무관원과 막료와 속관들이 고개 숙여 명을 듣고 자기들의 자리로 가서 각각 맡은 직무를 봉행하였다.
희생은 살지고 술은 향기로우며, 동이와 술잔이 정결하며, 계단을 오르내림의 숫자가 예절과 일치하니, 신(神)도 모두 술에 취하고 음식에 배불렀을 것이다.
바다의 온갖 신령과 남몰래 사는 괴물들도 순식간에 모두 나와서 꿈틀대며 나와 음식을 흠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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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凡百數(범백수) : 백여 명. ‘모두’의 뜻.
○ 皆揖而退(개읍이퇴) : 간단한 인사만 하고 물리치다. 읍은 한 손을 얼굴 앞으로 들고 허리를 앞으로 공손히 구부렸다 펴면서 손을 내리는 인사로 사양하는 의미.
○ 棹夫奏功(도부주공) : 사공들이 노력의 결과를 아뢰다.
○ 駁(박) : 드문드문하다. 구름이 흩어진다는 뜻.
○ 省牲之夕(성생지석) : 고대에 제사할 때는 제사 지내기 하루 전날 저녁에 집사관(執事官)이 제사에 쓸 희생 및 제기(祭器) 등의 준비상황을 시찰하였다.
○ 月星明穊(월성명기) : 달과 별이 밝고 촘촘하다. 概(기)는 빽빽하다. 조밀하다.
○ 卽事(즉사) : 일을 함이니, 제사를 지낸다는 뜻.
○ 文武賓屬(문무빈속) : 문무(文武)관원과 막료(참모)들과 속관.
○ 降登有數(강등유수) : 계단을 오르고 내려오는 숫자가 예절과 일치하다.
○ 百靈秘怪(백령비괴) : 바다의 온갖 신령과 몰래 사는 기이한 괴물.
○ 慌惚(황홀) : 순식간.
○ 蜿蜿蛇蛇(완완이이) : 벌레가 꿈틀거리는 모양. 蛇(이)는 구불구불 갈 ‘이’.
闔廟旋艫(합묘선로),祥飆送帆(상표송범),旗纛旄麾(기독모휘),飛揚晻靄(비양엄애), 饒鼓嘲轟(요고조굉),高管嗷噪(고관오조),武夫奮棹(무부분도),工師唱和(공사창화), 穹龜長魚(궁귀장어),踴躍後先(용약후선),乾端坤倪(건단곤예),軒豁呈露(헌활정로)。 祀之之歲(사지지세),風災熄滅(풍재식멸),人厭魚蟹(인염어해),五穀胥熟(오곡서숙)。 明年祀歸(명년사귀),又廣廟宮而大之(우광묘궁이대지):治其庭壇(치기정단), 改作東西兩序(개작동서량서),齋庖之房(재포지방),百用具修(백용구수)。 明年其時(명년기시),公又固往(공우고왕),不懈益虔(불해익건),歲仍大和(세잉대화),耋艾歌詠(질애가영)。 |
묘문(廟門)을 닫고 뱃머리를 돌리자, 상서로운 바람이 돛에 불어 배를 보내고 각종 깃발이 펄럭이며 자욱이 해를 가리고,
징과 북소리 요란하며 피리 소리 나팔소리가 시끄럽게 울리는 가운데 무부(武夫)들은 힘차게 배를 젓고, 배의 우두머리는 맞장구를 친다.
큰 거북과 긴 물고기가 앞뒤에서 뛰어오르고, 하늘 끝과 땅 끝이 탁 트여 훤하게 드러났다. 제사를 지낸 해에는 바람의 재해가 소멸되어 백성들은 물고기와 게를 싫도록 먹고 오곡이 모두 잘 여물었다.
다음 해 제사철이 돌아와 또 묘궁(廟宮)을 넓혀 크게 짓고, 마당과 제단을 손질하고,
동서 양편의 담과 재실(齋室)과 주방을 다시 짓고, 모든 용구를 다 갖추었다.
다음 해 그때가 돌아오자, 공공은 또 굳이 가서 게을리 하지 않고 더욱 정성을 다하니, 농사가 연거푸 대풍(大豐)이 들어서 노인과 젊은이들이 태평의 노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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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艫(로) : 뱃머리.
○ 祥飆(상표) : 상서로운 질풍. 飆(표)는 회오리바람.
○ 纛(독) : 쇠꼬리로 장식한 큰 기.
○ 旄麾(모휘) : 깃발. 旄(모)는 긴 털을 가진 소의 털로 장식한 깃대.
○ 晻靄(암애) : 안개가 자욱하다. 자욱이 해를 가리다.
○ 饒鼓嘲轟(요고조굉) : 징과 북소리가 요란하다. 饒(요)는 징. 嘲轟(조굉)은 떠들썩하다.
○ 高管(고관) : 새된 피리 소리.
○ 嗷噪(오조) : 시끄럽다.
○ 武夫(무부) : 용맹스러운 사내
○ 工師(공사) : 기술자의 우두머리. 여기서는 배의 우두머리.
○ 唱和(창화) : 맞장구를 치다. 호응하다.
○ 穹龜(궁구) : 큰 거북.
○ 乾端坤倪(건단곤예) : 하늘 끝과 땅 끝.
○ 軒豁(헌활) : 탁 트이어 훤하다.
○ 呈露(정로) : 드러내다.
○ 熄滅(식멸) : 소멸하다.
○ 東西兩序(동서량서) : 당의 동쪽과 서쪽의 담.
○ 歳仍大和(세잉대화) : 농사가 연이어 대풍이 들다.
○ 耋艾(질애) : 노인과 젊은이.
始公之至(시공지지),盡除他名之稅(진제타명지세),罷衣食於官之可去者(파의식어관지가거자);四方之使(사방지사),不以資交(불이자교); 以身為帥(이신위솔),燕享有時(연향유시),賞與以節(상여이절); 公藏私蓄(공장사축),上下與足(상하여족)。 於是免屬州負逋之緡錢廿巨有四萬(어시면속주부포지민전입거유사만), 米三萬二千斛(미삼만이천곡)。 賦金之州(부금지주),耗金一歲八百(모금일세팔백),困不能償(곤불능상), 皆以丐之(개이개지)。 加西南守長之俸(가서남수장지봉),誅其尤無良不聽令者(주기우무량불청령자), 由是皆自重慎法(유시개자중신법)。 |
처음 공이 이곳에 부임하여 다른 명목의 세금은 모두 없애고, 관(官)에서 주는 봉록으로 생활하는 자 중에 없어도 될 만한 자는 파직하였고, 사방에서 오는 사신들을 재물로 교제하지 않았으며,
몸소 앞장서 모범을 보여 빈객을 접대하는 연회에 일정한 시간을 두고 상을 주는 데 절도 있게 행하니, 관청의 창고나 개인의 재물이 축적되어 위아래가 모두 풍족하게 되었다.
이에 속주(屬州)에서 오랫동안 내지 못한 세금 24만 관(貫)과 쌀 3만2천 곡(斛)을 면제해주었다.
돈으로 세금을 바치는 고을의 부족 금액이 1년에 800냥이었는데 곤궁하여 상환하지 못한 것을 모두 베풀어주었다.
서남지방 수장(守長)들의 봉록을 올려주고, 수장 중 특히 불량하여 명령을 듣지 않는 자들을 처벌하니, 이로 말미암아 수장(守長)들이 모두 자중하여 법을 신중히 준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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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罷衣食於官之可去者(파의식어관지가거자) : 봉록(俸祿)으로 생활하는 자들을 감원하여 예산을 절약하였다는 말이다.
○ 以資交(이자교) : 재물을 주고 교제하다.
○ 以身為帥(이신위솔) : 몸소 사람들에게 솔선수범하다. 帥는 거느릴 ‘솔’로 앞장서다.
○ 燕享(연향) : 연회와 향응.
○ 緡錢(민전) : 끈에 꿴 엽전.
○ 廿巨有四萬(입거유사만) : 24만 관(貫). 貫은 엽전 1000개를 꿴 꾸러미.
○ 米三萬二千斛(미삼만이천곡) : 斛(곡)은 곡식의 분량을 헤아리는 그릇으로 5말 혹은 10말. 쌀 32,000곡.
○ 賦金(부금) : 돈으로 세금을 바치다.
○ 耗金(모금) : 부족한 금액
○ 丐(개) : 주다. 베풀다.
人士之落南不能歸者(인사지락남불능귀자),與流徙之胄百廿八族(여류사지주백입팔족),用其才良(용기재량),而廩其無告者(이름기무고자)。 其女子可嫁(기녀자가가),與之錢財(여지전재),令無失時(영무실시)。 刑德並流(형덕병류),方地數千里(방지수천리),不識盜賊(불식도적); 山行海宿(산행해숙),不擇處所(불택처소);事神治人(사신치인), 其可謂備至耳矣(기가위비지이의)。 咸願刻廟石(함원각묘석),以著厥美(이저궐미),而係以詩(이계이시)。 乃作詩曰(내작시왈): |
남쪽에서 몰락해 돌아가지 못하는 인사와 유배인의 자손 128 가족 중에 재능이 있거나 선량한 자를 등용하고, 호소할 곳이 없는 자에게는 나라의 쌀을 지급하고,
출가시킬 때가 된 딸이 있는 집에는 돈과 재물을 주어 혼기를 잃지 않게 하였다.
이에 형벌과 은덕이 동시에 거행되어 수천 리 지역이 도적을 모르게 되어,
산길을 가거나 바다에서 묵거나 처소를 가리지 않았으니, 공공(孔公)은 신을 섬기고 사람을 다스리는 일이 모두 극진할 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모두 묘정(廟庭)에 비석을 세워 그 아름다운 공적을 드러내고, 시를 지어 붙이기를 원하기에 다음과 같이 시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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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流徙(유사) : 유배자. 유랑자.
○ 胄(주) : 자손.
○ 廪(름) : 나라의 미곡 창고의 쌀.
○ 刑德竝流(형덕병류) : 형벌과 은덕이 함께 거행됨이다.
○ 備至(비지) : 극진하다.
南海之墟(남해지허),祝融之宅(축융지택)。 即祀於旁(즉사어방),帝命南伯(제명남백)。 吏隋不躬(이수불궁),正自今公(정자금공)。 明用享錫(명용향사),右我家邦(우아가방)。 惟明天子(유명천자),惟慎厥使(유신궐사)。 我公在官(아공재관),神人致喜(신인치희)。 海嶺之陬(해령지추),既足既濡(기족기유)。 胡不均宏(호불균굉),俾執事樞(비집사추)。 公行勿遲(공행물지),公無遽歸(공무거귀)。 匪我私公(비아사공),神人具依(신인구의)。 |
남해의 깊숙한 밑바닥은 축융(祝融)의 저택이라네.
그 곁에 제사 올릴 때 황제께서 남백(南伯)에게 그 일을 명하셨네.
관리들 게을러 몸소 제사를 지내지 않았는데 지금의 공(公)으로부터 바로잡혔네.
신명(神明)이 황제가 내린 물건 흠향하고서 우리나라 도우셨네.
영명하신 천자께서 이곳 사신을 신중히 선발하셨네.
우리 공께서 관직에 계시니 신명과 백성들 크게 기뻐하였네.
바다와 산맥의 모퉁이 궁벽한 곳이 이미 풍족해 은택 입었네.
어찌 그 은택 고루 널리 펼치도록 공에게 권한 맡기지 않으시리오?
공의 걸음 지체하지 마소서, 그렇다고 공은 서둘러 돌아가지도 마소서.
내 사사로이 공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신명과 백성이 함께 의지하기 때문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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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之墟(지허) : 陰墟(음허). 깊숙하고 어두운 밑바닥.
○ 南伯(남백) : 남쪽의 자사(刺史)의 우두머리.
○ 錫(사) : 하사하디.
○ 右(우) : 돕다.
○ 慎厥使(신궐사) : 이 지방의 사신인 자사(刺史)를 신중히 선발하다.
○ 海嶺(해령) : 남해 바다와 오령산맥(五嶺山脈).
○ 陬(추) : 구석. 모퉁이.
○ 濡(유) : 은혜를 베풀다.
○ 均宏(균굉) : 천하를 고르게 넓히다.
○ 俾執事樞(비집사추) : 정치의 중추를 맡기어 행하다.
○ 匪(비) : ~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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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南海神廟碑/作者:韓愈 唐
本作品收錄於《全唐文/卷0561》
海於天地間為物最巨。自三代聖王,莫不祀事,考於傳記,而南海神次最貴,在北東西三神、河伯之上,號為「祝融」。天寶中,天子以為古爵莫貴於公侯,故海嶽之祝,犧幣之數,放而依之,所以致崇極於大神。今王亦爵也,而禮海嶽,尚循公侯之事,虛王儀而不用,非致崇極之意也。由是冊尊南海神為「廣利王」,祝號祭式,與次俱升。因其故廟,易而新之,在今廣州治之東南,海道八十里,扶胥之口,黃木之灣。常以立夏氣至,命廣州刺史行事祠下,事訖驛聞。而刺史常節度五嶺諸軍,仍觀察其郡邑,於南方事無所不統,地大以遠,故常選用重人。既貴而富,且不習海事,又當祀時海常多大風,將往皆憂戚。既進,觀顧怖悸,故常以疾為解,而委事於其副,其來已久。故明宮齋廬,上雨旁風,無所蓋障;牲酒瘠酸,取具臨時;水陸之品,狼籍籩豆;薦裸興俯,不中儀式;吏滋不供,神不顧享;盲風怪雨,發作無節,人蒙其害。
바다는 천지 사이에서 가장 거대한 물체이다. 삼대(三代)의 성왕(聖王)으로부터 제사를 지내지 않은 적이 없었으며, 전해지는 기록을 살펴보건대, 남해신(南海神)의 지위가 가장 존귀하여, 북해‧동해‧서해 세 신(神) 및 하백(河伯)의 위에 있어 <축융(祝融)>이라 호칭하였다 한다. 천보(天寶) 연간에 천자께서 “옛날의 작위에는 공(公)‧후(侯)보다 존귀한 것이 없었으므로 사해(四海)와 오악(五嶽)의 축문(祝文)과 희생(犧牲)과 폐백의 수를 공(公)‧후(侯)의 예를 모방해 따랐으니, 이는 대신(大神)에게 지극한 존경을 바치기 위함이었다. 지금의 왕도 작위(爵位)인데, 사해(四海)와 오악(五嶽)을 예우함에 있어 오히려 공후(公侯)의 격식을 따르면서 왕에 대한 의례는 비워두고 쓰지 않으니, 지극한 존경을 바치는 뜻이 아니다.”라고 하셨다.
이로 인해 남해신을 책봉해 높여 <광리왕(廣利王)>으로 삼고, 축호(祝號)와 제사의 의식을 신(神)의 지위와 함께 올렸다. 남해신의 구묘(舊廟)가 오래 되었다 하여 바꾸어 새롭게 지었는데, 지금의 광주(廣州) 치소(治所)에서 동남쪽 뱃길로 80리 되는 곳인 부서구(扶胥口)와 황목만(黃木灣)에 있다. 항상 입하 절기가 오면 광주자사(廣州刺史)에게 명하여 직접 가서 사당 아래에서 제사를 지내고 제사를 마치면 역마를 달려 조정에 보고하게 했다.
이에 자사(刺史)는 항상 오령(五嶺)의 여러 군사를 통솔하고, 그리하여 각 군읍의 관리들을 관찰하니 남방의 일에 다스리지 않는 것이 없었으며, 남방은 땅이 광대하고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항상 중신(重臣) 중에서 선발했다. 그래서 이미 신분이 고귀하고 부유하여 바다에 관한 일은 익숙하지 못했다. 또 제사를 지낼 때가 되면 항상 바다에 큰 바람이 많기 때문에 제사 지내러 가려 할 때에는 모두 근심하고 괴로워하였다. 배가 출발한 뒤에는 앞뒤를 돌아보며 두려워하며 떨었기 때문에 자사들은 항상 병을 핑계로 제사 지내는 일을 사양하고 부관에게 맡겼으며, 이렇게 해온 지가 이미 오래되었다. 그래서 명궁(明宮)과 재실(齋室)의 위에서는 비가 새고 옆으로는 바람이 들어오는데도 지붕을 덮지도 벽을 가리지도 않았으며, 희생은 비쩍 마르고 술은 시어 터졌는데, 그마저도 제사 때가 되어서야 마련하며, 수산품과 토산품이 담긴 제기(祭器)가 어지러이 놓여 있으며, 술을 올리고 몸을 일으키고 엎드리는 것이 의식(儀式)에 맞지 않았으며, 관리가 갈수록 더욱 제사를 올리지 않으니, 신(神)이 제사를 흠향하지 못하여, 세찬 바람과 사나운 비가 무시로 발작하여 백성들이 그 해를 입었다.
元和十二年,始詔用前尚書右丞國子祭酒魯國孔公為廣州刺史兼御史大夫,以殿南服。公正直方嚴,中心樂易,祗慎所職;治人以明,事神以誠;內外單盡,不為表爆。至州之明年,將夏,祝冊自京師至,吏以時告,公乃齋祓視冊,誓群有司曰:「冊有皇帝名,乃上所自署,其文曰:‘嗣天子某,謹遣官某敬祭。’ 其恭且嚴如是,敢有不承!明日,吾將宿廟下,以供晨事。」明日,吏以風雨白,不聽。於是州府文武吏士,凡百數,交謁更諫,皆揖而退。公遂升舟,風雨少弛,棹夫奏功,雲陰解駁,目光穿漏,波伏不興。省牲之夕,載暘載陰;將事之夜,天地開除,月星明穊。五鼓既作,牽牛正中,公乃盛服執笏,以入即事。文武賓屬,俯首聽位,各執其職。牲肥酒香,樽爵淨潔,降登有數,神具醉飽。海之百靈秘怪,慌惚畢出,蜿蜿蛇蛇,來享飲食。闔廟旋艫,祥飆送帆,旗纛旄麾,飛揚晻靄,饒鼓嘲轟,高管嗷噪,武夫奮棹,工師唱和,穹龜長魚,踴躍後先,乾端坤倪,軒豁呈露。祀之之歲,風災熄滅,人厭魚蟹,五穀胥熟。明年祀歸,又廣廟宮而大之:治其庭壇,改作東西兩序,齋庖之房,百用具修。明年其時,公又固往,不懈益虔,歲仍大和,耋艾歌詠。
원화(元和) 12년(817년)에 비로소 조서를 내려 전 상서우승(尙書右丞) 국자좨주(國子祭酒) 노나라 공규(孔戣)를 광주자사겸어사대부(廣州刺史兼御史大夫)에 임명하여, 남쪽 지방을 평정하여 다스리게 하였다. 공공(孔公)은 사람됨이 정직하고 엄격하며 마음속은 즐겁고 평이(平易)하여 오직 맡은 바의 직무에만 공경스럽고 신중하게 수행하여, 백성을 다스림에 분명하였고 신을 정성으로 섬기면서 안팎으로 오직 최선을 다하면서도 자신의 장점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광주(廣州)에 부임한 이듬해 여름 무렵에 장안으로부터 축책(祝冊)이 내려오니 관리가 제사 때가 되었다고 아뢰자. 공공(孔公)은 곧 목욕재계하고 축책(祝冊)을 살피고서, 모든 관리들에게 맹세하기를 “축책에 황제의 성함이 있으니, 이는 바로 황제께서 직접 쓰신 것으로 그 축문에 이르기를, ‘선황의 뒤를 이은 천자 아무개는 삼가 모관(某官) 모(某)를 보내어 공경히 제사를 올린다.’라고 하셨다. 황제께서 공경하고 엄숙하심이 이와 같으니 감히 명을 받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일 나는 신묘(神廟) 아래에서 유숙하고서 새벽에 제사를 올리겠다.”라고 하였다.
이튿날 관리가 바람이 불고 비가 온다고 아뢰었으나, 공공(孔公)은 듣지 않았다. 이에 광주부(廣州府)의 문무(文武) 관원들 백여 명이 번갈아 알현하고 다시 간청하였으나, 모두 간단한 인사만 하고 물리쳤다. 공공이 마침내 배에 오르니 비바람이 조금 누그러져 사공들이 공덕을 아뢰니 검은 구름이 흩어져 그 사이로 햇빛이 새어나왔으며, 파도도 일지 않고 잠잠하였다. 제물로 바치는 희생(犧牲)을 살피던 저녁에는 개었다 흐렸다 하더니 제삿날 밤에는 천지가 활짝 개어 달과 별이 밝고 촘촘하였다. 5경(更)을 알리는 북이 울리고 견우성(牽牛星)이 하늘 한가운데에 뜨자, 이에 공공이 예복을 갖추어 입고 홀(笏)을 들고 제사를 지내러 묘(廟) 안으로 들어갔다. 문무관원과 막료와 속관들이 고개 숙여 명을 듣고 자기들의 자리로 가서 각각 맡은 직무를 봉행하였다. 희생은 살지고 술은 향기로우며, 동이와 술잔이 정결하며, 계단을 오르내림의 숫자가 예절과 일치하니, 신(神)도 모두 술에 취하고 음식에 배불렀을 것이다. 바다의 온갖 신령과 남몰래 사는 괴물들도 순식간에 모두 나와서 꿈틀대며 나와 음식을 흠향했을 것이다. 묘문(廟門)을 닫고 뱃머리를 돌리자, 상서로운 바람이 돛에 불어 배를 보내고 각종 깃발이 펄럭이며 자욱이 해를 가리고, 징과 북소리 요란하며 피리 소리 나팔소리가 시끄럽게 울리는 가운데 무부(武夫)들은 힘차게 배를 젓고, 배의 우두머리는 맞장구를 친다. 큰 거북과 긴 물고기가 앞뒤에서 뛰어오르고, 하늘 끝과 땅 끝이 탁 트여 훤하게 드러났다. 제사를 지낸 해에는 바람의 재해가 소멸되어 백성들은 물고기와 게를 싫도록 먹고 오곡이 모두 잘 여물었다. 다음 해 제사철이 돌아와 또 묘궁(廟宮)을 넓혀 크게 짓고, 마당과 제단을 손질하고, 동서 양편의 담과 재실(齋室)과 주방을 다시 짓고, 모든 용구를 다 갖추었다. 다음 해 그때가 돌아오자, 공공은 또 굳이 가서 게을리 하지 않고 더욱 정성을 다하니, 농사가 연거푸 대풍(大豐)이 들어서 노인과 젊은이들이 태평의 노래를 불렀다.
始公之至,盡除他名之稅,罷衣食於官之可去者;四方之使,不以資交;以身為帥,燕享有時,賞與以節;公藏私蓄,上下與足。於是免屬州負逋之緡錢廿巨有四萬,米三萬二千斛。賦金之州,耗金一歲八百,困不能償,皆以丐之。加西南守長之俸,誅其尤無良不聽令者,由是皆自重慎法。人士之落南不能歸者,與流徙之胄百廿八族,用其才良,而廩其無告者。其女子可嫁,與之錢財,令無失時。刑德並流,方地數千里,不識盜賊;山行海宿,不擇處所;事神治人,其可謂備至耳矣。咸願刻廟石,以著厥美,而係以詩。乃作詩曰:
처음 공이 이곳에 부임하여 다른 명목의 세금은 모두 없애고, 관(官)에서 주는 봉록으로 생활하는 자 중에 없어도 될 만한 자는 파직하였고, 사방에서 오는 사신들을 재물로 교제하지 않았으며, 몸소 앞장서 모범을 보여 빈객을 접대하는 연회에 일정한 시간을 두고 상을 주는 데 절도 있게 행하니, 관청의 창고나 개인의 재물이 축적되어 위아래가 모두 풍족하게 되었다.이에 속주(屬州)에서 오랫동안 내지 못한 세금 24만 관(貫)과 쌀 3만2천 곡(斛)을 면제해주었다. 돈으로 세금을 바치는 고을의 부족 금액이 1년에 800냥이었는데 곤궁하여 상환하지 못한 것을 모두 베풀어주었다. 서남지방 수장(守長)들의 봉록을 올려주고, 수장 중 특히 불량하여 명령을 듣지 않는 자들을 처벌하니, 이로 말미암아 수장(守長)들이 모두 자중하여 법을 신중히 준수하였다. 남쪽에서 몰락해 돌아가지 못하는 인사와 유배인의 자손 128 가족 중에 재능이 있거나 선량한 자를 등용하고, 호소할 곳이 없는 자에게는 나라의 쌀을 지급하고, 출가시킬 때가 된 딸이 있는 집에는 돈과 재물을 주어 혼기를 잃지 않게 하였다. 이에 형벌과 은덕이 동시에 거행되어 수천 리 지역이 도적을 모르게 되어, 산길을 가거나 바다에서 묵거나 처소를 가리지 않았으니, 공공(孔公)은 신을 섬기고 사람을 다스리는 일이 모두 극진할 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모두 묘정(廟庭)에 비석을 세워 그 아름다운 공적을 드러내고, 시를 지어 붙이기를 원하기에 다음과 같이 시를 짓는다.
南海之墟,祝融之宅。即祀於旁,帝命南伯。吏隋不躬,正自今公。明用享錫,右我家邦。惟明天子,惟慎厥使。我公在官,神人致喜。海嶺之陬,既足既濡。胡不均宏,俾執事樞。公行勿遲,公無遽歸。匪我私公,神人具依。
남해의 깊숙한 밑바닥은 축융(祝融)의 저택이라네.
그 곁에 제사 올릴 때 황제께서 남백(南伯)에게 그 일을 명하셨네.
관리들 게을러 몸소 제사를 지내지 않았는데 지금의 공(公)으로부터 바로잡혔네.
신명(神明)이 황제가 내린 물건 흠향하고서 우리나라 도우셨네.
영명하신 천자께서 이곳 사신을 신중히 선발하셨네.
우리 공께서 관직에 계시니 신명과 백성들 크게 기뻐하였네.
바다와 산맥의 모퉁이 궁벽한 곳이 이미 풍족해 은택 입었네.
어찌 그 은택 고루 널리 펼치도록 공에게 권한 맡기지 않으시리오?
공의 걸음 지체하지 마소서, 그렇다고 공은 서둘러 돌아가지도 마소서.
내 사사로이 공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신명과 백성이 함께 의지하기 때문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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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진보후집(古文眞寶後集) 3권 목차>
번호 | 제 목 | 작가 | 출전 |
30 | 平淮西碑(평회서비) | 韓愈(한유) | 昌黎文鈔 |
31 | 南海神廟碑(남해신묘비) | 韓愈(한유) | 全唐文 |
32 | 爭臣論(쟁신론) | 韓愈(한유) | 古文觀止,全唐文 |
33 | 送窮文(송궁문) | 韓愈(한유) | 昌黎先生集 |
34 | 進學解(진학해) | 韓愈(한유) | 古文觀止,全唐文 |
35 | 鰐魚文(악어문)/祭鱷魚文(제악어문) | 韓愈(한유) | 古文觀止,全唐文 |
36 | 柳州羅池廟碑(유주나지묘비)/柳子厚墓誌銘 | 韓愈(한유) | 古文觀止,全唐文 |
37 | 送孟東野序(송맹동야서) | 韓愈(한유) | 古文觀止,全唐文 |
38 | 送楊巨源少尹序(송양거원소윤서)/送楊少尹序 | 韓愈(한유) | 古文觀止,全唐文 |
39 | 送石洪處士序(송석홍처사서)/送石處士序 | 韓愈(한유) | 古文觀止,全唐文 |
40 | 送溫造處士序(송온조처사서)/送溫處士赴河陽軍序 | 韓愈(한유) | 古文觀止,全唐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