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푹 찌는 여름, 6℃ 시원한 맥주 한잔이 무더위 속 작은 위로가 된다. 마트에 진열된 수십 가지의 맥주 중 내 입맛을 사로잡는 맥주는 무엇일까. 다양한 맛의 커피나 와인을 음미하듯 맥주를 즐기고 싶다면 알아두어야 할 맥주 상식.
비어헌터 이기중 씨는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맥주는 평생을 마셔도 다 맛볼 수 없을 정도로 그 수가 많다”고 말한다. 그런데 불과 얼마 전만 해도 국내에서 마실 수 있는 맥주는 그리 많지 않았다. 국내 맥주는 종류도 몇 가지 안 될뿐더러 맥주회사마다 맛이 거의 비슷해 어떤 맥주를 마셔도 별로 상관이 없었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는 국내에서도 다양한 맛과 도수의 맥주가 속속 선보이고 있다. 게다가 몇 가지 안 되던 수입 맥주의 종류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선택의 폭이 더욱 넓어졌다. 가까운 대형마트에만 가도 수십 가지의 맥주를 만날 수 있고, 심지어 맥주를 직접 만들어 마시는 마니아층까지 늘고 있다. 이제 맥주는 단순히 소주 대신 마시는 도수 낮고 시원한 술이 아니라 입은 물론 눈과 코로도 즐기는 술이 된 것이다.
맥주의 맛을 제대로 음미하려면 원료는 무엇인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원리까지 알아야 한다. 맥주의 원료는 보리, 홉, 효모, 물이다. 보리는 싹튼 보리, 즉 맥아(몰트)를 사용한다. 맥아를 사용하는 이유는 보리로부터 전분을 쉽게 추출하기 위해서다. 맥아의 종류에 따라 맥주의 맛과 향, 색이 달라진다. 맥주 상표에 ‘100% 몰트 맥주’라는 표시가 있다면 보리 외에 다른 곡류를 첨가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생산 단가를 낮추기 위해 보리 외에 옥수수나 쌀을 첨가하기도 하는데, 다른 곡류를 섞으면 맥아 특유의 맛이 약해져 맥주 본연의 맛이 떨어진다. 덩굴식물의 일종인 홉은 쓴맛과 독특한 향을 가지고 있으며 맥주의 뒷맛을 좌우한다. 좋은 맥주란 맥아와 홉 특유의 맛과 향이 다채롭게 나고 서로 조화를 이룬 것이다.
효모는 맥아의 전분에서 만들어진 당을 알코올로 발효시키는 역할을 한다. 맥주에서 사용하는 효모로는 크게 ‘자연야생 효모’, ‘상면발효 효모(에일 이스트)’, ‘하면발효 효모(라거 이스트)’가 있다. 그리고 맥주의 95%를 차지하는 물은 깨끗하면서 미네랄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는 것이 좋다. 연수를 사용하면 맥주의 색이 엷고 깔끔한 맛이 나고, 경수를 사용하면 맥주의 색이 진해지고 깊은 맛이 난다.
맥주는 발효방식에 따라 크게 에일, 라거, 람빅(자연발효 맥주) 세 가지 종류로 나뉜다. 그런데 람빅은 벨기에의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생산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전 세계 맥주는 에일과 라거로 구분된다고 볼 수 있다.
에일은 오랜 전통을 가진 맥주로, 발효시킬 때 위로 떠오르는 효모, 즉 상면발효 효모로 만들어진다. 에일 맥주는 과일 같은 향긋함과 진하고 깊은 맛이 특징이다. 주로 영국, 아일랜드, 벨기에에서 많이 만들어진다. 우리가 즐겨 마시는 맥주 중에는 스타우트, 마일드 에일, 바이젠, 트라피스트 등이 있다.
라거는 발효통 아래에 가라앉는 하면발효 효모로 만들어진다. 에일 맥주보다 낮은 온도에서 장시간 저장시켜 만들기 때문에 과일 향이나 깊은 맛은 없지만, 대신 부산물이 적어 깔끔하고 시원한 청량감이 있다. 필스너, 둥켈, 슈바르츠 등이 라거 맥주에 속한다.
그렇다면 맥주는 어떻게 즐기는 것이 좋을까? 맥주를 감상하고 평가할 때 가장 기본적인 기준은 색깔, 거품, 기포 등 외관과 아로마, 즉 향과 맛, 보디라고 이기중 씨는 말한다.
“맥주의 맛과 향은 포도주처럼 과일, 약초, 너트, 토스트, 초콜릿, 캐러멜 등 다른 음식에 비유해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독일의 밀 맥주를 먹고 평가할 때 바나나, 클로브, 향신료의 맛이 느껴진다고 표현하지요. 포도주와 마찬가지로 맥주의 무게감, 즉 느껴지는 점성을 말할 때는 ‘보디’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보통 라이트 보디, 미디엄 보디, 풀 보디 등으로 표현하지요. 우리가 즐겨 마시는 라거 맥주는 주로 라이트 보디에 속합니다.”
한편 모든 맥주는 제조회사에서 만든 전용 잔에 따라 마셔야 각각의 맥주를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 그래야 맥주 특유의 색을 감상할 수 있고 거품도 적당하게 만들어진다. 보통 병맥주의 경우 회사에서 만든 전용 잔에 따르면 한 병이 모두 들어간다. 전용 잔은 맥주 각각의 개성을 충분히 반영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맥주의 거품, 향, 맛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향이 화려한 맥주는 향이 쉽게 확산되도록 위쪽이 넓게 벌어진 개방형 맥주잔에 마시는 것이 좋고, 복잡미묘한 향을 가진 맥주는 향이 달아나지 않도록 입구가 작은 잔에 마신다. 또한 맥주는 잔의 모양에 따라 거품과 기포의 모습도 달라진다.
맥주의 거품은 맥주가 공기와 접촉해서 산화되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에 맥주를 따를 때는 거품이 어느 정도 생기도록 따라야 한다. 일반적으로 맥주와 거품의 이상적인 비율은 7 : 3이다. 좋은 맥주는 맥주를 다 마실 때까지 거품이 남아 있다.
맥주의 맛은 온도에 의해서도 크게 좌우된다. 맥주의 종류나 특정 브랜드에 알맞은 온도를 알아두면 좋은데, 예를 들어 독일의 라거 맥주 계열에 속하는 예버는 4~7℃에서 마셔야 가볍고 깔끔한 맥아의 맛과 산뜻한 홉의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그리고 맥주를 무조건 차게 마시면 맥주의 맛이 파괴되어 고유의 맛을 즐길 수 없다.
보통 냉장고는 약 4℃에 맞춰져 있는데, 보통 라거 맥주는 6~9℃, 스타우트는 13℃로 마시는 것이 가장 적당하고, 알코올 도수가 높은 올드 에일 등은 아주 약간 차갑게 하거나 실온에서 마셔야 한다. 덧붙여 차게 즐기는 맥주는 맥주잔을 든 손의 온도가 잔에 직접 전해지지 않도록 두꺼운 잔이나 손잡이가 있는 잔에 따라 마시는 것이 좋다.
맥주를 맛있게 먹는 법을 자세히 알고 나서 맥주 마시기가 오히려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맥주는 입이 아닌 오감으로 마시는 술이라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더운 여름밤, 남편과의 맥주 한잔이 더욱 감각적이지 않을까.
/ 여성조선 (http://woman.chosun.com/)
취재 강부연 기자 | 사진 박종혁 | 그릇협찬 스타우브(staubcocotte.co.kr) | 참고도서 《유럽맥주 견문록》(즐거운상상), 《맥주수첩》(우듬지), 《맥주의 세계》(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