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의 뉴질랜드 꽁트]. 222회. 뉴질랜드타임즈 26/9/2019. 금
늘그막에
임상 실습
-어~후!
테디의 신음에 앤디가 주춤했다. 앤디가 테디의 손목에 꽂은 침을 살살 돌리며
약간 빼냈다. 다시 침 하나를 툭 치며 꽂았다. 침을 돌려가며
더 깊이 들어가게 했다.
-으악!
테디가 갑자기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침을 꽂던 앤디 얼굴이 붉으래졌다. 다시 침을 돌려 빼냈다. 앤디네 한의원 침대에 누워있던 테디가 좌불안석이었다. 뉴질랜드 한의학 침술사 졸업을 앞둔 친구의 임상 실습에 동참한 걸 취소할 수도 없었다.
며칠 전 테디가 오른 발목을 삐었다. 앤디가 상응 부위인 왼쪽 손목에 침을
놓고 있었다. 테디가 두 차례나 아파서 견디질 못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테디 아내, 제니가 조마조마한 눈치였다. 역시 앤디
아내, 써니도 좌불안석이었다. 마음을 다지며 앤디가 다시
정성을 모아 옆자리에 침을 꽂았다.
-으음~ 찌릿찌릿 전기가 오네.
테디의 만족스러운 반응에 앤디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번에야 제대로
제 침혈자리에 놓은 거였다. 써니도 제니도 긴장을 풀었다.
침술사 공부
앤디는 뉴질랜드에 이민 와 생업으로 목수 일과 빨래방 일에 부단히 빠져 보냈다. 늘그막에
어렵사리 뉴질랜드 한의대에서 침술사 공부를 했다. 언제부턴가 해보고 싶은 일을 늦게나마 도전했던 것. 생각처럼 만만치 않았다. 한의대 막바지 학기, 실습도 큰 과제였다. 100명의 임상 환자에게 침놓고 결과물을 제출해야
했다. 실수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도 앞섰다. 몸이 좀 안
좋은 이들은 무료 침을 맞으러 왔다.
테디가 아홉 번째 임상 대상이었다. 제니가 응낙하면 열 번째. 딱 10%를 채우게 될 것이었다.
앤디가 평소 수지침으로 주변 사람들 아픈 것을 치료해 보람을 느껴오던 터에 마지막 은퇴 잡으로 침구사를 공부한 것. 친구로서 테디도 보이지 않게 앤디에게 응원을 보내왔다. 테디의 팔과
다리에 여러 개의 침을 꽂은 뒤 원적외선을 쐬어주었다. 테디의 눈이 나른하게 감겼다. 불현듯 테디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물결 지어 흘러내렸다.
가위 손의 세계
테디는 뉴질랜드 정착 초기에 유니텍에서 원예, 호티컬처(Horticulture)를 공부했다. 고국에서부터 관심 가진 일이었다. 이민까지 왔으니 당연히 하고 싶은 일에 발을 들여놓았다. 자유인의
기를 마음껏 발휘하게 된 것. 호티컬쳐 공부를 마치고 가든 관리 회사에 취업했다. 적성에도 잘 맞았다. 정원 관리,
나무 관리, 가위 손이 무척 자유로웠다. 10여
년의 세월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어느 날 문득, 이발사의 손끝이 눈에 아른거렸다. 성큼 가위 손의 세계로 들어갔다. 용단을 내려 오클랜드 시내 이발
학원에 등록했다. 사람 머리를 다듬는 일도 새로운 세상이었다. 이발
자격증을 땄다. 자격증 수료 무렵, 현장 실습이 주어졌다. 100여 명의 머리를 깎아봐야 비로소 자기 스타일의 이발 기술이 체득될 거라 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 말은 유효했다. 집 차고를 개조 공사해 이발소
영업허가를 받았다. 자영업이 시작되었다. 출퇴근에 구속 받지
않아 이보다 자유로운 게 어디 있나 싶었다.
초기 이발 손님은 주변 아는 이들로 시작했다. 그때, 앤디도 무료로 깎아줬다. 실수로 오발탄을 자주 쏘았다. 왼쪽과 오른쪽 머리숱이 차이가 났다. 머리를 깎다 힐끗 거울 속
손님의 얼굴 인상에도 예민해졌다. 실망한 눈매에 가슴이 철렁하기도 했다. 논산 훈련소 황하 교장에서 총검술을 배우다 틀려 조교에게 심한 얼차려를 받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초짜 때는 다들 고문관 같은 어정쩡한 포즈로 어벙했다. 딱 그 짝이었다. 6주간의 논산 훈련소 시절을 거쳐 자대배치 받으면 완전 신병이었다. 3개월이
지나야 쫄다구 때가 좀 가셨다. 인생사가 다 그런가 싶었다. 늘그막에
이발 기술도 한의사 침놓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은퇴잡으로
테디가 얼핏 선잠 들었다가 알람 소리에 깼다. 몸이 좀 편안했다. 옆 침대를 보니 제니가 누워있었다. 예전부터 통증으로 고생했던 오십견이
있어서 침을 맞았던 모양이었다. 써니가 따뜻한 차를 한잔 따라주었다.
이민 와 나이 들어서도 함께하는 부부가 곁에 있어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은퇴잡으로 주변
눈치 안보고 내가 좋아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생활도 되고 다른 이들에게 작은 즐거움도 주는 일. 때론 봉사활동으로 좋은 도구가 되는 일. 샌디도 2년 전 버스 운전사로 등극했다. 뉴질랜드에서는 나이 60에도 버스 운전을 회사에서 무료로 가르쳐주고 취업까지 시켜주지 않았던가. 직업
만족도도 좋았다.
앤디, 테디, 샌디. 셋 다 60대 초반이지만 새로운 직업에 빠져들었다. 사회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이 자긍심을 키워줬다. 65세가 넘어 연금이
나오면 일을 줄여가도 될 것이었다. 그때부턴 사회에 환원할 기회도 또 올 것이다. 7년 선배 한 분은 일찍이 한의학을 배워 침술사로 일하고 있었다. 최근
들어서는 어려운 나라에 여행하며 침술로 봉사까지 했다. 캄보디아에서 선교하는 분을 찾아가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침술로 병을 치료해주었다.
저마다의 길을
침대에서 일어난 제니에게도 뜨끈한 차 한잔을 건넸다. 써니가 일등 조수
역할을 잘 했다. 넷이서 식탁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다행인
것은 지금 하는 일에 재미를 느낀다는 것이었다. 앤디 체질에는 동양의학과 고전 섭렵이 좋은 공부라는
것. 무궁무진하다는 점. 배울수록 신비한 세상을 접한다는
점. 모두 살아갈 원동력이 되어서 좋다고. 평생 공부라는
말에 새삼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고. 옆에서 듣고 있던 셋도 덩달아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늘그막에 외로운 섬으로 살기엔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찾아보면 자신에게
맞는 일이 꼭 있게 마련. 주변에 인생 선배들이 저마다의 길을 내서 걷고 있었다. 앤디도 테디도 샌디도 그런 길을 하나씩 내서 자기 세상을 일궈 나갔다. 때론
여린 가슴도 느끼는 늘그막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