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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력밥솥, 시편39:1-13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압력밥솥이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압력밥솥, 또 압력솥. 그 기능을 여러분 우리가 다시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입니다마는 압력밥솥의 특징은 밀폐입니다. 밀폐.
밀폐함으로써 솥 안의 압력을 높여줍니다. 압력이 높아지면 온도가 그 안에서 잘 높아지지요.
그래서 보통의 압력에서는 잘 삶아지지 않는 식품들이 있지 않습니까?
뭐 예를 들면 토종닭백숙을 먹는다 그러면 그 토종닭들이 좀 좋게 말하면 쫄깃쫄깃하고 좀 부정적으로 말하면 질깁니다.
그래서 그게 닭이지만 씹는 맛이 좀 있는데 이 토종닭백숙을 주문하면 40분이나 걸려요. 그런데 그나마 40분을 대부분 압력솥으로 닭을 삶습니다. 다 들어보셨으니까 아시겠지요? 오늘 날씨가 서울에서는 지금 비가 내리거든요?
한번 닭죽을 좀 끓여 드시지요. 날씨도으실으실하고 그러니까 뜨끈한 닭죽을 좀 끓여서 가족들이 함께, 삼이 있으면 좀 삼뿌리도 넣어보시고 대추며 마늘, 마늘 찧지 않고그냥 통으로 넣으셔서 그렇게 해서 한번 압력솥으로 해 드시면 좋을 거 같아요.
식품을 이렇게 단시간에 조리하는 기구지요. 그래서 생선 같은 것도 압력솥에 넣게 되면 뼈까지 다 흐물흐물해지는 그런 기능을 하고 있고 또 콩밥이나 현미 같은 것, 이게 뭐 보통 밥솥에는 해놓으면 너무 거칠고 딱딱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압력솥에다 할 경우에 현미를 섞은 찰밥 같은 경우 아주 기름지게 그나마 부드럽게 먹을 수 있게 되는 것, 이게 이제 이런 거지요.
압력밥솥의 특징은 안전밸브가 있다는 거지요. 그래서 압력밥솥 내의 압력이 너무 가해지면 자동적으로 안전밸브가 열리면서 안전밸브를 통해서 압력이 좀 빠져나가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폭발해버리니까.
이러한 압력솥의 특징을 잘 우리가 기억할 수 있다 그러면 오늘 본문 너무 구체적이고 선명하게 그 내용을 포착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 이 시편 39편은 임종을 눈앞에 두고 마음에서 임종을 예상할 수 있는 그런 노년시절에 다윗이 자기의 일생을 돌아보며 노래한 다분히 고백적인, 신앙고백적인 또 지혜시적인 성격이 있는 비탄시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신앙고백적인 내용이 담겨져있고 또 백성들이 이노래를 들을 때에 아, 이렇게 행동하고 이러한 마음가짐을 갖고 살면 되겠구나, 라는 걸 깨달을 수 있는 지혜시적 성격이 있고 또여기에 대적들에 둘러싸여있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는 어떤 비탄시적 특징이 함께 아우러져서 들어있는 그런 시입니다.
다분히 노년에 지나온 생애를 돌아보며 쓴 시이기 때문에 자서전적 성격도 아주 강하게 드러나 있는 시지요.
이 시편은 과거를 돌아본다라고 하는 점에서 노년에 지었다라고 하는 점에서 시편 23편과 상당히 비교가 되는 그런 시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뉘이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너무 평화롭고 목가적이고 정말 평온함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거에 반해서 똑같이 과거를 돌아보는데
이 시편 39편은 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하지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재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
사뭇 분위기가 달라요. 그렇지요?
똑같이 과거를, 생애를 회상하는 그런 위치에서 쓰여진 시요 노래인데 너무 다르지 않습니까? 아주 중요한 포인트라고 봐요.
시편 23편은 생애를 돌아보면서 하나님이 내게 어떻게 하셨는가에 강조점을 두고 노래한 것이라면 이 시편 39편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세상에 대한 나의 입장과 나의 태도, 나의 마음가짐에 역점을 두고 쓴 시라는 겁니다.
시편 23편은 하나님을 향한 내 입장을 노래한 것이고 시편 39편은 똑같은 생애를 돌아보지만 이 세상을 향한 내 입장을 강조해서 노래한 거라고 할 수가 있다는 것이에요.
자, 그러면 어차피 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을섬기는 거 아닙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이라는 게. 이 땅을 딛고 사는 동안에 하나님을 섬기는 것인데 그러면 그 내용이 어떤것이고 이 세상에 대한 태도가 어떤 것이라야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사람의 태도가 될 것인가를 돌아보며 쓴 거라는 거예요.고백적으로.
여기서 1절 말씀을 보면, 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한다라는. 나의 행위를 조심한다는 것은 좀 번역이 그렇게 쌈박하지가 않아요. 나의 행위를 조심하는 게 아니라 내 길들을 조심한다는 겁니다. 히브리어원어의 길들.
그러면 이 길들이라는 게 뭡니까?
내가 내 인생을 사는 거 자체가 길을 걸어가는 것이라고 생각을 한 것이에요.
그런데 그 길들이 잘못될 수 있기 때문에악인에 대해서,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 나를 대적하는 자, 나를 원수 취급하는 자, 아니면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전혀고려하지 않고 이 세상에 대한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 입에 재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 절대로 말을하지 아니하리라.
그리고 2절에 보면 심지어는 잠잠하여 말을 하지 않는 게 어느 정도까지냐 하면 그들과 대적하거나 그들을 통해서 내가 뭔가 잃어버릴까봐 그들과 맞서 대치할 때에 경쟁적이고 호전적인 말뿐만이 아니라 좋은 말도 안 한다. 아예.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는 우매한 자들, 하나님의존재를 고려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내게서 뭔가 뺏어가려 그러고 나를 해하려고 하는 그런 사람들한테 내가어떤 말도, 좋은 말이건 나쁜 말이건 아예 말 자체를 안 해버리겠다.
말을 섞지 않겠다. 이렇게, 이런 태도로 살았다는 것이에요.
아예 상대를 안 하겠다는 겁니다. 상대를 안 하겠다. 이게 세상을 향해서 다윗이 갖고 있었던 태도라는 겁니다. 그랬더니, 그랬더니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 불이 붙으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이런 말이 나와요.
그랬더니 내 마음속에서 뜨거워서, 그러니까 나의 근심이 더 심하도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고려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 나를 대적하는 원수들, 대적자들 앞에서 아예 그들을 상대를 안 합니다.
그들이 나한테 창을 들이대던, 칼을 들이대던,나를 욕하든, 나를 모함하던, 아예 내 마음에서 그 사람들을 상대를 안 하는데, 안하려고 입을 딱 다물었는데 하도 눈앞에서발광들을 하고 난리를 치고 하나님이 당장에 벼락을 떨어뜨려서 벌을 주시면 좋으련만 그렇지도 않고 몸도 건강하고 상황도 좋아지고그 악한들이, 하나님을 고려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 뭐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예요. 마음에 너무너무 고통이 심한 거예요. 근심이 더한다는 말은 고통이 심해진다는 거거든요.
영어로는 에고니라 그러는데 더 에고니 해서 정관사를 붙이면 예수님께서 겟세마네동산에서의 고뇌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그런 고뇌가 있다는 것이에요. 그런 고뇌가.
예수님의 어떤 고뇌?
로마 군인들이 갈대로 탁탁 예수님을 칩니다. 야, 임마. 야, 임마. 예수님이
침을 탁탁 뱉습니다. 얼굴에다가. 뺨을 치고.
도대체 이거 뭐 아니, 천군천사를 불러다가 즉사를 시켜도 이 속이 풀리겠습니까?
아니, 누구라고 이놈들이 감히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뺨을 치고 네가 왕이야?
네가 왕이야? 턱을 툭툭 치면서 그러지 않았겠어요? 갈대로 얼굴을 턱턱 치면서.
예수님이 그렇게 악한 사람들, 하나님을 고려하지 않는 이방족속들이 하나님이신 당신을 그렇게 모욕하는 그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시면서 빌라도가 재판을 할 때도 너와 내가 상관이 없다 하고 끊어버렸다는 거예요.
다윗의 지금 이 모습이 그리스도의 모습을 그대로 예표하고 있는 겁니다. 상대를 안 하는 거예요. 말을 섞지를 않는 겁니다.
그러니까 빌라도가 뭐라 그래요? 내게 변명을 좀 해봐라. 지금 내가 너를 죽이려고 재판하고 있지 않느냐? 그러니까 내게 변명을 좀 해봐라. 주님께서 아무소리 안 하십니다. 아무소리 안 하십니다.
네가 나를 죽일 수 있는 것은 하늘에서부터 너에게 그런 권한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말은 너는 내 상대가 아니다. 하나님과 나의 일이다.
너는 그 중간에 끼어서 심부름이나 하고 있으니까 내가 널 상대하겠냐?
이런 뜻이었다는 거예요.
지금 다윗이 그런 태도로 일관하는데 내 마음에서 3절에 보면 불이 붙은 겁니다. 불이 붙어. 정말 그 악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하고는 아예 상대를 안 하려고 하는데 하는 꼴을 보니까 막 마음에 불이 붙어요. 불이 붙어.
그러니까 이게 뭡니까?
차라리 나를 대적하는 사람들과 맞서 싸우면 이렇게 열불이 안 나겠어요. 마음이.
그런데 완전히 봉쇄해버렸어요. 내 스스로. 재갈을 물려버렸어요.
야, 이 자식아. 네가 뭐 사람이야? 네가 그러고도 이놈아 인간의 탈을 쓰고 인간이랍시고 껍적대고 돌아다니냐? 이러고 욕이라도 하면 좀 마음이 풀리겠는데 아예 상대를 안 해버리는 겁니다.
그러자니 속에서 불이 붙어버려요. 불이 붙어버려요. 압력솥이 돼버리는 거예요. 완전히 밀폐해버렸어요. 말을 안 하고 그 사람에 대해서 생각을 안 해버립니다. 아예 상종을 안 해버립니다. 왜?
그렇게 얽혀 들어갔다가는 그 사람과 말을 섞고 싸움하고 따지고 내가 옳으니, 네가 옳으니 말을 하다보면 내 인생의 길이 잘못가게 될까봐, 휘말려서, 아예 말을 안 해버립니다. 안 해버립니다. 왜?
어차피 내 길은 하나님이 인도하신다고 믿으니까. 그 사람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믿으니까 그냥 밀폐시켜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 속에서 뜨거운 불이 막 붙는거예요. 막. 내 물건 뺏어가려 그러지요. 내 돈 뺏어가려 그러지요. 왕권 뺏어가려 그러지요. 그러니까 속에서 불이 붙어압력솥이 돼버렸어요. 이때, 이 압력솥이 됐을 때 어떻게 이 압력을 빼냅니까?
안전밸브가 열리고 압력이 빠져나와야 밥은 밥대로 제대로 되면서 위험하지 않지요. 안 그러면 폭발해버려요.
이때 이제 드디어 4절에 안전밸브를 통해서 압력을 빼냅니다. 이 세상에 대해서는 완전히 마음을 밀폐시켜서 상종을 안 해버립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말을 섞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4절에 말합니다.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무슨 얘기입니까?
주님, 내 인생의 끝을 내가 깨닫게 해주세요. 저 사람들과 맞서 싸우기 싫습니다.
저 사람들이 내게서 뺏어가려고 하는 내 인생의 모든 것들, 저들이 다 갖고 간다 할지라도 괜찮은 이유는 내가 내 생애의 끝을 보고 있기 때문이에요.
이생은 어차피 끝날 것이기 때문에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며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있는 때에도,
다시 말하면 사람은 그가 전성기에 달할 때에조차도 진실로 모두가 다 허사 뿐이니이다.
허사라는 말은 신기루라는 뜻이에요. 신기루일 뿐입니다.
자, 상황이 지금 어떻습니까?
대적들이 나를 향해 옵니다. 나를 괴롭힙니다. 내게서 뺏어가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들끓고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그들과 말을 섞고 그들과 시시비비를 따지고 이해관계를 분명히 하기 위해 그들과 말을 섞다 보면 감정이 휘말리고 상황이 휘말리면서 내 인생의 길이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인생의 길이 잘못될 까봐 내가 평생을 어떻게 살았냐? 다윗이?
밀폐시켰습니다. 봉쇄시켰습니다. 그러자니 눈앞에 보이고 있는 사람들의 꼴이 사람 속에 불을 지릅니다. 도대체 이것들이 사람인가 싶은 생각이 날 정도로 나를 괴롭힙니다. 이유가 없습니다.
이때 이 마음에 생기는 불과 압력을 어떻게 빼냅니까?
그래, 인생이 뭐냐? 인생에서 가장 잘됐다고 할 그때조차도 단지 신기루에 지나지 않지 않느냐?
그래, 뺏어가라. 다 가져가라. 너희가 원하는 대로 다 갖고 가라.
어차피 내 인생이라는 것이 주 앞에서 보면 한 뼘밖에 안 되는 것이요,
영원하신 하나님이 보실 때 내 인생이라는 것, 70년, 80년 살아봐야 티끌에 지나지 않고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내가 그것 때문에 내 인생의 길을 감정에 휩싸여서 너희들과 맞서 싸우며 내가 그까짓 거를 지키겠다고 나를 잃어버리겠느냐?
싫다. 다 갖고 가라. 하면서 마음의 압력을 빼내는 겁니다. 어떻게 압력을 빼내요?
이 인생이 그림자다. 이 인생이 아무것도 아니다. 잘 돼봐야 전성기를 이뤄봐야 그것이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 것이요, 인생이라고 하는 것이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고 소란하며 그 다음 구절 보세요. 6절에.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그 재물을 쌓겠다고 난리법석을 하며 분요한다 그래요. 소란을 떨고 산다는 겁니다.
뭐 우리아이가 대학을 좋은데 들어가야 되고 뭐 직장을 구해야 되고 돈을 많이 벌어야 되고 뭐 명품을 사야 되고 다 그림자 같은 일인데,
그림자 같은 일이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이고, 돈을 모아봐야 내가 쓰는 것도 아니고 엉뚱한 사람한테 로 다가는 분위기인데.
그것들을 위해서, 그걸 얻겠다고 하는 과정중에 나를 대적하고 있으니 내가 상대를 안 하고 아예 나는 분명히 깨닫기를 인생은 끝이 있고 그림자 같고 이 땅위에서 제일잘됐다고 해봐야 든든히 섰다고 해봐야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 것뿐인 것을 알며.
어떻게 압니까, 다윗이?
7절에, 그러니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바라겠습니까? 나의 소망은 주께 있습니다. 내가 대적들이 사람들이 나에게서 가져가려고 하는 그 모든 것들, 하나님, 하나님이허락하셔서 대적들이 극성을 부린다면 그래요, 다 갖게 하세요. 다 가져가게 하세요.
나는 오직 주만 바라겠습니다. 나는 오직 주님 한분만을 내 기업으로 삼겠습니다. 하는 노래를 지금 하는 겁니다.
여러분, 이 다윗의 생애가 시작될 때에 이제사무엘을 통해서 이새의 집에 와서 다윗에게 기름을 붓지 않습니까? 그 상황에 대한 스데반집사님의 설교내용 중에 이런 얘기가있어요.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는 말이.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이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말을 주님에게 적용하실 때 하나님이 뭐라 그러십니까?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다.
그러면 사람의 마음이 어떤 상태가 돼야 하나님께 마음에 들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 됩니까?
압력솥에 찐 사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즐겨 드시는 밥과 같은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통해서 모든 뜻을 다 이루어가시겠다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은 모든 사람들과 틈바구니에 살면서
그들이 내게서 뺏어가고 내게 손해를 끼치려고 하는 그 모든 상황에 대해서
말을 섞지 않고 밀폐시켜버리고 봉쇄시켜버리는 겁니다.
완전히 당하는 거예요. 그냥. 당하는 거예요. 하는 대로 당하는 거예요, 그냥.
그 사람들이 어떻게 하든지 간에. 그런 결심을 갖고 살아가는데 속에 불이 생기거든요?
속에 불이 생기니까 화가 나는 겁니다.
그런데 그 화를 어떻게 푸느냐?
그 사람들 멱살을 잡고 내가 참다참다 도저히 못 참겠다 이놈아. 이렇게 달려드는 게 아니라, 나랑 담판을 짓자. 이러고 달라드는 게 아니라
그래, 인생은 그림자다. 다 가져가라. 내가 알몸이 되더라도 어차피 인생이 제일 잘된다고 해봐야 신기루일 뿐이다. 이러고 그 화를 분출시키는 겁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느냐?
그래, 내가 가질 분은 하나님 한분밖에 없어. 라고 말하는 그 사람이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요. 하나님의 마음에.
그리고 뭐라고 얘기하시냐?
내가 그를 통하여 내 뜻을 다 이루리라. 다 이루리라. 하나님의 뜻이 어디서? 땅에서 다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그런 마음가짐의 사람을 하나님이 찾고 계시는 것이에요.
이 세상에서 내 거를 지켜야 되는데, 내 가정을 지켜야 되는데, 내 자식놈을 지켜야 되니까 이래 해야지, 저래 해야지. 싸우고 맞서고 경쟁하고 이러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대해서 완전히 밀폐시켜버리는 겁니다. 마음을. 재갈을 물려 버립니다.
말을 안 해버립니다. 깨끗이 끝내버립니다.
그런데 돌아가는 것, 눈으로 보고 귀로 듣다 보니까 열불이 나는 거예요.
이때 그래, 세상은 그림자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이게 주님의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진 거 아닙니까?
어떻게 밀폐시켜요? 어떻게 생각을 멈추고 입에 재갈을 물립니까?
내가 죽었다. 자식 앞에서. 못돼먹은 남편 앞에서 지지리 말도 안 듣는 아내 앞에서. 어쩌면 그렇게 안돼는 사업 앞에서.
다 십자가로 재갈 물리고 죽어버리는 거예요. 밀폐시켜버리는 거예요.
그러자니 막 부글부글 끓지요, 여러분. 제대로 죽어지지도 않고.
이때 그래, 내가 이 세상에서 죽고 이제는 하나님만을 갖자.
어차피 이 세상 잘돼도 그림자다. 잘돼도 신기루다. 하나님만을 갖자.
주님의 십자가가 다윗이 살았던 삶을 너무너무 쉽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겁니다. 결정적으로.
그 십자가를 붙잡고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뭐라 그러시냐?
내 마음에 합한 자다. 내 마음에 합한 자다. 압력솥으로 잘 익은 거예요. 내 마음이.
압력솥으로. 이 세상에 대해서 내 생각 분출하고 내 말을 분출하지 않고 다 봉쇄시켰더니 그리고 어떻게 그 압력을 빼냅니까?
이 세상은 그림자다. 이 세상은 잘돼봤자, 최고로 잘돼봤자 신기루에 불과하다. 내가 돈 벌어봐야 내가 쓰는 게 아니라 남들이 다 쓴다. 이까짓 거 해서 뭐하냐? 이런 마음을 갖고.
십자가가 바로 그런 생각의 완성이라는 겁니다.
죽자. 세상에 대해서 죽자.
그래서 십자가를 붙잡고 있을 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 마음에 합한 자다.
십자가 붙잡고 세상에 대해서 밀봉해버리고 내 생각과 말을. 죽어버리는 겁니다.
그리고 오직 하늘을 향하여 마음을 살려요.
하나님, 하나님만이 내 기업이십니다.
이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 마음에 합한 너를 통해서 이 땅에서 이루려는 모든 뜻을 내가 다 이루어 갈 것이다. 그게 다윗의 생애였습니다. 그게.
오늘 시편 39편의 내용 압력밥솥.
어떤 대적 앞에서 어떤 위급한 상황 앞에서라도 밀폐시키고 그래,
이 세상 것 망해봐야 별 거 아니고 잘돼봐야 별 거 아니다.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이러한 고백을 끊임없이 하는 동안에 내 마음에 합한 자라 말씀하셨던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향한 말씀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아버지!
너무나 우리 인생의 길들이 뒤틀리고 왜곡되어졌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을 전혀 고려치 않는 자들과 시시비비를 가리고 그들의 삶 속에서 내 몫을 챙기느라 경쟁적으로 사는 동안에 내 인생의 길조차 다 뒤틀려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버지하나님 이제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그옛날 다윗이 자기 입에 재갈을 물렸던 것처럼 세상 사람들을 향해 마음을 밀폐시키고 봉쇄하여서 그들과 이해관계를 따지며 시시비비를가리지 말고 이 세상 그림자인 것을 깨닫고 세상에 대해 완전히 죽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세상 것 더 갖겠다고 이 세상에서 더탄탄히 누리겠다고, 이 세상에서 더 구축하겠다고 날뛰지 말게 하시고 차라리 세상을 마음에서 버리고 하나님을 소망할 수 있도록우리 마음을 지켜 주시옵시며 그리하여 다윗처럼 하나님마음에 합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오늘도 내 마음이 십자가를 통해 압력밥솥 속에서 익어가는 하나님아버지의 식량이 되기를 바라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