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33:1-49, 출애굽과 광야여정의 회고, 19.5.1, 박홍섭 목사
민33장은 1-49절까지 출애굽 광야 여정의 회고 기록과 50-56절의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뜻, 이렇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1-49절까지의 출애굽과 광야여정에 대해 생각하겠습니다. 지난 40년 동안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애굽에서부터 여기 모압 평지까지 왔습니다. 40년은 결코 짧지 않는 시간입니다. 그동안 수많은 일들이 있었고 최소 60만 명 이상이 광야를 지나오면서 죽었습니다. 이 여정을 함께 했던 형 아론은 죽었습니다. 누이 미리암도 죽었습니다. 모세도 얼마 있지 않으면 죽어야 합니다. 그런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자신은 들어가지 못하는 가나안을 보면서 출애굽부터 지금까지 지나온 광야 여정을 회고하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노정은 이러하니라 하고 3-42절에 45곳의 지명을 언급하는데 지금 우리에게는 낯선 지명들이지만, 모세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장소 하나하나를 기록할 때마다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모세라면 어떤 심정이겠습니까?
이 여정 중에 ‘진 쳤고’라는 말이 41번 나옵니다. 진 쳤고 진을 치고 진을 치고 진 쳤고 진을 쳤다는 말이 41번이나 되풀이 됩니다. 이것을 신1:31-33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는 것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찿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광야의 노정에 진을 친 모든 곳은 그들이 찾아낸 장소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들보다 먼저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신 곳입니다. 하나님은 광야 내내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같이 이스라엘을 안고 인도해오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많이 진을 치고 떠나고를 반복했지만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알지 못했고 믿지 못했습니다.
이런 백성들을 안고 오신 하나님입니다. 이런 백성들을 하나님의 명을 따라 인도해 온 모세입니다. 그 하나님이 모세가 죽기 전에 내가 너를 통해 인도해낸 이 백성들의 노정기를 기록하라고 하십니다. 이런 의미가 있는 출애굽부터 모압 평지까지의 광야 여정이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지는데 3-15절까지는 애굽의 고센 땅 라암셋에서부터 시내 산까지의 여정이고, 16-36절은 시내광야에서 신광야 가데스까지의 여정, 37-49절은 가데스에서 모압평지까지의 여정입니다.
먼저 3-15절의 이 시기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라암셋을 출발하던 날은 애굽 백성들이 지난 밤에 죽은 자신들의 장자를 매장하는 날이었습니다(4). 애굽 전체가 울음으로 가득할 때 그들은 나왔습니다. 그들은 도망치듯이 나온게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 가운데 애굽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당당하게 나왔습니다(3). 라암셋이라는 지명에 이런 은혜와 구원의 감격이 스려 있습니다.
7절에 바알스본 앞 비하히롯으로 돌아 믹돌 앞에 진을 쳤다고 했죠. 여기는 어떤 곳입니까? 출14장을 보면 앞에는 홍해 바다가 있고 뒤에는 애굽의 바로가 병거 600대와 모든 병거를 다 동원하여 쫓아오고 있는 진퇴양난의 장소가 바로 여기입니다.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전무후무한 큰 구원을 여기에서 행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열어놓으신 길, ‘바다 가운데를 지났습니다(8).’ ‘바다 가운데를 지나’라고 기록하고 있는 쿵쾅거리고 있는 모세의 가슴을 상상해보십시오. 라암셋을 출발할 때 보다 더 놀라운 구원의 역사, 바다가 갈라지고 바다를 육지처럼 건너는 역사가 여기에서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런 기억들이 있죠. 영광의 하나님을 만난 그곳, 그때 말입니다.
그렇지만 이 일 후 3일 후 마라에서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사흘 동안 물을 얻지 못한 백성은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했고 이르려고 애굽을 나왔냐고 불평했습니다(출15:22-24). 구원받은 감격과 기쁨이 채 3일이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이런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을 위하여 나무를 던져 마라의 쓴 물을 단 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십자가의 은혜를 보여주죠. 마라 다음 어떤 지명이 나오죠? 엘림입니다. “엘림에는 샘물 열둘과 종려 칠십 그루가 있으므로(9).” 엘림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주시는 쉼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정금같이 연단하시고 쉴 새 없이 단련시키지만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지를 아십니다. 우리의 체질을 아시고 연약을 아셔서 긍휼로 엘림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마라는 언제였고 엘림은 어디인지 생각해보십시오.
11-12절은 신광야가 나옵니다. 출애굽한지 한 달이 되었을 때입니다(출16:1). 여기서 그들은 또 모세와 아론을 향하여 원망과 불평을 쏟아냅니다. 이번에는 고기를 배불리 먹고 싶다는 불평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불평하는 그들에게 메추라기와 만나로 배불려 주셨습니다. 오래참는 하나님, 자비하신 하나님입니다. 14절은 르비딤이라는 지명이 나옵니다. 여기서 백성들은 또 마실 물이 없다고 불평합니다. 참 징 한 인생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쉽게 잊어버릴 수 있고 틈난 나면 불평하고 원망할까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방식으로 이들을 위하여 반석을 쳐서 물을 내어 주심으로 모든 백성과 가축을 마시게 하셨습니다. 반석이신 그리스도께서 깨어지심으로 백성을 구원하시는 십자가의 은혜를 계시하신 사건이죠. 광야 내내 이스라엘의 죄악을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예표로 덮고 지나가심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동일합니다. 완악하고 패역한 우리의 희망은 십자가의 은혜뿐입니다.
16-36절까지는 시내 광야에서 신 광야 곧 가데스까지의 여정입니다. 시내 광야에서 어떤 일이 있었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시내 광야에 진을 치게 하시고 무려 1년의 시간을 보내도록 하셨습니다(16). 그 기간 동안 십계명과 율법을 주셨고 성막을 짓게 하셨으며 제사장과 레위인을 구별하여 세워주셨습니다. 이곳에서는 영광도 있었지만,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올라 간 사이 형 아론과 백성의 장로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했던 사건으로 3000명이 죽임을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사건입니다. 그렇지만 모세는 이 사건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뵙는 엄청난 은혜를 경험하기도 합니다(출33-34장).
16-17절의 기브롯핫다아와의 일들이 기억나십니까? 민수기 11장에서 있었던 일이죠. 만나가 지겹다고 고기를 달라고 울고 불평하던 그 사건입니다. 이때 모세가 얼마나 힘이 들었든지 자신도 하나님 앞에서 내가 이 백성을 감당치 못하겠으니 차라리 나를 죽여 달라고 불평했던 그곳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바람을 불게 하여 어마어마한 양의 메추라기를 주셨고 그 고기가 그들의 이 사이에 씹히기도 전에 하나님이 진노하사 큰 재앙으로 치셨고, 그렇게 탐욕으로 죽임을 당한 백성들을 묻은 곳이 기브롯 핫다아와입니다.
마지막은 37-49절로 가데스에서 발행하여 지금 있는 여리고 맞은 편 요단가 모압평지까지입니다. 신 광야 가데스는 정말 잊지 못할 곳입니다. 여기에서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죽어서 묻혔습니다(민20:1). 그뿐 아니라 이 지역의 므리바에서는 백성이 마실 물이 없다고 다시 모세와 아론에게 반기를 들었고 모세는 아론과 함께 백성을 향해 노를 발하면서 반석을 두 번 침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는데 실패했습니다. 이 일로 아론과 함께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하나님의 선언을 듣게 되는 장소가 바로 가데스입니다. 이 지명을 기록하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38절의 호르 산은 어떤 곳입니까? 40년 동안 모세와 함께 하면서 모세의 대변인 노릇을 했던 최초의 대제사장 아론이 죽은 곳입니다. 이곳 또한 잊을 수 없는 장소이죠. 그래서 다른 장소와 달리 38-39절 두 절을 할애해서 아론이 죽은 정황과 그의 나이까지 기록해서 그 특별한 의미를 더 부여하고 있습니다. 41절부터 호르 산을 떠나 지금 있는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을 끝으로 긴 여정을 회고하는 기록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출애굽과 광야 40년의 여정동안 너무나 많은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출애굽의 과정은 하나님의 기적과 권능이 주를 이루지만 그 이후 광야 생활의 대부분은 불순종의 연속입니다. 광야의 지명들은 이런 이스라엘의 뼈아픈 실패와 죄악들이 담겨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실패와 불순종과 죄악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 가나안이 눈앞에 보이는 모압 평지에 서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은혜의 결과입니다.
광야 여정의 기록은 이스라엘의 죄악과 그런 이스라엘을 안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의 기록입니다. 우리의 신앙여정도 그렇지 않습니까? 저와 여러분에게도 하나님을 만난 출애굽의 그 감격의 사건이 기억나는 장소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감격과 기쁨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불평하고 원망하고 실패했던 때와 장소도 있죠. 그러나 돌아보면 어떻게 고백할 수 있습니까? 늘 우리의 연약함을 뛰어넘은 하나님의 은혜와 큰 자비입니다. 불평의 마라가 있었지만 하나님이 준비하신 나무가 있었고 열두 샘의 엘림이 있었습니다. 르비딤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던 시내 산도 있었습니다. 기브롯 핫다아와가 있었고 가데스도 있었고 므리바도 있었습니다. 수많은 연약과 탐욕과 어리석음과 죄악이 우리의 지난 삶의 걸음걸음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죽어 마땅한 우리를 이 시간까지 은혜와 자비로 덮어서 여기까지 인도해오셨습니다.
내 인생 여정 끝내어 강 건너 언덕 이를 때 하늘 문 향해 말하리 예수 인도하셨네. 매일 발걸음마다 예수 인도하셨네, 나의 무거운 죄 짐을 벗고 하는 말, 예수 인도 하셨네.
이 찬송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