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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력 발달과 배경지식, 그리고 그림책
자랄수록 스토리를 좋아하는 건, 기억력의 발달 때문
태아도 기억을 할까? 노스캐롤라이나대학의 안소니 드캐스퍼는 엄마들에게 일주일에 두 번씩, 6주에 걸쳐 ‘모자 속의 고양이’라는 그림책을 아기에게 읽어주게 했다. 6주가 지난 뒤 실험에 참여한 아기들에게 ‘모자 속의 고양이’와 다른 그림책을 번갈아 들려주었다. 그러자 아기들은 ‘모자 속의 고양이’를 들려줄 때 일제히 반응을 보였다. 즉, 아기들은 지난 6주 동안 들은 이야기를 기억한다는 것이다. 놀랄만한 점은 이 엄마들이 그림책을 읽어준 기간의 대부분은 임신 기간이었다는 것이다. 실험에 참여한 아기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아들이었다. 이 실험은 아기들은 태어나기 이전, 엄마의 뱃속에서 듣는 소리를 기억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아기들이 기억하는 것은 이야기의 줄거리가 아니라 엄마의 목소리다. 그림책을 읽어줄 때의 억양과 리듬을 기억하는 것이다.
기억력은 인지 발달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이해력, 관찰력, 사고력, 집중력 등과 함께 발달한다. 무엇인가를 기억하기 위해서는 그 사물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인지력’이 있어야 한다. 아이들은 기억력이 좋아지면 호기심이 강하고 이해가 빠르며 집중력이 뛰어난 아이가 된다. 아이가 효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과거의 경험을 새로운 상황에 응용하는 데도 기억력이 필요하다. 창의력 역시 아이의 다양하고 폭넓은 경험 위에서 발달하므로 그 경험을 정확하고 세밀하게 기억하는 기억력이 필수적이다.
기억력이 좋은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머리가 좋다.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의 조 페간과 알버트 아인슈타인 약학대학의 수전 로즈는 기억력 테스트에서 높은 점수를 얻은 아이들이 2년, 3년, 6년 뒤에 실시한 IQ 테스트에서도 역시 높은 점수를 얻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단, 기억력과 암기력은 구분해야 한다. 암기력은 주로 글이나 숫자 등을 시각적으로 기억하는 단순한 능력인데 비해, 기억력은 언어는 물론 감각과 감정 등 자신이 경험한 것을 공감각적으로 보관하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 영화 <레인맨>에 나오는 주인공은 암기력이 뛰어난 것이다. 간혹 자폐아나 유아비디오증후군 아이 중에는 단어나 숫자 등에 뛰어난 기억력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런 아이들은 자신이 외우고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 암기하는 것이다.
아이는 그림책을 통하여 줄거리, 시대배경, 캐릭터 등을 이해하게 된다. 아이가 여러 가지 그림책을 읽으면서 ‘스키마타’라고 하는 일정한 사고방식이 일상화되면 그림책의 의미를 이해하고 쉽게 기억할 수 있게 도와준다. 스키마타 때문에 아이가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예측하기 시작하면 아이의 추론력도 발달한다. 이러한 그림책 경험은 아이가 학교에서 공부하는데 생소한 단어가 나오더라도 그 내용을 쉽게 이해할 것이다. 더구나 아이들이 그림책의 언어에 친숙해지면 문자의 시각 형태에 대한 인지력이 발달하여, 냉장고 문이나 스케치북 위에 있는 색색의 글자들을 식별해 낼 수 있다. 아주 세밀하게 조율된 시지각 체계는 동일한 패턴과 특성에 오랫동안 노출되면서, 아이는 사이즈, 색깔, 폰트 종류에 상관없이 냉장고에 붙어 있는 글자들을 식별할 수 있는 것이다. 문자패턴은 후두엽과 측두엽에 걸쳐있는 방추상회에서 파악하는데 여기에 관여하는 뉴런들은 단계적으로 특화되어 문자를 빠르게 파악하게 해준다. 소크라테스 시대에는 아이들이 대화를 통하여 이해한 내용에 대해 묻고 또 묻기를 반복했기 때문에 기억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기억력 발달에 맞춰 그림책 읽기
0-3개월
아기는 신생아 시기부터 엄마의 목소리와 냄새를 기억할 수 있으며 생후 3개월이 되면 좋아하는 맛이 생긴다. 아기의 시각과 청각 등 감각발달과 피부마사지를 통한 두뇌발달이 중요한 시기로서 엄마와의 활발한 교류가 필요한 시기이다. 소리가 나는 모빌을 이용하여 시각이나 청각발달을 촉진시키고 굵은 선과 원색으로 만들어진 그림책이나 소리나는 딸랑이 등으로 기억력을 자극할 필요가 있다.
3-6개월
엄마와 아빠를 확실히 구별하기 시작하는데 딸랑이를 쥐어주면 흔들면 소리가 난다는 것을 확인하고 자주 딸랑이를 주면 흔든다. 몇 분 전에 보여주었던 그림을 기억할 수 있는데 생후 5개월이 되면 보여주었던 그림을 2주 후에도 기억해낸다. 생후 6개월이 되면 자신이 만진 것을 기억해내어 장난을 하기도 한다. 애착형성은 낯선 사람과 친근한 엄마를 구별하는 것으로 기억력의 중요한 단계가 되므로 엄마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하는 절대적인 시간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손으로 물건을 잡을 수 있는 시기이므로 촉각과 청각을 발달시킬 수 있는 손바닥그림책을 이용하여 상호작용을 하자.
6-12개월
워킹메모리가 발달하여 흉내 내는 것을 잘한다. 자기 이름을 기억할 수 있으며 잼잼, 도리도리 등 간단한 놀이를 따라할 수 있다. 생후 9개월이 되면 엄마가 노래를 부르면 박수를 치면서 엄마의 율동을 조금씩 따라서 하기도 하고, 엄마의 ‘예쁘다, 사랑해“, ”징그러워, 싫어“라는 어감을 기억할 수 있다. 생후 12개월이 되면 놀이를 기억하여 4주간 지난 다음에도 흉내낼 수 있다. 눈앞에 있는 물건이 없어져도 어디에 있을 것이라고 찾기 시작하는 대상연속성의 개념이 발달하고 원인과 결과에 대한 연결도 발달하는 시기이므로 까꿍놀이 그림책이나 줄거리가 있는 일상생활그림책으로 워킹메모리를 키워주자. 그림책을 통하여 배우는 신체운동은 전뇌발달에 도움을 주는데 기억력도 촉진시킨다. 언어발달이 중요한 시기이므로 그림책을 읽을 때 엄마가 풍부한 어휘를 사용하여 이야기해주고 아이의 말에 응해줄 필요가 있다.
12-18개월
이제는 엄마 아빠의 간단한 놀이 뿐 아니라 일상생활이나 행동을 모방하게 된다.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은 지속적으로 늘어나 생후 16개월이 되면 4개월이 지난 다음에도 전에 하였던 놀이를 기억할 수 있다. 그림책과 단어의 연결이 서서히 이루어지고 줄거리도 파악하는 시기이므로 사물그림책과 생활그림책이 모두 도움이 된다.
18-24개월
그림책에서 본 사물과 실제 사물이 같은 것임을 연결할 수 있으며 간단한 역할놀이가 가능하다. 생활그림책뿐 아니라 꾸며진 이야기가 있는 그림책을 읽어줄 수 있다. 일상생활을 흉내내므로 장난감뿐 아니라 생활도구를 이용한 놀이를 하도록 북돋아줄 필요가 있다. 알아듣는 언어도 급격히 늘어나므로 간단한 심부름이나 지시를 따를 수 있다. 그림책을 통하여 엄마와 의사소통할 기회를 늘려 기억력을 자극할 필요가 있다. 아이는 그림책을 읽으면서 이야기를 상상해내고, 엄마가 해주는 이야기를 이해하고, 사물을 구별할 뿐만 아니라 이름을 기억하기도 한다.
24-36개월
사진을 보면서 상황을 기억할 수 있으며 말로만 들은 것을 기억할 수 있다. 생후 30개월이 되면 퍼즐조각의 모형을 기억해 단번에 맞출 수 있다. 36개월이 가까워지면서 1-2년 전의 일도 기억할 수 있으며 체험하지 않고 듣기만 한 것도 기억할 수 있다. 생활에 있어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혼자 하게하는 것도 필요하다. 팬티, 바지, 치마 등을 입을 줄 알고 양말, 실내화, 신발, 조끼, 윗도리 등을 벗는 것도 능숙하다. 모방을 통하여 많은 지식과 기술들을 배우고, 생활양식도 익히므로 아이에게 모범이 되는 행동을 보여주자. 일상생활 그림책을 통하여 바른 습관을 가르쳐 스스로 기억하여 혼자 할 수 있도록 북돋아주고 모범적인 행동을 따라하도록 하자. 줄거리가 있는 그림책을 좋아하는 때이므로 창작그림책도 도움이 되며 운율이 있는 동시를 읽어주는 것도 효과적이다. 아이의 기억력이 발달하면서 "식사를 마친 후에 놀 수 있다" 와 같은 간단한 시간 개념을 이해할 수 있으므로 자연원리 그림책이 유용할 때가 있다.
같은 그림책으로 아이의 배경 지식 2배 늘리려면?
계속 반복하면 기억된다는 말은 일종의 상식이다. 하지만 두뇌는 단순히 무한 반복하기보다는 의미 있는 반복을 좋아한다. 눈으로 지켜보는 것보다는 읽는 것, 읽는 것보다는 읽으면서 쓰는 것, 책이나 노트를 그냥 보는 것보다는 생각하는 것, 있는 그대로 외우기 보다는 요약이나 정리를 해서 외우는 것을 좋아한다. 따라서 단순히 외우지 말고 의미를 생각하면서 반복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기억력이 창의력과 추리력에 도움이 되려면 해마의 단기 기억이 아닌 전두엽의 장기 기억으로 발전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그림책으로 배경지식을 늘리고 기억력을 높이려면 다음의 지침을 따르자.
첫째 그림책의 내용과 아이의 경험을 연결지어라.
부모가 아이의 기억력을 높이려면 아이가 기억할 만한 경험을 만들어주어야 하며, 아이가 그 일을 기억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림책과 관련하여 아이가 경험한 일을 질문하고 설명하면서 시간 순으로 기억하도록 해주어야 하고, 언어로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치자.
둘째, 인물과 상황을 공간적으로 배치해보자.
예를 들면 <흥부와 놀부>나 <콩쥐팥쥐> 그림책을 읽은 다음에, 욕심이 적은 사람과 욕심이 많은 사람으로 구분하거나, 착한 일과 나쁜 일을 각각 다른 쪽에 배치하는 활동을 하면 아이들은 그림책을 읽으면서 인물이나 사건을 공간적으로 배치하는 법을 배운다. 이때 기억력은 더욱 단단해진다. 줄거리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이야기 속의 사건을 종이에 그림이나 글씨로 순서대로 그려준다. 그리고 그것을 지도삼아 줄거리를 기억하고 말할 수 있다.
셋째, 공감각 놀이를 즐겨라.
아이들은 감각 자극을 보다 잘 기억한다. 심지어 태아 시절에 경험한 감각 자극까지도 일정 기간 기억하고 있다. 따라서 어린 아이일수록 다양한 감각 자극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특히 두 가지 이상의 감각 자극이 동시에 주어질 때 아이들은 보다 정확하게 그 상황을 기억하게 된다. 그림책을 읽어주고 내용을 종이 위에 그림으로 그려 보게 하자. 그러면 아이들은 느낌이나 줄거리를 그림으로 그려 놓을 것이다. 그러면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때보다는 더 잘 기억하게 된다.
넷째, 그림책의 내용을 시간 순서대로 기억하게하라.
그림책의 내용을 줄거리의 형태로 간편하게 이해하고 기억하게 하자. 아이들이 머릿속에서 그림책의 이야기를 순서대로 늘어놓게 하자. 그림책의 내용이 아이의 머릿속에 저장되는 순서는 그림책의 순서와 꼭 같지는 않다. 그림책의 내용 순서가 “현재-대과거-중과거-과거-현재‘로 이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아이의 머릿속에 저장되는 줄거리의 순서는 대과거-중과거-과거-현재로 늘어놓을 수 있다. 아이는 이를 통해 ’원인과 결과‘ 즉, 인과관계를 알게 된다. 전래그림책이나 생활그림책 등 줄거리가 뚜렷한 책을 읽어준 다음, 줄거리를 말하게 하자. 다음부터는 듣거나 읽을 때 줄거리에 관심을 갖게 된다.
다섯째, 즐거움과 자신감을 줘라.
프로이트에 의하면 나쁜 기억은 무의식적으로 ‘억압’되기 때문에 잘 기억하지 못하거나 금새 잊어버린다고 한다. 반대로 즐겁고 유쾌한 기억은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있게 마련이다. 인간의 두뇌는 “아주 잘했다” “너무 멋진데”라는 칭찬을 들으면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나와 집중하게 해주가 뇌가 효율적으로 돌아가게 한다. 반대로 “그렇게 읽으면 안되지” “그런 생각은 나빠” 식으로 야단을 치면 스테로이드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뇌가 위축된다. 도파민이 줄어들고 스테로이드호르몬이 증가되면 뇌의 정보흐름에 문제가 생기고 기억력이 떨어진다.
여섯째, 일상의 순서를 예상하라.
그림책에서 묘사되는 일상적인 경험이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그림책에서 나오는 ‘매일 아침 8시에 일어나서 아침밥을 먹고 오전 10시에는 엄마와 놀이를 하고, 오후에는 산책을 나간다’는 일상적인 경험의 순서는 아이가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예상하게 한다. ‘동물원에 갈 때는 먼저 차를 타고, 매표소에서 표를 사고, 직원에게 표를 주고 들어간다’는 것을 반복해서 읽게 되면 자연스럽게 기억하게 된다. 실제로 일상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아이와 함께 다음 순서가 무엇인지 묻고 말해보도록 하자. 아이의 말이 엉성할 때는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했냐고 물어보자. 그러고 나서 다시 말하게 하면, 처음보다 완벽하게 일상적인 경험을 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