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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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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 소식 스크랩 대백과사전에 광주안씨 성씨유래 올바르게 수정하다.
준니 추천 0 조회 15 13.07.11 19:3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안 (安)

요약
우리나라 성(姓)의 하나이다. 본관은 문헌상 109본이 전하나, 광주(廣州)·순흥(順興)·안산(安山)·제천(堤川)·죽산(竹山)·탐진(耽津)·태원(太原) 등을 제외한 나머지 본관은 자세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설명


우리나라 성(姓)의 하나이다. 본관은 문헌상 109본이 전하나, 광주(廣州)·순흥(順興)·안산(安山)·제천(堤川)·죽산(竹山)·탐진(耽津)·태원(太原) 등을 제외한 나머지 본관은 자세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2000년 통계청에서 실시한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19만 7668가구, 63만 7786명으로, 총 286개 성씨 가운데 17위였다.

광주안씨
시조는 안방걸(安邦傑)이다. 그는 고려 태조 왕건이 삼국을 통일하는 시기에 광주지방의 향리로, 일정한 세력을 바탕으로 광주지방의 안정에 공적이 있어 대장군의 군직에 올랐다. 또한 토성분정(土姓分定)정책에 따라 안씨 성(姓)을 가지고 광주를 생활근거지로 하였으므로 후손들이 광주를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2000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인구수가 4만 3609명으로 집계되었다.

순흥안씨
시조는 안자미(安子美)이다. 고려 신종 때 흥위위 보승별장(保勝別將)을 지냈으며, 흥녕(興寧;지금의 경북 영주시 순흥)에 대대로 거주하였으므로 후손들이 그곳을 본관으로 삼았다.

안자미에게는 아들 3형제가 있어 큰아들 안영유(安永儒)의 후손을 1파로, 둘째아들 안영린(安永麟)의 후손을 2파로, 셋째아들 안영화(安永和)의 후손을 3파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각파에는 시조가 있어 1파는 4세인 문성공 안향이, 2파는 5세인 문의공 안문개(文懿公安文凱)가 있으며, 3파는 5세인 제학공 안석(提學公安碩)과 6세인 문정공 안축(文貞公安軸)이 있다.

2000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인구수 46만 8867명이었다.

안산안씨
시조는 안자유(安子由)이다. 그는 고려 충목왕 때 첨의평리를 지냈다고 전한다. 세계나 본관의 유래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으며, 다만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안산을 본관으로 삼아 대를 이어왔다.

2000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인구수 872명이었다.

죽산안씨(舊)
시조는 안방준(安邦俊)이다. 처음 이름은 안지춘(安枝春)이다. 중국 당나라에서 건너온 이원의 큰아들로, 신라 경문왕 때 왜구의 노략질을 평정한 공으로 안씨를 사성받고 죽산군(竹山君)에 봉해졌다고 전한다. 그 뒤 후손들이 죽산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2000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인구수가 5만 6051명이었다.

죽산안씨(新)
시조는 안원형(安元衡)이다. 안원형은 고려 충혜왕 때 문과에 올라 밀직사사를 거쳐 좌명공신으로 녹훈되어 죽성군(竹城君)에 봉해졌다. 시호는 문혜(文惠)이다. 그의 선조는 광주안씨 시조 안방걸의 17세손이라고 전한다.

2000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인구수가 7666명이었다.

탐진안씨
시조는 안원린(安元璘)이다. 그는 1332년(고려 충혜왕 2) 문과에 올라 정당문학 검교중추부사에 이르렀고 탐진군(耽津君)에 봉해졌다. 따라서 후손들이 탐진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순흥안씨의 시조 안자미의 7세손 3형제 가운데, 첫째 안원숭(安元崇)은 순흥안씨를 계승, 둘째 안원형은 신죽산안씨, 셋째 안원린은 탐진안씨의 시조가 되었다. 그러므로 순흥안씨·신죽산안씨·탐진안씨는 모두 한 시조의 후손이다.

2000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인구수 1만 1033명으로 집계되었다.

 

분류
역사·고고학·문화재 > 전기, 족보 > 계보, 족보

  목차
 


광주안씨 순흥안씨 안산안씨 죽산안씨(舊) 죽산안씨(新) 탐진안씨 광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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