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백척간두에 홀로 선 삶
<32> 증시랑에게 보내는 대혜선사의 답장 ⑥-2
[본문] 앞서 오신 성인들이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치 파리가 곳곳에 붙을 수 있지만 오직 불꽃 위에는 붙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중생도 또한 그와 같아서 곳곳에 능히 반연하지만 오직 반야 위에는 반연할 수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진실로 생각마다 초심(初心)에서 물러서지 말고 자신의 심의식(心意識)이 세간의 번뇌에 반연하는 것을 가져서 반야 위에다 돌려 두면 비록 금생에 깨닫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 목숨이 마칠 때에는 결정코 악업(惡業)에 끌려가서 악도(惡道)에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태어나면 자신의 금생의 원력을 따라서 틀림없이 반야 가운데에 있어서 그대로 수용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일입니다. 가히 의심할 것이 없는 일입니다.
[강설] 선불교에서 화두 하나에 목숨을 걸고 일로매진하는 삶은 한 생의 문제만 아니라 영원한 생을 모두 바치는 일이다. 참으로 철석같은 요지부동의 신심이 있어야 한다. 화두를 타파하려는 이 일 외에는 다른 인생은 이제 영원히 오지 않는다.
백척간두에 홀로 선 삶이다. 화두를 타파하든 타파하지 않든 오로지 이와 같은 삶만 영원히 지속될 뿐이다. 참선납자에게는 이제 다른 인생은 영원히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설사 금생에 깨닫지 못하더라도 이 일을 위해 전 인생을 바친 것에 커다란 기쁨과 만족을 느껴야 한다.
이와 같은 자세라면 내생에도 반드시 이와 같은 공부를 하면서 살게 될 것이다. 다음 생에도 또 다음 생에도 역시 이러한 공부를 하게 되는 일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한 번 청산에 들어간 뒤로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삶(一入靑山更不還)”이 되는 것이다.
일상서 공부의 근본주제 찾으며
힘이 덜들어가는 조짐 보이면
그때 곧 공부에 힘 얻을 수 있어
[본문] 중생세계의 일이란 구태여 배우지 않아도 옛적부터 익혀온 것이 익숙하며 앞으로 아나갈 길도 익숙하여 무엇이든 자연스럽게 취하며 힘들이지 않고 그 근원을 만나게 되리니 모름지기 밀쳐두도록 하십시오.
그러나 출세간의 반야를 배우는 마음은 끝없는 옛적부터 등지고 살았으므로 잠깐 동안 선지식이 설명하는 것을 들으면 자연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결정적인 뜻을 세워서 반야로서 주제를 지어서 결코 세간의 일과 양립하지 마십시오.
[강설] 세상사는 대개가 본능적으로 이루어진다. 본능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구태여 배우고 익히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출세간의 참선 공부는 본능으로는 되지 않는다. 억지로 익혀가며 훈습하여야 한다. 훌륭한 법문을 듣고 경전과 어록을 열심히 읽고 또한 화두를 꾸준히 들다가도 잠간만 중단하면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다.
굳은 뜻을 세워서 결코 중단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이 공부다. 그러므로 세상사에는 절대로 한눈팔지 말고 이 일에만 매진해야 하는 것이 참선공부다. 만약 방선시간에는 잡된 생각하고 또 해제 중에는 여행이나 다니며 세상사에 놀아난다면 결제 중에 약간의 공부가 되었다 하더라도 모두 헛것이 되고 마는 것이 이 공부다.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한다.
[본문] 만약 반야에 깊이 들어가면 저 세속의 일은 굳이 배척하지 아니해도 온갖 세상사인 마군과 외도들은 자연히 항복할 것입니다. “생(生)것은 익게 하고 익은 것은 설게 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이것을 위한 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 공부를 하는 일에 근본주제를 찾으면 점점 힘이 덜리는 것을 깨닫게 되리니 그때가 곧 공부에 힘을 얻은 것입니다.
[강설] 증시랑에게 보낸 수차에 걸친 가르침의 편지가 여기까지다. 끝으로 세상사는 굳이 배척하려고 하지 말고 반야에 대한 공부만 열심히 하게 되면 세상사는 저절로 항복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과 함께 <서장>의 명언인 “생(生)것은 익게 하고 익은 것은 설게 해야 한다(生處放敎熟 熟處放敎生)”는 교훈을 남겼다.
또한 마지막으로 공부에 힘이 덜 들어가는 조짐이 보이면 그것이 곧 공부에 힘을 얻은 것이라는 말씀으로 증시랑에게 주는 가르침은 마쳤다.
[출처 : 불교신문 2012.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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