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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히 10:35~36)
1. 시작하는 말
한국교회 목회자들이나 부흥사들이 강단 에서 설교할 때에 아주 흔하게 사용하는 용 어들이 있다. 그 중에서 특히 ‘회개’를 비롯 해 ‘열심’ 또는 ‘충성’ 그리고 ‘축복’이나 ‘심판’ 등과 같은 용어들은 설교할 때마다 거의 빠 짐없이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외에 도 하나 더 언급하자면 ‘상’이라는 말이 아닌 가 싶다.
한국전쟁 직후, 사회혼란과 경제적 궁핍 이 극심한 상황에서 한줄기 소망을 가지고 기독교신앙에 입문하는 자들이 많았다. 이 들에게는 사회불안과 가난 및 질병에서 벗 어나는 현실타개가 무엇보다도 시급한 형편 이었다. 이에 걸맞게도 교회강단에서 현실 타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설교가 보편적으 로 많았다. 그 한 예를 든다면, 누구나 회개 하고 예수께로 돌아와 열심히 믿고 충성하 면 복을 받아 잘살고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뿐만 아니라 상도 받게 된다는 식이다.
지금으로부터 60여년 전, 한국교회는 신 학적으로 매우 미숙한 상태였다. 이러한 시 기에 교회부흥의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부흥사의 위상이 신학자의 위상 을 앞지르는 기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소 위 부흥사들은 초대형교회를 설립해서 교세 를 확장해 갔다. 그뿐만 아니라 금권과 교권 을 장악해서 신학자들을 수하에 거느리는 형국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신학적인 복음 의 내용보다는 소위 능력의 역사라 해서 기 적을 중시하는 풍토가 조성되기도 했다. 그 결과 성경적으로 가다듬어지지 아니한 설교 가 대형집회나 교회강단 등에서 거침없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형교회 목회 자나 부흥사의 말이 기독교진리를 대변하는 것으로 둔갑하기도 했다. 곧 교회에서 열심 히 충성하면 그 대가로 복도 받고 ‘상’도 받는 다는 부흥사들의 말이 마치 불변의 진리처 럼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한국교회 는 ‘복’과 ‘상’을 미끼로 삼아 영혼을 낚시질 하는 형국이 된 셈이다.
지도자들은 한국교회가 중병에서 벗어나 건전한 교회로 성장하기를 누구나 원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에 있는 중병에 합병증까 지 곁들여 증세가 너무 다양하고 극심한 상 태이다. 이에 그 원인을 찾아 규명하는 일은 그리 간단하거나 쉬운 일이 아니다. 설령 찾 아 규명한다 해도 치료해서 회복시키는 것 은 하나님의 주권영역에 속한 것이다. 중병 을 앓고 있는 한국교회는 그 증상들을 숨김 없이 드러내고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치유 를 간절히 소원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 국교회 강단을 통해 자주 듣게 되는 ‘상’에 대 한 소고를 조심스럽게 마련해본다. 과연 성 경에서 말하는 ‘상’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2. 언어의 의미
우리말 성경은 구약이나 신약에서 ‘상’이 라는 언어가 적지 않게 사용되고 있다. 그런 데 문제는 성경에서 그 의미가 단순하지 않 고 매우 복잡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성경에서 사용된 ‘상’이라는 언어를 바르게 이해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문 법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또는 신학적으로 심 사숙고를 해야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뿐만 아니라 성경에서 사용한 언어들은 비교적 인간이 자신의 의사를 상대에게 표현하는 보편적 언어들이다. 이러한 상대적 언어로 절대적인 하나님의 뜻을 인간에게 계시한 것이므로 그렇게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곧 상대와 절대의 차이점에서 발생 하는 언어의 의미가 매우 커서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성경에서 사용된 ‘상’이라 는 언어의 의미가 단순하지 않고 매우 복잡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일반적 견해로는 ‘상’이라는 언어의 의미 를 그렇게 복잡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곧 ‘상’이란 착한 일을 한 자나 경주에서 남보 다 더 잘한 자에게 수여하는 것으로 단순하 게 알고 있다. 다만 ‘상’의 종류가 다양할 뿐 이지 그 의미는 단순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 다. 그 종류는 대통령이 백성에게, 단체장이 회원에게, 사장이 회사원에게, 행사장이 참 가자에게, 선생이 학생에게 수여하는 것 등 으로 아주 다양하다. 그와 반면에 ‘벌’은 악 한 일을 한 자에게 가해지는 것이라고 이해 하고 있다. 이는 일반적으로 상과 벌이 도덕 적인 선한 행위를 교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가가 실시하는 상벌제도 역시 국 민들이 국법을 잘 준수할 뿐만 아니라, 사회 질서가 잘 유지되게 하려는 교화의 수단으 로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구약에서 ‘상’이라는 말을 히브리 원문으로 ‘마스코레트(tr,Kic] )’라는 단어로 주로 사용하였다. 이는 ‘고용하다’는 의미의 ‘사카르(rk; )’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임금’ 또는 ‘삯’, ‘보수’ 등의 뜻을 가지고 있 다. 신약에서는 헬라어 원문으로 ‘미스도스 (misqov")’라는 단어가 주로 사용되었다. 이 는 ‘품삯’ 또는 ‘임금’, ‘보상’ 등의 비교적 단 순한 뜻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특히 신약성 경 히브리서에는 ‘미스다포도시아(misqa podosi va)’라는 단어가 몇 번 사용되었다. 이는 ‘보수’ 또는 ‘보상’, ‘보응’ 등과 같이 ‘미 스도스( )’라는 단어와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다. 이 외에도 다양한 뜻으로 번역 되어 사용되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 면 ‘임대료’ 또는 ‘사례금’, ‘비용’ 및 ‘상’과 ‘형 벌’ 등과 같은 다양한 뜻으로 사용되었다(참 고 바이블렉스, 디럭스 바이블). 이러한 의 미들은 역자가 히브리어나 헬라어 문장의 전후문맥에 따라 적당한 의미를 부여해 번 역한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의미로 번역되 어 있는 용어들을 단순한 의미로 이해하려 는 시도는 많은 오해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고 여겨진다. 이러한 오해를 해소하기 위해 서는 ‘상’에 대한 성경적인 올바른 정의를 알 아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3. 상에 대한 정의
보편적으로 ‘상’에 대한 일반적 정의는 ‘뛰어난 업적을 남기거나 경쟁에서 승리한 자에게 수여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사전에서도 ‘상’은 ‘훌륭한 일이나 잘한 일을 기리기 위하여 주는 표적’이라고 밝히고 있다(동아새국어사전). 이러한 사전적 정의는 기독교적 입장에서는 성경적으로나 교리적으로 순수하게 수납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는 ‘상’이라 는 말에 대한 성경적 정의가 일반적인 정의와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상’ 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는 성경이 일관되게 강조하는 ‘은혜’라는 말을 무색하게 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정의는 수상자의 ‘훌륭한 일 이나 잘한 일’을 전제조건으로 내세운다. 만일 성경에서 말하는 ‘상’도 수상자의 행위에 대한 조건에 의한 것이라면 ‘은혜’가 될 수 없다. ‘은혜’는 어떤 행위에 대한 아무런 전제조건도 요하지 않는다. 이러한 근본적 차이는 신자들에게 신앙적으로나 또는 신학적으로 많은 오해와 혼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혹자들은 하나님께서도 신자들로 하여금 명하신 말씀대로 살게 하시려고 상이나 벌을 주시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이 신자들 이 ‘상’에 대해 일반적으로 겪는 갈등과 혼란의 요인이다. 곧 신자들은 하나님께 ‘상’을 받으려면 말씀대로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가하면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하나님의 무서운 형벌을 받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혹자들은 그리스도의 공로로 하나님의 무서운 형벌은 면할 수 있으나, ‘상’은 정말 하나님께 열심히 충성해야 받는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곧 구원은 은혜로 받지만, ‘상’은 행위에 따라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교회에서 지도자들이 신자들에게 죽도록 충성해야 ‘상’을 받는다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끊임없이 충성하며 산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닐 뿐만 아니라 살 수도 없다. 그런데도 온갖 충성을 죽도록 계속해야 한다는 지도자들의 설교는 집요하게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 신자들이 견디기 힘든 갈등과 혼란에 대한 초점이 모아져 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실 ‘상’에 대한 성경적 정의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곧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작정하신 뜻에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자 들에게 주시기로 언약하신 총체적인 유업’으로 정리된다. 히브리서 기자는 ‘큰 상’을 하나님의 ‘약속’과 관련시켜 언급했다(히 10:35~36). 그리고 사도 바울도 골로새교회 성도들에게 주께 받을 ‘상’을 ‘유업의 상’ 이라고 표현했다(골 3:24). 이는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에게 주실 ‘상’이 언약하신 하나님 나라의 총체적인 유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증거이다. 여기 ‘총체적 유업’이라는 말 은 하나님 나라의 유업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의미한다. 곧 주께서 성도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들을 총칭해서 일컫는 말이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각양각색의 ‘상’에 대한 표현들은 모두가 이미 주시기로 언약하신 하나님 나라의 유업에 따른 것임이 분명하다.
4. 상에 대한 종류
대부분의 신자들은 ‘상’에 대한 종류가 차등이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원인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상’의 종류가 다양하게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회의 지도자들에게서 그렇게 듣고 배웠기 때문이다. 소위 유명한 부흥사들의 입에서 나온 속설이 하나 있다. 누구나 교회를 위해 죽도록 충성하지 아니하면 그에게는 면류관 대신 개털 모자가 상급으로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개털로 만든 모자를 쓰지 않고 금으로 만든 면류관을 받아쓰려면 죽도록 열심히 충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터무니없는 말이 언제부터인가 신자들에게 이미 널리 퍼져있다. 그런데 그 말에 대해 많은 신자들이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눈치이다. 이는 한 예에 지나지 않으나 ‘ 상’의 종류에 대한 신자들의 오해를 엿볼 수 있는 한 단면임에는 틀림없다.
주께서 아시아 일곱교회의 사자를 향해 이기는 그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신 것들이 많이 있다. 이를 살펴보면 그 종류가 많기도 하지만 매우 다양하다, 곧 일부 몇몇 교회의 사자들에게는 생명나무과실을 비롯해, 면류관과 사망의 해를 면하게 해주실 것을 약속 하셨다. 그리고 일부 사자들에게는 만나와 흰 돌에 이어 통치권세와 새벽별 또는 흰옷 과 이름을 시인해주실 것도 약속하셨다. 그리고 일부 사자들에게는 기둥과 새 이름 및 함께 먹고 보좌에 앉게 해주실 것을 약속하셨다(계 2:~3:). 이렇게 다양하게 표현된 많은 것들을 단순한 시각으로 보게 되면, ‘상’ 의 종류에 대한 성도들의 오해는 무리가 아닌 듯싶다. 따라서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약속하신 ‘상’이 성도 각자의 행위에 따라 각각 수여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한 것은 물론이고 각각 차 등 있게 수여된다고 생각한다. 이는 성경의 해석학적 문제를 감안하지 아니한 결과에서 오는 단순한 오해에 지나지 않는다.
‘상’에 대해 성경에서 다양하게 표현한 것은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에게 주시기로 언약하신 ‘유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곧 앞서 언급한 아시아 일곱교회 사자들을 향해 이기는 자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신 모든 것들이 택한 백성에게 주시기로 언약하신 하나님 나라의 유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일곱교회의 사자들에게 약속하신 ‘상’들이 택한 백성에게 언약하신 하나님 나라의 유업에 속한 것들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이외에도 구약이나 신약에서 ‘상’에 대한 종류를 다양하게 표현한 것 역시 그러하다. 그러므로 앞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상’과 ‘유업’은 별 개의 것이 아니고 동일한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구약이나 신약에서 언급한 ‘상’들은 그 종류가 차등이 있고 다양하게 많은 것이 아니다. 다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에게 언약하신 영원한 나라의 유업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들이다.
5. 상에 대한 특징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상’은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물론 성경에서도 ‘상’이라는 말이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상’에 관한 일반적인 사건을 예로 들거나 역사적 사실을 언급하는 경우에 그러하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에게 약속하신 ‘상’의 경우에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상’은 일반적인 ‘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 특징이 첫째는 창세전에 이미 작정된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개개인이 아닌 일체로 수상(受賞)하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는 세상 종말에 수여(授與)되는 것이다.
1) 창세전 작정됨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기쁘신 뜻에 따라 택한 자에게 은혜로 베풀어주실 유업으로서의 ‘상’ 을 이미 작정해 놓으셨다. 곧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누구에게 무엇을 상으로 줄 것인가에 대해 작정해 놓으신 것이다. 이는 인간의 행위결과에 따라 가정(假定)하지 아니하시고 행위와 무관하게 확정(確定)하셨다는 의미이다. 일반적인 ‘상’은 수상자의 행위결과에 따라 가변적이기 때문에 확실한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누가 무슨 ‘상’을 받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성경적인 ‘상’은 행위와 무관하게 창세전에 확정되었기 때문에 누가 무슨 ‘상’을 받게 될지 알 수 있다. 따라서 택한 백성은 가변적인 ‘상’ 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확정적인 ‘상’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것이다.
2) 일체로 수상함
대부분의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수여하시는 ‘상’을 개개인이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구속받은 성도가 개개인이 아니고 머리되신 그리스도와 일체를 이루어 영원토록 살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가 개개인의 행위 여하에 따라 각자가 차등이 있게 받는 것이 아니다. 다만 머리되신 그리스도와 신령한 유기체로 한 몸을 이루어 일체로 받게 된다.
우리말 성경에는 ‘상’을 개개인의 행위 여하에 따라 받는 것처럼 오해의 소지가 많은 성구 중 몇이 있다. 그 중에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 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는 내용이다. 이는 번역자의 의견이 과도하게 첨가된 오역으로 보인다. 이를 직역하면 ‘나의 상(유업)은 나와 함께 수고하는 그 모두에게 주는 것이다’로 번역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께서 이미 받아가지고 계신 하나님 나라의 유업은 지체로서 함께 지상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수고하고 있는 그 모두에게 언약을 이행하기 위해 주는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따라서 성도가 상으로 받을 유업은 약속대로 이미 머리되신 그리스도께서 받아 가지고 계신 것으로서 그리스도와 신령한 유기적 일체로 누리게 될 것이다.
3) 종말에 수여됨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에게 언약하신 유업 곧 ‘상’을 심판하시는 세상 종말에 이르러 수여하신다.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께서는 부활 승천 하셔서 성도에게 주실 ‘상’을 이미 받아가지고 계신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지체인 성도는 세상종말에 부활의 몸을 입고 그리스도와 일체가 되어 ‘상’을 받아 영원토록 누리게 된다. 곧 세상종말에 이르러 성도가 부활된 영원한 몸으로 그리스도와 신령한 유기적 일체로 영원한 유업의 ‘상’을 받아 영원토록 누 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택함을 받은 성도가 세상에서 사는 동안 온갖 고난을 당하는 중에도 끝까지 인내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6. 상에 대한 특성
택함을 받은 성도가 유업으로 받을 ‘상’은 두 가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열거하자면 여러 가지 측면에 서 다양하게 언급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중에 하나님의 주권성과 은혜성은 빼놓을 수 없는 특성이다. 이는 그 특성이 인간들 사이에 주고받는 일반적인 ‘상’ 에서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상’은 수상자가 자신의 주관적 노력의 공로에 따라 차등 있게 받는다. 그러나 성경적인 ‘상’은 하나님의 주권 적인 은혜의 섭리에 따라 동일하게 받는다. 따라서 성경적인 ‘상’은 하나님의 주권성 및 은혜성의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1) 주권성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주권적으로 작정하신 뜻에 따라 언약하신 대로 택한 백성에게 유업으로 ‘상’을 수여하신다. 곧 택한 백성이 ‘상’을 받는 것이 인간의 주관적 노력의 대가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의한 것이라는 뜻이다. 일찍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포도원에서 일꾼을 고용하는 비유로 하늘나라에 대해 가르치신 바 있다(마20:1~16). 이 비유에서 포도원 주인은 일꾼들이 일한 대로 품삯을 지불하지 아니하고 주인의 마음대로 동일하게 지불했다. 이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나님 나라의 ‘상’이 인간의 행위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따라 동일하게 주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것이 바로 성도에게 약속된 ‘상’이 지니고 있는 하나님의 주권성이다.
2) 은혜성
성도가 받을 ‘상’은 행위에 따라 차등이 있게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동일하게 받는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에게 은혜로 모든 것을 거저 베풀지 않는 것이 없다. 이는 앞서와 같이 예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신 하늘나라에 대한 포도원 비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포도원 주인이 일꾼들에게 각각 일한 대로 지불하지 않았다. 이른 아침부터 포도원에 들어와 일한 자나 포도원 일이 끝날 무렵에 들어온 자나 동일하게 한 달란트씩 지불했다(마20:1~16). 이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나님 나라의 ‘상’은 인간의 행위대로 차등 있게 주시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모두 동일하게 주신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바로 성도에게 약속된 ‘상’이 지니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성이다.
7. 끝맺는 말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약속하신 ‘상’에 대한 중요한 내용들을 살펴보았다. 이로 인해 ‘상’에 대한 여러 가지 오해가 말끔히 해소되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결국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공로로 ‘유업의 상’을 약속받은 성도는 ‘상’에 대한 소망보다는 은혜에 대한 감동이 앞서게 된다. 이는 ‘유업 의 상’이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성도는 ‘상’으로 인한 신앙적 혼란과 갈등을 느낄 필요가 없다. 그리고 받은바 은혜의 감동에 의해 사명 수행을 위한 열정을 가지고 살아갈 뿐이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므로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으니, 주님 곧 의로우신 재판장께서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님을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 주실 것이라. (딤후 4: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