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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 웃음이 가득한 아름다운 얼굴(2158. 2022.10.9)
행6:8-15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임재하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고,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쳐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상주감리교회는 목사님이 제일 많이 외치는 것이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는 교회와 성도가 되자는 말씀을 자주 합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삶이 때로는 고달프고 어려운 일도 있지만, 기쁘고 즐거운 일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얼굴을 폈다가 찡그려다가 했습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성도여러분들이 항상 얼굴이 천사와 같이 빛나고 있다는 것입니다.ㅎㅎㅎ 아닙니까? 환하게 웃으시기 바랍니다. 웃을일이 없으면 웃을 일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면 웃을 수 있습니까? 예화----웃기는 것중 하나 ---웃는 얼굴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얼굴 그러면 누가 제일 예쁘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연에인들중에 이영애 얼굴만 나오면 못견디는 사람이 있고, 김태희 얼굴만 나오면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짜증나 짜증나 했던 한예슬 얼굴만 나오면 좋아하기도 하고, 일본 사람들은 욘사마를 좋아하고, 류시원을 좋아하고 하여간 얼굴 때문에 좋아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얼굴 관리도 잘해야 합니다.
성경에도 보면 분명히 얼굴이 예쁘고, 천사의 얼굴처럼 빛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욥기 42장을 보면, 욥은 누구보다도 큰 시험을 믿음으로 잘 이겨낸 위대한 인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시험을 이겨낸 욥을 그가 전에 받은 복보다 큰 복으로 축복하셨습니다. 모든 것들을 갑절로 회복시켜주셨음은 물론 일곱 아들과 세 명의 딸도 다시 주셨고, 전국에서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웠으면---할렐루야!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마음의 상태에 따라 그 얼굴이 수시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사람일지라도 마음이 기쁠 때 표정이 다르고 고민이 많을 때의 표정이 다릅니다. 마음이 기쁘고 행복할 때와 마음에 불만이 가득하고 화났을 때의 얼굴이 다릅니다. 마음이 밝으면 표정도 밝아지고, 마음이 어두우면 곧 표정도 어두워지게 됩니다. 이처럼 각 사람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얼굴 모습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사람의 얼굴을 보십시요. 근육이 경직되고 살기가 등등하고 아주 험악해 보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평안한 사람의 얼굴을 보십시요. 얼굴이 평안해 보이고, 안정되어 보이고, 여유가 있어 보이고 미소가 보입니다. 마음을 선하고 아름답게 써야 합니다. 대적하려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한 시간을 행복하려거든 술을 마셔보라 그러면 한 시간은 행복할 것이다’, ‘하루를 행복하려거든 예쁘게 화장을 해보라. 그러면 하루는 행복할 것이다’, ‘한 달을 행복하려거든 새 집으로 이사를 하라. 그러면 한 달은 행복할 것이다’, ‘일년을 행복하려거든 결혼을 하라. 그러면 일년은 행복할 것이다’, ‘일평생 행복하려거든 남을 도와주라. 그러면 일평생 행복할 것이다’, ‘영원히 행복하려거든 예수를 믿어라. 그러면 영원히 행복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 잘 믿는 사람의 얼굴이 가장 예쁜 얼굴입니다.
참 행복은 이 세상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습니다. 술집에서도, 영화관에서도, 노래방에서도, 호화별장에서도, 재벌의 응접실에서도, 청와대에서도 얻을 수 없습니다. 돈, 명예, 권세, 성공, 출세, 술, 도박, 오락게임, 마약, 맛있는 음식, 여행, 등산, 낚시 등 즐거운 일도 그저 잠깐의 즐거움은 가져다줄지 몰라도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못합니다.
우리에게 참 행복과 영원한 행복을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행복과 만족과 축복이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잘 믿으면 놀라운 이적과 기적도 체험을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잘 믿으면 마음에 평안함이 넘칩니다.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함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참 평안을 주시면 우리 얼굴이 환하게 빛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속에 모셔서 예수님이 내 마음속에 있으면 얼굴이 빛나게 마련인 것입니다. 마귀가 우리 마음을 지배하고 있으면 얼굴이 마귀의 얼굴 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마귀짓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속에 선하고 온유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오늘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으로 마음속에 있느냐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진정으로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나를 구원하실 분, 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예수그리스도가 있다는 것을 믿으시면 오른손을 들고 아멘 합시다. 할렐루야! 예수가 마음에 있으니 옆사람 얼굴을 보시면 아주 예쁘게 보일 것입니다. ---옆 사람과 인사----당신 얼굴을 보니 예수님이 홀딱 반할만한 얼굴입니다----나도 반해버립니다.-----개그맨 안어벙이가 이런말 할대가 있습니다. 안어벙이에게 빠져볼까요-----자 빠져듭니다. 한 것처럼----우리 얼굴이 다른 사람이 볼 때에 빠져들 수 있는 천사와 같은 얼굴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옆 사람보니까 예쁘죠. 마음이 예쁘니까 얼굴도 예쁘게 보입니다.--할렐루야!
여러분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나면--찬송--오, 이 기쁨 주님 주신 것---달라집니다. 달라집니다. 기쁨이 충만한 얼굴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얼굴에는 항상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기쁨이요,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받게 되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넘치게 되는 천상의 기쁨인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얼굴에 항상 기쁨이 충만하여 그 모습만 보아도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복된 얼굴이 되기를 바랍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얼굴은 은혜충만한 성도의 얼굴일 것입니다. 은혜가 충만한 얼굴은 다른 사람이 가만히 보기만 해도 은혜가 된다고 합니다. 우리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의 얼굴이 2022년도 10월 둘째주일을 보내면서 성령이 충만한 얼굴, 은혜가 충만한 얼굴, 기쁨이 충만한 얼굴, 천사와 같은 얼굴을 갖고 살아가시를 축복합니다. 그 얼굴 때문에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시기를 축복합니다.
단1:15절이하에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은 자신의 세 친구와 함께 왕이 주는 진미와 포도주를 거절했습니다. 이들은 우상에게 바쳐졌던 음식을 단호히 거부하고 물과 채소만 먹었습니다. 10일동안 시험한 결과 그들의 얼굴이 왕궁의 다른 소년들보다 더 빛나고 윤택하고 아름다웠다고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은혜 충만한 모습의 결과일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를 다니시면 얼굴값을 해야 합니다. 은혜가 충만한 얼굴, 빛나는 얼굴, 기쁨이 충만한 얼굴, 천사와 같은 얼굴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모세도 얼굴에 광채가 났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이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창조된 인간의 인격의 표현은 얼굴로 나타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들을 각각 다른 인격으로 창조하시고 얼굴의 모양도 다르게 만드셨습니다. 얼굴은 하나님이 만드셨지만 얼굴 속에 나타나는 인상, 얼굴 속에 비치는 그 인격은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격이 성숙해지면 인상을 바꿀 수가 있습니다. 마음이 복잡하고 노하거나, 권모술수로 가득한 사람은 어느 정도 그 얼굴에서 그러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마음이 밝고 긍정적인 사람은 어느 정도 얼굴에서 그러한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인생을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에게는 그 얼굴에 성실한 향기가 풍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추한 생각 더러운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얼굴에서는 자연히 비열한 인상이 풍겨지게 마련인 것입니다.
그래서 얼굴을 마음의 창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인 우리! 즉 영원한 천국을 믿음으로 상속받고 살아가는 우리의 얼굴이 어떤지 한 번 살펴보십시오. 그 얼굴에 평화가 있습니까? 그 얼굴에 사랑이 있습니까? 모진 풍상으로 찌들려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속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는 얼굴은 다른 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제 자신을 향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얼굴! 그 얼굴이 편안해 지기 위해서는 우리의 속사람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충만해 져야 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성형 수술이 유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가난한 집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조그만 얼굴을 성형하면 예뻐질 것 같아서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나 조금만 성형수술하면 더 예뻐지겠는데요’ 남편이 말했습니다.‘나도 당신이 예뻐지는 것을 보면 좋아. 그런데 이 다음에 하나님 앞에 갔을 때 하나님이 내 작품이 아니라고 몰라보면 어떻게 하지’성형에 대하여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한 시도 입을 다물지 못 하고 말하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일년 12달 말하라고 하여도 하루가 부족할 정도였습니다. 어느 날 아내가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오늘 성형외과에 갔더니 두 바늘만 입을 꼬매면 내 입이 예뻐진다고 하더군요’,‘성형비가 얼마나 되나’,‘겨우 50만원이래요’ 남편이 말했습니다. ‘100만원 줄 테니 입을 모두 봉해 달라고 부탁하세요’
나는 오늘 얼굴에 대하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몸에는 모두 10개의 굴이 있습니다. 그 중에 7개의 굴이 얼굴에 있습니다. 두 눈, 두 귀, 두 콧구멍 그리고 입입니다. 그러나 그런 얼굴들에는 얼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얼이 들어 있는 굴이라고 하여서 얼굴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목사이기에 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볼 때가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 얼굴을 보면서 특별하게 눈에 뜨이는 얼굴이 있습니다. 웃음을 머금고 항상 목사를 주시하면서 무엇인가 위로부터 내리는 은혜를 사모하는 표정의 얼굴로 쳐다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른 얼굴을 한 번 보면 그 얼굴은 두 번 보게 됩니다.
반대로 바라보면 소름이 끼치는 아주 무서운 얼굴이 있습니다. 특별히 공산국가 사람들 얼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화가 잔득난 얼굴, 분노가 가득찬 얼굴, 잡아먹을듯한 얼굴을 가진 사람들의 표정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싸늘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우리는 천사의 얼굴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천사의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천사의 얼굴이라고 할 때에는 최고로 아름다운 모습이 떠오릅니다. 나는 오늘 천사의 얼굴을 가졌다고 하는 스데반 집사님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을 때 얼굴이 천사 같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복음을 반대하는 유대인들에게 잡혀서 돌에 맞아 죽는 데 그 때 사람들이 스데반의 얼굴을 보니 천사의 얼굴 같았습니다.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보면,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이 빛났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권능이 충만했기 때문에 스데반의 얼굴이 아름답게 빛났던 것입니다. 은혜 받은 성도의 얼굴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태어난 얼굴이 어떠하든지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은혜를 받으면 눈빛이 선하고 마음씨가 예뻐지며 말하는 것이나 웃는 것이 아름다워집니다. 이는 은혜를 받을수록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니 인자해보이는 것입니다. 푸근해 보이는 것입니다. 은혜받은 얼굴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모든 일에는 사람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해야 할 목적이 있어야 하고 분명해야 합니다. 그 사명과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이 필요한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감동하심을 붙좇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사명을 위하여 훼방하는 사단을 이기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으로서의 기도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즉 기도하는 목적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 위함이요 이를 훼방하는 사단을 이기고 이를 감당함으로써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 필요하지만 사람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람이 곧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인가 아닌가에 따라서 하나님의 일을 이룰 수 있는가 아닌가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즉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스데반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좇는 믿음이 성령충만한 사람입니다. 가치변화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요 종 된 자임을 알고 그 요구하심과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좇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은 성령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성령 받음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이 사람들을 통하여 초대교회인 예루살렘교회가 변화되었고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예수님은 열 두 제자를 택하여 세우셨던 것이지요. 이것이 하나님나라 일을 위한 예수님의 방법이었고 수단이요 전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란 무엇입니까? 요6:29절‘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라’했습니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신앙 모델이 여기 있습니다. 바로 스데반 집사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가장 본받고 존경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누구를 닮아가고 있습니까? 누구처럼 살고 싶습니까? 어떻게 살고 싶습니까?혹여 그 기준이 다 세상적인 것들이 아닙니까? 그런데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모델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 기준은 말씀입니다. 인생의 가장 정확한 승리의 이정표요 나침반은 말씀뿐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구원자시요 영원한 나라의 소망이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 삶을 산 우리의 신앙의 모델이 스데반입니다. 그는 사도가 아니었습니다.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기 위하여 세운 일곱 사람 중의 한 사람 평신도 곧 제자였습니다. 8절‘스데반이 은혜와 군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했습니다. 그는 성령, 지혜, 믿음, 은혜, 권능이 충만한 사람으로 성경은 기록합니다. 또 큰 기사와 권능을 민간에 행한 사람으로 기록합니다. 즉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하는 권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설교도 잘하였고 구제와 재정, 행정을 도와 함께 동역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9-10절‘리버디노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이라는 각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으로 더불어 변론 할새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 했습니다. 스데반이 성령과 지혜로 말할 때 저들이 감당치 못했다고 했습니다. 모두 충격을 받았습니다. 스데반이 성령과 지혜, 권능 뿐 만이 아니라 이방 철학에 대해서도 능한 지성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결국 스데반은 모든 지식에 능했지만 오직 예수만 증거한 믿음의 사람임을 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스데반을 죽이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7장에 가면 스데반을 죽여 버립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그들은 스데반을 돌로쳐 죽였습니다. 그들은 스데반을 모함했습니다. 위증을 했습니다. 그 이야기가 11-13절까지 있습니다. 11-13절‘사람들을 가르쳐 말시키되 이 사람이 모세와 및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 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가로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스려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지금 스데반은 누명으로 인하여 오해와 위증으로 분노로 떨어야하고 일그러져야 하고 창백해져야 할 그 얼굴에 놀라운 천사의 얼굴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이 일이 가능했을까요? 행7:54 이하를 보면,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림을 받은 사람들이 이를 갈며 일심으로 달려들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쳤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이 살기가 등등해보입니다. 살길을 가르쳐 주었으면 감사해야 하는데 오히려 이를 갈고 있습니다. 돌로 쳐 죽였습니다. 이를 갈고 설교말씀을 듣고 찔림을 받았으면 바로 회개해야 합니다. 그것이 살길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설교를 듣고는 회개하기 보다는 모든 것을 주의 종들에게 덮어씌웁니다. 주의 종들 때문에 망하거나 저주받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본문에 이 백성들을 보면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성밖으로 내치고 돌로 쳤습니다.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돌로 쳐 죽였습니다. 그러나 이때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이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고 감격에 찬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돌이 비오듯 자신의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위급한 상황 가운데서도 스데반은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하고 무릎을 꿇고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크게 부르짖으며 순교했습니다. 그러나 그 얼굴은 천사와 같은 얼굴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때 원수들을 향해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니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스데반도 죽으면서 원수들을 용서해달라고 간구하는 기도를 한 것입니다. 사랑 중 최고의 사랑은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돌로 쳐죽인 원수들을 용서하고 그 원수들을 위해 기도하는 스데반의 얼굴이야말로 빛나는 천사의 얼굴이었을 것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가장 닮았을 때가 바로 원수를 용서하고 원수에게 사랑을 베풀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셉의 얼굴이 이와 같았을 것 같습니다. 요셉을 미워하고 죽이려고 구덩이에 던졌으며 나중에는 애굽에 노예로 팔았던 요셉의 형들은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자신들을 환대했지만, 정작 그들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몹시 걱정이 되었습니다. 창50:15이하를 보면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가로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 하라 하셨나니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요셉의 얼굴은 마치 천사의 얼굴과 같이 아름다운 얼굴이었을 줄 믿습니다.
장차 천국에 가면 가장 크게 영광을 받을 사람들은 순교자들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노릇하게 됩니다(계 20:4, 6). 그 영광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를 위해 복음을 전하다가 죽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순교하게 되는 것을 가장 큰 영광으로 알고 기뻐했습니다.
초대 교부 크리소스톰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포기하라는 로마 황제의 명령이 엄히 내려졌으나 그는 황제의 명을 듣지 아니하므로 해서 전격적으로 체포되었습니다. 몹시 화가 난 왕이 신하에게 ‘저놈 독방에 처넣어라’고 명했습니다. 그러나 왕의 신하는 ‘아니 됩니다. 기독교인들은 독방을 더 좋아합니다. 독방을 기도실로 여기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잔인무도한 악당들이 있는 곳에 집어넣어라’고 재차 명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신하는 ‘그것은 더더욱 안됩니다. 악당들을 모조리 전도하여 기독교인들로 만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끌어내어 목을 쳐라’ 다시 신하는 ‘폐하! 안됩니다’라고 만류했습니다. 황제가 ‘왜 또 안 된단 말이냐’고 물었을 때 ‘기독교인들은 순교를 최상의 영광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헛일입니다. 그들은 순교할 때 울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얼굴에서 기쁨의 광채가 납니다’, ‘그러면 대체 그 놈들을 어떻게 하란 말이냐’라고 결국 황제는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고 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 여러분! 순교하는 것을 영광으로 알고 은혜가 충만한 가운데 기쁨으로 죽을 수 있는 믿음은 얼마나 아름다운 믿음입니까? 스데반 집사의 얼굴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유는? 성령의 은혜가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넘쳤기 때문입니다. 순교의 기쁨이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하늘문이 열리며 하나님의 우편에 서서 자신을 기다리고 계신 예수님의 얼굴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얼굴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까? 이런 유모어가 있습니다. 어느 성형 수술 병원 앞에 붙은 광고판에 이런 광고가 있었습니다. 어느 못 생긴 사람 사진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 이런 글이 쓰여져 있었습니다. ‘이런 얼굴도 성형됩니다’그 옆에 조금 못 생긴 얼굴 사진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습니다. ‘실수하여 이렇게 되면 돈을 돌려 드립니다’ 그 옆에 김영윤목사 사진이 붙어 있고 그 밑에는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이 얼굴이 우리의 목표입니다’할렐루야! 우리 모두 스데반처럼 온전히 몸과 마음을 드려 하나님을 경배하므로 성령 충만을 받고 항상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닮으며 주를 위해 죽기까지 복음의 사명을 다하는 가장 빛나는 믿음의 사람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영적으로 살면 천사의 얼굴이 됩니다. 칭찬받을 일을 하며 칭찬을 들으며 살면 천사의 얼굴이 됩니다. 영의 세계를 볼 줄 알면 천사의 얼굴이 됩니다. 용서하며 사랑하면 천사의 얼굴이 됩니다. 여러분의 얼굴은 어떤 모습입니까? 진심으로 예수님을 만나보았습니까? 여러분 안에 주님이 계신 기쁨이 있습니까? 우리가 남은 여생 살아갈 때에 주님을 모시고 사는 기쁨이 얼굴에 넘치기를 바랍니다. 구원의 기쁨으로 받은 행복이 넘치는 얼굴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얼굴만 보고도 예수 믿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드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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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