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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원파와 칼빈주의 구원관의 유사성 여부에 대한 찬반 논쟁
구원파와 칼빈이즘은 얼마나 다른가?
-칼뱅을 내치고 웨스트민스터 신조를 내세워야
세월호 재난으로 세상에 노출된 구원파(Good News Mission)는 1960년대에 해외에서 수입된 가장 극단적인 '한 번 구원 영원 구원'론을 신봉하고 전파하는 이단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받은 자가 하나님의 은혜로 칭의 구원을 받아 죄 없는 자가 된 것을 한 번 인식하고 믿으면 의로운 자로 하나님에 의하여 인정되었으므로 다시 죄를 짓더라도 죄가 되지 않게 되어 죄를 더 이상 회개할 필요가 없으며 예수 십자가의 피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완전히 깨끗하게 했기 때문에 죄의식을 느끼는 자는 예수의 구속을 온전히 믿지 못한 사탄의 자녀로서 지옥에 떨어진다고 주장합니다.
칼뱅은 인간은 완전히 타락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전혀 구원받을 수가 없는 존재이므로 하나님께서 예정하여 선택한 자만이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을 받게 되며 한 번 구원받은 자는 절대로 하나님께서 버리지 아니하시어 끝까지 지키시므로 어떤 죄를 짓더라도 반드시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구원의 피동성, 즉 구원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과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그리고 한 번 구원 받은 자는 영원히 구원받는 자라고 주장하는 점에 있어서 칼뱅주의와 구원파의 구원론이 일맥상통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사실 종교개혁 당시 행위 일변도의 구원론을 주장하던 가톨릭에 맞서는 칼빈이즘은 태생적으로 행위와 대칭되는 은혜를 강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칼뱅의 은혜 일변도의 구원론은 성경이 가르치는 인간의 책임을 전혀 무시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받아 한 번 구원받은 자는 영원히 구원받는 자라고 가르침으로써 행위를 중시하는 가톨릭이 죽은 자에게 면죄부를 파는 잘못을 저지른 것보다 더 흉악하게 산 자에게 면죄부를 발급하는 일을 자행해 오고 있습니다.
종교개혁 당시 100여 년 동안 개신교의 신자들이 불신자들보다 더욱 심한 타락상을 보였습니다. 한 번 믿어 구원을 얻기만 하면 아무렇게나 살아도 반드시 하나님께서 천국으로 인도하신다는 교리를 믿으면서도 경건한 삶을 살려고 애쓰는 사람은 지극히 희귀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보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인식을 가진 당시의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지도자들은 3년 동안의 철저한 성경 연구를 통하여 개신교 신자들이 신봉해야 할 교리를 제정하였으니 이것이 웨스트민스터 신조입니다.
이 신조는 하나님의 은혜를 중시하는 점에서 칼빈주의와 궤를 같이하나 경건한 삶을 사는 데에 진력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어서 종국적 구원인 영생을 이룰 수 있다고,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책임을 균형되게 가르치므로 성경에 충실한 신조로서 오늘날 모든 복음주의 교단들이 헌법에 자신들의 신앙고백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1960년대 경제개발이 동반한 물질주의에 침몰된 많은 교회의 목사들, 특히 대형교회의 목사들이 교회의 양적 성장에 정신이 팔려 믿기만 하면 천당에 간다는 한 번 구원 영원 구원론을 설교해 왔습니다.
2007년 성령강림 100주년 예배에서 사랑의교회 옥한흠 목사는 10만 성도 앞에서 자신이 교회의 양적 성장에 눈이 멀어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간다고 설교해 왔음을 회개하고 행위가 있는 믿음이어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임을 확인하고 거기 모인 모든 목사들에게 함께 회개하고 온전한 복음을 전해야만 죽은 한국교회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설교했습니다. 많은 신도들이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그런데 옥한흠 목사는 그 후 한 기독교 모임에서 수많은 동료 목사들로부터 좋은 날 왜 그런 설교를 했느냐고 핀잔을 많이 받았음을 고백했습니다. 그러한 핀잔 때문인지 옥 목사의 설교는 일회성으로 끝나 버렸고 아직도 수많은 교회에서 한 번 구원 영원 구원론이 설교되고 있습니다.
옥 목사가 담임했던 사랑의교회에서조차 여전히 한 번 구원 영원 구원론이 설교되고 있습니다. 많은 목사들이 구원을 얻기 위하여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면 이미 구원을 받은 자가 불순종하는 삶을 산다면 이미 받은 구원은 어떻게 되는가요? 그래도 이미 구원을 받았으므로 천국은 간다고 가르치는 것이 그러한 목사들의 대답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교주처럼 받드는 칼뱅의 견인론은 한 번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께서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파를 이단으로 규정한 대한 예수교 장로교회가 구원파와 얼마나 크게 다른가요? 물론 구원파는 한 번 구원받은 자는 다시 죄를 회개할 필요가 없으므로 주기도문을 암송하지 않으며 주기도문을 암송하는 교회는 사탄의 교회로 규정하는 등 극단적인 한 번 구원 영원 구원론을 주장하고 있음은 사실이지만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이루어지며 한 번 구원받은 자는 죄를 지어도 종국적으로 천국에 들어간다는 구원론의 핵심에 있어서는 대동소이함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옥한흠 목사가 설교했듯이 한국교회는 사데 교회처럼 살아 있으나 죽은 교회입니다. 한 번 믿으면 어떤 삶을 살더라도 종국적으로는 천국에 간다고 믿는 사람들의 행위가 성경 말씀에 순종하는 행위일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가 다시 살아나려면 옥한흠 목사가 설교했듯이 행위가 있는 믿음이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바른 구원론이 모든 교회에서 선포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서는 우선 한국의 모든 장로교단이 비성경적 구원론을 가르친 칼뱅을 내치고 자신들의 헌법에 자신들의 신조로 규정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조를 내세워야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조를 제정하고 충실하게 실천한 신자들이 다름 아닌 청교도였음을 상기하면 우리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충실하게 가르치고 실천할 때 즉 모든 목사와 신자들이 영생을 얻기 위하여 말씀에 순종하는 경건한 삶을 살아갈 때에 교회가 살아나고 사회와 국가와 민족이 정화될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김병구 장로 / 바른 구원관선교회 (http://cafe.daum.net/loveviafaith)·<영원한 성공을 주는 온전한 복음>의 저자, 뉴스앤조이 2014년 4월 27일 기사
칼빈주의와 구원파가 다를 바 없다고요?
-칼빈주의도 인간의 책임을 중시하고 성화를 강조합니다
4월 27일 김병구 님이 '구원파와 칼빈이즘은 얼마나 다른가'라는 글을 <뉴스앤조이>에 올렸습니다. 이에 최준희 님이 반론을 제기하며 원고를 보내왔습니다. -편집자 주
구원파는 한국교회가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교리적 이단입니다. 그런데 그런 구원파와 한국교회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칼빈주의 구원관이 거의 같다는 뉘앙스로 말씀하신 김병구 장로님의 글을 읽고 장로님께는 죄송하지만, 몇 자 적지 않을 수 없어 저의 부족한 소견을 아뢰고자 합니다. 장로님의 생각과는 다르더라도 깊은 이해심으로 이해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1. 장로님께서는 칼빈주의 구원관이 인간의 책임을 무시하신다고 하셨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칼빈주의는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책임을 동일하게 강조합니다. 칼빈 교리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기독교강요> 3권 '칭의와 성화' 부분을 보시면, 칼빈이 얼마나 칭의와 함께 성화를 강조했는지가 너무나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칼빈의 칭의와 성화론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칭의와 성화의 불가분성'입니다. 칭의와 성화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의 특징은 바로 '칭의와 성화의 동시성'입니다. 즉 칭의와 성화가 자연히 함께 온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이렇게 칭의와 함께 성화를 누구보다도 강조한 신학자였습니다.
2. 장로님께서 칼빈주의는 인간의 책임을 무시하고, 웨스트민스터 표준 문서들은 인간의 책임을 강조한다고 하셨는데, 일반적으로 이러한 말씀은 처음 들어 보는 생소한 의견입니다. 제가 알기로 웨스트민스터 표준 문서들은 칼빈주의를 가장 잘 반영한 문서로 알고 있는데, 어떤 근거로 칼빈주의는 인간의 책임을 무시하고, 웨스트민스터 표준 문서들은 인간의 책임을 강조한다고 하신 것인지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3. 옥한흠 목사님도 구원파와 같은 입장의 구원관을 가진 것처럼 말씀하셨는데, 한 번 받은 구원이 영원하고 취소되지 않는다는 칼빈주의 구원관은 옥한흠 목사님뿐만 아니라, 한국의 장로교 목사님들은 거의 대부분 그렇게 믿고, 설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옥한흠 목사님의 교리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칼빈주의 장로교회의 신학이 그러한 것이겠죠.
4. 장로님이 한 번 받은 구원은 영원하다고 하는 칼빈주의 구원관이 구원파의 구원관과 같은 것처럼 말씀하셨는데, 현재 전 세계의 대부분의 개신교 교회들은 칼빈주의 구원관과 알미니안 구원관, 이 둘 중에 하나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칼빈주의 구원관을 갖고 있다고 해서, 아니면 알미니안 구원관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서로를 이단이라고 정죄하지는 않습니다. 둘 다 나름대로의 성경적인 증거를 갖고 있기 때문이죠. 칼빈주의 구원관(구원의 취소 불가능성과 성도의 견인, 제한 속죄)을 갖고 있든, 알미니안 구원관(구원의 취소 가능성, 가항적 은혜, 보편 속죄)을 갖고 있든, 이것은 이단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주 안에서 신학적인 견해가 다른 것으로 보고, 구원관이 다르더라도, 서로 교제하고 연합하고 협력합니다.
5. 장로님 주장의 초점은 한 번 받은 구원이 영원하다고 하는 칼빈주의 구원관이 삶을 함부로 살아도 된다는 식의 비윤리적인 삶을 초래한다는 말씀인 것 같은데, 이 부분 때문에 칼빈주의 구원관이 구원파와 같은 것처럼 말씀하시면, 너무나도 말이 안 되는 비약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점을 칼빈주의의 약점이라고 하신다면 모르겠지만, 구원파와 같다는 뉘앙스로 말씀하시면, 칼빈주의가 이단이라고 하시는 너무나도 극단적인 주장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고 해서 절대 함부로 죄 가운데 살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칼빈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의 강조점이기도 했습니다
"…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롬 6:1, 2),
보편적으로 한국교회 내에서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사이에 논쟁은 많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칼빈주의 구원관이 구원의 취소 불가능성 때문에 윤리성을 약화시킨다는 비판을 받는 것도 사실인 듯합니다. 최근 한국교회가 여러 가지 비윤리적인 모습으로 비판받는 상황에서 그 원인을 한국 칼빈주의 보수 장로교회의 탓으로 돌리며 비난하는 부분도 이해가 갑니다, 특히 최근 한국에서 많이 다뤄지고 있는 '바울 신학의 새 관점'(NPP)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구원파와의 비교는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상황이 그렇다고 해서 칼빈주의가 구원파와 같은 것처럼 말씀하시는 것은 심한 단순화의 오류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를 사랑하시는 장로님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만, 칼빈주의 구원관에 대한 비난에 구원파까지 연결시키시는 건 저희와 같은 칼빈주의 구원관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참기 힘든 괴로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최준희 목사/ 총신 95회 졸업생, 뉴스앤조이 2014년 5월 7일 기사
2.
충격적인 하나님의 방문
<중략>
그날 밤 주님께서 저의 마음에 말씀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귀로 무슨 신비한 소리가 들린 것이 아니라, 제 영혼 깊은 곳에 주님께서 들려주시는 음성이었습니다.
주님: 너는 구원받았느냐?
나 : 네?
주님: 문제는 너다! 너는 지금 지옥문 앞에 있다.
나 : 네? 주님! 저는 거듭난 지 20년이 더 지났고, 저의 구원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주님: 회개하여라. 깊이 회개하여라. 너는 지금 이대로는 지옥 갈 것이다. (계 3:5)을 읽어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는 말인가? 과연 이것이 사실일까? 그날부터 3~4일 안에 신약을 마태복음부터 계시록까지 다시 다 읽으면서 말씀들을 면밀하게 확인하였습니다. 지면 관계상 다 나눌 수가 없고, 몇 구절만 주신 말씀들을 발췌하여 말씀드립니다. 또한 이미 다른 형제님들께서 관련된 말씀들을 많이 기록해놓으셨기에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1. 주님! (요 5:24)을 설명해 주십시오. 믿은 자는 이미 구원을 얻었고(has eternal life),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will not be condemned),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has crossed over from death to life) 하시지 않았습니까?
==> (요 5:29)을 읽어라.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2. (요 10:28, 29)을 설명해 주십시오. 한 번 얻은 구원은 결코 빼앗기지 않는다고, 주 예수님의 손과 아버지 하나님의 손이 저를 붙들고 있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 바로 앞절, (요 10:27)을 읽어라.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이렇게 나를 따르는 내 양에게 주는 약속이다.
3. (요일 5:11~13) 아들을 모신 자에게는 영생이 있으며, 확신할 수 있음을 알게 하려고 말씀을 기록하셨잖습니까?
==> 요한일서 1~4장을 다시 읽어라. 나를 모신 자, 나를 영접한 자가 어떤 자인지 말하였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1:6)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1:7)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2:4~6)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2:9)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2:17)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3:15)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5:1).
그 약속은 위의 말씀들처럼 빛된 하나님의 자녀로 순종하며, 나와 형제를 사랑하는 자에게 주신 말씀이다.
4.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고로"(갈 2:16).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부인하는 율법의 행위를 가르치는 것은 저주받을 일이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 (갈 5:16~21)을 읽어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이 머물러서는 안 되는 삶이 나온다. 그런 자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나 : 주님! 행위 구원을 말씀하십니까?
주님 : 아니다. 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1.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삶이 마귀의 종된 삶, 마귀와 결혼한 삶, 그 끝이 지옥의 불심판임을 깨닫는 것이며
2. 이 죄악된 자를 구속하기 위하여 내가 십자가에 피 흘린 사실을 믿고, 오직 이 피로만 죄씻음 받음을 믿고 철저히 회개하는 것이며
3. 이제 마귀와의 혼인관계를 끊고 나의 신부가 되기로 결단하는 것이다. 나를 영접하는 것은 나와 결혼하는 것이다.
4. 나와는 법적인 결혼식을 하고서 실제로는 죄 가운데 머문다면, 이것은 날마다 마귀와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삶의 돌이킴이 없이 죄 안에 거하면서 구원받았다고 확신하는 자들은, 마지막날 불륜현장에서 벌거벗은 채 본남편에게 발견된 여인의 신세가 될 것이다. 그런 자들을 나는 모른다고 할 것이다.
나 : 주님! 하지만 제가 진심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때에 한 번으로 완전한 제사를 드리신 주님께서 저의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까지 다 용서하신 것 아닙니까? 최초 영접 때의 회개가 분명하였다면, 설령 지금 죄 짓고 회개 못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구원에 영향을 줄 수 없는 것이 아닙니까?
주님 : 사망사고가 절대 일어나지 않는 도로에 “사망 주의” 표지판을 누가 세우느냐? 30cm 깊이의 도랑에 누가 “익사 주의” 표지판을 세우느냐? 성경 말씀에 그토록 회개하지 않으면 구원받은 자라도 멸망할 것을 이야기하였고,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것을 말하였는데, 너희는 내가 절대로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경고하고 있다고 만홀히 일컫느냐?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이 말씀을 받은 성도들은 이미 나를 믿고서 극심한 고난의 때를 인내하며 참고 있는 자들이다. 그런 그들이라도 항상 회개하며 깨어 있지 않으면 멸망에 이를 수 있다.
작은 죄들을 용납하면서 점점 양심이 둔하여져가는 자들, 참된 회개를 잊은 채로 구원받았다는 스스로의 확신에 안주하는 자들은 점점 양심이 화인맞는다. 마귀는 구원받은 성도라도 삼키려고 두루 다니며 찾고 있다(벧전 5:8). 마귀의 전략은 작은 죄로부터 시작해서 점점 큰 죄로 이끌어 가면서 회개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위선 속에 빠져든다. 그리고 멸망할 것이다. 바로 현재의 너처럼! 회개하라! 회개하라! 철저히 회개하라! 아담과 하와가 100가지 죄를 지어 사망이 들어온 것이 아니다. 단 하나의 불순종이 온 인류에게 사망을 가져왔다.
지금부터 너의 죄를 낱낱이 알려주겠다.
1. 음행의 죄: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는 간음하였다. 너는 고등학교 시절에는 그런 것으로 고통하며 회개하였다. 지금 너는 인터넷에서 그런 것을 보고 접하면서도 회개하느냐? 정말로 다윗의 회개처럼 회개하고 돌이켰느냐? 간음하는 자는 지옥 간다.
2. 실제 간음의 죄: 너는 결혼하기 전에 창녀를 찾아갔다. 20대 말이었다. 그것은 나중에 너와 결혼한 너의 아내에게 가장 큰 죄를 지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결혼 후에도 동일한 죄를 지었다. 다윗처럼 내 앞에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으면 지옥 갈 것이다.
3. 거짓말의 죄: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간다(계 21:8). 큰 거짓말, 작은 거짓말 차별이 없다. 위기의 상황 모면을 위해, 스스로 'white lie'라고 변명하며 소소한 거짓말들 하고도 회개했느냐? 작은 거짓말들은 죄로도 여기지 않았지 않느냐? 심지어 사역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거짓말하지 않았느냐?
4. 도둑질의 죄: 너는 사무실의 A4 용지를 집에 가져가 쓰고 있느냐? 불법 복제영화, 소프트웨어를 쓰는 것은 장물을 구입한 것이다.도둑질하고 회개치 않는 자는 지옥 갈 것이다.
5. 교만의 죄: 너는 네가 전도하고 양육한 영혼들을 인하여 나에게 영광 돌리지 아니하고, 너의 열매인 것처럼 자기자랑을 하였다. 나의 십자가로 이룬 구속사역인데, 나의 영광을 도둑질하였으며, 다른 성도들보다 말씀도 많이 안다고 생각하며 교만하였다. 교만한 자는 멸망할 것이다.
6. 위선의 죄: 바리새인들처럼 너는 저토록 많은 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거만하게도 “하나님, 저는 복음의 일꾼입니다! 저를 이 죄악된 세상에서 구원하사 거룩한 일꾼으로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였다. 너의 역겨운 기도가 나를 고통스럽게 하였다. 너의 회개치 아니한 심령이 나의 고통이었다. 회개하라! 회개하라! 너의 어떤 죄라도 나의 보혈의 공로로 덮어 씻음받지 못할 죄가 없다.
나를 영접하기 전의 모든 죄가 진실한 회개와 영접으로 씻음받음같이, 나를 믿은 이후에도 회개하는 자만이 날마다의 죄를 씻음받을 것이며, 생명의 성령의 법(롬 8:1) 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 것이다. 나의 신부야! 거룩하여져라. 현재의 너는 나와 '약혼'한 상태이다. 천국이 너에게 약속되었다. 혼인잔치는 내가 너를 부르는 날, 나팔소리와 함께 이뤄질 것이다. 그 날이 실제 '결혼잔치'이다. 그 날까지 날마다 목숨 걸고 회개하라! 그리고 깨끗한 행실로 세마포옷을 입으라. 나의 보혈은 어떤 죄라도 진실되게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를 깨끗케 한다.
그리고 그 날부터 2주 동안은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새벽 1~2시면 주님께서 깨우시고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지난 20여 년 동안 통성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대표기도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항상 잠잠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2주 동안은 통곡하며 소리 지르며 애통해 하였습니다.
저의 아내도 처음 며칠간 제가 잘못된 영에 미혹된 것이 아닌가 염려하다가, 저의 회개와 주님 주신 말씀들을 들은 후 울며 통곡하며 회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2주 동안은 급하고 강한 바람같이 저의 집을 휘몰아치셨습니다. 회개의 영이신 성령께서 저희를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정말로 슬펐던 것은, 제가 가르친 형제 중에 회개 없이 멸망할 자가 생길까봐 그것이 가장 고통스러웠습니다. “주님! 살려주시옵소서. 이 죄인을 살려주시옵소서!”
<중략>
2주간의 회개가 지난 이후 성경말씀을 하루 20여 장씩 계속 읽으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습니다. 그 부드러우신 하나님의 은혜, 무한하신 용서, 나를 위한 천국의 처소, 우리 예수님의 눈물의 기도......구약 선지자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피를 토하며 회개를 선포한 선지자들......
가정에서는 저녁 9~10시 사이에 세 아이들과 아내와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일곱 살 막내로부터 열 살 둘째, 열두 살 첫째, 그리고 아내와 제가 돌아가면서 회개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매일 주신 말씀들을 아이들이 알아들을수 있는 범위에서 나눕니다. 아이들도 깊이 회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제가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이하 생략>
-무명의 성도

첫댓글
칼빈주의와 달리 웨스트민스터 신조는 성도의 무조건적인 영원한 견인을 주장하기보다 인간의 책임을 함께 강조하며 거룩한 순종의 삶을 독려한다고 본 글과 이에 대한 반대 의견으로 칼빈주의 성화관을 변호한 글, 그리고 한 무명 성도의 적나라한 회개 간증을 나눕니다. 성경에 있는 그대로만 본다면, 그리고 청교도 작가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의 생생한 그림 그대로만 본다면 믿음 이후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천국까지의 여정에 얼마나 많은 실족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죄에 빠져 살면서도 회개하는 삶, 거룩한 삶에 깨어 있지 못한 영적 교만과 나태함의 결과가 얼마나 준엄한 것인지 충분히 확인하고도 남습니다.
성경 자체보다 인간이 만든 교리와 전통을 더 우선시하려는 것은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이번 세월호 참사 배후에 얽히고 설킨 총체적인 부정 부패의 고리에서도 알 수 있듯 교회 안팎에 만연한 세속주의 영향 탓에 그리스도인들마저도 죄를 심상히 여기고 말씀의 기준을 쉽게 도외시하고 타협한 채 인간적인 적당주의로 살아가는 모습을 흔하게 봅니다. 언제 갑자기 끝날지 모를 '오늘'이라는 기회가 주어져 있을 때 급히 그 기회를 사서 지금이라도 당장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엎드리는 길 외에 다른 방책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계 2:5).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우리 사회의 민낯과 더불어 정통 기독교의 내부에도 잘못된 사상이 있었음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며 한국 교회가 바른 복음으로 다시 세움 받고
도리어 부흥의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렇지만 칼빈주의와 구원파를 동일시해서 비판하는 이 장로님이란 분은 자세한 이유는 못하지만 제가 느끼는 바로는 신앙인이 아닌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