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는 하느님과 동업이다.” 40년 넘게 농사를 지어온 한 지인이 한 말이다. 이 말은 농업이 가뭄과 홍수, 태풍 등의 기상 상태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의미이다. 따지고 보면, 기상재해로 농산물 작황이 좋지 않으면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고, 그 해 기상조건이 좋으면 과다 생산으로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니, 농부에게 있어 하늘은 동업자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미래 세계는 꼭 그렇지만도 않을 듯하다. 농산물도 공산품처럼 공장에서 나올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위적인 태양광과 땅을 대신한 양분공급, 병해충으로부터 차단돼 있고, 태풍에도 끄떡없는 공장에서 우리가 즐겨먹는 상추와 토마토 등이 수확된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우리가 농업에 쓰는 용어인 ‘재배’(식물을 키워 가꿈, 기른다는 말)도 ‘생산’(생활에 직 ·간접으로 필요한 물자나 용역을 만들어 내는 행위)이란 말로 바뀔 듯하다. 그런데 정말 SF 영화에서나 가능할 법한 일들이 현실에서 벌어질 수 있는 것인가?
식물공장, 1950년대 유럽에서 처음 도입
놀라지 마시라. 의외로 그런 상황은 일반인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이미 세계 선진국에서는 실험을 넘어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사실 식물공장 연구는 1950년대 유럽에서 시작됐다. 식물공장의 효시는 1957년 덴마크 크리스텐센(농장주 이름을 따서 지음) 농장에서 태양광을 이용해 온실에서의 새싹 채소(cress)를 재배한 것이다. 이 채소는 새싹으로 먹는 탓에 파종 1주일 후 수확했다. 당시 이 공장의 특징은 평면 시설에 컨베이어 시스템으로 작물을 운반했고, 태양광의 보조 광원으로 고압나트륨램프를 사용했다.
미국은 우주 탐사선에서 사용할 클로렐라 등 미생물을 생산하기 위해 식물공장 개념을 최초로도입 했다. 이후 소련과 우주를 향한 치열한 경쟁에서 우주인들에게 공급될 식량 목적으로 식물공장 개발에 뛰어들었다.
우리의 남극 세종기지 대원들이 채소를 일상적으로 먹기 위해 인공 광원과 양액으로 채소를 재배했듯이, 당시 미국에서는 우주인들의 장기간 거주를 위해 식물 공장을 연구 했었다.
1960~1970년대에는 미국의 대표적 GE(General Electric), GM(General Motors)과 같은 기업체에서 완전 제어형 식물공장 연구를 했다. 그러나 수익성이 맞지 않아 실용화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미국, 80년대 들어 실용화토지가 매우 넓은 미국 농업 현실에서 이러한 식물공장은 경제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권기영 경상대 교수는 “미국의 경우 지금의 농업 환경에서도 생산성 향상이 가능하므로 완전 제어형 식물공장과 같은 집약적 농업은 시급히 요구되지 않는 특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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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 식량위기의 해결책으로 수직농장(Vertical farming)을 10여 년 전부터 주창해온 딕슨 데포미에(Dickson D. Despommier)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명예교수. ⓒ농촌진흥청 |
1980년대에 들어 미국에서는 Agrisystem 사, Agronotics 사 등에서 식물공장을 실용화했다. 이 공장은 대형의 자동화된 시스템과 태양광과 병용한 형태다.
1990년대부터는 NASA 등에서 폐쇄 생태계 생명유지시스템(CELSS)에서의 작물생산 시스템에 관연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 수행한 ‘농식품 R&D 기술기획 시스템 구축’ 이슈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NASA SolaOasis에서는 특수 환경에서의 생물 생육을 위한 연구가 진행 중이며, 바로 생산 적용 가능한 수준의 연구 결과가 도출되고 있다고 한다.
현재 미국의 화이트팜사라는 곳은 재배면적이 4.800제곱미터에 달하고 16개의 재배 레인이 있는 생산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심야전력을 이용해 상추 시금치 등과 허브 류를 생산하고 있다. 현재 여기서 생산된 농산물은 미국 내 슈퍼마켓에 공급되며, 일부는 유나이티드 항공사의 기내식으로도 사용한다.
최근의 미국 식물공장은 도심의 고층 수직농장(vertical faming) 개념으로 발전하고 있다. 콜롬비아 대학 건축학과딕슨 데포미에 연구팀과 미턴 건축 사무소 등은 공동으로 고층 건물 방식을 채택해 풍력 및 태양력 등 신재생 에너지를 이용한 식물공장 건립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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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한 식물 공장에서 인삼을 재배하는 모습. ⓒ농업실용화 재단 |
신기능물질 생산, 생활환경개선 등 다각화경준형 농업실용화재단 주무관은 “미국은 우리나라처럼 식량 생산보다는 차세대 에너지 해결을 위한 종자 개량, 육종, 신기능 물질 생산을 위한 실험 재배적 환경제어용 식물공장을 상용화 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도심의 생활환경 개선을 위한 미적 공간 및 심적 안정 등의 시각에서 접근하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위 이슈 분석 자료에 따르면, 유럽의 식물공장은 스웨덴 네덜란드 벨기에 등을 중심으로 활발한 연구가 진행 돼 온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의 대표적인 식물공장 시스템은 스웨덴에서 개발한 ‘Swedeponic 시스템’과 벨기에의 Hortiplan 사에서 개발한 재배 자동이송시스템으로 일반적인 표준화가 이루어져 있다.
공통적인 것은 대개 광원은 유리 온실의 특성을 살린 자연광과 고압나트륨 램프를 병용해 사용하고 있으며, 실내 온도는 지열을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 일본, 우리나라가 다소 완전 제어 형을 지향한다고 한다면, 유럽은 자연에 인공을 가미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엽채 류 외에 빛이 많이 필요로 하는 작물의 경우 인공 광으로 온전히 작물을 키울 수 없는 기술적 한계이기도 하지만, 인위적인 것보다는 자연적인 것을 선호하는 유럽 사람들의 성향 탓에도 기인 한 바 크다는 분석이다.
또 농업의 다원적 가치(환경, 농업소득, 문화 등)를 중시하는 유럽인들의 문화적 배경도 한 몫한 것으로 풀이된다. 유럽의 태양광과 병용한 식물공장은 이런 문화적 배경과 함께 일찍이 유리온실을 활용했던 탓에 이미 상용화 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유럽의 식물공장에서는 초기 상추 류 등을 생산했으나 최근에는 부가가치가 높은 허브 등으로 작목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여기서 생산되는 상추의 경우 여름철에는 정식 후 16일, 겨울에는 23일 만에 약 200그램의 상추를 수확하는데, 판매가격은 생산비의 2배 정도다. 또 작물의 생산성은 작물에 따라 3~6배까지 증대할 수 있다.
유럽, 자연광과 인공광 병용 최근에는 파프리카나 토마토 등의 과채류 등의 생산성 향상 및 생육 향상을 위해 고압나트륨 램프를 LED 또는 OLED 광원으로의 대체하는 것을 적극 연구 중이다.
일본은 세계에서 식물공장 상용화가 가장 활발한 나라이다. 일본은 지역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식물 공장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기후변화 대응과 방사능 유출로 인한 식품 오염의 주요 대안으로 추진중이다.
특히, 일본정부는 식물공장 기술이 안정적 식량 공급과 온실가스 저감, 수자원 확보 등에 기여하고 있으며, 특히 탄소 배출량을 감축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로 주목하고 있다. 이와 함께 연관 기술이 동반 발달되는 등 다른 산업 분야 파급효과도 큰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에이지 고토 지바 대학 식물공장연구센터 교수는 최근 충청남도 주최로 열린 초청강의에서, 일본은 수직농장 운영 관련 기술뿐만 아니라 빌딩농장 관련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현재 가정에서 관상용으로 키우고 있는 식물 등을 대신하고, 도시 미관 디자인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식물공장을 응용한 기술이 새로운 연관 산업으로 개발 추진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일본의 식물공장은 어떻게 발전해 왔으며, 지금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일본은 1985년 쯔꾸바에서 개최된 과학박람회에 상추 식물 공장생산시스템을 전시한 것을 계기로, 범 정부차원에서 식물 공장생산시스템에 대한 본격 연구개발에 나서고 있다.
일본 정부는 1992년부터 식물공장생산시스템의 설치에 대한 보조금을 조성하고 있으며, 1995년부터 실시중인 농업생산체제 강화 대책 사업을 통해 식물공장 사업을 계속 지원해 왔다.
일본, 지난해까지 식물공장 127개 보급일본 정부는 2009년 소위 ‘식물 공장 보급 확대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총 150억 엔 예산을 편성해 지난해까지 식물 공장을 150개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힌바 있다.(참고로 127개에 그침)
또 같은 해 농산물 생산자와 상공업자를 선정하고, 히타치 미쓰비시 화학 등 민간 사업자를 참여시켰으며, 통상 산업성(우리의 현 산업통상자원부)과 농림수산성(과거 우리의 농림수산식품부)이 협조해 농업과 상업의 연계를 통한 식물 공장 사업을 추진해 오고 있다.
특히 농림수산성은 식물공장 보급을 위한 전시사업과 설치비를 보조하는 리스 지원 사업 등을 추진하고, 통상 산업성은 식물 공장 기반기술연구 거점을 지원하는 등으로 역할을 나누고 있다. 일본 식물공장의 특징은 농업인이 아니라 기업중심으로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경우 농업인 대부분이 전업농인 반면, 일본의 경우 겸업농이 많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어쨌든 일본정부는 식물공장이 자체 농산물 생산성을 증대시킬 뿐만 아니라, 위축돼 있는 가전산업을 일으키고, 중동 한국 베트남 몽고 등에 플랜트 수출을 통해 또 다른 차세대 성장 산업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일본 지바 현에 위치한 한 슈퍼마켓 내 채소매장에는 20평 규모의 식물 공장 시스템인 ‘바이오 팜’이 설치돼, 무 농약으로 재배한 상추가 매일 100주 정도씩 판매중이다. 또 일본의 한 업체는 지난달 한국에 인공채소 재배시스템을 판매하기 시작했다고 자사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밝히기도 했다.
일본 정부는 식물공장에서 재배된 농산물 시장이 2009년 95억 엔에서 2020년에는 417억 엔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연구는 활발, 상용화까지는 갈 길 남아”
지난 8일 제주도에서 열린 식물공장 국제 세미나에 다녀온 국립농업과학원 이공인 박사는 식물공장의 개념이 우리의 경우 완전 제어 형인데 반해, 일본의 경우는 최근에는 완전 제어형과 태양광 병용형 2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일본 과학자들은 일본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식물공장을 차세대 성장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엽채류외 다른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광원 기술이 미약한 실정이고, 완전 제어형 도심형 식물공장의 경우 경제성 문제로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고 전했다.
농진청의 한 관계자는 “범인류적으로 식물공장은 기후변화와 새로운 작물 개발연구, 농민들에게 필요로 하는 기술 개발 등 미래 농업 대안으로 여겨져 왔고, 실제로 중동과 몽고 사막 등에 이런 기술을 이용해 건립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아직까지 식물공장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고, 일부의 경우 경제적 문제와 함께 농업의 다양성 훼손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식물공장의 연구는 활발하지만, 상용화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