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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사랑이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 세상에 젖어 교회도 성경도 예수님도 전혀 모르던 자를 찾아오셔서 회개시키시고 그리고 주님의 이름의 세례를 받게 하시고 성령의 불로 오랫동안 복음을 전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성령의 인도가 없이는 이렇게 길게 쉬지 않고 세상에 예수님을 증거할 수가 절대로 없었을 것입니다. 때론 목이 곧고 고집이 세어서 육신의 정욕을 따르려고 하고 때론 세상을 즐기려 갈 길을 잃기도 했지만 주님의 격려와 능력 주심, 그리고 때론 채찍을 드시어 때림으로 맞고 정신을 차려 또 본분을 회복했습니다. 주님의 도구가 되고자 기도했지만 도구의 의미도 모른 채 어리숙 하던 제게 참으로 성경을 보면서 깨닫는 큰 기쁨을 주셨고 그 기쁨이 쉬지 않고 마음에서 차올라 그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서 모든 하던 일을 중단하고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기록하기 저도 쉬지 않았으니 하나님의 은혜가 차고 넘치며 그 사랑이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주여! 가난하고 어리숙한 종에게 주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해가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또 이들에게 이 깨달음들이 저와 똑같은 기쁨이 되고 그래서 주께서 온 세상에 세운 주의 백성이 이제는 주님의 통치를 즐거워하며, 율법을 즐겁게 배우며 법대로 온 세상에서 서로 형제와 자매로 서로 사랑하며 살게 하소서! 그리고 예수님을 지도자로 모시고 이 땅에 주님의 나라를 구하게 하소서! 의와 평강과 희락의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속히 임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샬롬! 겨울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저도 밭에서 엊그제 고구마를 다 캐고 콩도 수확을 했습니다. 이제 마늘을 준비해서 심어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제가 농부와 같이 여겨질 터인데 저는 모든 분과 같은 직장인이기도 합니다. 농부라 해도 됨은 농업 경영체도 있고 논이 600평 밭이 약 1600평이나 되는 땅에서 대추나무도 재배하고 다양한 밭작물과 호박 등을 재배하기 때문입니다. 이 작물로 소개한 부활 전도지를 활용해서 씨앗으로 전도를 쉬지 않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군산에서 낚시도 합니다. 최근에 제가 낚시로 잡은 우럭입니다. 약 20마리는 되는데 순식간에 잡았습니다. 군산에는 낚시의 고수가 많고 저도 배우고 있습니다. 어부의 아들로 바다와 늘 가까이했습니다. 예수님 시대는 갈릴리 바다와 농사를 짓던 시대입니다. 그래서 성경도 이런 배경에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물의 비유, 한 알의 씨앗의 비유, 그리고 밭에 묻힌 보화, 씨 뿌리는 비유, 깊은 물로 가라! 배 오른쪽에 그물을 내려라! 풍랑 잔잔 등 셀 수가 없는 일과 가르침이 농사를 지어야만 그리고 바닷가에 살아야만 그 의미가 깊이 이해가 되는 내용이 성경에 수도 없이 많습니다. 저는 농사를 나름대로 많이 짓고 바닷가에서 태어나 낚시를 하니 정말로 성경을 이해하는데 모든 사람보다 좋은 환경에 있습니다. 그리고 카투사로 제대하고 은행에 다니다 늦게 대학에 들어가 대학 대학원 행정고시를 열심히 공부한 내용들이 다 성경의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이와 함께 생활고와 저의 독단으로 천주교 아내와의 결혼 생활의 가슴 아픈 기억도 역시 천주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지금 살고 있으며 티격태격하는 정교회가 있는 러시아 국적의 아내와의 생활도 공산주의와 러시아 그리고 중앙아시아의 생활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정교회에 대해서도 아내를 통해서 듣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시던 천국에 대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말씀하실 때 믿음으로 내 것이 되는 것과 같이 러시아와 정교회를 몰라도 아내를 통해서 믿음으로 제 것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 보다도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로 전도를 하는 것을 통해서 너무나 많은 성경의 이해를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가장 성경의 이해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농사와 농사에서 나온 소산물로 부활 전도법의 필수 도구인 씨앗과 씨앗 통입니다. 내년에는 같이 농사도 짓고 이렇게 낚시도 하고 그리고 전도하고 성경을 배울 분들의 많은 도전을 기대합니다. 책상에서 배우는 성경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의 성경정리법은 새롭게 성경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약 25년 정도 계속하고 있고 오천만의 로마서 성경정리란에 다 올렸습니다. 아직은 수정을 해야 하는 부분이 많고 그리고 미완성인 부분도 조금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성경 공부법이라 자부합니다. 그리고 전국을 돌면서 농사도 짓고 낚시도 하면서 성경을 배웁니다. 저와 같이 돌아다니길 좋아하시는 분들의 도전을 속히 기대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해가 된 자료를 "서울 보고서란 제목"으로 미국의 하버드와 예일 프린스턴, 그리고 영국의 옥스퍼드에 보냈는데 이를 오천만의 로마서 란 제목으로 올리고 있는데 100개국에서 약 32만 명 정도가 보았습니다. 그 편지입니다. 제 모든 자료는 이렇게 공개되었습니다. 먼저 읽어 보시고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Report from Seoul Korea
Deer professor
I am glad to say hello to you in writing.
I am Pastor Kim Jung Kwan in Seoul, Korea. And I am the tool of Jesus.
May God's comfort and peace be filled with your professions, your home, your college.
I learned your address through the Internet.
I sent a package to you in Korea by mail.
Parcels are eight volumes of books and English texts summarizing them.
The materials I send are the contents of the Bible that I understood while evangelizing, It is a summary of the contents understood through the Bible's theorem.
All this was done by receiving the Holy Spirit and evangelizing.
All of the materials have not been cleaned up yet and are being cleaned up.
I wanted to share the grace I received from God as an evangelist, although it is scarce.
Please take a look at it.
And I send the PowerPoint material summarizing my data with this letter first.
Perhaps this letter will arrive faster than a parcel I send to air.
My address is different from the parcel's address. The address of the parcel is the church I go to, and the place where I live is the 111-9, 501, Munjeong-dong, Songpa-gu, Seoul,
I have a moving plan and send it to the address of the church.
I hope that the sound of the evangelism scene will show fresh vigor to the you who is studying, though it is incomplete in every way.
May God 's help always be filled with your study, your college, your family and you.
Always be healthy
Pastor Kim Jung-kwan in Seoul
존경하는 교수님께
교수님 서면으로 인사를 드리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저는 한국의 서울에 사는 김 정관 목사입니다. 그리고 저는 예수님의 도구입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평안이 교수님의 대학과 가정과 교수님의 하시는 일에 충만하시길 빕니다.
교수님의 주소를 인터넷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우편으로 교수님께 소포를 보냈습니다.
소포는 책 8권과 이를 요약한 영문의 자료입니다.
제가 보내는 자료들은 전도를 하면서 이해가 된 성경의 내용들과, 성경의 정리를 통해서 이해된 내용들을 정리를 한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성령을 받고 전도를 하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모든 자료가 아직 온전하게 정리가 되지 못했고 정리 중에 있습니다.
비록 부족한 자료이지만 전도자로서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꼭 한 번 살펴보아 주시기 부탁을 드립니다.
그리고 제 자료를 간단하게 요약한 파워포인트 자료를 이렇게 편지와 함께 먼저 보냅니다.
아마도 제가 항공으로 보낸 소포보다는 이 편지가 더 빨리 도착을 할 것입니다.
제가 사는 주소와 소포의 주소가 다릅니다. 소포의 주소는 제가 다니는 교회로 되어 있고 제가 사는 곳은 교회에서 가까운 서울 송파구 문정동 111-9번지 501호입니다. 이사계획이 있어서 교회의 주소로 보냅니다.
모든 면에서 온전하지 못한 자료이지만 학문을 하시는 교수님께 전도 현장의 소리가 신선한 활력으로 나타나길 빕니다.
늘 하나님의 도우심이 교수님께서 재직하시는 대학과 가정과 교수님께 가득하시길 빕니다.
늘 건강하세요.
서울에서 김 정관 목사 드림 2018년 12월 1일
제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자료는 천주교나 개신교 모두에게 생소한 내용입니다. 따라서 천주교도 개신교도 잘 연구가 되지 않고 그래서 성도들도 잘 지키지 않는 내용이지만 예수님 오시고 2000년이 지나서 온 세상에 믿는 사람이 없는 곳이 거의 없는 상태가 되었지만 각자도생하고 있는데 이제는 이렇게 믿는 이들이 주안에서 하나가 되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데 필수적인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기초가 되는 믿음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하나님의 나라의 뼈대가 되는 율법에 대한 새로운 이해입니다. 위와 같은 배경을 지닐 저를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훈련을 시키시고 이렇게 전하게 하시는데 모두가 잘 가지 않는 길을 먼저 가는 자로서 고난도 있지만 누구보다도 더 친밀하고 크게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은혜가 있으니 이 모든 일을 하게 한 원동력이 또한 삼위 하나님이십니다. 이를 증거하고자 하니 오직 저의 못난 부분만 열심히 전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저 자료를 보내고 난 후에 하나님께서 꿈을 꾸게 하셨는데 제가 산에 갔는데 수백 년 된 산삼이 4뿌리가 있는 꿈을 꾸었고 이를 통해서 모든 4개 대학에 보낸 자료가 잘 되리라 굳게 믿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전도하고자 한 사람이 절대로 아닙니다. 저는 그냥 마산상고(현 용마고)를 다닐 때 은행에 가고자 열심히 공부했고 불교를 깊이 믿고 그리고 카투사로 군대에 가서 대학생들을 만나고 그리고 다니던 좋은 직장 은행을 퇴사하고 대학에 들어가서 행정고시를 열심히 하던 100% 하나님의 일과 관계가 없던 청년이었습니다. 그리고 공부도 잘되어서 행정고시 1차를 대학 3학년 때 합격했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공부하고자 했던 청년에게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오셔서 저를 단번에 회개를 시키셨습니다. 성경도 당연히 없고 누가 제게 전도하면 자신감으로 충만한 저는 나를 믿지 왜 예수를 믿지, 예수를 믿는 것은 좀 부족한 사람들이 할 짓이지 하면서 예수를 믿는 사람을 좋은 시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남해 출신 김성수 장로님께서 성경 책을 아무 말도 없이 주셨습니다. 이 일로 제가 지금 이렇게 예수님을 믿고 목사가 되고 이렇게 인터넷으로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분으로 아무리 예수를 모르고 성경도 모르고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의롭고 흠이 없다고 바울의 예전과 같이 믿고 살던 자를 바울을 회개하게 하듯이 순식간에 바꿀 수가 있습니다. 홀로 공부하는 중에 두려움으로 임하시고 성경을 강제로 보게 하셨는데 고린도 전서 13장의 말씀이 펴지고 그리고 글자가 눈에 들어오는데 제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서 들어오는데 제가 그때까지 제 자신에 대해서 믿고 살던 좋은 이미지가 아니라 완전히 흉악한 죄인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무릎이 꿇어지고 눈물이 나며 기도가 나오는데 저를 도구로 써 주세요 하는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의 세례를 약 5년 뒤 1991년 5월 19일 날 성경석 목사님께 받았습니다. 그리고 1992년 제가 대학원에 다니며 또 행정고시 1차에 붙어서 2차를 준비할 때 신림동 선민 교회에서 박기수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실 때 예수님께서 환상으로 오셔서 제게 불을 주셨습니다. 당시에 그런 일이 생길 줄 절대로 몰랐습니다. 행시 1차에 합격해서 1차 합격자 6명과 함께 그룹 스터디를 하고 있었고, 1차 합격자들 200여 명이 모여서 치는 모의고사로 행시 2차 준비에 정신이 없었던 때였기 때문입니다. 모의고사 성적도 아주 좋아서 모두가 행시 2차에 무난히 합격하리라 믿어주었습니다. 그런데 1점 차로 떨어지고 하나님께서 목사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당시에 다양한 상위계층에 있는 자제분 50여명과 선을 보기도 했습니다.
예수를 믿기 전의 저의 모습은 성경의 거울이 제 마음을 비추니 악 그 자체였습니다. 약 5년을 죽을힘을 다해서 예전의 모습으론 절대로 살지 말자 하고 다짐하고 실천에 옮길 수가 있게 제가 본 제 자신의 모습을 흉악했고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 성경을 읽어보니 그때 보이지 않던 더 큰 죄들이 속속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진실로 예수님을 모르고 성경도 모르고 자신이 옳다고 믿고 사는 믿는 이들 전도 대상자는 아무리 자신이 선하게 포장을 하려고 해도 그 죄는 절대로 숨길 수가 없고 또 흉악한 죄인임이 분명합니다. 저도 나름대로 나쁜 사람이다란 말을 듣지 않으려고 산다고 했지만 실로 흉악한 죄인에 불과했고 너무나 큰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자행하며 살았을 뿐이었습니다.
고시에 떨어지고 어린이들 영어 공부 가르치는 회사에서 조금 능력을 보이지 저를 좋아하는 여인이 있어 곧 결혼을 했는데 천주교 성도였습니다. 저를 7년 동안 고시 공부 실패의 패배감이 조금도 들지 않게 헌신적으로 돌보았는데 저는 여자를 잘 돌보지 못했습니다. 목사가 되어야 한다고 가정에 성실하지 못했고 마음대로 직장도 옮기고 늘 제 전처를 불안하게 했습니다. 이런 저를 너무나 행복하게 7년 동안 모든 면으로 잘 섬겨주었습니다. 그런데 장신대에 입학하고자 집을 얻어서 공부를 하던 중에 신림동으로 옮기게 되었는데 아내는 그냥 짐을 싸서 사라졌습니다. 생활력도 없고 결단력도 없이 이리저리 방황하는 저를 더 이상 기대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참다 참다 제 전처는 간다는 말도 없이 사라졌고 저는 그대로 무너져 내렸고 우울과 불면의 지옥과 같은 4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제 전처의 헌신과 사랑에서 죄인인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고 이런 제 전처의 헌신으로 제 전처와 같이 살 때 천주교에도 가보았고 천주교 서적도 읽고 그리고 천주교 평신도 신학책도 일고 성경공부도 참여했습니다. 성령을 받고 전도하면서 평소에 죄를 지으면 회개하면 된다 그리고 오직 믿음이면 된다던 캘빈과 루터 류의 신학에 대해서 제가 죄에 대해서 너무나 강하게 보고 죄의 무서움을 너무나 잘 알았기에 그렇게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저는 절대로 인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고시를 공부한 사람으로 누가 뭐라 해도 함부로 맹목적으로 절대로 따라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목사가 되어야 했기에 천주교에도 함부로 그대로 따라갈 수도 없었습니다. 아내가 떠나고 실의에 빠져서 거의 폐인이 된 소망 없는 사람에게 잠실교회는 저를 받아주고 집도 주고 직장도 주고 그리고 새 아내도 얻게 해 주었습니다. 75년을 한결같이 불교를 믿던 어머니께서 아프고 정신이 나간 아들을 이렇게 사랑하는 잠실 교회를 보시고 감동하시고 예수님을 믿고 명예 권사님으로 계시다가 94세로 작년에 소천하셨습니다. 새 아내와 아들이 생기니 저는 비로소 정신과 치료 약도 끊고 불면증에서 우울증에서 해방이 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8년이 되었습니다. 이혼을 당한 휴유증을 기도와 노력으로 벗어나려고 하나 매일이 불면이요, 우울이면 어느 정도 시간이 가면 이제는 체념이 오는데 저는 그 체념의 상태도 겪어 보았습니다. 이길 수는 없고 참기는 어려운 정말로 지옥과 같은 시간을 4년 동안 겪어 보았고 이를 통해서 천주교와 개신교의 분리의 하나님의 고통을 보았습니다. 정말입니다.
성령께서 성경을 읽고 정리하는 일은 언제나 쉬지 않게 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전도도 쉬지 않고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학도 마치고 목사 안수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생전에 목회를 하는 것을 막으셨고 새 아내도 역시 목회를 하지 말고 그냥 아버지 남편의 일이나 충실히 하라고 했고 이런 아내와 큰 다툼이 있었고 생활고를 해결하고자 여려가지 일을 해 보았지만 모두가 실패하고 아내는 생계를 위해서 쉬지 않고 일을 하는 중에 불만이 커져갔습니다. 여러 가지 일에 다 실패하고 2015년도에 김현철 전 대령님의 배려로 미군부대에 들어가게 되고 생활도 안정이 어느 정도 되고 시간도 조금 확보가 되어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그리고 성경에 대한 깨달음의 글들도 정리가 되게 되었고 전도를 통한 교회 성장에 대해서도 이해가 되고 이렇게 정리되고 경험적으로 축척된 전도 자료 등을 책자로 준비해서 8권을 만들어서 위의 미국과 영국의 대학교수님께 보내고 그리고 이렇게 오천만의 로마서에 올리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사가 목회를 하지 않고 이렇게 전도하고 직장 생활하고 전하는 일을 그냥 보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성령을 받았다 해도 한꺼번에 모든 성경의 내용을 주시지 않고 조금씩 경우에 따라서 제가 농사를 짓는 일을 통해서 바닷가 생활을 통해서 전도를 통해서 성경을 읽고 정리하는 일을 통해서 다양하게 오랫동안 주셨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성령을 받아도 한꺼번에 성경의 내용을 다 이해가 어렵고 바울의 고백과 같이 천국에도 가 보았지만 거울을 보는 것과 같을 수도 있고 부분적으로 밖에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양한 버전의 성경을 지닌 너무나 밝은 시대를 살고 있어 성경의 이해에 앞서 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두운 시절 오직 라틴어 성경만 가지고 연구하던 때 천주교에선 500년이 지나도 여전히 인정하지 않는 개신교의 믿음에 대한 교리와 율법에 대한 이해를 그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따라가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고 아무리 큰 목회를 해도 위험한 일입니다. 예수님께 불을 받은 도구의, 그리고 30년 이상 전도하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그리고 대학 대학원 죽도록 고시공부를 한 배우고 경험이 있는 목사의 말입니다. 교리가 다르다고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교리에 따라서 저를 차갑게 대하는 것은 나중에 큰 낭패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위와 같이 살고 있고 경제적으로도 한국에서 가장 극빈하게 살았습니다. 늘 돈이 없었고 차에 기름도 달랑달랑하게 넣고 다녔습니다. 이를 통해서 성령의 불이 소멸하면 차가 기름이 없어 멈추듯이 사람도 별 볼일 없게 됨을 늘 느끼면서 살아야 했습니다. 20년 동안을 1년에 400만 원으로 견디어야 하는 길고 어려운 시간도 있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제 오천만의 로마서의 모든 자료가 나오고 이를 미국에 소개하고 영국에 소개한 것입니다. 그리고 수백 년 된 산삼 4뿌리의 환상으로 좋은 일이 있을 것을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서울 보고서는 한국의 성경 이해가 온 세상에서 뒤처지지 않음을 보여 줄 것이라 믿습니다.
이런 영광스러운 일이 있는 이면에는 먼저 천주교인 제 전처의 헌신이 있었고 그리고 지금의 아내와 돌아가신 어머니와 제 동생의 쉬지 않는 기도와 물질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잠실교회의 모든 분들이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저는 목회도 못하고 그리고 하고 싶은 세상일이 너무나 많아서 늘 아내와 다투고 어떤 때는 심히 다투었고 이 싸움을 통해서 저는 고집을 꺾기도 했습니다. 러시아에서 온 아내의 러시아 기질적인 저항이 없었고 제 마음대로 하고 싶은 일을 했다면 이렇게 믿음과 율법에 대한 이해도 없었을 것입니다. 너무나 큰 싸움을 우리는 했고 아내는 때론 저를 이겨 주었는데 저는 이런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지만 제 러시아 아내 한 명을 다스리는 일이 모세가 온 유대인을 광야에서 이끄는 일 만큼 힘든 일이었다고 생각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첫 아내가 그냥 집을 나갔기에 두 번째 아내는 제가 알아서 늘 안마도 해주고 처가 식구들에게도 잘하고 그리고 순종적으로 살려고 했는데도 문화적인 차이도 있고 제가 너무나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힘이 든 것입니다. 제 아내도 저 같은 사람은 없다고 했고 지구상에 오직 남자가 한 명 있다 해도 다시 살기는 싫은 남자라 했습니다.
제 아내는 키가 171cm에 몸매도 완벽하고 얼굴도 작은 미인인데 한국말을 저보다 잘 하고 러시아어에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말과 독일어 터키어 등 다국어를 말하고 요리도 잠실교회 주방에서 8년째 일을 하고 있고 러시아 요리와 중앙아시아 요리에 능통한데 어린이집에서 청소를 오랫동안 하며 그 능력을 제대로 발휘도 못하고 고되게 일을 하고 있는데 다 저를 만나 하는 고생입니다.
먹고살기 위해서 재활용 사업도 해 보고 가락 시장에서 채소와 생선과 과일을 떼어와 팔아도 보고, 청소도 하고, 경비도 하고 농사도 짓고 살고 있는데 다 실패했고 아직 집도 없이 번 돈도 없이 이렇게 전하는 일에 바쁜데 이 일은 제게는 즐겁고 쉬운 일입니다. 그냥 컴퓨터 앞이 앉으면 대부분 성령께서 인도하시기에 저는 쉽습니다.
오늘은 제가 별 볼일 없는 사람이란 것을 전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가족에게도 늘 소홀히 했고 친구도 별로 없고 사회생활도 없이 오직 제 가정만 알고 전도하고 그리고 이렇게 전하고 있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있는데 모든 일이 부실합니다.
저는 선민 교회에서 예수님께 불을 받은 일에 대해서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살았습니다. 이 일로 인해서 고집도 세고 포기도 않고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견딜 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특별하게 선택이 되었다는 사실을 늘 잊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타협도 잘 할 수가 없고 불의에 대해서 지극히 미워하였습니다. 이 자부심을 밑 바탕에 깔고 살았기에 저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쉽지 않은 사람이었고 전처에게도 너무나 고집을 부렸고 이런 저를 전처는 너무나 고민 고생 없이 제가 잘 살도록 왕과 같이 섬겼는데 저는 제 전처를 왕비와 같이 대해주지 못했습니다. 고시 공부 1점 차 떨어진 일에 대해서 많이 배우고 잘났다는 마음이 있었고 경상도 사람으로 과묵하고 집안에서 절대로 움직이는 일이 없었습니다. 아내가 밥도 청소도 빨래도 지극히 헌신적으로 저를 돌보았고 저는 이런 아내가 당연하다고 믿고 고압적으로 대했고 아내를 부양하는 일에는 소극적이었고 경제적으로 지극히 무능한 남편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불을 받았음에 성경도 잘 모르고 초보신자였지만 자부심은 대단했고 누가 뭐래도 함부로 절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4년 동안 지옥을 경험하고 새 아내에게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스스로 많은 나이 차이가 나는 아내에게 대했습니다. 저녁에 야근을 하고 오면 곤히 자고 있는 아내와 아들을 깨우지 않고 먼저 설거지를 하고 밥을 해서 그리고 아내와 아들을 깨우고 먹여서 학교에 직장에 보냈는데 어떤 때는 아내와 사는 것이 아니라 딸과 아들을 내가 먹이고 사는 것과 같은 생각도 들었고 러시아 국적의 고려인이라 한국 음식에 대해서 잘 하지도 또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하기에 해 주지 않을 때는 제가 전도 부치고 찌개도 하고 반찬을 해서 같이 먹었는게 가락 시장이 곁에 있어 횟감을 자주 새벽에 가서 사서 아내에게 회를 떠 주었습니다. 그리고 20년을 아내가 하는 은행일이나 한국에서 일을 다 같이 가서 해 주고 처가 식구 친척 약 40명에게도 한결같이 20년 동안 한국에 오면 일도 찾아주고 문제가 생기면 가서 해결을 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제 형제와 친척이 약 200명이나 되는 대가족인데 경조사나 모임에 거의 가지 않아 제 가족으로부터는 외면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제가 죽어야만 하는 때 제가 죽지 못할 때 아내가 대신 죽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싸움을 할 때 성령을 받으면 성령의 인도만 받으면 되지 하고 다른 일에 소홀히 하게 될 수도 있는데 저도 로마서 5-8장까지 예수님의 합한 세례와 그 때 죽음,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린 저에 대해서 오랫동안 믿지 않았고 믿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살던 사람인데 우리는 이 구절을 반드시 내게 주는 구절로 받고 죽어야 할 때 죽어야 하며 바울 사도만 날마다 죽는 것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이 매일 그렇게 죽어야만 하는 사실입니다. 이 진리에 대해서 성령을 받았기에 성령의 인도만 받고 성경의 내용만 잘 이해하면 되지 생각했는데 성령도 받고 죽는 일도 매일 성도는 해야만 되는데 제가 죽지 못한 경우 즉 어떤 어려운 순간 영적으로 어려운 싸움의 순간 저는 살고 아내가 대신 죽었습니다. 저는 이를 잘 압니다. 제가 어려워서 하지 못하는 일을 아내가 한 것입니다. 이런 아내의 죽음으로 인해서 저는 여러 차례 잘못 갈 수 있는 길에서 벗어 날 수가 있었으니 제 아내의 수고도 저 못지 않게 큽니다. 제가 한 일보다도 제 전처 제 어머니 제 동생, 그리고 잠실교회의 목사님과 교우들의 덕분으로 저는 이렇게 미국에도 자료를 보내고 온 세상에 전하고 있으니 제가 내세울 것은 제 못난 부분뿐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고백대로 실로 인간이 했다고 함부로 내 세울 수가 없는 것은 우리의 역할은 미미하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늘 함께 하시고 성령께서 늘 감동하시고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늘 사랑해 주심으로 어떤 때는 징계를 받으면서 하나님 나라의 너무나 중요한 믿음과 율법에 대해서 전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죄인이며 고시를 공부하고 사회과학에 대해서 신뢰가 깊고 불교와 유교로 무장된 저와 같은 사람이 이렇게 사회과학도 불교도 유교도 전하지 않고 오직 복음만 전하게 되고 이도 천주교와 개신교에서 별로 주목하지 않는 부분을 전하게 된 것은 인간이 할 일일 할 수 있는 일이 절대로 아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말하길 심고 물주는 이는 사람이나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 이라고 했는데 농사를 지어보면 이런 원리를 참으로 잘 이해 할 수가 있습니다. 봄에 씨앗이나 모종을 심고 비가 오지 않으면 뿌리가 내리게 물을 줍니다. 심고 물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잠시 이렇게 하고 그냥 두면 하나님께서 햇빛과 바람과 땅의 토양과 그리고 식물 자체에 있는 DNA의 기능으로 싹이 자라고 줄기가 생기고 꽃이 피고 그리고 열매가 맺히게 하십니다. 고무마, 호박, 감자, 옥수수가 전적으로 이렇게 사람의 노동이 별로 없이 잘 자라고 저는 벼도 심고 그대로 두고 피와 같이 수확을 했는데 그 쌀의 질은 한국 최고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범사에 개인의 신앙 성장이면 성장, 교회의 성장이면 성장, 국가의 번성이면 번성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망극하신 사랑과 은혜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노력해서 공부해서 직장에 잘 다녀서 돈을 벌고 성공하고 부자로 사는 것 같으나 실상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절대로 잊지 말고 부자가 된 자는 모두가 가난한 형제를 하나님의 간절하신 뜻대로 챙겨야 하는 것입니다. 저나 여러분이 절대로 자신과 인간의 공로를 내세우면 마귀에 속고 거짓에 속고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든 면에서 온전치 못한 자를 제 주변의 사람도 모든 것을 다해서 저를 사랑하며 도와주었지만 우리 주 예수님의 보혈과 십자가의 대속의 사랑은 저를 회개시키고 성령을 받게 하셨고 그리고 늘 함께 하시며 격려와 위로와 힘을 내게 하셨습니다. 늘 사랑한다. 힘을 내어라 걱정을 말아라라는 말씀을 쉬지 않고 주셨고 들으면 그냥 힘이 되는 저를 각성시키고 고무시키는 말씀을 쉬지 않고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게 늘 챙겨주셨고 성경을 깨닫는 기쁨을 쉬지 않고 주셨습니다. 그리고 전하는 기쁨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늘 함께 하시며 저를 인도하셨기에 제가 믿음과 율법에 대해서 이렇게 전하게 된 것입니다. 모든 것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이고 정말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놀라운 계획을 지니고 계시고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이 우리로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하심입니다. 제 대부분의 글들은 오랜 신학공부의 도움도 있지만 쉬지 않은 전도와 성경정리 그리고 늘 주님께서 함께 하심과 성령의 인도와 감동 그리고 농사와 바닷가의 삶을 통한 이해에서 나온 자료입니다. 현장의 글입니다. 직장생활을 쉬지 않고 하고 가정을 아내와 아들과 같이 살면서 나온 글입니다.
사람의 수고와 사랑은 아무리 크다 해도 제한적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바다와 같이 크나 그 사랑은 한치 앞도 보지 못하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자식도 어느 정도 크면 부모를 떠나야 합니다. 늘 함께 하지 못합니다. 부부의 사랑도 좋을 때 뿐 조금 사이가 틀어지만 원수로 변하고 심하면 이혼도 하게 되는 부분적이고 제한적인 사랑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사랑은 언제나 어느 때나 함께 하시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고 못된 길로 가도 참고 기다리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사랑입니다. 부모와 떨어져 있고 아내와 남편과 사이가 멀어져도 한결같이 곁에서 함께 우시고 고통을 나누시는 사랑이십니다. 사람은 조금 좋으면 좋다고 난리가 나고 조금 싫으면 바로 원수과 같이 보복을 하지만 주님은 좋아도 우리에게 잘 보이지 않게 기뻐하시고 우리가 나쁜 길로 가도 절대로 원수로 대하지 않으시고 잠잠히 홀로 마음 아파하시며 기다리십니다. 그래서 그 크고 깊고 넓은 사랑을 우리는 이해도 인식도 체험도 못하고 조금 어려우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떠나려 하고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외면하고 홀로 즐기고 행복하려고 합니다. 이런 우리를 하나님은 영원토록 변함없이 늘 함께 하시며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이 그 은혜가 저와 여러분을 이렇게 인도하고 부자가 되고 성공하게 했으니 제가 이렇게 제가 받은 진실로 세상에서 둘째 가라면 큰 축복을 그냥 온 세상에 나누듯이 모든 자신의 달란트데로 받은 것을 그냥 주변에 어려운 분과 속히 나누시기 바랍니다. 그 시간은 짧고도 짧습니다. 오늘 하루 이 시간만이라도 공자와 같은 마음이 되시길 부탁을 드립니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죽어도 한이 없다고 하신 진리에 대한 타는 마음으로 읽으시고 하나님께 감사하시길 부탁을 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민족의 너무나 놀라운 부분에 대해서 제게 알려 주셨습니다. 이는 바닷가 생활의 경험과 그리고 역사에 대한 이해와 그리고 성경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있어야 하는 부분인데 즉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에 대한 해석입니다.
제가 드리는 이야기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너무나 놀라운 세상이 열립니다. 전라도가 온 한국의 고향이며 조상의 땅이 되고 전라도가 한국의 기원이 됩니다. 수백만 전라도 사람에겐 다시없는 복음 다음의 기쁜 소식이며 고인돌이 있는 한국의 모든 땅값이 급등하게 되고 한국은 세계적인 관광지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고인돌이 있음을 압니다. 그런데 그 유래에 대해선 모두가 알지 못하고 오리 무중에 있는데 하나님은 전능하시니 아시고 성경이 그 감추어졌던 비밀을 밝혀 줍니다. 성경을 적당히 믿으면 절대로 이 문제의 해답에 가까지 못 갑니다. 예를 들면 구약의 내용을 믿지 않고 창조론을 믿지 않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분은 이 부분에 대해서 절대로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배운 신석기 50만 년 전 크로마늉인 100만 년 그리고 공주 석장리 등의 유적, 타제석기의 구석이 마제 석기의 신석기 그리고 토기와 청동기 그리고 철기시대와 문자와 여러 왕국의 탄생을 믿는 분은 절대로 이 문제를 바로 이해가 어렵습니다. 이렇게 풀면 청동기 시대와 고인돌은 그냥 우리 한국에 있는 유물이다 하고 수백 년 수천 년이 흘러갈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진리로 믿고 창조론을 진리로 믿는 분은 제가 설명하는 바닷가 생활과 한국과 세상의 역사로 바로 진리의 세계로 진입하게 되는데 이는 서울대 박사도 절대로 풀지 못했고 못할 놀라운 이야기로서 진실로 진리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세상의 창조와 인간의 창조를 믿어야 합니다. 이를 믿지 못하면 위의 역사적인 가르침과 중앙박물관의 시각을 가지고 혼돈된 세상을 여전히 살아야 합니다. 이번에 이 부분이 약하신 분은 절대로 하나님의 세상의 창조와 인간의 창조에 대해서 절대로 죽어도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화론을 믿는 모든 세상의 박사와 천재도 죽었다 깨어나도 풀지 못할 진리를 전합니다. 이미 제 글을 읽으신 분은 아실 것입니다.
그다음에 절대로 절대로 믿어야 하는 역사적인 사실은 노아 홍수입니다. 이를 절대로 절대로 믿어야 합니다. 제가 도표를 올립니다. 이대로 그냥 믿어야 합니다. 여기서 흔들리면 제가 전하는 역사적인 사실에 또 절대로 이를 수가 없습니다. 이 두 가지만 잘 믿고 따라오시면 놀라운 우리나라의 역사를 이해하게 되고 일본인과 동남아 인을 대할 때 놀라운 자세로 임할 수가 있으니 참으로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분이 누릴 행복이며 특권입니다. 신학자도 이렇게 성경을 믿지 않으면 절대로 이 문제에서 헷갈리게 되어 있습니다.
파워포인트로 작업을 수년 전에 한 것인데 이대로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역사가 풀리고 진실이 드러납니다. 노아 홍수가 일어난 연도가 기원전 약 2519년이며 이는 아담의 시대로부터 약 1700년이 지난 뒤의 일입니다. 지구상에 인간을 닮은 존재는 어디에도 없었는데 아담으로부터 사람들이 지구상으로 생육하고 번성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어디까지 갔는지는 모르지만 약 1700년 동안 지구상으로 퍼져가서 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기원전 약 2519년 노아 홍수가 발생했을 때 지구상에 어떤 육상의 생명체도 없게 되었습니다. 인간을 비롯해서 노아 방주에 들어간 동물들 외에는 다 죽고 노아 방주에 들어간 8명의 사람으로부터 이제 다시 함으로부터 아프리카로 셈으로부터 아시아로 그리고 야벳으로부터 유럽으로 인간이 퍼져가면서 살게 됩니다. 당연히 한반도에는 어떤 인간을 닮은 존재도 없게 되었고 오직 비어있습니다. 그리고 씨앗에 의해서 다시 숲이 무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노아의 후손에 의해서 생육하고 번성하게 됩니다. 물에 잠겼지만 물이 빠지고 그래도 흔적이 남은 공간은 그대로 인간에 의해서 사용이 되었을 것입니다. 한반도에 홍수 이전에 사람들이 왔을지는 알 수가 없으나 분명한 것은 한 명의 인간도 홍수 후에 바로 살 수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인류의 이동이 나타납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아시아로 유럽으로 그리고 아프리카로 흩어지게 됩니다. 이런 흩어짐은 아시아의 경우 초원의 길과 비단길 그리고 바닷길이 있는데 바다로 이동한 흔적이 바로 고인돌입니다. 청동기의 사용, 돌로 된 무덤을 만듦, 온돌과 벼농사 등의 특징이 공통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전 세계 고인돌의 70%인 약 4만기가 한반도에 있고 전남에만 1만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고인돌의 연대도 이동에 따라서 메소포타미아 지역 약 3500년 이집트 약 3000년 인도 2500년 중국 2000년 한국 약 1000년 일본 약 400년 정도로 잡히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첫 사람은 한반도에 오신 첫 사람은 이렇게 바다를 따라서 고인돌을 만드는 분들로 이동을 했고 전라남도의 섬으로 왔을 가능성이 큽니다. 여기서 사람들이 늘면 경상도로 전라북도로 이동을 한 흔적이 그대로 고인돌로 남아 있고 이를 고인돌 연구회가 분포도를 만들었습니다. 초원의 길이나 혹은 비단길을 통해서 고인돌이 이동이 된 흔적은 없고 그래서 북방으로부터 들어왔다는 주장도 별로 근거가 없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흔적이 3000년을 지나며 그대로 지금 우리에게 연결이 되었으니 벼농사, 씨족 단위 모여서 사는 것, 온돌과 초가집 등이니 지금도 그대로 시골에 있고 60년 전의 대부분의 한국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청동기의 시대는 철기를 가진 부족이나 유이민이나 권력을 가진 집단에 의해서 사라지고 문자와 철기를 가진 시대 즉 왕이 존재하는 시대가 되어 권력자가 약한 사람을 노비나 종으로 삼아 대를 이어서 종노릇 하게 했고 이 제도에 정면으로 도전해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며 서로 형제로 살아야 한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천주교를 무군 무부의 종교라 해서 씨를 말리려고 100년 동안 만 명의 순교자를 내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대하신 왕제도는 이렇게 무서운 측면이 있습니다. 왕제도만 무섭습니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상과 제도와 헌법은 모두가 이렇게 조금씩 변형은 되었지만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누고 사람을 존중한다고 하나 집이 없고 땅이 없는 수많은 백성을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서 땅과 집도 못 가지고 산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를 성경이 밝히고 예수님이 밝혔으니 이를 밝히는 사람을 지배 세력은 시대를 초월해서 박해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올바로 그 의미를 이해한 자는 절대로 이런 제도에 빌붙어서 부를 축척하고 가난한 믿음의 형제를 돕지 않고 살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절대로 절대로 언제나 예수님은 이런 세상을 조금도 꿈을 꾸지 않으시고 주안에서 모두가 집을 가지고 땅을 가지고 서로 사랑하며 살게 하셨고 능력이 있는 사람은 능력껏 많이 벌어서 가난한 자를 돕고 살게 하신 것입니다.
모두를 사랑하시고 지구와 하늘을 창조하시고 인간과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어떤 특정 집단이 다양한 사람을 현혹하는 사상과 법으로 약한 다수를 지배하며 살도록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에 대해서 강력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한 마디로 법이며 이 법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통치하려고 주신 법입니다. 하나님의 자의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법대로 통치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먼저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모세를 통해서 이 법을 주시며 이 법대로 살면 복이 어기면 저주가 온다는 약속으로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구약의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1000년 동안 하나님은 약속을 신실히 지켰으나 이스라엘은 언제나 율법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고자 했고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서 이를 바로 잡고자 했으나 결국은 하박국서에 보는 바와 같이 불순종으로 멸망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법대로 살 때 하나님께서는 이 민족에게 온 다른 민족보다 큰 복을 받게 하시고 뭇 민족이 이런 이스라엘을 본받아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얻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1000년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새롭게 예수님을 보내십니다. 이제는 모든 인류가 서로 사랑하며 하나님과 함께 살도록 새롭게 인간을 창조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창조 즉 재창조 행위가 바로 예수님의 오심과 성령의 선물과 거듭남입니다. 그리고 새롭게 된 인간에게 즉 하나님의 작품이 된 인간에게 성령의 도장이 꽉 찍힙니다. 성령의 인으로 우리는 번역을 했습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이 새롭게 재 창조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로 번역하는데 이 저와 여러분과 같은 성도가 이제는 비로소 마음이 부드럽게 되어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할 법 율법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율법은 세상 최고의 법으로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불공정하고 불공평한 법이 아닙니다. 약 3천 5백년전에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었지만 현재까지 인간이 온 머리를 다 짜내어서 만든 온 세계의 모든 법 보다 공평하고 정의로운 법입니다. 이 법대로 살면 강대국의 행패도 없고 약소국이 가슴을 조이지 않아도 되고 그리고 약하고 능력이 없는 자들도 지금과 같이 소망이 없이 사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집과 땅을 가지고 잘난 사람이 사랑으로 못사는 사람을 품고 사는 세상 즉 의와 평강과 희락의 세상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를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라 부르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진정한 목적이 한 마디로 제와 여러분과 같이 진리도 행복도 정의도 모르고 오직 이기심에 빠져서 작은 지식과 자신의 경험에 의존해서 자신을 위해서 살던 사람들이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고 성령을 받아서 이런 원리를 깨닫고 율법의 중요성도 깨닫고 이제는 하나님의 나라의 공동체의 일원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아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목적입니다.
겔 34:23.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24.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36: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사람은 이런 성경의 진리를 밝혀서 모든 사람에게 전해야 합니다. 그 중심이 되는 두 가지가 바로 올바른 믿음과 율법에 대한 올바른 이해입니다. 모든 성경을 읽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이 두 가지를 올바로 이해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천국에도 가고 상급도 받게 되는데 모두가 아는 예수님의 말씀은 이 내용을 그대로 증명해 줍니다.
예수와 율법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바울이 수천 명이 덤벼도 예수님의 말씀에 흠을 낼 수가 없고 바울은 자신을 언제나 예수님의 종으로 표현했고 사도로 표현했고 예수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서 일생을 고난으로 보냈고 순교도 했습니다. 위의 구절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의 편지를 보고서 위의 구절을 무시하거나 혹은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은 모두가 바울 사도의 편지 글들을 잘못 이해해서 생기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헛된 복음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한국의 너무나 많은 분들이 이 함정에 빠져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위의 말씀은 율법을 배우고 행하라는 말씀으로서 오직 믿음이면 된다라는 가르침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그리고 율법은 폐지되었다고 하면서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가르침과 또 너무나 다른 가르침입니다. 바울 사도의 편지를 잘못 이해하면 위의 예수님의 말씀과는 너무나 다른 길로 갈 수도 있습니다. 나 자신은 누구의 가르침을 따라서 어떻게 이 한국에서 살고 있는지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집과 땅을 통해서 부를 축척했거나 혹은 축척하고 있습니까? 세상에서 모든 면에서 성공했는데 가난한 믿음의 형제를 과연 보살피고 있습니까? 모든 면에서 승승장구 승리하지만 경쟁에서 진 소망이 없는 이웃에 대해선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까? 구약의 율법을 보면 절대로 이렇게 살면 아니 된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헌법과 국가의 법은 한치도 오차도 없이 잘 지키고 잘 배워서 모르는 조문이 없는데 진작 예수님을 믿으면 국가의 법이 되는 율법은 내가 얼마나 알고 지키고 있는가? 내가 내 마음대로 살면 어떻게 이 땅에 예수님께서 세우고자 하는 나라는 세울 수가 있는가? 깊이 생각해 보시고 회개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의롭게 되는 믿음은 한결같고 오래된 믿음이라야 되고 그리고 행동하는 율법을 지키는즉 정의로운 믿음이라야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게 됩니다. 성경의 내용이 틀림없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어디에 그런 말이 있어 성경을 백번 읽어도 그런 내용은 어디에도 없어 하실 분이 있어 준비합니다.
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틀림없이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을 때 75세였는데 아들을 얻을 때가 100세니 25년 동안 변치 않는 믿음에 대한 나의 스스로의 인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입니다. 이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습니다. 오늘 믿는 믿음이 아니고 왔다 갔다 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성경이 이렇게 분명하게 어떤 믿음인지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 스스로 의롭다 소리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정입니다. 그 시와 때도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한 판단도 역시 내가 아니라 우리 목사가 아니라 신학자가 아니라 분명히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내가 아무리 나는 의롭게 되었다 믿어도 외쳐도 하나님의 기준이 아니면 절대로 의롭게 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나의 의로움을 만방에 외치기전에 반드시 과연 나의 믿음이 의롭게 되는 믿음인지 반드시 점검을 하고 겸손히 기다려야 합니다.
천주교 버전을 봅니다.
롬 4:17. 성서에 "내가 너를 만민의 조상으로 삼았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만드시는 하느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18. 아브라함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믿어서 마침내 "네 자손은 저렇게 번성하리라." 하신 말씀대로 "만민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19. 그의 나이가 백 세에 가까워서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이 되었고 또 그의 아내 사라의 몸에서도 이제는 아기를 바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믿음을 가지고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20. 그는 끝내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의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욱 굳게 믿으며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21. 그리고 그는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어주시리라고 확신하였습니다.
22. 하느님께서는 이런 믿음을 보시고 아브라함을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하셨습니다."
누가 이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에 아닌데 나는 믿으니 의롭다 했는데 모든 목사가 다 나를 의롭다 했는데 ... 왜냐하면 네가 예수님을 믿으니 해 보았자 목사의 말이지 하나님의 말씀은 아닙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큰 전제는 로마서 1장 17절과 3장 22절에서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그런데 4장에서 어떤 믿음이어야 된다라고 다시 설명을 해 놓았으니 이 설명을 잘 보아야 합니다. 아무도 이에 대해서 토를 달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행동하는 정의로운 믿음에 대해서도 역시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로마서는 압축 파일이고 어떤 단어는 빙산의 일각과 같이 부분만 보이는데 부분을 보고 속단하면 아니 되는데 이 단어가 구원이라는 말도 있고 믿음이라는 단어에도 해당이 됩니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합 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4. "See, he is puffed up; his desires are not upright -- but the righteous will live by his faith --
루터가 열광한 로마서 1장 17절은 틀림없이 그냥 어디에서 똑떨어진 것이 아니라 하박국서 2장 4절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박국서 2장 4절을 보아야 그 의미를 알 것입니다. 만약에 루터가 급해서 이를 놓쳤다면 후대의 우리라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박국서는 3장으로 된 짧은 구약 성경 예언서에 있습니다. 우선 위의 말씀은 하박국 선지자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십니다. 바벨론에 대해서 하시는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은 불의한 바벨론이나 멸망이 임박한 남 유다와 같이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루하루 산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믿음으로 산다는 말의 뜻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불의한 자들과 같이 멸망을 당할 모습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박국과 같이 불의를 미워하면서 의롭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 믿음이 하나님께서 불의를 척결하시고 의를 세우시는 분이시라는 데 대한 믿음이고 척결의 대상이 불의한 택한 민족 남 유다와 그리고 바벨론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산다는 의미는 믿음으로 하루하루 삶을 사는데 어떻게 삽니까? 100퍼센트 당연하게 하박국과 같이 의롭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불의로 인해서 멸망을 당한 남 유다와 바벨론과 같이 불의하게 사는 자를 절대로 하나님께서 나의 의인이다 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다가 우리가 아는 오직 믿음이면 되고 행위는 상급이다란 말을 넣고 이해하면 정말로 큰일이 납니다. 율법이 해이해지고 율법을 무시하고 사는 남 유다를 참다가 참다가 하나님께서 멸망을 시키시는데 그리고 남 유다를 멸망시키는 바벨론도 교만하고 정직하지 못하다고 하시면서 멸망을 시키시는데 어디서 하나님을 믿는다 라는 자가 일어나서 아니 믿음이면 됩니다. 율법의 행위는 해도 되고 아니 해도 돼요 이는 천국에 가서 받는 상급을 결정할 뿐입니다. 하면 불의에 참다가 참다가 이제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시고 자신이 택한 민족도 멸하시는 판에 하나님께서 무어라 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아는 믿음도 잘 보시면 믿음의 삶을 산다의 의미입니다. 믿음의 삶이 무엇입니까 하박국과 같이 정의롭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즉 정의롭게 하루하루 하나님을 믿고 정의롭게 믿음의 삶을 사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정의롭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너무나 사랑하셔서 천년을 보살펴 주신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시는 남 유다를 멸하시는데 바벨론을 들어서 멸망케 하십니다. 이도 마음이 너무나 아프실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를 늘 민족과 함께 행동하게 하시고 그 피해를 최소한으로 하게 인도하십니다. 이도 남 유다는 거부합니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율법을 지키지 않아서입니다. 율법을 지키면 정의로운 삶을 사는데 큰 도움이 되는데 그리고 불의에 대해선 짐승의 피로 또 죄를 씻어서 정의롭게 되도록 길을 열어 두셨습니다. 그런데 죄를 지으면 자신이 키우던 흠 없는 짐승이 죽는 것을 보고서 절대로 죄를 멀리하고 지내기를 바랐는데 죄만 짓고 짐승 잡고 죄만 짓고 짐승 잡으면 무조건 용서가 된다고 오해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순종 즉 율법을 지키는 삶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죄 불의를 싫어하시는 하나님께 오직 믿음이면 돼요, 행위 즉 율법을 지키는 행위는 천국에 가서 받을 상급을 결정해요 오직 믿고 때론 율법을 어겨도 문제가 없어요 하고 가르친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그런 사람을 절대로 의롭다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를 알아야만 합니다. 예수님의 죄의 용서는 과거에 지은 죄라고 분명하게 못을 박았고 예수를 믿고 난 후에 지은 죄에 대해선 또 회개가 필요합니다. 무조건 용서는 죽어도 없습니다. 회개에 대한 용서도 내가 마음대로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고 죄를 용서하시는 분은 언제나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예수를 믿고 늘 죄를 범하는데 죽어서 용서받지 못한 죄가 있다면 어찌하시렵니까? 아니 한국의 많은 목사가 예수를 믿으면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가 다 용서받았다고 하셨는데 무슨 말입니까? 이에 대한 하나님의 답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과거의 죄를 용서받는다라고 하셨습니다. 과거의 죄라고 분명히 못을 박아 두었습니다.
롬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5. God presented him as a sacrifice of atonement, through faith in his blood. He did this to demonstrate his justice, because in his forbearance he had left the sins committed beforehand unpunished --(하나님께서 과거에 지은 죄를 벌하지 않으시고 간과하셨다.)
25.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제물로 내어주셔서 피를 흘리게 하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습니다. 과거에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죄를 참고 눈 감아주심으로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고
26. 오늘날에 와서는 죄를 물으심으로써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습니다.(공동 번역)
영문의 괄호는 제가 번역했습니다.
이 내용은 천주교 성경 개신교 성경 모두 다 이해가 어렵게 서로 다르게 번역을 해 놓았으니 일반 성도가 100독을 해도 절대로 이해가 어려운 부분입니다. 물론 성령께서 감동하고 이해하도록 하시는 분은 이해가 가능할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 보아도 이 부분에 있어선 공동 번역이 앞의 부분은 바로 이해가 되도록 번역을 했습니다.
참으로 너무나 중요한 내용입니다. 영어의 번역도 잘 보아야 합니다. 영어를 아시는 모든 대졸자들은 저와 같이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그를 위해서 영어는 필수이고 대학을 우리가 다닌 이유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나의 운명 내 가족의 운명이 달렸고 그리고 나는 그럴 충분한 지적인 축복을 받고도 이를 하지 않는 것은 누구 탓을 절대로 못하고 모든 신학자, 성경 연구가, 목사 그리고 신학생이 반드시 이렇게 공부하고 전해야 합니다. 아직도 그렇게 하지 않고 전했다면 이 구절은 어떻게 이해하고 전했습니까? 과거, 현재, 모든 죄를 다 이미 용서받았다고 성경 어디에도 없는 내용을 그냥 선배의 설교를 듣고 신학교에 배우고 전하지는 않습니까?
저와 함께 이 구절의 올바른 이해로 가야 합니다. 온 세상이 이 구절을 올바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로마서 3장 21-26절은 너무나 중요한 구절이고 25절은 영어로 반드시 이해를 해야 하고 가능하다면 헬라어로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영어로 이해를 해보도록 합시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즉 예수님을 대속의 희생으로 주셨습니다. 그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그의 정의 즉 의로우심을 나타내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영어의 because는 하나님께서 앞에서 하신 일에 대한 설명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길이 참으심 중에 우리가 과거에 지은 죄를 벌하지 않으시고 간과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제가 NIV를 보면서 번역을 합니다. 우리 개역개정과 공동 번역과도 제 번역을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토익 이제 600점에 왔습니다. 그리고 스피킹 130점 쓰기 140점을 얼마 전에 맞은 정도입니다. 대학생은 모두 저보다 위의 구절을 잘 이해가 가능합니다. 한국 대학생 평균이 700점 정도 됩니다. 저도 곧 그 정도 맞을 줄로 믿습니다. 이제 토익을 조금 공부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를 제가 풀어서 설명을 해 보겠습니다. 모든 분이 아셔야 하는 내용이 위와 같이 서로 다르게 번역이 되니 이해가 어렵습니다. 영어의 문장대로 모든 과거에 우리가 배운 내용을 잠시 접고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25절 초반부의 천주교 곧 공동 번역은 너무나 이해가 쉽게 잘 번역이 되어서 우리는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도 조금도 문제가 없고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십자가 대속 사건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반드시 온 인류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시고자 하는 이 사실을 이 피를 흘린 십자가 사건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식은 피를 흘리고 십자가에 죽게 하는 아무도 할 수가 없는 사랑을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역시 우리를 사랑하시고 하나님께 순종하심으로 자신이 피를 흘리시고 조롱과 고난의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십니다. 이에 대한 믿음이 우리 모든 인간이 필요합니다. 개개인의 자유의사에 달렸으나 우리는 이를 믿고 온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믿도록 쉬지 않고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피 흘리심을 믿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정의로우신 분이심을 나타내려 하신 것이라 하십니다. 우리가 아는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함께 이렇게 자신이 정의로우신 분이심을 나타내려 하신 뜻이 동시에 있습니다. 제 오천만의 로마서 로고는 제가 그렸지만 하나님의 감동이 있었는 줄로 저는 믿습니다. 5년 전에 그렸지만 그때는 이 구절을 지금과 같이 이해를 못 했습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정의의 표시가 아들을 피를 흘리게 하고 십자가에 죽게 하는 방법으로 나타났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죄의 대가 삯이 피 흘림이요, 죽음이라고 법으로 정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의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고 명하시면서 따 먹으면 틀림없이 죽을 것이다 하셨습니다. 이 명령을 어김으로 우리 모두가 죄인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죽게 된 것이고 낙원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다 고 하셨습니다.
레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히 9: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우리의 죄를 없애는 유일한 방법이 피 흘림과 죽음뿐입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이런 운명에 처했고 하나님께서는 이 방법을 우리에게 하시지 않고 죄도 흠도 없으신 독생자 예수님을 통해서 하셨습니다. 대속입니다.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확실한 증거라고 합니다. 그런데 또한 하나님의 정의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죄는 반드시 벌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제가 앞에서 정의에 대해서 공부하고자 위의 대학에 5년 전에 위의 자료를 보냈습니다. 저는 하버드 대학의 롤스와 샌달의 정의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보다 온 인간에 공통적인 정의를 공부하고자 위의 자료를 보낸 것입니다. 제 아내와 아들이 다 가서 공부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을 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 후에 모세 오경을 조금 자세히 배우고 레위기를 배우면서 저는 더 이상 위의 학교에 가서 정의에 대해서 배울 필요가 없다고 알고 믿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완벽한 정의가 성경에 있고 모세 오경에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온 인류가 행복하게 사는 정의로운 법이 율법임을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이 법은 정의를 이 땅에 나타내시려 이 땅에 실천하시려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주신 법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의 가장 확실한 증거가 아들을 내어 주심이요. 정의의 하나님의 가장 잘 나타난 문서가 모세의 율법이기 때문입니다.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주신 법이 정의롭지 못하면 정의로우신 하나님에 대해서 어떤 방법으로 믿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정의는 다양한 개념이 복합된 개념인데 그중에 하나가 벌에 대한 합당한 처벌입니다. 우리가 받을 벌을 그대로 내림이 하나님의 정의를 나타내는 것인데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너무나 사랑하심으로 차마 그렇게 못하시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대신 내어 주시는데 이렇게 해서 자신의 정의를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이 내용이 이해가 되시면 절대로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서 달리 해결할 방법이 없고 예수를 믿고 용서를 받느냐 믿지 않고 그대로 살다가 최후 심판에 벌을 받느냐 오직 두 가지 길 외에는 어떤 방법도 없고 이는 최후 심판이 너무나 분명하게 존재함을 이 구절을 이해하면 이해가 되기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더 힘을 내어서 다음 구절로 나아가야 합니다. 저는 예수님께 직접 불을 받았습니다. 너무나 귀해서 함부로 말도 못 하고 살았습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가 설명이 되는 구절이 영어의 because 구절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십자가 대속의 은총으로 제가 이렇게 전하는 것입니다. 그냥 살다가 이런 진리의 곁에도 못 갈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전합니다. 김성수 장로님의 성경책이 저를 이렇게 인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박기수 목사님의 설교 시에 오신 예수님께서 주신 불로 이렇게 전하게 됩니다. 얼마나 크신 은총 속에 있는 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렇게 십자가에 못이 박히게 하신 이유가 설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영어의 표현 그대로입니다.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우리가 과거에 지은 죄를 간과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또한 정의로우신 분이시기에 반드시 죄에 따라서 벌을 물을 수가 있습니다. 오직 택한 민족 이스라엘만 죄에 대해서 짐승을 잡아 피를 흘리고 제물로 바치면 그 죄를 용서받을 길이 허락이 되었을 뿐 모든 다른 민족의 사람은 죄에 대가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양심의 법을 지킨 사람은 양심의 법에 의해서 최후 심판을 받을 것이고 모든 사람이 율법에 의해서 심판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심판이나 벌을 바로 내리지 않고 간과 즉 그냥 넘어가셨다고 합니다. 죄에 대한 대가를 우리는 흔히 하나님을 잘 몰라도 천벌이라고 하고 천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하는데 하나님의 벌은 바로 혹은 나중에 반드시 오게 되어 있는데 이를 간과하셨다고 합니다. 이렇게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피 흘리심이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참으신다고 했는데 죄를 짓는 인간을 그냥 보아 넘기기가 절대로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역사를 보면 죄에 대한 징벌이 바로 따라왔고 이스라엘 민족만 보아야 그런데 다윗의 범죄로 민족 전체가 벌을 받고 종국에는 멸망하는 벌을 받습니다. 이는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정의의 표현의 방법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다 죄를 짓는데 그냥 넘어가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정의의 하나님 편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만약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가 과거에 지은 죄를 간과하지 않고 벌을 바로바로 주셨다고 합시다 우리는 하나님 편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보시고 바로 벌을 내려서 합당한 벌을 받고 죽거나 혹은 재산의 피해를 보았거나 혹은 건강이 이미 사라졌다면 이제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우리가 믿으면 죄를 용서해 준다고 한다면 누가 예수를 믿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우리의 과거에 지은 죄의 간과와 십자가 사건은 연결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를 설명하고 있는 구절로 저는 이해를 합니다. 간과와 용서는 또 다릅니다. 용서는 완전히 없는 것과 같이 하는 것이요 우리를 아담이 죄를 짓기 전의 상태로 만드는 것이지만 간과는 만약에 끝까지 믿지 않는 자에 대해선 최후에 이에 대한 죄를 묻겠다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간과와 용서는 다릅니다. 그리고 죄에 대한 간과로 인해서 믿지 않는 자들이 바로 벌을 받지 않고 온갖 죄를 지어도 이 세상에서 잠시 잘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외면한 채 스스로 잘나서 자신의 힘으로 잘 살고 죄를 지어도 아무렇지 않다고 믿고 사니 얼마나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하고 무시하고 저버리는 것입니까? 그래서 영 벌에 처해지는데 우리는 이런 자들을 죽을 힘을 다해서 건져 내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사는 사람으로 로마서 9-16장의 삶을 반드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믿으면 천국 행위는 상급이란 성경에도 없는 인간의 생각이 1%도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그냥 지나가는 틀림없이 우리가 백독한 우리의 성경책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와 같이 율법에 대해서도 깊은 설명이 많이 필요합니다. 저는 이에 대해서 수차례 글을 이미 올렸습니다. 로마서 3장 강의에도 있고 오천만의 로마서 강의에 가 보시면 여러 개의 글을 볼 수가 있습니다. 로마서를 보기 전에 워밍업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하박국서 전체 정리와 갈라디아서 전체 정리가 있는데 로마서 강의 워밍업란에 있으니 참고를 바랍니다. 이렇게 올바른 로마서 이해로 가기 위해서 압축을 풀어야 하고 빙산의 바다 아랫부분을 보기 위해서 바닷속으로 가야 하듯이 우리는 로마서의 깊고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 다른 성경책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루터가 이런 절차를 생략했다면 후대인 우리가 하고 바로잡으면 됩니다. 개신교는 너무나 큰일을 했고 온 세상에 복음을 전했고 잘못 이해했거나 부족한 부분은 바로잡으면 됩니다. 작은 잘못이 있다고 전부가 잘못이다 하는 것은 절대로 올바르지 않습니다. 이를 천주교에 적용해서 우리가 천주교도 존중해야 합니다.
저는 이런 진리를 죽도록 맞으면서 배운 것이지 절대로 저절로 온 것도 제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닙니다. 이런 내용을 오직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알았을 때 너무나 껄떡이고 개신교를 비판하고 정죄하다가 죽도록 맞고 그렇게 절대로 하면 아니 됨을 배우고 이렇게 전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개신교는 너무나 귀한 일을 하고 앞으로도 천주교와 경쟁하면서 선한 길로 풍성한 길로 가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자면 올바른 성경 이해를 속히 해야 합니다. 내가 모르고 살다가 오늘 알고 바로잡으면 됩니다. 이를 절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에겐 회개할 기회가 있습니다. 회개하면 될 일입니다. 저는 고통을 통해서 그렇게 배웠습니다. 비판이나 정죄는 모든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믿는 시대의 선악과가 어떤 경우는 비판이나 정죄에 해당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 중의 하나가 우리가 잘못을 알고 회개하고 올바로 가는 것일 것입니다. 만약에 이스라엘이 남 유다가 선지자의 말을 듣고 회개하고 민족이 모두 정의롭게 살았다면 역사는 또 달라졌을 것입니다. 주님을 전하는 전도자의 말을 듣고 회개하면 과거에 지은 모든 죄를 용서받게 됩니다. 없는 것과 같이 하십니다. 어떤 죄도 다 용서해 주십니다. 저도 그렇게 과거에 죄만 밥을 먹듯이 입만 열면 짓다가 성경을 보고 주님의 은혜로 회개하고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늘 위로와 격려를 주십니다. 이렇게 깨닫게 하시고 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또 제 고집대로 하려고 하다가 죽도록 맞고 회개하고 이렇게 전하는 것입니다. 제 눈에 불의하게 사는 성도나 목사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내용을 알고 죽도록 비판하고 목을 높여서 잘못되었다고 온 세상에 고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막 나가다가 허리가 죽도록 아프고 가정적으로도 어렵게 되고 또 다양하게 어렵게 되었을 때 아! 이렇게 막 나가는 나를 보고서 하나님께서 싫어하시고 막으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움직이지 못하게 아프고 고통의 끝을 보았을 때 비로소 마음대로 하고픈 마음을 접게 되고 500년의 개신교의 역사는 복음을 온 세상에 확산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보게 되고 여전히 개신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개신교인이 그냥 모르던 것 잘못 알고 있던 것을 바로잡고 이제는 바로 살면 되지 하는 마음이 왔고 그것이 주님의 마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생각과 너무나 다른 주님의 마음입니다. 저나 요나나 조금도 다를 바가 없고 요나는 그래도 용감했습니다. 지금의 북한과 같은 곳에 가서 회개를 외쳤기 때문입니다.
제가 과거에 장신대 신대원 공부를 그만두고 나가서 죽도록 맞고 가장이 깨어진 경험이 있기에 늘 조심하면서 살고 있었는데 이번에 이런 내용을 알고 날뛰기 시작했습니다. 잘못을 고발하고 비판하면 정의로우신 주님께서 너무나 기뻐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것보다도 제가 더욱더 그렇게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허리가 살살 아프기 시작하더니 통증이 지속이 되는데 아니 애를 낳는 여자의 통증도 하루나 이틀이면 끝이 나는데 나는 왜 이렇게 하루 종일 쉬지 않고 그것도 몇 달씩 통증이 계속해서 지속이 되지 생각이 들 때도 있었고 거의 허리가 굽은 상태로 걷고 모든 일도 못하게 되는가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었는데 이런 상태로 또 농사일을 하다가 이제는 더 가면 도저히 제가 견딜 수가 없는 고통의 상태를 맛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제가 하는 비판과 정죄가 제가 할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절대로 저를 비롯해서 아무도 비판과 정죄는 자신의 몫이 절대로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천주교에 대한 비난과 비판도 역시 죄에 해당합니다.
개신교는 더욱 잘못을 바로잡고 부흥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뜻인 줄 굳게 믿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교인이 서로 형제로 사랑하길 바라십니다. 온 지구상에 교인이 없는 국가 없는 상태가 되어 가는데 이제는 이런 교인이 서로 주안에서 하나가 되어 주님께서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야 합니다. 이런 일을 하는 것을 막는 가장 잘못된 일이 상대방에 대한 비판과 정죄입니다. 이단에 대한 부분은 달리 바로 알고 성도가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하나 절대로 다른 교파나 교단을 비판하고 정죄할 의무는 우리에게 없다고 믿습니다.
주안에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경의 올바른 이해를 통해서 가야 할 길을 발견하시고 새롭게 전진하시는 모든 분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저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바다를 통한 이동을 믿고 보면 일본은 우리의 후손이 분명합니다. 일본의 고인돌은 고작 기원전 400년이고 우리는 기원전 1000년이니 우리나라에 살다가 일본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백제와 신라의 영향도 많이 받았고 임진왜란으로 좋은 것은 다 가져갔고 그리고 일본의 통치 36년 동안 남해 섬의 은도(은점 마을) 찾아서 캐어갈 정도로 모든 좋은 것을 다 가지고 가서 전쟁도 하고 일본이 저렇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일본도 우리 후손이다라고 하면 정이 갑니다. 그리고 동남아 필리핀이나 베트남 인도네시아에서 살던 분들이 우리나라에 왔다 하면 비록 저분들이 조금 못 살아도 우리의 형제요 조상의 나라 분들이다 하면 역시 정이 갑니다. 제가 사는 군산의 오식도 동에 약 15000명의 외국인이 바로 제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합니다. 전도를 고기잡이로 보면 태평양 저 멀리에 있던 고기가 내가 사는 바닷가 바로 앞에 수도 없이 먹이를 찾아서 왔다 갔다 합니다. 수천 킬로 수백 킬로 배를 타고 가지 않아도 고기가 알아서 내 집 주변의 바닷가에 스스로 와서 왔다 갔다 하는데 나는 이 고기를 잡으려 선교를 갈 필요도 없이 낚싯대를 가지고 미끼를 달고 줄을 내리면 되고 이들을 맞을 성전도 준비해야 합니다. 큰 성전이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오셔서 함께 이 놀라운 축복의 현장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지 않겠습니까? 모일 장소가 준비가 되면 전도 대상자도 온 세계에서 몰려와서 바로 곁에 있고 오직 전도자와 섬길 분이 필요합니다. 군산 오식도 동에 한 번에 약 수백 명 이상이 예배를 드릴 큰 성전이 준비가 잘 되어야 합니다. 늘 장소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청소를 하다가 빌딩 사장이 예배를 위해 주일 날 자신의 사무실을 써도 된다고 했을 때 미친 사람과 같이 기뻐서 춤을 추며 다녔습니다. 그런데 다음 주 그렇게 하지 말라고 문들 닫고 열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장소를 위해서 기도하며 오랫동안 살고 있습니다. 감동이 있는 분의 동참과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공간을 준비하러 벌 떼와 같이 오시기 바랍니다. 전도도 함께 배우며 하고 성경도 정리하고 성경도 배우고 그리고 농사와 낚시도 하고 여행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천국에 가서 받을 상급을 이 이슬과 같은 짧은 인생의 남겨진 시간을 잘 활용해서 쌓아야 합니다. 나와 내 자손 대대의 복을 쌓아야 합니다. 하늘의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날 나로 나를 세워야 합니다.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모든 일에 함께 하겠습니다. 놀라운 일이 주님 오신 2000년이 지난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 온 세계로 퍼져 나가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