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냈다.
지구촌이 경악할 만 한 일을 기어코 그들은 해냈다.
피와 땀의 결실이 피버노바에 실려 횃불로 타오르던 2002년 6월 4일 부산월드컵
축구장은 그야말로 오 천 만이 하나 되는 각본 없는 감동의 드라마 그 자체였다.
48년을 숨죽여 온 설움과 한이 정열의 붉은 꽃으로 피어나 활화산으로 분출하던
감격과 환희를 한국민이 아니고서는 결코 감당할 수 없으리라.
사우디의 대패와 중국의 완패, 일본의 힘겨운 무승부에 이은 한국의 쾌승은 이래서
더욱 값지고 빛나는 승리가 아닐 수 없다.
평가전의 연이은 참패에다 히딩크에 대한 불신, 선수단의 갈등과 불협화음, 아니
마음 졸이며 지켜보던 국민들의 우려까지도 단 한 방에 날려보낸 월드컵 첫 승은
분명 기대이상의 시너지효과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그 어떤 어려움도 신뢰와 성원만이 극복할 수 있으며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태극전사
들은 행동으로 보여줬다. 예비고사와 본고사를 운운하며 감독의 전술능력까지 의심하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던 매스컴들도 이젠 믿을만하다는 듯 대서특필로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만약 패배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감격적인 승리의 자축이야 평생을
해도 모자라겠으나 이 만약의 패배에 보다 겸손해질 수 있는 새로운 마음과 각오가
필요한 때다. 일희일비하는 냄비근성도 자성하고 뜨는 해는 지는 해의 소멸과 희생으로
얻어지는 산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4일 밤 우리 국민은 경기장 안에서 뛰는 선수나 응원하던 관중 못지 않게 장외에서
더 뜨거운 성원을 보냈다. 광화문에서, 대학로에서, 야구장에서, 사무실에서,
공원에서, 호프집에서, 아니 지하실 단칸방에서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쳐댔다.
늘상 공부에 짓눌린 필자의 두 아들놈까지 가세한 광화문의 열띤 응원전을 보면서
내심 흐뭇하고 아름답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AP통신은 '한국이 폴란드를 2:0으로 완파함으로써 아시아 축구 최고의 날'을 만들었다고
했는가 하면 AFP통신 역시 '수십 만 군중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서울 거리에서 이런 군중을 보기에는 80년 대 민주화 운동 이래 처음'이라며 흥분했다.
이날 승리는 단지 열 한 명 태극전사만의 승리가 아니라 오 천 만, 아니 칠 천 오백 만
한민족 모두의 값진 승리다.
허나 어제의 첫 승리는 단지 먼 항해를 위해 순풍에 닻을 올린 시작에 불과하다.
지축을 흔들던 감격과 흥분도 이쯤 해서 가라앉히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10일
오노이즘의 미국과 결전을 치르기 위한 냉철한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더구나 미국은 막강한 전력을 과시하며 우승후보로까지 거론되던 강호 포루투칼을
3:2로 격침시키고 16강의 밑그림을 예측불허의 안개정국으로 만들었다.
기우에 불과하겠으나 2승을 거두고도 패배의 쓴잔을 마신 올림픽과 같은 비운을
맞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자만하지 않고 묵묵히 정진하는 겸손과 성실함만이
꿈의 16강, 8강을 보장받을 수 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의 나는 한국팀의 감독이고 앞으로도 한국팀의 감독이라는 것이다.
월드컵에서 우리는 분명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다. 모든 것은 그 때에 알게 될 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명장 히딩크의 이 말을 구체적으로 시현하기 위해서라도
다음 경기에 대비한 전술과 훈련을 충실히 하고 불퇴전의 각오를 다진다면 분명
세계가 경악할 그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이 축제의 와중에서 관람석의 빈자리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개막식 3,500석, 1일 삿포르 1만석, 2일 부산의 2만 2,800석 등 4일까지 진행된
경기에서 10만석 이상의 빈자리가 생긴 것은 티켓판매 대행업체인 바이롬사의
안이한 대처와 마케팅 능력부재, 한일양국 조직위원회에 바이롬을 추천한
국제축구연맹(FIFA) 지도부의 감독부실이 한데 어우러진 결과다.
지금이라도 FIFA는 독선과 오만의 책임을 통감하고 관중 없는 경기로 인한 주최국의
망신살과 표를 구입하지 못해 애태우는 축구 팬에게 빈 표를 공급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
나아가 한·일 양국은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노력은 물론 차후 FIFA 및 바이롬사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도 긴밀한 협조체제가 유지되어야 할 것이다.
월드컵사상 최초 꿈의 첫 승은 분명 한국민 모두의 벅찬 감격이요 경이다.
이 감격과 경이의 분출하는 에너지가 정치로, 경제로, 사회 전반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타올랐음 싶다. 아니 모든 일들이 더도 말고 축구만큼만 되었음 싶다.
히딩크 신드롬도 좋고 골잡이의 몸값도 좋다.
그런데 말이지 열두 번 째 장외선수 붉은 악마(천사)의 몸값은 누가 지불하나?
[choikwanglim@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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