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천동초등학교
이곳 천동에는 예부터 좋은 약샘이 있다 하여 샘골, 샴골, 천도, 외천리 등으로 불리웠는데, 이곳에서 나오는 샘물은 예부터 피부병 치료에 효험이 있고, 물맛 또한 좋아 근동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천동초등학교 운동장 한쪽에는 샘의 흔적으로 조그만 연못이 있는데 별도의 수로가 없는 데도 땅속에서 끊이지 않고 물이 솟아나고 있어요. 그러나 지금은 샘으로서의 구실보다는 물고기와 거북이-누군가 동네사람들이 키우다 몰래 갖다 놓은 듯한 붉은 귀 거북과 줄무늬 거북 예닐곱 마리-가 한가로이 노니는 조그만 연못으로 남아 옛 샘골의 흔적을 보이고 있어요.
천동은 여기 샘골에서 유래 했는데 한자로 샘천(泉) 마을(골짜기)(洞)으로 천동이라 불리우고, 천동에 있는 학교라 천동초등학교라 하였지요.
이곳 천동초등학교의 서남쪽 마을 앞 냇가에는 알처럼 생긴 큰 바위가 있어서 이를 알바위라 부르는데 동네사람들은 이 바위가 마을의 수해를 막아준다고 하여 매년 이를 기리는 알바위 축제를 개최한답니다. 일설에는 대전천 건너 봉소골이 봉의 형국으로 되었기에 봉의 알이라는 뜻에서 알바위라고 한다고하네요.
대전대동초등학교
이곳은 마을의 형성이 매우 빨랐던 지역으로서, 대동천 동쪽, 지금의 대동오거리 부근 일대에 있었고 한밭의 동쪽에 있던 마을이라 하여 대동(大東)을 음차하여 대동(大洞)이라 하였다네요.
이곳 대동천 동쪽에는 야산이 넓게 펼쳐져 있었으며, 그 야산과 대동천 사이는 넓은 들판이었는데 이 들판은 대동천에 큰물이 지면 범람하여 잠겼으며 땅도 비옥하지 않았어요. 따라서, 밭농사 가운데서도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목화와 콩을 경작하여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였대요. 더구나 대동천의 잦은 범람으로 밭농사를 망치는 일이 잦아 어렵게 살았던 마을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송대가 들어서 학생들로 활기가 넘치는 동네가 되었어요. 제가 지하철로 출퇴근하는데 신흥역에서는 한가하게 빈자리가 많은데 대동역에 다다라서는 언제나 많은 학생들이 우르르 기차에 올라타서 왁자지껄 활기가 넘친답니다.
대신초등학교
대신초등학교가 있는 대사동은 옛날 이곳에 큰 절이 있어 한절골이라 불리웠답니다. 지금도 보문산 주변과 산에는 가야사, 관음사, 대덕사, 개문사, 보감사, 보문사, 보현사, 보은사 등등 많은 절이 들어서 있잖아요. 이 한절골을 한자로 옮기면 한(大)절(寺)골(洞)이 되지요. 그래서 대사동.
부용과 사득의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전해오는 부사동
이곳은 풍수학상 연화부수형으로 되어있어 ‘마치 부용꽃 같다.’ 해서 부사리라 부르던 마을인데 이 마을에는 부용과 사득의 애틋한 전설이 전해오고 있어요.
옛날 삼국시대 백제 땅 이 곳 부사동의 위쪽 상부사리에는 부용이라는 총각이, 아랫마을 하부사리에는 부용이라는 처녀가 살았는데, 둘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답니다. 그런데 사득이 수자리를 떠나자 신라군이 쳐들어와 그만 사득은 전사하고 말았어요. 그러자 매일매일 선바위 위에서 사득이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던 부용은 그만 지쳐 죽었답니다.
그 뒤 어느 해 가뭄이 들어 마을 사람들은 농사는 물론 먹을 물도 없어 먼 곳에 있는 샘에 가서 물을 길어다 먹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윗마을 어느 노인의 꿈에 부용이 나타나 칠석날 견우와 직녀가 만나듯이 사득이와 부용을 영혼 결혼을 하게 해주면 샘물이 펑펑 쏟아지게 해주겠다고 했답니다. 그날 밤 아랫마을 어느 노인의 꿈에도 사득이 나타나 부용과 같은 말을 했답니다. 그래서 윗말, 아랫말 사람들은 부용과 사득이 말 한대로 칠석날 우물을 치우고 부용과 사득을 결혼 시켰어요. 그랬더니 금방 우물에서 물이 펑펑 쏟아져 나왔답니다.
이런 일이 있은 뒤부터 마을에서는 매년 칠월칠석날 샘을 청소하고 사득과 부용의 원혼을 달래주기 위해 짚으로 그들의 형상을 만들어 사후 영혼 혼례를 올려 주었답니다.
지금도 매년 칠월칠석날 부사동에는 부용과 사득의 영혼결혼식인 칠석놀이를 마을 축제로 재현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