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데이터갭(Data Gap)을 뛰어넘어 – 1차 자료를 직접 생산하라 GS건설 플랜트해외영업팀 Sub-Saharan Africa 담당 김용빈 부장 이미지출처: Gartner IBM 100년 역사에 처음으로 여성 CEO가 된 버지니아 로메티는 “빅데이터가 21세기 천연자원이 될 것”이라면서 “아직까지 정형화하지 못한 80%의 빅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하고, 얼마나 정확하게 분석하느냐가 앞으로 기업경영의 핵심이 될 것” 이라고 말했다. 이런 기준으로 따지자면, 진짜 천연자원이 풍부하다는 아프리카는 그야말로 ‘사막’이다. 아프리카에서 비즈니스를 하면서 여러 장애물을 넘어야 하지만, 제일 먼저 맞닥트리게 되는 것이 데이터의 부재다. 사업을 하다가 필요한 데이터도 있지만, 우선 사업개발에 필요한 기초 데이터가 태부족이라 불가피하게 제일 먼저 만나게 된다. 그렇다고 신용카드, 교통카드 사용내역이나 개인신상 정보, 기업간 거래 내역 등 심오하고 방대한 정보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아주 기본적인 1차 데이터가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구, 기상, 지리, 행정조직, 물가 등 사업계획 또는 시장조사에 필요한 데이터가 심각하게 부족하다. 심지어 지도조차 없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토목사업을 계획하려면 상당히 대축척 지도가 필요한데 (한국에서는 1:5,000 지적도를 쓴다고 한다), 도저히 구할 수가 없어서 1:100,000 소축척 지도를 어렵게 구해서 사용한 적도 있다. 그나마 국방부 지도창에서 구한 군사용 지도였다… 이렇게 기본적인 데이터가 부족한 상태를 필자는 ‘데이터갭(Data Gap)’이라고 부른다. Digital Gap처럼 정보통신 기술의 세례를 받은 자와 못 받은 자 사이에 존재하는 격차가 아니라, 필요한 데이터와 실제로 존재하는 데이터 사이의 괴리를 뜻한다. 선진국과 그렇지 않은 나라 (후진국이란 용어는 정녕 쓰고 싶지 않기에)의 차이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 유력한 것이 데이터의 존재 유무라고 말하고 싶다. 데이터가 있으면 선진국, 데이터가 없으면 ‘안’선진국인 것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선진국이 되어가면서 각종 데이터가 쌓여간다고 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아프리카 시장 개발이라는,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초입부터 이 데이터 부족이라는 너무도 가혹하고 막강한 적수를 만난다. 우회할 수도 없는 적이다. 언젠가 출장길에 어떤 기관(차마 그 이름을 밝힐 수 없는 기관)에서 시장조사차 나온 분과 만났다. 정말 미치기 직전이라고 했다. 자동차 부품 시장을 조사하라는 미션을 받아 왔는데, 도대체 할 수가 없단다. 그 분 스스로가 자동차 전문가도 아닐 뿐더러, 그 나라 내무부에는 자동차가 전국적으로 몇 대라는 정도의 데이터만 있다. 브랜드도, 배기량도, 연식도, 그 어떤 구분도 없이 말이다. 산업부나 관세청을 찾아가도 아무것도 없다. 자동차공업협회? 자동차를 생산하지 않으니 그런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수입딜러협회? 전국 기업이 수입업자이거나 수입업자에게서 상품을 받아 유통하는 상황이니 전국민이 수입업자다. 무슨 협회가 필요하랴… 그런 대화를 나누던 그 순간에도 창밖으로 보이는 거리에는 자동차가 빽빽한데, 자동차에 대한 데이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동차가 그러하니 자동차 부품에 대한 데이터는 여러말 해서 뭐하겠는가? 상황이 이렇게 되면 여러분은 미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필자가 보기에 이 문제는 우리나라 수출 역사와 맞닿아 있다. 20세기가 저물어가도록 우리 산업의 수출시장은 선진국 시장 위주였다. 개도국 시장에 대해서는 따로 뭘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선진국 시장에서 파생된(나쁘게 얘기하면 종속된) 시장으로 보고 수출물량을 ‘배정’하는 정도였던 것이다. 그러니, 마켓센싱 기법을 선진국 시장 위주로만 배운 것이다. 선진국은 빵빵한 통계관리에 기반하여 온갖 데이터를 구비하고 있다. 정부, 협회, 학계 등이 구축한 기본 데이터가 충실하고, 더 세부적인 데이터를 원하면 현지에서 굵직한 마케팅 컨설팅 전문기업까지 고용하여 없는 데이터도 만들어낼 수 있다. 즉, 1차자료 (raw data)에 대한 걱정을 별로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2000년대 접어들어 본격적으로 신흥시장까지 우리 영역이 넓어지자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더구나, 아프리카에서야… 휑한 사무실에 낡은 철제 책상과 캐비닛들이 줄지어 있고, 그 안에는 색바랜 서류들이 철끈으로 대충 묶여져 있다. 뭘 물어봐도 ‘모른다’ 아니면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직원들. 아프리카에서 흔한 통계청 풍경이다. 오죽 답답하면 World Bank나 국가별 원조기관에서 본격적인 사업 지원 이전에 통계청 설립, 통계기술 교육, Data Base 구축 사업 등등을 지원해 줄까. 그 사람들도 멋진 사업을 개발하러 왔다가 너무 답답했던 것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환경 탓이나 하면서 시장조사를 초장부터 포기할 것인지, 그래서 아예 시장진입을 백지화하고 컴백홈 하거나 그런거 없어도 내 제품과 서비스가 최고이니 어떤 시장이라도 자신 있으니까 시장조사도 없이 그냥 밀어붙일 것인지, 아니면 바닥부터 훑는다는 마음으로 1차 데이터를 스스로 만들어 나갈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물론, 필자는 여기서 포기하거나 무대뽀로 밀고 들어가는 방식에 대해서 언급할 생각은 없다. 그럼 위에서 예로 든 자동차 부품시장을 조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가 그 출장자에게 조언해준 내용은 대략 이렇다. (솔직히, 필자는 자동차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바가 없다…) 1) 일차적으로 현지 정비공장이나 카센터에 가서 인터뷰를 한다. 논리적이고 완벽한 답을 듣자고 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은 현지인들만 아는 자동차 시장과 부품시장의 특징을 알려줄 것이다. 예를 들어, 노면 상태가 좋지 않아 차바닥 높이가 낮은 세단형보다는 SUV형이 대세이고, 역시 비포장 도로를 드나드는 일이 많으니 충격을 완화하는 ‘쇼바(Shock Absorber)’가 자주 고장나며, 변속기는 수동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트럭도 아닌 것이 정지선에서 바로 2단을 놓고 출발하는 버릇이 일반적이라든지 하는 중요한 사항들부터 동네 아이들이 사이드미러만 똑 떼어다가 암시장에 파는 일이 잦다든지 하는 자질구레한 사항들까지… 면담자가 자동차에 대해 많이 알면 많이 알수록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 기본적 시장특성을 파악했으면, 이제 거리로 나가야 한다. 일단, 현지 고등학교나 대학교에 가서 아르바이트생을 10명쯤 구한다. 그들에게 시장조사 계획에 대해 대략적으로 알려주고 계수기를 하나씩 손에 쥐어주고 거리로 나간다. 알바생마다 메이커, 브랜드를 알맞게 나눈 다음 도시내 주요 지점들에 알바생을 뿌려놓고 직접 세는 것이다. 이름하여 Random Sampling이다. 시간대별, 지역별로 차이를 둬 가면서, 또 연식별로 파악을 하면서 실체를 파악해야 한다. 물론, 이 방법이 가치가 있으려면 통계학적으로 조사설계를 잘 하여야 한다. 3) 거리에서 구한 자료를 정리한 다음, 다시 정비공장으로 향한다. 그들에게 이만큼 가치있는 정보를 돌려주는 것이다. 왜? 시장조사 결과 그 시장에 진입하기로 결정한다면 그들이 바로 고객이 아닌가? 시장조사 결과를 받아든 정비공장 사장님은 조사자에게 보다 속깊은 얘기를 해줄 수도 있다. 사소한 고장으로 정비공장에 온 차량이 – 서울 같으면 아침 출근길에 맡겼다가 퇴근길에 찾아갈 정도로 별것아닌 고장인데 – 왜 아프리카에서는 한 달씩이나 내장(!)을 드러내 놓고 공장 구석에 서있어야 하는지, 왜 원가가 100불도 안되는 부품을 교체하면서 5백불을 받아야 하는지, 메이커에서 기술지원을 할 때는 어떤 분야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지 등등 더욱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거기서 조사자는 기나 긴 리드타임 때문에 상승하는 재고비용을 줄일 수 있는 물류시스템을 어떻게 디자인 해야 하는지에 대한 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고, 발주물량을 어떻게 조절해야 고객인 정비공장, 카센터들에게 최적인지도 알 수 있으며, 더 나아가 현지 부품시장을 어떻게 재정비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복안을 갖게 된다. 위에서 언급한 시장조사 방법이 어디서 본듯하지 않은가? 그렇다. 마케팅 교과서에 다 나오는 방법이다. 필자가 개발한 것이라고 말한 적 없다. 그런데, 왜 구구절절 다시 말했느냐 하면, 이미 우리 기업들 체질이 선진국 일변도로 굳어서 정말 기본이 되는 시장조사 방법조차 다 잊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내가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그것도 아프리카 거리에서 직접 시장조사를 한단 말인가? 하지만 해야 한다. 좀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이 중요한 것이지, 여기서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할 수 있나 없나’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더 잘할 수 있을까? 1) 우선, 해당 산업을 꿰뚫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산업마다 고유한 특성을 시장에 투사하지 못하면 자칫 과도한 자료를 요구하거나, 엉뚱한 결론을 내리기 십상이다. 어떤 토목사업 개발을 위해 엔지니어들을 대동하고 출장을 갔더니, 수준점(bench mark)이 어디 있냐고 물어본다. 400 km 밖에 있다(!)는 대답에 측량을 할 수 없으니 돌아가자는 엔지니어도 있지만, 어차피 상대적인 고도 차이만 알면 된다고 행정지도를 들고 휴대용 GPS 장비를 이용해서 딱 필요한 만큼만 고도를 재는 엔지니어도 있었다. 데이터가 없을수록 원리를 아는 통찰력 있는 전문가가 절실하다. 2) 또한 지역전문가도 필요하다. 또 다른 어떤 토목사업의 경우, 엔지니어들이 지난 30년치 강물 수위를 측정한 기록을 가져오라고 한다. 그 기간 대부분을 내전으로 고생한 나라에서 누가 매일 강물 깊이를 재고 있었겠는가? (물론, 내전이 끝나도 재는 사람은 여전히 없다…) 그게 없으면 설계를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 도대체 그런 데이터는 어디다 쓰는거냐고 물어보니, 역사적으로 최저수위와 최고수위를 알아야 그 범위 안에서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말을 하지… 강변 마을에 살고 있는 어르신께 담배 한 보루를 선물하고 물어본다. 사람의 기억이란 틀릴 수도 있으니 강 건너편, 상류, 하류… 여러 마을에서 물어본다. 오, 어르신들 기억이 거의 일치한다. 그 기억들을 지도에 표시하고 설계기준으로 삼는다. 지역과 주민들 특성을 고려할 수 있는, 그래서 현실적인 문제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지역전문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3) 기술적으로 완성도 있는 시장조사를 할 수 있는 시장조사 (market research) 전문가 역시 필요하다. 이 세 분야의 전문가가 통찰력을 발휘해 가장 효과적으로 필요한 수준의 1차 데이터를 생산해 내는 것이다. 물론, 산업 전문가가 시장조사에도 능하고 지역 특성도 잘 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이런 경우는 극히 예외적이라고 봐야 한다. 특히, 아프리카에서는 말이다. 요약하자면, 아프리카에서 비즈니스를 한다는 것의 첫걸음은 필요한 데이터를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데이터를 창출하는데 필요한 것은 산업과 지역에 기본지식이 탄탄하고 통찰력이 있는 전문가들이다. 또, 데이터를 만들 때 접하는 사람들이 바로 고객임을 잊지 말고 시장조사 단계부터 철저히 고객지향적이어야 한다. 참, 위에서 예로 든, 자동차 부품 시장을 조사하러 왔던 그 출장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결국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냥 돌아갔다. 아니, 극복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포기한 것이다. 아프리카는 결코 고분고분하지 않다. 기본기로 무장하고 통찰력이라는 탄탄한 장대를 딛고 데이터갭이라는 해자(垓子)를 뛰어 넘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철옹성이다. 그걸 뛰어 넘겠다는 의지와 용기는 더욱 중요하다. ※ 이 원고는 MEKA 전문필진이 작성한 정보로 KOTRA의 공식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