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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만한 가치가 있으므로 나는 파리의 접시닦이 생활에 대해 내 의견을 피력하려고 한다. 현대의 대도시에서 수천 명의 사람이 지하의 더운 굴속에서 온종일 접시나 닦으며 깨어 있는 시간을 소비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기이한 노릇이다. 내가 제기하고자 하는 문제는 왜 이런 생활이 지속되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생활이 어떤 목적에 기여하는 것이며, 누가 그것이 계속되기를 원하는지, 왜 그러는지 하는 문제이다. 나는 단순히 반항적인 게으름뱅이의 태도를 취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접시닦이 생활의 사회적 의의가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275) |
모임 때도 한 번 읽어본 대목인데, 참 흥미롭게 잘 쓴 것 같아요. 요 22장 바로 앞까지 호텔에서 접시닦이 알바를 하면서 개고생한 에피소드를 흥미진진하고도 속도감 있게 & 유쾌하게 풀어놓다가 여기서 문체가 싹 바뀌는 게 참 재밌어요. 신문의 논설 문체로 싹 바뀌는 거죠. “지금까지 내가 개고생한 이야기를 실컷 했는데, 재밌게 잘 읽었니? 그럼 이제 그 개고생에 대한 내 의견을 피력해보겠다”라는 것이죠.
조지 오웰은 자기가 겪은 어떤 일에 대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게 아니라, 거기에 대해 자기 나름의 의견을 피력하는 작가예요. 그런데 그 의견이 감상적이고 개인적인 게 아니라, 사회적이고 현실적인 측면들을 고려하면서 형성된 의견이라는 점이 중요해요. 물론 에피소드 자체는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오웰은 그걸 그냥 개인적인 경험으로 남겨두지 않고 사회적인 것과 결부시키려는 태도를 취해요.
그래서 오웰은 “접시닦이 생활의 사회적 의의를 생각해보겠다"고 말해요. ‘아... 이 알바 너무 힘들었어. 이제 좀 쉬자. 에잇... 일하기 너무 힘든 데 로또나 돼서 일을 아예 안 했으면 좋겠네’가 아니라, 알바가 너무 힘들었다면 ‘왜 이렇게 알바가 힘들지?’ ‘이렇게 힘들게 알바를 하는 게 사회적으로 무슨 이익이 있는 거지?’ ‘사회적으로 이익이 없다면 대체 누구한테 이익이 되는 거지?’ 라는 의문들을 품고 거기에 대답하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생각하는 태도예요. 이게 바로 오웰이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이자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라고 할 수 있겠어요. 그리고 바로 이런 태도에서 우리가 뭔가 배울 점이 있다는 게 선생님의 생각이에요.
좁게는 여러분이 <동물농장>에 대한 글을 한 편씩 써보기로 했는데, 그때 오웰의 이런 글쓰기 방식을 참조하면 도움이 될 수 있겠어요.
오웰이 “접시닦이 일의 사회적 의의”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한 결과 중 일부를 발췌해서 보자면, 다음과 같아요.
접시닦이 일은 정직한 육체노동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유익한 일인가? 아니다. ‘사치 아닌 사치’만을 공급하는 일이다. 호텔, 고급 음식점이 제공하는 서비스, 음식은 사치를 모방한 것에 불과하다. 고급스럽다는 것은 종업원들이 더 많이 일을 하고 손님들이 더 많이 돈을 낸다는 뜻히다. 경영주 외에 이득을 보는 자는 하나도 없다. 근본적으로 ‘고급’ 호텔이란 200명에게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지 않는 것에 터무니 없이 호된 값을 치르게 하기 위해 100명이 죽어라 일하는 곳이다. (278-279)
평생 접시만 닦는다는 사실이 어떤 사람에게 무슨 즐거움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자. 지배 계층의 사람들은 대중에 대한 공포를 갖고 있다. 대중이란 저급한 동물이기 때문에 한가해지면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빠서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 (278-2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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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렇게 해서 만만한 고전 읽기 본모임은 모두 끝났어요.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시간만 남았군요.
마지막 모임은 그 동안 열심히 읽은 것을 자축하는 자리이기도 하고,
책 읽기 모임에 대한 여러분의 의견을 듣는 자리이기도 해요.
이번에 읽은 책들 중 어떤 게 제일 맘에 들었는지, 어떤 게 제일 어려웠는지,
괜찮은 작가는 누구였는지, 별로인 작가는 누구였는지,
제일 기억에 남는 소설 속 캐릭터는 누구였는지 등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볼까 해요.
그리고 모임의 어떤 면이 좋았고 도움이 되었는지,
반대로 개선과 보완이 필요한 부분은 무엇인지에 대한 의견도 서로 나눠볼까 해요.
그럼 다음 시간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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