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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 고현공설운동장-거제고현공고-김현령재 입구-김현령재 -임도삼거리길-삼나무길-계룡산등산로길-숲체험장-열마지기골(골프장)-거제면 방향 임도-우측으로 산길-동림저수지-화원-귀목정-거제면사무소-거제면 유적지(기성관,칠정,향교,이진암,반곡서원)(총6km 1시간30분 소요) ☞골프장에서 화원을 가지 않고 임도를 따라 직진하면 거제면 유적지가 나옴(총8km)
거제도는 지금은 양대조선소가 들어서서 제법 섬 값을 하나 옛날에는 육지와 떨어진 섬으로 학문을 하는 사람도 적었고, 문학을 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임진왜란 전까지는 별다른 인물이 없다가 임진왜란 시 참여한 병사들이 몇 명 있었다.
거제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지는 1만전으로 보이나 기록상으로는 BC94년 변한의 12개의 전제군주가 군림하였는데 거제도는 독로국(瀆盧國)이라 칭하고 사람이 살았다. 서기 42년에는 포상팔국의 독로국이라 기록되고 있다.
그 뒤 상군, 상주군, 기성현, 통영군, 거제군, 거제시로 변천되고 있다. 거제도의 현령(縣令)은 고려시대에는 기록이 거의 없으며 조선시대에 와서 기록이 남아 있다. 오늘은 조선시대 후기 17대(총87대) 거제현령으로 부임한 김대기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김대기는 충남 공주에서 종사관 벼슬을 지낸 김몽여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신라 경순왕의 셋째 아들이자 의성김씨 시조인 의성군 김석의 22세손이다. 그는 1688년 숙종 14년에 거제현령으로 부임하였다. 그 당시 거제는 현아를 고현에서 거제로 옮겼기 때문에 오고가는 길이 매우 불편했다. 거제에서 명진 뒷산을 넘어 용산으로 다녔다. 선자산 골짜기를 넘어 오기 때문에 고개가 높고, 길이 험해 다니기 어려웠다. 특히 가마나 말을 타고 고개를 오르기 힘들었고, 짐을 지고 다니기에도 불편했다. 지금 이 길은 고자산치 길이라 하며 임도가 고현 용산에서 거제여상까지 잘 뚫려있다.
이를 안타갑게 여긴 거제현령 김대기는 서문고개(운동장)에서 계룡산 중허리를 북서쪽으로 가로질러 열 마지기 골짜기를 지나 화원(花垣) 마을로 통하는 길이 8㎞ 폭 2m의 신작로를 개설하였다. 그러나 도로개설 중 과도한 부역과 질병으로 고통스러운 현장을 안렴사(按領使)가 책하여 현령을 파직시켰으니 방언이 김실령재라 한다.
김대기 파직당하여 망치에 살게 되었는데, 마을 이름인 망치는 '언덕을 바라 본다'는 뜻이지만, 본래 김현령제를 만든 의성 김씨 김대기 거제현령의 호다. 경원은 아버지 별세 후, 망치마을로 내려와 경양재의 스승이 되었다. 경원은 아버지 생각이 날 때마다 북병산에 올라 김현령제를 바라보곤 했는데 후에 자신의 호도 망치(望峙)라 하였단다.
< 김실령재 답사기>
오늘은 계룡산 임도달리기 하는 날이다. 공설운동장에 주차를 하고 김실령재를 향한다. 거제공설운동장 보조축구장입구에는 김현령치비(金縣令峙碑)가 있다. 원래는 거제공고 입구에서 계룡산 등상로 입구에 있었는데 몇 년 전 이곳으로 옮겨왔다. 주변 여건이나 여러 가지 상황으로 볼 때 이곳에 있는 것보다 원래 자리에 있는 것이 더 멋스러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잔디 운동장 옆에 있는 것보다 김실령재 입구에 있는 것이 타당하다. 왜 이곳으로 옮겼을 까? 이해가 안 간다.
차를 거제공고 입구에 주차하고 답사에 나선다. 김실령재 입구에 도착하니 주변은 많이 변했다. 내가 이곳을 탐사한지가 15년 전쯤 되니까 세상도 많이 변했겠지~~~. 사실 그 때는 이 길이 거의 없었다. 2/3쯤 길이 있고 그 다음의 거의 없었다. 그 당시 거제시청에 투고를 했으나 별다른 반응이 없다가 근년에 와서 계룡산 산책길로 개설하고 특히 작년 계룡산 우회도로가 개설되면서 임도가 없어지자 이 길을 많이 이용하게 되었다.
길 주변에는 수많은 안내판과 배추밭들이 들어서 있다. 시골 할머니들이 등산객을 겨냥하여 시골에서 재배한 채소들을 팔려고 간이 천막을 치고 상추, 배추, 무, 제비콩 등을 팔고 있다. 나도 한 봉지 샀다. 한푼이라도 벌기 위해서 손발이 부르트도록 고생한 것인데 큰 보탬은 되지 못해도 그냥 사주고 쉽다.
임도달리기에 참여한 건각들은 때로는 걷기도 하고 때로는 달리기도 하고 때로는 쉬기도 하면서 자연에 취해 있다. 어떤 자료에 보면 폭이 2m 정도 된다고 했으나 실재는 1m 정도 밖에 안 되는 좁은 길이다. 간간이 저 멀리 삼성조선소의 위용이 눈앞에 다가 온다. 작은 계곡사이로 시냇물이 졸졸 흐른다. 옛날 종덩굴과 큰꽃으아리가 있었으나 어디로 갔는지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한동안 가노라니 삼나무(수기목)숲길이 나온다. 수기목하면 거제 농업의 아버지 신용우선생님이 생각난다. 거제도에 고구마와 맹종죽 그리고 수기목을 보급한 장본인이다.
한 30분 걸어 올라가니 더디어 임도와 접하는 곳이다. 이곳은 전망대도 있고, 간단한 운동기구도 있다. 임도길을 걷는 사람, 심적사로 가는 사람, 김실령재를 따라 걷는 사람, 사슴농장(열마지기 골)을 가는 사람, 계룡산 정상을 가는 사람들이 만나는 사거리이다. 삼성조선이 한눈에 바라다 보이며 옆으로는 삼나무 군락지가 있다. 겨울 눈 덮인 삼나무숲은 장관이다. 삼나무라고 하면 피톤치드가 생각난다.
피톤치드란 1943년 러시아 태생의 미국 세균학자 왁스먼이 처음으로 발표한 말인데, 식물이 병원균·해충·곰팡이에 저항하려고 내뿜거나 분비하는 물질로, 삼림욕을 통해 피톤치드를 마시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장과 심폐기능이 강화되며 살균작용도 이루어진다. 이에 여러 상품들에 피톤치드의 효능을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피톤치드는 오전 10시 전후가 좋다고 한다. 삼나무와 편백이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방출된다고 한다. 나의 생각으로는 너무 많이 방출되어도 인체에 해로울 것 같다. 예로 들면 삼나무와 편백나무 밑에는 다른 잡목들이 자라지 않는다. 그만큼 독성이 강하다는 것일 게다. 우리의 나무, 소나무가 제일 좋을 것이다. 뭐, 우리 것은 우리 몸에 좋아 신토불이[身土不二]~~~~.
자연휴양림이란 표지판이 붙은 곳으로 행한다. 사실 자연휴양림은 구천동에 있다. 그런데 이곳에도 자연휴양림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니 혼돈이 된다. 다른 이름으로 바꾸었으면---.
울창한 삼나무 숲길아래에는 여러 가지 휴게시설이 있다. 실제 만들어만 놓았지 활용하는 이는 별로 없다. 한동안 가노라니 신설되는 골프장이 나온다. 이곳에서 계룡산 등산로가 있다. 이곳은 옛날 논이 열마지기(한마지기는 200평)정도 있었다고 하여 열마지기골이라 한다. 그 후 새마을운동이 일어나자 이곳에는 사슴을 키우는 농장이 들어서 사슴농장이라 불리워졌다. 근자에는 이곳에 골프장을 건설하느라 한창이다. 나는 거제도에 골프장 3곳 정도는 들어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공사 현장에 와보니 가슴이 아프다. 수백년 아니 수억년이나 숲을 가꾸어 온 자연, 그 자연을 섭리를 거역하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한편 다행한 것은 그 많은 소나무를 모두 버리지 않고 한곳으로 옮겨 심어 조경을 했다는 점이다.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었던 김대기 역사의 길, 이제 골프장 건설로 사라지지 않나하는 의구심에 현장 사무실을 찾았다. 카메라를 메고 찾으니 의아스런 눈초리로 손님을 맞이한다. 저어 역사의 길 때문에 찾아 왔습니다. 현장 소장님을 만나 뵙고 쉽습니다. 마침 소장님이 들어 오 길래 어쩌구 저쩌구 해서 찾아 왔습니다. 옛길은 어떻게 되나요? 예, 그 길은 그대로 보존이 될 것입니다. 거제시와 협약 시 그렇게 계약을 했습니다. 어쩐 일로, 시(市)에서 그런 요구까지~~~.
그러나 출입이 통제되어 사곡삼거리에서 거제면으로 가는 팥골재로 내려왔다. 거제향교 부근에서 임도를 따라 김실령재를 답사하기로 마음먹고 좁은 임도를 행했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보다 도로는 양호하다.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관계로 도로는 양호하다. 가는 사람 오는 사람도 없다. 노인 한분을 만나 지명을 물어보니 이곳은 사슴골이라 한다. 십여년전 이곳에는 염소를 사육하였으나 화재로 인하여 계룡산은 불타고 염소는 일부 산으로 도망가 야생염소가 되어 지금도 가끔 보이기도 한다. 그곳에는 소나무는 별로 없고 참나무류가 많다. 그런 이유는 소나무는 화재에 약하여 죽으나 참나무류는 줄기가 두꺼워 화재에 강하여 일부는 살아있기 때문이다.
임도를 통하여 골프장 현장까지 왔다. 문헌에 의하면 이곳에서 화원으로 가는 간다고 되어 있는데 그 길이 보이질 않는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 흔적을 찾기가 힘들다. 거제 들판을 내려다보니 눈앞에 큰저수지와 작은 저수지가 눈앞에 들어온다. 화원마을로 가보자. 화원(花垣)마을이란 김실영재로 올라가는 낮은 뒷산에 봄철이면 진달래가 만발하여 꽃산으로 불리었으나 뒤에 꽃담장 화원(花垣)이라 하였다. 작은 마을 입구에는 ‘담배없는 마을’ 이라고 현수막이 붙어 있다. 아직 禁煙을 하지 못하고 있는 나에겐 가슴 아픈 일이다. 작은저수지를 지나 큰저수지 부근에 주차를 하고 답사를 나썼다.
임도인지 옛길인지는 몰라도 희미한 길이 보인다. 그런데 한동안 가다보니 이상한 무덤들이 보인다. 얼핏 보아서는 제주도의 묘지같이 둘레에 돌을 쌓아 놓았다. 혹시 제주해녀들이 여기 살다가 돌아가신 후 만들은 것인가? 아니면 고려시대부터 내려온 것인가?
거제의 무덤은 흙무덤이나 옛날에는 풍장(風葬)이나 초분(草墳)도 이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돌무덤은 그리 흔하지 않는 무덤이다. 역사적으로 고증이 없어 정확한 동기는 알 수 없으나 짐승으로부터 보호, 그리고 바람이나 풀로부터의 보호일 것이다. 그런데 왜 이곳에 집단적으로 돌무덤이 형성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시 몇 걸음 옮기니 돼지 발터가 보인다. 계속 직진하니 길이 없다. 조금 전 이곳 할머니의 말이 생각난다. 몇 십 년 전만하여도 길이 있었으나 지금은 사람이 다니지 않아 그 길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 했다. 시간이 허락하면 이곳저것으로 탐사를 하고 싶으나 시간상 이쯤해서 하산했다. 내려오면서 보니 큰 저수지와 작은 저수지가 보인다. 할머니는 큰포강 작은포강이라고 한다. 포강이란 늪 또는 작은 연못으로 저수지보다 작은 소류지를 말함이다.
거제에는 거제도 둘레길을 개발한다고 한창이다. 떡도 한꺼번에 먹으면 언친다. 20여개의 단체가 모여 의견을 모아 개발하니 잘되리라 본다. 그러나 혹시 빠진 곳이 없는지, 지나친 환경훼손은 없는지, 문화와 역사가 어우러진 명품둘레길을 개발하기 바란다.
김현령재를 바라보며 감응하여 시를 짓다. (거제현령 김대기)
春回山舊靑 (춘회산구청): 봄이 돌아오니 산은 옛 같이 푸른데 地得路新名 (지득로신명): 웬 길이 생겨 새 이름을 얻었구나 豈知裳越郡 (기지상월군): 가뿐히 넘어가는 고을이라고 어찌알릴까 不肖復爲萍 (불초복위평): 다시는 부평초되어 떠돌지 않으리
< 보조축구장에 위치한 김현령치비>
김현령재의 시작점인 고현공고 입구
김현령재 입구에 비석이 있던 자리에는 휴게소가 있다.
삼나무욕장 을 지나
손자와 함께 산책나온 할머니
임도달리기에 풀코스에 도전하여 당당 2등을 한 전 직장동료 한 컷!
임도와 마주치는 사거리에 위치한 전망대의 훌라후프 돌리기
가는 길목 곳곳에는 저무는 가을이 아쉬워하며 향기를 품는 산국
새로운 골프장 조성지의 부근인 자연휴양림(구천계곡 휴양림과는 다름)
계룡산 골프장의 본관건물, 내년 5월에 개장한다나???
골프장 내에 있는 김실령재의 모습
김실령재 임도에서 만난 산악인, 요즘에는 혼자 산을 찾는 이도 많다.
화원 뒷산에서 발견된 돌무덤
화원마을에서 바라본 계룡산, 바로 앞이 작은저수지, 저 언덕위가 큰저수지, 그 위 절개지가 골프장 현장
고현공설운동장 비석주변에서 훈련에 열중하는 거제조선소 럭비팀
옥산 뒷산에서 발견된 산돼지 발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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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보았습니다.^^ 수정할 부분이 있네요. [상군, 거제현, 기성현, 거제현 거제부, 거제군, 통영군, 거제군..순서입니다. 김대기는 조선시대만 현령 순, 약 80대가 넘는 현령입니다.포상팔국에 독로국은 없고요, 변진 24개국 중에 독로국입니다. 제일 아랫글 '한시는 작자미상이 아니라 김대기현령이 직접 적은 글입니다.] 답사 갔다 오시느라 힘드셨죠? 건강 단디 챙기시고요~~
김대기 현령은 전기70년를 뺀 후기 17대이고, 거제시 연혁은 책마다 다르는데
거제시 연혁
-BC 94년 변한12개토후국 중 도로국(독로국)
-AD 42년 포상팔국 중의 하나?( 독로국, 고사국)
-AD 677년 상군
-AD 685년 상주군
-AD 757년 거제군
-AD 983년 기성현
-AD 1018년 거제현
-AD 1711년 년 거제부
-AD 1895년 거제군
-AD 1995년 거제시
한번 챙기보이소.
마치 그곳을 갔다온것같이 눈에 선연합니다,
김대기 현령님께서 지으신 시조가 맘에 닺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햐~~~~~~저 위에 할머니의 미소에서 울 엄마를 만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