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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랑하는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겸손
저는 한국교회를 더는 못 믿겠습니다.
불의한 결정에 속지 말고 여러분이 직접 판단하십시오!
어제 통합 총회에 참석하고 있는 총대 목사님 중 한 분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전부들 미친 것 같다! 이것은 인민재판이다!”라고 탄식하시더군요.
예수님과 사도들을 죽인 산헤드린을 닮은 통합 교단에 공의를 기대한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과거 여러 교단들로부터 매도당한 경험이 있어서, 저는 처음부터 통합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만일을 대비하여 모든 것을 자료로 남겼습니다. 이제 통합 사면위에 제출하였고 이대위에서도 검토하여 이단성을 찾지 못했던 3가지 자료를 모두 올려드립니다.
불의하기 짝이 없는 통합과 그 외 교단들의 거짓 결정에 속아서 함께 죄 짓지 마시고 직접 우리 교회가 이단인지 아닌지 읽어보시고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1. 특별사면(해벌) 신청 이유서
2. 답변서(통합의 서면 질의에 대한 답변)
3. 통합 특별사면위 면담 녹취록
특별사면(해벌) 신청 이유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저는 사랑하는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변승우 목사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신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귀 교단 소속 교회(울산노회 전하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였고, 이후 성결대학교 신학과에 진학하여 정상적인 신학수업을 받고 동 교단에서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
이번에 귀 교단이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와 화해를 실현하기 위해 억울하게 이단사이비로 규정된 교회와 단체를 위하여 특별사면위원회를 구성한 것에 대해 깊이 감사드립니다.
우리 교회는 귀 교단의 제94회 총회 때 억울하게 ‘비성경적 기독교 이단’으로 규정되어 오늘까지 많은 고통과 피해를 받아왔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정영환 목사님을 찾아뵙고 말씀드리던 중, 마침 같은 방에 계셨던 이남순 목사님이 저의 억울한 사정을 다 들으신 후 “방법은 하나뿐이다. 내가 추천할 테니 이번에 억울한 사람들을 해벌하고 있으니 특별사면 신청을 하라”고 하셔서 용기를 내어 이렇게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특별사면을 신청하는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1. 귀 교단은 우리 교회의 이단성연구를 진행함에 있어 일절 소명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법정에서도 그리고 가장 흉악한 죄인에게도 소명기회를 줍니다. 그런데 교단이 한 교회를 상대로 일절 소명기회조차 주지 않고, 영적인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이단 정죄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귀 교단은 저에게 소환은 물론 서면이나 유선통화 등 그 어떤 통로로도 일절 소명의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사실조사를 전혀 하지 않은 것입니다.
2. 사랑하는교회 이단 정죄는 거짓과 조작에 근거한 것입니다.
저는 목회를 시작한 후 15년간 20여명 모이는 작은 목회를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서울에 교회를 개척하면서 교회가 단기간에 급성장하였고, 이를 시기하는 질이 나쁜 일부 목사들이 조직적으로 거짓말을 지어내어 퍼트렸습니다. 그런데 귀 교단은 사실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이런 거짓말들에 근거하여 우리 교회를 단죄하였습니다.
우리 교회에 대한 거짓 소문은 주로 구원론과 계시론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1) 구원론에 대한 거짓 소문에 대하여
귀 교단 소속이었던 강순방 박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뇌의약연구단 책임연구원/이학박사(現), 대한화학회(KCS) 종신회원(現), 한국창조과학회(KACR) 정회원(現), 통합교단소속 교회 안수집사(前)는 저에 대해 발표한 「통합이대위 보고서」를 보고, 그것이 사실과 다르고 악의적으로 왜곡된 것임을 발견하고, “읽는 자는 깨달을 찐저!”라는 책을 썼습니다. 다음은 구원론에 관해 그 책에 나오는 내용 중 일부입니다.
통합이대위가 변승우 목사를 행위구원자라고 매도한 자료들을 분석해보자!
“그래서 ‘예수 믿고’ 지옥 가지 말고 ‘제대로 예수 믿고’ 꼭 천국에 가게 되시기를 바랍니다.”(『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p.9.)
이 글이 모순인가? 야고보서는 죽은 믿음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예수 믿고 지옥가지 말고’는 거짓 믿음을 일컫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것은 바른 말이다. 강순방 「읽은 자는 깨달을 찐저!」 서울:큰믿음출판사,2012, pp.68-69.
“구약시대 때는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받았는데, 신약시대는 예수만 믿으면 구원을 받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 이렇게 설교하는 목사님들이 많았습니다. 무지하게 무식한 이야기입니다.”(변승우.설교,“예수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2009.5월14일 설교)
오해하기 좋게 기술적으로 인용했다. 그러나 구약처럼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구약이나 신약이나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설명한 설교다. 증거로 그 전후의 말을 그대로 받아썼다.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되는 게 아니라 믿음으로 되는 것이다. 그 얘기지요. 구약시대에도 마찬가지예요. 어렸을 때 구약시대 때에는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받았는데, 신약시대 때에는 예수만 믿으면 구원을 받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 이렇게 설교하는 목사님들이 많았어요. 그거 무지하게 무식한 얘깁니다… 구약시대 때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받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설교를 기술적으로 편집하여 율법주의 이단처럼 보이게 하다니… 이것이 한 교단의 이대위로서 할 일인가? 강순방 「읽은 자는 깨달을 찐저!」 서울:큰믿음출판사,2012, pp.75-76.
“보통 사람들은 십자가 외에 다른 소리를 하면 모두 잘못된 것인 양 얘기합니다. 구원에 대해서 말할 때 오직 십자가에 대해서만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생각이 얼마나 편협하고 비성경적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변승우,「주 달려 죽은 십자가」,pp.54-55).
역시 기술적으로 야비하게 인용했다. 이것만 읽으면 십자가만으로는 안 되고 선행으로 구원받는다고 가르친다고 오해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악의적으로 생략한 중간부분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보통 사람들은 십자가 외에 다른 소리를 하면 모두 잘못된 것인 양 얘기합니다. 구원에 대해서 말할 때 오직 십자가에 대해서만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에 대해서 말할 때 오직 십자가의 공로만 말해야지 죄를 끊어버리는 회개를 말하거나, 행함이 있는 산 믿음을 말하거나, 자기 부정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을 말하거나 이런 것은 모두 복음진리에서 벗어난 것이며 잘못된 것인양 취급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생각이 얼마나 편협하고 비성경적인 것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제자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눅 14:25-33). 지극히 성경적인 주장이다. 그런데 율법주의 이단으로 매도한 것이다. 강순방 「읽은 자는 깨달을 찐저!」 서울:큰믿음출판사,2012, pp.81-83.
“... 마치 십자가를 신뢰하기만 하면 죄에서 돌아서는 회개나 행함이 따르는 참 믿음이나 예수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새로 지음 받는 거듭남이 없이도 죄 용서 받고 천국에 갈 수 있는 양 가르치고, 자신들만이 정통인양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변승우.『주 달려 죽은 십자가』, p. 59).
이것을 인용한 후 「통합이대위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변 씨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이외에도 회개와 선한 일을 행해야 한다고 하며, 구원받은 사람도 헌신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고 강조함으로 성령의 선물로 인한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반대하고 행위와 공덕에 의한 구원을 강조한다. 이러한 구원관은 성경적 구원관이나 우리 개혁교회의 구원관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으로, 본 교단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위험한 구원론이다.
그러나 변 목사가 말한 선한 행위는 율법의 행위나 선행이 아니라 에베소서 2:10절에 기록된 거듭난 자에게 따르는 선한 일을 가리킨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다. 강순방 「읽은 자는 깨달을 찐저!」 서울:큰믿음출판사,2012, pp.83-85.
저는 저의 처녀작 「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에서 제가 가진 구원론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히 밝혔습니다.
첫째, 구원의 공로적인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보혈은 회개하고 믿는 자에게만 효과가 있습니다…
셋째, 이것이 중요한데 우리의 회개와 믿음이 참된 것이라야 합니다…
저는 일부 사람들이 저의 설교에 대하여 오해하는 것처럼 믿음에 행함을 더해야 구원받는다고 주장하고 있지 않습니다. 믿음만으로 충분하나 그 믿음이 참된 믿음이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을 뿐입니다. 변승우 「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2009.5.9.)」서울:큰믿음출판사 pp.287-289.
한편, 「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이라는 저의 책 제목을 보고, 일부는 ‘어떻게 크리스천이 지옥에 가느냐?’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그런 저의 의도는 「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수정 증보판)」 서문에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습니다.
“『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은 저의 처녀작입니다. 여기서 크리스천들은 진실한 신자가 아니라 명목상의 신자를 가리킵니다. 종교를 구분할 때 교회에 다니는 모든 사람들을 크리스천이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단순히 그런 차원에서 크리스천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이므로 오해가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변승우 「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수정증보판)」서울:큰믿음출판사 p.12.
처음 제목만을 보면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저의 의도와 다르게 오해하는 일이 없으셨으면 합니다.
2) 계시론과 성경론에 대한 거짓 소문에 대하여
귀 교단에서 우리 교회를 조사 연구할 당시 이대위 전문위원이었던 최삼경 목사는 ‘계시’의 의미를 협의적인 의미, 즉 정경기록을 위해 주어지는 것으로만 이해하여 제가 ‘계시’라는 단어를 쓸 때 마치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를 부정하고, 성경에 무엇인가를 가감할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한다고 음해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제가 믿고 있는 것은 정경을 위한 계시는 종결되었지만 사역을 위해 성령의 은사로 주어지는 계시는 종결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국내외의 많은 신학자들도 ‘계시’가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됨을 인정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번 포이트레스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많은 개혁, 보수 신학자들이 ‘계시’라는 말을 전문술어로 지나치게 좁게 정의하여 ‘특별계시는 곧 성경 말씀’이라고 단정 지어 버리기 때문에 개핀과 같은 실수를 저지른다. 성경에는 ‘계시’ 또는 ‘계시하다’라는 말이 꼭 정확 무오한 ‘특별계시 곧 성경말씀’이 아니라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는 것(롬 1:18), 신자들이 하나님을 아는 것(마 11:25), 하나님을 더욱 잘 알아가는 것(엡 1:17)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http://blog.naver.com/cselee59/100190759707
저명한 신학자인 D. A 카슨도 조직신학자가 사용하는 좁은 의미의 ‘계시’와 성경이 말하는 넓은 의미의 계시의 정의를 혼동하는 오류에 빠지지 말 것을 경고했습니다. 그는 『성경해석의 오류』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4:30에서 예언의 은사가 계시에 의존한다고 가정할 때 우리는 정경의 완결성을 위협할 정도로 권위 있는 형태의 계시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개신교의 조직신학 용어를 성경 저자들의 용어와 혼동하는 것이다.” http://blog.naver.com/cselee59/100190759707
뿐만 아니라 미국 트리니티복음주의신학교의 조직신학교수를 거쳐 현재 피닉스신학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세계적인 조직신학자 웨인 그루뎀 박사도 그가 쓴 『조직신학』과 『신약성경이 가르치고 지금도 사용되는 예언의 은사』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에서(고전 14:30) 바울은 ‘계시’라는 단어를 신학자들이 성경과 같은 권위를 가진 말씀에 대해 사용하는 기술적 방식보다는 더 넓은 의미로 사용한다. 웨인 그루뎀『조직신학(하)』노진준 역. 서울: 은성, 1997. p.331.
신약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계시하다’와 ‘계시’라는 용어는 성경으로 기록된 말씀 또는 기록된 성경과 동등한 권위를 가진 말씀(마 11:27, 롬 1:18, 엡 1:17, 빌 3:15를 보라)보다는 더 넓은 의미로, 하나님으로부터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웨인 그루뎀『신약성경이 가르치고 지금도 사용되는 예언의 은사』김동수, 김윤아 역. 서울:솔로몬, 2013. p. 377.
”
국내에서는 세계적 석학인 하워드 마샬 교수의 지도로 신약학박사를 취득한 총신대 이한수 교수도 『교회의 세속화 문제들,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책에서 동일한 주장을 했습니다.
“개핀이 말하는 것과는 달리 계시라고 해서 다 동일한 계시라고 할 수 없다. 어떤 계시는 성경을 기록하는 것과 같은 ‘성경적 계시’도 있지만 어떤 계시는 좀 더 사적이고 신자의 매일의 생활과 관련된 ‘조명적 계시’도 있다.” 이한수『교회의 세속화 문제들,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서울: 솔로몬, 2012. p.305
그러므로 최삼경 목사가 계시에 대한 그릇된 잣대로 우리 교회를 소위 ‘직통계시 이단’으로 매도한 것은 이단을 만들려고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어이가 없는 사실은 최삼경 목사 자신이 이미 계시가 두 가지 즉 ‘정경기록을 위한 계시’와 ‘사적계시’로 구분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최삼경 목사와 진용식 목사가 함께 저술한 『안식일 교회 대논쟁』이라는 책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요엘서나 고린도전서가 말하는 것은 성경 외의 다른 계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성령의 은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안식교에서 선지자로 믿고 있는 화잇의 계시는 보편적인 은사로서의 계시가 아니다. 안식교의 교리들은 성경의 계시처럼 화잇의 계시에 의하여 세워졌고 실질적으로는 성경 위의 계시로 작용하고 있다.”(최삼경 목사) 최삼경, 진용식, 김대성 공저『안식일 교회 대논쟁』서울:교회와 신앙, 1997. p.100.
최삼경 목사는 이처럼 “보편적인 은사로서의 계시” 즉 성령의 은사로 임하는 계시를 인정했습니다. 그는 이처럼 두 가지 종류의 계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 교회를 의도적으로 직통계시 이단으로 매도한 것입니다.
저는 정경기록을 위한 계시는 이미 끝났지만, 성령의 은사로 주어지는 사적인 계시는 오늘날도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목회를 하면서 진짜 믿을 수 있는 것은 성경말씀 밖에 없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입신간증이나 예언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틀리는 것을 보았고, 크게 실망했습니다. 애초에 그런 것들이 성경과 동등하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지만, 지금은 더욱 성경말씀이 유일한 기준이요 성경 밖에 믿을 것이 없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와 달리 영성관련 책보다는 전문적인 신학자들의 책을 주로 읽으며 성경공부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한편, 「통합이대위 보고서」에서 우리 교회가 ‘집회 시간에 방언을 훈련시키고 있다’고 언급했는데 이 역시 거짓 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인 방언이나 예언을 어떻게 훈련이나 가르침을 통해서 할 수 있게 하겠습니까? 우리 교회에서 은사에 대해 가르치는 것은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쉽게 교만해지고, 그로 인해 잘못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런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교육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오해가 없으셨으면 합니다.
3) ‘자신을 우상화 한다’는 거짓 소문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구원론과 계시론에 대한 거짓 소문 이외에도 제가 제 자신을 우상화한다는 거짓 소문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사실과 전혀 무관한 음해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 강순방 박사는 『읽는 자는 깨달을 찐저!』에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통합이대위는 “변승우 목사가 자기 자신은 존 웨슬레, 조나단 에드워드, 찰스 피니 등 부흥을 이끈 교회의 위대한 목회자들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는다(『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pp.103-111)”고 주장했다.
“저는 찰스 피니의 고백을 읽으면서 감동으로 몸을 떨었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이 임할 때의 저의 체험과 너무나도 유사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피니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으로 알고 있었습니다.”(『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p.107 )
하지만 인용한 글 바로 밑에 “그는 한 시대에 대표적으로 하나님께 쓰임을 받은 인물로 나와 비교할 수도 없는 영적 고지에 있는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매도할 수 있는지 황당할 따름이다. 강순방 「읽은 자는 깨달을 찐저!」 서울:큰믿음출판사,2012, pp.47-49.
이상 살펴본 바대로 우리 교회 이단 시비의 쟁점이 되는 것들은 모두 사실이 아니라 거짓된 소문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바로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3. 귀 교단의 결정에는 절차법상 위법이 있었습니다.
귀 교단 제94회 총회에서 우리 교회에 대한 이단결정을 내릴 당시, 총회이대위는 “전체위원 중 과반수이상 출석하고, 출석자 중 과반수이상 찬성으로 결의”하도록 되어 있는 규칙이 엄연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15명의 위원 중 고작 6명만 참석한 상태에서, 악의적으로 조작된 거짓 자료들에 근거해서 우리 교회를 ‘비성경적 기독교 이단’이라고 결정했습니다. 총회이대위가 이런 불법적인 결정을 한 사실은 이미 귀 교단의 특별감사위원회의 감사에 의해 밝혀진 바입니다. 이 내용은 귀 교단 제94회기 총회에서 이단정죄를 받은 다른 분들과 언론들에 의해 이미 공개적으로 알려진 사실입니다. 절차법을 위반하면 결의는 무효라는 것은 상식입니다. 그러나 감사 결과 무효로 밝혀진 결과에 대하여 귀 교단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4. 한기총 조사 때 이미 통합의 이대위원들이 참여하여 "변승우 목사 이단 혐의 없음" 판정을 내린바 있습니다.
우리 교회를 조사하기 위해 한기총 이대위에서는 통합을 비롯한 각 교단에서 파송한 이대위원들로 소위원회를 구성하여, 8개월에 걸쳐 면밀히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이단이라 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대위 전체 모임에서는 16:2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변승우 목사 이단성 없음”으로 통과되었고, 결국 한기총 임원회에서 “변승우 목사 이단 혐의 없음”이라는 보고를 만장일치로 받아들였습니다(한기총 제 2011-203호).
물론 최삼경 목사의 사주를 받은 예장(백석) 측의 김학수 목사(지금은 그의 거짓됨과 악함이 드러나 백석에서 제명되었음)가 자신이 수정하여 보고한 내용을 부정하고, 한기총이대위가 ‘이단을 해지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함으로써 이후 한기총 실행위원회에서 재조사 및 이대위 해체를 결의하는 해프닝이 벌어졌습니다. 이것이 한기총 분열의 시작이었습니다.
이러한 실행위의 결정은 명백한 불법이요 무효입니다. 한기총 정관에 의하면 실행위에서는 이대위 해체를 결의할 권한도, 이대위의 결의를 뒤집을 권한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한기총 회장을 지내신 분에게 제가 직접 확인한 내용입니다. 세상에서도 삼권분립이 지켜집니다. 대법원에서 무죄라고 한 것을 국회나 대통령이 유죄라고 할 수 없듯이 이대위가 정상적으로 조사하고 결정한 것을 정치적으로 뒤집을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당시 한기총 회장이었던 귀 교단 소속 이광선 목사님이 이대위 전체 모임에 참석하셔서 실행위의 결정을 인정하지 않고 한기총 임원회에 보고하여 통과된 것을 그대로 인정하기로 하셨습니다. 이것이 국민일보에 성명서로도 나왔습니다.
무엇보다도, 귀 교단에서 파송한 당시 이대위원들이 직접 참여했기 때문에 위 사실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당시 한기총 이대위에 참여했던 귀 교단 인사로는 김제 노회장이었고, 한기총 이단상담소장이었던 김항안 목사님, 심영식 장로님(이대위원), 이동연 목사님(전문위원), 그리고 현 통합 이단상담소장 이정환 목사님(전문위원)이 계셨습니다.
이뿐 아니라 최근에는 예성 교단(예수교대한성결교회) 이대위에서도 저를 불러 직접 조사한 후에 ‘변승우 목사는 음해를 받은 것이지 이단이 아니다’라는 결과를 임원회에 보고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진실을 외면하지 마시고 이번 기회에 반드시 바로잡아주시기를 바랍니다.
5.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우리의 고통을 헤아려 주십시오.
이렇게 잘못된 소문에 근거한 귀 교단의 결정으로 인해 우리 교회와 성도님들이 겪고 있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교회성장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고 저의 책들을 서점에서 판매할 수 없는 것은 기본이고, 제 경우 마치 덫에 걸린 짐승처럼 어떻게 해도 빠져나갈 수 없는 이단이라는 누명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오래도록 받았습니다. 이로 인해 강대상에 서면 호흡이 불가능해지고, 어지러워서 쓰러지지 않기 위해 강대상을 붙잡고 설교한 것이 수백 번이며, 목회를 더 이상 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심각해졌습니다. 이를 회복하기 위해 2년 이상을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하루에 적게는 5시간 많게는 9시간까지 산을 짐승처럼 돌아다녔습니다. 그로인해 건강이 전보다는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목이 심히 불편하여 설교 중에도 목을 여러 번 뒤로 젖혀야 하는 등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또 성도님들은 이단 교회에 다닌다고 이혼을 당하고, 결혼을 앞둔 청년들이 파혼을 당하고(할 수 없어서 불신 결혼까지 하는 실정이고), 기독교학교에서 퇴학당하고, 직장에서 퇴직을 당하고, 자녀들을 선교원에도 보낼 수 없고, 두들겨 맞는 성도들도 많고, 모든 인간관계들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를 건축하려 해도 비정상적인 극심한 반대에 부딪혀야 했고, 어떤 은행들은 어이없게도 대출도 해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단이라고 교회에 찾아와 휘발유를 뿌리고 실제로 불을 지른 사람도 있었고, 이단이라고 칼로 찔러 죽이겠다는 살해 협박도 받았습니다. 이 모든 고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러므로 결자해지 차원에서,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번에 반드시 이를 바로잡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특별사면 신청사유서를 마감하면서.....
저와 우리 교회는 여러 해 동안 억울하게 음해를 받고, 수많은 고통과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 때문에 때때로 저의 말이 과격하거나 표현이 지나친 부분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용서를 구합니다. 그리고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앞으로 제가 성경적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을 때, 성경에 입각해서 지적해주시면 모든 것을 수용하고 고치겠습니다. 제가 알기에 귀 교단 안에 훌륭한 목회자들이나 신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번에 사실에 근거하여 바로잡아 주시면 그런 분들을 초청해서 계속해서 배울 것은 배우고, 고칠 것은 고쳐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끝으로, 외압에 굴하여 정치적으로 처리하지 말고 모든 것을 사실에 근거하여 공정하게 처리해주시길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교회 변 승 우 목사
첨부자료 1
나의 신앙고백서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로 구원 받은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벧전 1:2, 벧전 1:18-19)으로서 신앙양심을 가지고(행 23:1) 제가 실제로 믿고 있는 바를, 하나님 앞에서 고백합니다.
저는 신자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듯이 사도신경을 100% 믿습니다. 사도신경이 곧 저의 신앙고백입니다.
저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이심을 믿습니다(마 28:19, 고후 13:13).
저는 성부 하나님이 천지를 만드신 유일신이시며 우리의 아버지이심을 믿습니다(창 1:1 히 3:4).
저는 성자 예수님이 하나님의 독생자이며 유일한 그리스도이심을 믿습니다(마 16:16). 예수님의 성육신과 가르침과 대속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과 재림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 날과 그 시는 누구도 알 수 없음을 믿습니다.
저는 성령님은 하나님이시고, 거듭나게 하시고(요 3:5) 거룩하게 하시고(벧전 1:2),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요 16:13), 은사를 주시고(고전 12:7), 열매 맺게 하시는(갈 5:22-23) 우리의 보혜사이심을 믿습니다(참고로, 저는 피터 와그너 박사 주장에는 비성경적인 요소가 많으므로 신사도운동을 반대합니다.).
저는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받음을 믿습니다(엡 2:8, 벧전 1:18-19). 율법의 행위나 선행으로 구원 받는다는 율법주의를 배격합니다(롬 3:20). 동시에 저는 로이드 존즈가 지적한 산데마니안 주의(신앙주의)도 반대합니다. 저는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지만, 존 스토트가 잘 지적한 대로 믿음은 예수님을 임금과 구주로 모셔 들이는 것(행 2:36, 행 5:31, 행 16:31)이므로 믿음에는 행함이 따른다고 믿습니다(롬 1:5, 마 7:21, 약 2:14-26).
마지막으로, 저는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를 믿습니다. 성경은 완전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조금도 가감할 수 없으며, 신앙생활과 사역에 안전하고 유일한 표준이 됨을 믿습니다(딤후 3:15-17). 또한, 성경은 완결되었으며 성경의 저자인 사도들과 같은 권위가 있는 계시를 받는 사람은 존재할 수 없음을 믿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체험하는 영적 체험은 속기 쉽고, 불완전한 것이며, 따라서 성경으로 분별하여 오직 성경적인 것만 받아들여야 함을 믿습니다(고전 14:29, 살전 5:21)
사랑하는교회 변 승 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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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총 공문(2011-2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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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방 박사의 저서 “읽는 자들은 깨달을찐저”와 저의 책 “대질심문”
이 두 책을 읽어보시면 이상 저의 진술이 모두 100% 사실이고 억울하게 음해를 당했음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답 변 서
특별사면위원장님 귀하
저는 변승우 목사입니다. 저에 대한 사면심사를 허락해 주심에 대하여 감사를 드리며 보내주신 질의서에 대한 답변을 드립니다.
1. 신청인에 대하여 “구원을 얻으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이외에도 회개와 선한 일을 행해야 한다”(예장 통합) “구원이 사람의 행위나 선택에 의해서 얻어질 수 있다고 믿는 행위 구원을 강조한다.”(예장 합신)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정통교회의 구원론에 위배된다는 주장에 대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행위를 통해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합니까?
답변 : 부족한 저에게 이렇게 답변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에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기쁜 마음으로 정직하게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기독교의 기본 신앙에 대하여 조금도 의심이 없습니다. 다만 믿는다고 할 때 그 믿음이 어떤 것이야 하는 것이지요. 제가 구원은 믿음 이외에 회개에 대해 말한 것에 대해 지적하셨는데,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실 때 믿으라고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막 1:14-15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복음을 전파하시면서 회개를 요구하셨습니다. 그리고 부자와 나사로 비유에서 부자가 지옥에 간 이유가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임을 지적하셨고(눅 16:30), 회개가 전 세계에 전파되기를 원하셨습니다.
눅 24:47-48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수제자 베드로도 구원의 방법을 묻는 사람들에게 회개를 요구하였습니다.
행 2:37-3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그리고 회개치 않은 자는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멸망할 것이라고 했습니다(벧후 3:8-9).
또한, 이방인의 사도 바울도 단지 “주 예수를 믿으라”(행 16:31)고만 전한 것이 아니라 다 회개해야 할 것을 분명히 했고(행 17:30) 회개가 구원에 이르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고후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그래서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행 20: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그리고 칼빈도 회개와 믿음의 순서를 바꾸어서 말했으나 회개가 하나님께 돌아서는 것이라고 설명하고(기독교 강요 3권, 3장, 6). 그리고 회개를 중생과 연결시킴으로써 회개와 구원이 분리될 수 없음을 강조했습니다(기독교강요 3권, 3장, 9).
더구나, 귀 교단 헌법 안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앙고백서 “제6장 구원 3. 구원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서 믿음에 의한 것이나 믿음에는 회개가 따른다. 회개는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과(롬 5:16-17) 원수의 관계에서(엡 2:14-15, 고후 5:18-19) 화목의 관계로 돌아서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회개를 경험하지 않고는 구원을 체험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회개와 불가분의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믿음을 말할 때 회개를 강조하며 회개가 없는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니며 그런 믿음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또, ‘행위 구원을 강조한다’고 하셨는데, 저는 단 한 번도 행위 구원에 대해 말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주일학교 때부터 교회에 다녔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선행이나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은 기독교의 가장 기본적인 진리임을 믿기 때문입니다(롬 3:20). 따라서 선행이나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을 수 없다고 가르칠 뿐 아니라 믿음에는 반드시 행함이 따른다는 것을 강조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믿음뿐 아니라 행함도 강조했을 뿐입니다. 이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에 따르는 행함을 강조하는 것은 지극히 성경적인 것이고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2. “예수를 믿고 입으로 고백하면 구원 받는다는 것은 본래 이단이다.”라는 주장을 하거나 혹은 타인의 주장이라 할지라도 이 같은 주장에 동의합니까?
답변 : 제가 2006. 5. 26. 이 말을 하기는 했으나 당시의 주제가 무엇이었는지를 알면 전혀 이상한 말이 아님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은 마틴 로이드 존스가 로마서를 강해하면서 3번 이상 지적한 산데만주의라는 이단에 대해 설명하면서 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로이드 존즈는 자신의 로마서 강해에서 적어도 3번 이단인 산데만주의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여러분은 소위 ‘산데마니안주의’라는 이단이 18세기 교회를 괴롭혔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산데마니안주의’는 무엇입니까? ‘예수는 주님이라고 말하고 그것을 믿는다’고 말하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떠들어대는 교훈입니다. 그 교훈은 모든 감정과 확신을 배제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것이고 이단입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로마서 강해 제1권』 서문 강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5. p. 264.
“오늘날에는 그것에 대해서 많이 듣지는 못 합니다… 그들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은 그저 자기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기만 하면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다 끝난다는 것입니다. ‘그가 어느 것을 느끼든지 간에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의 삶이 어떠하든지 그것도 문제가 아니다. 그가 일단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만’ 하면 된다.’ -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그것이 그들이 들고 나오는 성경 본문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거니와 그 이단이 교회를 무섭게 황폐화시켰습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로마서 강해 제7권』 서문 강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2. p. 178.
“구원받을 만한 믿음의 성격에 관한 이 거짓된 개념이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을 자주 괴롭혔습니다. 18세기에 매우 주목할 만한 한 가지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가르침은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된 것인데, 존 그래스(John Gras)라고 불리는 유능한 사람이 먼저 가르쳤습니다. 그 사람의 딸이 로버트 산데만(Robert Sandeman)이라 불리는 남자와 결혼하였습니다. 산데만이라는 사람이 잉글랜드에 와서 이 교훈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교훈이 ‘산데마니아니즘’(Sandemanianism)이라고 일반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그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그 가르침을 제안한 자들은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라는 말씀에 큰 강조점을 둡니다. 아무런 느낌을 갖지 않거나 자신 속에 어떠한 변화도 의식하지 못한다 해도, 그 가르침을 지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렇다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것이 사람을 구원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한 운동이 되어서 무서운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 교훈이 스코틀랜드 교회에 ‘온건주의’(Moderatism)로 알려진 조건을 불러왔습니다. 그들이 모두 다 그래스의 추종자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지는 않으면서도 그의 교훈을 다소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전적으로 생명력을 잃게 되었으며 한동안 그 조건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로마서 강해 제10권』 서문 강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0. p. 240.
제가 주장했다는 말은 제가 한 말이 아니라 존즈의 말을 인용한 것이며, 그러므로 저의 말은 진정으로 예수님을 임금과 구주로 믿고 입으로 신앙고백을 하는데도 구원을 받지 못한다거나 그런 것이 이단이라는 의미가 전혀 아닙니다. 산데만주의가 이단이라는 의미일 뿐입니다.
3. “구원받은 사람도 진짜 구원을 상실할 수 있다” “예수 믿는 사람도 지옥 갈 수 있다”고 주장한 사실이 있습니까? 구원 받은 사람과 예수 믿는 사람과 다른 것입니까. 아니면 같은 의미입니까?
답변 : 이것은 이단사설이 아니라 장로교와 감리교(혹은 성결교) 사이의 교리적인 차이일 뿐입니다. 귀 교단은 에큐메니칼 운동을 하는 대표적인 교단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교리 상의 차이를 충분히 포용하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장로교 출신이지만 성결교에서 신학을 했습니다. 그리고 감리교나 성결교의 교리에 따르면 구원받은 사람도 버림받을 수 있습니다. 더구나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신학자인 김세윤 교수님은 물론이고 장로교 신학자들인 이한수 교수님(합동), 양용의 교수님조차도 그분들의 책에서 구원받은 사람도 버림받을 수 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전에 저의 책의 추천서를 써 주신 적이 있는 귀 교단의 나겸일 목사님과 김동호 목사님을 비롯하여 많은 목사님들이 구원받은 사람도 버림받을 수 있다는 견해를 갖고 있고, 심지어 귀 교단의 김온유 목사는 “진짜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인가?”(쿰란출판사) 라는 제목의 책까지 썼습니다. 그러나 귀 교단에서는 아무런 제동도 걸지 않았고 목회를 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평성에 맞게 처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4. 신청인은 “성령의 직접 계시를 받는다고 주장한다”고 계시론에 이단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문제로 지적하는 성령의 직접계시가 무엇입니까?
답변 : ‘직접계시’니 ‘직통계시’니 하는 말은 직업적인 이단감별사들이 하는 말들이지 저는 그런 용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귀 교단에서 우리 교회를 조사 연구할 때 이대위 전문위원이었던 최삼경 목사님은 ‘계시’의 의미를 협의적인 의미, 즉 정경기록을 위해 주어지는 것으로만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계시’라는 단어를 사용하므로 마치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를 부정하고, 성경에 무엇인가를 가감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몰아갔습니다. 그것은 사실과 전혀 다릅니다. 저 역시 정경계시는 종결되었다고 믿고 있으며, 사역을 위해 성령의 은사로 주어지는 일반적인 의미의 계시(성령의 조명)는 존재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저의 입장은 정통 신학에 반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국내외의 많은 정통 신학자들이 ‘계시’가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됨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번 포이트레스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많은 개혁, 보수 신학자들이 ‘계시’라는 말을 전문술어로 지나치게 좁게 정의하여 ‘특별계시는 곧 성경 말씀’이라고 단정 지어 버리기 때문에 개핀과 같은 실수를 저지른다. 성경에는 ‘계시’ 또는 ‘계시하다’라는 말이 꼭 정확 무오한 ‘특별계시 곧 성경말씀’이 아니라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는 것(롬 1:18), 신자들이 하나님을 아는 것(마 11:25), 하나님을 더욱 잘 알아가는 것(엡 1:17)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또, 저명한 신학자 D. A 카슨도 조직신학자가 사용하는 좁은 의미의 ‘계시’와 성경이 말하는 넓은 의미의 계시의 정의를 혼동하는 오류에 빠지지 말 것을 경고했습니다. 그는 『성경해석의 오류』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4:30에서 예언의 은사가 계시에 의존한다고 가정할 때 우리는 정경의 완결성을 위협할 정도로 권위 있는 형태의 계시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개신교의 조직신학 용어를 성경 저자들의 용어와 혼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 트리니티복음주의신학교의 조직신학교수를 거쳐 현재 피닉스신학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세계적인 조직신학자 웨인 그루뎀 박사도 그가 쓴 『조직신학』과 『신약성경이 가르치고 지금도 사용되는 예언의 은사』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에서(고전 14:30) 바울은 ‘계시’라는 단어를 신학자들이 성경과 같은 권위를 가진 말씀에 대해 사용하는 기술적 방식보다는 더 넓은 의미로 사용한다. 신약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계시하다’와 ‘계시’라는 용어는 성경으로 기록된 말씀 또는 기록된 성경과 동등한 권위를 가진 말씀(마 11:27, 롬 1:18, 엡 1:17, 빌 3:15를 보라)보다는 더 넓은 의미로, 하나님으로부터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세계적 석학인 하워드 마샬 교수의 지도로 신약학박사를 취득한 총신대 이한수 교수님이 『교회의 세속화 문제들,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책에서 동일한 주장을 했습니다.
“개핀이 말하는 것과는 달리 계시라고 해서 다 동일한 계시라고 할 수 없다. 어떤 계시는 성경을 기록하는 것과 같은 ‘성경적 계시’도 있지만 어떤 계시는 좀 더 사적이고 신자의 매일의 생활과 관련된 ‘조명적 계시’도 있다.”
심지어, 개신대 나용화 총장님은 “계시·은사 중지론은 교회 죽이는 신학”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나 총장은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끊임없이 예수님만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계시하고 있으며,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서 예수님 이름의 권세와 성령의 능력적 은사들(신유, 방언, 축사 등)이 나타나게 하신다’며 ‘한국의 보수 정통 신학을 자랑하는 신학대학교와 신학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성경을 가지고 성령으로 지금도 계시하고 계신다(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8장 8항; 대요리 43문답; 소요리 24문답)는 사실을 알지 못하여 계시 종결론 만을 주장한다. 그리고 은사중지론 즉 성령의 계시적 은사(예언)와 방언의 은사 및 신유와 축사의 은사가 사도시대 이후로는 중지되었다고 가르친다. 뿐만 아니라, 이 같은 계시종결론과 은사중지론을 가지고 이단 시비를 하여 이단 아닌 이단을 만들어 정죄한다. (그래서) 한국교회의 비극을 만들어낸다’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계시종결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선지직 뿐 아니라 성령의 계시 행위를 부정함으로써 성령의 역동적인 계시 활동을 제한하기 때문에, 사실상 그리스도의 교회를 죽이는 것’ ‘계시종결론과 은사중지론을 주장하는 자들은 계시의 수단들과 관련하여 꿈과 환상과 음성이 지금도 성도들에게서 체험된다는 사실을 부정할 뿐 아니라 이단으로 정죄한다. 그리고 예언의 은사와 방언의 은사는 물론 치유사역과 축사사역도 부정하고 이단으로 정죄한다. 이 같은 이단 정죄 행위로 말미암아 한국교회를 죽이는 죄와 악을 범하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저를 이단으로 몰아간 장본인인 최삼경 목사님 자신이 이미 계시가 두 가지 즉 ‘정경기록을 위한 계시’와 ‘사적계시’로 구분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최삼경 목사님과 진용식 목사님이 함께 저술한 『안식일 교회 대논쟁』이라는 책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요엘서나 고린도전서가 말하는 것은 성경 외의 다른 계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성령의 은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안식교에서 선지자로 믿고 있는 화잇의 계시는 보편적인 은사로서의 계시가 아니다. 안식교의 교리들은 성경의 계시처럼 화잇의 계시에 의하여 세워졌고 실질적으로는 성경 위의 계시로 작용하고 있다.”(최삼경 목사)
최삼경 목사님은 이처럼 “보편적인 은사로서의 계시” 즉 성령의 은사로 임하는 계시를 인정했습니다. 이처럼 두 가지 종류의 계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 교회를 의도적으로 직통계시 이단으로 몬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실에 근거하여 이번 기회에 바로잡아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5. 신청인의 직접계시 주장은 <신사도 운동>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비판을 받는데 신사도운동은 직접계시를 주장합니까?
답변 : 사실 그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의 계시에 대한 입장은 신사도운동의 영향이 아니라 주일학교 때부터 열심히 읽은 성경의 영향 때문입니다. 즉 앞에서 신학자들이 설명할 때 사용한 그런 성경구절들의 영향들 때문입니다. 물론 계시가 끝났다고 믿고 그렇게 가르치는 신학자와 목회자들도 있습니다. 그분들은 대개 고린도전서 13장 8-10절을 근거로 삼습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하지만 여기서 ‘온전한 것’은 로이드 존스가 잘 지적한 것처럼 정경의 완성이 아니라 예수님의 재림을 의미합니다. 당연히 그때까지 이 모든 은사들은 폐해지지 않고 존재할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존재할 것입니다.
또한, 에베소서 3장 2-5절을 근거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그러나 이 말씀은 성령의 은사들 중 계시의 은사들이 끝났다는 의미가 아니라, 바울이 받은 성경 기록을 위한 계시를 다른 세대에게는 주지 않으신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과 바울을 포함하여 성경저자들만 이런 계시를 받았습니다(롬 16:26, 갈 1:12, 3:23, 벧전 1:12). 이런 계시는 오늘날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계시’에 이런 계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성경기록과 무관한 계시들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고린도후서 12장 1절의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가 그것입니다. 이 구절에 나오는 바울이 셋째 하늘에 올라가서 받은 계시는 성경 기록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셋째 하늘의 경험에 대해 일절 함구했기 때문입니다. 다음 구절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시를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되 유력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갈라디아서 2:2)
이것은 바울이 성경에 기록한 복음과 진리를 계시 받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계시로 인도함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것도 성경기록과 무관한 계시입니다. 그리고 성경기록과 무관한 이런 계시는 바울 같은 사도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일반성도들에게도 주어졌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고린도전서 14장입니다.
고전 14:6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고전 14: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고전 14:30 “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이처럼 바울뿐 아니라(6절)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계시를 받았습니다(26, 30절). 그들은 성령의 은사로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들이 받은 계시는 성경 기록이 아니라 단순히 개인 신앙생활과 은사사역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성령의 은사는 중지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바울과 같은 계시를 받는 사람들은 없지만 그 당시 성도들이 받은 것과 같은 계시를 받는 것은 가능하다고 말해야 성경적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성령시대입니다. 교회는 성경의 완성이 아니라 성령의 강림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행 2:1-4). 그리고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구약시대에는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들에게만 성령이 임했으나 신약시대에는 요엘의 예언대로 믿는 모든 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신다는 것입니다(욜 2:28-29). 그런데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임하시는 성령님을 “지혜와 계시의 영”이라고 불렀습니다.
에베소서 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그래서 존 스토트는 성령님을 계시를 주시는 “계시의 중개자” 존 스토트 『하나님의 새로운 사회』 박상훈 역. 서울: 아가페출판사, 1993. p. 68.
라고 불렀고, 존 웨슬리는 신약성서주해에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 약속의 성령은 믿는 자의 진보에 따라 지혜와 통찰도 주신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구원의 지혜와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깨닫게 해주신다. 바울은 여기에서 모든 진실된 그리스도인들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지혜와 계시를 논하였다.” 존 웨슬리 『존 웨슬리 총서 6권 신약성서주해(하)』 마경일, 송흥국 역. 서울: 웨슬리사업회, 1983. p. 143.
그러므로 성경저자들에게만 주어졌던 특별계시가 아니라 성령의 은사로 모든 신자들에게 주어지는 계시를 성경대로 인정하고 그것을 사용하는 것을 성경적인 것이고 바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6. 신청인은 “자신이 받은 직접 계시를 성경과 동일하거나 혹은 성경의 권위 위에 두며 자신이 사도들과 똑같은 영감을 받았으며 따라서 자신의 성경해석이나 설교는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것과 같다고 주장한다”고 비판을 하는데 귀하의 성경해석이나 설교가 성경과 같은 권위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또 귀하는 사도들과 똑 같은 영감을 받으며 귀하가 해석하는 성경해석이나 설교는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것과 같다는 비판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답변 : 지난 2009년 예장 합신의 박형택 목사님은 저에 대해 이렇게 비판했습니다.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한번 보자. 그는 한 여전도사가 변승우 목사 자신에 대하여 하나님께 받았다는 계시를 기록하였다. 그는 이 말이 자기가 한 말이 아니라고 변명할지 모르지만 이러한 계시 내용을 자신의 책에 기록하고 있는 것은 바로 자신이 계시의 수여자요 사도와 같은 자라는 것을 알리고자 한 내용이 분명하다.
“네 말이 옳다. 나는 이 시대의 많은 나의 종들에게 말씀의 은사를 주었다. 그러나 성경 저자들이 성경을 쓸 때에 임했던 그런 영감을 준 사람은 이 종 하나뿐이다. 나는 그에게 단순히 말씀의 은사가 아니라 성경 저자들이 성경을 쓸 때 가지고 있었던 그런 영감을 주었다. 이 말을 오해하지 말아라. 이것은 그가 다시 성경을 기록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성경은 이미 완성되었다. 그러나 그는 성경을 정확하게 해석할 것이다. 그가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틀린 것이 없을 것이며, 내가 직접 하는 말과 같을 것이다. 그러니 이 은사를 어찌 다른 은사들과 비교할 수 있겠느냐?”
변승우 목사는 1) 사도들과 똑같은 영감을 받았으며 2) 그의 성경해석은 전혀 틀리지 않고 완전하며 3) 그의 말은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위의 내용은 자신을 계시의 수여자로 자신의 성경해석이 전혀 틀리지 않고 정확하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인데 정말 위험한 수준의 사상이 아닐 수 없다.”
그때 저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습니다.
“이 말만 들으면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박형택 목사님이 저의 책에서 인용한 대목의 바로 뒤에 뭐라고 쓰여져 있는지 아십니까?
‘오해하지 마십시오. 나는 이 응답을 문자 그대로 믿지는 않습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나에게 특별한 말씀의 은사를 주셨구나 하는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그의 주장은 사실과 다릅니다. 전에 저는 기독교 고전이나 영성운동 책들을 주로 읽었습니다. 그러나 2년 전부터 저의 무지를 통감하면서 배우기 위해 국내외신학자들의 책을 주로 탐독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학자들도 성경을 해석하면서 단정하지 않고 이럴 수도 있다 또는 이런 뜻이라고 생각한다고 쓰곤 합니다. 그리고 학자들 간의 해석상의 차이가 매우 다양합니다. 전문적인 최고의 학자들도 해석이 서로 일치하지 않고 자신의 해석이 완전하다고 생각지 않는데 저 같은 일개 목회자가 어찌 그렇게 생각하겠습니까? 오히려 저는 평생 아무리 노력해도 어느 한 사람이 성경을 완벽하게 옳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잘못 알았던 것을 성도들 앞에서 인정하고 바로잡는 것을 전혀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있습니다. 실제로 저는 여러 학자들의 책을 읽으면서 수시로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패러다임의 전환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평생 제자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저는 위와 같이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7. 신청인은 은사목회자인 “케네스 해긴이 받았다는 계시를 성경과 동일한 계시로 수용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하여 해긴이 받았다는 계시가 성경과 동일한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인정합니까?
답변 : 저는 케네스 해긴 목사님을 존경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체험이 성경적인 진리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예화로 인용했을 뿐 해긴 목사님이 받은 계시를 성경과 동일한 계시로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순복음교단에서 굉장히 존경받는 목사님입니다. 그분의 책에 보면 예수님이 “사도들에게는 네 가지의 등급 또는 서열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다른 서열이나 등급 안에서, 사도들은 서로 다른 분량의 기름 부으심을 가지게 된다.” 케네스 해긴 ‘그리스도의 선물’ 김진호 역. 경기도 용인시: 믿음의 말씀사, 2008. p. 18.
고 말씀하셨다는 간증이 나옵니다. 그 분의 간증에 의하면 사도의 첫 번째 서열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한량없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유일한 분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요 3:34). 두 번째 서열의 사도들은 어린양의 사도들입니다. 즉 맛디아를 포함한 예수님의 열두 제자입니다. 세 번째 서열의 사도들은 다른 토대적인 사도들인데 사도 바울도 여기에 속합니다. 그리고 네 번째 서열의 사도들은 비토대적인 사도들입니다. 오늘날도 사도들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학자나 목사들이 생각하는 사도는 바로 이런 사도들입니다. 그런데 이중 세 번째 서열의 사도들에 대해 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세 번째 서열의 사도들: 다른 토대적인 사도들
세 번째 서열의 사도는 바로 바울이 속해 있는 사도의 등급입니다. 이 서열에 들어 있는 사도들의 특징은 그들도 역시 신약성경의 교리적인 토대가 형성되는 것을 도왔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서열의 사도와 선지자들은 토대적인 사도들과 선지자들로 간주되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약성경의 복음이 그들에게 계시되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것에 뭔가를 더할 수도 뭔가를 제거할 수도 없습니다.
그때 방문에서 예수님은 저에게 매우 재미있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시기를 ‘오늘날에는 기초를 놓는 사도들도 없고, 기초를 놓는 선지자들도 없단다. 오늘날에는 초대 교회의 사도들과 선지자들과 동일한 수준 또는 권위와 같은 서열, 또는 같은 정도의 기름부음을 받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없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아무도 두 번째나 세 번째 서열에 속해 있지 않다.’” 케네스 해긴 ‘그리스도의 선물’ 김진호 역. 용인 : 믿음의 말씀사. 2008. pp. 26-28.
제가 이 간증을 소개한 이유는, 이처럼 케네스 해긴 목사님 자신이 그가 받은 계시들이 성경의 사도들이 받은 것과 같은 권위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는데 제가 그렇게 믿을 리가 있겠느냐는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당연히 저는 그렇게 믿고 있지 않습니다. 참고로, 해긴 목사님은 그의 책에 여러 번 나타나 있듯이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말씀을 하셔도 “성경말씀으로 증명해 주시지 않으면 저는 믿을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하는 분입니다. 그래서 여러 차례 예수님이 성경으로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분은 자기가 받는 계시가 아니라 철저히 성경을 믿고 성경을 기준으로 분별하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이 질문은 그분이나 그분의 책을 잘 모르고 한 질문 같습니다.
8. 신청인은 “지금도 계시가 계속 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성경계시의 완전성을 부정하고 지금도 성경계시와 동일한 계시가 주어진다고 주장한다”는 비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변 : 이것은 4번 질문에 대한 답으로 충분히 답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성경 계시의 완전성을 온전히 믿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성경계시와 동일한 계시가 존재한다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9. “집회 시간에 방언을 훈련시키고 있으며, <큰믿음교회> 내에는 예언 사역 팀, 방언 통변 팀, 신유 축사 팀 등 신비주의를 조장하는 목회 신비주의 행태의 사역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 사실입니까?
답변 : 과거 한얼산기도원 이천석 목사님이 할렐루야를 빨리 하게 해서 방언을 받게 하였습니다. 그것은 알고 있지만 우리 교회가 집회시간에 방언을 훈련시키고 있다는 것은 금시초문입니다. 아마 잘못된 소문을 들으신 것 같습니다.
그 대신 저는 우리 교회가 예언을 가르쳐서 하게 한다는 말들을 자주 들었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은사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인데 어떻게 가르쳐서 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저는 아직 환상을 본 적도 없고 예언도 하지 못합니다. 그런 은사를 하나님이 제게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배워서 예언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제가 아직도 예언을 하지 못할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그것은 거짓 소문입니다.
지금은 없어졌으나 과거에 예언전도학교라는 것을 했는데, 그때 가르친 내용은 예언을 가르쳐서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성령의 은사에 대한 말씀들을 가르치고, 교만, 무례함, 탐심, 자기가 받은 것에 대한 맹신 등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조심해야 할 것들을 교육하여 문제가 발생하는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결코 예언을 가르쳐서 하게 한 것이 아닙니다.
한편, 예언, 방언통변, 신유, 축사 다 성경에 나오는 것입니다(롬 12장, 고전 12-14장, 엡4장). 그러므로 그것은 ‘신비주의를 조장하는 목회, 신비주의 사역’이 아닙니다. 비중의 차이는 있으나 성경을 가르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경적인 사역입니다.
흔히들 지적하는 것처럼 은사가 많았던 고린도 교회가 문제가 많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은사를 버리라거나 은사사역을 그만 두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방언이나 예언을 무질서하게 잘못 사용하는 것을 바로 잡기는 했으나 동시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전 12: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은사는 유익한 것이다.)
고전 12: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고전 14:1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고전 14:5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고전 14:12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고전 14:13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고전 14:18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전 14: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고전 14:39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이처럼 바울은 은사사역을 터부시하거나 금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들은 문맥에 의하여 절대로 뒤집히거나 무효화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귀 교단에서도 성령의 은사에 대해 인정하고 있습니다.
귀 교단 ‘헌법’ 안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앙고백서”에 보면 분명히 이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제4장 성령
3. 성령의 사역은 일반적인 은혜와 특수한 은사로 나타난다.....
4. 성령의 특수 은사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고전 12:4-11). 이는 믿고 구원 받은 자들의 봉사를 위해 주신 선물로 신자들에게 다양하게 주어진다. 그러므로 어떤 한 가지를 가지고 성령의 은사를 전체적으로 규정해서는 안 되며, 각자는 자신의 받은 은사를 지키고, 남이 받은 은사를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며, 모든 은사는 오직 복음을 증거하는 데에만 쓰여 져야 한다.
5. 성령께서 오순절에 강림하셔서 교회에 권능을 주시고(행 1:8)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만민에게 전파하게 하셨다(막 16:15). 따라서 교회 안에는 성령이 언제든지 임재하시면서 그리스도인을 믿음 안에서 성장케 하신다. 성령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사람에게 여러 가지 은사를 주시고, 정성을 다하여 예배하게 하시고 성도의 교제를 갖게 하시며(행 2:42-47), 목사들로 하여금 말씀을 선포케 하며, 교인들이 말씀을 듣고 깨닫게 하며, 세상에 나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 될 지혜와 의욕과 용기를 갖게 하신다(요 14:26, 15:26-27, 행 1:8, 16:7).” 채형욱 ‘헌법’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12. pp. 148-149.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를 사용하여 봉사하고 전도하는 것은 귀 교단의 교리와도 일치하는 것입니다.
10. 개혁교회는 사도적 교회임을 믿고 고백합니다. 귀하는 한국 기독교가 사도적 교회임을 인정하십니까? 혹자는 신청인이 “오늘 날에도 주님이 사도를 세우시며 자신도 사도와 같은 사람이라고 주장 한다”는 비판에 대하여 동의합니까?
답변 : 예. 저는 한국 교회가 사도적 교회임을 인정합니다. 동시에 저는 오늘날에도 주님이 사도를 세우신다고 믿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사도’의 용례를 조사해보면, ‘제자’라는 용어가 12제자에 국한되어 사용되지 않은 것처럼 ‘사도’라는 용어 또한 12사도에 국한되어 사용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16:7, 사도행전 14: 4, 14, 빌립보서 2:25, 갈라디아서 1:19 등이 그 증거입니다. 그 중 로마서 16장 7절에 대해서 간략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이 구절에 대해 존 칼빈은 이렇게 썼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사도들이라 부른다. 초대 교회에서는 한 교회에서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힘쓰는 자들은 원래의 일반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좀 더 넓은 의미에서 ‘사도들’이라 불렸다.” 요한 칼빈 『칼빈주석: 사도행전』 고양: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14. p. 458.
또, 귀 교단에서 출판한 『로마서주석』에서 페터 슈툴마허는 이렇게 썼습니다.
“바울 이전에 선교의 직무로 부름 받았던 사도들의 무리들 가운데서(갈 1:17; 고전 15:7 참조) 그들은 높이 존경을 받고 있었다. 그들은 아마도 이 무리에 속해 있었을 것이다.” 페터 슈툴마허 『로마서주석』 장흥길 옮김.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 출판부, 2005. p. 412.
또, 권위 있는 신학자 더글라스 무도 이 구절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첫 번째 기술은 안드로니고와 유니아가 ‘사도들에 의해 존중받았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도들 사이에서 존중받았다’로 번역하는 것이 보다 자연스럽다. 그리고 바울이 그렇게 유니아(스)를 ‘사도’의 한 사람으로 부르기 때문에 앞 시대의 해석자들이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사람이 남자임에 틀림없다고 논하는 경향을 보였던 것이다. 초대 교회에서 여자가 그런 권위를 지닌다고는 상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바로 이런 이유에서 현대의 많은 학자들이 유니아(스)를 여자로 감정하는 데 열을 올리는 것이다. 바울이 여자 사도를 인정한다는 것은 신약이 여자들의 사역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사상에 뒷받침이 되기 때문이다.” 더글라스 J. 무 『NICNT 로마서』 손주철 옮김. 서울: 솔로몬, 2015. p. 1232.
또, WBC주석에서 제임스 던(James D. G. Dunn)도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사도들 보기에 뛰어나다’라기 보다는 ‘사도들 중에 두드러진’을 확실히 의미한다. “사도들”이라는 직접적인 묘사(고후 8:23과 빌 2:25과 대조하라)와 이어지는 구절은 협력하여 안드로니고와 유니아가 고전 15:7에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의해 지명된 사도들의 대그룹(12사도보다 더 큰)에 속했다는 것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우리는 기독교회의 기초를 놓은 사도들 중의 한 사람이 여성 그리고 아내였다는 것을 확실히 결론 내릴 수 있다.” 제임스 던 『WBC 성경주석 로마서(하)』 김철·채천석 옮김. 서울: 솔로몬, 2013. pp. 616-617.
또, 박윤선 박사님도 이 구절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저희는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고. 이 문구는, “그들이 사도들 중에 유명한 자들이라”고도 번역될 수 있다. 이 번역에 의하면, 그들도 사도들이라는 뜻이 성립된다. 그들은 12사도 반열에 속한 자들이 아니고, 넓은 의미에서 사도급 인물들이겠다. 그들은 본래의 사도들처럼 많은 교회에 순회하며 복음을 전하여 널리 알려졌을 것이다. 여러 권위 있는 학자들이 이 둘째 해석을 지지한다(Sanday, Ridderbos).” 박윤선 『성경주석 로마서』 서울: 영음사, 1969. p. 405.
그리고 귀 교단의 고 이상근 박사님 역시 이 구절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고(…………………εν τοις αποστολοις) ‘사도들 중에서 유명히 여김을 받고’로서, 그 뜻이 ① 우리 성경처럼 사도들에게 유명해진 것인지(De Wette, Meyer, Gifford). ② (그 자신 사도로서) 사도들 중에서 탁월한 자인지(Chrysostom, Alford, Bengel, Godet, S & H) 이론이 있으나, 후설이 압도적이다. 사도란 좁은 의미에서는 12제자를 가리키나, 넓은 의미에서 그 범위는 더욱 넓었다.” 이상근 『로마서』 서울 : 기독교문사, 2003. p. 348.
이처럼 12사도나 바울과는 격이 다른 더 폭넓은 사도 그룹이 있었습니다. 저는 12사도나 바울 같은 사도는 오늘날 존재하지 않지만 이런 사도들은 오늘날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렇게 믿는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사도행전 1장 21-22절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많은 분들이 이 구절을 근거로 오늘날은 사도가 없다고 단언합니다. 우리 중에 세례요한 때부터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까지 예수님을 따라다닌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도의 자격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정말로 지금은 사도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모든 사도의 자격이 아니라 어린양 12사도의 자격입니다. 이스라엘이 12지파였던 것처럼 어린양의 사도도 12명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친히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마 19: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눅 22:28-30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그래서 가룟 유다가 배신한 후 그를 대신할 12번째 사도를 뽑은 것입니다. 사명을 잘 감당하고 순교한 야고보의 사후에는 그를 대신할 사람을 뽑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주를 배신하고 죽었기 때문에 즉 그의 자리가 궐석이 되었기 때문에 대신할 사람을 뽑아야만 했습니다.
어린양 12사도의 사명은 베드로가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라고 명시한 대로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사도들의 메시지의 핵심이었고 사도행전의 핵심주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을 잘 증언하기 위해서는 십자가 이전부터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잘 알아야 합니다. 더구나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한 자들인즉” 이것이 12보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다스릴 자들의 자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세례요한 때부터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까지 함께 한 것을 어린양 12사도의 필수적인 자격으로 제시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가 어린양의 12사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과 바나바 같은 사도도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세례요한 때부터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뒤에도 그는 여전히 박해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모든 사도의 자격이라면 바울도 사도가 아니라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분명히 사도입니다. 그러므로 어린양 12사도에게만 요구되는 자격요건을 갖춘 사도들은 없지만 그러나 사도의 직무는 계속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2) 에베소서 4장 11-12절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많은 사람들이 사도의 사명이 성경을 기록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세기의 사도들이 교회의 토대를 놓은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 정경의 완성을 위해 부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사도 중에도 성경을 한 권도 기록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가처럼 사도가 아닌데도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이 있음을 볼 때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성경에서 바울은 모든 사도들의 공통적인 사명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습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포괄적이긴 하지만, 이것이 사도를 포함한 모든 목회자들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이 일들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1세기뿐 아니라 지금도 성도는 온전케 되어야 합니다. 1세기뿐 아니라 지금도 성도는 봉사를 위해 준비되어야 합니다. 1세기뿐 아니라 지금도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야 합니다. 이 세 가지는 현재는 물론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지속될 것이며 이 일을 사도들(목사나 교사나 영적 지도자들)은 오늘날도 여전히 필요하다는 것이 저의 일관된 생각입니다.
(3) 데살로니가전서 2장 7절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여기서 바울은 자신뿐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말했습니다. 당연히 여기서 ‘우리’는 바울과 함께 편지를 보낸 발신자들입니다. 그들은 1장 1절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 사람을 뜻하는데, 여기서 ‘실루아노’는 실라입니다. 따라서 실라와 디모데도 사도입니다. 그래서 테이어(Thayer)의 신약성경 헬라어 원어사전(Greek-English Lexicon of the NT)에 보면 사도의 용례를 아래와 같이 설명했습니다.
“바울에 따르면, 사도들은 그리스도인 교사들의 다른 다양한 지위들(교사, 복음전도자, 선지자)과 같이 탁월하며, 또한 성령의 보다 풍성하게 수여받음으로써 성령의 특별한 은사들을 받은 자들(고전 12:28; 엡 4:11). 더 넓은 의미에서 그 이름(사도)은 그밖에 다른 그리스도인 교사들에 양도된다. 바나바(행 14:14), 그리고 아마도 디모데와 실루아노(살전 2:7).”
이처럼 디모데와 실루아노도 사도였는데 이것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왜냐하면 어린양의 12사도 혹은 바울과 바나바에서 사도의 계보가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져 내려왔음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실루아노”는 실라를 가리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참 아들”(딤전 1:2)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실라와 디모데는 바울과 바나바 다음 세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당시 그들도 사도였습니다.
그렇다면 실라와 디모데를 끝으로 사도가 끝났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불합리하며 증거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반대의 증거는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문서들이 그것입니다. 두 가지 예를 들 수 있는데 하나는 AD, 1세기 말-2세기 초의 작품인 헤르마스 목자입니다. 이 책은 초대교회가 당면했던 문제들, 특히 도덕적 타락과 회개의 문제를 취급합니다. 작품성에 대해서는 일단락하고 그 당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참고 가치가 있습니다. 이 책에는 당시 교회의 직분들이 네 가지로 언급되는데 사도들, 주교들, 교사들, 집사들(이 당시 집사 직분은 오늘날 일반적인 집사직분과 다릅니다)입니다(Hermas Vision 3 5:1 Those square white stones which fitted exactly into each other, are apostles, bishops, teachers, and deacons, who have lived in godly purity, and have acted as bishops and teachers and deacons chastely and reverently to the elect of God.).
다른 하나는 디다케 문서입니다. 디다케라는 이 작품은 ‘12사도의 교훈’이라고도 합니다. 이 작품은 AD. 1세기 말에서 2세기 중엽 시리아 지방의 작자미상의 편집자에 의해 당시 교회들이 사용하던 교리문답과 규범을 묶어놓은 문서로 당시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귀중하고 가치 있는 자료입니다. 그런데 이 책 역시 당시 교회들 가운데 교사들, 사도들, 선지자들의 그룹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Didache 11:1 Whosoever, therefore, cometh and teacheth you all these things that have been said before, receive him. 11:2 But if the teacher himself turn and teach another doctrine to the destruction of this, hear him not; but if he teach so as to increase righteousness and the knowledge of the Lord, receive him as the Lord. 11:3 But concerning the apostles and prophets, according to the decree of the Gospel, thus do. 11:4 Let every apostle that cometh to you be received as the Lord. 11:5 But he shall not remain except one day; but if there be need, also the next; but if he remain three days, he is a false prophet. 11:6 And when the apostle goeth away, let him take nothing but bread until he lodgeth; but if he ask money, he is a false prophet.).
그러므로 사도직이 계속 내려왔으며 오늘날도 그와 같은 사도들이 존재한다고 믿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편, 교계에서 이 문제에 대해 민감한 것은 ‘계시’와 마찬가지로 ‘사도’를 성경기록과 연관시키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점은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저는 성경저자들과 같은 사도들이 오늘날 존재한다고 믿지 않습니다. 해긴 목사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금 존재하는 사도들은 모두 성경 기록과 무관한 비토대적인 사도들뿐입니다.
만약 성경저자로서의 사도들과 동일한 종류의 사도들이 오늘날도 존재한다고 하면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가 위협받을 수 있고 이단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사도가 존재한다고 믿지 않습니다. 성경기록이 아닌 다른 면에서 사도적인 기능을 하는 사도들이 존재한다고 믿을 뿐입니다.
그리고 저만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유명한 전도자 빌리 그래함, 예수전도단의 로렌 커닝햄, 유명한 성경교사 후안 까를로스 오르띠즈도 저와 같이 믿고 있고 귀 교단의 예영수 박사님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영수 박사님이 여러 번 회장을 지낸 한국영성총연합회에 모이는 초교파적인 수백 수천 명의 목사님들이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것을 문제 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단성이 아니라 단지 견해차이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자신을 사도라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하셨는데, 저는 자신이 사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수년 전부터 설교 중 이 말을 공공연하게 자주 해왔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제 책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많은 세계적으로 이름난 목사님들이 저에게 사도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자신을 사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교회를 잘 섬기는 직분과 사역 은사』라는 책에 사도의 자격에 대해 이렇게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사도에게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특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1)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이들은 말씀의 선포자이거나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일 것입니다.
2) 뚜렷이 드러나는 영적인 은사들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3) 깊은 영적 체험이 있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4) 교회를 세우는 권위와 능력이 있을 것입니다.
5) 영적 리더십을 적절하게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것입니다.’ 케네스 E. 해긴 『교회를 잘 섬기는 직분과 사역 은사』 정승혜 옮김. 서울: 베다니, 2012. p. 83.
그런데 저는 이 중 첫째와 넷째와 다섯째 조건만 갖추었습니다(그것도 주의 은혜로). 둘째와 셋째 조건은 갖추지 못했습니다.” 변승우 ‘하나님의 선물’ 서울: 거룩한 진주, 2015. pp. 83-84.
성경에서 바울은 사도의 자격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전 9:1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고후 12:12 “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그런데 저는 예수님을 직접 본 일이 없고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하는 그런 능력 있는 목사도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자신이 사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실 저는 제가 사도든 아니든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너무 작고 초라하고 부족한 자이기에 그저 참 신자와 참된 목사가 되길 원할 뿐입니다.
11. 신청인은 “인간은 영 혼 육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영의 구원과 혼의 구원과 몸의 구원을 (각각)받아야 한다고 주장함으로 전인구원을 부정하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귀하는 전인구원을 부정합니까?
답변 : 제 말은 영혼육의 구원을 각각 따로 받아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처음 믿을 때 전체가 구원 받지 못하고 부분적인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서정’(the order of salvation) 즉 구원의 순서에 대해 설명한 것뿐입니다. '구원의 서정'이란 단번에 모두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회개로 즉각 결정되기는 하나 그 궁극적 실현에는 긴 과정을 요하는 구원 과정의 순서를 뜻한다는 것을 여러분 모두 아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는 구원을 받습니다.
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과거)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때부터 우리는 구원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성화라고 하지요.
빌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현재)”
그리고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우리의 구원은 완성됩니다.
딤후 4: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미래)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이것은 성경 그대로의 진리입니다. 그래서 조직신학 책들은 구원론을 다룰 때 칭의나 중생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성화와 영화까지 다룹니다.
우리나라가 낳은 세계적인 신학자 김세윤 교수님은 “전통적인 신학은 이 문제를 칭의론의 구조 속에서 이해하려 하지 않고, '구원의 서정'의 틀 속에서 칭의(justification)뒤에 '성화 (sanctification)의 과정을 설정하여 해결하려 했습니다. '칭의' 된 자는 '성화'의 과정을 거쳐서 ‘영화’(glorification;구원의 완성)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최후의 심판 때 결국 우리의 행위대로 심판받게 된다는 바울의 가르침(참조. 롬 14:10; 고후 5:10)과 연계하여 '성화'의 과정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한 번 칭의 된 것에 자만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른 의로운 생활을 하려 노력할 것입니다.” 김세윤 ‘칭의와 성화’ 서울: 두란노, 2014. pp. 80-81.
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김세윤 교수님은 ‘구원의 서정’을 “전통적인 신학”이라고 했습니다. 김세윤 ‘칭의와 성화’ 서울: 두란노, 2014. p. 81.
실제로 구원의 서정은 전통적인 신학입니다. 그리고 저는 단지 이것을 설명한 것일 뿐 특이하거나 다른 새로운 주장을 한 것이 아닙니다.
12. 신청인의 설교나 책에는 기성교회를 과도하게 비판하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혹시 기성교회를 공격하므로 귀하나 귀하의 교회만이 참된 주의 종이요 참된 교회라는 반사이익을 얻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답변 : 김동수 교수님의 책에서 ‘교회를 부정하는 것은 이단이다’라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저는 이 말에 100% 동의합니다. 저는 교회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 증거로 우리는 이단이라는 오해를 받은 후에도 계속 초교파적으로 많은 교회와 목사와 선교사들을 도와왔습니다. 지금도 교파를 초월하여 어려운 많은 교회들을 매월 정기적으로 후원하고 있으며 특별히 5,000만원이나 1억 이상 도와드린 타 교단 교회만도 수 십 여개가 됩니다. 그런데 만약 제가 우리 교회만 참된 교회라고 생각했다면 이렇게 하겠습니까?
한편, 신천지나 다른 이단들처럼 교회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면 단지 비판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단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이단성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구약의 선지자들도 많은 비판을 했습니다. 예수님도 그러하셨고(마 23장), 존 후스와 같은 종교개혁자 역시 저보다 훨씬 거친 말로 교계와 타락한 목회자들을 비난했습니다.
그리고 널리 양해하고 들어주십시오. 단지 비판적이라고 말하기 전에 오늘날 교계의 상태도 고려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뜻있는 교계의 지도자들은 오늘 우리 한국교회를 진단하기를 ‘제2의 종교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 이유는 사면위원장께서도 잘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목회를 하면서 교계의 타락한 면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영성운동의 경우 예수님이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 10:8)고 하셨는데 참가비를 받고, 지나치게 헌금을 강조하고, 강사 장사 자리 장사를 하고, 예언이나 안수기도를 빌미로 헌금을 뽑아내고 돈 벌이에 혈안이 되어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단 시비를 겪으면서 만난 교계의 목사님들 중 거의 80% 이상이 저를 도와주겠다는 영목으로 돈을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놀랍게도 성도들이 드린 헌금을 아무나 빼서 쓰면 되는 공돈처럼 생각했습니다.
또한, 직업적인 이단감별사들과 그들의 하수인들을 끊임없이 사실과 무관한 새빨간 거짓말을 지어내어 퍼트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문선명처럼 대관식을 했다”, “자기 교회에만 구원이 있다고 했다”, “예언을 못하면 천국에 못 간다고 했다”, “불신자도 구원받는다고 했다.....” 등 말도 안 되는 거짓말들이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너무나 많은 교단과 기독교 언론이 거짓말에 속아 불의한 결정을 내리거나 보도하고, 심지어 진실을 알면서도 공의를 저버리고 외부의 압력에 굴복하여 불의한 결정을 내리고 거짓 보도를 하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제가 비판한 것은 주로 이런 목사들입니다.
그러나 제가 비판하는 것이 잘한 일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많은 음해를 당하고 많은 피해를 입고 고통을 당하다 보니, 특히 사랑하는 성도님들이 이혼당하고 파혼당하고 퇴학당하고 직장을 잃는 것을 끊임없이 보면서 너무 마음이 상하고 화가 나서 지나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 대해서는 용서를 구합니다. 그리고 요즘은 전처럼 그렇게 비판적이지 않습니다. 부끄럽지만 비판하는 말이 듣기 싫다고 교회를 떠난 성도님들도 있어 웬만하면 일체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설교만 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더욱 자제하고 조심하겠습니다.
13. 공 교단에서 귀하의 주장에 대하여 지적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귀하의 신앙과 큰믿음교회에 대한 오해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공교회의 지적에 대하여 겸허하게 수용하여 바른 가르침을 받고 잘못된 것은 고치는 한편, 문제된 부분에 대하여는 한국교회 앞에 진실한 마음으로 공개적으로 사과할 수 있습니까?
답변 : 물론입니다. 성경에 입각해서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주시면 언제든 고치겠습니다. 그것은 제 자신이 더욱 원하는 일입니다. 나이도 자꾸 들어가고 있고 언젠가는 주님 앞에 서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해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 실제로 문제된 부분이 있다면 요구하시는 대로 공개적으로 사과드리고 용서를 구하겠습니다.
14. 신청인과 신청인의 견해를 따르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지금까지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본 교단의 신학자들과 지도자들의 신학적 지도를 수용하고 일정한 교육을 시행할 경우 참여할 의사가 있습니까?
답변 : 이단감별사들은 “이단은 거짓말을 잘한다. 위기에 처하면 그 위기를 벗어나려고 거짓말을 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신뢰할 수 없는 자들이다”라고 말합니다. 아마 진짜 이단이라면 그렇게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거짓말을 한 것은 오히려 그들입니다.
오해하지 말고 들어주십시오. 교회와 성도님들이 지금도 받고 있는 극심한 피해와 고통을 생각할 때 목회자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저는 물론이요, 함께 사역하는 저의 동역자들과 함께 기꺼이 참여하여 열심히 배울 것입니다. 그리고 이단성은 아니라도 저희 교회가 부족하거나 잘못된 부분은 적극적으로 고칠 것입니다.
특별사면위원회 면담 녹취록
녹음 일자: 2016년 5월 13일
녹음 장소: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대 화 자: 김규 목사/이정환 목사/이정원 목사/정도출 목사/최내화 장로/변승우 목사/ 이동기 목사/장창두 장로
김규 목사: 오시느라고 수고들 하셨습니다. 저는 사면 위원장 김규 목사입니다. 소개부터 해 드리죠, 이쪽에 계신 분이 우리 최내화 장로님, 회계를 맡으셨고, 우리 분과장을 맡으신 이정환 목사님, 또 우리 정도출 목사님이십니다. 우선, 자기들 소개 좀 하시죠.
변승우 목사: 저는 변승우 목사구요. 여기는 성령신학원 원장으로 있고, 안양 교회를 담당하고 있는 이동기 목사님.
이동기 목사: 이동기 목사입니다.
변승우 목사: 그 다음에 장로님 한 분을 모시고 오라고 해서요.
장창두 장로: 장창두 장로입니다.
김규 목사: 그래요, 오시느라 수고들 했습니다. 아시겠지만 지난 번 총회 100회기를 맞이해서 우리 총회에서 특별사면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권징 받으신 분들 가운데서 특별히 진정성 있게 회개하신 분들을 사면해 드리고, 또 그밖에 그동안 교리적인 문제로 갈등 관계에 있는 여러분들에게 소명의 기회를 드리기 위해서 특별사면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이미 여러분들께서 내주신 사면 신청 이유서, 또 질의응답에 대한 답변서를 내주셔서 목사님 입장은 우리가 자세히 검토했습니다. 그러나 직접 대면하고 대화하면서 확인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서 오늘 이렇게 오시라고 했습니다. 아까 목사님 성함은 말씀해주셨고, 현재 소속 교단은 어디시죠?
변승우 목사: 예장 부흥교단이라고, 저희 교회를 중심으로 형성된 작은 교단입니다.
김규 목사: 아... 우리 교단에서 이단 문제로 결정된 때가 대략 언제시죠?
변승우 목사: 제가 정확히는 모르지만, 지용수 목사님께서 총회장을 지낼 때, 94회 총회 라고 합니다.
김규 목사: 그때 그런 결정을 내린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변승우 목사: 그때 이제 구원론하구요. 또 견인의 교리, 계시론 이런 것이 주로 쟁점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김규 목사: 우리 교단이 그렇게 결정한 것에 대해서, 이따 뭐 얘기해도 되겠습니다마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변승우 목사: 뭐... 이유서를 처음에 제출할 때 말씀을 드렸는데요. 뜬소문들을 사실 확인을 안 하고 하셨구요. 그 다음에 제 책이나 설교에서 부분인용을 하셔서 제가 실제로 의도한 것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을 그렇게 쓰셨고, 그 다음에 소명기회를 주셨으면, 그런 부분은 설명하면 다 이해가 될 수 있는 부분인데 전화 한 통 받은 적도 없고 전혀 소명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네, 그렇습니다.
김규 목사: 네, 특별히 소명할 수 있는 기회가 이번에 처음이에요?
변승우 목사: 처음입니다. 뭐 전화도 한통 한 적도 없으니까요.
김규 목사: 네, 제가 몇 가지 좀 여쭤볼께요. 구원론에 관해서... 우리가 얼른 들어볼 때는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외에도 회개와 선한 일을 행해야 한다고 하는 행위 구원을 주장한다.” 이런 얘기들을 하거든요 거기에 대해서 말씀해 보시죠.
변승우 목사: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합동 측 목사님께서 전도해서 교회를 5학년 때까지 다니구요. 5학년 때부터... 이제 경기도가 제 고향인데요. 그 다음에 울산으로 이사를 가서 통합 측 전하교회에서 계속 신앙생활을 하고 학생회장도 하고 연합회 임원도 하고, 계속 신학 갈 때까지 신앙생활을 장로교 통합 측에서 했거든요.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제가 신앙생활 하면서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이건 기본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런 걸 부정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구요. 그냥 믿음에는 행함이 따르니까 그걸 강조한 것뿐이거든요. 그러니까 저희가 무슨 이단이랑 접촉한 적도 없고 어렸을 때부터 장로교회에 정통신앙 안에서 성장을 하고, 성경경시대회에서도 1등을 하고 항상 그렇게 했는데, 다른 이견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부분만 가지고는.... 잘못 보고가 된 것 같습니다.
김규 목사: 그러니까... 믿음의 결과로서 행위를 강조한 건데...
변승우 목사: 뭐, 선행이나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은 기독교의 기본이기 때문에... 또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죠. 또 회개도 뭐 믿음과 동반되고, 믿음 안에 포함되고 그런 수준이지, 그걸 뭐 믿음을 부정하면서 믿음에 반해서 회개를 말하는 것은 전혀 아니죠.
김규 목사: 변 목사님은 구원받은 사람도 나중에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런 말씀을 하신다고 그러는데, 거기에 대해서 좀...
변승우 목사: 제가 어려서부터 계속 장로교에서 신앙생활을 했는데, 신학은 성결교 신학을 갔습니다. 안양에 있는 성결신학을 갔는데 성결교의 교리가 그거거든요. 감리교의 교리가 그거고, 성결교의 교리도 그거기 때문에, 그거는 이단성 문제가 아닌데 그거를 이단으로 단죄를 하시면서 그 부분을 넣었다는 것이 저는 굉장히 납득이 안 가구요. 그거는 그냥 각 교단의 교리적인 차이기 때문에. 저는 뭐 그렇게 배웠고, 성경을 읽으면서 그렇게 믿고 있을 뿐인데요.
김규 목사: 네. 그래요. 이정환 목사님! 아참! 저분 늦게 오셨는데 우리 이정원 목사님.
이정환 목사: 우리 교단에서 변 목사님을 문제로 삼는 게... 인간이 영혼육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 구원과 몸의 구원을 각각 받아야 된다. 그것은 마치 구원이 우리의 인간론에 있어서 삼분법 또는 이분법을 적용해서 “따로따로 구원을 받아야 된다.”라고 하는 그런 주장을 했다 그렇게 비판을 해서... 거기에 대해서 하실 말씀이... 물론 답변서에 쓰여 있지만... 직접적으로 설명을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변승우 목사: 구원을 뭐 따로따로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거구요. 예수님을 믿을 때 당연히 그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인데, 신학적으로 조직신학 책에 나와 있는 것처럼 구원론하게 되면, 칭의나 중생만 말하는 게 아니라 성화와 영화까지 다 구원론에 포함되어서 다루잖아요. 그래서 예수 믿는 순간에 그 사람이 당연히 전체가 구원받는 것이지만, 그때 영혼이 거듭나고 성화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변화가 되고 그 다음에 영화 때 몸의 구속이 이루어져서 몸이 변하고 부활을 해서 천국에 가는 것, 신학자들은 그것을 구원의 서정이라고 말씀하는데요. 김세윤 교수님도 그렇고 신학자들이 구원의 서정이라고 그러는데, 이건 사실은 굉장히 기본적인 신학적인 내용이고... 단순히 그걸 얘기한 거거든요. 근데 이 교단은 아닌데, 타교단에 이단 연구하는 분이 그걸 가지고 그렇게 질문을 해서 굉장히 제가 당황하고 놀랬거든요. 그건 뭐 신학교 다닌 사람이라면 그냥 기본적인 상식적인.... 조직신학에서 상식적인 얘기를 했거든요. 구원의 서정을 말한 것이지 그걸 어떻게 성화를 얘기한다고 해서 “예수 믿을 때 구원 안 받았다.” 이런 얘기가 전혀 아니고, 영화를 얘기한다고 해서 “예수 믿을 때 구원 받지 않았다.” 이런 얘기가 전혀 아니거든요. 구원을 단계적으로 세 번 받는다는 얘기가 아니라 예수 믿고 구원을 받는데 그 다음에 성화의 과정이 있고, 그 다음에 나중에 영화를 받는다. 단순히 그런 원론적인 얘기거든요.
이정환 목사: 그 계시에 대해서 조금 물어볼께요. 예전에 작고하신 이정선 박사가 직통계시에 대한 설명을 우리가 사적인 자리에서 하신 적이 있어요. 그 분은 직통계시를 어떻게 표현했냐하면 “직통계시는 한마디로 신접이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직통계시를 받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역 속에 인간이 함께 하나가 되어 가지고 받게 되는 계시라고 말씀을 했어요. 그래서 “기독교 안에서는 직통계시는 없다.” 그렇게 말씀을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 이제 계시라는 말 때문에 사실은 오해를 받거나 비판받는 그런 분들이 한국교회에도 많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계시 그럴 때 성경계시를 의미하거든요. 그 다음에 또 하나는 포괄적으로 계시라는 의미를 설명할 때, 성령의 조명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 건데, 목사님에 대해서 “직접계시를 받는 사람이다.” 그렇게 이제 비판을 해요. 그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세요?
변승우 목사: 전통적인 교회에서 계시라는 말을 사도들의 성경기록과 연관시켜서 계시라는 말을 썼는데 그런 계시는 당연히 중단이 됐지요. 그런 계시는 뭐 성경 저자들 외에 아무도 받을 사람이 없고, 그런 계시를 받는다면 성경에 뭔가를 더할 수 있다는 건데 그건 당연히 이단인거고요. 그거는 뭐... 상식적인 문제기 때문에 당연히 저도 인정을 하고, 그분들이 직통계시라고 표현을 하셨는데 제가 인정하는 것은 그냥 단순히 성령의 은사를 인정하는 겁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 나오는 성령의 은사가 지금까지도 존재한다고 믿는 분들도 많이 있지만 끝났다고 믿는 분들도 많이 있는데... 저는 그게 당연히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고, 거기 안에는 뭐 방언통변도 있고, 예언도 있고, 다른 여러 가지 은사들이 그... 전통적인 신학에서 말하면 계시라는 용어를 성경기록하고 관계시키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계시는 아니고, 조명에 속하는 그런 정도의 사적인, 또 신앙생활을 하면서 사용하기 위한... 은사로 인정한 것입니다. 간단히 얘기하면.. 그냥 성령의 은사로 인정한 것이지 무슨 사도들이 받는 계시를 받을 수 있다거나 성경을 기록하는 그런 정도의 계시를 우리가 받을 수 있다거나 그거는 뭐 당연히 아니죠. 그렇게 믿을 수가 없는 거죠.
이정환 목사: 그런데 이제 목사님 그 책하고 설교 가운데 “나는 성령 계시를 받지 않으면 설교 준비도 하지 못하고 한다. 안 한다.” 물론 이건 이해하기에 달려 있어요. 목회자들이 다 설교준비를 할 때 충분히 기도하고 또 하나님께서 영감을 주시면 우리가 설교준비를 해서 전하는 건데, 물론 그런 절차가 없이 전하는 설교라 그러면 알맹이 없는 껍질밖에 없겠지요. 그런 면에 대해서는 이해는 되지만 그러나 이제 용어선택 자체가 “나는 성령이 계시해 주시지 않으면”하는 말은 결국 쉬운 말로 목사님에 대해서 어떤 흠을 잡으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는 그런 표현들이 될 수 있거든요.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볼 때는 고쳐야 할 것 같아요.
변승우 목사: 지금은 사실은 고쳤구요. 예전에는 제가 그런 말들을 많이 했는데 수년 전부터는 “그냥 깨달았다. 이런 말씀이 깨달아졌다.” 그런 용어로 순화를 시킨 편이구요. 그냥 다만 이해를 돕기 위해서 추가 설명을 드리면, 일반적으로는 계시라는 단어를 목회자 분들이나 신학자분들이 잘 사용을 안 하거든요. 그런데 이제 순복음 교단이나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는 교단들에서는 계시라는 단어는 굉장히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기독교 서점에 성령 역사에 관한 책들이나 또 성령 운동하는 많은 목사님들의 책에 보게 되면, 성경 기록과 상관있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성경기록과 상관없이 계시라는 단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거든요. 그리고 제가 작은 개척교회를 오래 하다보니까 ‘정말 어떻게 해야 교회가 부흥할 수 있나? 정말 성경대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야 부흥이 되지. 10년 15년이 지나도 25명이 모이고, 미래가 보이지 않으니까, 하나님 역사가 일어나야 된다.’ 그래서 성령운동하는 책들을 많이 읽었거든요. 그런데 거기에서는 계시라는 단어가 일상적으로 사용이 됩니다. 그래서 저도 그렇게 사용을 했는데, 목사님 말씀하신 것처럼 또 이렇게 믿는 분들한테는 그게 걸림이 될 수 있는 것도 사실이여서... 제가 ‘생각이 짧았다.’ 그래서 벌써 그걸 고친 지는 수년이 됐습니다. 이것을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지만, ‘아 기도하는데 그렇게 깨달아졌다. 이런 감동이 왔다.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는 걸, 왜 굳이 이렇게 표현을 할 이유가 있나?’ 그래서 이런 부분들은 제가 오해의 소지를 준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정환 목사: 이렇게 계시를 받았어도, 우리가 성경의 기록을 보면 그 계시를 빗대어 설명하거나 혹은 증거 하지 않고 묻어두는 그런 사례들도 있거든요. 바울 같은 경우도 “내가 받은 계시가 너무나 크다. 그러나 내가 얘기하지 않는다.” 또 자신이 삼층천에 올라가서 말할 수 없는, 사람의 말로 이를 수 없는 그런 얘기들을 다 들었다. 이게 우리가 말하는 계시지요. 그런데 바울은 그런 것에 대해 일체 언급을 안 하고 있네요. 그러니까 그런 계시가 개인에게 유익이 되고 또 성도들에게 유익이 될 때에는 뭐 우리가 전해야 되겠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상당히 조심해야 할 그런 용어가 아닌가? 목사님이 그걸 지적을 받고 또 깨닫고 알아가고 계신다고 하니깐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최 장로님, 말씀해주시죠.
최내화 장로: 목회자들이 목회를 할 때에 여러 가지 형태의 목회를 하시는데, 변 목사님 말에 신비주의적인 목회를 하신다는 오해를 받으시는 부분이 있죠? 어디서 그렇게 하시는지?
변승우 목사: 지금도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는데, 그게 점점 복음 전하는 게 힘들고, 영혼들을 많이 구원해야 하는데, 예수님도 그렇게 하셨고, 사도들도 그렇게 하셨고, 성령의 역사나 기적이 복음전도에 필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사실 전에는 저희가 예언사역 같은 것을 많이 했습니다. 특히 아주 초창기에는 입신 간증 같은 것을 많이 했었는데, 그때는 제가 순진해서 악령 역사, 성령 역사 밖에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아주 신앙이 잘못되고, 양신 역사하는 사람이 아니면, 이 사람이 체험한 것이 맞을 것이라 가정을 했거든요. 그런데 경험이 축적되고 보니깐 그것이 아니고 굉장히 복잡한 것이었습니다. 분명히 이 사람이 인격이나 신앙이 좋은데도 그 사람들이 체험한 것이 그렇게 신뢰할 만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입신 간증 같은 것에는 관심을 제가... 실망감을 느껴서 ‘이것은 부정확한 것이다. 신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하여 관심을 껐구요. 입신에 관해 과거에 제가 쓴 책들도 있었는데, 스스로 절판시켜 버렸습니다. ‘이런 것은 믿을 수가 없다. 결국 믿을 수 있는 것은 말씀밖에 없고 말씀에만 입각해야 한다.’ 그 다음에 예언 같은 경우도, 예언의 은사가 성경에 사도 바울이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 했기 때문에 하고는 있는데, 정확도가 세계적으로 사용하는 분들도 많이 틀리더라구요. 그래서 거기에 대해서는 저는 마음을 많이 접은 상태입니다. 그런데 ‘치유는 참 필요하다.’ 병자들을 고치고, 치유하는 것은 영혼 구원 하는데도 정말 필요하고, 교회부흥에도... 요즘 저희 교회가 주력하고 있는 것은 치유입니다. 그리고 저는 사실 그런 능력이 없는데 우리 동역자들이나 성도님들이 기도를 참 많이 하시고 그래서, 저희는 거의 매 주마다 휠체어에서 일어나시고, 거의 매 주마다 소경이 눈을 뜨고, 몇 십 년 귀머거리였던 사람이 귀가 열리고, 암환자도 낫고, 그러다보니 불교신자들도 그런 것을 보고 예수 믿고, 술집 했던 사람도 예수 믿고, 스님도 예수 믿고, 하나님께 돌아오고 있거든요. 요즘 저희가 제일 주력하고 있는 사역은 첫째로 말씀을 전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학자들의 책을 많이 읽고, 성경대로 설교하기 위해서 많이 노력하고 있구요. 그 다음에 ‘영혼구원을 위해서 치유는 강하게 일어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서 지금 주로 치유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최내화 장로: 지금 목사님께서 개척교회를 오래 하셨다고 하셨는데요. 지금 교인이 몇 명이나 됩니까? 참고해서 알고 싶어서요.
변승우 목사: 지금은 저희가 등록신자인데요. 등록신자가 만 팔천 명 정도 됩니다.
최내화 장로: 교회가 여러 곳에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몇 개 도시에, 몇 개 교회가 있습니까?
변승우 목사: 국내에는 한 삼십 여개로 알고 있고요, 해외에는 한 십여 개 정도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최내화 장로: 십여 개 교회... 총 합쳐서 사십 개 교회인가요?
변승우 목사: 한 오십 개 가까이 될 겁니다.
최내화 장로: 오십 교회. 그러면 예장 부흥교단이라고 있는데, 지금 목사님께서 부흥교단의 총회장이십니까?
변승우 목사: 네.
최내화 장로: 지금 현재?
변승우 목사: 네.
최내화 장로: 그러면 총회장님으로 사역하신지는 몇 년이나 되셨습니까?
변승우 목사: 저희가 총회를 만들면서 제가 칠년 동안 총회장을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저희 교회 중심으로 모인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때까지는 총회의 기틀을 준비를 하고 그 다음에는 물러나겠다. 올해가 마지막 해입니다. 다음 해에 다른 분이 하게 되실 겁니다.
최내화 장로: 그러면 교단 안에 전체 교회가 오십 교회인거죠?
변승우 목사: 교단 안의 전체 교회는 약 백삼십 개 교회이구요. 그게 저희가 이단으로 정해지면서 죄송한 말씀이지만 통합 교단 안에서도, 합동 교단 안에서도, 타 교단 안에서 “이것은 말도 안 된다.” 그래서 그 분들이 그냥 저는 개인적으로 모르던 분들인데 나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알던 분들은 아닌데 그 분들이 우리 교회가 이슈가 되고 유명해지니깐 은혜 받으려 늘 몇 년 동안 오셨는데 우리교회에서 보면 전혀 그렇게 가르치고 있지 않은데, 교단들에서 때린 것들을 보게 되면 전혀 사실하고 다르니깐,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 그래서 그분들이 그냥 백석에서도 나왔구요. 나와서 저희 교단으로 들어왔습니다.
최내화 장로: 통합교단에서 들어간 교회도 있습니까?
변승우 목사: 네. 있습니다.
최내화 장로: 몇 개 교회나 됩니까?
변승우 목사: 큰 교회이거나 그런 분들은 아닌데 두, 세 개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최내화 장로: 네, 교회 전체가 들어왔나요?
변승우 목사: 주로 작은 교회들이여서 그렇게...
최내화 장로: 그런데 목사님이 교단장이고 또 목사님이 지교회 형태이고...
변승우 목사: 네, 지교회 형태입니다.
최내화 장로: 약 오십여 개 교회를 거느리고 있는 지도자인데, 이단이라고 한국교회가 어쨌든 지침을 하고, 또 목회를 하시는 입장에서 ‘내가 언젠가는 이단이 아니라는 것은 한국 교회에 보여주고 싶다, 보여줘야겠다.’하고 혹시 본인 스스로, 아니면 ‘교단 안에 그들로 하여금 어떻게 변화를 줘야 하는가?’ 아까 목사님께 질문하셨습니다. 구원론, 계시론, 또 지금 하고 있는데, 이런 것에 대해서 본인이 ‘이것이 아니다.’라고 한국 교회에 알리고 싶은 심정에서 혹시 목회를 했다든지 교단을 했다든지 그런 것은 있나요?
변승우 목사: 제가 질문을 지금 정확하게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최내화 장로: 이단이라고 한국 교회가 지침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나는 이단이라고, 물론 이단이 자신을 이단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단은 아니니깐, 그런 말을 들으면서, 나는 한국 교회에 이단이 아닌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목사님이 어떤 자구책을 썼거나 교회에서 교인을 교육을 하거나 목회자 스스로 어떤 훈련을 통해서 그렇게 변화를 주려고 했던 부분이 있냐는 말입니다.
변승우 목사: 저희는 변호차원에서 책을 쓰구요. 그 다음에 한기총에서도 8개월가량 조사를 다 받고, 백석에서도 마찬가지로 2년 조사를 받았고, 예성에서도 제가 직접 참석해서 답변을 하고 조사를 받았는데,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약간 다릅니다. 백석에서도 총회장에게 “성경적으로 흠잡을 데가 없다.”는 교수님들의 보고가 들어갔구요. 총회장과 총무님이 저를 직접 만나서 시인했구요. 그 다음에 기성에서는 자체 조사를 해가지고 “이것은 이단성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다시는 다루지 않는다.” 이게 신문기사로도 나오고 그랬었구요. 또 한기총에서도 여전히 이단이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졌었구요. 또 예성에서도 실제로 이대위에서 저를 불러서 조사하고 “이것은 음해를 당한 것이지, 이단성은 없다.” 그렇게 총회장에게 보고가 다 들어갔고 문서도 제가 갖고 있거든요. 그리고 우리 자체적으로 고치려고 하는 것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아, 나는 입신이 성령 역사 아니면 악령 역사, 진짜 아니면 가짜 이런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이런 세계가 굉장히 복잡하고 믿을 수가 없구나. 진짜는 성경에도 나오고 그런 것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정말 믿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런 책들도 없애버리고 또 그런 강사는 초청도 안 하고, 관심을 끄구요. 그리고 ‘말씀에 더 착념해야 되겠다.’ 그래서 예전에는 성령 운동 하는 그런 책들을 많이 읽었는데요. 그 뒤로부터는 거의 교수님의 책들, 국내외 유명한 신학자들의 책들, 그분들의 책들을 주로 읽으면서 보니깐 제가 이단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잘못된 어렸을 때부터 교회서 성장했으니깐 그런 게 사실 있을 수가 없거든요. 그런 것은 없지만, ‘참, 성경에 대해 무지한 것들이 굉장히 많았구나.’ 그래서 지금은 학자들 책을 열심히 읽고 좀 신학적으로 탄탄한 설교를 하기 위해서, 그래서 계속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최내화 장로: 백석, 기성, 예성 총회장을 만나서 교수들이 이단성이 없다라고...
변승우 목사: 백석교단입니다.
최내화 장로: 백석, 기성, 예성 다 만났다고 했잖아요?
변승우 목사: 기성에서는 저를 안 만나고 자체적으로 조사를 했는데...
최내화 장로: 이단성이 없다고 말했다는 거죠?
변승우 목사: “이단성이 없다.”라고 신문기사로도 나왔습니다.
최내화 장로: 그러면 교단 결정을 어떻게 되었습니까?
변승우 목사: 그래서 그게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건데요. 조사는 실무진에서 하는 거고, 그러면 그게 끝나야 하는 건데, 그게 그 다음으로, 제가 들은 이야기로는 압력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교계에서... 압력들이 굉장히 많이 들어와 가지고 거기에 굴복해가지고 얘기가 바뀌고, 판정이 막 바뀌어버리는 거죠. 그래서 조사 결과를 내가 끝까지 다 지켜봤고 그리고 뭐 총회장님 이상이 뭐가 있습니까? 총회장님이 직접 다 이야기해주고, 총무님이 얘기해주고, 그랬는데, 결정은 “제명출교다.” 이런 식으로 가니깐 저로서는 충격이었죠.
최내화 장로: 목사님 교단에 장로님들은 혹시 몇 분들이나 계시나요?
변승우 목사: 장로님들 숫자는 세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최내화 장로: 그러면 목사님들은 몇 분 되시나요?
변승우 목사: 목사님은 백 십 명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최내화 장로: 장로님은?
변승우 목사: 장로님은 뭐... 저희 교회 외에는 대부분 작은 교회여서요. 대부분 저희 교회 장로님일건데요.
최내화 장로: 그러면 교단이, 교단이기 때문에, 교단의 교리가 있고, 헌법이 있을 텐데, 그 헌법은 독단적으로 만드셨나요? 아니면 어떤 교단의 헌법을...
변승우 목사: 뭐 주로 통합이나 합동이나 이런 데를 보고 대강 비슷하게... 그랬죠.
최내화 장로: 그걸 기준으로 해서 교단을 총회장 역할을 하시는거죠?
변승우 목사: 예, 작은 교단이니까 사실 큰 교단들처럼 헌법이나 이런 것들이 복잡하지 않거든요. 그냥 은혜스럽게 굴러가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소꿉놀이 같은 거니까... 그래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최내화 장로: 그 교리, 이 총회의 교리...
변승우 목사: 네.
최내화 장로: 그 다음에 신조나 신앙고백 이런 것을 저희에게 한 부 제출해 줄 수 있습니까?
변승우 목사: 이미 제출을 했습니다.
이정환 목사: 신앙 고백서 자료에 다 있습니다.
최내화 장로: 자료에 다 있어요?
변승우 목사: 네, 신앙 고백이 필요한 것 같아서
최내화 장로: 권징사유도 다 들어가 있어요?
변승우 목사: 네, 다 첨가를 시켰습니다.
최내화 장로: 네, 제가 미처 못 봐가지고...
김규 목사: 기성 교회에 대한 지나친 비판...
변승우 목사: 네.
김규 목사: 그것도 아마 그렇게 결정한 데에 좀 영향을 미쳤을 거예요? 기성 교회에 대해서 지나친 비판을 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요새도 그럽니까?
변승우 목사: 그게 저에 대해서 말씀하는 현재로는 제일 많은 이야기 같습니다. “기성교회에 대해서 많은 비판을 한다.” 그런 면에서는 제가 참 부덕한 것 같구요. 많이 더 변화가 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구요. 그런데 정상참작이라고 한다면 거기에 써서 보냈습니다만, 제가 이단 시비에 휘말리면서 많은 목회자들을 만났습니다. 한기총부터 많은 목회자들을 만났는데 사실 80% 이상의 분들이 결국은 돈을 요구했습니다. 80% 이상의 분들이 결국은 돈을 요구하고, 저는 목사로서 세례요한도 군병들에게 “받는 돈으로 족한 줄을 알라.”라고 했는데, 다 목회자들이고, 사례비도 받고 그러실 텐데, 이단시비에 있어서 이단이면 이단이라고 때리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당연한 거고, 이단이 아니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당연한 건데, 돈으로 거래하려는 분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많게는 십사억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고 여러 종류의 형태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단 조사 하는 분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너무 이렇게, 사실 조사를 안 하고 의도적으로 거짓말들을 많이 하셔가지고, 심지어는 문선명이 대관식을 하니깐, 저보고 대관식을 했다고. 사진을 다 찍어가지고, 무슨 얄궂은 제가 처음 보는 “무슨 왕복, 왕관 이런 것을 가지고 대관식을 했다.” 뭐 그런 것부터 시작해서 “자기 교회만 구원이 있다고 그랬다.” 상상할 수가 없는 이야기이거든요. 자기 교회만 구원이 있다고 그랬다. 환상을 못 보면 천국을 못 간다고 그랬다. 제가 태어나서 환상을 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그리고 제가 영성 운동에 관심이 많아서 많이 가봤는데요. 영성 운동이 굉장히 많이 부패했더라구요. 그러니깐 예언, 치유, 안수 기도 이런 것을 빌미로 해가지고 너무 과도하게 헌금들을 뽑아내고, 집회를 해도 입회비를 다 받고, 이렇게 집회를 하구요. 그리고 베니 힌 왔을 때에는 저도 외국에서 저에게 메일이 와서 알고 충격을 받고, 병자들에게, 암 환자들에게 베니 힌이 그런 것이 아니고, 주최측이 한국의 영성 운동하는 목사들이 앞자리를 환자들에게 천만 원, 이천만 원에 팔고, 뭐 그런 일들... 강사를 해도, 저희는 우리가 강사를 초청해도 그냥 보내줬거든요. 그냥 보내줬는데, 강사를 가지고 장사를 합니다. 강사비를 우리가 강사에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얼마를 내라.” 그러면 강사한테는 극히 일부만 주고 초청한 사람이 다 가지고 가고... 그것도 약속한 것보다 나중에는 불려서 달라고 하고... 예를 들자면 한이 없을 정도인데요. 뭐 그런 것들을 보면서 ‘예수님이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성령의 은사가지고 섬기면서 이렇게 장사를 하는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왜 교계에서는, 분명히 이대위에서는 이단이 아니라고 조사가 났는데, 나중에 총회장 손에 넘어가서 발표가 날 때에는 왜 그렇게 교계에서 서로들 압력을 넣고, 그 다음에 거기에 굴복해가지고, 결국 사실하고는 완전히 다른 그런 결과들이 나오는가?’ 그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받는 타격이나 고통이라는 것은 말로 다 할 수가 없거든요. 성도들이 이혼당하고, 두들겨 맞고, 퇴학당하고, 퇴직당하고, 뭐 그런 수많은 일들이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 일어나는 거니까...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사실 비판이 나오죠. 제가 한국 교회 목사님들 전체를... 제가 부족한 사람이고 한국 교회에 존경하는 목사님들이 너무 많은데, 한국 교회 목사님을 싸잡아서 비판할 자격도 없고, 그런 것은 아니구요. 그런데 그런 일 때문에 마음이 상해서 말할 때에, 그런 상황들은 다 모르시니까, 그냥 저 사람은 비판적이다. 그것만 이제 부각이 되는 거죠. 그리고 저도 이제 쓴 그대로 우리 성도님들도 그런 일 때문에 그러는데도, 그런 말을 자주 하니까 많은 분들이 시험에 드시더라구요. 시험에 들고 싫어하고 그래서 지금은 이제 거의 그렇게 하고 있지 않습니다.
김규 목사: 정 목사님, 질의하시죠.
정도출 목사: 네. 제가 몇 가지 좀 물어보겠습니다. 변 목사님의 구원관은 “구원받은 사람도 구원을 상실할 수 있다.”고 그렇게 믿고 있는 거죠? 성결교단, 알미니안 구원관인거죠?
변승우 목사: 네, 존 웨슬리나 그런 책도 많이 봤고요. 전집을 비롯해서...
정도출 목사: 성결교단에서 계속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변승우 목사: 성결교단에서는 이단으로 규정하지 않은 걸로 알고 있고요. 집회참여, 교류금지, 뭐 이런 걸로 내려졌는데 이게 참 해프닝이 있는데요. 장로교에서 그러는 것은 또 이해가 되는데 성결교에서 예성에서 예를 들어서 교류금지, 집회참여 금지를 할 때 그 때 이유 중에 하나가 “구원받은 사람도 버림받을 수 있다.”였습니다. 그건 자신의 교단의 교리거든요. 성결교단의 교리인데, 그걸 가지고 집회참여 주의를 시킨다... 그러니깐 그만치 엉터리라는 거죠. 그냥 뭐 조직들이 그렇게 되어 있어서 그냥 따라가는 거죠. 그리고 실제로 그 뒤로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지난해인가 저를 조사를 했는데 그 전에는 조사 없이 그렇게 결정을 내렸던 거고요. 그 다음에 조사를 했을 때는 거기서 “이거는 음해지. 전혀 이단성이 없다.” 그렇게 이대위에서 결론을 내리고 총회장님께 보고를 했거든요. 총회장님도 참 굉장히 좋은 분이시고, 저도 잘은 몰라도 옛날에 서울에서 목회하면서 같은 지방에 계셨던 분이라서 조금은 아는데 굉장히 인격적이고 훌륭한 분이세요. 나세웅 목사님이시라고... 그분도 이제 사실에 근거해서 풀어줄려고... 그리고 그 교단에 들어와서 함께 일하자고 그렇게 하셨는데... 교단의 어르신들이 불러가지고...
정도출 목사: 그래서 그대로 하고, 가고 있는 거죠.
변승우 목사: 네, 그래서 그분이 결국 못하셨죠.
정도출 목사: 결국 얘기되는 것 중에 많은 비판받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목회형태가 너무 신비주의적이다.”, 또 “사도성을 계속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기존 전통교회를 너무 과도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건 주로 이해가 가는데 그 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싶네요. 세 가지.
변승우 목사: 사도라고 하는 것은 사실 영성운동에서는 그냥 뭐 외국 강사들이 오면 거의 사도라고 예언들을 하더라고요. 그게 뭐 저 얘기가 아니고 단순히 성령 운동하는 집회들을 가보면 교인 10명 모이는 목사들도 자기를 사도라고 말하는 목사들이 수백 명 이상 됩니다. 그래서 뭐 처음에는 세계적으로, 영성운동에서 이름난 강사들이 와서 사도라고 예언들을 하니깐 ‘내가 사도인가?’ 그런데 그 사도가 성경을 기록한 그런 사도들하고 다른 개념이거든요. 그런 사도들은 지금 당연히 없는 거고 성경기록과 무관하게 그냥 사역하는데서 오늘날로 따지면 선교사나 큰 교회 목회하는 사람 정도 그런 걸 갖다가 거기서 그렇게 표현하는 건데요. 나중에 제가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깐 성경을 자세히 읽어봐도 ‘아, 나는 사도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사도가 아니다.’ 왜냐하면 제출한대로 성경에 의하면 사도는 고린도전서 9장 1절에 주님을 봤어야 된다고 하는데 저는 주님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으니까요. 그 다음에 고린도전서 12장 12절에 의하면 기사와 이적과 표적을 행하는 게 사도의 표라고 했는데, 오히려 저희 부목사님들이 기적을 행하고 성도님들이 많은 환자들을 고치지 저는 뭐 치유기도를 하긴 해도 가뭄에 콩 나듯이 거의 안 낫거든요. 그런 은사들이 나한테 없기 때문에... 그래서 성도님들에게는 제가 자주 그럽니다. “나는 그냥 교사다. 교사. 에베소서 4장 11절에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 목사, 교사가 있는데 나는 그냥 교사고 목사다.” 최근에 나온 제 책에도 “나는 내가 사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요. 그걸 뭐 영성운동 옛날에 열심히 다닐 때 다들 뭐 그게 거기서는 특별한 게 아니거든요. 목사님. 그냥 일반 교단들에서는 그게 굉장히 특별한 주장처럼 보이는데 영성운동, 여기 교단의 예영수 박사님이 영성연합회 총회장이시잖아요. 영성연합회 총회장을 여러 번 하셨잖아요. 거기 집회하는데 가보면 그런 예언들이 일상적인 겁니다. 그 다음에 자기가 뭐 “사도다, 선지자다.” 그런 것들이 뭐 일상적인 거고요. 그런데 그들이 교계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성경을 기록한, 성경에 나오는 베드로나 요한이나 야고보 같은 그런 사도로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들을 그런 사도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고...
김규 목사: 변 목사님을 우리 교단에서 이렇게 좀 뭐랄까? 인정해준다고 해야 할까? 변호한다고 해야 할까? 우리 교단 가운데서 그런 분 혹시 있어요? 변 목사님을 변호해줄 만한...
변승우 목사: 네, 소수는 있습니다. 저희가 뭐 이렇게 많이 교류할 수 있는 형편은 안 되가지고요. 그냥 알고 지내는 분들... 그런 분들은 그냥 어려서부터 저를 아니까요. 그냥 교회부흥을 위해서 성령운동을 열심히 한 거지, 별 게 없다는 걸 아니까...
이정환 목사: 제가 하나 여쭤볼께요. 음... 큰믿음교회... 다른 교회는 잘 모르겠어요. ‘큰믿음교회의 정체성이 없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지금 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그렇게 교회명칭을 장로교회로 표시를 했거든요. 그런데 교리는 장로교 교리와 전혀 반대가 되는 알미니안주의를 따르고 있어요. 목회 형태는 오순절주의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깐 이게 내가 볼 때는 ‘이런 교단, 교파들의 장점을 총 좋은 점들은 다 본받겠다.’라고 하는 뜻에서 이것을 받아들이면 문제는 될 것이 없어요. 그런데 명확하게 하려고하면 이건 불가능한 일이거든요. 그런데 이걸 제가 볼 때 바르게 해야 될 것 같아요. 그래야 예를 들어서 “우리는 장로교회다.” 그러면 알미니안주의 교리나 신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예를 들어서 교회나 목사님에 대해서 어떤 비판을 할 때, “아, 우리는 장로교 견인교리를 믿는다.” 또 예를 들어서 알미니안주의를 선택을 했으면 거기에 관계된 교파의 명칭을 사용할 때 장로교에서 “당신들은 왜 예정이나 견인교리를 믿지 않느냐?”할 때 “우리는 알미니안주의자다.”라고 답변이 가능해져요. 근데 이게 뒤섞여 버리면 여기서도 공격받고, 저기서도 공격받습니다. 그래서 정말 교회가 건전하게 성장을 하고 또 하나님의 복음 사역을 이어가려고 하면 제가 볼 때는 분명한 정체성의 확립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속된 말로 동네북이 되는 거죠. 이 교단, 저 교단에서 아무렇게나 막 공격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걸 제가 생각할 때는 물론 비판하고 공격하고 정죄한 교단들도 좀 더 심사숙고하지 못한 부분들이 많이 있지마는 이건 어떤 의미에서 스스로 자초한 부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거는 교회, 혹은 교단 자체적으로 분명하게 정리를 해야 될 문제라고 생각이 됩니다. 제 얘기가 틀렸습니까?
변승우 목사: 그 부분에 대해서 좀 설명을 드리자면요. 그게 그 교단이 생겨나고 제가 공격을 받은 게 아니고요. 공격을 이미 받고 이단으로 그렇게 몰리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이제 받아주는 교단이 없기 때문에 교단을 세우고 싶어서 세운 게 아니라 통합 같은 거대 교단에서 “이단이다.” 그러면 한국교회에서는 갈 데가 아무데도 없습니다. 아무데도 안 받습니다. 근데 제가 이제 마지막으로 소속되어 있던 교단이 백석교단이었거든요. 백석교단이었기 때문에 제가 어떤 성결교라는 간판으로 교단을 만들 수가 없는 것이지요. 더구나 이단으로 인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러면 성결교에서 가만히 있겠는가?’ 또 감리교단 간판을 달 수도 없고, 그리고 거대교단에서 이단으로 매도당해서 입지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그러면 무슨 없는 새로운 교단 이름을 만들면 그것은 ‘나 이단이니 나를 잡아먹으라.’고 광고하는 거나 똑같은 거거든요. 제일 한국 교회에서 보편적이고 또 제일 교단 수도 많은 게 장로교이고 제가 마지막으로 몸담았던 교회가 장로교단이니깐 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뭐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요. 그것 때문에 공격을 받은 것은 사실은 아니고요. 이게 저희로서는 몰릴 때까지 몰린 상황에서 받아주는 데가 없으니까... 뭐 신학교도 만들어야 되고 교역자는 계속 있어야 되니까... 신학교도 작게 만들어야 되고 교단도 만들어야 되고 그런 거거든요. 무슨 뭐 교단을 만들고 무슨 총회장을 하고 소꿉놀이 같은데 저희 같은 경우에는... 그런 뭐 욕심이 있어서 한 게 아니라 선택의 여지가 없이 그냥 단겁니다. 명칭까지도.
이정환 목사: 그러니까 이제 자구책으로, 우리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자구책으로 한 것에 대해서는 이해를 해요. 그러나 이 상태로 계속해서 있을 수는 없잖아요. 오히려 그렇게 할수록 제가 볼 때는 분명한 입장을 정리해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변승우 목사: 근데 저희가 무슨 또 할 방법이.. 다른 게 없으니깐.
이정환 목사: 누가 뭐라고 하든지 간에..
변승우 목사: 무슨 뭐.. (웃음)
이정환 목사: 한 번은 이거는 고민을 해야 될 문제라고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그 다음에 이제 아까도 어떤 분이 신비주의에 대한 말씀을 하셨는데, 소위 은사주의와 신비주의의 영역이 명확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은사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신비주의적 매도를 당하는 경우가 많아요. 엄격한 의미에서 신비주의는 제가 볼 때는 옛날의 신비주의자는 거의 없습니다. 사실 은사운동을 하다보니까 거기에 많이 이제 치우치게 되는 편인데... 근데 저는 지금 변 목사님 그 답변서에 보면 “나는 환상을 본 적도 없고 예언도 하지 못한다.” 그런데 하셔야 돼요. 그래야 성도들이 좋아합니다. 물론...
변승우 목사: 저도 하고는 싶은데요...
이정환 목사: 우리가 원한다고 하나님이 반드시 주시는 것은 아니지만은... 성도들이 기도하려고 할 때 성도들의 영적인 상태를 교역자가 파악하지 못하거나 아까 입신에 대한 말씀을 하셨는데 “아 이게 보통 문제가 많은 게 아니구나.” 하는 것을, 그걸 알게 되셨다고 하셨는데, 마찬가지로 다른 은사들도 똑같다고 생각이 돼요. 그러니깐 ‘아이고 뭐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하늘로부터 달라고 그러시죠. 주신 분들도 그렇게 해서 받은 분들도 많아요. 제가 알기로는, 왜냐하면 성도들을 잘 지도하기 위해서 그런 거예요.
변승우 목사: 네.
최내화 장로: 그.. 목사님, 신학교가 현재 있습니까? 교단 안에?
변승우 목사: 네, 성령신학교라고요.
최내화 장로: 성령신학교요.
변승우 목사: 신학교하고 신학원을 자그마하게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할 때는, 첫 해에는 신입생이 한 450명이 모였는데요. 이게 이제 계속 풀리지 않고 오래가니깐 지금은 뭐 전체학생이 해봤자 100명 미만이... 그렇게...
최내화 장로: 그러면 이제 지교회에 목사님이나 또 부목사님들 중에서 어느 교단 출신 목회자들이 많습니까?
변승우 목사: 다양합니다. 뭐 통합도 있고 합동도 있고 뭐 고신도 있고요. 순복음도 있고...
최내화 장로: 전 교단에서... 신학교 나온 사람들이.... 부목사들도 계십니까? 혹시 옆에 계신 우리 안양교회에 목사님은 어느 신학교 나오셨습니까?
이동기 목사: 저는 이제 학부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에서 했고요. MDiv 과정은 합신, 합동신학교에서 했고요. 용인에 있는 웨스트민스터에서 신약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최내화 장로: 아, 그러셨습니까? 혹시 큰믿음교회하고 큰믿음 출판사하고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변승우 목사: 네. 뭐 저희교회에서 하는 출판사입니다.
최내화 장로: 아, 그 교회에서 하는 출판사?
김규 목사: 본부가 지금 문래동에 있나요? 어디 있어요?
변승우 목사: 지금 저 문래동에 땅을 샀다가요. 이단이라고 하도 반대를 해서 돈만 억수로 버리고요. 시간만 몇 년 낭비... 엄청 뭐 좌절했습니다. 이민가고 싶을 정도로요. 그냥 뭐 이게 재산권도 행사가 안 됩니다. 지금 부산에도 교회 빌딩을 샀는데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거든요. 법적으론 아무 문제가 없는데 주변 목회자들이 이단이라고 그러면... 지금 뭐 부산도 올 스톱되어 있는 상황이고요. 그래서 사고 몇 년 동안 고생만 하고 돈만 몇 십 억 날렸습니다. 조사하고 뭐 하고... 그러고 지금 오금동에 서울레저라고 스포츠 센터였던 것을 인수해서 그걸 리모델링해서 거기에 있습니다. 그것도 불가능할 뻔했는데 참 엄청 많은 맘고생하고 엄청 많은 반대, 현수막들 붙고... 재판까지 가고 그래도 불가능할 뻔했는데 진짜로 은혜로, 진짜로 은혜로 됐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있습니다.
이정원 목사: 다섯 가지 질문이 있는데요. 구원론에 있어서 그... 구원받은 사람도 진짜 구원을 상실할 수 있다. 이제 그 구원을 상실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구원을 받는다는 얘기예요?
변승우 목사: 그거는 제가 답변을 드렸는데요. 그거는 뭐 장로교에서는 당연히 진짜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겠죠. 그런데 성결교나 감리교에서는 진짜 구원받은 사람이 그럴 수 있다고 믿는 교단 상의 차이라고 저는...
이정원 목사: 그러면 목사님은 “진짜 구원받은 사람이 구원을 상실할 수 있다.”고 믿는 겁니까?
변승우 목사: 저는 뭐, 성결교에서 신학을 했으니까요
이정원 목사: 아니 그... 신학을 했다 하더라도 지금 그거는 우리가 성결교리든 어디든 뭘 보더라도 진짜 그냥 그래요. 구원 받은 척 한 사람은 있을 수 있을 거예요.
변승우 목사: 아니, 그런데 그거는 성결교 교리가 그런거거든요. 감리교 교리도...
이정원 목사: 성결교 교리가 그렇다 하더라도 목사님 그래도 그 부분에 대한 것은 목사님의 신학 정립이 바로 되야 될 부분으로 보여집니다. 제가 보기에는요. 그 다음에 두 번째는 그... 저도 은사운동을 합니다마는 은사 운동하는 사람들은 잘못하면 공격당할 가능성이 많아요. 대단히 많잖아요. 난 장로교에 비하면 과거의 장로교에 비하면 은사를 죽인 거라고 생각해요. 난 뭐 장로교가 잘했다고 절대 생각 안하거든요. 근데 오순절에서는 이 말씀을 죽여 놓고 은사만 살린거거든요. 그래서 말씀과 은사의 균형이 맞지 않으면 이거는 언제든 공격당하거든요. 말씀이 큰 자만 공격한다고 하지만 은사도 큰 사람은 언제든 공격 대상이거든요. 그런 차원에서 ‘목사님이 그 말씀과 은사가 균형이 잡힌 분이 된다면 그런 게 뭐 대단히 좋은 사역자가 되지 않겠나?’ 생각은 들어요. 그런 부분에서 두 번째로 그 다음에 계시와 은사 부분이 혼동된 이 사용을 하다보면 이게 결국에 계시 계시 하다보면 일반인 교회에 특별히 우리 통합 측 같은 데서는 이건 좋게 들리지 않거든요.
변승우 목사: 그렇죠.
이정원 목사: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런 용어를 쓰지 않습니다. 성경 계시하는데 계시를 쓰지. 내가 설교 계시 받았다 이거는 쓰지 않습니다. 이런 용어 사용이 이제 생기다 보니까 이 의미에서는 아무리 본인은 정상이라고 외쳐도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일이 생긴 거예요. 그 다음에 네 번째로 제가 이제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이 소위 사도권 문제, 뭐 사도란 말은 아포스톨로스란 말, 엠베서더, 뭐 “내가 대사다. 하나님이 나를 보내준 대사다.” 그 누가 못쓰겠어요? 그 쓰는데 뭐 나는 자연스럽게 쓸 수 있다고 봐요. 문제는 이제 그 바울 사도도 그러면서 사도권 논쟁에 휩싸였던 적이 있는데 결국에 그런 차원이라고 하면은 그런 용어를 굳이 사용할 필요가 있나? 목사란 이름이 얼마나 좋은데 그거 굳이 저 같은 경우에는 뭐 “나는 주의 사도다.” 그럴 때 사도를 설명할 때 사용할 때 그때나 쓸 수 있는 용어지. 일반적인 평상적인 용어를 무엇 때문에 써가지고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느냐? 이런 안타까움이 있어요. 그러면서 이제 특별히 가장 큰 문제는 뭐냐면 이제 나하고 우리 교회만 대단한 것처럼 이제 나오다 보면 이게 이제 항상 어떤 빠져나오지 못한 그 대부분 다 이단이 다 그렇잖아요. 이단은 모두가 자기한테만 와야 구원이 있고 자기한테만 와야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아주 그 아까 이제 제가 설명은 충분히 들었는데 들으면서도 생각 드는 것이 ‘아, 이 한 다섯 가지 정도에 대해서는 목사님이 정립을 하셔야... 그래도 한국 교회에서 살아남지 않겠나?’ 이 생각이,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뭐, 저도 부흥회를 수없이 다니면서도 은사 운동을 합니다마는... 은사 운동을 안 해서 문제지 해서 무슨 문제가 있어요. 은사가 나타나는 게 무슨 문제가 있어요. 은사가 나타나야지 어려운 시대에 예수를 믿지 그럼 뭐 말만 전한다고 예수를 믿습니까? 솔직한 얘기로. 나는 이 한국교회에 이 은사가 안 나타나게 만드는 목사들이 오히려 문제가 있다고 봐요. 저는 그 통합 측 목사지만은 그런 차원에서 얼마나... 제가 보기에는 용어 사용 문제라든지 요런 부분에서 공격의 미끼를 과거에 던져주셨다. 지금은 어느 정도 그것을 수정하셨다 하시지만 그런 차원에서 좀 해나감으로 인해서 정말 좋은 교단 안에서 멋진 한국 교회를 만드는데 정말 쓰임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변승우 목사: 네. 뭐 저도 원하는 바입니다.
이정환 목사: 한기총에서 변 목사님 문제에 대해서 논의를 했을 때 그 때에 변 목사님이 약속을 했던 것이 있어요. 그것이 뭐냐면 “교계에 건전한 분들에게 지도와 가르침을 잘 받겠다.” 물론 그 이후에야 한기총이 분열이 되고 말았습니다마는 그 때 약속하셨던 것을 그 이후에 한기총이랑 상관없이, ‘내 신앙과 하나님 앞에 한국 교회 앞에 약속한 것이니까 지키겠다.’하는 생각을 가지고 그 이후에 지도를 받으시려고 하신 그런 일들이 있습니까?
변승우 목사: 그 때 약속을 하고 또 한기총에서 후속 조치를 취한다 그런 장을 마련해 줬다 그러면 당연히 저는 참석하는데요. 뭐 그렇지 않고 저희 개교회로서는 방법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지금 요즘 제가 학자들 책을 몇 년 전부터 많이 읽으면서 많은 가르침을 받고 많은 도움을 받고 그래서 김세윤 교수님 같은 분들 참... 책이 좋아가지구요. 저희도 김세윤 교수님 초청해서 우리 집회를 하고 그러려고 노력을 많이 하고 있는데, 일단 한국사회에서는 이단이라고 그러면 못 오시니까요. 본인이 해를 받아서 못 오시니까 저희들은 초청하고 싶은 강사도 많고 또 은혜를 받고 싶어도 사실 뭐 저희 입장에서는 방법이 없습니다.
이정환 목사: 근데 그게 안 되기 때문에...
변승우 목사: 책으로만 저희가 계속...
이정환 목사: 아까 얘기하신대로 목회의 방향전환이 이루어졌다는 얘기를 아까 했거든요 근데 처음에 은사 운동에 치중하다가 그 방향을 바꿔서 ‘아, 이게 다가 아니구나.’ 그래서 뭔가 새로운 어떤 교회의 변화를 가져오려고 그건 뭐 결국 지금 목사님 말씀대로...
변승우 목사: 저는 지금 독서로만 하고 있는 상황이구요.
이정환 목사: 누가 주변에서 와서 직접적으로 와서 도와주지는 못할지라도 그런 것을 스스로 자구책을 찾는 수밖에 없고 다른 서적이나 또 다른 어떤 자료들을 충분히 받아들여서 어떤 목회의 방향전환이 이루어진 것은 설명을 들었어요. 그런데 그것이 누가 지도를 하고 또 인도하고 그렇게 해서 된 것인지, 지금 말씀 들으면 목사님 스스로가 그 방향전환을 했다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네요.
변승우 목사: 네, 저 스스로도 신문기사들을 보고 그랬는데 제가 몰랐던 내용들이 교수님들 글에 나와서요. ‘이것은 뭘까?’ 궁금해서 책을 사보면서 많이 놀랐죠.
이정환 목사: 누가 지도해 줬으면 더 많은 것들도 변화가 일어날 수 있었을 텐데, 만약에 그런 교육의 장이 이루어진다 그러면 지난번 답변서에는 “나라도 우리 교회 지도하는 위치에 있는 분들이 그 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가르침을 받겠다.”고 그렇게 쓰셨거든요. 근데 지금 그 생각은 조금 전에 말씀하신대로 지금까지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냥 스스로 알 수밖에 없었는데, “가르침을 얼마든지 기쁘게 받겠다.” 그렇게 받아들여도 괜찮겠냐는...
변승우 목사: 아, 네. 그렇습니다.
이정원 목사: 아까 목사님이 말씀한대로 정체성이 문젠데, 대한예수교장로교 그러면 목사님이 장로교의 구원관을 가지고 목회를 하셔야 목사님이 나는 옳다고 보고, 그렇지 않으면 만약에 알미니안 교리라든지 이런 주의로 간다면 기독교 감리교로 가든지 성결교로 가든지 이런 부분에 있어서 교단의 이름이 바뀌어져야 이게 앞뒤가 맞다고 보는 거예요. 그러니깐 그런 차원이라 한다면 구원관에 대한 부분은 장로교라 할 경우에는 장로교의 정체성에 맞는 그와 같은 교회 이름에 맞는 그런 정체성을 가진 구원관을 목사님이 정립하셔야 될 거라고 드린 질문입니다. 제가 그런 차원에서, 아까 말씀하셨잖아요. 그런 차원에서 그래도 큰믿음교회가 대한예수교장로회 큰믿음교회인데 예장이라 하면서 이것은 가장 큰 문제, 가장 대단한 문제인 구원관은 알미니안주의를 따라간다 이것은 전혀 아니라는 것이죠.
변승우 목사: 뭐 설명드린 대로 저희들은 선택권이 없구요. 다른 어떤 길이 없어서 그런 것 뿐이구요. 그 다음에 답변서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통합 안에서도 나겸일 목사님, 김동호 목사님 유명한 분들부터 비롯해서 많은 분들이 구원 받은 사람도 버림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거든요. 그리고 통합의 어떤 젊은 목사는 구원받은 사람도 버림받을 수 있다는 책도 썼구요. 그런 상황에서 통합에서는 또 아무 문제가 없는데 사실 요새는 교단에 이렇게 몸담고 있어도 교단의 목회자들이 그 교단의 교리에 완전히 통일된 교단은 없지 않습니까? 제가 예성 교단에서 오히려 구원받은 사람도 버림받을 수 있다는 교리 때문에 그게 그 교단의 교리이면서도 집회 참여 금지를 당한 것처럼, 교류 금지를 당한 것처럼, 그런 것들은 그냥 뭐 지금 자유를 주고 있는 추세라서요.
이정원 목사: 제가 보기에는 구원론 문제는 자유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변승우 목사: 그렇게 말씀하시면 뭐 장로교만 옳고, 감리교도 이단 되고...
이정환 목사: 아니, 이제 그 얘기가 아니고,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목사님의 다른 어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그런 상황 속에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나 이렇게 계속 해서 나가면 또 앞으로 과거에는 이렇게 되지 않은 상태 속에서도 비난과 공격을 받았는데, 만약에 이 상태로 계속해서 나가게 되면 앞으로는 양쪽에서 두들겨 맞는 그런 결과가 된다 그 말이예요. 지금 이 목사님이 하시는 얘기는 그게 안타까워서 하는 얘기예요. 그러니깐 이제 제 생각은 그렇죠. ‘문제가 좀 원만하게 해결이 되고 새로운 지도와 가르침을 받아서 교회가 정상적인 교회로서의 사역을 갈 수 있다 그런다면 그 때에는 분명한 교단의 교회의 이 정체성을 정확하게 갖는 것이 좋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야만이 앞으로 일을 해나가는데 장애가 되지 않기 때문에 그래요. “목사님이 잘했다 잘못했다.”하는 얘기보다도 이런 문제는 사실은, 그 말씀한 게 맞아요. 요새는 신천지도 대한예수교장로회라 그래요. 그러니까 장로교 간판을 아무나 다 가져다 걸어요. 그러나 그 사람들을 우리가 상관 안 해요. 상관 안 하고... 단지 이제 목사님에 대한 어떤 그 총회의 결의와 이런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또 사면 신청을 하면서 “나는 억울한 부분도 있고 이런 상황이다. 도와주십시오. 용서하십시오.”하는 얘기를 하셨기 때문에 그러면은 차제에 “앞으로 바른 길로 가는 것이 좋겠다.”라고 하는 얘기를 지금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받아들이시고... 통합 쪽에 뭐 별의 별 사람들 다 있어요.
이정원 목사: 목사님에 대한, 솔직히 그렇잖아요, 목사님이 속된 표현으로 스타 목사가 아니면 목사님이 여기에 휘말릴 이유가 없죠. 자그마한 교회 목사가 이렇게 휘말려서, 고통당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러니깐 그만큼 규모가 있는 교회의 목사님이시니깐 그래서 그저 그런 부분에서 정체성을 바르게 틀어 준다면 그래도 한쪽 교단만이라도 목사님을 옹호하는 세력이 생길 것이고 그중에서도 특별히 장로교 구원관을 따라 간다고 하면 통합 측 같은 큰 교단에서 목사님을 옹호하는 세력이 나온다면 ‘목사님의 길이 열리지 않겠냐?’ 이겁니다. 저는 뭐 너무 뭐 한국교회가 심심하면 그냥 쉽게 이단 정죄하는 이 버릇이 좋다고 생각 안 합니다. 조금만 가지고 그냥 꼬투리 잡으면 그냥 이단이다 뭐라 하는 이것은 한국교회를 살리는 길이 아니라고 봐요. 그런 차원에서 목사님도 어차피 여기서 해벌을 받으셔야 될 차원이라면, 지금 가장 큰 문제로 우리 통합 쪽에서 푼다고 그러면 제가 보기에는 제일 앞, 위에 있는 것 때문에 “아, 그거 안 된다.”고 다른 분들에게 얘기하면 그러니깐, 우리 깊이 있게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에게는 상관없어요. 그러나 깊이 있게 대화 안 나누고 표면적인 사람들은 항상 그런 관점에서 보는 것이고 아무리 하고 싶어도 누가 목사님한테 목사님 풀어줄까 누가 폭탄 맞을 짓을 누가 합니까? 그러지 않아요? 목사님. 그러니깐 그런 차원에서 말씀 드린 것입니다.
이정환 목사: 우리가 다 부족합니다. 부족한데 제가 이제,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변승우 목사: 이동기 목사님입니다.
이정환 목사: 네, 이동기 목사님, 네, 목사님께 물어볼 일은 아닌 걸 알아요. 목사님은 제가 볼 때 어떤 의미에서는 진보적인 데를 나오셨고, 아세아신학연합대학교를 사실은 상당히 우리 교단에서는 우향우된 교회입니다. 그 교단 한철호 박사 자체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데 어떤 의미에서 상당히 근본주의적인 신앙관을 가지고 있어요.
이동기 목사: 그렇죠.
이정환 목사: 오히려 어떤 면에서 우리보다 더 철저한...
이동기 목사: 보수적이죠.
이정환 목사 : 어떤 철저한 예정교리를 주장하는... 그런데 지금 현재 같은 한 집안에서 동거를 하고 계신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런 것들도 어떤 의미에서는 한 교단, 한 일가를 이루어 나가려고 할 때에 다양한 성향의 교역자들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데에는 사실은 이런 것들이 확실한 것이 더 좋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교단의 정체를, 교단이 크고 작고를 떠나서 분명하게 하는 게... 목사님 신앙고백서를 제가 쭉 다 읽어 봤는데 그게 장로교 신앙 고백서에요. 사실은 물론 부분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셨지만, 그러니깐 앞으로는 이 부분들에 대해서는 저희들이 드린 말씀을 참고로 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변승우 목사: 네. 알겠습니다.
정도출 목사: 지금 다 똑같이 얘기하는 게 이 구원론에 관한 문제는 상당히 문제가 됩니다. 뭐, 여기서 논쟁하자는 것은 아니고, 그런데 실제로, 교단, 자란 곳도 울산 전하교회 장로교에서 자랐고 그래서 또 교단 만든 것도 장로교회 과인데, 장로교에서 칼빈의 이 견인의 교리를 부정한 게 없습니다. 차라리 그럴 거면 아예 성결교로 완전히 가시든가, 새로 성결교단을 만드시든가, 아님 성결교로 들어가시든가, 장로교단이라 하면서 이런 주장을 하는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아요. 그 점을 깊이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다.
변승우 목사: 네.
정도출 목사: 왜냐하면 우리는 “구원받은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이 지옥갈 수 없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주님께서 인도하신다고 믿고 있고, 그런데 이것을 가지고 감리교나 성결교하고 논쟁을 벌일 필요도 없고, 목사님도 말씀했지마는(이정원 목사를 가리키면서) 목사님이 정말로, 이미 벌써 영향을 줄 수 있는 그런 목사가 아니면 이런 얘기 자체가 필요가 없어요. 뭐라고 써도 그냥 내버려 둬도 되는데, 그러나 지금 목사님은 더군다나 지금 이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지금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줄 수가 있어요. 그런데 장로교단 목사라고 하면서 “나는 칼빈주의자가 아니고 알미니안주의자다.”라고 하면 이 문제는 그렇게 쉽게 납득되지 못하는...
이정원 목사: 제가 목사님, 여기서 감리교 목사님들을 내가 70명을 모아놓고 박사 과정의 로마서 강해를 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목사님이 와가지고 예정론을 얘기했을 때, 난리가 났습니다. 로마서 1장부터 16장까지 다 가르쳐 놓고 나서, 제가 예정론을 얘기했을 때는 아무런 항의가 없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로마서를 보게 되면 우리가 정확한 예정과 이런 것에 대해서 부인할 길이 없잖아요. 목사님. 목사님이 장로교에서 자라났으니까... 그런 차원이라 한다면 정말 목사님이 그 한국교회에서 폭발적인 큰 영향력 있는 일을 정말로 하고 싶다면 제가 보기에는 어떻든 간에 해제를 받아야 하니깐 그런 차원에서 결국에 이 부분의 문제를 정립을 하고 넘어가면 ‘참 좀 편하겠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정환 목사: 지금 목사님이 하실 수 있는 선택의 방법은 사실은 하나밖에 없어요. 그것이 무엇이냐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다면 앞으로 예를 들어서 좋다. 통합 측에서 날 잘 지도하고 이끌어주면 내가 이것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좀 하겠다.” 지금 당장 이렇게 이렇게 하라는 얘기는 아니에요. 얘기 할 때 바뀔 수 있는 거잖아요. 사실은 알미니안주의와 칼빈주의는 이미 토론이 끝장난 거예요. 근데 이걸 가지고 요새 토론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제가 아까 이정순 박사 얘기를 했는데, 이정순 박사가 하신 말씀이 있어요. 생전에... 아니 옛날 교리 논쟁하던 것 가지고 지금 이단 시비하는 사람이 누가 있냐고 지금 통합 측 밖에 없어요. 합동하고... 그러니까 이미 이건 어떤 의미에서 구시대적 산물이라고 봐야 됩니다. 그 때 그 당시의... 그러나 중요한 건 그 영향에 의해서 장로교회도 생기고 감리교회도 생기고 다 이렇게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각각 선교의 방법을 선택해서 나아가는데 우리 입장에서는 우리가 장로교 목사니까 예를 들어서 감리교에서 목사님과 똑같은 이런 대화의 자리를 마련해서 이 얘기를 했다면 감리교에서 똑같은 소리를 했을 거예요. “너 왜 감리교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 장로교 간판 걸어놨냐?” 그런 소리를 하실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앞으로 이 문제는 앞으로 ‘목사님과 교회와 교단이 앞으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장애가 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부분은 앞으로 어떤 결정을 하셔야 할 것 같다. 이 생각을 우리가 염려해서 말씀드리는 것이니까 참고 하시기를 바랍니다.
변승우 목사: 네.
최내화 장로: 목사님, 그 여러 질문들을 하셨는데 혹시 이번에 저희가 오늘 목사님 말씀 잘 들었고요. 또 저희가 이 문제를 놓고 클리어하게 해결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은 아닙니다. 절차가 좀 필요하고 과정이 필요합니다. 만약에 잘 되서 잘 되서 목사님이 정말 힘찬 목회를 하신다면 혹시 이대로 지금 예장 부흥 교단으로 계실 겁니까? 아니면 “나는 이 교단에 좀 앞으로 어려움이 있겠지만 나는 가고 싶다.”하는 그런 교단은 혹시 있습니까? 성결교로 돌아간다든지 아니면 뭐 어디로 간다든지 혹시 있습니까?
변승우 목사: 뭐, 저 개인적으로는 뭐 이번에 해결이 되면 통합에서 제일 오랜 시간 있었기 때문에 통합에서 목회를 하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최내화 장로: 그러면 목사님이 목회를 하고 싶다고 해서 같이 동역하는 부목사님들이나 장로님들이나 다 따라올 수 있습니까?
변승우 목사: 예성 교단에서 저를 안타깝게 생각하시고 총회장님과 총회 총무, 이대위 위원장님까지도 다 제 상황을 아시고, “우리가 억울한 거 벗겨줄 테니까 들어와서 같은 출신이니까 같이 열심히 하자.” 그래서 이제 총회장님께서 “그쪽에 교단이 있는데 먼저 결의를 해 달라.” 그래서 저희가 임시 총회를 열었습니다. 임시 의제도 말하지 않고 임시 총회를 열어서 그 자리에서 이제 “이렇게, 이렇게 해서 저희가 예성에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여러분들은 저랑 같이 가기를 원하는데 뭐 여러분 개인적인 선택이니까”라고 상황 설명을 다 하고 이렇게 투표를 했습니다. 근데 합동에서 온 목사님 한분만 “합동으로 돌아가겠다.” 그랬고요. 나머지는 100%가 다 찬성을 해서 총회장님이 다 놀래시더라고요. “어떻게 그렇게 하냐?”고 그러니까 뭐 저희는 뭐 총회라 그래도 이런 큰 총회가 아니고 또 어차피 제 상황을 보고 안타깝게 여겨서 초교파적으로 모인 목사님들이기 때문에 그냥 제가 말을 하면 거의 대부분 다 따라 주십니다. 이렇게 해도...
최내화 장로: 그런데 목사님이 지금 교단을 건의하셨기 때문에 우리 교단에서 목회를 하신다고 그러면 교단에 들어오는 과정도 쉽지 않습니다. 목사님들 같은 경우는 출신 학교에 따라서 우리 교단의 장신대에서 청목을 할 수 있는 교단이 있고, 청목을 못 받는 교단이 있어요. 그럼 우선 당장에 목사님부터 청목을 해야 하는데 그런 과정을 다 거쳐서 통합 측 교단에서 목회를 하고 싶다는 그런 뜻으로 받아들여도 됩니까?
변승우 목사: 뭐, 그 청목이 어떤 건지 제가 정확하게 이해를 못하겠는데요.
최내화 장로: 아니, 다른 교단에서 우리 교단 들어올 때 우리 교단에 일정 기간 우리 교단 신학교에서 공부를 해야 되겠다.
이정환 목사: 1년 동안 매일 하는 것은 아니고 헌법과 장로교 정치 원리에 대한 것들을 배우는데 1년입니다. 1년. 그 기간 동안...
변승우 목사: 네, 일주일에 한번이나 이렇게...
최내화 장로: 그러니까 그런 각오까지도... 아까 우리 이 목사님이 직설적으로 질문을 한 거예요. “지도를 받을 수 있겠냐?”하는 의미를 이 목사님이 하신 의미를 제가 지금 질문을 하는 쪽의 포커스를 맞추는데 ‘그게 정답이 아닌가?’ 싶어서 제가 직설적으로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그런 각오라도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이제 내가 볼 때 상당히 중요한 질문의 요지가 아니겠나 싶어요.
변승우 목사: 정직하게 말씀드리면 다 정직하게 말씀드렸지만, 정직하게 말씀드리면, 예성에서는 저에게 그 때 뭐 “일주일 동안 교육으로 이렇게 교단에 들어오는 것으로 해서 일주일 정도 교육을 받는 거 그렇게 해주겠다.” 그렇게 했거든요. 그래서 뭐 통합 교단에서도 그냥 그런 식의 선처를 해주실 것을 내심 기대를 했던 거고요.
이정환 목사: 그거는 안 되요. 그거는 안 되고...
최내화 장로: 우리 교단이 장자 교단이라고 하는 이유가 저희는 철저합니다. 헌법대로..
변승우 목사: 뭐 말씀 중에 죄송한데, 저는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어쨌든 작은 교단이라도 교단이 혼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교단이 들어오는 거니까 예성에서도 그랬고... 뭐 그러나 1년 동안 그렇게 받아야 된다면 받아야죠. 뭐 월요일 하루 정도 와서 하는 거라면 안 될 건 아니지만 그래도...
최내화 장로: 그런 절차가 있다는 걸 제가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 말씀드리는 거니까... 그래서 그런 정도의 각오... 중요하다고 생각이 되고 그래서 우리가 정리를 하고 여기서 논의된 내용을 목사님 말씀하신 것을 종합적으로 해서 또 전문가들에게 또 이 사항을 알리고 그쪽 의견을 듣고 결정을 내릴 겁니다만, 최소한 목사님이 저는 그래요. 우리 정 목사님 말씀하셨지만 제가 볼 때는 오늘 목사님 처음 뵙지만 대화하는 과정에서 목회를 잘 하시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잘하고 계시지만... 어떻든 이번에 우리 교단에서 크게 생각을 하고 목사님에 대한 족쇄를 풀어드리기 위해서 우리가 노력을 하는 거예요. 서로가. 목사님은 풀기 위해서 그러는 거고. 저희는 풀어 주기 위해서 그러는 거고...
변승우 목사: 네, 감사합니다.
최내화 장로: 가능하면... 그러나 이제 우리 생각이 전부는 아닙니다. 아까 말씀하셨지만 목사님이. 총회장 만나서 “좋다.” 위원들 만나서 “좋다.” 그래도 총회에 나가면 “아니다.” 할 수도 있고 그러나 총회를 우리가 존중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 위원들이 잘 설명을 해서 설득을 하도록 해야 되고 내가 어떤 목사님인지 모르지만 목사님이 책도 보내고 책도 받았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그런데 그럴 때에 본인이 비장한 각오가 없이는 안 된다. 그거지요. 그 정도의 각오를 가지고... 또 한국 교회에 그동안에 “내가 누를 끼친데 대해서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을 한다.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어떤 사과가 필요할 때는 해야 되고 ‘그런 것이 동반되면 좋겠다.’ 그런 생각에서 질문을 드렸으니까 외람되게 생각하지 마시고...
변승우 목사: 아닙니다. 네.
이정환 목사: 답변서에 써 주신 게 그게 다 질문에 들어 있었고, 다 하겠다 그렇게 했어요. 그러니까 뭐 우리가 이대로 받아들이는데, 장로님, 장로님은 어떠세요? 지금 목사님 얘기 하신 것에 대해서 “어이구 왜 목사님 혼자 그러십니까?” 나는 생각이 다른데 뭐 그런 그 마음이 있으십니까?
장창두 장로: 아닙니다. 저는... 저도 참 여러 목사님들을 모셔봤고요. 저는 사실 참고로 합동정통 그 오금동에 있는 신승교회라고요. 거기에 장성운 목사님.
최내화 장로: 음, 장성운 목사님. 네.
장창두 장로: 불행하게도 지금은 소천하셨습니다. 그 목사님에게 제가 지도를 받았기 때문에 안수집사, 장로 다 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합동 정통입니다. 저희 교회 특징은 목사님이 진리에 굉장히 바로 서서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저희를 인도해 주셔 왔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는 장로님들의 이견은 저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목사님이 결정하시면 흔쾌히 다 순종하기로 그렇게 믿고 제 자신도 그런 면에서는 전적으로 공감하고 있습니다.
이정환 목사: 좋은 장로님 두셨네.
김 규 목사: 그래요. 딴 거 없으시면 우리 이 목사님 한번 기도하시고...
이정원 목사: 거룩하신 주 하나님, 참 큰 그릇은 작은 그릇을 담아 주어야 하고 그래서 더 큰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어 가야 하는데 이런 여러 가지 안타까운 일들 때문에 많은 영혼들이 참으로 세상 속에서 헤매고 있을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 한국 교회를 하나님께서 굽어 살펴주사 이 교회가 참으로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인도해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여러 가지 열심 있게 정말 열정적으로 목회하려고 애쓰다 보니 때로는 이런 저런 이유들로 인해서 내 주장도 나오고 내 생각도 나오다보면 그 때 하나님의 뜻을 어긋나고 그런 가운데 때로는 여러 가지 곤궁에 처할 때가 있는데 사랑하는 귀한 여기 모인 종들을 축복하셔서 정말 하나님 기쁨 되는 복된 삶을 살도록 인도해주시기를 원하옵니다. 다시 만날 때는 웃는 얼굴로 기쁜 얼굴로 행복한 얼굴로 참으로 얼싸 안고 만날 수 있는 그런 복도 누리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끝으로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제92회 총회 때 통합은 전화, 서면, 면담 등 어떤 형태로든 저를 직접 조사한 일이 없이 새빨간 거짓말을 지어내어 이단으로 매도했습니다. 그때는 다른 교단들도, 언론들도, 원로들도, 교수들도, 총대들도 다들 꿀먹은 벙어리들이었지요. 그러나 이번에 저를 직접 불러서 조사한 후 진실이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사면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교단들도, 원로들도, 언론들도, 교수들도, 총대들도 사면 반대한다고 입에 거품을 물고 난리들이네요. 저는 정말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정말 기독교 맞습니까? 그리고 이들이 진짜 목사들일까요? 아니 그리스도인들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