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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사랑할 만한 논밭
정소영
옛날 바라나시에 마등가란 사람이 살았습니다. 그는 신분이 미천한 전타라족으로 태어났습니다. 전타라족은 인도에서 가장 낮은 천민 계급으로 주로 도살이나 양계, 고기잡이, 수렵을 업으로 하였습니다.
마등가는 자라면서 여러 가지 지식을 쌓아 현자가 되어 유명해졌습니다.
그때 바라나시의 어떤 부잣집에 딧타망가리카라는 처녀가 있었습니다. 처녀는 한 달이나 두 달 만에 한 번씩 많은 종들을 거느리고 왕의 동산으로 놀러 나갔습니다.
어느 날 마등가는 성안으로 들어가다가 성문 옆에서 그 처녀를 보았습니다. 마등가는 성문의 한 쪽 벽에 몸을 바짝 붙이고 처녀를 바라보았습니다.
처녀도 휘장 속에서 마등가를 보았습니다.
“저 사람이 누구냐?”
처녀가 종들에게 물었습니다.
“아가씨, 저것은 전타라입니다.”
“지금까지 보지 않았던 것을 보고 말았구나.”
신분이 높은 상류층 사람들은 전타라족을 더러운 짐승처럼 생각하였습니다.
처녀는 더러운 것을 보았던 눈을 향수로 씻고, 동산에 가서 노는 일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종자들은 화가 났습니다.
“오늘은 너 때문에 공짜 술과 밥을 놓쳤다.”
동산에 가서 놀면 술과 밥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종자들은 마등가를 때리고 발로 찼습니다. 마등가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얼마 후 정신을 차린 마등가는 생각하였습니다.
“아무 죄 없는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 두고 보자. 나는 저 여자를 내 아내로 맞이하고 말 테다.”
마등가는 처녀의 집 문 앞에 가서 누웠습니다.
이 사실을 안 처녀의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무슨 까닭으로 누워 있느냐?”
“당신 딸을 만나고 싶습니다.”
처녀의 아버지는 화를 내고 들어가 버렸습니다.
엿새가 지나 이레째 되는 날, 처녀가 나왔습니다.
“여보세요. 일어나십시오. 당신 댁으로 갑시다.”
“나는 당신을 따라온 사람들이 나를 습격해서 온 몸에 기운이 다 빠져버렸소. 나를 일으켜 당신이 업고 가시오.”
처녀는 마등가를 업었습니다. 거리의 사람들이 보고 있었습니다. 전타라족이 사는 마을로 갔습니다.
마등가는 처녀와 함께 며칠 동안 살면서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출가해야겠다. 그래야만 내 아내에게 최고의 재물과 최고의 명예를 얻게 할 수 있다. 따로 다른 방법은 없다.”
마등가는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내가 저 숲속에 가서 무엇이든지 가져오지 않으면 우리는 살아갈 수가 없소. 내가 돌아올 때까지 초초해하지 말고 기다려주시오.”
마등가는 집을 떠나 숲속으로 갔습니다. 부처님 법을 실천하는 사문이 되었습니다. 7년 동안 부지런히 수행하였습니다. 여덟 가지 착한 마음과 다섯 가지 신통력을 얻었습니다.
마등가는 아내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공중을 날아서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갔습니다.
“당신은 왜 날 버리고 혼자 출가를 했어요?”
아내가 마등가를 보고 슬피 울었습니다.
“여보, 당신이 전에 가졌던 것보다 훨씬 큰 영예를 가지도록 해 주겠소. 나를 마등가라 하지 말고 대범천이라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불러주시오.”
“그렇다면 사람들이 당신 남편은 어디 갔소? 하면 우리 남편은 범천세계에 가 계신다고 하시오. 언제 돌아오느냐고 묻거든 지금부터 이레 뒤 보름날에 돌아온다고 말하시오.”
마등가는 히말라야 산으로 가버렸습니다.
마등가의 아내는 마등가가 시킨 대로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였습니다.
보름날이 되었습니다.
마등가는 달이 막 중천에 떠올랐을 때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부처님 모습으로 바나라시를 눈부시게 환한 빛으로 비추었습니다. 달 한복판을 깨고 내려와 바라나시의 하늘을 세 번 돌았습니다. 사람들은 향과 화환으로 공양을 하였습니다.
마등가는 전타라촌으로 얼굴을 향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전타라촌으로 우 몰려갔습니다. 갖가지 꽃을 뿌리고 향을 피웠습니다. 향유로 등불을 켜고 입구는 은판빛깔의 모래를 흩뿌렸습니다. 꽃도 뿌리고 기도 달았습니다.
마등가는 공중에서 내려와 아내가 있는 집으로 갔습니다.
마등가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아내의 배꼽에 대었습니다. 아내는 그것만으로 아이를 배었습니다.
“여보, 그대는 곧 아이를 낳을 것이오. 그대와 아이는 최상의 재물과 최상의 영예를 얻을 것이오. 그대가 목욕한 물은 불사약이 되어, 그 물을 머리에 쏟으면 어떤 병에도 걸리지 않고, 불길한 혹도 피할 수 있을 것이오.”
마등가는 이렇게 말하고 집 밖으로 나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달에 올라가 달 한복판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마등가의 아내가 대범천의 아내라는 사실을 알고 몰려왔습니다.
그녀의 발에 머리를 대고 예배하려는 사람들은 천금이 든 부대를 내어놓았습니다. 소리가 들리는 범위 안에서 예배하려는 사람들은 백금이 든 부대를 내어 놓았습니다.
마등가의 아내는 만다바 앞에 일곱 개의 누문과 일곱 개의 누각이 있는 집을 지었습니다. 그 집에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아이가 만다바에서 났다고 하여 이름을 ‘만다뱌쿠바라라’라 하였습니다.
아들은 16세가 되었을 때 바라문들에게 식사를 제공하였습니다.
네 개의 누문에서 바라문들에게 많은 보시를 하였습니다. 언제나 일만 육천명의 바라문들이 사방 누문에 앉아 식사를 하였습니다. 일만 육천명의 바라문들은 새로 짠 유즙과 끓인 꿀과 찧어 부순 사탕 등으로 조미한 금빛 요리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아들은 갖가지 장식으로 몸을 꾸미고 발에는 황금 신을 신고, 손에는 황금 지팡이를 들고 돌아다니면서 유즙과 꿀을 돌렸습니다.
설산의 암자에 있던 마등가는 아들의 상황이 궁금했습니다. 그는 아들이 바르지 못한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오늘 가서 저 젊은이를 가르쳐야겠다. 그는 보시를 잘못하고 있다. 보시를 제대로 하도록 가르치리라.”
마등가는 공중을 날아 아아노타라 못에서 얼굴을 씻고, 마노시라타라 땅바닥에 서서 붉게 물들인 두 벌 옷을 입고 허리띠를 맨 뒤에 그 위에는 사람들이 버린 천을 빨아서 지은 분소의를 입고 흙바루를 손에 들었습니다.
허공을 날아 보시를 하고 있는 누문에 내렸습니다.
아들인 만다뱌는 마등가를 이리저리 훑어보았습니다.
“저 괴물 같은 더러운 사람은 누구냐?”
마등가가 말했습니다.
“명성 높은 분이시여, 먹다 남긴 밥을 얻으러 다니는 불쌍한 사람들이 있는 줄을 왜 모르십니까?”
“이 음식은 부처님의 제자 바라문을 위해 준비된 것이다. 바라문에게 보시를 하면 내게 이익이 될 것이라 믿는다. 여기서 냉큼 물러가라. 버릇없는 거지야. 나와 같은 양반 출신은 너같은 놈에게 보시 않는다.”
“사람들은 씨를 뿌립니다. 높은 땅, 낮은 땅, 또는 무논에. 언제고 수확 얻기를 바라면서. 그와 같이 결과를 믿고 보시하십시오. 그러면 보시할 만한 사람을 얻을 것입니다.”
“여기 출신도 높고 주문도 아는 바라문들이 있다. 그들이야 말로 이 세상에서 실로 사랑할 만한 논밭이다.”
마등가가 다시 말했습니다.
“탐욕과 분노, 거만과 어리석음 등은 나쁜 덕입니다. 그것을 떠난 사람들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사랑할 만한 논밭입니다.”
아들은 화가 났습니다.
“이 사내는 너무 지껄인다. 쫓아내어라.”
아들은 하인들에게 또 말하였습니다.
“이 녀석 낯짝을 때려 부수고, 지팡이나 대쪽으로 그 등덜미를 때려 부셔라. 그리고 목덜미를 잡아 때려 눕혀 어디든지 끌어내려 버려라.”
마등가는 그들이 가까이 오기 전에 공중으로 휙 올라 피했습니다.
“너는 코로서 저 산을 뚫고 또 이빨로 쇠를 씹으려 하며, 또 타오르는 불을 깨물려 하는구나. 너는 이 선인을 꾸짖고 욕하였다.”
마등가는 동방을 향해 갔습니다. 어느 성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 사는 성의 수호신들이 마등가에게 일어난 일을 알고 크게 화를 냈습니다.
수호신들은 만댜바를 찾아갔습니다.
“저 만댜뱌 녀석이 우리의 큰 신님을 괴롭혔다.”
수호신들 중에서 가장 나이 많은 수호신이 만댜바의 목덜미를 잡아 비틀었습니다. 다른 수호신들은 일만 육천명 바라문들의 목덜미를 잡아 비틀었습니다.
만댜바의 머리는 비틀려져 동쪽으로 향하고 그 손발은 꼿꼿이 굳어져 서 있었습니다. 눈알은 위로 치떠 있었습니다. 바라문들은 목을 비틀린 채 여기저기 가래를 뱉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마등가의 부인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이렇게 할 힘이 없다. 분명 마등가 현자일 것이다.”
마등가의 부인은 다시 말했습니다.
“넓은 지혜를 가진 사람 어디로 갔습니까? 그에게 내 아들 죄를 사하겠습니다.”
“그 분은 동방을 향해 갔습니다.”
마등가의 부인은 황금 물항아리와 황금 물병을 든 시녀들을 데리고 마등가를 찾아갔습니다.
마등가는 의자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부인은 황금항아리의 물을 그에게 주었습니다. 마등가는 그 물로 손을 씻고 양치질을 하였습니다.
“왜 내 아들에게 참혹한 짓을 했습니까?”
부인은 마등가에게 아들을 용서해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귀신을 물리칠 불사약을 주겠소. 내가 먹다 남은 이 밥을 무지한 만다부야에게 주시오. 그때 저 귀신은 그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오. 그러면 네 아들은 병이 없게 될 것이다.”
“그러면 당신의 그 불사약을 주십시오.”
부인은 황금물병을 마등가에게 내밀었습니다. 마등가는 먹다 남긴 죽을 그 안에 쏟아 부었습니다.
“그 나머지는 물항아리의 물을 섞어 다른 바라문들의 입에 떨어뜨려 넣으시오. 그러면 그들도 병이 없게 될 것이오.”
마등가는 공중에 올라 설산으로 가버렸습니다.
부인은 그 물병을 머리에 이고 자기 집에 돌아가 아들 입에 죽을 떨어뜨렸습니다. 귀신은 물러갔습니다.
부인은 먼지를 털고 일어나는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만다부야야, 너는 바보다. 너는 보시에 큰 과보가 있는 줄을 모른다. 보시해야 할 사람은 저런 사람들이 아니다. 그는 바로 마등가 현자 같은 사람이다. 지금부터는 계율을 지키지 않는 저런 사람들에게는 보시해서는 안 된다. 계율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보시해야 한다.”
부인은 먹다 남은 죽을 물병에 떨어뜨려 일만 육천 명의 바라문들의 입에 떨어뜨렸습니다. 그들은 모두 먼지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부인은 그들에게서 바라문족 자격을 빼앗아버렸습니다.
그들은 바라나시를 떠나 멧쟈국으로 가서 그 왕의 통치 밑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만다부야는 여전히 바라나시에 살고 있었습니다.
마등가는 일만 육천 바라문들이 사는 멧쟈왕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들을 회개시키려고, 그 성 가까운 곳에 바루를 들고 탁발하면서 거리를 돌아다녔습니다.
바라문들이 그를 보고 말하였습니다.
“저 사내가 여기 하루나 이틀이라도 머물러 있으면 우리의 설 곳이 없어질 것이다.”
그들은 왕에게 가서 그 사실을 아뢰었습니다.
“대왕님, 환술도 부리고 주문도 외우는 어떤 사내가 여기 왔습니다. 그 사내를 붙잡아 주십시오.”
왕은 좋다고 승낙을 하였습니다.
마등가는 의자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왕이 보낸 사람들이 그를 칼로 베어 죽였습니다.
마등가는 죽어 범천세계에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 사실을 안 모든 신들은 크게 화를 내었습니다.
신들은 멧쟈국에 뜨거운 잿비를 내렸습니다.
멧쟈국이란 나라는 이 지상에서 사라졌습니다.
◐생각 키우기
이 이야기에 나오는 만다부야는 탐욕과 분노, 거만과 어리석음을 가진 악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마등가 현자는 악한 사람에게 보시한 만다부야에게 벌을 내립니다.
악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는 사람은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악한 사람들과 같이 악한 사람이 되어 갑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을 도와주고 선한 일을 하는 사람과 어울리면 나도 점점 선한 사람이 되어 갑니다.
이 세상을 부처님의 빛처럼 밝게 비추려면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도와주어 선한 사람들이 더욱더 착하고 바르게 살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선한 사람이 되어,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본생경 497화 마등가의 전생이야기>
프로필
정 소 영(丁昭榮)
아동문예 신인문학상
세종문학나눔 우수도서 선정
저서 『한국전래동화 탐색과 교육적 의미』
동화집 『아기몽돌의 꿈』
현재 전남 순천 팔마초등학교 교장
yuljung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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