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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바냐서 정리: 남은 자의 의미(The book of Zephaniah: the meaning of the remnant)
할렐루야!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 모든 영적인 승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의지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승리를 누릴 뿐입니다. 전도를 하고 복음이 전파가 되고 사람이 믿고 예수님께로 나아오는 것을 비롯해서 교회의 건물이 올라가고 성도가 느는 것은 모두가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승리하게 하심을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이를 자신이 어떻게 한 것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하며 늘 겸손한 모습 즉 본래 자신의 모습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서신서를 다 정리하고 다시 예언서의 정리로 왔습니다. 이제 구약 전체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20년이 지났지만 언제가 게으른 자세로 소극적으로 성경을 읽고 정리를 했지만 우리 주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고 격려해 주시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쉬지 않고 정리를 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남은 성경의 정리도 즐겁게 행복하게 잘 할 수 있게 도와주시고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성경을 읽고 정리하는 가운데 성경의 깊은 의미를 잘 이해하게 도와주옵소서!
샬롬! 다시 예언서의 정리로 왔습니다. 제 오천만의 로마서에 여러 코너가 있는데 한 코너만 글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여러 코너를 오고 가면서 글을 올리고 있는데 여전히 중심적인 내용은 성경의 정리입니다. 그리고 때를 얻든지 얻지 못하든지 복음을 전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께서는 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이를 조금만 순종하고자 하면 금방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저는 최근에 창고 정리를 했습니다. 비닐하우스가 여러 동이 있는 곳에 제가 재활용일을 할 때 모아둔 쓸 수 있는 물건을 다른 동으로 옮겨야 했는데 엊그제 아침에 일찍이 근무가 없는 틈을 타서 새벽에 가서 일을 하는데 하나님께서 조금 옮기게 하시고 곧 저를 일을 정지를 시키셨습니다. 전날 일을 할 때도 정지를 시키시고 같이 일하는 분들에게 나누어줄 잠바를 미리 챙기게 하셨는데 그날도 저를 멈추게 하시고 챙긴 잠바를 다른 동에 가져다 놓게 감동을 주셨습니다. 일을 하다가 막으시고 이렇게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제가 5년 정도 이 하우스를 이용하고 있기에 각 하우스와 그 동에 계신 분들을 대부분 다 아는데 아직은 사람들이 나올 시간이 아닌데 제게 챙긴 잠바를 가져다 놓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성적으로는 아무도 없을 것이고 문도 잠겨 있을 것인데 사람이 없으면 밖에 두어야지 하면서 제 창고를 나서서 먼저 그 동으로 가보니 아는 차량이 주차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들어가 보니 제가 보관했던 동으로 이사를 오실 분이 자신의 일을 위해서 새벽에 물건을 가지려 오셨다고 하시면서 커피를 손수 타 주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고 모든 일은 하나님께 달렸다고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준비된 잠바를 가져다 놓고 필요하면 입으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을 하다가 곧 집으로 가려고 차를 몰고 조금 나가다가 주변에 아는 사람을 만나서 잠바를 나누어 드리니 고맙게 받았습니다. 이 일도 아내가 전화를 해서 곧 집으로 가게 되어서 이들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제 삶은 대부분 이렇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많습니다. 제 몸을 제어하셔서 어떤 때는 어떤 장소에 서 있게 하시고 어떤 때는 제가 가고 싶지 않은 곳도 가게 하십니다. 제 생각과 달리 저를 제어하는 힘은 자주 느끼며 살고 있는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굳게 믿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을 겪으면서 하나님께서 늘 저와 함께 하심을 체험할 수가 있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가 있습니다.
3장으로 된 스바냐서를 정리를 했습니다. 개요도 인터넷에서 찾아서 같이 보시게 했습니다. 제가 정리한 통째로 역사서 공부 자료를 보시면 예언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줄로 믿습니다. 일부를 가져왔습니다.
도표를 보면 남 유다의 예언자이고 예레미야와 나훔 그리고 하박국과 같은 시대를 사신 분임을 알 수가 있고 성경의 왕하 22장, 대하 33장에 관련 기록이 있음도 알 수가 있습니다. 이제 정리된 자료를 보시겠습니다.
스바냐
1 2 3 | 심판의 선포 회개 촉구 벌과 회복 |
장 | 키워드 | 주요 사건 | |
1 | 심판의 선포 | 스바냐 예언 | |
2 | 회개 촉구 | 주변국 심판 | |
3 | 벌과 회복 | 예루살렘 심판과 회복 |
1 장장 |
여호와의 날: 멸절 선포
1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아 시대 스바냐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 구시의 아들 그다랴의 손자 아마랴의 증손, 히스기야의 고손자 스바냐
2-6 멸절 선포: 지구상의 모든 것을 쓸어버리심/ 1) 사람, 짐승, 공중의 새, 바다의 고기, 악인들 2) 바알, 그마림 이름 및 제사장들, 3) 뭇별 경배자, 말감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 4)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찾지도 구하지도 않는 자
7-11 여호와의 날이 온다: 방백, 왕자, 이방인 옷을 입은 자 벌함
12-13 불신자들에 대한 심판 선언 : 그들은 하나님께서 선한 일도 악한 일도 않는다고 함
14-18 여호와의 날: 분노의 날, 환란과 고통의 날, 황폐와 패망의 날, 이는 사람이 하나님께 범죄를 했기 때문이다. 은도 금도 그들의 목숨을 살릴 수 없다.
2 장장 |
이스라엘 주변국의 심판
1-3 하나님을 찾아라: 백성아 모일지어다. 여호와의 분노가 내리기 전 그리하라,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겸손한 자들아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4-7 서쪽의 적 블레셋 : 가사는 버림, 아스글론은 폐허, 아스돗은 대낮에 쫓겨남, 에그론은 뽑힘, 그렛 족속은 하나님께서 침, 블레셋 땅 가나안, 해변이 풀밭이 되어 유다 족속의 남은 자에게 돌아감
8-11 동쪽의 적인 모압과 암몬: 모압의 비방과 암목 자손의 조롱을 하나님께서 들으심, 모압은 소돔, 암몬은 고모라와 같이 됨, 이는 이들이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서 교만함, 여호와께서 세상의 신들은 모두 쇠약하게 할 것임
12-15 남과 북의 적인 앗수르: 니느웨 잿더미
3 장3장 |
예루살렘의 심판과 남은 자 그리고 회복
1-5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1-2 패역하고 더러운 곳 포악한 성읍 화 있다.
3-5 방백은 부르짖는 사자, 재판장은 저녁 이리, 선지자, 제사장은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범함,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사 아침마다 빠짐없이 자기 공의 비추심
6-8 예루살렘에 대한 여호와의 분노
6-7 하나님께서 여러 나라를 끊어버림, 너는 나를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라 그리하면 형벌을 내리기로 정했으나 거처는 끊어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그들이 부지런히 행위를 더럽게 함
8 하나님께서 분노와 진노를 쏟으려고 여러 나라와 왕국을 소집할 것이다.
9-13 이스라엘의 남은 자: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 남겨둠, 이들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악을 행치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니 먹고 누울지라도 두렵게 할 자가 없다.
14-17 시온의 딸아! 이스라엘아! 예루살렘 딸아! 기뻐하라 노래하라 하나님께서 너희 가운데 계신다. 너를 기뻐하신다. 너는 사로잡힘에서 돌이켜 천하 만민 가운데 명성과 칭찬을 얻게 됨
18-20 쫓겨난 자들의 귀향: 너를 괴롭게 하던 자들을 벌하고 너를 돌이켜서 천하 만민의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오늘은 남겨진 자에 대해서 같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남겨진 자를 세밀하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언서를 정리하면서 제가 평소에 생각한 이해와 다른 이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남겨진 자는 제가 예전에 이해하기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 경우에 심판을 받지 않고 살아남는 사람들로 생각했고 또 그루터기의 비유에서와 같이 하나님께서 바알 등에 절하지 않는 사람을 남겨둔 것으로 이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서를 정리하면서 그리고 하박국서를 정리하면서 이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고 이번 스바냐서를 정리하면서 또 이에 대해서 새로운 이해가 맞음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예레미야서의 내용을 보시겠습니다. 39장에 있습니다. 참고로 도표를 통해서 예레미야, 하박국, 스바냐 선지자는 동시의 사람입니다.
렘 39: 9.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자기에게 항복한 자와 그 외의 남은 백성을 잡아 바벨론으로 옮겼으며
10.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아무 소유가 없는 빈민을 유다 땅에 남겨 두고 그 날에 포도원과 밭을 그들에게 주었더라(개역개정)
하박국서의 내용을 또 보시겠습니다.
합 1:2. "야훼여,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이 소리, 언제 들어주시렵니까? 호소하는 이 억울한 일, 언제 풀어주시렵니까?
3. 어인 일로 이렇듯이 애매한 일을 당하게 하시고 이 고생살이를 못 본 체하십니까? 보이느니 약탈과 억압뿐이요, 터지느니 시비와 말다툼뿐입니다.
4. 법은 땅에 떨어지고 정의는 끝내 무너졌습니다. 못된 자들이 착한 사람을 등쳐먹는 세상, 정의가 짓밟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공동번역)
먼저 스바냐서와 예레미야서에서 이스라엘이 멸망하면서 죽지도 그렇다고 포로로 끌려가지도 않는 남겨진 사람을 곤고하고 가난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무 소유가 없는 빈민을 유다 땅 남겨 두고 포도원과 밭을 주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전 이들에게 땅도 밭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특징이 이들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악을 행치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니 먹고 누울지라도 두렵게 할 자가 없다. 고 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이렇게 된 연유를 하박국 선지자가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4. 법은 땅에 떨어지고 정의는 끝내 무너졌습니다. 못된 자들이 착한 사람을 등쳐먹는 세상, 정의가 짓밟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하박국과 같이 하나님에 의해서 의롭다 인정을 받은 사람들은 이런 악한 세상을 따라서 살지를 않습니다. 그렇다면 악이 판치는 세상에서 의롭게 살면서 가난하게 되고 땅이 없게 된 사람들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님의 증언하심대로 아무리 불의가 판을 쳐도 오직 하나님의 의인들은 믿음을 가지고 하루하루 삶을 살아간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믿음입니다. 이런 불의한 세상을 언젠가 하나님께서 해결하신다는 믿음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불의한 세상을 왜 그냥 보고만 계시느냐고 물었고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들어서 이 불의한 남유다를 멸망을 시키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못된 자들이 멸망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의롭게 이런 나쁜 세상을 따라서 살지 않고 참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일은 이루어졌으니 예레미야 39장에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세상에서 하박국 선지자와 같이 의롭게 살면서 가난하게 되고 땅이 없던 사람들은 포로로 잡혀가지고 않고 그리고 죽음도 당하지 않고 성중에 남아서 악한 부자들이 누리고 살던 땅을 나누어 받게 됩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모든 성도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보호는 언제나 있으니 절대로 불의와 타협하지 말고 정의롭게 살라 하나님의 심판은 최후의 심판을 통해서 모든 악인이 벌을 받겠지만 그 이전에도 있다. 그렇지만 불의한 자 악한 자는 반드시 이렇게 비참한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에도 나라가 망하는 심판에도 하나님의 보호와 역전의 삶을 사는 정의로운 사람들이 존재한다라는 성경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위대한 하박국만 아니라 하박국과 같이 정의롭게 사는 하나님의 의인들이 이름도 성도 없이 온 세상에 존재하고 이들은 언제나 난리가 나고 전쟁이 나고 지진이 나고 결국 온 세상이 종말을 맞이한다 해도 하나님의 보호로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살아남는다라는 진리를 전함으로 세상의 부동산의 투기의 유혹을 이기게 하고 권력의 욕구를 이기게 하고 여자의 유혹을 이기게 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는 국가의 가르침에 따라서 국가의 운명을 나의 운명으로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국가도 부패하고 부정이 만년 하면 망하게 되는데 이때 망하는 사람들은 권력자요, 불의한 사람이며 하나님의 보호에 따라서 망하지 않고 이들이 누리던 부와 명예와 권력을 도리어 받아서 누리는 사람들도 있음을 성경은 설명하고 있으니 이것이 진리입니다. 일제강점기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을 할 수가 있으니 이씨조선은 일본에 의해서 패망하고 권력자는 죽거나 잡혀가고 남겨진 한국의 대부분의 백성은 왕의 토지를 경작하면서 세를 주고 살다가 토지조사사업으로 대부분의 가난한 농민이 자신의 토지를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자 조선 말기에 살기가 어려워서 북간도로 사할린으로 이주를 한 백성의 심정이 어떻했을 것입니까?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박해를 100년을 받을 때 유리하던 천주교 성도의 심정은 어떻했겠습니까? 하박국의 절규보다 더한 절규와 기도가 있었을 것이고 황사영은 이런 조선의 상황을 교황청에 보고하려고 했고 잡혀서 순교를 했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께서 기다리라 이 불의한 사람들을 내가 주변의 어떤 나라를 청해서 멸하겠다 하시고 이때 불의한 세상을 보면서 기도한 사람들이 하나님 어찌 그 나라입니까? 그 나라는 우리를 늘 침범해서 약탈하고 포로고 잡아간 악한 나라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나는 그들을 결코 정의롭게 보지 않는다 그들이 그렇게 함부로 약탈하고 죽이고 하니 다른 더 강한 나라를 통해서 그 나라를 심판할 것이다. 이렇게 하셨다면 우리가 최근에 본 역사를 보면 우리에게 일어난 일과 너무나 비슷하지 않습니까?
북한의 갇힌 자들의 절규도 하늘로 상달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이 땅의 집이 없고 땅이 없는 국민의 70%의 한숨과 절규도 역시 하나님께 날마다 시시때때로 상달이 되고 있습니다. 홀로 땅과 집을 가지고 천년만년 살 것과 같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경고를 하십니다. 이사야 5장에 있습니다.(공동번역)
사 5:8. 아, 너희가 비참하게 되리라. 집을 연달아 차지하고 땅을 차례로 사들이는 자들아! 빈터 하나 남기지 않고 온 세상을 혼자 살듯이 차지하는 자들아!
9. 만군의 야훼께서 내 귀에 대고 맹세하신다. "많은 집들이 흉가가 되어 제아무리 크고 좋아도 인기척이 없게 되리라.
10. 포도밭 열흘갈이에서 술 한 항아리밖에 나지 아니하고 종자 한 섬에서 곡식 한 독이 가까스로 나리라."
북 이스라엘의 불의한 사람에게 하시는 경고이고 지금 이 땅에 사는 홀로 집과 땅을 자본주의의 원리에 따라서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가지고 사는 사람들에게 역시 주시는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북 이스라엘은 이런 경고가 있고 난 후에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고 포로로 잡혀갔고 집은 흉가가 되고 땅은 폐허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심판에도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셔서 살려두고 남겨두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 사람들이 모든 믿는 정의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할 줄로 굳게 믿습니다. 자 이제 우리는 어떤 사람이 어떤 편에 서서 살고 있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법 율법에는 땅에 대해서 단호하게 정해 놓으셨습니다. 국가의 경계를 정하시고 그리고 지파 별로 경계를 정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절대로 벗어나거나 줄어들지 못하게 하시고 사고파는 것을 금하셨습니다. 그리고 땅과 집의 소유가 하나님의 것임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그리고 집이나 땅은 팔았을 경우 다시 언제든지 되살 수가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50년이 되면 돈이 없어도 무조건 주인에게 돌려주도록 하셨습니다. 인간이 사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땅과 집을 가지고 장난을 치지 못하게 아주 강하게 막으시고 이런 생각은 엄두도 못 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집도 가지고 땅도 가지고 이 땅에서 서로 사랑하며 강한 자가 약한 자를 품고 행복하게 살게 하셨습니다. 이런 삶을 위해서 모든 율법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름답고 멋있는 세상과 온갖 먹거리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우리를 이 세상에 살게 하신 분이 유일하신 하나님임을 굳게 믿고 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범사를 하나님과 함께 하면서 살도록 하셨습니다. 이런 정의롭고 공평하며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보장하는 법이 이 세상 가장 좋은 율법입니다. 이 율법을 예수님께서 사랑을 통해서 완성하시고자 이 땅에 오셨으니 이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개인의 구원으로만 너무 강조하지만 구원받은 개인을 통해서 이들이 이 세상에서 사랑을 실천하고 정의롭게 살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사복음서를 보시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너무나 자주 많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와 자유주의가 하나님의 나라가 절대로 아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에 살면서 세상의 권세자와 세상의 법에 순종을 하면서 살아야겠지만 우리는 이 나라보다 더욱 정의롭고 더욱 사랑이 넘치고 더욱 살만한 나라 즉 하나님의 나라를 앞장서서 건설해야 되고 이 나라의 건설의 선봉이 목사요, 신학자요, 교사입니다. 이렇게 해야 될 분들이 이런 성경의 말씀은 어디에 두고서 자본주의의 선봉이 되어서 부와 물질과 권력을 소유하고 성도들에게 그렇게 사는 것이 복된 삶이다라고 부추기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한국의 모습이 아닙니까? 불의를 고치자면 모든 교회의 담임이 먼저 가난한 백성의 삶 속에 직접 자신을 던져 넣어야 합니다. 집도 작은 집에 살고 월급도 평균만 받아야 하고 차도 보통 차를 타야 합니다. 이렇게 사는 장로나 목사가 한국에 얼마나 있습니까? 자립이 되고 어느 정도 교인이 있는 교회의 목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환란 시에 남겨진 자가 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북한의 절규와 이 땅의 살지 못해 날마다 자살하는 사람들의 절규가 하나님께 이미 오래전에 상달이 되었습니다. 어떤 일이 생길 줄 모릅니다. 북한의 핵이 준비가 되었고 남쪽의 지진이 빈번하며, 그리고 코로나로 모든 백성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서울이나 경기도에서 집을 사려고 할 것입니까? 어떤 환란을 피해서 어디로 가야 할 것입니까? 우리는 결정을 해야 됩니다.
그러나 가장 크고 시급한 결정이 나를 이런 부정한 세상에서 이런 하나님의 법이 무시된 세상에서 빼어 내어 하박국과 같이 정의롭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가난하게 됨도, 아무것도 없게 됨도, 두려워하지 말고 정의로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믿고 아무것도 없어도 하나님으로 인해 노래하고 춤추며 하박국 선지자와 같이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정의가 율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강한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열망에 찬물을 끼엇는 신학이 어떤 신학입니까? 율법은 아니다 율법은 폐지가 되었다 율법이나 행위가 아니다 믿음이면 족하다 믿으면 의롭게 되고 이렇게 구원받은 성도의 구원은 절대로 취소되지 않는다. 먹고 마시고 큰 차와 큰집에 살자! 이웃이 어찌 되든지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고 보자! 오늘도 큰 땅과 집을 찾아서 온 한국을 누비자 나를 따르라!! 나와 같이 사는 것이 축복된 삶이다 라고 외치는 사람을 따라서 멸망의 길로 가려고 하십니까? 정신을 차리고 남겨진 자의 삶 속으로 속히 이동을 하시기 바랍니다.
스바냐서를 배우면서 남겨진 자에 대해서 같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힘을 내시고 함께 정의롭게 삽시다.
[하나님의 편지]-스바냐 개론(3/3)
To. 사랑하는 나의 아들딸에게...
#스바냐 개론(3/3)
본서의 저자는 스바냐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본서 1장 1절의 "스바냐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기록된 데서 그 사실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스바냐는 히스기야의 현손(손자의 손자)으로서 왕가 출신이기에 상류 사회의 타락상을 자세히 지적할 수 있었습니다(1:8-9, 9:3). 그는 이러한 이유로 요시야 왕의 궁정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국내 사정은 물론 국제 사회에 대해서도 비교적 넓은 식견을 갖고 있었습니다.
본서는 므낫세(B.C. 697-642)와 암몬(B.C. 642-640)의 사악한 통치가 끝나고 요시야가 유다 왕으로 즉위한 이후의 통치 기간(B.C. 640-609)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1:1). 하지만 정확한 기록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분분합니다.
그래도 가장 타당하다고 보는 시기는 요시야 왕이 종교개혁(B.C. 622)을 일으키기 몇 해 전인 B.C. 627-626년 경입니다. 왜냐하면 요시야의 종교개혁에 대한 기록이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다에는 우상숭배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1:4-5). 만일 본서의 기록 시기가 종교개혁 이후였다면 스바냐가 개혁에 관한 사항을 기록하지 않을 리 없었을 터입니다. 이러한 사실로 스바냐는 예레미야와 나훔과 하박국 선지자와 동시대의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시야 선왕들의 재위 기간 중에 벌어진 배교 행위는 약 반세기 이상 만연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어떠한 도전도 일어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스바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음을 유다 백성과 주변국 백성들을 향해서 강력히 경고했습니다. 그 한 예로 B.C. 722년의 이스라엘 멸망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공의를 상기시키는 엄숙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본서의 주요 주제는 변절한 유다를 포함한 모든 열방을 혹독하게 징계하시는 <여호와의 날>이 도래한다는 것입니다(사 2:11, 17, 20 / 욜 1:15, 2:2, / 암 5:18, 8:9참조). 침략과 재난과 고통이 따르는 그날에 대해서는 선명한 영상을 사용하여 그 형벌의 무서움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선지자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심판(1장)을 선포하면서, 회개의 권유 및 유다와 주변 국가들(블레셋, 모압, 암몬, 가사, 앗수르)에 대해 예언하였고(2장), 예루살렘이 받게 될 형벌과 남은 자들이 얻게 될 미래에 대한 영광스러운 회복의 약속도 전했습니다(3장).
본서의 목적은 유다 및 전 세계에 임할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 곧 <여호와의 날>을 엄중히 예고함으로써 회개의 촉구를 이루는 데 있습니다. 스바냐는 여호와의 진노의 날을 예언하면서 그날의 환난과 파멸을 경고했습니다. 그렇지만 심판 중에 회개한 이방인들과 유다의 남은 자들에게 주어질 하나님의 구원을, 그들로 하여금 알게 하려는 궁극적인 목적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본서는 구원자에 대하여, 의로우사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는 분으로(3:5), 질투의 불로 열국을 대항하시는 증인으로(3:8), 이스라엘의 왕과 주님(3:15)으로 소개하면서 <여호와의 날>에 있을 우주적 심판과 그에 따른 참상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연관된 것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회개한 이방인들과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역사는(3:9-20), 온 천하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증거 됨을 인하여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미28:19-20) 할렐루야!
Maranatha!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둘람 복음 공동체🕇SNS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