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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하 쉽게 읽기- 외국 목사님 번역글
할렐루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좋은 글을 만나서 사무엘서를 재미있게 배우게 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온 세상을 힘들게 하는 신종 바이러스도 속히 퇴치가 되어서 평화가 회복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유럽과 미국이 처한 상황을 보면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모든 지도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속히 백신도 개발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병든 모든 분을 친히 어루만지사 치료하여 주옵소서!
샬롬! 봄이 오고 꽃이 피고 세상은 환해지지만 온 세계는 큰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모두가 출입을 자제하고 집에서 기도하면서 성경을 보고, 스스로의 삶을 뒤돌아 볼 때 입니다. 오늘은 영국의 파슨 목사님께서 1996년도에 설명한 사무엘상하에 대한 설명을 같이 보겠습니다. 시편에 대한 내용도 같이 조금 설명을 했고 또 쉽게 설명을 했습니다. 번역하신 분도 잘 번역을 했으니 조금 길더라도 끝까지 보시기 바랍니다.
제목 차례
[사무엘상]
1장: 사무엘의 출생
2장: 엘리와 그 아들들의 죄
3장: 사무엘을 부르심
4장: 엘리의 죽음
5장: 블레셋에 재앙을 내리심
6장: 블레셋 사람들이 법궤를 돌려보냄
7장: 사무엘이 다스림
8장: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함
9장: 사울이 사무엘을 만남
10장: 사울이 왕으로 선택됨
11장: 길르앗 야베스를 구원함
12장: 사무엘의 임직식 설교
13장: 사울이 합당치 않게 제사 드림
14장: 요나단이 블레셋을 물리침
15장: 아말렉을 다 멸하지 않음
16장: 다윗에게 기름 부음
17장: 다윗이 골리앗을 죽임
18장: 사울이 다윗을 미워함
19장: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함
20장: 요나단이 다윗과 언약함
21장: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들림
22장: 사울이 제사장들을 죽임
23장: 다윗이 광야 요새로 피함
24장: 다윗이 사울의 옷자락을 벰
25장: 나발과 아비가일
26장: 다윗이 사울의 창과 물병만 취함
27장: 다윗이 블레셋으로 내려감
28장: 사울이 신접한 자에게 물음
29장: 다윗이 참전(參戰)을 모면함
30장: 다윗이 아말렉과 싸움
31장: 사울과 그 아들들의 죽음
[사무엘하]
1장: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슬퍼함
2장: 다윗이 유다의 왕이 됨
3장: 아브넬의 죽음
4장: 이스보셋의 죽음
5장: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됨
6장: 법궤를 옮겨옴
7장: 다윗에게 주신 약속
8장: 다윗의 승전들
9장: 므비보셋을 선대함
10장: 암몬 자손들을 물리침
11장: 다윗의 범죄
12장: 나단 선지자를 통한 책망
13장: 압살롬이 암논을 죽임
14장: 압살롬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옴
15장: 압살롬의 반역
16장: 시므이가 다윗을 조주함
17장: 후새의 모략
18장: 압살롬의 죽음
19장: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옴
20장: 세바의 반란
21장: 3년 기근
22장: 다윗의 시
23장: 다윗의 용사들
24장: 인구조사의 죄
서론
히브리어 성경은 사무엘서와 열왕기서가 각각 한 권씩이다. 성경을 필사하는 서기관들은 주전 1세기쯤 구약성경의 각 책에 있는 모든 절과 단어 수를 각 책의 끝에 기록했는데(이것을 마소라 피날리스 masora finalis라고 부름) 사무엘서와 열왕기서는 그것이 하나씩뿐이다. 봄버그판 이후 근래의 히브리어 성경은 둘씩으로 분리하였다. 헬라어 70인 역(Septuagint)은 사무엘서와 열왕기서를 다 ‘왕국의 책’이라고 불렀고 각각 2권씩이다. 라틴어 벌게이트역(Vulgate)은 영어성경과 한글성경처럼 이 책들을 사무엘상하와 열왕기상하로 불렀다.
사무엘서는 저자나 저작 연대가 분명하지 않으나, 그 내용의 범위를 볼 때 솔로몬 때나 그 이후 유다 나라의 한 선지자에 의해 기록되었을 것이다. 특히 사무엘상 27:6에 “아기스가 그 날에 시글락을 그에게 주었으므로 시글락이 오늘까지 유다 왕에게 속하니라”는 말은 이 책의 저작 연대가 남북 왕국이 나뉜 후임을 보인다. (다른 견해 있음- 사무엘을 저자로 보는)
사무엘상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 시대의 역사를 기록한다. 사울의 통치연대는 주전 1050-1010년이라고 본다. 사무엘상 1-8장은 사무엘의 활동에 대해, 사무엘상 9-15장은 사울의 활동에 대해, 또 사무엘상 16-31장은 다윗의 피난 생활에 대해 증거한다. 사무엘상의 특징적 진리는 교만과 불순종이 사람의 실패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사울의 실패를 통해 잘 증거되었다.
사무엘하는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인 다윗 시대의 역사를 기록한다. 다윗의 통치연대는 주전 1010-970년이라고 본다. 사무엘하 1-10장은 다윗의 승리적 통치에 대해, 사무엘하 11-24장은 다윗의 범죄와 고난에 대해 증거한다. 사무엘하의 특징적 진리는 첫째,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메시아를 약속하신 것과, 둘째,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죄에 대해 징계하신다는 것이다. 후자는 다윗의 범죄와 그가 받은 징벌을 통해 잘 증거되었다.
◑배경지식
▲<사무엘상하>가 성경의 다른 책들보다 읽기 쉬운 편입니다. 왜냐하면 모두 이야기이기 때문이죠. 모두 실제 이야기이고, 실제로 일어난 이야기가 성경으로 전해져 내려온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무엘상하>를 읽는데, 어려움이 별로 없는 듯하지만, 그러나 어려움도 있습니다.
왜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고, 이 책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등을 따진다면..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상하>의 1강에서는, 먼저 책의 전체 윤곽을 살펴보겠는데, 그 이유는, 이 이야기들이 어떻게 발전해 나가고 있는지, 그 흐름을 여러분이 쉽게 기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2강에서는, 이 이야기들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측면에서 이 이야기들을 읽어야 하는지를, 공부해 보겠습니다.
삼상하 1~2강에서요.
▲사실 히브리 성경에는 <사무엘상하>가 한 권입니다.
현재 2권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는 내용이 너무 길어서 나눈 것입니다.
하지만 히브리 성경에 원래는 한 권이었습니다.
<사무엘상하>에는 도합 150년 역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짧은 분량의 책으로, 영국의 과거 150년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당신은 납득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시각에서 기록한 역사이어서,
하나님이 중요시 여기시는 일들만 기록하였고,
그래서 다른 많은 역사적 사건들은 생략했습니다.
이 150년 사이에 발생한 일들중에서, 아마 우리가 흥미를 가질 일들이 많이 있겠지만, 하지만 그 일들이, 하나님께는 조금도 흥미롭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록이 안 되었습니다.
이 두 권이 히브리 성경에서는 ‘역사서’라고 하지 않고, ‘선지서’라고 부릅니다.
<사무엘상하>와 <열왕기상하>모두는 ‘전 선지서’에 속합니다. former prophet
*신약에 예수님이 ‘율법과 선지자’라고 언급하심. 마22:40
왜냐하면 이것은 선지자의 시각에서 기록한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선지자의 시각’에서 본 역사이고,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시각’에서 역사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 책들은, 그 선지자의 이름을 따라 명명되어졌는데,
이 책에서는 바로 ‘사무엘’입니다.
사무엘이 <사무엘상하>를 기록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다른 책에서, 선지자는 하나님의 시각에서, 역사를 기록했음을 봅니다. *선지자의 임무 중 한 가지는 역사 기록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이 중요시하는 일들만 기록하였고,
하나님이 중요시하지 않는 일들은 기록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이것이 ‘선지자적인 시각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를 ‘선지서’라고 부르고, ‘사무엘 선지서’라고 부릅니다. *역사서가 아니라요
▲이 150년 기간은 아브라함부터~다윗까지 1천년의 말기의 150년입니다.
아브라함 시대는 대략 주전 2,000년이고, 다윗은 주전 1,000년 쯤에 왕이 되었습니다.
금년 1996년은, 다윗이 예루살렘을 수도로 세운지 3,000주년이었습니다.
그래서 금년에 예루살렘에서 큰 경축 행사들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기원전 2,000년에서 1,000년까지, 이스라엘 나라는,
한 75세 노인으로 시작하여 →한 가족이 되었고→ 다시 한 부족→ 한 민족이 되었고,
→ 마지막에 12지파로 구성된 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 기간이 총 1천년 걸렸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재위 하에 제국empire이 되었고, 그때 모든 약속의 땅을 다 차지했습니다. 그때가 모든 시대를 통털어 이스라엘 역사의 최고 전성기였습니다.
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 총 1천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사무엘상하> 이 두 권이, 그 1천년 중 마지막 150년 기간을 기록했고,
그 150년 동안, 비록 느렸지만 그러나 확실히 정상까지 도달하여 평안과 부의 전성시대를 누렸는데, 그 정점에 다윗이 있습니다.
다윗이 죽은 후의 기록은, <열왕기>에서 볼 수 있는데,
모든 것이 내리막길로 내려갔고, 500년 사이에 모든 것을 결국 다 잃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까지도 유대인들은, 다윗왕 시기가 이스라엘 전 역사의 최고 시대라고 봅니다. 바로 그때, 그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모두 얻었기 때문이고,
그때 그들은 평안과 부유를 누렸고, 블레셋도 완전히 끝내버렸고, *그 이후로 블레셋이 거의 안 나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오늘날에도, 또 다른 다윗 왕 같은 이가 나타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왕을 메시야, 히브리어로 ‘메쉬아’로 부르는데,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뜻이죠. 유대인들은 아직도 ‘다윗의 자손’이 나타나, 이스라엘의 왕좌를 차지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데, 한편 이해가 갑니다.
왜냐하면 그때가, 그들 역사에 최고 황금기였기 때문입니다.
◑개요
이제 그들이 오르막길을 출발해서, 다윗 왕국까지의 150년 역사를 살펴봅시다.
우선 먼저 전체 구성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 연관된 도표를 보시겠습니다.
<사무엘상>의 첫 12장은 마지막 사사 사무엘 의 이야기인데,
사무엘이 <사사기> 이후에, 이스라엘을 치리했던 마지막 사사입니다.
또한 그는 사사시대에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했던 선지자입니다.
▲이스라엘은 500년씩 4시대를 거쳤는데,
매 시대마다 지도자 역할이 각각 달랐습니다.
1) 기원전 2000년에서 1500년까지의 500년 기간에는
소위 말하는 족장이 다스렸는데, 바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이었지요.
2) 두 번째 500년간은, 선지자가 이스라엘을 인도했는데, 모세부터 사무엘까지였습니다.
3) 세 번째 500년간은, 왕이 다스렸는데, 사울에서 시드기아 까지였습니다.
4) 네 번째 500년에는 제사장이 인도했는데, 포로 귀환 후 여호수아 때부터 안나스와 가야바까지였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에 여러 부류의 지도자들이 있었는데, 족장, 선지자, 왕, 제사장 같은 다른 직임들이 있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그런 모든 부류의 지도자들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런데 역사에 다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누군가 선지자, 제사장, 왕의 역할을, 모두 감당할 한 지도자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영존하시는 아버지요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이시며 *사9:6 이분이 이사야서에 예언되어 있었지만, 실체는 예수님이 오심으로 실현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상> 전반부는, 지도자의 전환기였는데, 바로 선지자에서→ 왕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사무엘을 논합니다.
<사무엘상> 후반부는, 이스라엘 첫 왕인 사울을 논하고 있는데, 그는 사람이 선택한 왕입니다. 비록 하나님의 동의를 거쳤지만, 사람들이 민주적 방식으로 선택한 왕입니다.
백성들은 사울이 최상의 인선이라고 생각했고, 하나님도 그가 왕이 되는 것을 동의하셔서, 그들이 사울 왕을 세우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내리막길로 달린 슬픈 이야기를, 우리는 압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고, 어떤 관점에서 보면 아마 최악의 왕일 수도 있습니다.
▲<사무엘하>에는, 전부 이스라엘이 가졌던 최고의 왕을 논했습니다.
당신도 보았겠지만, 다윗이 사실상 <사무엘서>에서의 주인공입니다.
그는 <사무엘하>에서의 주인공일 뿐아니라,
심지어 사울의 이야기 속에서도 저자가 논하고 싶었던 사람은 다윗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사무엘서>의 주인공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이름이 마치 마법과 같아요. 영어로는 ‘데이빗’이지만, 히브리어로는 ‘다윗’으로 부릅니다.
▲<사무엘상>에서는 주로 사무엘과 사울, 이 두 인물을 논했습니다.
그 두 사람은 각각 4개의 중요한 관계가 있는데, 그 4 관계가 줄거리를 이해하는 관건입니다.
세 개는 개인과의 관계이고, 네 번째가 민족과의 관계입니다.
사무엘의 4 관계는, 개인적으로 한나, 엘리, 사울과의 관계
네 번째는 이스라엘 민족과의 관계입니다.
(영어로 일라이, 솔은, 히브리 발음으로 엘리, 사울입니다.)
그럼 사울에 관해서는요? 세 사람이 그의 왕권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는데,
첫 번째는 그의 아들 요나단, 두 번째는 선지자 사무엘, 하지만 두 사람과의 관계가 아주 갑작스레 끝났고, 세 번째는 왕궁에 들어간 다윗이고, 네 번째는 블레셋 민족과의 관계인데, 그와 그의 아들은 함께 블레셋에게 죽임당했습니다.
여기서 명확한 윤곽을 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과 사울이 각각, 세 사람과, 그리고 한 민족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었는데,
사무엘과 사울의 각자 4가지 관계에서, 그들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사무엘상은 사무엘과 사울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아래에서 살펴볼 것이고요,
<사무엘하>의 주인공은 다윗인데,
▲다윗의 일생을 요약할 수 있는 네 시기는
in-out, and up-down 입니다.
다윗의 in 과 out은 사울의 재위 때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up 과 down은 자신의 재위 때 발생했습니다.
다윗의 이야기를 쉽게 기억하기 위해서, 제가 4 단어를 고안해 낸 것입니다.
In 그가 사울의 왕궁에 들어갔다가
out 거기서 나왔고, 도망 다녔고
up 왕좌에 올라갔다가
down 거기서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그래서 in-out, up-down 이, 다윗의 요약입니다
◑1. 사무엘
좋습니다. 우리 먼저 사무엘을 봅시다.
당신이 어려서부터 주일 학교에 다녔으면, 그럼 이 이야기를 ‘거꾸로도 외우실’ 것입니다. *식은 죽 먹기로 잘 앎
▲1. 한나와의 관계
한나에겐 어린 아들 사무엘이 있었고, 엄마는 매년마다 새로운 옷 한 벌을 만들어서,
매년 조금씩 큰 옷을 지어서, 실로의 성전에 가져다주었는데, 거기서 그가 엘리 제사장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상은, 안달하는 한나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그녀는 두 아내 중 한 명인데, 다른 아내는 브닌나이고, 그는 많은 아이를 낳았어요.
하지만 한나는 아이가 없었고, 불임이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반복해서, 하나님이 임신하지 못하는 여자에게 역사하시는 것을 자주 봅니다. 여러분도 아시죠? 사라가 임신하지 못했고, 한나가 임신하지 못했고, 엘리사벳도 원래는 임신하지 못하다가, 후에 세례요한을 낳았지요.
하나님이 이렇게 임신하지 못하는 여자에게, 놀라운 일들을 행하실 수 있습니다.
막다른 골목인 것처럼 보이는 그때, 하나님은 일을 행하기 시작하십니다.
그래서 이야기는 바로 한나로 시작됩니다. 한나는 또 다른 아내 브닌나에게 상처를 입었는데, 그가 많은 아이를 낳았기 때문이지요.브닌나는 한나를 괴롭혔고, 모욕을 주었습니다. 남편을 위해서 자녀를 못 낳았기 때문이었지요.
하루는 한나가 실로에 있는 성전에 갔어요.
실로 성전 유적이 최근에 발굴되었는데, 여기 사진은 발굴되기 이전의 사진입니다.
우리에게는 그저 둘러싸인 돌무더기만 보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지금 실로에 가시면, 그 성전 유적이 이미 출토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산 위에 세워진 이 성전이, 지금은 한 무더기의 돌만 남았어요.
하지만 여기가(사진) 실로이며, 당시 언약궤가 실로의 성전에 있었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언약궤(모형)를 보여 드릴게요.
(오! 한쪽이 떨어졌네요. 이것을 제가 친구에게 빌려주었는데, 결국 그 집 아이가 망가뜨렸어요.) 여러분, 보십시오. 이것이 이스라엘의 경배의 초점인 언약궤입니다.
이 언약궤가 당시에는 실로에 있었습니다.
(제가 미리 보여드렸는데요) 이스라엘 사람 모두는 그곳에 가서 기도했고,
제사장 엘리가 바로 여기서 봉사했고, 한나도 거기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소리는 크게 내지 않고, 다만 입술만 움직였지요. 엘리는 그가 술 취한 줄 알았지요.
한나가 말하기를 ‘내가 술 취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아들 하나를 달라고 기도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나에게 아들 하나를 주시면, 제가 그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라고 하였어요. 그래서 사무엘이 태어난 것입니다.
▲2. 엘리와의 관계
다음은 우리가 사무엘이 제사장 엘리를 섬기는 것을 보겠습니다.
바로 그 과거부터 회자되던 유명한 밤에, 여러분도 이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날 밤 사무엘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는 음성을 들었어요.
그는 엘리에게 달려가서 ‘예, 무슨 시킬 일이 있으십니까?’.
엘리가 말하기를 ‘내가 너를 부르지 않았다.’
사무엘이 다시 누웠는데, “사무엘아, 사무엘아”
그래서 그가 또 엘리에게 달려갔지요. “뭘 원하시죠?” “내가 너를 부르지 않았다”
마지막에 엘리가 그에게 “내가 보기에 하나님이 네게 말씀하시려는 것 같은데,
일단 침실로 가서 자거라. 만약 다시 너를 부르시면,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대답하여라”고 하였어요.
그 날 이 12살 되는 작은 남자아이가 무서운 메시지를 들었는데,
이는 하나님이 이 노인 엘리를 심판하겠다는 것입니다. 왜요?
제사장 직을 계승 받아야 할 엘리의 두 아들이 악한 행위를 했고,
더욱이 엘리는 그들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백성들이 구운 양을 가져와서 제사를 드리려고 할 때,
그의 두 아들은, 제일 좋은 관절 부분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가져가서 자기들이 먹었습니다.
더욱 나쁜 것은, 잘생긴 여자들이 제사 드리러 오면, 그들은 장막 뒤에 끌고 가서,
거기서 음행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바로 제사장의 집에서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12살 된 이 남자아이는, ‘엘리가 이제 곧 끝날 것이다. 내가 너를 부른 것은,
네가 그 종교지도자가 대신 되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것이 이야기의 결말인데, 주일 학교에서는 이런 추악한 부분은 가르치지 않지요.
왜 ‘말씀하옵소서, 종이 듣겠나이다’ 같은 것만 가르치는지, 저 파슨은 잘 모르겠어요. 그 대목에서 끝내버립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이 메시지를 주셨고, 이로써 사무엘이 엘리를 대신했고,
제사장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엘리는 레위지파, 사무엘은 에브라임 지파.
한나의 소원도 실현되었습니다. 그는 매년 한 번씩, 한 사이즈 큰 옷을 만들어
아들을 보러 갔습니다. 아주 감동적인 이야기지요.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쟁에 나가면, 블레셋을 이긴다는 교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언약궤를 메고 나가면, 속히 승리하고, 블레셋이 언약궤를 보고 죽음에 이를 만큼 겁을 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이렇게 그들은 언약궤가, 행운을 가져다주는 부적이나 신비한 도구처럼 여겼습니다.
언약궤만 가지고 가면,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 여겼어요.
물론 이런 교만한 태도는, 패망의 선봉이지요.
결국 이스라엘은 패배했고, ‘4천명’이나 죽었고, 언약궤도 블레셋에게 빼앗긴 채 돌아왔습니다. *3만 전사 하지만 블레셋이 언약궤를 가져갔는데, 그 후 여러 가지 재앙이 닥쳤습니다.
결국 그들은 언약궤를 수레에 싣고, 두 마리 소가 끌고 가게 했는데, 소가 계속 직진하여 예루살렘에 도착했는데, 이는 참으로 신기합니다. *벧세메스, 예루살렘 남 3KM
하나님이 동물 세계까지도 다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오만했기 때문에, 큰 패배를 당했습니다.
그때 사무엘이 ‘블레셋이 이렇게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죽이고 승리하게 된 것은,
너희들이 하나님께 죄를 범했기 때문이다’라고 백성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미스바, 삼상7:6 이것은 사무엘이 선지자가 된 후, 처음으로 한 사역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집안에 있는 우상들을 버리게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위 아모리 사람들의 우상숭배를 배워서 행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우상을 버리고 난 후, 다시 블레셋을 치니, 이번에는 승리하였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과 이웃 나라와의 관계를 설명하는 간단한 공식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불순종할 때마다, 적이 그들을 공격해 왔고, 이스라엘을 이겼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회개하여,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가 되면, 그들은 적을 물리치고, 빼앗긴 땅을 되찾고, 다시 자유를 얻곤 하였는데요, 이러한 상황이 계속 반복해서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블레셋 사람들이 공격해 왔습니다.
▲3. 사울 왕과의 관계
사무엘의 한 가지 했던 일은,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왕이 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백성들이 사무엘을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우리도 열국과 같이 되게 해 주세요. 그들은 모두 보이는 왕이 있는데, 우리의 왕은 눈에 보이지 않는 왕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그다지 흥미롭지 않습니다’
그들도, 하나님이 그들의 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전쟁터에서는, 누구도 그 왕을 보지 못하였어요. 그래서 그들이 눈에 보이는 지도자를 요구했고, 사무엘에게 ‘우리는 우리와 함께할 왕을 원합니다.’ 그러니 사무엘의 마음이 아주 편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하나님께 가서 말씀드렸어요. ‘하나님, 백성들이 지도자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제가 바로 그들의 지도자이지 않습니까?’라고 하니, 하나님이 ‘너는 지도자가 아니고, 내가 지도자라’고 하셨어요. 아주 유머지요.
그래서 사무엘은 자신의 역할을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흥미로운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사무엘아, 가서 그들에게 말하라. 왕을 세우면, 값비싼 비용이 요구된다. 왕은 너희에게 세금을 부과하게 될 것이고, 중앙정부를 유지하려면, 비용이 많이 든단다.’
이는 현재 영국 상황과 너무나 흡사한데, 제가 더 말하지 않아도 여러분 모두는 잘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지요. ‘왕은 군대를 원할 것이고, 너희 젊은 아들들을 불러서 군대를 삼을 것이고, 왕이 큰 궁전이 필요하면, 너희 딸들을 여종으로 삼을 것이고, 그가 궁전과 정부를 운영하려면 엄청나게 많은 돈이 필요하여, 너희들은 많은 세금을 낼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사무엘이 하나님으로부터 백성들에게 돌아가서 ‘왕 제도는, 비용이 아주 클 것이요.’라고 전달하니 그들은 그래도 여전히 왕을 요구합니다.
사무엘이 하나님께 다시 가서 아뢰되 ‘그들이 그래도 왕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기를 ‘좋다. 그럼 그들에게 왕을 세워주어라’.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마도 ‘아이고, 내가 정말로 질렸다’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이로써 백성들이 한 사람을 택하여 왕으로 세웠는데, 그들이 선택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키가 크고, 외모가 출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2. 사울 왕
성경은, 그의 키와 어깨가, 다른 사람보다 더 높았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외모적 사람이 그들이 원했던 ‘영웅 같은 지도자’였습니다.
저는 나세르 대령이 생각나네요.
애굽의 나세르 대령도, 다른 아랍인들보다 키가 월등히 컸고, 잘 생겼어요.
중동 사람들은 바로 이런 스타일의 사람을 좋아하나 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울을 왕으로 택하였습니다.
몇 년 전에 어떤 설교자가 Surrey 와 Baxter 에 내려왔는데, 그가 사울에 대해 설교했는데, ‘그는 해더 & 숄더스 맨’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마 줄여서, 이어지는 over the other men 생략.
그 후 어느 아침에, 그가 레스토랑에 식사하러 갔는데, 그 식당 화장실에 ‘해더 & 숄더스’ 샴푸가 놓여있었습니다.
미국인이었던 설교자는, 그게 뭔지 몰랐지요. 그런데 이 샴푸가 바로 ‘헤더 & 숄더스 맨’이라고, 누군가 장난한 겁니다.*미국 설교자를 골탕 먹이려 풍자했는데, 그가 알아채지 못해서 무위로 끝났지요.
이 ‘해더 & 숄더스 맨’ 즉 사울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컸고, 잘 생겼고,
전쟁터에서 적들이 그를 보면, 도망칠 것 같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것을 보고 선택하지 않습니다.
후에 하나님이 다윗을 선택하실 때, 우리 모두 그 말씀을 잘 기억하지요.
‘여호와는 사람처럼 외모를 보지 않고, 나 여호와는 그의 중심을 보느니라’. 삼상16:7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요구하는 왕을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사울이 재위 초기에는 괜찮게 잘했어요.
사울과 다윗 모두 처음에는 좋게 시작했는데, 둘 다 마지막에 안 좋게 끝났지요.
두 사람 모두는 시작은 아주 좋았는데, 마지막에 안 좋았지요.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습니다.
여러분이 한 가지 물어야 할 질문은 ‘왜?’입니다.
두 사람 다 시작이 좋았고, 끝이 나빴는데, 하나님은 왜 ‘다윗은 내 마음에 합한 자이고, 사울은 아니다’라고 하셨을까요? 이 문제가 아주 재미있습니다. 그 대답을 짧게 찾아봅시다.
▲1. 요나단과의 관계
먼저 사울을 간단히 보겠는데,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의 관계가 재미있습니다.
요나단이 블레셋과 나가 싸워서 승리하니, 처음엔 사울이 그를 자랑스럽게 여겨 말하기를 ‘나의 아들이 했다’라고 하였어요.
후에 요나단이 잘못을 하나 범하였는데, 이는 그가 부친에게 알리지 않고 또 싸우러 가서 또 승리하였습니다. 이때 사울의 단점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이번에는 사울이 아들을 아주 질투했습니다. 왜냐면 사람들이 모두 요나단을 거론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요나단이야!’사울은, 자기 주위의 사람이 너무 잘 되는 것을 참지 못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그의 큰 약점이었습니다.
우리가 다윗 왕을 볼 터인데, 다윗 왕의 최대 강점은 자기 주위에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과, 사이가 좋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 주위에 있는, 성공한 사람들을 존경했습니다.
이러한 단점은 직장, 가정 등 모든 방면에 영향을 미칩니다. 당신은 이것이 약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당신 주위에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있으면 참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내 앞에서, 칭송받는 것을 참지 못하는 것, 말입니다.
이런 점이 바로 사울의 약점이었습니다. 이 약점이 처음에는 아들 요나단과 연관되어 나타났는데, 처음에 그는 자기 아들을 자랑스럽게 여겼어요. 아들이 전쟁터에서 승전하고 오니, 그가 ‘이것은 나의 아들이다’라고 자랑했어요.
하지만 지금 사람들이 요나단이 위대하다고 칭찬할 때, 그게 아버지를 불편하게 했고, 그는 아들과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2. 사무엘과의 관계
그가 사무엘과도 멀어졌습니다. 왜냐하면 사무엘이 여전히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왕에게 전달하여 어떻게 행하라고 말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한 두 가지 일로, 사울에 대해 아주 화가 났는데, 왜냐면 사울이 인내심이 너무 없었어요.
한번은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승전한 후 그곳에서 자기를 기다리라고 하였어요. ‘내가 반드시 올 것이니, 내가 오면 하나님께 희생제와 감사제를 드립시다’라고 하였어요.
하지만 그때 사무엘은 더디게 왔고, 사울이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여 ‘내가 집전해서 제사를 드리겠다’고 말하고,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사무엘이 와서 그에게 ‘당신이 왜 제사를 드렸습니까? 내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제사를 드리자고 하지 않았습니까?’라고 하였어요.
후에 더욱 심각한 일이 발생했는데, 사무엘이 사울에게 ‘하나님이 당신에게 나가서 아말렉을 공격하라고 하십니다. 공격할 때, 반드시 그들 모든 사람과 모든 짐승을 다 죽여야 합니다. 왜냐면 그들은 사악한 민족이요, 그래서 반드시 그들을 완전히 멸절해야 합니다’라고 말하였어요.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사무엘이 와 보니, 양과 소의 울음소리가 들렸어요. 그가 사울에게 ‘내가 당신더러 모든 짐승을 죽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뿐만 아니라, 사울이 아각 왕도 아직 죽이지 않은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사무엘이 말했어요. ‘아각을 쳐서 조각내어 죽여라.’ 삼상15:33 이때 그가 사울에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다’라고 하였어요. (삼상15:22)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잘못 인용하고 있지요. 하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주 적절했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내가 다시는 당신과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하였어요.
그래서 그가 죽을 때까지, 사울을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죽은 후, 사울과 한번 만났지요. 사울이 술법을 행하는 여인을 찾아가서, 이 신접한 여인이 술법으로 사무엘을 불러내어, 나타나서 사울과 대화를 했지요. ※이 부분은, 신학적 논란이 분분하며, 다른 해석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울의 남은 생애에서, 사울을 지도해 줄 선지자가 없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었고, 전쟁에 나가야 할지/말지 몰랐고, 그의 옆에 자문위원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비밀리에.. (신접한 여인을 찾아간 것이지요.)
사울이 왕이 되었을 초기에, 이스라엘 땅에 신접한 사람들을 금했는데, 이것은 잘 한 일이었지요. 하지만 그가 마지막에, 뭘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를 몰랐어요.
그래서 신하들에게 ‘신접한 사람들을 모두 죽였느냐?’고 물었습니다. 삼상28:7~9
그들이 말하기를 ‘거의 다 죽였지만 한 사람이 아직 살아 있습니다.’ 사울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그 신접한 여인을 찾아 갔습니다. 건너뜁시다.
▲3. 다윗과의 관계
사울이 화를 내고, 사이가 멀어진 세 번째 사람은, 당시 젊은 목동이었는데, 그가 음악을 잘 연주해서 왕궁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당시 사울은 정신적으로, 또한 도덕적으로 이미 극도로 악화 되었는데, 많은 심리학자들은, 당시 사울이 무슨 정신병적 결점이 있었는지를 오래동안 토의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후에 성령이 그를 떠나니, 악령이 그를 어지럽히기 시작하였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삼상16:14이러한 현상(악령)이 발생할 수 있는데, 사울에게 발생했습니다.
이젠 그가 예측할 수 없는 사람으로 변했고, 그는 한 순간에 컨트롤을 잃을 수 있어서, 모두들은 그를 무서워하였습니다. 그들은 음악만이 그를 안정시킬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사실 음악은 악령을 대적할 수 있는 아주 유효한 도구입니다. 그래서 이 목동을 발견했어요. 그가 악기를 잘 연주했으므로, 그를 데려왔지요.다윗이 왕궁에 와서 악기도 잘 연주했지만, 그는 또한 뛰어난 군인이었지요.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여러분 모두가 아시지요. 골리앗이 어떻게 갑자기 죽은 것을 아실 것입니다.왜냐하면 이런 것이(조약돌) 예전에 그의 머리에 박힌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제가 그런 돌을 여기에 가져 왔는데요. 한번은 제가 이스라엘을 다녀오면서 돌맹이 5개를 주워 왔어요. (돌맹이를 보여주며) 이 돌은, 엘라 골짜기에서 주운 것인데, 거기 작은 시내도 있어요.
그 계곡이 아주 특별해요. 이쪽에서 소리를 내면 맞은편 기슭까지 전달되고,
여러분이 시냇가(낮은 곳)에 서서, 다른 한 쪽에 290cm인 거인을 본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가 소리치기를 ‘누가 나하고 일대일로 붙겠느냐?’. 그는 바로 가드 사람 골리앗이고, 이 악기를 잘 다루는 목동도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가 ‘내가 그와 일대일로 붙겠습니다’라고 하였어요.
당시 사람들은 이렇게 가급적 피를 적게 흘리는 방법으로 분쟁을 해결했어요.
쌍방에서 각각 제일 센 사람 한명씩 나와서, 일대일로 붙는 것인데, 어느 한 사람이 이기면, 그쪽 전체가 이기는 것이지요. 많은 피를 흘릴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가급적 생명을 적게 잃는 방식이지요. 이 거대한 블레셋 사람이 나와서 소리치기를 ‘누가 나와 일대일로 싸우겠느냐?’라고 하니, 다윗이 대답하기를 ‘내가 싸우겠다’라고 했어요. 첫 번째 돌맹이가 바로 목표물을 적중시켰어요.
제가 중동 사람들이 물매 던지는 것을 보았는데, 지금 우리 포환 던지는 것과 너무 똑같아요. *끈 속에 돌을 넣어서, 빙글빙글 돌려서 던집니다.
그 돌맹이가 날아가서, 다른 돌에 맞으면, 그게 부서질 정도로 강력합니다.
그래서 저는, 골리앗이 왜 한 돌맹이에 맞아서 죽었는지 이해가 갑니다.
다섯 돌맹이 중에서 첫 번째 한 개가 적중해서, 이 소년이 해낸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사울의 갑옷을 입으려고 하지 않았는데,
이는 마치 ‘다른 사람의 신발이 나의 발에 맞지 않는’ 얘기의 고전판과 같습니다.
사울이 다윗에게 자기 갑옷을 입으라고 해서 입으니, 몸에 맞지 않았어요.
그가 말하기를 ‘저는 갑옷이 필요 없어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 싸움에서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아시는 아주 멋진 이야기이지요.
여러분, 사울의 이 시각 심정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가 자신의 아들까지 질투하는데, 지금 모두들이 환호하기를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하였어요. 다윗이 전국적 영웅이 되었습니다.
제가 한번은 아내와 피렌체에 갔습니다. 여러분도 기회가 되면 가셔서,
거기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걸작 조각품인 ‘다비드 상’을 한 번 보십시오.
사실 이 동상은 잘못된 조각 작품 입니다. 왜냐면 성경의 다윗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오히려 희랍의 어떤 영웅과 같은 모습이에요. *히브리인 모습이 아니지요 무엇보다, 그 동상이 할례를 행하지 않았는데, 이는 참으로 웃기지요.
하지만 이 커다란 다윗의 동상이 한 가지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구약 성경 중에서 제일 위대한 인물이고, 그는 마치 거인마냥 세상을 디디고 서 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주인공으로 모든 장면을 지배했습니다.
하지만 처음에 그는 하나의 목동일 뿐이었고, 그리고 집안에서도 팔형제중 제일 막내였습니다. 하지만 사무엘은 하나님으로부터 음성을 들었어요. ‘그는 내가 선택한 왕이다’
사무엘이 베들레헴에 있는 다윗의 집에 내려와서, 그의 부친 이새에게
‘내가 당신의 아들들을 만나 보고 싶다’라고 하였어요. 이새가 사무엘은 당시 이스라엘 지도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사무엘은, 모든 아들들을 다 둘러보았지요. 아들들은 모두가 크고 잘 생겼습니다.
사무엘이 모두 보고 난 후 ‘또 다른 아들은 없어요? 이들 모두는 아닙니다.’
이새가 말하기를 ‘막내 하나 또 있는데, 그는 들판에서 양을 돌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막내는 보잘 것 없다는 뜻이지요. 후에 안색에 홍조를 띤 막내가 들어왔는데, 한 손에는 물매를 들었고, 한 손에는 기타를 들었어요. 사무엘이 ‘바로 이 아이다’라고 하였어요.
하지만 이 사건이 문제가 되는 것은, 사무엘이 기름을 어떤 사람에게 부을 때,
사울은 여전히 왕이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사무엘이 <사사기>와 <룻기>를 기록했다고 믿고, 그가 다윗에게 기름을 부은 후에, 사울이 아직 죽기 전에, 그 책들을 썼다고 봅니다. 그러면 정황이 딱 들어맞기 때문입니다.
<사사기> 마지막 몇 장 모두가, 작은 베냐민 지파(사울 출신)가 행한 악행을 묘사했어요. 여러분 모두가 이 <사사기>를 읽어 보았겠지만, 마지막 몇 장에 묘사하기를,
이 베냐민 지파의 죄악이 극도에 달했기 때문에, 하마터면 지파 전체가 소멸될 뻔 했습니다.
하지만 다음은 아주 아름다운 하나의 짧은 <룻기>로 이어지지요. 룻기는, 아름다운 시골과, 친절하고 사랑스런 한 가족을 기록하였습니다.
저는 사무엘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주 간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베냐민 작은 지파를 믿지 말고, 너희는 저 베들레헴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배경을 파악하는 것인데, 제 말 뜻을 이해하십니까?
사무엘은, 사울이 속한 베냐민 지파는, 사악하고 믿고 의뢰할 수 없으므로
거기서 시선을 떼서, 베들레헴에 살고 있는 이 좋은 사람들에게, 시선을 옮기라는 것입니다.“거기가 우리가 바라봐야 할 대상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런 연유로 <룻기>의 마지막 글자가 ‘다윗’입니다.
이상은 저의 추론입니다. 하지만 만약 <사사기>와 <룻기>를
<사무엘서>의 사무엘의 설교와 비교해 보면, 같은 스타일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사무엘의 스타일은 역사를 언급하기를 좋아합니다.
▲좋습니다. 우리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사울이 다윗에 대한 의심이 갈수록 커짐에 따라,
다윗은 도망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도와주면서, 그와 언약을 세웠지요.
여러분, 이는 참으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인데, 요나단이 그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차기 왕이 될 것이고, 나는 당신의 신하가 될 것이다.’
요나단은 왕의 아들이고, 이 왕자가 의외로 한 목동에게 은총을 베풀어,
그를 세워주는데,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성경에서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이, 과거에 그런 적이 없을 정도로 가까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에 마음이 더러운 사람들은 말하기를 ‘이 두 사람은 동성애다’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은 왜곡되었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이 사악하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다윗이 남에게 쫓기는 도주범이 되었습니다.
제게 엔게디의 사진 한 장이 있는데, 이곳은 가 볼만한 곳입니다.
엔게디 시내가 결국 사해로 흘러 들어가죠.
그런데 시내가 사해로 흐르는 물길의 절반 즈음에서, 서쪽으로 올라가면
깊은 골짜기를 통과하는데, 아주 경치 좋은 물이 고인 웅덩이가 하나 나옵니다.
우리가 거기서 수영도 했었고요. 그 부근에 동굴 하나가 있는데, 당시 다윗이 바로 이 동굴에 숨어 있었습니다.
한번은 사울이 이 동굴에 용변을 보러 들어왔는데, 다윗은 몰래 그의 겉옷 자락만 잘랐고, 그를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사울이 당시에 1만명 병사를 데리고 다윗을 쫓아왔지만 다윗은 그를 놓아주었습니다.
그가 동굴에서 나가니, 그의 뒤에서 소리치기를
‘사울, 사울, 저는 당신의 충성스런 신하인데, 왜 나를 죽이려 하십니까?’
사울이 깜짝 놀랐어요. 왜냐면 금방 동굴에서 다윗이 그를 죽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당시 사울이 잠시 회개하는 마음은 있었습니다. 이렇게 그가 잠시 회개하는 마음이 두 번이나 있었지요.
다윗이 이곳에 숨어있을 동안에 많은 시편들을 기록했어요.
만약 당신이 ‘마사다’의 사진을 보았다면 알 터인데, 그것은 아주 거대한 바위 절벽이며, 시편에 자주 언급되는 ‘반석’은, 다윗이 거기 있을 때 쓴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피난처이십니다.’
그가 바로 그 반석(마사다)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이곳(다윗이 피해 다닌 광야)을 둘러보았다면 아실 것입니다.
다윗의 왜 자기 외로운 심정을, 그의 시편에 구구절절이 표현하였는지를!
그가 말하기를 ‘주님, 당신 외에, 모든 사람마다 나를 대적하나이다.’
이러한 하나님께 대한 ‘친밀하게 보호 받는’ 감정이, 시편에 많이 나타나는 것은,
그가 광야에서 도망 다닐 때, 이런 시편들을 썼기 때문입니다. *정황이 일치하지요
다윗이 자기 생애에서 한동안 특이한 일을 겪었는데,이 내용도 주일학교에서는 잘 가르치지 않지요. 전에 그가 블레셋의 용병 생활을 했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아둘람 굴에서 많은 사람들을 모집하였는데,
이들 모두는 사울의 통치에 불만이 있어서 다윗에게 온 사람들이며,
그가 이 사람들을 데리고, 블레셋에 가서 용병이 되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에 대해 의심이 아주 많았어요.
한번은 다윗이 입에 거품을 물고, 일부러 미친 척하여서, 위험을 피했지요.
하지만 제일 나쁜 상황이 발생했는데, 이는 사울과 요나단이 블레셋을 공격하려고 결정하였습니다.
이때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블레셋의 용병이어서,
그들도 반드시 사울, 요나단과 대전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개입하셨는데,
블레셋 장관이 말하기를, 자기들은, 다윗과 그의 부하들과 함께
이스라엘과 전쟁하는데 나가지 않겠다고 했어요. 왜냐면 다윗이 전쟁 도중에 배신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과 그의 군대는, 그 전쟁에서 빠지게 되었지요.
하지만 사울과 요나단이, 불행하게도 그 전투에서 전사하였습니다.
만약 당신이 벳산(사진을 보여주며)에 가보면, 현재에도 그 고성으로 난 길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그 길로 걸어 보았어요.
그 전쟁이 끝난 후, 사울과 요나단의 시신을, 그 성벽에 매달았습니다. *여러 성경이 ‘못박다’ 대신에 ‘매달다’로 번역
이때 다윗이 사실 왕위에 올라도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사울에게 충성했던 사람이 많이 있었고, 그들은 다윗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몇 년이 지난 후에 왕이 되었습니다.
◑사무엘하 개요
이제 아주 빠른 속도로 <사무엘하>를 보겠습니다.
삼하 1~9장에서, 다윗이 승리하여 차츰차츰 올라가는 것을 봅니다.
처음에는 유다 한 지파만, 남방의 헤브론에서 그를 왕으로 추대했고,
그 후에 다윗이 전국을 통일하였고, 마침내 중부에 있는 예루살렘까지도 점령하여, 그 곳을 수도로 정하였습니다.
이 성은 방어하기 쉽고, 공격하기 힘들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 대부분을 점령하였지만, 예루살렘은 여전히 여부스 사람들의 손에 남아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 곳을 점령하지 못했는데, 그 성의 방어가 매우 견고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삼면이 산이어서, 북쪽만 방어하면 되는 곳인데, 하지만 다윗은 이 성을 점령하였습니다. 다윗이 이 성을 점령한 경위를, 아마 여러분도 아실 것입니다. 아주 뛰어난 전술이었지요.
만약 여러분이 예루살렘에 가보시면, 남쪽에서 이 성을 쳐다보십시오.
그러면 도시 제일 꼭대기에 성전이 보입니다. (그림의) 녹색 선은, 당시의 다윗 성을 나타냅니다. 다윗성은, 마치 혓바닥 내민 모양인데, 오늘날의 남쪽 성벽지역입니다.
도시의 수원은 기드론 골짜기에서 기손 샘으로 연결되고, 둘 다 성벽 바깥에 위치해 있어서, 아주 쉽게 적에게 공격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과거 한 때, 여부스 족은 바위를 깎아 (물 퍼 나르는) 계단을 만들었는데,
그래서 성벽 밖의 기혼샘 물을 성안으로 공급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의 오른팔 요압이, 바로 이 계단을 통해서, 성안으로 들어가, 예루살렘을 점령하였습니다.
몇 년 후에 히스기아가 바위 속 터널을 뚫어서, 물이 바위 속을 지나서,
성 안의 제일 낮은 곳인 실로암 연못으로 끌어 들였어요.
그래서 먼저는 계단이 있었고, 후에는 바위 속 수로가 뚫어져서,
샘물을 성 안으로 끌어 들여서, 예루살렘은 더욱 견고하게 되었습니다.
조금 있다 여러분이 앞으로 오셔서 도표를 보시면, 더욱 똑똑히 보실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고고학자들의 도표/지도입니다.
이것이 그 계단과 히스기야의 수로인데, 여기에 앉으신 어떤 분은, 이미 그 수로로 걸어보셨을 것입니다.
지금은 히스기야 수로의 수위가 비교적 낮을 것입니다.
제가 이전에 갔을 때는, 수위가 제 목에까지 차서 아주 무서웠습니다.
이 돌 속에 뚫은 수로의 길이가 약 800m입니다. *히스기야때 건설, 지하터널
그래서 당시 그들이 바로 이 바위 틈속 수로계단으로 들어가서, 예루살렘 성을 점령하였습니다. *여부스 족 건설, 약 250미터, 지상의 바위 틈 좁은 계단
<사무엘서>는 이 사건을 기록했습니다. *계단을 통한 점령 역사
그런데 요즘 고고학자들의 발견으로, 성경의 기록이 증명된 것은, 참 잘 된 일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큰 왕국을 건설하였습니다.
그는 암몬, 에돔과 주변 여러 나라들을 물리치고, 그들을 모두 왕국 영토에 포함시켰으며, 다윗은 왕이 되었습니다. 블레셋은 완전히 패배를 당했고,
이스라엘은 다윗 왕 때 역사의 최고 전성시대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오후부터, 갑자기 모든 게 잘못 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군대들은 원정을 나갔는데, 다윗이 응당 그들을 거느리고 전쟁에 나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집에 남고 싶었어요. 근데 왕궁 옆집에 사는 어떤 여자가, 모든 남자가 싸우러 나간 줄 알고, 지붕에서 목욕을 했는데, 다윗이 왕궁에서 그를 쳐다보았어요.
이 부인이 바로 밧세바입니다. 다윗이 십계명 중의 5개 계명을 범했지요.
그는 이웃의 아내를 탐냈고(10th),
그가 또한 그 남편에게 거짓말을 하였어요.(9th)
그가 남의 아내를 도적질 하고, (8th)
그와 간음하고, (7th)
마지막에 그 남편을 살해하도록 조종했어요. (6th)
아주 무서운 이야기이지요. 그날 오후부터 모든 것이 내리막길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날부터 시작해서 그후 500년 동안,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을 차츰 잃어갔습니다. *1천년 걸려 쌓은 것을, 5백년에 걸쳐 다 빼앗김
그런 불상사들 중에 가장 비참한 것 한 가지는, *다윗이 즉시 회개하지 않은 것입니다.
밧세바가 임신했고, 남편 우리아도 다윗에게 죽임을 당했고, 태어난 아이까지 죽었습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궁중에 데리고 들어갔고, 그가 다시 임신을 하였는데,
이번에 낳은 아이의 이름을 솔로몬이라고 지었어요. 샬롬, 평안이란 뜻인데,
당시 다윗 왕국이 외적으로는 평안하였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나단 선지자가 다윗의 죄를 지적하면서, 비유를 하나 들었어요.
이 일을 다윗이 1년 동안이나 숨겼는데, 우리가 시편32편을 읽으면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라고 하였지요. 죄책감이 끊임없이 그에게 고통을 주었던 것입니다.
1년 후에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와서 이야기 하나를 해 주었어요.
‘어떤 가난한 양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집에 어린 암양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옆집에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많은 양떼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부자가, 가난한 사람의 한 마리 양을 도적질 하였습니다.
당신은 왕입니다. 당신의 판결은 무엇입니까?’
다윗이 말하기를 ‘당연히 그 부자는 죽어야지요’
나단이 ‘당신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당신은 궁중에 수많은 아내들이 있는데,
그래도 부족하여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도적질 하였습니다’라고 하였어요.
그 일로 다윗이 시편 51편을 기록하였는데, 이 시는 참회의 시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부르짖어 이르기를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그런 와중에서도, 그가 제일 근심한 것은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였습니다.
‘성령을 제게서 거두지 마시고,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소서, 오 하나님’
그는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하였어요. 이 말은, 부부의 성관계로 통한 출산이 잘못이라는 뜻은 아니고, 자신이 날 때부터 죄를 가지고 출생하였다는 것입니다.
개인이 수치를 당하니, 그의 가정이 또 다 깨어지고, 친아들이 또한 무서운 죄를 범했고,
그의 장남이 자기 친여동생을 강간했고,
이어서 그의 아들 압살롬이 백성들의 인기를 얻어서, 아버지를 예루살렘에서 쫓아냈어요. 다윗은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피난을 떠나야 했습니다.
다윗은 울면서 감람산으로 도망했습니다. 그가 피난 갔을 때,
압살롬이 무서운 일 하나를 저질렀는데, 그가 다윗의 아내(첩)을 받아 들여,
왕궁의 꼭대기 지붕에서 백성들에게 보여주듯이, 그들과 음행을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걸 볼 수 있었고, 공개적으로 관계를 맺었습니다.
이게 지금 불쌍한 다윗이 처한 꼴입니다. 개인이 수치를 당했을 뿐만 아니라,
가정이 콩가루처럼 분해되고, 전국 백성들도 불만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무엇에 불평했는지 아십니까? 왕자들의 행실에 불평하였습니다.
백성들이 말하기를 ‘다윗은 선한 왕인데, 하지만 그의 자녀들을 봐라.
이렇다면, 왕조가 어떻게 계속 이어지겠는가!’ *영국의 1996년 상황에 빗댄 듯
모든 것이 이렇게 내리막길로 달려갔습니다.
우리가 다음 단원에서 계속 논하겠습니다.
◑도입
앞 시간에 사진 한 장을 여러분에게 보여 드리지 못했는데, 지금 설명하겠습니다.
사무엘이 죽고, 라마에 매장되었는데, 그의 무덤 위에 지금 모스크 같은 건물이 세워져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가시면 모스크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근에 똑같이 생긴 두 개의 모스크가 있고, 각기 뾰족한 기도탑(미나렛)이 있고, 한 개가 더 높게, 산 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한번은 저희들이 관광버스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는데, 이스라엘 가이드가
다른 모스크를 가리키며 ‘저것이 사무엘의 무덤 자리’라고 하였습니다.
제 파슨은 ‘미안하지만, 당신이 잘못 가리킨 것 같은데, 다른 쪽 것이 맞아요’라고 하였어요. 그러자 그 가이드는 ‘당신은 사무엘서가 상권과 하권으로, 2개 있다는 것을 모르시는 같네요.’ 하하하
▶제가 1강에서, 전체 이야기를 대략 설명하였어요.
이제 당신이 사무엘상하를 읽으신다면, 아주 내용이 친숙하실 것입니다.
거기서 어떤 패턴을, 여러분은 보게 되실 것입니다. 특히 다윗의 일생의 패턴입니다.
왕궁에 들어갔다가(In), 거기서 나오고(Out), 다시 꼭대기에 올라갔다가(Up), 다시 내려오는데(Down), 아주 슬픈 이야기이지요. 그와 함께, 전체 이스라엘이, 다윗 시대의 영화를 그 후 한 번도 다시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남북 지파들 사이에 긴장이, 솔로몬 때 계속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이 죽고 나자, 내전이 발발하여, 하나이던 나라가 두 개로 나눠졌습니다. 그 남북간 긴장은, 따지고 보면 다윗이 내리막길로 달리기 시작한 후부터, 발생된 것입니다.
사실 다윗의 제일 큰 잘못은, 교만하게 백성의 인구수를 세었다는 것인데,
이때가 사단이 그를 시험한 때였습니다.
말하자면 다윗과 밧세바의 음행은, 사단이 직접 주도했다기 보다는, 이는 완전히 다윗 자신이 육신이 저지른 일이었습니다. *성경에 사탄이 유혹했다고 직접 언금 안 나옴
하지만 몇 년 후에 사단이 다윗을 시험했습니다. *이때는 사탄이 주도
사탄이 ‘다윗, 너는 정말 대단해. 네가 지금 다스리는 백성들이, 얼마나 되는지
한번 세어보지 그래?’라고 하였어요. 그러자 다윗이 인구수를 세었는데요.그저 인구 조사를 하는 것은 아무 잘못이 없는데, 문제는 그 근본 동기이지요. ‘왜 세어보는가?’입니다.
<민수기>에서도 인구수를 세었습니다. *그때는 동기가 아무 잘못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 다윗이 수를 세어 보는 것은, 전쟁준비 한다거나, 다른 원인이 있지 않고, 자기 교만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이로써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보고 싶어서였어요.
범죄는 언제나 결과가 무섭지요. 이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에 전염병 재앙을 가져왔고,
결국은 다윗이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니, 전염병이 이로써 멈추었습니다.
▶다윗이 또 한 가지 일을 했습니다. 제가 사진 두 장을 보여드립니다.
다윗이 이미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왔고, 이 그림은 예술가가 상상해서 그린 그림입니다.
이것은 다윗의 성이고, 이것은 궤를 옮길 때의 행렬인데, 다윗의 언약궤 앞에서 춤을 추었지요. 그의 아내 미갈은 그가 춤을 추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이로써 미갈은 다시는 임신하지 못하였어요.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 성에 옮겨 왔고, 예루살렘 성 위쪽에 어떤 편평한 지대가 있었습니다.
거기는 높은 지대로, 타작마당이 있었고, 주인은 아라우나였습니다.
거기에 강한 바람이 잘 불어서, 타작할 때, 알곡은 남기고, 쭉정이는 날려 버리지요.
다윗은 거기가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에, 이상적인 장소로 보았습니다.
아라우나는 ‘만약 성전을 짓는다면, 제가 이 땅을 그저 드리겠나이다’라고 하였어요.
다윗은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께 드릴 때, 값없는 것으로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삼상24:24 그래서 돈을 지불하고 그 땅을 구입했고, 거기가 도시 높은 곳에 위치한 성전 자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다윗에게 성전을 짓지 못하게 하였는데, 이는 그가 전쟁에 나가서 피를 많이 흘려서 입니다.
성전이 평화의 사람이 건축해야 하는데, ‘예루살렘’은 ‘평화의 성’이라는 뜻입니다.
‘살렘’은 ‘샬롬’이죠. *‘이르’는 city, 이르+샬롬 그래서 하나님은 ‘성전은 평화의 사람인, 너의 아들이 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솔로몬은, 히브리어로 ‘샬로모(peaceable)’인데, 샬롬에서 나온 말
그래서 다윗은 성전 건축할 계획을 작성하고, 좋은 목수들 모집했고,
좋은 재료들 거두어 들였는데, 레바논에서 온 백향목, 그리고 돌들, 모두가 준비되었습니다. 하지만 성전은, 예루살렘의 언덕에서 그의 아들 솔로몬이 건축해야 했습니다.
이게 <사무엘하> 마지막에 나오는 내용이죠.
다윗이 그 타작마당을 샀습니다. 그렇지만 전체 상황은 내리막길로 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번 강의에, 제가 여러분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당신은 이 모든 이야기들을 읽으실 때, 어떤 시각으로 보십니까?’
이것을 그저 평범한 이야기로만 보십니까?
우리가 어떤 시각으로 읽어야 하며, 왜 이 이야기를 읽어야 합니까?
이 이야기들을 읽는데 있어서, 우리가 어디에 포인트를 두어야하는 것입니까?
이 모든 것은 고대 역사이고,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이야기들이지 않습니까.
◑성경을 읽는 6가지 관점
성경의 이야기를 읽을 때, 사실 6가지 다른 관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올바른 관점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윗의 이야기와 같은, 성경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여섯 측면이 있다는 것을 제가 발견했는데요,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일화적으로 읽기>입니다. *逸話, 흥미로운 이야기
성경의 이야기를, 그저 재미있어서 읽는 것인데, 특히 어린아이들이 읽기 좋은 이야기입니다. 물론 어떤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읽어 주지 않지요. 하지만 어른은 읽을 수 있고요.
읽으면 아주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할리우드에서 성경 이야기를 근거하여 많은 영화를 만들었어요. 왜냐하면 그 성경의 이야기에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 전쟁 이야기 같은 게 들어있기 때문인데, 어떤 스토리는 아주 선정적이지요.
그래서 할리우드에서 성경에 근거하여 영화를 만드는 것은, 순전히 이야기가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주일 학교에서는, 아마 이 이야기가 재미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이야기로 들려 줄 것입니다.
우리가 어릴 때, 항상 이런 찬송가를 불렀지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야기로 가득찬 책 한권을 주셨는데,
이 책은 옛날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야기 책이며,
먼저는 동산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마지막에는 황금 도성의 이야기로 마치지요.
아빠 엄마가 보는 이야기도 있고, 아이들이 보는 이야기도 있죠.
죽음이 가까운 분들이 읽기에도 좋은 책이고,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읽거나, 들을 수 있는 이야기책입니다.
그 중에 예수님의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지요.
이 찬양을 아시는 분 있으십니까? Maria Matilda Penstone이 쓴 노래입니다.
여러분, 성경의 이야기들은, 확실히 최고 경지의 아주 훌륭한 이야기들입니다.
단어 구사와 문체가 아주 뛰어나서, 읽으면 아주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성경을 읽는 이유가, 다만 이야기/스토리가 재미있어서 입니까?
물론 아니겠지요. (계속해서 살펴보겠습니다.)
▶2. 둘째 <큐티식 성경읽기>. 일부 사람들은 개인 경건의 시간을 가지는데,
이때 성경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자꾸 자기 개인에게 주시는 어떤 메시지를 찾으려 하지요.
신자들이 대개 이런 방식으로 성경을 읽습니다.
저는 이렇게 읽는 방식을 ‘점성술식 성경읽기’라고 부르고 싶어요. “the horoscope method.”
여러분이 매일 성경을 읽을 때, 어떤 구절이 눈에 확 들어오면서,
여러분이 처한 상황에 적당한 메시지가 나타나기를 기대합니다. (제 말뜻을 이해하시죠?)
*관련글 : 개인적 신앙을 벗어나야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성경을 읽는데, 어떤 때는 정말로 이런 방식이 도움이 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렇게 읽는 성경구절들은, 당신에게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건 당신이 마음으로 원했던 구절입니다.
만약 당신이 제대로 성경을 읽으려 한다면,
성경이, 당신에게 합당한 구절을 찾아서, 말씀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명중 확률이 아주 높을 것입니다.
어떤 청년이 ‘마리아’라는 여자를 사랑했는데,
그가 성경을 읽는데, ‘마리아를 아내로 데려오기를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말씀했지요. 마1:20
많은 크리스천들이, 이러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고, 그에 따라 행동합니다.
저는 이런 오해의 고전적인 예 한 가지를, 지금 감히 말씀드리지 못하겠어요.
왜냐면 지난번에 다른데서 얘기했을 때, 마침 그런 사람이, 강좌를 듣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저도 조심스럽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성경을 잘못 적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유다가 목매어 죽었다’는 곳을 먼저 읽고, ‘오, 이게 음성인지도 몰라’
그리고 ‘너도 이와 같이 하라’는 곳을 읽으면.. 그러면 안 되지요.
좋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반드시 전체 문맥을 보아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성경에서, 자신의 현재 상황에 합당한 구절만 찾아서 읽으려 한다면, 그럼 <사무엘상>의 이 구절은 어떻게 해석하겠습니까?
‘당신의 가족에 늙은이가 없게 될 것이다.’ 삼상2:31
이것이 당신에게 적합한 메시지, 당신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까?
사실 이것은 어린 사무엘이 엘리에게 말씀한 예언이었는데요,
예레미야가 바로 엘리의 후손이에요.
그래서 예레미야가 17세때부터 선지자로 섬겼어요.
그는 자신이 혹시 오래 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저주가 집안 대대로 내려 간 것입니다.
다음으로, 아래 구절도 잘못 적용될 수 있는데요.
‘네 손이 무엇을 만나든지, 그 일을 하라(전9:10) 이는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실 것이다’
하지만 이튿날에 계속하여 성경을 읽는데,
‘사무엘이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서 아각을 찍어 쪼개니라’는 구절을 읽었어요. 삼상15:33 여러분이 생각하기를 ‘이것이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인가? 그렇다면 내 인생에서 아각이 누구인가?’ 제 말뜻을 이해하시죠?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 방법을 우습게 여깁니다.
저도, 하나님이 어떤 때는, 성경 한 구절을 가지고,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목적 때문에, 성경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마음으로 성경을 읽는 것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이런 방식은, 성경을, 별개의 각각인 구절들을, 한 통에 다함께 섞어놓은 무더기로 보는 방식인데, *그 중에 하나를 골라잡으세요. 그게 아니라.. *성경은 문맥으로 봐야 합니다.
비극은, 성경을 장과 절로 분리한 것이, *편리하라고 그랬겠지만요.
사람들이 성경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있어서,‘구절 중심의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문맥 중심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요.
만약 그렇게 구절 중심으로 읽으면, 성경으로부터 얻는 게 아주 적어집니다.
그건 어리석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때때로, 한 구절을 집어서 주실 때가 있기는 하지만요.
▶3. 세 번째 성경의 이야기를 읽는 방법으로,
설교자들이 보통 이런 방법으로 사무엘서를 읽고 연구하지요. 바로 <인물별 연구>입니다.
성경의 아주 큰 특징이 하나 있는데, 바로 정직성입니다.
성경은 매 인물들의 선한 점과/ 약한 점을 모두 다 말씀합니다.
그들의 실패와/ 성공, 그들의 미덕과/ 죄악, 그들의 강점과/단점을 모두 정직하게 지적하지요.
그래서 성경을 인물별로 읽고 연구하면, 우리에게 매우 도움을 줍니다.
야고보가 신약성경에서 ‘성경은 거울과 같아서, 성경에서 자신을 볼 수 있고,
또한 다른 사람을 쳐다봄으로써, 교훈을 배울 수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약1:23~24
성경은 항상 우리에게, 그 인물들의 잘한 점과 잘못된 점을 양면 다 거울처럼 지적하는데, 이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예외가 있는데요, 성경에서, 예수님 말고, 결점이 하나도 없이 제시된 분이, 유일하게 딱 한 분 있습니다.
여러분,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요셉입니다.
만약 당신이 요셉의 일생을 읽고 연구하면, 요셉이 예수님의 일생과 아주 병행(평행, 닮음)됨을 발견하실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모함을 당했고, 어려운 곤경에 처해서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서 자기 백성의 구원자가 되고, 애굽을 다스렸습니다.
요셉의 모든 일생이, 예수님과 너무 같은 모형type입니다.
구약에서, 요셉 한 사람만 단점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울의 인격을 성경을 읽으면서 살펴보면,
그는 시작부터 강점을 나타냈는데, 잘 생기고 키가 컸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하니, 그가 딴 사람으로 변화되면서,
그래서 그의 모든 일이 잘 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인격적으로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는데,
자기 주변 사람이 자기보다 잘 되는 것을 보면, 불안해서 못 견디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흔히 볼 수 있는 모든 사람의 약점이기도 하지요.
이로 인해 사울은, 주변 사람과 인간관계가 좋지 않게 되고,
마지막에 성령이 떠나시고, 악령이 들어갔지요.
다윗을 읽고 연구하면, 그의 키워드는 바로 ‘마음’입니다. 다윗은 선한 마음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사울은 키가 다른 사람보다 훨씬 컸지만, 다윗은 선한 마음이 컸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의 다윗을 연구하면, 그의 ‘선한 마음’을 종종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한 마음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고, 선한 마음을 보신다’고 하였습니다. 삼상16:7
하나님은 다윗에게서 ‘선한 마음’을 보셨습니다.
다윗의 인격을, 성경을 읽고 연구하면,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는 야외 활동을 좋아했고, 노동자(당시 목동)이었으며, 음악에 능숙했으며, 매우 용감했으며, 그래서 혼자서 사자와 곰을 때려잡았습니다. 하지만 몇 년 동안이나, 그는 대화하거나 노래할 대상이, 하나님 한 분밖에 없었습니다. *외롭게 하나님과만 교제했습니다.
그 오랜 외로운 교제의 세월이, 그가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되는데, 준비기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제가 성경을 읽다가 멈추고, 밑줄을 친 것은
다윗이 수없이 ‘하나님께 물었다’고 언급한 부분입니다.
어떤 결정을 앞두고도, 어떤 위기상황에서도, 그는 하나님께 기도로 물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그를 사랑한 원인입니다. 다윗의 마음이 하나님과 합했고,
어떤 일도, 자신이 혼자 서둘러 결정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로 의논했습니다.
그는 그 일을, 하나님의 방식으로 처리하기를 원했습니다.
비록 그가 많은 잘못을 범하였지만, ‘하나님께 물은 점’이 바로
하나님이 그를 계속 사랑하신 이유였습니다.
그가 전쟁에서 승리해도, 남을 너그럽게 대하였습니다.
그는 적들이 죽는 것을 보면 마음이 슬펐고,
심지어 사울의 아들 중 하나가 죽임을 당했을 때도, 그는 아주 분노하였습니다.
사울이 그의 대적이었잖아요. 이렇게 그는 적들을 너그럽게 대했고, 용서할 줄도 알았습니다.
그는 또한 용감한 사람을 존중했고, <사무엘서>에는
다윗이 존중한 많은 사람들의 명단이 몇 차례 나오는데, 거기엔 그의 용감한 세 명의 부하 명단도 나옵니다.
다윗이 쫓기는 기간이었어요. 그가 한번은 아주 어리석게 말했지요.
‘베들레헴 우물의 물을 정말로 한 모금 마시고 싶구나. 그 우물의 물이 진짜로 마시기 좋았는데’ 다만 고향이 그리워서 한 번 하는 소리였는데, 하지만 그의 제일 용감한 세 용사가, 그 말을 듣고서, 적의 방어선을 뚫고 들어가서, 한 밤중에 베들레헴에 가서, 그 우물의 물을 떠서, 가져왔지요. ‘여기 베들레헴의 우물물이 있습니다.’
다윗은 그 물을 마시지 않고 땅에 부으며 하나님 앞에 부어 드리며 말했어요.
‘이것은 너희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가져온 물이니, 나는 이 물을 마실 수 없다’
그래서 그것을 하나님께 드렸어요. 이렇게 그는 자기 용사들을 존중했어요.
다윗은 자기가 존중하는 사람들의 명단을 갖고 있었고,
<사무엘하>는 마지막 부분에, 다윗의 용사들의 명단을 일일이 소개하면서, 끝을 맺습니다. 다윗이 그들을 매우 존중하였는데, 이 점이 사울과 완전히 상반되지요.
다윗은 하나님을 위하여 선한 마음을 갖고 있었고, 사람들을 존중하기를 좋아했어요. 사울은 하나님께 대해 선한 마음이 없었고, 자기 주위의 뛰어난 사람들을 그 누구도 좋아하지 않았는데, 다윗과 참으로 대조적인 모습이지요.
비록 두 사람 모두가 시작은 잘 했지만, 마지막이 모두 좋지 않았습니다.
당신도 <사무엘서>중의 여자들을 읽고 연구해 보세요.
한나의 이야기도 아주 감동적이지요. 하나님이 그가 아들 하나를 낳을 것이라고 할 때, 그가 입을 열어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오랜 세월 이후 15세쯤 된 젊은 여자가 있는데, 이름은 미리암(마리아의 히브리어)입니다. 우리는 그를 마리아라고 부르지요.
그도 우리가 ‘마그니피캇’이라 부르는 노래를 지었는데, *소위 ‘마리아의 찬가’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 이 ‘마리아의 노래’가 불려지고 있습니다.
*Magnificat : Magnify의 라틴어 ‘내 영혼이 주를 높이며’ 눅1:46,
하지만 마리아의 이 노래는, 한나의 노래에서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무엘상 1장을 읽을 때, 이 노래를 주의해 보셨습니까?
또한 아비가일도 읽고 연구해 보세요. 이 여자는 연구해볼 가치가 있습니다.
여기에 앉으신 자매님들은 반드시 성경을 읽고, 연구해 보시는 게 좋습니다.
다윗이 그의 남편(나발)의 집에 와서, 자기의 군대에게 음식을 제공해 달라고 하니,
그의 남편이 ‘이 다윗이 자기가 누군데?’라고 하였어요.
그는 다윗을, 하나님이 선택하신 왕으로 생각하지 않았어요.
※성경은, 아비가일을 나발의 ‘아내’로 말씀하는데,
데이빗 파슨 박사는, 영어 강의에서 ‘딸’로 말합니다. 아마 잠시 헷갈리신 듯. 번역은 ‘딸’→‘아내’로 고칩니다. 그런데 혹시 다른 히브리어 성경 사본에는 ‘딸’로 나오는지도 모르겠지요.
그래서 다윗이 화가 나서 그를 죽이려고 하였어요.
하지만 그의 아내 아비가일이 급히 다윗을 맞이하러 나왔지요. 큰일 날 뻔했지요!
그는 참으로 남자를 대하는 방법을 알고 있어요.
여기에 참석하신 자매님들이 만약 남자를 대하는(다루는) 방법을 알고 싶으면,
아비가일의 이야기를 읽어 보십시오.
그의 말이 너무나 현명해서, 남자들이 꼼짝 못합니다.
그는 다윗에게, 남편은 어리석은 사람이라서,
나발에게 너무 화를 내며, 심각하게 응대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어요.
그렇게 해서 자기 남편의 생명을 살렸지요.
그런데 나발은, 얼마 안돼서 심장 발작으로 죽습니다.
다윗은 아비가일의 처신이 아주 마음에 들어서, 그를 아내로 취하였습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이런 <인물들>을 읽고 연구할 가치가 있습니다.
그의 ‘개인 인격적 측면’이든지, 혹은 그의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적 측면’이든지
두 방면 다 읽고 연구할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여전히 제일 좋은 성경 읽는 방식은 아니지요.
이 방법이 도움은 되지만, 제일 좋은 방식은 아닙니다.
▶4. 네 번째 성경연구 방법은, 이스라엘 <역사>를 읽고 연구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한 가족에서→ 한 부족으로→ 또한 나라로→ 마지막에는 왕국empire으로 변천했는지를 보는 것인데,
여기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정치인이라면 반드시 다윗을 읽고 연구해야 합니다.
제게 Tom Houston 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그가 오늘날의 정치인들을 위하여, 다윗에 관한 책을 썼어요.
그 책이 아주 훌륭해요. 다윗이 어떻게 지도자로서의 재능을 길렀고,
어떻게 사람들과 협력해서, 정부를 잘 운영했는지에 대하여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은 오늘날 정치지도자들이 리더십에 관해 연구하는데 있어서, 아주 뛰어난 책입니다.
우리가 앞서, 이스라엘의 지도자 역할이 계속 변화되어 출현했다는 것을 논했습니다.
즉 족장에서→ 선지자로→ 그리고 왕까지,
그들 지도자들은 백성들을 인도해서 계속 상승세로 올라갔고,
결국 그들은 약속의 땅을 완전히 점령하기까지 이르렀는데,
이렇게 역사를 읽고 연구하는 것은, 아주 좋은 연구방식입니다.
우리는 <사사기> 마지막에 ‘그때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는 말씀을 기억합니다.
그들이 지금은 왕이 있지만, 상황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지도자를 읽고 연구하는 것은, 우리에게 아주 가치가 있는 일이지요.
그들의 정치 구조도 우리가 연구하고 토론할 가치가 있습니다.
12지파의 각각 독립된 연방제에서, 중앙집권제로 변하였는데,
그것이 가져온 결과는, 오늘날의 유럽 상황과 흡사한데요.
여러분도 각 지파의 연방제와, 중앙집권제의 두 구조의 차이점을, 연구해 보세요. *미국이 연방제
우리가 성경에서 얻는 교훈은, 중앙집권제에 편향하면 할수록,
그 중앙정부의 성격이, 나라의 운명에 더욱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좋으면 더 좋게, 나쁘면 더 나쁘게.. 어쨌거나 큰 영향을 미칩니다. 사울은 나쁘게, 다윗은 좋게..
여러분, 이러한 역사적 시각에서 성경을 읽고 연구할 가치가 있습니다.
다윗의 뛰어남과 관리 능력이 돋보였지요.
그래서 다윗 때에, 중앙정부제의 운영 하에, 그들은 평화와 부의 최고경지에 도달했지만, 그러나 그들이 내리막길을 달린 원인 또한 중앙정부로 인하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만약 권리가 집중할수록, 권리를 장악하는 자들의 도덕성이
국가의 운명에 더욱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공부가 오늘날의 상황(유럽 통합?)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1994년 강의
하지만 이것도 여전히,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제일 정확한 방법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런 분위기 때문에, 영국이 아직 EU에 가입하지 않고 있나요?
▶5. 또 한 가지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방법은, 신학자들이 채택하는 방법인데,
이것이 제일 나쁜 방법입니다.
바로 <비평>적 방법인데, 독일에서부터 시작 되었지요.
전에 제가 독일에 있었을 때, 베를린 어떤 큰 교회에서 설교를 했어요.
그 교회 강단에 어떤 유명한 설교자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마틴 니뮬러입니다.
그는 1차대전 때 잠수함에서 함장이었지만, 2차대전 때는 히틀러를 반대하여
다호(地名) 수용소에 감금되었습니다.
제가 그 강대상에서 독일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를
‘당신들이 전 세계에 준 피해를 어느 때에 회개 하겠습니까?’
그들은 제가 2차 대전을 가리키는 줄로 알았는데, 저는 그게 아니었지요.
그들은 제가 유대인 대학살을 가리키는 줄로 알았는데, 사실 그것도 아니었지요.
저는 ‘당신들 독일인들이, 전 세계에 준 제일 큰 피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건 바로 고등비평 입니다.’
이 신학이 세계 각지의 신학교에 아주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젊은이들이 신학교에, 사역을 훈련 받으러 갔다가,
믿음을 모두 잃어버리고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왜냐면 성경비평학적 연구가 성경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성경을 읽을 때, 한 손에 가위를 들고서,
기적 같은 부분은 가위로 잘라내고 읽도록, 배웠어요.
이것이 바로 제가 말하는 ‘성경(고등)비평’입니다.
‘성경 비평학’에는 두 단계가 있는데, 모두 ‘성경에 어떤 실수가 있는지를 찾아내는 학문’입니다.
‘하등 비평’ lower criticism 은 별 문제가 안 되는데,
‘고등 비평’ higher criticism 은 큰 문제가 되지요.
이 두 용어를 여러분은 아마 못 들어 보셨을 것이에요. 제가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겠는데요, 이러한 비평학이 아주 큰 피해를 끼쳤습니다. 그래서 신학교를 신학 묘지로 변하게 하는데, 그들이 실제로 ‘믿음’에 있어서 많은 부분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하등비평은, 성경을 베껴 써서 사본을 만들 때, 어떤 실수가 있지 않았는가를 연구합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성경 원본은 없고, 손으로 베껴 쓴 사본에서 사본으로만 계속 전해져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베껴서 사본을 만들던 과정 중에, 틀린 곳이 없는지 점검하는 것인데요,
저 파슨은 전적으로 이 하등비평을 지지합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굉장한 수고를 해서, 가능한 성경의 원문으로 향해 거슬러 올라가서, 지금 우리가 가진 성경이 원본과 정확하다는 사실을 확증하려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신약성경은 그 정확도가 98%에 달한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입니다.구약 성경은 차이가 조금 더 난다고 하지요.
그러나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것은, 이렇게 오랜 세월을 거쳐 사본에서 사본을 만들어 왔는데, 피할 수 없는 오타가 있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1948년에 한 베두인 목동이, 우연히 돌맹이를 동굴 안으로 던졌을 때,
거기서 ‘사해 사본’이 발견되었는데, 거기 보니 완전한 <이사야서>가 보존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바로 이 <이사야서>가, 그전까지 현존해서 내려오던 최고 오래된 이사야서 사본보다무려 1천년이나 앞선 사본이었습니다.
그 이전까지, 우리가 사용한 최고 구약성경사본은, 서기 900년 경에 쓴 사본이었습니다. 하지만 사해에서 발견된 이 사본의 년대는 주전 100년경입니다.
그래서 <이사야서>의 정확성에 대한 우리의 연구를, 1천년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이 미국에 전해지자, 1948년 당시 미국은 RSV 영어성경 중 <이사야서>를 번역하고 있었는데, *Revised Standard Version
그 번역 작업을 잠정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1천년 전 고대 사본을 찾았으니까요.
*번역할 때 쓰던 이사야서 원본을, 사해사본으로 바꿔야 하는 처지.
그런데 신학자들이 다 검사하고 나서, 그들은 미국인들에게,
미국에서 RSV영어성경을 계속 번역해도 된다고 통지하였습니다.
왜냐면 이사야 사본이 1천년이 지났는데도, 고스란히 그대로 보존된 것을, 알게 되었지요. 다만 몇 곳의 사소한 내용만, 수정해야 될 곳이 있었어요. 아주 흥미롭지요.
이렇게 ‘하등비평’은, 성경 사본의 원문을 찾는 것인데,
성경이 정확할수록 좋지 않습니까?
하지만 피해를 주는 것은 고등비평입니다.
고등비평은, 설령 성경의 원문을 찾았다고 해도, 그것은 사람이 쓴 것이니 잘못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피해를 입히는 것은 고등비평입니다.
고등 비평적 방식으로 성경을 연구하는 신학자들은,
먼저 자기 주관적인 전제, 또는 선입견을 갖고서 성경을 연구하지요.
그래서 그들은 ‘성경의 기적은 불가능하다. 과학이 기적은 불가능하다고 증명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이 성경에서의 기적을 보면, 이것은 성경저자들의 실수라고 하며,
응당 삭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시죠?
이러한 고등비평이 사람들의 성경에 대한 믿음을 파괴하고,
이러한 방법으로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것은, 참으로 사람을 죽이는 방식이지요.
성경의 원본을 찾는 것은 올바른 자세입니다. 이래야 성경의 뜻을 오해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 우리가 공부하는 <사무엘서>의 어떤 사본에는
‘사울이 1세 때부터 다스리기 시작했다’라고 하는데, 이것은 명백히 잘못 되었지요.
왜냐하면 다른 사본에는 ‘그가 30세에 다스리기 시작했다’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두 개 모두 맞을 수는 없고, 어느 한 곳이 반드시 틀렸어요.
그래서 우리는 힘써 성경 원문에 가까운 것을 찾아내어, 어느 것이 정확한지를 검토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등비평의 작업인데, 정확한 사본을 가려내는 겁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말인데요,
‘고래가 요나를 삼켰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죠. 그거 실수 맞죠?
우리가 가진 성경이, 요나가 직접 써서 준 게 아니죠?’ 라고 말하는 것과, *이건 고등비평적 사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다릅니다.
‘성경이 말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나요? 그게 현대 과학적 사고와는 맞지 않잖아요.’ *의심이 들지만, 진실을 찾겠다는 자세,
이렇게 비평적으로 성경을 연구하는 방식이 있는데, 신학자들이 많은 시간을 들여서 연구를 합니다. 독일에 이런 신학자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은 심지어 교회도 안 갑니다.
그들은 성경을, 순전히 학문과 지적 연구의 소재로 삼지요.
가면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방법으로 성경을 읽고, 성경을 조각조각 잘랐고, 어느 부분을 받아들이고, 어느 부분을 받아들이지 않고.. 합니다.
▶6. 성경의 이야기를 읽는데 제일 정확한 방법은 <신학적>으로 읽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학’이라는 단어에 반감을 가지지 마십시오.
사실 ‘신학’의 뜻은 ‘사람이 하나님을 생각하는 방법’이어서, 그래서 모든 사람은 신학자입니다. 왜냐면 사람마다 하나님에 대해, 자신들이 바라보는 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성경의 이야기를 읽을 때, 여기서 ‘하나님을 알아 가야’ 하고, 하나님이야말로 이 이야기들의 주인공입니다.
주인공은, 사울이 아니고, 다윗이 아니고, 사무엘도 아닙니다.
전체 이야기 배후의 주인공은 언제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역사에 영향을 미치시고, 그분이 결정적인 순간에 개입하십니다.
그분이 사무엘에게 기름을 다윗에게 부으라고 하셨고, 그분이 사울을 처리하셨고,
그분이 다윗도 징계하셨기에, 이것은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제가 말씀드렸던 ‘선지자적인 역사’이며, 성경의 중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물어야 할 질문은,
‘이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그 분이 어떻게 그의 백성들과 관계를 이끌어가고 계십니까?’
‘그의 언약은 어떻게 실현되고 있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성경 각권 전체를 읽을 필요가 있는데, *각 구절 조각이 아니라요
이는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에 개입하셔서 영향을 주는지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신학적 관점으로 본, 사무엘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래 전에 철학가 니체가 ‘하나님은 죽었다’라고 말했지요.
니체는 독일의 철학가이고, 히틀러에게 배후에서 실제적인 정신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하나님은 죽었다’라고 가르쳤습니다.
그의 말뜻은,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고,
‘하나님은 다시는 이 세상에서 활동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왜냐면 죽은 사람은, 더 이상 활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죠.
이것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고, 현실 세상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세상에서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다는 거지요.
니체가 ‘하나님은 죽었다’라고 하니,
제가 독일의 어느 대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들었는데,
누가 대학교 벽보에 큰 글자로 ‘하나님은 죽었다 - 니체’라는 글이 써 붙여져 있었어요. 그런데 어떤 학생이 그 밑에다 ‘니체는 죽었다 – 하나님’라고 썼습니다.
정말로 적합한 잘이었지요. 아주 재미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은 죽었다라고 믿습니다. *특히 서구에서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시는 이 세상에서 활동적으로 살아서 역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지금 공부하는 <사무엘상하>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봅니다.
다윗은 그분을 ‘살아계신 하나님’이라고 부르기를 제일 좋아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 보다, 다윗은 ‘살아계신 하나님’
네 그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말뜻은, 그분은 여전히 이 세상에서 계속 말씀하시고, 어떤 일을 행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 이야기를 읽는 이유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행하시는지를 알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중요시하는 것이 무엇이고,
그가 사람의 행위에, 어떤 반응을 하시는지..
이것이 우리가 성경 이야기를 읽는 의도입니다. *소위 <신학적> 읽기
하나님이 역사의 사건들을 발생하게 주도하셨고,
그리고 그가 그 사건들에 반응하시고, 응답하심을 보면서,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그분의 성품을 알아가게 됩니다.
여러분은 사울, 다윗, 한나와 아비가일의 성품을 읽고 연구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인물별 연구
하지만 성경을 읽는 진정한 목적은, 이러한 성경의 모든 사건/인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가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생각을 이해할 뿐아니라, 그분의 감정까지도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감정도 가지고 계십니다.
어떠한 일들이 하나님을 분노하게 하는가?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가?
어떠한 일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가?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감정들을,
여러분이 성경을 읽으면서 배우게 된다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성경을 읽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가고, 하나님이 어떻게 행하시고, 어떤 감정을 느끼시는지, 하나님이 성경의 백성들에게 느끼시는 방식 그대로, 당신에 대해서도 느끼십니다.
이는 그분은 변하지 않으시며, 사람의 본성도 변하지 않고,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그 땅을 보았어요.
그런데 그들은 여전히 그분께 거역하고, 그분을 화나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내심이 있어서, 항상 오래 참으셨다 징계하셨는데, 여러분은 이 점을 주의해서 보셨습니까?
그는 노하기를 더디하셔서 감사하지요. 만약 그분이 급히 노하시면,
여러분들은 오늘 이 강의에 참석하지도 못하시고, 이 자리에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죠?
하나님이 노하기를 더디하셔서 참 감사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하나님께 대해 인내심이 없어요.
미국 보스턴에 필립 브룩스 라는 설교자가 있었는데, 그는 종종
‘문제는 내가 아주 급하다는데 있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급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이 급하지 않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다음 주 목요일까지,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악인들을 멸하기를 바랍니다. *급합니다. ‘주님, 당신이 왜 저 나쁜 사람들을 멸하지 않으십니까?
그래서 남은 우리가 행복하게 살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말하면 사실 (자기는 선하다는)전제가 있는데, 그건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보지 않습니까. 네 봅니다.
‘하나님이 왜 저 나쁜 사람들을 속히 멸하지 않으실까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자기는 나쁜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그들은 하나님이 나쁜 사람들을 멸하시면, 자신들은 생명을 보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아닙니다. 만약 하나님이 지금 나쁜 사람들을 속히 다 멸하시면,
이 세상에 생명을 보존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분이 노하기를 더디하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는, 그분이 노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며,
하나님의 분노가 끓어 넘치지 않는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언젠가 하나님도 더는 참지 못하시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분의 인내심이 고갈되는 날, 만약 그때까지 우리가 살아있다면, 화가 있을 것입니다. *대환난, 마지막 심판 때를 뜻하는 듯
▶이스라엘에 왕을 주신 목적 – 참 왕을 기다리라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왕도 주셨습니다.
첫 번째 왕은 그들 자신이 선택한 것이고, 이 왕이 제대로 하지 못할 때,
하나님은 그분이 선택하신 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많은 일들을 행하셨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왕을 주셨는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다음에 공부할 <열왕기서>에서 논하겠습니다.
왕을 주셨다는 것은, 이 왕의 성격이, 나라 전체 백성들의 행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뜻입니다. *옛날 왕정 시대는 그랬죠.
나쁜 왕은, 전국을 부패하게 만들었고, 좋은 왕은, 그들을 옳은 길로 이끌 것인데,
우리는 지금 영국의 국왕 제도에서 이 점을 볼 수 있는데요,
지금 거기에 영국 왕실에 도덕적 큰 혼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한 국왕이나 선한 여왕을 원하는 것은, 그들로 말미암아, 전국에 좋은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국 왕께 충성하며, 엄청난 책임감을 그들에게 부여한 것은,
그들이 우리를 옳은 길로 인도하여, 우리의 모범이 되길 바라며, 그래서 우리가 왕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왕이 선하지 못하면, 왕정 제도가 아예 없는 것이 낫습니다.
왜냐하면 나쁜 왕은 백성들을 그릇된 길로 가게 하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에, 영국에서 모두가 토론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호주에 새로 임명된 수상이 *1996년 상황
전임 수상 공화당 폴 키팅과 같지 않습니다.
그가 우리 영국 여왕에게 충성의 서약을 할 때,
그 서약문 중의 한 마디를 삭제했는데요,
원본에는 “여왕에게 충성하고, ‘여왕의 계승자에게도’ 충성하리라”는 맹세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대로 읽지 않았어요. *‘여왕의 계승자에게도’를 생략하고 선서함.
그는 여왕에게 아주 충성했습니다. 하지만 여왕의 계승자에게는 충성하려고 하지 않았는데요, 이것이 바로 왕조 monarchy 제도의 위험입니다.
왕조 제도에는 많은 장점이 있어요.
하지만 왕 한 사람의 영향력이 너무 크다는 것입니다.
공화제의 연방정부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없습니다.
하지만 왕정 제도도 이제는 변하고 있습니다.
사울, 다윗과 솔로몬 세 사람이 각각 40년씩 왕으로 다스렸고,
그러나 다윗의 사람(후손)들은, 그 후 내리막길을 걸어갔는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었습니다.
다윗은 왕좌를 솔로몬에게 주었고, 솔로몬은 처첩이 많았고,
솔로몬 이후로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갈라졌는데, 북방과 남방 사이에 큰 긴장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이 남방에 속했기 때문에, 모든 돈을 남방에 투자하여
남방이 북방보다 번영했는데, 듣고 보니 영국과 아주 익숙하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이제 강의를 끝맺기 전에, 무엇보다 제가 중요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하나님이 다윗과 아주 특별한 언약을 세웠어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모세와 언약을 세운 후, 처음으로 다시 언약을 세웠는데,
그가 다윗과 언약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무엘상하>에서 제일 중요한 사건입니다.
당시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싶었어요.
자기는, 자신을 위해서 호화로운 궁전을 지었는데,
바로 옆집에는, 하나님이 누추한 장막에 거하시니,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여러분도 충분히 그 부끄러움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하나님, 내가 당신을 위해, 제 왕궁보다 더 좋은 집을 지어 드리겠습니다.’라고 하였어요. 이에 나단 선지자가 3가지 메시지를 주었지요.
첫 번째 메시지는 ‘지어도 된다’는 것이고,
두 번째 메시지는 ‘짓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생각이 있었는데, 이 생각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하나님은 ‘나는 장막으로 충분하다. 내가 언제 돌로 만든 성전을 요구했느냐?’라는 것입니다. 아주 재미있지요?
‘네가 왜 나를 위해 성전을 건축하느냐? 나는 계속하여 이 장막에 있을 테니, 다른 요구는 없다.’ 이는 하나님이 다윗을 비꼬는 것입니다.
‘네가 자신을 위해 이 큰 궁전을 지었는데, 네가 정말로 이 궁전이 필요했느냐?’
이것이 두 번째 메시지입니다.
세 번째 메시지는, ‘내가 너에게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게 하겠다.
네 손에 너무 많은 사람의 피가 흘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 아들은 성전을 건축해도 된다. 그는 평화의 사람이다.’ 솔로몬은 한 번도 전쟁터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남겨놓은 태평세월을 계승 받았기 때문이지요.
다음으로는 언약인데, 하나님은 다윗에게
‘내가 네 아들을, 나의 친아들처럼 여기고 그를 징계하겠지만,
나는 그를 영원히 사랑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아주 특별한 말이지요.
그리고 이어서 이런 위대한 약속을 하셨는데,
‘네 집안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지속될 것이며,
네 왕권도 영원히 견고할 것이다.
내가 너를 위하여 영원한 집을 지어 줄 것이다.
네가 나를 위해 전을 건축하고 싶다고 했지? 하지만 내가 너를 위해 집을 건축해 주겠다. 그 집은 왕실이 될 것이다’라고 하셨어요.
이 후로 다윗의 자손들은, 모두 아주 조심스럽게 자기 가계 족보를 기록했어요.
그 이유는, 그들이 그 다윗의 후손(아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세월 동안, 예수님 탄생 전까지,
남자 아이만 출생하면, 아버지가 거리에 나가서 큰 소리로
‘다윗! 다윗! 남자 아이입니다. 남자 아이라고요’라고 하였어요.
그리고 그 아이를 ‘다윗’이라고 이름 지었어요. *삼하7장의 그 언약의 주인공이길 바라며, 그러나 실제로는 예수님!
저희 결혼 25주년일 때, 아내가 제게 반지 하나를 선물했어요.
제가 보니까, 예루살렘 뒷골목의 유대인 반지세공업자가 만든 것이었습니다.
반지에 ‘예루살렘 성벽’이라는 글을 새겼고, 제일 위에는 히브리어 세 글자로
‘다윗’(DWD)이라고 새겼어요. 히브리어엔 모음을 안 써요. *설교자 이름이 데이빗 파슨
아내가 제게 이 반지를 선물하면서, ‘제게 예루살렘 성벽의 파수꾼이 되라’고
기억하게 해주었습니다.
다윗의 후손 가운데,매번 남자 아이가 출생하면 그들은 ‘다윗! 남자 아이입니다’라고 선포합니다. 그가 혹시 ‘다윗의 자손’일 수 있다는 뜻이지요.
이러한 습관이 수백 년 동안 연속되어 왔고, 1천년 후에, 그 약속이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언약을 지키셨고, 예수님은 어떤 가난한 가정에 태어나셨지요.
그들은 이 족보를 보존시켰습니다.
기이한 것은 요셉과 마리아 모두가 다윗의 직접적인 자손이라는 것입니다.
법적으로 예수님의 부친 요셉이 다윗의 자손이기 때문에,
아들은 부친의 후손이 될 수 있습니다.
*‘법적으로 legally’ - 예수님은 부친 요셉의 피가 안 섞임. 그러나 ‘법적인’ 후손. 진짜 피는 마리아..
그런데 혈육으로 말하면, physically
어머니 마리아를 통해서, 다윗의 자손이 되십니다. *누가복음의 족보
그래서 예수님은, 두 방면으로 모두 확실한 다윗의 자손입니다.
그가 세상이 있을 동안 항상 다윗의 자손이라 칭함 받았고,
그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 올 때도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고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닌가!’라고 말했어요.
‘다윗의 씨로 오시리라’ 요7:42 그분은 ‘유대인의 왕’으로 탄생하시고 죽으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다스리시며, 이스라엘의 왕일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왕이십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이 ‘다윗의 자손’에게 있습니다.
그 권세가 앞으로도 영원히 그분의 손에 있을 것이며,
하나님은 다윗과 맺은 언약을, 예수님의 탄생을 통해서 지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셨으면, 반드시 지키십니다. 그분은 거짓말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실천하십니다. 하나님이 다윗과 언약하기를 그의 후손이 영원히 보좌에 앉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 되셨고, 그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신분으로 탄생하고 죽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분은 교회의 왕이시고, 우리의 왕이십니다.
그러시기에 주님은 응당 교회를 다스리고 계십니다.
하지만 주님은 종종 우리에게 ‘교회를 그 통치권을 내게 돌려 달라’고 부르짖으시는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이 세상의 왕이 다시 오실 것이며,
‘다윗의 자손’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와 다스리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이 그에게 마지막 한 질문을 여쭈었지요.
‘당신이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때가 바로 이때입니까?’
주님은 ‘그건 어리석은 질문이다’라고 하지 않으시고, 친절히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서 정하신 때는 너희들이 알바가 아니다’라고 하였어요.
이 말뜻은, 이 일은 반드시 발생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어느 날엔가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셔서 다스리실 것입니다.
그리고 전 세계의 왕으로 다스리실 것입니다.
더욱 흥분스런 것은, 우리가 주님과 함께 다스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메시지는 <사무엘서>에서, 하나님이 다윗과 맺은 언약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의 미래가 이 언약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무엘서>를 당연히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 이야기들이 아주 재미있습니다. 이 책은 ‘인물별 연구’에도 좋습니다.
하지만 제일 좋은 읽는 방법은, 거기서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똑같이 하나님을 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사람들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다윗의 자손을 통하여 그분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1)다윗 : 목자의 시(8,19,23,29,144)
죄인의 시(32,38,51)
고난의 시(3~7,11~14,17,22,25~41,53~59,61~64,69,70,86,109,140~143)
민족의시(9,15,16,18,20,21,24,30,36,37,52,60,65,68,101,103,105,108,110,122,124,131,133,138,139,144)
[출처] 시편의 개요|작성자 예레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