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혁명으로 전제정이 무너지다
1917년 러시아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이미 전사자가 170만 명, 부상자가 500만 명에 이르렀고 후방에서도 경제적 어려움이 극심했다. 이로 인해 차르(황제)를 쫓아내고 전쟁을 중단하자는 사회주의자들의 선전이 커다란 호응을 얻었다. 결국 3월 8일(러시아력 2월 23일) 수도 페트로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병사와 노동자들이 대규모 봉기를 일으켜 차르 니콜라이 2세를 퇴위시키고 전제정을 무너뜨렸다.
10월혁명으로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가 수립되다
2월혁명 이후 들어선 임시정부는 대개 입헌군주제를 지지하는 보수적 인물들로 구성됐다. 혁명을 주도한 병사와 노동자들은 사회주의자들이 이끄는 소비에트에 지지를 보냈지만, 소비에트의 다수파인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은 러시아가 자본주의 단계를 거친 뒤에야 사회주의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임시정부를 몰아내고 권력을 장악하기를 거부했다.
그러나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과 그가 이끄는 볼셰비키(훗날의 소련공산당)는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임시정부를 몰아내고 지금 당장 사회주의 정권을 세우자는 주장이었다. 마침내 11월 6일(러시아력 10월 24일) 볼셰비키는 다른 사회주의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무장봉기를 일으켜 소비에트공화국의 수립을 선언했다.
10월혁명 당시 차르의 겨울궁전으로 몰려가는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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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하는 레닌
볼셰비키는 전쟁을 즉시 중단하고, 모든 토지를 평등하게 분배하며, 노동자들이 스스로 산업을 관리한다는 혁명적인 내용의 포고령들을 공포했다. 또한 8시간 노동제를 도입하고, 신분제를 철폐하며, 러시아제국의 지배를 받아온 여러 민족들에게 자결권을 부여했다.
그러나 곧 볼셰비키는 자신들을 제외한 러시아의 모든 정치 세력들이 연합한 백군(白軍)과 치열한 내전에 휩쓸렸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14개 자본주의 나라의 군대도 백군을 도와 혁명 세력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백군의 분열과 민중의 지지에 힘입어 1920년 11월 볼셰비키의 적군(赤軍)이 최후의 승자가 되었고, 1922년 12월 30일 러시아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다른 민족들과 더불어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소련)을 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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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국기
낫은 농민을, 망치는 노동자를 의미한다.
혁명의 세계사적 의의
많은 역사가들은 1917년 러시아에서 일어난 사회주의 혁명을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사건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우선 이 혁명으로 소련이라는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가 탄생했다. 사회주의 국가는 그 구성원들에게 더 많은 평등과 더 많은 물질적 풍요를 약속했고,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성취를 이뤘다. 하지만 급속한 경제 성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스탈린주의와 같은 매우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체제가 들어서 시민의 자유와 권리가 크게 희생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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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을 찬양하는 포스터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을 패퇴시킴으로써 파시즘의 위협에서 세계를 구하는 데에도 기여했다(소련군의 베를린 함락 참조). 이후 동유럽과 북한, 중국, 쿠바, 베트남 등의 많은 나라들에 차례로 사회주의 체제가 들어섬에 따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진영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진영 사이에는 실제 전쟁을 방불케 하는 치열한 대립과 갈등이 수십 년간 지속됐다.
그 시기 동안 소련은 이른바 초강대국으로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국제정치에 개입했으며, 우주 개발 등 과학 기술의 발전에도 커다란 공헌을 했다. 제 3세계의 많은 신생 독립국들은 소련의 빠른 성장에서 경제 발전의 모델을 발견했고, 자본주의 나라의 정부와 지배층은 자국에서 소련과 같은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노동자와 서민에게 복지 제도 등의 일정한 양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