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생을 짧게 살다 마친 천재 소설가 박태원의 소설
[구보씨(仇甫氏)의 하루]를 아능가?.............
인간 박진규의 실제 생활을 반영한 자전적 소설 [미남씨(美男氏)의 하루]를 발표한다...
새로운 형식의 소설이란 평가를 받는 이 소설은 목적 없이 집을
나선 '미남'이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도중에 우연히 부딪히게 되는
단편적인 여러 사실들, 그리고 그에 의해 촉발되는 두서 없는 생각들의
연속인 이 소설에서 우리는 2003년 평범하며 평범하지 않은 인간의
일상사를 엿볼 수 있다.
<줄거리>
직업과 아내를 갖지 않은 서른살의 미남은 집을 나와 걸으며 요 근래 앓고있는 복통과 편두통등을 생각하며,
체력에 문제가 있다는 신체적 불안감을 느낀다.
무작정 등촌동행 버스를 타고는 버스 안에서 창밖으로 시선을 보던 중
자신에게 돈만 많다면 행복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곤 중도에 영등포시장 근처에서 내려, 일산행 버스를 타는데...
<구 성>
이 작품은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라는 일반적인 소설의
구성 방식을 따르지 않고 있다. 다만, 외출하여 버스 안→길거리→일산
호수공원→거리→버스안→지하철안→술집 그리고 귀가까지의
작중 화자가 우연히 부딪히게 되는 단편적인 사실들에 의해 촉발되는
두서 없는 생각들이 서술되고 있을 뿐이다.
<작품의 이해>
이 소설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특별한 목적 없이 외출하여 걷고
버스와 전철을 타고 벗을 만나고 하는 미남의 행동이 아니라,
일상성의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주인공 미남의 의식의 추이다.
#1
어머니는 아들이 제 방에서 나와, 마루 끝에 놓인 구두를 신고,
이력서 한 통과 메모지, 핸드폰 등이 담긴 가방을 어깨에 매고,
그리고 현관으로 향하여 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어디, 가니?"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대문까지 나간 아들은 , 혹은 자기의 한 말을 듣지 못하였는지도
모른다. 또는, 아들의 대답 소리가 자기의 귀에까지
이르지 못하였는지도 모른다.
그 둘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 어머니는
이번에는 대문 밖에까지 들릴 목소리를 내었다.
"일찍 들어오너라."
역시,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얇은 실망을 느끼려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려 한다.
어머니는 역시 평범하고 성실한 월급쟁이가 낫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똑똑한 내 아들은 무엇을 하든 잘 하리라고
혼자 작정해 버린다. -아들은 지금 세상에서 월급자리 얻기가 얼마나
힘드는 것인가를 말한다.- 하지만 그런 내 아들이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 도통 믿어지지가 않았다.
#2
집을 나온 미남은 200여미터쯤 떨어진 버스 정류장에서
담배를 한대 피운다. 지금 피우지 아니하면 어디서 정차할지
모르는 버스안에서 담배생각이 무척이나 날 듯 하는 눈치다.
그 동안 여러대의 서로 다른 노선의 버스들이 쉼 없이
정거장에 정차했다 출발했다. 미남은 무작정 등촌동행 96번 버스를 탔다.
맨 뒷좌석 창가자리에 앉은 미남은 창 밖을 내다보며
자신에게 돈만 많다면 행복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곤 문득 자신의 정신병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요즘 앓고 있는 편두통, 복통 등 일체 쓰레기를 버리고
뭔가를 보아가는 누군가를 찾아가, 좀 다른 세상을 구경하는 것은,
행복은 아니어도, 어떻든 한 개의 일이자 병일 수 있는
이른바 <결핍성 도보 탑승증>을...
#3
20분쯤 지나 버스가 어느 정류장에 정차하자 미남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하차문으로 뛰어 나갔다. 무작정 내린 곳은 영등포 시장이었다.
예전에 몇 번 쯤에 와 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
미남은 이 곳에서 다른 버스로 갈아타려 했다. 갑자기 소변이 급했다.
정류장 앞에는 한미은행 지점이 있었다.
저 건물에 화장실이 있겠지라고 생각한 미남은 은행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여자 행원이 창구에서 일어나 "어서오십시오 손님~"하고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무안했던지 미남은 자기 옆에 있던 정수기에서
물을 종이컵에 담아 마시고는 뒤통수로 느껴지는 어떤 느낌을 받으며
이내 다시 거리로 나왔다.
소변이 급해 들어갔는데, 물을 마시고 나온 미남은 머쓱해하며 웃고 말았다.
어디행 버스를 탈까? 고민하는데 한 여자가 그 옆에 와서 섰다.
무척이나 짧은 주름진 치마에 얼굴도 화장이 짙었다. 직업(?)여성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미남은 그녀가 하나도 천박하지 않다고 느꼈다.
'너 오늘, 나하구 어디 놀러 가련?' 미남은 불쑥 그러한 말을
혼자 생각하며, 만약 이 귀여운 아가씨가가 동의한다면,
어디로 나가 반일을 산책에 보내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미남의 속말을 아가씨가 들었을리 만무하다.
잠깐 시야에서 벗어난 통에, 아가씨는 어떤 버스를 타고
자리를 떠나갔다. 미남은 명랑하게 또 유쾌하게 웃었다.
미남은 곧 일산행 시외버스를 무작정 탔다.
'일산에 호수공원이 있다던데..'
미남은 버스안의 노선표를 보며 자신이 내려야 할 정거장을 찾아봤다.
#4
미남이 내린곳은 일산 신도시 정발산역이었다.
눈 부시도록 맑은 가을 날씨였다. 평일이었음에도 공원으로 가는
사람들은 그곳에 끊임없다. 칠팔명의 할머니들이 미남처럼 처음온양
주위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곤 미남의 뒷편에서 호수공원으로
수다를 털어노며 늦은 걸음을 재촉했다.
미남은 공원의 이곳 저곳을 다니려 하지 않았다.
잔잔한 물가 옆 벤치에 앉았다.
벤치 앞쪽에 나무 한그루가 서 있어 햇빛을 살짝 가리고 있었다.
쉬기에는 안성마춤이었다. 미남은 가방속에서 책을 한 권 끄집어냈다.
이외수의 소설 "괴물"이었다.
언제부턴가 미남의 방 책꽂이 한 켠에 꼽혀있던 책이었다.
미남은 소설을 싫어한다. 아마 태어나서 30평생 읽은 소설책이
몇 손가락안으로 꼽힌다. 그런 그가 낯선 공원벤치에서 한가로히
남이 지은이야기에 정신을 쏟는 모습은 자신도 이해하지 못했다.
소설의 내용이 재밌었는지 미남은 단숨에 수십페이지를 넘겼다.
벤치에 드러눕기도 하고, 일어서 앉기도 하고, 벤치손잡이에
몸을 비스듬히 기대 보기도 하고, 어째든 자세는 중요하지 않았으리라.
어느슴엔가 주위를 돌아보니 자기처럼 독서하는 남자,
들어가지 말야할 할 잔디에서 뒤엉켜 웃어대는 연인,
김밥을 싸와 먹고 있는 부부들..
미남을 둘러싼 모두가 자신의 행동에 집중하고 있었다.
갑자기 하늘가에서 프로펠러 비행기 소리가 났다.
고개를 들어 보니 조각나있는 솜사탕같은 구름사이로 비행기 두대가
하늘을 가로질러 날고 있었다.
경쾌한 비행기 소리를 듣다보니 구보 자신이
그 하늘위에 있는것 같이 생각되었다.
그리고 우연히 시선이 내려간 곳은
벤치 등받이 쪽 나무틈 사이에 기어가는 벌레였다.
개미인줄 알고 미남은 손가락으로 툭 건드렸다.
너무세게 밀었을까 벌레는 사지가 짇이겨져 죽었다.
자세히 보니 거미였다. "그 정도 같구 죽냐!..." 오히려
미남이 화를 냈다.
#5
정오가 지난지 두어시간쯤 미남은 호수공원을 걸어나왔다. 따뜻한 물에
온 몸을 담그고 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근처 사우나에라도 들어갈까 했지만, 그곳 지리를 모르는 미남은
한참을 걸었다. 배가 고파온다.
그는 길거리에서 오징어튀김과 떡복이를 사먹고
다시 나무 젓가락에 꼽힌 햄을 하나 더 산다음 근처 육교위에 올라갔다.
육교위에서 대로를 내리보며 햄을 먹었다.
상가근처라 인도변에 수시로 주차하고 빠져나가는 차들이 엉기다가
풀어지고 또 그러다 엉기었다.
의미없는 장면을 꼬잡으며 허기를 달래기엔
두 다리가 그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육교 반대편으로 건너가 서울 김포공항행 버스를 탔다.
종점인 송정에서 내린 미남은 지하철 5호선을 탔다.
#6
졸음이 왔다. 몇 정거장 지나지 않아 잠이 든 미남은 3시간 동안이나
지하철안에서 잠을 청했다. 눈을 떠 보니 지하철은 처음에 탔던
송정으로 향해 청구역을 지나고 있었다.
앞 좌석에 앉은 40대 초반의 남자가 필요이상으로
큰 목소리를 내며 핸드폰에 지껄여댄다. 한 방 먹이고 싶다.
그 소음은 10분 이상 지속됐다. '차라리 내가 내려버릴까?' 싶다가
주변 사람들을 보았다. 모두 그 소음에 익숙한 걸까? 포기한 걸까?
소음에 신경쓰는 사람은 없었다.
미남은 그들처럼 행동하기로 했다.
얼마뒤 미남은 발산역에 내렸다.
이곳엔 미남이 아는 친구들의 직장 근처였다.
#7
전화를 걸어 두 친구를 불러낸 미남은
다시 한 친구의 인도로 근처 호프집에 들어갔다.
꽤 많은 맥주를 마셔대며 세 남자는 떠들어 댔다.
그 호프에 있던 수많은 남녀들도 떠들어 댔다. 생일을 맞은 사람,
축하해 주는 사람. 또 사람.
사람들은 밤을 사랑함에 마지않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 밤에 즐거움을 구하여 얻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일순, 자기가 가장 행복된 것같이 느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8
자정이 넘어 그들은 호프를 나왔다.
모두 편안한 미소를 띤 얼굴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에,
그들의 걸음걸이에 역시 피로가 있었다.
그들은 결코 위안박지 못한 슬픔을, 고달픔을 그대로 지닌 채,
그들이 잠시 잊었던 혹은 잊으려 노력하였던 그들의 집으로
그들의 집으로 그들의 방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9
이렇게 밤늦게 어머니는 또 잠자지 않고 아들을 기다릴 게다.
미남은 어머니의 외로운, 슬픈 얼굴을 생각하였다.
그리고 제 자신 외로움과 슬픔을 맛보지 않으면 안 됐다.
미남은 거의 외로운 어머니를 잊고 있었던 것임에 틀림없었다.
내게는 한 개의 생활을,
어머니에게는 편안한 잠을...
"내일, 내일부터, 나 취직하겠소. 좋은 직장을 잡겠소..."
미남은 좀더 빠른 걸음걸이로 어두운 거리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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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극장
쉿! 비밀이야
뭐여 시방.. my story~~~~
절세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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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0.10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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