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회복하라
에스겔 18:30~32
1. 도입: 죄를 지으면 관계는 깨어진다.
요즘은 날씨가 참 좋아서 젊은이들이 결혼식 하기에 딱 알맞습니다. 결혼식은 본인 뿐 아니라 가족과 하객 모두에게 기쁨입니다. 새로운 가정을 만들고 새로운 가족이 생겨나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모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관계를 만들어야지 관계가 깨어지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그래서 제가 입버릇처럼 강조하는 것이 있는데 제발 이 세 가지는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을 버리는 것(자살), 가정을 버리는 것(이혼), 교회를 버리고 떠나는 것. 이 세 가지는 극단적으로 관계가 깨어지는 것이요 회복할 수 없는 이별입니다.
관계가 깨어지는 것은 당사자 뿐 아니라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슬픔이고 아픔이고 또한 불편입니다. 부부가 헤어지거나 친구 사이가 원수가 되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집니다. 그것은 하나님께도 슬픔이며 아픔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관계를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과도 회복하고 사람과도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절기 중에는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절기가 있습니다. 관계 회복에서 핵심은 회개하는 것인데 이스라엘에서 회개함으로 관계를 회복하는 그 절기가 바로 지금 이 계절입니다.
2. 나팔절과 40일간의 회개
이스라엘의 절기는 주로 봄과 가을에 모여 있습니다. 가을의 절기들은 나팔절로 시작하여 초막절 즉 추수감사절로 끝이 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나팔절의 의미를 깨달아서 먼저 관계를 회복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스라엘 달력에서 올해 나팔절은 9월 25일입니다. (이스라엘 달력은 음력을 사용하므로 이스라엘의 절기가 해마다 다릅니다. 그리고 그 음력은 우리가 쓰는 음력과 약간 다릅니다.)
나팔절이란 나팔을 불어서 기념하는 절기인데(레 23:24) 그날 하루만 나팔을 부는 것이 아니라 나팔절 전후로 40일간 나팔을 붑니다. 나팔을 부는 것은 간단히 말해서 회개와 순종을 촉구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가운데 순종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생각하고 오늘은 회개에 대해서만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나팔절은 7월(티쉬리월) 1일인데 나팔절 앞의 6월(엘룰월) 1일부터 30일까지 나팔을 불고 7월 1일부터 10일까지 또 나팔은 붑니다. 이 기간 동안 사람들은 성전에서, 집에서, 길에서 어른과 아이들이 양각(羊角)나팔을 불어댑니다.
나팔 소리를 들으면 사람들은 죄를 회개하는데 앞의 30일간은 다른 사람에게 지은 죄를 기억해 내서 회개합니다. 그리고 찾아가서 관계를 회복합니다. 또 나팔절부터 10일간은 하나님께 지은 죄를 기억해 내서 회개합니다. 그리고 속죄제를 드림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합니다.
하나님께 지은 죄에 비해서 사람에게 지은 죄를 회개하는 것은 훨씬 더 복잡하고 손해도 많습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죄 지은 것이 생각나면 다음과 같은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1)먼저 찾아가야 합니다. 2)그리고 그 동안 잘못한 것과 손해를 끼친 것에 대해 고백을 합니다. 3)물질적으로 손해를 끼친 것에 대해서는 1/5을 더해서 보상해야 합니다. 즉 120% 이상으로 물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러주었으면 끝이 아닙니다. 4)재발 방지 약속을 한 후에 상대방의 마음이 풀려서 5)용서해 주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나를 용서하지 않으면 내가 하나님께 용서를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5:23~24)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이스라엘 절기로 하면 지금은 바로 사람에게 지은 죄를 회개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30일(8/27~9/25)에 해당됩니다. 언제나 관계를 회복해야 하지만 특별히 이 기간에 관계 회복에 힘쓰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3. 용서를 요구하지 말고 회개하라
그 동안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예수님의 사랑으로 용서하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도 첫 마디가 그 악한 자들을 용서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그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시라고 기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일흔 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으니 우리가 용서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큰 죄를 용서받은 사람이므로 당연히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신하가 500데나리온 빚진 사람을 용서하지 않아서 탕감 받은 것을 취소해 버린 임금님 이야기를 통해 용서를 강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귀한 교훈에 중요한 오해가 한 가지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용서 받아야 하는 사람이 용서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용서하라고 하신 말씀은 사과와 회개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면책특권을 아닙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잘못을 하여 원망들을 일이 있다면 예배를 드리기에 앞서 사과와 화해를 하고 손해 끼친 것은 물어주되 1/5을 더해서 물어주고 재발방지 약속을 한 후에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속건제의 법칙입니다. (속건제의 법칙은 제가 3월에도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다시 보기 원하는 분은 카페에 들어와서 읽으시기 바랍니다.) 하여간 한국교회는 이것을 강조하지 않아서 전혀 책임지지 않는 성도를 양산해왔고 비윤리적인 성도로 전락시켰습니다.
물론 용서하는 입장에서 상대방의 사과를 전제로 용서하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이나 스데반 집사님의 용서의 외침은 상대의 사과와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의 용서는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신 하나님의 크나큰 사랑에 근거한 용서입니다.
그러니까 용서하라는 교훈 때문에 회개를 망각해서는 안됩니다. 사랑으로 용서하라는 말씀을 아전인수(我田引水)로 오용해서 회개하지 않고 뻔뻔하게 용서를 요구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월력에서 회개의 30일에 해당하는 이 계절에 우리는 사람에게 지은 죄를 회개함으로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4. 공동체는 함께 책임져야 한다.
히브리인들의 사고방식 중에 우리가 꼭 배워야 할 중요한 것 하나는 공동책임 의식입니다. 같은 배를 타고 가는데 한 사람이 바닥에 구멍을 뚫으면 다 같이 빠져 죽습니다. 같은 천막에 자는데 한 사람이 불을 내면 다 같이 타 죽습니다. 여리고 전투에서 아간이라는 사람 하나가 죄를 지었을 때 온 이스라엘이 죄인이 되어 아이성 전투에서 패전했습니다.
이것을 히브리인들은 이렇게 비유합니다. 포도주 항아리에 파리가 한 마리 빠져 죽으면 그 항아리의 포도주가 모두 율법적으로 부정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한 사람이 죄를 지으면 온 이스라엘이 죄인이 되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의 40일 동안 양각나팔 소리가 들리면 모두가 ‘우리가 범죄하였나이다.’ 하고 외쳤습니다. 히브리어로 ‘아샴누‘ 하고 외쳤습니다. ’나는 아무런 죄 지은 것이 없어. 나는 회개할 것이 없어.‘ 하고 멀뚱멀뚱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혹시 우리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죄를 지은 사람이 있다면 나라도 회개해야겠다고 ’아샴누(우리가 범죄하였나이다)‘하고 외쳤습니다.
다니엘 9장에 보면 포로로 끌려와 있던 다니엘이 금식하면서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는 것을 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다니엘은 정말로 죄와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그는 목숨을 걸고 믿음을 지킨 경건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다른 사람들이 죄를 지어서 억울하게 끌려왔다고 하지 않고 우리가 죄를 지었다면서 회개를 했습니다.
(단 9:5~6)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과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우리는 한국교회의 죄를 회개합시다. 행복한교회의 죄를 회개합시다. 가족의 죄를 회개합시다. 이 도시의 죄를 회개합시다. 우리 마을의 죄를 회개합시다. 그리고 다니엘처럼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간구합시다. 지금 한번 연습해 봅시다. 제가 뿔나팔을 불테니 나팔을 불 때마다 여러분은 ‘아샴누’ 혹은 ‘우리가 범죄하였나이다.’ 라고 외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연습한대로 여러분의 기도에서 언제나 자신과 공동체의 죄를 회개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5. 죄 짓는 것을 두려워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는 것을 몹시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저 멀리 계시는 하나님 혹은 사람의 관념 속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라 실제로 하늘에 계시고 성전에 계시는 하나님으로 인식했습니다.
그 하나님은 그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들이 하나님과 관계가 깨어지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저주를 받는 것을 믿었습니다. 신명기 28장에서 하나님은 순종할 때에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신 28:3~6).
그러나 만일 하나님의 법도에 불순종하면 이 모든 영역에서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 나라는 패망하고 가정은 깨어지고 목숨을 잃게 됩니다. 모세오경에는 율법을 어기면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는 말씀이 15번이나 나오는데 그 말씀은 죽을 것이라는 말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죄를 짓는 것을 무서워했습니다.
실제로 사도행전 5장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성령을 속이려 들다가 부부가 차례로 쓰러져 죽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땅에서 망하거나 죽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죄를 짓는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고전 6:9~10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구원은 물론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러나 믿는다고 하면서 회개하지 않고 계속해서 죄를 짓는다면 그 사람의 믿음은 가짜이며 죽은 믿음입니다.
물질이나 목숨을 빼앗기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하나님과 관계가 깨어지고 하나님 나라를 빼앗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죄를 짓는 것을 두려워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죄를 철저히 회개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6. 결론: 죄를 회개하라
로마서는 사람들이 짓는 죄를 몇 가지 나열해 놓았습니다.
(롬 1:29~31)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사람의 짓가 이것 외에도 많이 있지만 여기 열거된 것 중에도 여러분이 여러 가지가 걸리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죄를 회개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구약 성도들은 속죄제를 드릴 때 직접 예물을 드려야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회개만 하면 된다고 생각해서 죄를 짓는 것을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 죄를 지었을 때는 사람에게 사과와 보상을 하고 하나님께도 예물을 드림으로 죄를 삼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온갖 노력을 다해서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