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즈 러너’. 사실 나는 이 영화가 3편까지 개봉하는 동안 정말이지 단 한번도 보러가고 싶다거나 관심이 생긴 적이 없었다. 남동생이 자칭 ‘메이즈 러너’ 시리즈 광팬이라며 내게 영화 이야기를 들어보라며 신나게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시종일관 ‘그렇게 어두컴컴한 영화 내 스타일 아니야. 나는 밝은 영화 좋아해. 행복하고 희망 넘치는 스타일 좋아한다고.’라고 말하며 시큰둥하게 반응하고는 했다. 이렇게 대답한 데에는 정말 언뜻 보기에도 영화가 음침했기 때문도 있지만 이제 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실 상 이 영화는 제목부터 나의 가치관과는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메이즈 러너’라는 이 시리즈의 제목은 ‘미로’라는 뜻의 ‘메이즈’와 ‘달리는 자’라는 뜻의 ‘러너’로 이루어진 합성어로 의역을 하자면 아마 미로를 뛰어다니는 사람들 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영화를 실제로 보다보면 미로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러너는 극소수이고 또 ‘러너’라는 역할 자체가 말 그대로 그냥 아무 목적 없이 미로 안을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아니라 미로 안을 다니면서 구조와 순서를 파악하는 중요한 임무를 감당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제목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인 나에게 ‘메이즈 러너’라는 말은 전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미로는 들판처럼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미로는 막다른 벽도 만나보고 길을 잃어보기도 하며 그런 경험들을 바탕으로 탈출구로 향하는 올바른 길을 찾아내야 하는 곳이다. 그렇지 않으면 탈출하지 못하게 되며 영영 그 미로 안에 갇혀있어야 한다. 그런데 미로를 달린다? 미로를 뛰어다닌다는 것은 내게 논리적으로 용납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보지 않았었다. 제목부터 말이 안 되는 영화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제목을 받아들이는 꽤나 편협한 나의 사고방식만 봐도 이제까지 내가 얼마나 논리를 따지고 합리적으로 생각해왔던 사람인지를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넌 여기 온지 사흘 됐지만 난 3년째야 -갤리
3년이나 있었는데 아직도 여기 있잖아,갤리... 방법을 바꿔보라고. -토마스
‘메이즈 러너’는 주인공인 토마스가 박스에 담겨 미로 안 글레이드로 올라오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토마스는 깨어나자마자 처음 본 글레이드와 그 속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경계했지만 이내 알비를 비롯한 글레이드에 먼저 와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이름도 생각해내고 서서히 적응을 해 나가는 듯 했다. 그런데 토마스가 글레이드에 순탄하게 적응하지 않고 올라온 지 3일만에 미로 밖으로 탈출해야겠다며 온 글레이드를 벌집 쑤시듯 쑤시고 돌아다닌다. 그러자 토마스는 글레이드 속에서 매뉴얼을 가장 중요시하는 듯 보이는 ‘갤리’라는 인물과 대립하게 된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 나도 글레이드에 온 지 얼마 안되는 초보 토마스가 아무 것도 모르면서 들쑤시고 다니는 모습에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다. 그래서 토마스가 온 뒤로 다른 사람들을 대신해 이전까지 자신들이 세워왔고 지켜왔던 자신들만의 규칙과 질서를 사수하려는 갤리의 모습이 스크린 밖에서 영화를 시청하는 관객의 입장으로는 답답하면서도 실제로 내가 저 상황에 처 해있으면 어떨까라는 시각에서 바라보니 백 번이고 이해가 갔다. 사실 이렇게 직관적으로 행동하는 인물이 합리적인 규칙을 고수하는 인물을 이기거나 능가할 때 영화 속 갤리와 같이 합리를 고수해 온 나는 그 동안의 나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이 모두 부정당하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불편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였다. 결국 갤리를 글레이드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미로 속 괴물인 ‘그리버’에 찔려 죽게 되고 반대로 두려움과 불안함을 무릅쓰고 모험을 택한 토마스와 함께 글레이드에 남지 않고 미로를 택한 사람들은 탈출에 성공하게 되며 영화가 끝이 나게 된다. 
토마스와 민호

토마스와 뉴트

민호, 토마스, 뉴트 삼총사
아무래도 내가 영화를 직관 vs 합리의 시각에서 봐서 그런지는 몰라도 영화를 볼 당시에 가장 관심을 가지고 봤던 캐릭터는 토마스와 갤리였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의외로 민호와 뉴트가 내게 더 강한 인상을 남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토마스는 완전히 직관적으로, 갤리는 완전히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두 인물은 양 극단에 서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마찰을 빚게 되고 대립하게 되는데 그 사이를 메워 주는 인물들이 민호와 뉴트가 아니었나 싶다. 민호는 러너의 리더로 토마스와 하룻밤동안 미로 안에서 살아남고 난 이후 토마스의 직관적 감각을 신뢰하게 되고 뉴트는 대장인 알비를 대신해서 대장의 역할을 하게 된 후 토마스의 행동과 성과들을 보면서 토마스를 지지하게 된다. 나는 토마스가 글레이드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탈출을 실행에 옮기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민호와 뉴트 같이 토마스가 오기 전 글레이드에서의 생활을 통해 합리적으로 살아보기도 하고 토마스를 통해 직관도 경험해 합리와 직관을 모두 겪고 난 후 직관과 토마스를 선택하고 지지해 준 조력자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토마스는 기억을 잃고나서 바로 직관적으로 행동했기 때문에 합리에 대해 경험해 볼 기회가 없었지만 민호와 뉴트는 그 동안의 합리적 경험을 통해서 토마스의 직관이 빛을 발하게 되었을 때 더욱 더 직관의 장점과 가치에 대해 강하게 반응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적극적으로 직관을 신뢰하게 되고 토마스를 지지하게 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렇듯 나는 직관으로 가기 전에 직관과 합리를 모두 경험해보는 것이 합리에 비교하여 직관의 진가를 알게 되는 데 더욱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번 강의를 듣고나서 직관을 택하게 되는 순간 그 동안 경험해 온 합리가 전혀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미로의 구조나 그리버에 대한 정보 같이 민호와 뉴트가 토마스 등장 이전에 일궈놓은 합리에 의한 정보들이 토마스가 탈출을 시도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는 점을 통해 직관에는 필요에 의해 합리가 작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이처럼 토마스와 갤리를 통해서는 극단적으로 합리와 직관을 비교할 수 있었고 민호와 뉴트를 통해서는 합리의 한계와 결핍을 통해 직관의 가치를 깨닫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영화를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영화가 주는 교훈은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틀을 깨고 나가라. 그래야 진정한 삶이다’인 것일까? 나도 이번 교육공학 수업을 듣고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합리가 아닌 직관이라는 사실에 동의하게 되었고 개인적으로는 그 사실에서 더 나아가 직관에 비해 합리는 참 쓸 데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의 사고방식이 완전 바뀌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런데 나는 영화가 끝나고 계속 맴도는, 걸리는 점이 있었다. 만약 글레이드에서의 삶에 안주하지 않고 미로를 탈출한 토마스와 그 일행을 우리가 교훈으로 삼아야한다면 과연 탈출하는 과정에서 주인공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희생하고 죽은 사람들은 뭐가 되는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되게 꼬인 시각으로 영화를 바라본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합리적인 사고를 버리고 직관적인 사고를 해보려고 시도하는 나로서는 사실 그 희생자들의 존재가 매우 마음에 걸리기도 한다. 그들도 탈출을 하려고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토마스를 따라 나섰다. 그런데 그들의 결말은 죽음이었다. 미로에서 나가지도 못한 채로 말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희생을 우리는 그냥 새로운 도전과 시도를 위해 응당 감수해야하는 손실이라고만 볼 수 있을까? 물론 탈출 과정에서 몇몇 사람들이 죽고 희생한 것만 보고 모두의 탈출을 무모했다고,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었냐고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이들의 희생을 통해 깨달은 점은 무엇이든지 대가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직관이 합리보다 낫다고, 우리가 앞으로는 직관적으로 살겠다고 마음먹는다고 해서 모든 게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직관적으로 살게 되면 우리는 늘 모험과 도전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불안할 것이고, 두려울 것이다. 검증되지 않은 길로 직관을 따라 가다보면 다칠 수도 있을 것이고 최악의 경우 영화에서처럼 추구하는 것을 쫓다가 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직관적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그러한 불확실성을 모두 감수하겠다는 무언의 다짐이기 때문에 두렵고 무서울지라도 틀에 갇혀 살지 않고 고정된 규칙을 깨고 잠재력을 발휘하면서 진짜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아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나에게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게 만든 계기로서 작용했다.
여러 가지 의문도 생겼지만 결론적으로는 나도 앞으로 직관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합리를 버리고 직관적으로 행동하게 되었을 때 그 이면에 존재하는 희생, 합리가 필요에 따라서는 직관적으로 생활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전까지의 합리적 사고와 경험들이 직관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영화를 보면서 이전에 합리를 추구했던 과거가 부정 당한다는 느낌을 조금은 떨칠 수 있게 되어 마음이 더 편해졌고 이렇게 생각함으로써 앞으로 직관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이 보다 멀지 않게 느껴질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평소에는 영화를 그냥 재미로 보는데 이번에는 뭔가 포인트를 잡아내고 깨달아야한다는 생각이 들어 영화를 보는 것이 평소처럼 마냥 쉽고 즐겁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대신에 나의 사고 방식에 대해서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 그냥 재미로 영화를 보는 것보다 결과적으로는 더 유익했다고 생각한다. -서울대학교 성악과 15학번 지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