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산책 (48) 예수님의 승천 : 다시 아버지에게로
“사람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이는 사순시기의 첫날인 재의 수요일 미사 중에 사제가 신자들의 머리 위에 재를 얹어 주며 하는 말이다. 회개와 참회의 시기인 사순시기를 시작하며, 자신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하느님 앞에 겸손되이 내어 놓고 하느님의 용서와 은총을 청하는 표현이다. 아울러 이는 우리가 하느님의 피조물로서 죽는 순간까지 하느님을 향한 믿음의 삶, 순종의 삶을 살아갈 것을 다짐하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왔던 곳으로 되돌아 감! 우리 인간이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갈 운명을 지닌 존재라면, 예수님은 어떠한가? 그분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이 세상에 오셨고(마태 1,20-21 참조), “하느님의 아드님”(루카 1,35)이시며, 성부 하느님께서 친히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마르 1,11)이라고 알려주셨던 분이시다. 예수님께서도 당신 자신에 대해 ‘아버지에게서 나왔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보내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요한 17,8 참조), 이 세상에 오신 이유도 분명히 깨닫고 있었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 3,17).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부터 파견되시어 이 세상에 오셨던 분, 아버지의 뜻대로 사시다가 결국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던 분, 그러나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열어주셨던 분, 그분께서 다시 아버지 하느님께 되돌아 가셨다. 사도행전은 그 상황을 이렇게 전해주고 있다. “예수님께서 그들[사도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신 다음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는데, 구름에 감싸여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사도 1,9). 예수님께서는 이미 제자들과 함께 생활하실 때 아버지께로 되돌아갈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간다”(요한 16,28).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심은 예수님께서 단지 아버지 하느님께 되돌아가신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나는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어 들일 것이다”(요한 12,32). 그러므로 예수님의 승천은 자신의 자연적 능력만으로는 ‘아버지의 집’에 다다를 수 없는 인간에게 이 길을 열어 주시는 사건인 것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661항).
‘예수님의 승천이 우리에게 하늘나라 길을 열어주신다’는 고백은 주님 승천 대축일 미사 중에 바치는 기도에도 나타난다. “저희 으뜸이며 선구자로 앞서가심은 비천한 인간의 신분을 떠나시려 함이 아니라, 당신 지체인 저희도 희망을 안고 뒤따르게 하심이옵니다”(「주님 승천 감사송 1」 중에서). 따라서 교회는 예수님의 승천을 우리와 예수님과의 이별로 이해하지 않고 ‘하느님 나라에서 다시 만나리라는 희망’으로 이해한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보다 먼저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나라에 들어가셔서, 당신 몸의 지체인 우리가 언젠가는 당신과 영원히 함께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하신다”(가톨릭교회교리서, 666항).
[2016년 3월 27일 예수 부활 대축일 청주주보 4면, 김대섭 바오로 신부(복음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