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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지맥(섬,기타) 스크랩 철성지맥 01 (구수재~내동고개)
조은산 추천 0 조회 257 14.03.28 10:26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철성지맥 1구간

 

 

2014. 3. 22(토)

산길 : 구수재~내동고개

사람 : 조진대 이희중 조은산

거리 : 18.7km

 

 

 

 

구간거리

분기봉(300m)~1.3~[838도로]~1.5~오두재~2.5~깡초고개~7.6~[24국도]~2.1~철성산~0.7~오석고치~3.0~내동고개 / 18.7km

(구수재접근 240m 5분)

 

Cartographic Length = 23.2km Total Time: 10:10

 

  01(구수재~내동고개).gpx

 

 

 

 

용천사를 내비로 찍으니 293km에 3시간20분이 걸린단다. 4시에 출발하면 7시 반에 도착이 되겠다는 계산을 하고 04시 사상에서 만나기로 했다. 아침밥은 김밥을 사서 운전하면서 먹고 2교대 운전으로 부지런히 달려갔더니 7시에 도착이 된다.

 

원래는 용천사에서 올라가기로 했으나 고문님이 그새 임도탐구를 마치고, 구수재로 바로 올라가잔다. 용천사 아래 광동마을에서 금계리 구수동마을로 연결되는 임도가 통제되지 않고 4륜구동이면 다닐만하다. 구수재 바로 턱밑에 까지 차로 올라가 산행을 시작한다.

 

차는 사모님이 운전해 내려가시고, 오늘 구간은 저번처럼 도중에 차로 이동할 구간도 없고, 점심 장소도 마땅치 않아 시간을 조금 늦춰 24번국도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덕분에 배낭에 점심 도시락은 싣지 않아도 된다. 임도에서 구수재쪽으로 노란 리본이 걸려있고 길도 확실하다. 불과 240m에 땀은 고사하고 숨이 거칠어지기도 전에 구수재에 올라섰다.

 

 

지난번 백룡, 옥룡에서도 그랬듯이 남도의 나지막한 산줄기라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고 더구나 150지맥에서 추가된 지맥이라 더 조심스러웠는데 의외로 산길은 뚜렷하고 초반 몇 시간은 낙동 오지를 연상케 할만큼 깊고 깊은 산이더라. 341.5봉이 최고봉일 만큼 높이는 낮아 그리 힘을 쓸만한 긴 오름도 없지만 좌우 어디를 둘러봐도 속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오지 분위기가 묻어나는 산줄기다.

 

새로 생긴(?) 지맥이라 그런지 선답자가 거의 없는 모양이나 광주산꾼 신공식님의 산행기를 찾았는데 2009년에 종주를 했고 그 분의 산행기에 신경수님이 등장하는걸로 봐서 신경수님은 더 선선답자인 모양이라. 그보다도 신공식님은 2013.6월 불의의 사고로 지금은 이승에 없는 분이라. 2013.5월 일림산 철쭉산행기를 끝으로 그의 블로그는 시간이 멎었다.  신공식님의 산줄기 따라가기 블로그  http://sgs0007.tistory.com

 

 

 

 

 

07:15 구수재 임도

07:20 구수재

07:30 분기봉(용봉)

07:52 838번 도로

08:26 오두재

09:35 △341.5m

10:26 ×287.6

11:15 ×318.7

12:32 ×260.1

13:20 24번국도

14:56 법음사 임도

15:27 철성산

15:55 오석고치

16:38 삵재

17:25 내동고개

 

 

 

 

 

 

임도 (180m)

함평군 해보면에서 용천사로 넘어가는 838번도로. 함평버섯연구소 앞에 불갑산으로 올라가는 임도 입구에 고문님이 기다리신다. 07시 시보가 울리고 고문님은 막 식사를 끝내신 모양이다. 내 차를 여기다 두고 고문님 차로 올라간다. 일반 승용차는 좀 어려울거 같은 임도. 누렁이 한 마리 내려오다가 우리 차를 보더니 지 잡으러 온 줄로 알고 거시기 빠져라 내뺀다. 도로에서 1.5km 올라가 능선을 넘기 전에 구수재 등산로가 보인다.

 

 

 

구수재

 

 

구수재(220m)

서리가 내려 온 천지에 하얀 가루를 뿌려 놓은 듯하다. 어제가 춘분이라 밤이 낮만큼 짧아졌지만 아침 공기는 차다. 몸을 데우고자 부지런히 밟으며 오름 짓을 했으나 5분만에 영산기맥 구수재다. 웃옷을 벗기는커녕 옷깃을 더 추켜올린다.

 

에, 또~... 여기를 지난게 언제인고 찾아보니 4년전이구나. 그래 그런지 그림이 생소하지는 않다. 고개 넘어 동백골에서 아줌마 한분 강아지 앞세우고 올라온다. 전라남도 영광군과 함평군 경계로 불갑사 역시 꽃무릇으로 유명하다. 영광군을 소개하면서 첫째가 영광굴비, 둘째가 불갑사 꽃무릇이란다.

 

[용천사1.03km, 연실봉1.5km] 연실봉은 불갑산을 말하고, 용천사쪽으로 올라가면 길은 사면길과 능선길로 갈라진다. 분기봉 찍으러 능선길로 올라가면 분기봉까지 10분이 안걸린다.

 

 

 

철성지맥 분기봉

 

 

분기봉 (용봉 310m)

지형도 표기는 없고 이정표 기둥에 [용봉]이라 붙어있다. [용천봉0.35km]는 지형도의 △352.5봉을 말하고 그 다음봉에 모악산 팻말이 있다. 용봉이니 용천봉이니 하는거는 용천사 뒷봉이라 함평에서 붙인 이름이다.

 

모악산(母岳山)

현 지형도에는 표기가 없다. △352.5봉에 용천봉이라는 이정표 팻말이 있고, 혹은 이어지는 다음봉을 모악산이라 하기도 하고, 검색을 하면 불갑산이 원래 모악산이었는데 불갑사가 들어오면서 이름을 바꿨다는 내용도 있으나 대동여지도를 보면 불갑산과 모악산이 각각 따로 표기되어 있다. 산 너머 북쪽이 영광군 불갑면 모악리로 두 지명이 나란히 쓰였다.

 

조선왕조실록 (중종22년)에 극심한 가뭄으로 전국 영험있는 곳에서 제사를 지낼 것을 임금이 팔도 관찰사에게 하명을 한 곳 중 하나로 “전라도에는 영광(靈光)의 모악산(母岳山)·”이 나오고,  임하필기, 수은집 등 같은 시기의 문헌에 “영광 불갑산(佛岬山)”이 따로 등장하는걸 봐서 두 산이 같은 산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산 양쪽에 자리를 잡은 두 사찰도 각자 서로가 백제의 고찰임을 주장하는데, 용이 승천 했다는 용천사와 부처 佛에 육십갑자의 첫 글자 甲의 의미를 내세우는 불갑사. 그 창건 유래도 백제에 불교가 처음 유입된 곳이라며 크게 다르지 않다. 꽃무릇 역시 함평이나 영광이나 서로 자랑하기는 마찬가지이고,

 

어찌됐건, 절은 절이고 산은 산인데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옛 문헌에 나오는 모악산 이름이 현재 지도에 표기되지 않은 점은 매우 섭섭타 하지 않을 수없는 것이라.

 

 

 

용천사 안부

 

 

 

용천사 안부

분기봉에서 영산기맥을 뒤로 보내고 남쪽으로 내려가면 뚜렷한 4거리 안부에 지붕있는 쉼터와 이정표가 있다. 우측이 용천사로 내려가는 길이다. [연실봉1.95km 용천사0.58km]

 

용천사 (龍泉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의 말사이다. 600년(백제 무왕1) 행은(幸恩)이 창건하였다. 절 이름은 대웅전 층계 옆에 있는 용천(龍泉)이라는 샘에서 유래한다. 이 샘은 황해로 통하며 용이 살다가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60여만평에 달하는 한국 최대의 꽃무릇이 군락을 이루며 자연그대로 보존되고 있으며 2000년 제1회 꽃무릇축제를 시작으로 매년 수십만의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

 

꽃무릇

꽃은 9∼10월에 붉은색으로 피는데, 잎이 없는 비늘줄기에서 나온 길이 30∼50cm의 꽃줄기 끝에 산형꽃차례(여러 개의 꽃이 방사형으로 달림)를 이루며 달린다. 열매를 맺지 못하고 꽃이 떨어진 다음 짙은 녹색의 잎이 나오는데, 이 잎은 길이가 30∼40cm이고 다음해 봄에 시든다. 꽃이 시든 후에 잎이 피어나니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 하여 애틋한 전설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꽃무릇은 원래 절꽃이다. 금어(金魚), 탱화를 그리는 승려가 5월경 잎이 지고 난 뒤 알뿌리를 캐내어 물감에 찧어 넣으면 그림에 좀이 슬지 않는다고 한다. 뿌리에서 전분을 채취하여 종이를 붙이거나 책을 엮는데도 방부제 겸 접착제로 이용하였다. 수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 인쇄문화는 불경 출판이 효시였으니, 불경을 인쇄, 제책하던 절에서 꽃무릇을 많이 심었던 것이다. 외떡잎식물로 백합목 수선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이며, '석산'이라고도 한다.

 

   

  

 

 

[힘 기르는 숲 극기훈련시설] 그물망타기, 사다리오르기 매미허물벗기 평균대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매미허물은 어떻게 벗는지, 이런 쉼터에서 조용히 쉬었다 가면 될일이지 무슨 극기훈련을 하라는 건가.

 

 

 

 

 

체육시설 앞봉에 올라서니 좌우로 능선이 갈리면서 앞이 확트인다. 우측으로 뻗는 능선이 더 실해 보이지만 지맥은 좌측이다.

 

 

구수동 임도

 

 

조금 전 우리가 차로 올라왔던 구수동 임도가 용천사로 넘어가는 지점이다. 건너편에 빠꼼한 묘터로 들어갔더니  순천박공이고,  옆길로 들어가니 가시덤불 천국이다. 5분 내려가니 조금 작은 임도가 나오고, 가로 질러 정면은 너무 험해 왼편으로 비켜 내려가니 아스팔트 도로에 떨어진다.

 

 

838번 도로

 

역시 아침에 해보면에서 타고 왔던 도로다. 차들이 간간이 지나 다니고, 커다란 비석이 시선을 당긴다.

 

 

광암리 가정마을과 운암마을  뒷산에서 시신 274구를 발굴했다는...

 

 

'함평사건'으로 알려진 함평 11사단 사건은, 1950년 11월부터 1951년 1월 사이에 전라남도 함평군 일대에서 공비 토벌을 위해 주둔했던 국군 제11사단 소속 20연대 2대대 5중대가 민간인을 집단으로 사살한 사건으로,  공비들의 습격을 받아 2명의 전사자를 낸 군부대가 이에 대한 보복 공격으로  공비와 주민을 구별하지 않고 해당 지역을 소멸시키는 작전을 펴면서 수개월에 걸쳐 반복되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2007년 주민 249명이 국군에 의해 집단 학살당하고, 9명이 부상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다음 백과사전)

 

 

한북정맥 금정굴에서 유해발굴 현장을 만났고, 진양기맥에서도 거창양민학살사건을 접했다. 또, 한 구간 남은 각호지맥에도 노근리 양민학살이 남아있다. 그 내용이 전부 비슷한데, 60년이 지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간첩조작사건이 오버랩 되는 이유는 뭘까.

 

 

 

불갑산

 

 

지형도의 ‘당재’에서 불갑산이 한 가득 조망권에 들어온다. 바위로 이루어진 정상부가 위압적인 모습으로 주변 일대를 호령하는듯 하다.

 

 

 

 

사람 발길 흔적이 거의 없는 능선에 [한옥마을]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있다. 우측 아래 대각리에 한옥마을이 있는가 보네. 정면으로도 [오두재]를 가리키길래 혹시나 조은 길이 닦여있나 기대를 해봤지만, 한 때의 바람이었나 보다.

 

 

만개한 진달래

 

 

 

 

산자고

 

약이 귀했던 시절에는 종기가 나면 산자고 뿌리를 달여먹고 했단다.  山慈姑라,  산에서 나는 자애로운 시어머니로 풀이가 되나 순 우리말 이름으로 ‘까치무릇’이 더 정겹게 다가온다.

 

 

오두마을 이정표

 

나무가 쓰러지면서 [오두마을] 이정표를 덮었다. 우측 아래 오두마을쪽으로는 굵은 로프가 걸려있으나 사람이 다닌 흔적은 거의 없어 보이고, 이제 이런 이정표도 다시 만나지 못했다.

  

 

 

병풍산

 

송산고개에서 남서쪽 대각리 골짜기다. 정면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병풍산(329.3m)이라.

 

 

 

 

 

송산고개 이후 능선 우측은 아주 넓게 벌목이 되었다. 산불 흔적은 없고 밭이라도 개간 하려나 보다.

 

 

 

만날 수 없는 선답자

 

 

 

 

 

철성지맥 최고봉

 

 

341.5m (△나주446)

400m도 안되는 봉우리가 철성지맥 최고봉이다.  주위에서 유독 볼록 솟아 보이지만 정작 조망은 없다. 잡목으로 어수선 했는데 전지가위질을 해댔더니 그나마 조금 나아 보인다. 내려가는 길이 없어 무성한 산죽숲을 마구잡이로 밀고 내려가다가, 산죽 속에 숨어 있는 명감줄기에 오지게 낚아 채였다. 이 봉에서 나산면계를 만난다

 

341.5 다음봉에 오르자 말자 우측 비탈로 내려가야 된다.  능선따라 무심코 직진하다 수십미터 헛걸음 했다. 능선 같지도 않은 비탈인데 건너편 봉으로 연결이 된다. 여기도 개간할 목적인지 페인트 칠한 대나무를 일정간격으로 꽂아놓았다. 보이는 임도로 내려서면, 이 임도는 왼쪽 깡초고개에서 온 임도다.  비탈로 떨어지기전 알바하던 방향대로 가면 깡초고개를 지나 천주봉(378.3,)으로 연결이 된다

 

 

 

 

임도는 우측 상각궁 마을로 그대로 넘어가고,  봉우리 왼쪽으로 질러가는 길이 더 좋아, 정면 봉우리는 생략하고 옆길로 들어간다. 이 수렛길을 만나고는 한동안 잡목에 치대지 않고 여유있게 나아간다. 두릅 순이 막 올라오는게  한 보름만 지나면 딸만 하겠다. 다음의 약 300봉도 우측 사면으로 살짝 질러간다.

 

 

두릅순

 

×287.6봉에서 한참을 쉬었다 가고,  왼쪽아래  논골마을인 능선에는 왕대나무숲이다.

 

 

병풍산 갈림봉

해보면 나산면 대동면이 갈라지는 삼면봉이다. 해보면은 이제 이별이고,  대동면계 능선따라  병풍산(329.2m)이 있다.

 

 

천주봉

 

 

×318.7은 암봉이다. 동쪽 아래 원산리 골짜기가 다 내려다보이고, 멀리 뾰족 솟은 봉우리는 천주봉(378.3)이겠다.

 

 

 

춘란

 

 

 

 

생강나무

 

 

 

늦둥이

 

 

 

 

산중 좌담

 

 

×285.2봉 왼쪽으로 살짝 질러가고,  다음 암봉에서 우측비탈로 내려가다  비탈에 앉아 10여분 쉬었다. 꽃을 피운 난초가 지천이고,  생강나무의 노랑색과  진달래의 분홍빛이 어우러진 산길이다.  무안박공 묘터를 통해 시멘포장된 임도에 내려섰다. 지도에는 표기가 없는 임도다.

 

 

 

 

저 앞에 보이는 임도 능선에 올라서면 넓은 공터다. 여기서 바로 우측 수렛길로 들어야 되는데,  정면으로 가는 자갈깔린 임도로 수십미터 가다가 발길을 돌렸다. 그대로 가다가는 구산제로 하산이다.

 

 

 

자주알록제비꽃

 

 

 

 

 

 

×258.4봉 왼쪽으로 수렛길이 나있어 꼭대기로 오르지 않아도 되겠다.  ×258.4봉 정상부에 거대한 바위가 쳐다보인다.

왼쪽 아래로 보이는 구산리의 구산제이고, 우측 능선 맨 끝에 철성산이 보인다.

 

철성산

 

 

24번국도가 내려다보이고,

고개 정점을 목표로 방향을 잡으니 면계에서 우측으로 벌어진다. 도로가 훤히 보이는 자리에서 다시 방향을 확인하니  면계능선은 마루금이 아닌거 같아 우측으로 방향을 잡았다. 흰색창고 건물(벧엘)앞 국도 삼거리가 정점(마루금)인데, 그 공장 뒷면은 좌 우 어느게 마루금인지 여기서는 분간이 안된다.

 

 

공장 앞  T 삼거리가 고개 정점

 

 

  

보라색이 마루금, 빨강색은 진행트랙

면계와 일치하지 않는다.

 

 

함평모공

 

 

학생함평모공 (咸平牟公)

길이 없지만 이리저리 성긴데로 골라 내려가다가 둘레석을 두른 봉분 여럿이 있는 묘터로 떨어졌다. 문패를 보니 학생함평모공휘대달지묘. 앞뒤 치장 다 떼내면  '모대달'이다.

 

함평모공묘터가 중요한 깃점이 된다. 즉, 묘에서 24번국도를 내려다보면서 우측 능선이 마루금인 것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건 수북히 솟은 덤불뿐이라,  우리는 왼쪽으로 내려가는 묫길을 따라 가야쓰겠다. 더구나 사모님의 밥차가 고개 왼편 아래쪽에서 기다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도 건너편  154.4봉

 

 

 

 

 

점심

 

점심 메뉴는 닭도리탕이라.  양은 밥상까지 펴놓고 , 막노동꾼의 밥상 치고는 호사도 이런 호사가 어디있노. 벽진이공희중이 막걸리 한 병 없음을 통탄해 마지 않는다.  (13:20~14:00)

 

 

 

 

 

 

24번국도 출발

함평군 나산면과 대동면의 경계인데  적당한 고개이름을 찾지 못하겠다. 대동면에 송산마을이 있어 송산고개라 해볼까. [고산봉등산로] 이정표를 설치했는데, 함평 고산봉(361.8m)은 천연기념물인 붉은박쥐 서식지로 알려졌고, 군에서도 등산로와 둘레길을 개발했다.  도로 건너  면경계판 옆에  'Mercian, 벧엘'이라 적힌 창고가 있는데 뭐하는 공장인지 모르겠다.  

 

 

 

벧엘

 

 

 

 

 

 

대파밭 가장자리 둑을 통해 올라가니 풍산홍공 묘다. 그런데 묘터에서 자연스레 산으로 이어질 것 같은 능선은 묘 뒤편에서 싹둑 잘렸고 아래는 논이다. 우째 이런 일이...

 

그대로 일직선으로 넘어가면 논바닥에 쳐박힐 장면이고 묘터 왼쪽 끝으로 가니 산으로 이어지는 아주 가느다란 둑이 마루금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둑 건너편은 산비탈을 깎아 수백평의 넓이로 평탄한 부지를 조성해놨다.

 

 

묘터 뒤에는 논 바닥이라.

 

 

문제는 154.4봉이냐 아니면 우측의 140봉이냐 였는데, 현재 눈에 보이는 마루금은 왼편의 154.4봉으로 이어진다. 두 봉 사이의 계곡물은 현재 발 앞에 있는 둑으로 인해 우측(서) 논으로 내려가기 때문이다.

 

논둑만한 높이의 작은 둑. 예전부터 이 부분이 마루금이었던지, 혹은 건너편 산비탈을 개간하면서 새로 만들어진 마루금인지는 전문 측량사를 동원해야만 판정이 날 일이다.

 

 

작은 둑이 마루금이고, 두 봉우리 사이 계곡물은 우측 논으로 흐른다

 

산비탈을 깎아내면서  평탄 작업한 저 부분이 없다면, 그 때는 계곡물이 왼쪽(동)으로 내려갔는지도 모르겠으나. 현재는 우측(서) 논으로 흐르게 되어 있다. 어쨌든, 현재의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바는 왼쪽 154.4봉이 마루금이고, 우측의 140봉은 마루금이 아니라는 판단이다.

  

 

154.4봉 오름 길이 없다. 20여분 가위로 가시줄기를  잘라대며 급비탈을 다 올라서니 왼편에서 희미한 길이 올라온다. 어디가 정점인지 알지도 못하고 154.4봉을 지나니 길은 보이다 없어졌다를 반복한다. 길이 있다가도 쓰러진 나무를 피해 돌다보면 길이나 덤불이나 별 차이도 없다. 

 

 

 

 

 

×155.1봉에서 우측으로 휘어져 내리면 가식마을에서 올라 온 수렛길이 끝나는 지점이다. 묫길을 내다 말았는지 잠시 앉았다가 다시 덤불속으로 파고들고 법음사 안부로 내려서기 전에 왼쪽으로 꺾는다. 그대로 직진하면 법음사 뒤로 해서 황새봉으로 연결되는 능선이다. 함평노공(咸平 魯公) 묘터를 통해 빠져 나오면 아래 법음사가 보인다.

 

 

온종일 가위질 해댔다.

 

 

 

 

철성산,  법음사

 

법음사 임도

법음사는 절집보다는 팬션처럼 생긴 모습이고, 지형도에는 법음사 전후로 노랑색 임도표시이나 실상은 국도나 다름없는 2차선 아스팔트 도로인데, 법음사를 넘지 못하고 양쪽에서 끊어진 채로 공사가 마무리 되었다.

 

 

 

 

법음사부터 철성산까지는 거의 일반등산로 수준의 길이다. 이 등산로는 법음사에서 시작하여 철성산에서 남서쪽으로 내려가다가, 법음사 아래 월송제(저수지)쪽으로 내려가고 오석고치로 내려가는 길은 없더라.

 

오를수록 조망이 열리며 북쪽으로 바로 건너편 능선에 설치된 태양광 집열판이 삼포처럼 보이고, 그 너머로는 천주봉이 아스라 하다.

 

 

 

 

묘터 전망대

등로에서 우측으로 벗어나 봉분 두 개가 있는 묘가 보이는데 혹시나 싶어 나가 봤더니 아래는 수십길 절벽이라 아주 훌륭한 전망대다. 문패는 없지만 절벽위에 멋지게 자리를 잡은 묘터다. 바로 아래 법음사는 물론 먼데까지 막히는게 없다. 대기가 깨끗하면 불갑산도 충분히 시야에 들어올 자리다만

 

 

철성산성

 

 

철성산(鐵城山 265.5m)

허물어진 돌과 남아있는 축대가 성터였음을 말해준다. 정상부는 잡목과 덤불로 지저분해 한 바퀴 둘러보기도 쉽지않다

 

철성산성지(鐵城山城址)

철성산성의 축조와 폐성 연대에 대해서는 기록 뿐 만 아니라, 수습 유물 또한 없어 자세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주변에 분포하고 있는 고분군으로 미루어 보아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보이며, 성내 면적이 좁아 삼국시대 이후에는 성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것으로 추측된다. 철성산성은 정상부의 서쪽에 위치한 봉우리를 이용한 테뫼식 산성으로 평면 형태는 부정형이다. 현재 대부분의 성벽은 무너진 상태이며 동벽과 남벽의 일부에서 석축이 잔존하고 있다. 한편, 성내에는 속칭 '요강샘'이라고 불리는 샘이 있었다고 전하나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산 아래 금곡리 나막마을(羅幕 지형도에는 남악) 일대에 지석묘가 많이 남아있어 청동기 무렵부터 나막마을 근처에 큰 취락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오재만 문화유산사진연구소장)

 

 

 

철성산 정상부

 

 

남서쪽으로 덤불이 뚫린 흔적이 있어 빠져 내려가니 길은 더 뚜렷해지고 편백나무 숲을 끼고 한동안 신나게 내려가다가 오석고치는 왼쪽인데, 길은 우측으로 틀어 내려가 버린다. 다시 전지가위 빼내들고 파고들 밖에, 10여분 전쟁을 치르고 함평노공 묘소로 빠져나왔다. 23세~27세 비석을 여러줄로 세운 함평노씨 문중묘다. 고개 우측 푸른 초지로 내려서고, 아스팔트에 내려서니 고개 약간 우측 아래다. 

 

 

함평노씨 문중묘

 

 

 

 

오석고치

 

 

오석고치(80m)

2차선 아스팔트 월송리 동암마을에서 남악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다. 고갯마루 건너편 숲이 너무 빽빽해 보여 우측(서) 밭을 따라 들어갔다. 밭에는 파란풀이 넓게 자라는데 보리는 아니고 사료용 작물로 보인다. 밭 건너편 비탈에 정자까지 갖춘 멋진 묘터가 보이고, 거기까지 마을에서 올라 온 임도가 있다. 우측 골짜기로 올라가는 임도를 따라 끝까지 올라가니 지맥 능선을 만나고, 쉬었다 간다.

 

 

 

사료작물

 

 

 

 

조은길도 잠시

 

 

 

 

삵재

 

삵재

홈통같은 길은 있지만 잡목만 빼꼼하다. 삵재를 지나 넓은 수렛길을 만나고 끝까지 올라가니 장수황공 묘터다. 희중이 배낭에 숨겨 놓은 밀감 한 조각씩 농갈라 먹고 ×166.1봉으로 치고 오른다.

 

 

 

 

166.1봉을 지나 내려오니 고속도로 차소리 요란하게 들린다. 왼편 나무사이로 금곡제가 보이고 그 뒤로 강물이 보이는데 고막원천이라. 지도를 보면 고막원천과 나란히 내려가는 철성지맥이다. 그러니 함평천 보다는 고막원천 하구로 가는게 더 맞지 않나 싶기도 하다.

 

 

학교면계를 만나는 안부에 문패없는 봉분 두 개있다. 여기서 지맥은 우측으로 고속도로 함평나비터널과 같은 방향으로 터널 위로 따라간다.  10분 후 ×112.6봉 직전에 왼쪽으로 난 희미한 길을 못보고 우측으로 돌아 올랐다가 막판에 또 한판 난리 부루수를 칠 줄이야.

 

 

 

 

×112.6봉에서 남쪽 내동고개로 내려가는 길은 오늘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큼 최악이다. 가위질을 하면서도 몸을 뒤로 돌려 배낭으로 밀어 붙이다가, 다리가 꼬여 자빠지니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하면서 칡넝쿨이 사지를 휘감으며 놀다가란다. 가시가 머리를 찔러 줄기를 걷어내니 머리에 침이 박힌 채로 남아있다. 이런데를 지나려면 화이바 쓰고 철갑으로 무장을 해야지 살아남겠다.

 

한바탕 생쇼를 하고 덤불을 빠져 나오니 왼쪽에서 온 길과 만난다. 122.6봉 오르기 전에 왼쪽으로 길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기리 ?장마즐~!!

 

 

내동고개

 

 

내동고개(58m)

지형도상 이름은 없지만 내동마을이 가깝고 다음 고개가 내동치라 여기를 내동고개라 해본다. 대동면과 학교면의 경계로 지나 다니는 차는 거의 없는 도로다.

 

 

 

 

 

 

학교면 보은모텔

구수재로 가 내 차를 회수하고 함평읍 모텔촌에 갔다가 모텔 분위기가 우리 행색과는 너무 맞지를 않아 학교면으로 넘어갔고, 민박집을 찾았으나 학교면에는 없단다. 도리없이 학교면 보은모텔에 여장을 풀고 모텔 1층에 있는 식당에서 소고기 꾸버 저녁을 먹었다. 손불 출신이라는 올해 일흔의 식당 누부야(?)는 소리만 요란하지 음식맛은 형편이 없다.

 

 

 

소고기 꾸버묵꼬.... 

 

학교우체국 앞  보은모텔 408호. 보일러를 얼마나 돌렸던지 찜질방이 따로 없더라

 

 

鶴橋面 학교리. 학다리

마을의 형국이 학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옛날에 마을 앞까지 호수처럼 물이 찼을 때 학이 많이 날아와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며 장수하는 학을 으뜸으로 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정확한 유래는 잘 알 수가 없지만, 1789년 호구총수지명에는 호양촌(湖陽村)으로 되어있으며 지역이 넓어진 지금은 학교1리(鶴橋1里) 학다리, 학교4리(鶴橋4里) 신학, 학교6리(鶴橋6里) 백학으로 정하여 각각 마을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고 한다.

 

 

2014 지방선거 광주시장에 출마선언한 강운태, 이용섭 두 사람이 학다리고등학교 동문이다.

흠~, 두 사람... 학교서 학교 다녔구만~!

학교고등학교 보다는 학다리고등학교가 훨씬 듣기 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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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03.28 18:18

    첫댓글 희중이 행님은 잘 계시는 모양이네예
    하도 격년으로 만나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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